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마정
- 힘이 없는 용기는 만용에 불과할 뿐이다.
매화각 본 건물 안.
소홀과 북궁연은 나란히 앉아서 아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여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운은 태평한 모습으로 과일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큰일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새악ㄱ하기 어려운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소홀은 내심 아운의 강심장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보통 무림의 대공자들은 무공이 높기는 해도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경험 부족으로 많은 실수를 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공자님은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노강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대체 실종된 후 어떤 삶을 사셨던 것일까?"
소홀은 궁금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한가하게 그것을 물을 순 없었다. 물어도 아운이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소홀은 자신의 궁금증을 가슴속에 숨기고 말했다.
"이번 일은 참으로 통쾌했습니다. 과연 권왕다운 행동이었습니다."
소홀의 말에 아운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번 일은 운이 좋아 일이 쉽게 풀린 셈입니다. 사실 호연란이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내가 그런 자리를 마련할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딱 좋은 자리에 알아서 나타나 주더군요. 보아하니 작정하고 나를 만나러 온 것 같았습니다."
"작정하고서라니요?"
"아마도 나를 곤란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을 알고 시간을 맞추어 나타났겠지요. 그녀도 설마 내가 수많은 선은들 앞에서 주먹을 휘두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홀은 조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했다 해도 서로 만나면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은 당연한데. 대체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자신했던 것이겠죠."
"하지만 권왕에 대한 소문은 -----"
"직접 보거나 부딪치지 않으면, 와 닿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여자지요. 삼봉 중 한 명이 아닙니까? 후후."
아운의 말에 북궁연이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
"그녀는 나타날 때부터 가가를 공격해서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었군요."
"그렇소. 하지만 그년는 내게 너무 큰 죄를 지었고. 그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겠지만 나는 그녀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고. 사실 지금까지 놔둔 것도 나로선 많은 참은 것이라오."
소홀이 고객르 흔들며 말했다.
"그동안 가가의 초상화도 보았을 텐데. 과거에 자신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란 걸 몰랐다니."
"사실 그녀의 입장이라면 누구라도 내가 자신의 수련용 살생자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요."
소홀이나 북궁연은 아운의 말뜻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소홀이 말했다.
"하긴 누가 그 짧은 시간에 동세대는 물론이고 무림 전체에서 최고 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해서 나타났을 것이라 생각을 했겠어요. 더군다나 무공을 전혀 몰랐던 뒷골목의 건달 소년이 말이죠. 그저 비슷한 사람이겠지 했겠지요. 이 넓은 시상에 비슷한 사람이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아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런 점도 있지만. 내가 당시 지하 동굴에서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오. 사실 그 안에서 살아낚다는 자체가 기적이니."
아운의 말을 들으면서 북궁연의 얼굴엔 분한 표정이 떠올랐다. 자칫했으면 자신의 연인이 어이없이 죽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오한이 들면서 새삼 호연란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이년, 그동안은 참고 있었지만. 이번에 살아나서 다시 만나기만 해 봐라! 코를 도려 내고 말겠다.!"
검후답지 않게 원한을 품고 내심 호연란을 마구 욕해 댄다.
사실 사람의 감정이란 임금이나 거지나 어떤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기 마련이다. 하마터면 생과부가 됐을지도 모르다고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호연란에 대해서 치가 떨리는 북궁연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운에 대해서도 화가 난다.
"그런데 가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녀의 말투가 조금 날카롭다.
"말해보시오, 연 누이."
대답을 하는 아운의 표정이 무엇인가 떨떠름한 표정이다.
연인의 목소리가 조금 뽀족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가가의 성격으로 어째서 지금까지 호연란을 그냥 두었었는지 궁금해됴. 무림맹에 와서도 다른 사람들에겐 과격하게 밀고 나갔지만 호연란에게는 어떤 위해도 한 적이 없었잖아요. 사실 가장 원한이 많은 상대이기도 했는데."
점잖게 말하면서도 따지고 있었다.
혹시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에 봐 준 것이냐. 심하게 말하면 혹시 원한이 아니라 호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니냐. 이렇게 따지는 표정이었다.
효연란에 대한 화가 엉뚱한 사람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었따.
