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검성
- 사혼혈검 초무영이라고 합니다
단 일 검.
풍운령의 형제들과 싸우던 십여 명의 섬서지단 무사들이 놀라서 결전을 멈추고 편일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원오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거란 생각은 못했었다.
원오 정도의 고수가 일 검에 죽었는데 일반 무사들이 감히 검을 들고 덤빌 수 있겠는가?
아무리 칼밥 먹고 사는 무사라지만 젊은 나이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편일학의 눈치를 본다.
한편 중년의 검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저지시킨 단검을 쳐 낸 다음 검이 날아온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하얀 면사로 얼굴을 가린 소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단검의 주인이 분명했다.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매서운 공격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일 검에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기에 일단 화를 삭여야 했다.
단검으로 인해 상처를입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이에 원오가 시체가 되고 만것이다.
그것은 중년의 검수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신의 무공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원오가 일 검에 죽었다면 자신도 그의 적수가 아니란 말이 아닌가?
아무리 화가 나도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이다.
그의 시선이 편일학에게 옮겨진다.
"대단하군. 대체 당신은 누구요?"
카랑한 중년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편일학은 풍운십팔령의 네사람을 살펴보았다.
무림맹 섬서지단의 무사들과 얽혀 싸우던 네 명의 풍운령은 큰 상처 없이 소설 주변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소설이 단검으로 자신을 도운 것을 알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영리하고 지혜로운 아이였다.
편일학이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움찔했던 무림맹 섬서지단의 무사들은 중년 검수의 눈짓을 받고 다시 네명의 풍운령과 소설에게 달려들었다.
벽룡의 벽안에 독기가 어렸다.
"개 후레자식들! 어디 한판 뜨자 이거지? 좋아, 썅! 오늘 전부 죽인다. 으아아아!!"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 벽룡은 무림맹 섬서지단의 무사가 찔러오는검을 맨손으로 막았다.
푹!!
검이 자신의 팔을 찌르고 들어오는순간 벽룡은 검으로 그 무사의 심장을 찔러 버렸다.
섬서지단의 무사들 중 가장 용맹하다는 황대성도 벽룡의 이 무모한 공격 앞에서는 제대로 힘조차 못쓰고 죽은 것이다.
닳고 닳은 뒷골목의 생사결전에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벽룡은 아운을 만나서 처참하게 깨지기 전까지는 72 전 65 승 2 무 5 패를 기록했던 뒷골목의 전설이었던 사나이엿다.
다섯번 진 것도 아운에게 진 한번을 제외하면 모두 십세 이전의 기록이었고 그 후 무조건 싸우면 이겼던 벽룡이었다.
후에 자신을 이겼던 자들을 다시 찾아가서 모두 처참하게 죽임으로써 복수를 해 버린 그의 독함은,
건덕의 뒷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
그런 벽룡도 재수 없게 아운을 만나서 무려 삼일 동안 두들겨 맞은 다음 무조건 항복을 하고 말았다.
죽이지도 않고 말도 안 붙이고 그냥 일어나면 때리고 기절하면 물을 부어 가며 때리는 아운 앞에서 제아무리
독기 가득한 벽룡도 학을 띠고 말았다.
벽룡이 항복을 선언해도 아운은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그 후에도 한동안 더 벽룡을 때리기만 하던 아운이 처음으로 중얼거리듯이 한 말을 듣고 벽룡은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계속 구타한 이유가 사람을 기절시키지 않고 때리는 법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나, 그 기술이 완성될 때까지 때릴 생각이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아운 앞에서 벽룡은 공포, 그 이상을 느꼈었다.
그 이후엔 죽여 버릴 생각이란다.
나중에 귀찮아질 것 같아서.
그 말을 들은 순간 벽룡은 아운이 절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었다.
벽룡은 정말 두려웠었다.
그는 살고 싶었다.
버티고 버티던 독기도 한 번에 다 내다 버렸다.
아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며 충성을 맹세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벽룡은 지금도 오한이 든다.
사실 누가 검으로 찌를 때...
팔을 근육과 신경이 안다치게 기술적으로 상대의 검을 막는 법도 아운에게 배운 것 중 하나였다.
독기로 상대의 기세를 한 번에 꺾어 놓기에 좋은 방법이다.
