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우우공반 (120/228)

우우공반

- 권왕, 그도 남자다

하영영이 풀려나고 납치되엇던 동심맹 장로들의 식솔들이 전부 풀려나면서

무림맹의 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은 느슨해졌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이미 돌아가는 제반 상황을 민감하게 지켜보던 무림맹의 무사들은 동심맹의 장로들이

권왕의 여동생을 납치했다가 호되게 당한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모두 쉬쉬하고 있었지만, 아운이 벽보까지 붙여 가며 공개적으로 경고까지 해가는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눈치 챌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시선이 장로원과 금룡각 그리고 권왕의 여자인 북궁연이 있는 매화각에 집중되고 있었기에,

정작 무림맹의 맹주인 신수 조진양이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온 것은 그다지 큰 

놀라움을 주지 못했다.

후에 강호에서는 이 사건을 일컬어 하 소저 납치사건이라 불렀고, 하영영의 

배짱과 그녀의 놀라운 용기에 감탄한 무인들은 그녀를 여호랑이라 일컬으며 

그 오빠에 그 여동생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용기와 배짱은 능히 맹호와 같고, 아름다움은 능히 옥과 같은 여자란 뜻이였다.

그리고 그 이후 강호 무림에는 새로운 사자성어가 생겼다.

누군가에게 협박을 했다가 오히려 더 큰 협박에 당하는 것을 우우공반 아리 불렀던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우씨, 우일한이 공을 탐해 사람을 납치했다가 오히려 크게 당했다는 뜻이었다.

무림에 새로운 사자성어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후욱..

한 차례 운기를 마친 아운은 가볍게 숨을 토해 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윗옷을 벗은 그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면서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기운들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약간 마른 듯하면서도 근육으로 탄탄한 그의 몸은 하나의 조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북궁연은 아운의 빼어난 몸매를 보고 얼굴이 저절로 붉어지면서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꼇지만,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공, 맹주부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어느새 북궁연은 아운을 부를 때 가가 라는 말 대신 상공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맹주부에서 서신이라.........나를 보자는 것이오?"

북궁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늦은 것인지도 모른다.

진즉에 자신을 보자고 했어야 옳았다.

"우호법이신 사마정 대협이 직접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북궁연의 말에 아운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그럼 보아야지"

그의 표정엔 여유가 있었다.

북궁연은 그런 아운이 더 없이 믿음직스러웠다.

"정말 쉽게 허락을 하시는군요,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쩨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오?"

북궁연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상공이라면 보고 싶으면 직접 찾알오라고 말할 것 같았거든요."

아운은 피식 웃었다.

"적아를 떠나 무림맹의 맹주라면 선배 아니오."

"원래 사람의 신분을 따지지 않고, 그가 적인지 아닌지, 정의로운 사람인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셨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나는 아직 맹주란 자를 보지 못했소. 그래서 이 기회에 가서 보려고 하는 것이오."

"상공 답습니다."

북궁연의 말에 아운은 웃으면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금룡단의 수하들에게 결전에 앞서 각자 특성에 맞는 특훈을 명령하고 자신 또한

나름대로 자신의 무공을 정리하면서 지내고 있던 중이었다.

근래 들어 자신의 무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내공이 증진되거나 하는 무공의 진전은 없었지만,

초식들의 운용 능력이나 원활한 사용법 등에 대해서는 큰 이득이 있었고, 앞으로

더욱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았다.

아운은 천천히 동쪽 하늘을 바라 보았다.

막 떠오른 태양이 매화연 안의 누각들 지붕 위로 햇살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시작인가? 지금부터 정신 바싹 차려야 하겠군.'

아운은 무림맹 안에서 자신의 행보가 드디어 큰 전환점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연 누이, 약속 날짜가 언제입니까?"

조금 더 신중해진 아운을 보면서 북궁연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틀 후 정오에 보자고 했습니다. 정식으로는 점심 식사 초대이고, 저도 함께 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틀 후면, 조금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내 무공이나 조금 더 다듬어 놓아야겠군."

