소설리스트

12권. 제 9장 참자면위 (137/228)

제 9장

참자면위 

- 이제 공격을 할 때가 되었다.

창로원에 호연각이 도달했을 때 그의 발은 이미 걸레처럼 너덜거리고 있었으며,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호연각은 발에 내공을 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기에는 동정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 당사자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는 호연각이란 점에서 더욱 그랬다. 심심삼 명의 장로들과 수 많은 선은들은 호연각이 나타났을 때부터 그 모습을 보고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들 앞으로 다가온 호연각이 양손에 들고 있던 두 개의 인두를 내려놓았다.

장로원의 장로들이나 수많은 선은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호연각을 지켜본다.

"내 아들과 그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부총관의 목이외다."

그 말을 들은 장로들과 선은들은 다시 한 번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호연각을 바라본다.

설마 아들의 목이라니.

일부 장로들이나 호연상의 얼굴을 잘 아는 선은들이 앞으로 나서서 호연상의 얼굴을 확인했다.

폭풍도 호연상.

대대로 손이 귀한 가문인 호연세가의 독자로 태어나 세가의 가주로 호연각의 뒤를 이은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어려서부터 호연각의 지도하에 혹독한 수련을 거친, 그의 무공은 능히 십사대 고수 이후 최고의 고수 중 한 명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 명의 사람들로 인해 언제나 맘 편하게 세상을 살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세 명 중 한 명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신주 오기의 한 명인 참마도 호연각이었다.

호연각의 아들. 

호연세가의 가중 호연상.

그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와 세가의 후광이 더욱 강하다는 것은 그에게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그의 자질이 뛰어나긴 했지만, 아버지인 호연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메울 수 없는 자질상의 문제는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무공을 끌어 올리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 외에 그에게 더욱 큰 부담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소질을 지닌 딸의 존재였다.

그렇지 않았도 입지가 좁았던 그는 자신의 딸로 인해 더욱 존재감이 떨어지게 되었고. 여기에 북궁세가의 현 가주인 군자검 북궁단과의 상대적인 비교는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언제나 북궁단의 아래 호연상의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호연상의 자존심이 크게 상해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호연상이 죽었다.

그것도 그의 아버지인 호연각이 직접 목을 잘라 온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아들의 목을 잘라 왔겠는가?

누구든지 그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로 인해 또 한 명의 주검인 총관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죽어서도 사람은 이름깞과 생전 자신이 자니고 있던 지위대로 가는 것 같았다.

동싱맹의 장로들 중에 한 명인 목원대사가 앞으로 나서서 호연각을 보고 물었다.

"노가주께서는 아들의 목을 들고 이곳에 온 사연을 말해 주셨으면 합니다."

호연각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의 아들 상은 어려서 자신의 자질이 부족하여 세가의 최고 무공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참이었소."

다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호연각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목연대사는 살짝 강은 호연각의 눈꺼풀이 조금씩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식의 인두를 들고 나타났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마음을 가다듬은 듯 호연각은 눈을 뜨고 다시 말을 이었다.

"상은 자신이 못 다한 한을 자신의 딸인 란이에게 풀려고 했었소. 그리고 란이는 충분히 그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나 호연세가의 최고 무공인 광천칠기도법은 여자가 터득하기엔 너무 양강의 무공이었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나의 아들 상은 호연세가의 마지막 핏줄인 란이에게 최강의 무공을 익히게 하려고 수많은 연구를 하였던 모양이요. 그러나 노력과 자질만으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지라 상은 또 한 번의 좌절을 격어야 했던가 보오."

강한 무공에 대한 열망.

자신보다 더 뛰어난 후인에 대한 욕심.

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욕심이었다.

무인이었기에 선은들은 호연상의 마음을 이해했다.

호연각은 선은들의 얼굴들을 조금 훑어본 다음 다시 말을 이어간다.