막싸움의 귀재들인 풍운령들 앞에서 얌전하게 무공을 익힌 섬서지단의 무사들은 사실상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 무공에서도 상당히 발전한 그들이었다.
이렇게 뒷골목에서 이골이 날 정도로 싸움에 길들여진 감각에 무공이 더해지자, 실력 이상의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풍운령들이었다.
특히 기세 싸움과 독함에서 십여 명의 무림맹 무사들은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림맹 섬서지단의 무사들은 소설의 근처에조차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으며, 설사 소설에게
다가선 무사가 있다 해도 소설 또한 제법 괜찮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편일학은 일단 안심이 되었다.
우려가 되는 것은 오히려 가장 강자인 장문산이었다.
장문산은 탐우라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결코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았다.
편일학의 시선이 다시 중년의 검수에게 향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독편과 혈우창이 있었지만, 우선은 눈앞의 중년검수가 먼저였다.
'속전속결만이 살길이다!'
이미 결심을 굳힌 편일학의 신형이 갑자기 중년의 검수를 향해 가습 공격을 하여 갔다.
이는 처음 원오를 공격하던 방법과 같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중년의 검수는 원오와는 달리 침착하게
편일학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섬서지단의 부단주인 섬전검 방전이었다.
쾌검으로 중원에서 이름이 높았던 자로 혈궁대전 이후에 나타났던 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의 장기인 쾌검을 펼치기 위해 준비를 하고 편일학을 기다리는 그의 자세는 조금도 빈틈이 없어 보였다,
최소한 원오보다 반수 이상은 강한 방전이었다.
그런데 검을 직선으로 든 채, 섬전검 방전을 향해 달려들던 편일학의 손에서 갑자기 검이 쏘아져 나갔다.
제아무리 섬전검 벙전이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하려 해도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편일학이 검을 던진 초식은 칠절분광영검법의 후 이식 중 마지막 초식인 이기어검술이었던 것이다.
따로 분광기어검으로 불리는 이 초식은 이기어검술을 최적화시킨 검초로, 분광월인벽과 함께 편일학의 평생 정화가 담겨 있었다.
방전은 이를 악물고 섬전검법을 펼쳐 날아오는 편일학의 검을 쳐 내려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성공하는 듯 했다.
땅~!!
방전의 검이 편일학의 검을 쳤지만, 검은 조금도 속도가 줄지 않고 그대로 방전의 가슴을 찔러갔다.
방전은 순간적으로 사진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땅~!!
다시 한 번 쇳소리가 들리면서 편일학의 검이 한쪽으로 살짝 비켜났고, 누군가가 방전의 목덜미를 잡고 한쪽으로 당기면서 아슬아슬하게 편일학의 검이 빗나갔다.
빗나간 검이 편일학에게 살아 있는 것처럼 반회전하며 돌아갔고, 돌아온 검을 잡으면서 편일학은 자신의 검을 쳐내고 방전을 구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편일학의 검을 쳐낸 자는 혈우창이었고, 방전의 목덜미를 잡아 당긴 자는 독편이었다.
이차피 그들과는 반드시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편일학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가 초조한 것은 장문산이 너무 위태롭다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혈우창이 편일학을 보면서 말했다.
"대단하군! 검강에 이기어검술이라니, 대체 너는 누구냐?
편일학의 얼굴 근육이 꿈틀했다.
"그걸 알 필요가 있을까? 우린 죽거나 죽이거나 둘 중 하나만 하면 되는 사인데."
더 이상 왈가불가 할 필요가 없었다.
검이 허공을 사선으로 자르며 독편을 함께 두쪽으로 가르려 한다.
칠절분광영검법의 정수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단 한마디 말, 그리고 그 다음엔 바로 공격.
그만큼 편일학은 다급했다.
장문산이 결코 십여 초 이상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 또한 독편이나 혈우창 두 사람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두 사람을 빨리 처리하는 것만이 장문산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독편이 허공을 뱀처럼 누볐고, 혈우창이 허공을 찌르며 마주 공격한다.
한순간에 세 사람이 어켜들었다.
나름대로 무공에 자신이 있었던 벙전이었지만, 감히 그들 사이에 끼어들지 못했다.