북궁연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아운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 마시오, 연 누이, 맹주를 만나서 무력을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동심맹의 

장로들과 약속한 결전도 있기에, 조금 더 수련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뿐이오."

북궁연이 가볍게 한숨을 내수며 말했다.

"누가 뭐라고 했나요? 단지 무인을 지아비로 둔 여자가 가지는 일반적인 걱정을 했을 뿐입니다."

아운이 다가와 그녀를 가볍게 안으면서 말했다.

"하하, 너무 걱정 마시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연인을 두고 설마 함부로내 자신을 굴리기야 

하겠소? 자칫 잘못하면 나 대신 엄한 놈만 좋을 텐데."

북궁연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어째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상공께서 잘못되면 저 역시 세상에 살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아운은 북궁연을 힘주어 안았다.

"고맙소. 연 누이. 그런데 말이오, 그 자리에 신창 조원의도 꼭 나왔으면 좋겠소."

북궁연이 놀라서 고개를 들고 아운을 바라보았다.

아운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노가 남매를 통해 연 누이에게 한 짓을 내 아직도 잊지 않고 있으니, 얼굴을 좀 보고 싶을 뿐이오."

"가가."

"걱정 마시오. 단지 어떻게 생긴 종자인지 한 번은 봐야 하지 않겠소?

무림맹에 들어온지 오래인데 어째 쓸 만한 인간들을 제대로 만난 적이 없으니 말이오."

북궁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아운이 무림맹에 들어온 순간부터 사건이 줄지어 터졌고,

너무 제멋대로 주먹을 휘둘러 대었으니 누군들 함부로 만나려 했겠는가?

만나려면 상대를 제대로 알고 만나야 하는데, 아운은 정말 파악하기 힘든 종류의 인간이라

누구나 함부로 만나는 것을 꺼려했던 것이다.

그리고누구든지 만나면 좋게 끝난 경우가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외 명성 자체도 다른 사람에겐 너무 부담이 되었따.

부맹주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신보다 후배이고 나이도 어린데다 직위도 보잘것없을 뿐인데,

아운의 명성과 무공이 그 자신을 넘어서고 있었으니 어떻게 대우를 해야할지 난감했을 것이다.

사실 무림맹에서 좀 이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꺼림직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누가 아운을 만나려고 하겠는가?

"자자, 이제 그런 걱정은 집어치고 지금은 우리의 시간을 방해받지 맙시다."

아운은 북궁연을 더욱 힘있게 끌어안았고, 북궁연은 편안하게 아운의 품에 안겨 들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매화단의 호위무사들은 고개를 돌려서 못 본 척 한다.

설비향은 생각함 해도 한숨이 나왔다.

어차피 오행문에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허무하게 멸문해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영영 납치 사건으로 얻으려던 이득도 전혀 취하지 못한채 끝난 것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이쪽에서 어떻게 힘을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는 한쪽에 의연한 자세로 서 있는 호연란을 바라보았다.

호연란은 설비향이 자신을 바라보자 물었다.

"어떻게 처리했나?"

"어쩔 수 없이 동창으로 호송되던 오행문의 다섯 문주들을 중간에 전부 암살해 버렸습니다."

"암살이라! 어쩔 수 없지. 그들에게서 우리와 관계된 어떤 이야기라도 흘러 들어가서

좋을 것은 없으니. 그럼 그들 중에 오단이란 자는 어떻게 처리했나?"

"그는 오행문과 호연세가의 관계르르 전혀 모르는 자 입니다.

그래서 그냥 두었습니다.하지만 앞으로 무인으로 생활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듣기로 하영영이란 계집에게 아주 호되게 당했다고 들었다."

"그나마 오단이란 자는 가장 약하게 당한 축입니다. 사실 오행문의 문주들은 굳이

죽이지 않아도 결국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그리고 그 이전에 좀 심하게 당하기도 했고....."

"그년도 독하군."

"그 오빠와 같은 종자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 장군부의 며느리라니......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슬슬 권왕을 만나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겠죠. 언제쯤 보실 생각입니까?"