아운은 조금 난감함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호연란이 조금 안심하고 있게 놔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리고 힘이 없고, 사람의 위치가 졸렬하면 옮은 말을 해도 무시당하는 수가 많소. 그 당시에는 내 이름으로 호연세가를 단죄하기에는 호연세가의 무게가 조금 더 무거웠고. 그리고 당시엔 내가 그들의 죄를 폭록하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 말했을 때, 조금이라도 올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와 협심을 하진 어른들이 없었고. 내가 당시에 호연란을 공격한다면 단순히 포력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오. 오히려 나와 북궁세가는 동심매오가 호연세가의 협공을 당해야 했을 것이오. 동심맹과 호연세가는 같은 족속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지금은 선은들의 눈치 때문에라도 대놓고 그러진 못할 것이오. 그리고 이젠 나도 제법 이름이 있지 않소. 절대로 그녀가 제법 아름다운 여자이기 때문은 아니오. 허허. 나야 연 누이 말고 다른 여자는 보이지도 않는데."
"흥. 누가 뭐래요? 그냥 물은 것이지."
북궁연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따.
그 모습을 보면서 아운은 괜히 안심이 된다.
죄 지은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소홀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아운에게 묻는다.
"당시엔 금룡단이 있지 않았던가요? 그들이 증인이 된다면 단죄가 가능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그들은 아직 저립니다. 그들의 명성이나 이름으로 입증할 수 있는 무게가 있고 그렇지 않은 무게가 있기 마련입니다. 호연세가는 그들로선 벅찬 상태입니다. 그래서 선은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선은들이 있었기에 사건을 터트린 것이 아니고 선은들이 필요했다고 했다.
이것은 비슷한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말이다.
전자는 우연일지 모르지만, 후자는 주도적으로 그 상황을 만들었단 말이 되는 것이다.
소홀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럼 그 이유 때문에 동심맹과 결전을 유도했고 선은들을 이곳에 오게 상황을 유도한 것인가요?"
아운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이유도 없지는 않지만 더 큰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북궁연과 소홀은 아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알면 알수록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사람.
소홀은 다시 한 번 아운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권왕의 진정한 무서움은 주먹이 아니라 단호한 폭력 속에 감추어진 그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배짱일 것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주먹에 현혹되어서, 등 뒤로 치고 들어오는 권황의 날카로운 지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당하게 된다. 설혹 알고 있더라도 당하게 되는 것이 더 무섭지만."
생각하고 나니 더 큰 이유라는 것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녀보다 북궁연이 먼저 물었다.
"가가. 더 큰 이유라니요?"
"하하. 그건 두고 보면 알 것이오."
그렇게 말하면 더 궁금해진다.
"가가?"
"어차피 이 정도 일로 호연세가가 공적으로 몰리진 않을 것이오."
아운은 얼른 다른 곳으로 말을 돌렸다.
여자가 떼를 쓰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과연 아운의 말은 호력이 있었다.
북궁연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호연세가가 저지른 일은 너무 큰일이라 아무리 숨기려 해도 무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될 터인데. 공적으로 안 몰아갈 수 있단 말인가요?"
"아쉽지만 사실이오. 그리고 지금은 호연세가가 공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소홀과 북궁연은 눈을 깜박거리며 아운을 바라보았다.
"죄인이 죄인을 단죄하긴 어려운 법. 서로 약점을 잡고 있는데, 어떻게 상대를 단죄할 수 있겠소. 결국 누군가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희생될 것이오. 그리고 그들은 어떤 타협을 만들어 낼 것이오. 뭐, 호연세가야 어떤 선에서 사죄를 하고 나머지는 모르쇠로 일관하면 될 일이오. 어차피 동심맹이 곧 무림인데, 나머지 수많은 군소 방파와 힘없는 낭인 무사들이 아무리 큰소리를 낸다 해도 그냥 무시하면 그만인 것이오. 그들이 힘으로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정 시끄럽게 굴면 어둠 속에서 칼을 꺼내 들겠지요. 세상이란 것이 다 그런거요. 그래서 힘없는 정의는 만용이라 하는 것이 아니겠소."
말하면서 웃고 있는 아운이었다.
북궁연과 소홀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입 안에 아직도 남아 있던 과일즙의 향기가 씁쓸해진다.
소홍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호연세가가 지금 무림 공적이 되면 안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오?"
"후에 알게 될 것이오. 그들은 내게 아주 필요한 존재들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오. 지금까지 강호 무림을 상대로 장난을 쳤으니 이제는 반대로 다른 사람이 치는 장난에 한 번쯤은 놀아날 떄도 되지 않았겠소."
아운의 자신 있어 하는 말에 북궁연과 소홀은 그저 그의 얼굴을 바라만 본다.