세 사람의 공수가 한 치의 틈도 없이 팽팽해서 잘못 끼어들었다가는 검질 한번 못해 보고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방전은 허탈한 심정이었다.
'내가 상대할 수 있는 고수들이 아니다. 혈우창과 독편은 원래부터 유명한 고수라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저 두 사람의
협공을 상대하는 노인은 누구란 말인가? 내가 보기에 저 정도 실력이면 강호 무림에서도 십사대 고수들을 빼곤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자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방전에게 충격이었다.
처음엔 독편과 혈우창의 협공 속에 결코 십 합을 넘기지 못할 것 이라 생각했다.
그이 예상대로 처음엔 펴일학이 밀리는 것 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겨우 삼사 초에 불과 했고, 그 이후는 어느 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한채 팽팽한 대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놀란 것은 방전뿐이 아니었다.
편일학을 상대하는 혈우창과 독편도 놀라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두사람의 협공을 막아 내고 있는 편일학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무공이 이렇게 발전하였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설이와 풍운령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면서 얻은 깨우침이 나를 크게 발전시켰구나.'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편일학은 자신의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운이 칠절분광영검법을
기초로 자신의 권공을 연구할 때 함께 무공과 검법의 원리를 연구 했던 것이 큰 원인임도 깨우쳤다.
새삼 아운이 고마운 편일학이었다.
선전하는 편일학과는 달리 장문산은 거의 위태로울 지경까지 몰리고 있었다.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내상까지 입고 있었다.
"이제 그만 쓰러져라!"
탐우라가 고함을 지르면서 양손을 떨쳐 내었다.
그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혈라강기 였다.
혈라강기는 탐우라가 혈궁대전 이후에 대성한 무공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펼쳐 본 적이 없었던 무공이었다.
'위험하다'
정문산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순간 태극선천강기를 펼쳤다. 강기와 강기가 충돌하면서 '파직' 하는 소리를 내었고,
그 순간 장문산은 삼장이나 뒤로 밀려 난 후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태극선천강기가 혈라강기에 비해서 그 위력이 떨어지는 무공은 아니었지만, 한 손으로 두 손을 막을 순 없었다.
특히 상대가 위력이 강한 무공을 펼칠수록 그 차이가 더 벌어지게 마련이었다.
쿡!
장문산이 토해 낸 각혈이 땅바닥을 붉은색 점토로 만들어 놓았다.
탐우라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주저 앉은 장문산을 향해 혈라마장을 펼쳤다.
마라혈수인. 혈라강기와 더불어 탐우라의 삼대무공 중 하나인 혈명마장은 위력 면에서는 가장 떨어지는 절기였지만
가장 변화무쌍한 무공이었다.
그러면서도 쾌속함에서 마라혈수인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용하는 동작의 동선이 작아서 내공 소모도 작은 편이었고 신속하게 상대를 공격하는 데 편한 무공이었다.
탐우라가 혈명마장을 펼치자, 장문산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태극선천강기를 끌어 올린 다음 앞으로 밀어내었다. 그러나 조금전에 비해서 그 위력은 다시 반감되어 있었다.
내상이 심해지면서 내공의 절반 이상이 흩어진 것이다.
어차피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맞대응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인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장문산은 자신의 죽음을 계감했다.
제자인 옥룡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순간.
"멈춰라!"
뜻밖의 고함과 함께 장문산을 공격하던 탐우라가 공격을 멈추고 뒤로물러섰다.
장문산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탐우라를 바라본다.
"운이 좋군, 아무래도 응원군이 나타난 모양인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약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나타나 사방을 에워쌋다.
한참 치열하게 결전을 벌이던 모든 모사들이 행동을 멈추었다.
방전은 나타난 무사들을 보고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특히 그들 중 약 오십여 세의 중년 검수와 그 뒤에 서 있는 세 명의 노인들을 보곤 더욱 놀랐다.
방전은 얼른 중년의 검수에게 다가가 급급히 예를 취하며 말했다.
"단주님을 뵙습니다."
나타난 무사들은 섬서지단의 또 다른 무사들과 단주인 백의명검 여건을 비롯하여 세 명의 지단 호법들이었던 것이다.
여건은 안색을 굳히며 물었다.
"부단주, 지금 무슨 일인가?"