"기회를 만들어 봐, 이왕이면 내가 상대하기 좋은 자리로. 얼마나 철석의 담을 지닌 사내인지 

꼭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설비향은 호연란의 말 속에 여자로서의 호기심도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소가주님도 권왕을 남자로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면 더욱 좋은 일이고.'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호연란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마음이 조금 심란해진다.

'나도 한때는 저 모습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았었지. 훗, 지금도 그런 마음이 남아 있긴 한 것인가?'

설비향도남자로서 그녀에게 욕심이 안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넘볼 수 

없는 여자란 것을 알고 아주 오래 전에 포기를 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운에 대한

그녀의 관심에 은근히 질투가 나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대신 자신의 작은 머리로 그녀를 조정하고 움직이는 것에 

긍지를 지니고 있던 그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의 야망은 성공을 했다.

지금의 호연세가와 호연란이 있기까지 그의 지혜와 지식이 큰 밑바탕이 되었음을 

호연세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 남자라 호연란에 대한 미련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리라.

그래도 그것을 겉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비향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여자처럼 잘 생긴 얼굴이 조금 상기되면서 말했다.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대가 돼."

"저도 그렇습니다."

"권왈이라! 그도 남자겠지?"

"물론입니다."

호연란이 설비향을 바라보았다.

"좋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자를 볼 수 있게 해 줘.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게 해 주지. 그전에 머저 가슴속에 맺힌 것좀 풀어야겠어. 좀 괜찮은 것들로 준비 해줘."

"알겠습니다, 소가주님."

대답을 하면서 설비향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독하게 아름답고 능력 있는 여자기 자신의 미모와 교활한 머리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남자 한 명 바보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자라는 단점은 어느 순간에 장점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 단점이 장점으로 변하는 순간 어떤 무공보다도 무섭고 치명적인 무기가 된다는 

것을 설비향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자가 망신을 당한 후에 폭력을 휘두를 순 없다.

그렇게 할 경우, 그 남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게 될 것이고

그 이후에도 두고두고 뒷말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권왕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건 소가주님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결전이다. 더군다나

소가주님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한 반면

권왕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더욱 당황할 것이다.'

설비향은 짜릿한 전율이 자신의 사타구니를 관통하고 지나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 느꼈던 질투는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사실 그 짜릿함 자체도 질투의 한 자락일지 모르지만. 설비향은 일어섰다.

호연란의 살심을 풀어 주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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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성 동부 고원 지대

계단식 밭과 밭 사이로 도끼로찍은 듯이 들어선 협곡들은 그 험한 지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지언정, 보기엔 더 없이 아름답기만 하였다.

산서성 북부의 항산에서 남쪽으로 약 오십여 리 떨어진 작은 산 자락의 바위틈에

일곱 병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 세 명은 승려였고, 한 명은 노인이었으며, 두 명은 청년이고 또 한 명은 

중년인이었다.

청년 중 한 명은 바위틈 한쪽에 누워 있는데, 의식을 잃은 듯하였다.

그들은 철위령을 구해 온 명라한과 옥룡 일행이었다.

옥룡은 누워 있는 철위령을 보면서 말했다.

"세상은 참으로 넓군요, 젊은 나이로 십사대 고수와 겨룰 수 있는 실력자는 

권왕뿐인 줄 알았는데, 탈명검사 능유환과 겨루어 비록 지기는 했지만 능히

겨룰 수 있는 실력자가 또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명라한 역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미타불, 소승 역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이제 겨우 삼십 초반인데 말입니다."

"삼무룡이란 말이 부끄러워 이제 옥룡이란 이름을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명라한이나 소혼마장 유가령 등은 능히 옥룡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하에 견줄 수 있는 자가 드물다는 기재 중 한명이 옥룡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나이에 도저히 올려다보기 힘들정도로 뛰어난 인물이 둘씩이나 나타났으니,

그 상실감은 적지 않을 것이다.

명라한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두 사람이 너무 뛰어난 것이니 옥룡은 스스로 자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제 강호 무림사에도 권왕이나 저 청년 같은 사람들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리고 

옥룡에겐 그들에게 없는 지혜로움이 있습니다."