소홀은 다시 한 번 아운과 북궁세가가 적이 아님을 하늘에 감사드리고 있었다.
아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 이제 나는 무공 수련을 좀 한 다음. 정보를 얻으러 가야 할 것 같소."
북궁연과 소홀은 영문을 몰라 아운을 바라보았다.
무공수령을 하고 나면 자정 가까이 될 것이다.
대체 한밤중에 어디서 어떤 정보를 얻는단 말인가?
북궁연이 물었다.
"정보라니요?"
"동심맹 말이오. 그들의 정보가 좀 필요해서 말이오."
"그들의 정보를 어디서, 누구에게 얻는단 말인가요? 더군다나 수련을 하고 나면 자정이 다 될 텐테."
"누구긴? 지금 무림에서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들이 누구이겠소?"
"그야 가가의 말대로라면 당연히 맹주부와 호연세가겠지요."
"그렇소, 그래서 잠시 후에 그들로부터 정보를 주우러 가려는 생각이오."
듣고 있던 북궁연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
아운의 생각을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소홀은 북궁연의 웃는 모습을 보고 더욱 궁금해서 물었다.
"소공녀님. 대체?"
"소홀."
"예."
"가로채려는 것 같아!"
"가로채요?"
"호연세가에서 동심맹의 장로들을 협박하려면 어떻게 하겠어?"
그들의 치부가 적인 문서나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보여 주고 협박을 해야 하겠지. 그것을 중간에 가로채려는 것인가 봐?"
소홀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얼굴이 밝아졌다.
문 밖으로 나가려던 아운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사실,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잠시 보기만 할 것이오. 물론 그들이 모르게."
"혼자서 말인가요?"
"도와줄 분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뭄이 닫히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북궁연과 소홀은 그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은 지금 권왕이 무엇인가 꾸미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았다.
때가 되면 말해 줄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물을 상황도 아니었다.
아운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의 모든 전각 안에는 지하 수련장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는 각 문파의 제자들에게 자파의 비전들을 수련하는 장소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매화각에도 이런 곳은 존재하였다. 그 안에서 아운이 수련에 몰두를 하고 있었다.
"후읍."
아운의 입으로 대기에 떠돌던 기운들이 한꺼번에 빨려 들어갔다가 천천히 뿜어져 나온다.
아운의 주먹이 전면에 있는 큰 바위를 향해 질러 갔다.
그의 주먹에서 뿜어진 일기영의 권경이 오 척의 거리를 격하고 바위를 가격하였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바위가 움푹 들어간다.
일기영의 권경으로 인한 흔적이었다. 그런데 그 흔적 안에는 또 다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새끼 손가락 삼 분의 일 정도 크기의 구멍이 그 흔적 안에 뚫려 있었던 것이다.
아운은 그 흔적을 보면서 고객을 끄덕였다.
"이제 시작인가? 심살수라마정을 이용한 권공이 완성되면 나는 육상쾌의연격포 외에 또 다른 강력한 무공을 지니테 된다. 특히 이 두개의 무공을 섞어서 사용하게 되면 더욱 무서운 공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운이 근래 들어 집중하고 있는 새로운 무학이 바로 삼살수라마정을 이용한 권공과 기존의 권공에 삼살수라마정을 함께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원래 삼살수라마정은 모두 녹아서 아운의 무공과 결합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삼살수라마정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겉보기에 그럴 뿐이지 실상 삼살수라마정은 불괴수라기공 그 자체가 되어 아운의 몸속에 녹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운은 삼살수라마정이 불괴수라기공과 같은 성질의 내공으로 만들어졌고, 그것이 불괴수라기공 속에 녹아들었다면, 반대로 필요할 때 불괴수라기공을 이용해 삼살수라마정을 만들어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아운은 그날부터 시간이 되는 대로 삼살수라마정과 불괴수라기공에 대해서 깊이 연구를 하였고, 많은 부분을 깨우칠 수 있었다.
아운의 생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특히 등천잠룡대와의 결전으로 불괴수라기공의 많은 부분을 깨우치면서 진기로 삼살수라마정을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을 터특할 수 있었다.
어차피 불괴수라기공의 기초가 되었던 수라기공으로 만들어진 수라마정이었기에 그보다 더욱 진보된 무공인 불괴수라기공으로는 더욱 쉽게 수라마정을 만들어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운은 천천히 불괴수라기공의 진기를 모았다. 그리고 삼살수라마정을 펼치는 초식에 맞추어 진기를 뿜어내었다.