"그러다 나의 아들은 우연히 명옥천마도법과 그와 관련된 몇 가지의 무공을 얻게 되었고, 고민하던 아들은 이 무공들이라면 자신의 딸과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수하들을 강하게 만들 것이란 욕심에 이성을 읽고 말았소. 그는 부초오간인 범여창과 태상호법인 호연낭. 그리고 몇몇 세가의 인물들과 상의하여 나와 가문의 많은 인물들을 철저히 속이고 이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였소.

물론 집중적으로 익히게 한 것은 나의 손녀이자 자신의 딸인 호연란이었소, 당시 손녀는 너무 어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소. 그리고 자신이 익히고 있는 무공이 무엇인지도 몰랐었고. 나는 알다시피 거의 이십여년 동안 폐관하고 있었기에 이 모든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소. 상은 나에게 이 말을 전할 만한 사람에게도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였기 때문이었소. 후에 알았지만. 그는 만약의 경우 자신이 이 모든 책임을 지기 위한 배려이기도 했던 것이오. 그 모든 사실을 이제야 나도 알게 되었소, 상은 그 모든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배르 가르고 자살하기 전 유서로 나에게 자신의 몸을 베어 모든 일의 책임을 자신에게 있음을 알리라 하였소. 나는 내 목을 베는 심정으로 죽은 아들이 목을 베었소. 그와 그에게 동조했던 자들의 목을 모두 베어 죗값을 치르게 하였소. 그리고 손녀인 란은 모든 무공을 전폐시켰소. 내 비록 죽은 아들의 목을 베었지만 내 심정이 스스로 나를 용서하지 못해 가시 철사로 스스로 묶고 이곳에 왔소. 아들 상과 란이로 인해 해를 입은 무인들에게 이 호연각이 대신 사죄를 드리는 바요. 무림맹에서도 이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요."

모두 숙연해진다.

무인의 속성.

강해지기 위해서는 모래라도 삼킬 수 있는 것이 바로 무인이다.

잘잘못을 따지기 앞서 무인이란 이름으로 호연상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잘못을 하고 자살을 한 상황이라도 가문을 위해 아들의 목을 베어 온 호연각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목원대사는 가만히 염불을 두어 번 외우고 나서 말했다.

"노가주께서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단 말이요?"

"알다시피 이대 금기마공의 장점이 누구도 그 무공을 펼치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점이고, 나는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한동안 폐관수련에 전념하고 있던 터였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몇몇 선은들은 고개를 흔든다. 일면 그럴 듯하지만 호연각의 말에는 많은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신주오기 중 한 명이자. 천중 이대세가라 불리는 호연세가를 사실상 일으켜 세운 호연각이 아무리 무공에 빠져 있었다고 하지만 자신의 자식이 마공을 익히고 있는 것을 모르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어찌 그의 묵인이 없이 아들과 일부 심복 수하들이 마공을 익히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목원 대사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따질 생각이 없엇다.

단지 원론적인 것을 다시 묻는다.

"정말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난 호연각이오.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소. 진작 알았으면 그때 이미 손을 썼을 것이오. 그리고 나의 무공은 결코 명옥의 마공보다 못하지 않소."

그의 얼굴엔 자부심이 어려 있었다.

그의 말은 분명히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무공은 그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핏줄인 호연란이 익힐 수 없는 무공이었다.

목원대사는 그 부분을 모르는 척 넘어간다.

일단 호연각이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된 것이다.

"그럼 이 일에 호연세가는 무관하단 말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소. 비록 모르고 있었다고는 하나 내가 호연세가의 가장 어른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있는 중이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호연세가를 대표해서 다시 한 번 무림의 동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는 바요."

호연각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오체복지 한다.

동심맹의 장로들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 중 몇몇이 황급하게 호연각의 손을 잡아 일으켰고, 목원 대사 역시 호연각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노가주께서 무슨 죄가 있었겠습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이미 아들의 목을 자른 것으로 모든 죄는 충분히 참작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드님은 그 죄를 스스로 반성하고 자결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결단임을 소승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무인이라면 그 기상을 능히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는 목원대사의 말이었다.