옥룡은 입가에 조금 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강호에 권왕이나 저 무명의 검사와 같은 고수들이 나타난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어서 고민했을 뿐입니다.

어떤 일에는 반드시 근원이 있고, 결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늘이 이런 사람을 둘 씩이나 세상에 내보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권왕의 강함은 그 스스로의 기연과 성정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저 무명의 검사는

상대적인 것 같아서 걱정이 될 뿐입니다.도, 제가 본 권왕의 지혜로움은 저 이상일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옥룡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다시 한 번 그를 바라본다.

그가 권왕을 그렇게 보았다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만큼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난 옥룡이었다.

명라한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들리는 소문만으로도 삼두육비의 괴물 같은데, 거기에 옥룡의 지혜를 ㄹ가진 권왕이란 인간은 도대체

어떤 자란 말인가? 모두들 권왕에게 새삼 놀란다. 이때 유가령이 옥룡을 보면서 물었다.

"권왕과 저 무명 검사의 차이점은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명라한이 옥룡 대신 대답했다.

"아미타불, 권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저기 누워 있는 무명 검사의 무공은 단순히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한 대가라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단순히 그렇게 배운 무공이라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저 나이에 저렇게 강해질 순 없을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를 상대하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하였거나, 아니면 반드시 강해져야만 하는 어떤 원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명확한 동기 부여가 있었고, 거기에 기연이 따라야 가능한 무공 경지란 것입니다."

명라한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라한과 아사라, 그리고 소혼마장 유가령과 월영검객 탕문 등은

두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유가령이 조금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분은 지금 저 무명 검사가 나타난 원인으로 인해 무림에 어떤 흉함이 더 해질 것이라 보는 것입니까?"

명라한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미타불,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렇게 강한 사람이 상대해야만 하는 적이나 혹은

원인이 궁금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적이 혹시 탈명검사를 비롯한 혈궁이 아닐까요? 그래서 생사의 

혈투를 벌인 것 아니겠습니까?"

"연관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세한 것은 일단 저 시주가 

깨어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물었던 몽혼지약이 무림의 어떤 중요한 비밀과 관련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동기 부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명라한의 말이끝나자모두들 침중한 표정으로 철위령을 바라본다. 생각에 잠겨 있던 옥룡이 말했다.

"어쩌면 세상에 벌어진 많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흠칫한 표정으로옥룡을 바라본다.

옥룡은 묵묵한 표정으로 그들의 시선을 흘려보낸다.

명라한이 옥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옥룡은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닌 문제를 비롯해서 저기 무명 검사가 지닌 문제, 그리고 현 무림의 문제까지

그 근원은 하나가 아닌가 싶기도해서 한 말입니다."

"아미타불, 가능성이 있는 말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명라한은 옥룡의 총명함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으음."

가벼운 신음과 함께 철위령이 몸을 꿈틀거리며 눈을 떴다.

옥룡 일행의 시선이 다시 철위령을 향한다.

"아들아, 기억해라! 너는 반드시 몽혼지약을 네 대에서 완성해야만 한다. 이 아비는 검을 알고

그 검에 혼을 불어 넣지 못해 도전조차 해 보지 못하고 좌절하는구나."

"아버님"

"말하지 말아라~ 내가 죽어서 내공을 가져가면 무엇에 쓸 것이냐?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을 몸. 네게 희망이 있음에 지금 죽어도 행복할 수 있다. 너는, 너는 반드시 살아서 몽혼지약을 지켜라!

그래서 그가 감히 다시는 중원을 넘볼 수 없게 하여라~!"

철위령은 이를 악물었다.

거침없이 밀려 들어오는 진기가 그의 몸을 마구 헤집고 있었다.

그것은 죽어 가는 아버지의 혼이었고, 생명력이었다.

한 가닥이라도 헛되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가문의 검혼심법으로 진기를 유도해 가면서 날뛰던 내공은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지만,

싸늘하게 식어 가는 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면서 철위령은 정신이 흩어졌다.