순간 불괴수라기공의 진기가 강기로 변환하였고, 강기는 수라마정으로 변해 날아갔다.
퍽!
무형무영.
보이지도 않는 강기의 파편이 날아가 바위에 세 가닥의 구멍을 뚫어 놓았다.
아운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수라마정이 불괴수라기공과 하나로 합해지면서 오히려 더욱 강력해졌다. 그런데 이걸 암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강기무공이라고 해나?
수라마정이 불괴수라기공에 녹아든 순간부터 그 자체가 암기라기보다는 일종의 강기 무공처럼 변했고, 그때부터 삼살수라마정의 초식은 진기를 강기로 변환해서 암기처럼 사용하는 무공이 된 것이다. 강기는 당연히 삼살수라마정과 똑같은 형태였고, 이전과 같이 한 번에 단 세 개만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이전에 비해 좋은 점은 암기를 쏘아내고 다시 되돌려 받지 않았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암기의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빨라졌으며, 은밀해지고 무형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수라마정을 만들기 위해 진기가 비워지면 신외의 기운이 저절로 몸에 스며들어 없어진 진기를 보충해 준다는 점이었다.
이는 장법이나 강기 무공을 쓸 떄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불괴수라기공을 완성한 불괴음자 모진해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하긴 불괴음자 모진해는 삼살수라마정이 불괴수랑기공에 녹아들 것이란 생각도 못했고, 불괴수라기공을 수라마정으로 변환시켜 암기로 쓸 생각도 못했었다.
아운은 고민을 접었다.
비록 강기로 만들어진 암기지만 암기는 암기였다.
먼저 강기는 수라마정처럼 멀리 쏘아 보낼 수 없었다.
아쉽다면 한번 수라마정을 사용하면 사용된 수랑마정이 사라져야만 다시 수라마정을 생성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한 번에 세 걔 이상의 수라마정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잘만 사용하면 마치 수백 개의 암기를 연속으로 쓸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정이 목표물에 명중하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마정을 쏘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운은 아직 자신이 몇 번이나 연속으로 삼살수라마정을 사용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단지 자신이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속도는 마정을 발사한 후 몸에 보충되는 진기의 속도와 같다는 정도였다.
아운이 수라마정에 대해서 연구한 후 처음 사용한 것이 호연낭을 죽일 때였고, 그래서 아운은 무시할 수 없는 강자 중 한 명인 호연낭을 쉽게 죽일 수 있었다.
근래 아운은 새롭게 구현된 수라마정을 권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다른 무공과 함께 사용할 경우 중첩권과 같은 효과를 지닐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었다.
그리고 일부 성공을 거두고 있었따.
그 성공의 결과가 조금 전 권공의 흔적 안에 나타난 작은 구멍이었다.
그날 밤 아운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가 이틀이나 지난 후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의 흔적은 매화각에서 완벽하게 지워 놓앆기에 무림매의 누구라도 아운이 매화각을 빠져 나갔다 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선은들 몇몇을 제외하곤.
* * *
무림맹의 소문은 빨랐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수십 명이 알고 있는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리저리 비집고 나간 호연세가에 대한 진실은 이미 구체적인 내용까지 적힌 벽보들이 나붙었고, 그에 대한 소문은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무림맹의 장로들은 당황하여 연속으로 긴급회의를 열면서 대책 회의를 진행함과 동시에 퍼지고 있는 소문을 잠재우려 하였다.
그들은 호연세가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이 일로 인해 호연세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들의 입지도 좁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호연세가에 묘한 동질감을 가지는 장로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결과가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무림인들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던 장로원은 더욱 욕을 먹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장로원의 장로들도 더 이상 호연세가를 비호하지 못하고 소문의 일부를 인정하는 자세에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무림맹의 무사들은 모두 긴장을 한 표정들이었고, 곧 호연세가를 토벌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장로원에서는 호연세가의 일로 한 시진이 멀다하고 회의가 열리고 있었지만, 아직 호연세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겨우 합의된 내용은 우선 호연각이 직접 장로원에 출두하여 변론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정도였다.
간단하게 처리하기엔 그동안 오기의 한 명인 호연각과 천중 이대체가 중 하나인 호연세가가 강호 무림에 세운 공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이상 일이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 * *
무림맹의 대문을 지키고 있던 금강선위대의 무사들은 거대한 사두마차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모두 긴장했다.