부단주는 난처한 표정으로 탐우라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을 자신이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탐우라가 지단주에게 설명해 주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단지 탐우라에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물은 것 뿐이었다.
탐우라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가 여건인가?"
탐우라는 하대를 하였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건은 한눈에 탐우라가 보통 인물이 아니란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내가 여건이오. 당신은 누구요?"
"나는 탐우라다. 원래 이 일은 나와 장 우사의 일이었지만, 자네가 끼어들었으니 어쩔 수 없이
그 책임을 물어야 겠군."
탐우라
무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이름이었다.
여건은 물론이고 섬서지단의 세 호법과 무사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탐우라를 바라본다. 설마 상대가 칠사의 한 명인 탐우라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혈궁이 다시 출현했고, 그들 중 명왕수사 고구가 권왕에게 죽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자신들이 혈궁의 칠사 중 한 명을 만날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건은 문득 조금전 탐우라가 장 우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다시 한번 흠칫했다.
분명히 장 우사라고 하였다.
보통 봉명우사 장문상를 따로 장 우사나 장 노사라 불린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이 시선이 한쪽에 주저 앉아 있는 외팔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장문산이라면 그도 이미 이 전에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기에 한눈에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이 되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장 우사를 향해 걸어가면서 물었다.
"장 우사님, 괜찮으십니까? 저 화산의 여건입니다."
장문산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오랜만일세, 별로 좋지 않을 때 보는군. 나는 괜찮네 하지만 자네와 수하들은 돌아가야 하네. 이 일에 끼어들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일세."
여건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그는 탐우라를 바라보았다.
혈궁의 칠사.
십사대 고수 중 한명.
이런 절대 고수들에겐 숫자 놀음이 무의미할 것이다.
그렇다고 혈궁의 인물을 보고 도망갈 순 없었다.
더군다나 정파 무림의 절대 고수이자, 평소 존경하고 있던 장 노사가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물러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탐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이때 편일학이 여건에게 다가오며 예를 취하고 말했다.
"여 사숙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건이 놀라서 편일학을 바라본다.
나이 들어 보이는 편일학이 이제 오십 정도 되어 보이는 여건에게 사숙이라고 하는 장면은
어찌 보면 조금 이상하게도 보였다. 그러나 여건의 나이가 이미 팔십을 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림 배분상 장 우사나 탐우라 보다 겨우 반 배분 정도 아래였던 것이다.
좀 더 자세히 편일학을 살피던 여건의 눈이 커졌다.
"너는 종남의 일학이 아니냐?"
"저를 알아 보시는군요."
"네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다니."
"사정이 있었습니다. 추후에 자세한 내막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죽은 원오나 저자는 분명 무림맹 섬서지단의 고수들이면서 어째 혈궁의 구주인 탐우라의 명령을 듣는 것입니까?"
그 말을 들은 여건의 안색이 냉랭하게 굳어졌다.
그는 방전을 노려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네놈과 원오가 혈궁의 간자였던 것이냐?"
방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 어찌혈궁의 구주가 되겠소, 하지만 나는 탐우라 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는 신세인 것 또한 틀림이 없는 사실이요."
"그럼 네놈은 분명히 간자로구나."
"이 죽일 놈들. 저놈들을 달장 포박하라!"
여건이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르자, 새로 나타난 무림맹 섬서지단의 무사들과 세명의 호법들이 앞으로 나섰다.
방전과 그의 수하들 십여 명은 당황해서 주춤거리며 조금씩 탐우라가 있는 쪽으로 물러섰다.
탐우라가 앞으로 나서며 무림맹 섬서지단의 수하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들이 지금 나에게 덤비겠다는 말이냐? 하긴 어차피 살려둘 생각은 없었지."
상대는 단 한 명이고 무림맹 섬서지단의 무사들은 오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지단주인 여건과 세명의 호법까지
있었지만, 탐우라의 기세 앞에서 그것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여건은 숨이 막히는 기분에 말을 꺼내지 못하고 탐우라르르 바라 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삐익!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면서 한 마리의 매가 허공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탐우라의 안색이 변했다.
"운이 좋은 놈들이군. 오늘은 이만 물러서겠다. 가자."