정작 일을 당한 중소 문파나 낭인 무사들은 말 할 기최조차 없으니 어쩌랴.

선은들도 할 말이 있었지만, 스스로 아들의 목을 베어 온 호연각의 앞인지라 차마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아들의 목을 베었을까?

그들 중엔 호연각의 냉정한 협심에 감탄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으며. 일부는 그의 명성과 무공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일단 호연각의 말을 의심한다 하더라도 그 의심에 대한 증거가 지금 당장엔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호연세가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사실상 이 정도면 충분히 그 죗값을 치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 장로원의 내사단이 호연세가를 방문해서 삼 일간 머물다 왔고, 다녀온 다섯 명의 장로들은 일제히 다음과 같은 벽보를 붙이고 호연세가의일을 내외에 선포함으로서 마무리를 지었다.

 - 호연세가에 대한 장로원의 결정안 -

호연세가에서 낭인 무사들을 이용하여 마공을 익히다가 적발되었던 바. 이는 가주인 호연상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을 강하게 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린다.

호연상은 폐관 수련 중이었던 노가주 호연각마저 속이고 자신의 어린 딸에게 강제로 마공을 익히게 하였고 일부 호연세가의 중요 인물들이 이 일에 동조하였다.

후에 노가주인 호연각이 이를 알게 되었고, 크게 노한 노가주의 꾸중을 들은 호연상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자결하여 그 죗값을 치렀으며, 노가주인 호연각은 죽은 아들의 유언대로 그의 인두를 들고 가시 철사로 자신의 발을 묶은 채 무림맹으로 걸어 들어와 무림의 동도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장로원은 이제 신주오기의 일인으로 무림을 위해 공헌한 호연각과 그이 가문이 세운 공을 감안하고, 적극적으로 이번 사건에 개입하여 손년인 호연란의 무공을 전페하여 다시는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만들고, 친자식의 목을 들고 들어와 장로원에서 오체복지하여 공개 사과한 호연각의 아픔을 생각하여, 모든 사건을 여기서 종결함을 선언한다.

이후 장로원이 직접 호연세가에 가서 조사한 것과 이번 사건에 대한 간단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호연세가를 충분히 내사한 결과 호연각의 말과 모든 사실이 일치함을 알았고, 명옥천마도법을 익힌 호연란은 무공을 더 이상 익힐 수도 펼칠 수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녀에 대한 벌 또한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사료됨.

2. 마공을 익히고 낭인무사들을 납치했던 가주 호연상과 범여창 외 호연세가 내부의 몇몇 인물들은 노가주인 호연각이 단호하게 참형으로 다스렸기에 더 이상 죄과를 물을 수 없었음.

3. 노가주인 호연각이 가시철사로 발을 묶어 스스로 벌을 받았고, 전 무림인들에게 오체복지하여 사과를 함으로 이 모든 사건을 일단락 함.

무척 많은 설명이 있는 것 같았지만, 살펴보면 엉성한 부분도 있었고, 권왕에 대한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따.

이 결론을 두고 무인들은 호연각이 자식을 잘못 두어 망신을 당했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자들과 처음부터 호연각이 몰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로 나뉘어 서로 격력하게 충돌하였지만, 어파치 결론 나지 않는 말싸움에 불과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잊힐 일이었따.

몇몇 무인들이 호연세가의 식솔들에게 이 일을 물어보면 그들은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이렇게 호연세가의 일은 끝나는 것 같았다.

장로원과 호연세가는 권왕이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그마저도 아무런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장로원으로서는 가장 다행스런 부분이었다.

후에 무림사가들은 호연각의 예를 들어 자신의 친인척이나 충복을 죽여 위기를 모면하는 방법을 일컬어 "참자면위"라 하였다.

이는 "아들을 죽여 위기를 면한다."는 뜻으로 죄 지은 것 없이 주군을 대신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충복들을 일컬어 말할 때고 이 사자성어를 사용했다.