마차 앞에 달린 깃발에 그려진 도 한 자후.
이는 지금 무림맹으로 다가오는 마차가 호연세가의 것임을 표시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마차가 무림맹의 대문 앞에 멈추었다. 무사들 중 한 명은 이미 안으로 소식을 전하러 갔고, 남은 세명의 무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마차를 지켜본다.
덜컥!
문이 열리고 한 명의 노인이 마차 안에서 걸어나왔다.
노인을 본 세 명의 무사들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머리를 풀어 헤지고 산발을 한 노인은 건장한 체격이었고, 양손에 한 개씩의 인두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인은 맨발에 가시가 박힌 철사로 발을 칭칭 동여 감고 있었다.
무사들은 나타난 노인이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신주오기의 한 명이자, 강호 십사대 고수 중 한 명인 참마도 호연각이었던 것이다.
호연각이 무사들을 보고 말했다.
장로원에 내가 왔다고 전해라! 아니 전달이 되었겠지. 내가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나?"
호연각의 기세 앞에서 무사들은 기가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일반 무사들이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연각이 터벅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가시가 박힌 철사가 호연각의 발을 찌르면서 그가 남기고 간 발자국을 붉은색으로 채색하고 있었따. 그러나 호연각의 표정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정문을 지나 내성으로 이르는 길은 결코 짧지 않은 거리였다.
무려 이 각이나 걸어야 하는 그 길을 호연각은 두 개의 인두를 든 채 그렇게 걸어갔다.
수많은 무사들이 소문을 듣고 나타나 그 모습을 지켜본다.
이때 약 백여 명의 무사들이 나타나 호연각의 앞으로 가로막았다.
무림맹 내의 중소 문파들이거나 소속이 없는 일반 무사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호연각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양심도 없는가? 어찌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고도 이곳에 올 수가 있는가?"
그 말은 들은 호연각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말을 했던 노무사나 그의 앞을 가로 막았던 백여 명의 무사들은 그 기세앞에 온몸이 부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쥐새끼들, 비록 지금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친 죄로 나 스스로를 단죄하고 있기 하지만, 너희 같은 것들에게 픽박 받을 만큼 내가 큰 잘못을 한 적은 없다. 어리석은 것들이 잠시 객기를 부린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은 봐 주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내 앞에 나타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호연각의 말이 마치 쇠종처럼 그를 가로막은 무사들의 머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소리를 질렀던 무사는 호연각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조차 못한다.
다른 무사들 역시 감히 덤비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호연각을 바라만 본다.
터벅, 터벅,
호연각은 그들은 완전히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고, 그들은 급급하게 자리를 내주었다.
감히 말 한마디의 떄꾸조차 하지 못한다.
호연각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이다.
그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태산이 가다와 자신들을 압사시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길을 터준 중소 문파의 무사들은 뻣뻣하게 몸이 굳은 채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고양이 앞에 얼어붙은 쥐와 다를 바 없었다.
힘이 없는 용기는 만용에 불가할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 중엔 더 이상 목숨을 걸고 호연각의 앞을 가로막을 만큼 무모한 자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단지 조금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그것을 틈타 제법 호기를 부리려던 자들뿐이었다.
호연각이 그들을 지나가고 나서야 그들 대부분은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십여 명만이 다리를 후들거리며 그 다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서 있는 자들이나 주저앉은 자들이나 모두들 혼이 나간 표정은 같았다.
호연각을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지켜보던 다른 무사들이 노골적으로 그들을 비웃는다.
어느것 호연각이 내성 근처에 도달했을 때였다.
"노가주를 뵙습니다."
호연각이 걸음을 멈추었다.
내성으로 들어가는 길 양옆에 수백의 무사들이 도열해 있다가 길을 터주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호연각이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무사를 보고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월영당 소속이었던 풍운수호대의 무사들이었던 것이다.
"모두들 미안하다. 내 관리가 소홀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고, 나와 호연세가를 믿었던 맹우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더 이상 자네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풍운 수호대의 대주가 그 자리에 오체복지를 하며 말했다.
"어인 말씀이십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는 월영당의 자랑스러운 수하들일 뿐입니다."
"모두 고맙네, 잠시 기다리면 오해는 곧 풀릴 것일세."
호연각은 그들에게 따뜻한 시건을 던져 주고 안으로 향했다.
호연각의 뒤쪽으로 수많은 무사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