그것은 무인에게 있어서 너무 큰 실수였다. 

순간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내가진기의 위력 앞에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등에 밀착되어 있던 아버지의 온기가 사라져 갔다.

사력을 다해 심법을 운용하던 철위령은 가진 진기를 전부 자신에게 몰아넣고,

온몸이먼지로 부서져 죽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느껴지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를 악물었다.

'몽혼지약은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그렇게끝까지 심법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어느 순간 철위령은 정신을 잃고 주화입마의 의기에서 기억을 잃었다.

"크으윽."

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철위령은 자리에서 몸을벌떡 일으켜 세웠다.

명라한이철위령을 보면서 물었다. 

"정신이 드는가?"

"허억."

철위령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고 명라한을 바라보다가 안면이 있는 사람임을 깨우치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일단 자신과 생사를 결하던 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직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기회가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 했다.

고개를 흔든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잃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탈명검사와 사투를 벌이다 쓰러지던 생각이 떠오른다.

아련하게 누군가가자신을 구해 그곳에서 벗어나던 느낌까지 더해진다.

상황을 이해한 철위령은 망연한 시선으로 명라한을 바라보았다.

"스님 일행이 저를 구해 주신 것입니까?"

"아미타불, 운이 좋을을 뿐입니다."

위철령은 묵묵히 고개를 흔들었다.

운만으로 자신을 구할 순 없을 것이다.

이미 명라한의 무공이 자신보다 못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의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있어 그들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포권지례를 하면서 말했다.

"소생 철위령이 목숨을 구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옥룡은 잠시 철위령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눈이 맑아지셨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철위령은 놀라서 옥룡을 바라보았다.

눈빛만 보고 자신이 기억을 되찾았음을 알았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은 기억을 잃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저 청년은 어떻게 그것을 알았단 말인가? 한꺼번에 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옥룡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몽혼지약을 물으실 때와 지금의 눈동자가 달라서 눈치 챈 것뿐입니다.

무조건 아무에게나 그런 걸 물으시기에 기억을 잃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때와 달리 눈빛이 맑아지고 깊어지셔서 기억을 되찾은 것이라 판단한 것뿐입니다."

별거 아니라는 말투였지만, 철위령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판단력이란 것을 잘 안다.

사실 자신이 기억을 잃고 몽혼지약을 몯고 있다는 것은 어지간히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있어서 눈빛만 보고 자신이 기억을 되찾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을 일이었다.

새삼 옥룡을 다시 한 번 바라본 철위령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저를 구해 주신 것은 고맙지만 그들은 위험한 자들입니다."

옥룡이 맑은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 말 한마리도 상대가 위험한 자가 아니란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그들은 우리를쫓던 자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로 인해 소협께서 위험에 처했던 것이라

저희가 미안할 따름입니다."

검혼 철위령은 놀라서 옥룡과 그 일행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미 상대가 누구인 줄 알고 있던 터라 그들에게 쫓길 정도라면 보통 신분은 아니라고 짐작한 것이다.

"그들은 원나라의잔당들로 대초원의 전사들일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에게 쫓기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옥룡과 명라한 등의 얼굴이 굳어졌다.

옥룡이 물었다.

"그들이 원나라의 잔당들이라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이전에 제가 물었던 몽혼지약은 그들의 최고 실력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이 원나라의 잔당이 아니라면 몽혼지약을 알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몽혼지약이 무엇입니까?"

철위령은 갑자기 침묵했다.

말을 해도 괜찮을지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옥룡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명라한이 침착하게 말했다.

"시주, 아무래도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은 나중에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철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옥룡이 명라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이 근처까지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피해야겠군요. 중비하겠습니다."

옥룡이 다른 사람들과 피할 준비를 할 때 명라한이 철위령을 보면서 물었다.

"젊은 시주는내외상이 심했었는데, 움직임이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몸은 제가 돌보겠습니다."

"그럼 빨리 여기를 떠야 할 것 같습니다."

옥룡과 명라한. 그리고 철위령 등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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