아들과 충복의 차이는 있지만 이리저리 같다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                   *                     *

맹주부의 밀실 조진양이 사마정을 보고 말했다.

"호연각이 망신을 당했군. 이제 권왕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혔을 테니 언제고 불만 붙여 놓으면 알아서 충돌하겠지."

사마정 역시 조진양의 말에 긍정하면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호연각은 신중한 자입니다. 함부로 자시의 힘을 드러내진 않을 것입니다."

조진양 역시 고개를  끄덕였따.

사마정이 조진양을 보면서 말했다. 

"그보다도 사형, 이제 우리도 와룡을 대신할 군사를 데려와야 합니다. 사형이나 저나 작은 꾀엔 약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상황을 보니 와룡은 분명 변을 당한 것이 확실할 것입니다. 그것을 감안해서 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거라면 이미 조치를 해 놓았네. 만약을 대비해서 귀문의 모든 것들도 다른 곳으로 남모르게 옮겨 놓은 상태이고, 새로운 군사는 오늘쯤 도착할 것일세."

사마정의 눈이 빛났다.

"마뇌를 부르신 것입니까?"

"그렇게 했네, 지금은 그가 필요할 때가 보았네."

"으음"

사마정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사형은 결심을 하신 것입니까?"

조진양이 사마정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는 것 아닌가? 사십 년을 준비해 왔으니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일세. 우리도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 죽기 전에 대초원의 꿈을 이루고, 그 영광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가야 하지 않겠나?"

사마정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언제부터 그 말을 기다렸느지 모른다.

"광전사들을 비롯하여 모든 전사들은 사형의 결심을 반길 것입니다. 그런데 대사부, 아니 대전사님께는 그 뜻을 전해  드렸습니까?"

"이미 허락을 받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분은 우리가 하는 일에 어떤 상관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분 나름대로 길이 있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지. 

하지만 지금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무림을 완전히 장악하고 난 후 그분이 나서서 그분의 뜻을 펼치신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 말이 옳습니다. 우리는 강제로 중원을 빼앗고, 대전사께서는 무력 하나로 중원의 혼을 완전히 무너트린다면 중원은 다시 우리에게 대항할 수 있는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전사님은 너무 신중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무공만으로 이미 천하무적이십니다. 강호 무림에 누가 있어서 감히 대전사님의 일초지적이 되겠습니까? 천하에서 내전사님의 적수는 오로지 수석전사이신 아므르칸 어르신뿐일 것입니다. 그런대로 아직 행동을 안 하고 계시니 조금 답답하기도 합니다."

조진양이 고개를 흔들었다.

"전에 대전사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계셨다. 세상은 넓고 어느 산골에 기인이 숨어 있었서 어떤 무공을 가지고 갑자기 나타날지 모른다고. 대전사님은 무공 하나만으로 천하에 정면 도전하여 홀로 일인독패하시어 강호 무인들의 혼을 꺾어 놓으려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완벽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강한 무공이 필요하신 것이다. 그러니 신중하실 수밖에. 나는 능력이 모자라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분의 뜻이 옳다고 본다. 대전사님은 검혼을 염두에 두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저도 그분의 방법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형, 지금 대전사님의 무공은 이미 무적입니다. 검혼이 설사 살아 있다고 해도 결코 대전사님을 이길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진양은 사마정을 정면으로 보면서 고객을 흔들었다.

"일대일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수라면 쉽지 않다. 실제 소림의 십팔나한진의 경우만 해도 일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진법이 아니다. 특히 선은들이 펼치는 십팔나한진을 누군들 쉽게 이길 수 있겠는가? 대전사님은 그 경지마저 뛰어넘고 싶은신 것이다. 그래서 강호의 혼마저 완전히 굴복시켜 다시는 넘보지 못하게 하고 싶으신 것이다."

사마정을 그제야 조금 긍정하는 표정으로 고객를 끄덕였다.