탐우라가 갑자기 신형을 날려 사라지자, 혈우창과 독편이 뒤를 따랐고, 방전과 그 수하들도 함께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그들의 뒤를 쫓으려 들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런 일로 인해 어리둥절하고 있을 뿐이었다.
장문산이 휘청거리는 몸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우릴 도운 것 같은데."
나직한 목소리 였다.
편일학이 얼른 장문산을 부축하면서 걱정스런 표정으로물었다.
"장 우사님 , 괜찮으십니까?"
장문산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상이 제법 심한 것 같네."
소설이 달려와 알략을 꺼내 장문산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을 드세요."
장문산은 그 알약을 받아먹은 다음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운기요상을 좀 해야겠네."
편일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시고 어서 운기요상을 하십시오."
"그럼."
장문산은 바로 운기에 들어갔고, 편일학과 소설, 그리고 네 명의 풍운령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장문산을 바라본다.
여건이 편일학을 보고 말했다.
"자네 일행은 장 우사님과 특별한 관계인 것 같군. 그런데 장 우사님의 팔은 어찌된 일인가? 조금 전 아수혈사 탐우라와의 결전에서 잃은 것은 아닌것 같았데."
"그건 제가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우리를 도와준 기인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아수혈사 탐우라 같은 고수를 기묘한 소리 한 번으로 도망치게 만들다니."
"마침 나도 궁금하던 참일세. 만약 어떤 기인이 의도적으로 우리를 도운 것이라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겠나."
편일학 역시 그렇게 생각한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과연 그들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는지, 서쪽의 산기슭에서 세 가닥의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더니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편일학과 여건 등은 나타난 세 사람의 정체가 바로 자신들을 도운 기인들이란 것을 눈치 채고 궁금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런데 나타난 세 사람을 본 일행들은 모두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세 명은 한 명의 청년과 두 명의 중년인들이었는데, 뜻밖에도 그들 중 우두머리가 이제 약관이 넘은 젊은 청년이었던 것이다. 강호의 노 기인을 생각했던 그들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맨 앞에 선 청년은 약간 호리호리한 모습니었고, 얼굴은 준수해서 능히 절세란 말이 부족하지 않은 미청년이었다.
그의 얼굴은 큰 키와 잘 어울려 누가 봐도 호감을 가질만한 모습이었다.
특히 청년의 부드러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크고 강렬한 눈은 능히 장부의 기개가 어려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찬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청년의 오른쪽 옆에 서 있는 우람한 덩치의 중년인은 얼굴 가득 한 수염 때문에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는데,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도끼가 보기에도 섬뜩했다.
청년의 죄측에는 영웅건을 한 중년인이 허리에 검을 차고 서 있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중년인은 허리에 찬 검만 아니라면 마치 서생 같았다.
하늘에서 맴을 돌던 매가 갑자기 아래로 날아 내려오더니 청년의 어깨에 내려 앉았다.
그 모습도 무척 신비해 보인다.
여건이 그들 앞으로 다가 선 다음 포권을 하고 말했다.
"무림맹 섬서지단의 여건입니다. 혹시 조금 전 저희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면 이 여건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내가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인사를 받기에는 신분이 마땅치 않습니다. 전 장 우사님을 만나러 왔다가 상황을 보고
도움을 준것이니 단주님은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여건이 편일학을 바라보았다.
편일학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청년을 보면서 말했다.
"종남의 편일학입니다. 장 우사님과는 사막에서부터 인연을 밎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일로 장 우사를 보러 오셨는지 혹시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입니까?"
청년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사님께서 운기를 마치신 후 이야기 하겠습니다."
결국 장우사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때 장우사가 눈을 뜨고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말하게. 자네는 누구인가?"
모두 놀라서 장문산을 바라본다.
- 혈맹의 일로 왔습니다.
장문산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얼런 청년에게 물었다.
- 자네는 누구인가?
청년은 조금 망설이다가 장문산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 초무영이라고 합니다
장문산이 놀란 표정으로 초무영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초무영이란 이름은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니었다.
사혼혈검 초무영
그 이름은 바로 삼무룡 중 한 명인 혈룡의 이름이었고, 혈룡은 바로 사혼혈궁의 소궁주였다.
장문산은 상대가 뜻밖의 신분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