조진양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우리는 모략으로 종원의 힘을 약화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서 우리의 전력누수 없이 전 무림을 우리의 영향 아래 두려고 한다. 그럴 경우 한인들을 강제로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정신과 혼마저 장악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노력한다면 언제든지 넘을 수 있는 힘의 격차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전사님의 방법은 다르다. 대전사님이 나서는 날, 전 무림은 그들의 정신마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절대강자.

무인이라면 적이지만 승복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

"---- 대전사님이 가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대전사님은 자신의 무공이 완성되길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나도 될 수 있으면 그분의 무공이 완성되는 시기에 맞추어 거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대전사님의 무공이 어느 정도 완성된 상황이란 말씀입니까?"

조진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미완이지만 곧 완성되실 것이다. 우리가 중원을 장악하고 나면 곧 그분이 나설 것이다."

마치 쐐기를 받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

사마정의 입가에 자신감 있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제 시작해야 겠군요."

"사실 많이 기다렸지."

"기다린 만큼 효과도 크긴 했습니다."

조진양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권왕. 그자만 아니었으면 좀 더 쉽게 일이 진행되었을 텐데."

"걱정 마십시오. 이제 권왕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조심해야 할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기도 할 것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사마정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조진양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기괴하게 생긴 노인이 서 있었다.

머리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큰 데 반해. 키가 겨우 오 척도 안 될 것 같은 무척 왜소한 체격의 노인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눈만큼은 맑고 깊게 빛나고 있었다.

이십사인의 광전사 중 서열 이십삼 위의 전사이자 군사인 마뇌 야율초가 바로 그였다.

광전사와 광풍사로 지칭되는 대초원의 전사들을 움직이는 두 개의 머리인 사마가와 야율가.

그 중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야율가의 현 대표자가 바로 지금 눈앞의 기괴한 노이이었다.

사마정은 그를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불렀다.

"야율초, 오랜만이군."

"오랜만입니다. 사형."

"그래, 그동안 잘 있었나?"

"보시다시피 건강은 합니다. 하지만 마음고생은 조금 한 것 같습니다."

야율초의 말을 들은 조진양이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군."

"제가 어찌 대사형을 원망하겠습니까?"

"자네의 마음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대사형, 제가 사마가의 아이들에 비해서 무척 공격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대사형이 저를 조금 기피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언제나 대초원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우선일 뿐입니다.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마가의 아이들이 말한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도 일부 옳았음을 인정합니다. 그 덕분에 지금 무림의 힘은 많이 약화되었고, 상당수의 명숙들은 명예욕과 물욕에 찌들어 이미 무인도, 정협도 아닌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쥐고 있는 그들의 치부만 들이밀어도 우리의 꼭두각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는 모두 사마가의 공입니다."

조진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네. 준비를 하고 무림의 뿌리를 썩게 만드는 것을 사마가에서 처리해 놓았다면, 이제 공격을 하고 그 결과를 얻는 것은 자네가 할 일이지.. 그래 자네는 어쩔 셈인가?"

"조금 전에 말한 대로입니다."

"자네는 권왕과 동심맹이 결전하는 날을 기점으로 잡을 생각인가?"

"그날보다 더 좋은날이 있습니까?"

"그렇군, 우리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시작만 하면 될 일이지."

마뇌의 얼굴이 잔혹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침 신주오기의 검왕, 북룡철권 우문각과 소림의 목우도 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은들 중 상당수가 와 있을 때니 그들을 전부 쓸어버리면 사실상 무림은 거의 빈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네는 이미 많은 것을 조사해 두었군, 그렇다면 생각해 놓은 것이 있을 테지."

"저는 책사입니다. 책사의 입은 닫혀 있어도 귀와 눈은 언제나 열어 놓기 마련입니다. 물론 항상 어떤 일에든 준비는 해 놓습니다. 그게 실행이 되든 안 되든."

마뇌는 자신 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대하겠네."

조진양과 사마정의 얼굴이 만족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그들에겐 필승의 자신감이 있었다.

모든 준비가 거의 완벽하게 끝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준비된 자가 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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