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二章 폭풍비룡(爆風飛龍)
- 여자이기 때문에 유리할 수 있다.
검으로 능유환을 겨눈 철위령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졌다.
‘공격할 곳이 없다.’
묘하게도 허술해 보이는 능유환의 자세에서 공격할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능유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바늘처럼 날카롭게 찔러 오는 기세 속에서 철위령의 모습은 하나의 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은 바로 검의 끝이었다.
‘사부님께서 검혼을 만나면 절대로 겨루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알겠다. 그 후예가 이 정도라니.’
능유환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상대가 검혼의 후예라면 자신은 도혼의 제일대 제자다.
그런데 언뜻 보아도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검혼의 후예가 자신과 견준다고 생각하니, 그 뒤에 있는 검혼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이상한 패배감 같은 것을 느낀 것이다.
물론 다른 점은 있었다.
자신을 비롯해서 사형제들은 도혼의 무공을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모아 놓은 중원의 무공들을 원의 황실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연구해서 왕선한 무공들을 익혔고, 무공의 원론과 기초를 완성해 준 것이 바로 사부였었다.
그러나 분명히 사부는 말했다.
자신들이 익힌 무공은 도혼 본인의 실제 무공과 견주어서 결코 뒤지지 않는 무공이라고.
능유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갑자기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철위령의 검이 부르르 떨린다.
“대단하다. 그 나이에 나와 견줄 수 있다니, 과연 검혼은 대단하다.”
“검혼? 그것이 나의 이름이오?”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네가 검혼과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몽혼지약도 알 수가 없었겠지.”
“검혼? 이름인가? 아니면?”
철위령이 나직하게 중얼거릴 때였다.
“결전 중에 정신을 다른 곳에 분산시키다니, 죽고 싶은 것인가?”
능유환의 호통에 철위령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만약 지금 상대가 충고 없이 공격해 왔다면 꼼짝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고맙소.”
“고마울 것 없다. 언제고 검혼의 검을 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더니 이렇게 우연히 만날 줄이야.”
능유환의 입가엔 만족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칠사의 한 명을 떠나 그는 무인으로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철위령 역시 투혼에 불타올랐다.
“한 수 빚진 것으로 하겠소.”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너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너도 반드시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감정 없는 능유환의 시선을 보면서 철위령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 그렇지, 우리는 적이었지. 깨우쳐 주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오.”
“맞다. 우리는 만나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적이지.”
“슬픈 일이오. 무사로서 당신이 마음에 들었는데.”
“무사에게 그런 감정은 사치다. 하자민 나 역시 네가 마음에 든다.”
철위령은 대꾸하지않았다.
서로 적이라면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이젠 검으로 말을 할 때가 되었다.
자신의 모든 정신과 기를 검에 모으고 능유환을 바라본다.
능유환은 여전히 검을 뽑아들지 않은 채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마주 보고 움직이지 않았다.
꿀꺽.
보고 있던 지국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검혼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주군에게 뒤지지 않고 마주 선 젊은 철위령에게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중원의 하늘은 넓은가? 젊은 나이에 저런 고수들이 숨어 있었다니.’
금의봉은 새삼 중원의 저력에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물 서너 모금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지만, 보는 사람들은 아주 길게 느껴졌다. 모두 조바심이 나는 것을 느낄 때였다.
철위령의 검이 서서히 움직였다.
마치 안에서부터 원을 그리듯이 능유환을 겨누고 있던 그의 검이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켜보던 자들의 눈이 커진다.
보통 공격하려는 자에게서 검을 이동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나도 내가 펼치는 무공의 이름이 용검오식(龍劍五式)이란 것만 기억하고 있소.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용검오식의 환룡(幻龍)이외다.”
친절하게 설명까지 하는 철위령의 모습을 보면 둘이 정말 생사의 결전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비무 대련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철위령의 검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었다.
그의 검에서 세 마리의 용이 이빨을 드러내고 능유환을 향해 밀려 나갔다.
당장이라도 능유환을 물어뜯을 기세였다.
검혼의 용검오식.
이것은 제이대 검혼이자, 철위령의 아버지인 철곽영의 피와 땀이 어린 검법이었다.
아쉽게도 철위령은 그 기억을 잃었지만.
환룡은 용검오식의 제일초였다.
꿈틀거리는 용이 당장이라도 능유환을 향해 달려들 기세였다.
능유환이 검을 뽑았다.
아니, 뽑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래에서 위로 그어가는 그의 검에 푸르스름한 맑은 광체가 어려 있었고, 그 기운은 여지없이 세 마리의 용을 가르고 있었다.
탈명좌사 금의봉이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하는 표정으로 경탄한다.
‘주군의 탈명검법(奪命劍法)은 언제 보아도 대단하다. 과연 저 젊은 무사가 몇 초까지나 버틸수 있을까?’
금의봉이 알기로 탈명검법의 칠초식 중에 능유환은 오 초 이상을 사용한 적이 거의 없었다. 원래 탈명검법의 진짜 이름은 칠절탈명검법(七絶奪命劍法)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능유환이 펼친 초식은 탈명검법의 첫 초식인 섬광형(閃光形)이었다.
섬광형은 세 마리의 용을 단숨에 갈라 놓앗고, 그로 인해 연기처럼 흩어지던 용들이 기묘하게 변하면서 다시 뭉치더니 재차 능유환을 공격해 갔다.
그러자 능유환의 검초가 변하였다.
그의 검에서 세 가닥의 검기가 뿜어져 세 마리의 용을 공격해 갔다.
칠절탈명검법의 제이초인 삼기고(三氣拷)였다.
검과 검, 기와 기가 충돌한다.
세 마리의 용과 세 가닥의 섬광이 얼키고 풀어지는 모습은 마치 하늘을 가린 구름과 그 사이로 헤집고 대지를 향해 뿜어지는 세 가닥의 햇살 같았다.
한동안 꿈틀거리며 섬광을 파헤치던 세 마리의 용이 하나로 뭉치고 있었다. 그리고 뭉쳤다 싶은 순간 엄청난 기세로 능유환을 향해 쏘아 갔다.
마치 한 가닥의 번개처럼.
“가, 강기. 저건 검강이다.”
탈명우사 지국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용검오식 중 제이식인 강룡(?龍)이 펼쳐진 것이다.
검강으로 만들어진 용.
그 용이 능유환의 머리를 강타하려는 순간이었다.
번쩍 하는 검은 섬광 한 가닥이 강룡을 가르고 지나갔다.
칠절탈명검법의 묵섬형(墨閃形)이 펼쳐진 것이다.
거짓말처럼 모든 기운이 사라졌다.
폭풍우가 치다가 갑자기 멈추고 햇살이 쨍 하고 나타난 것 같은 분위기였다.
능유환과 철위령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 철위령의 가슴 옷자락은 길게 베어져 있었고, 능유환의 옷소매는 가루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철위령은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더니 피식 웃었다.
“첫 대결은 아무래도 내가 손해를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턴 좀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용검오식의 전삼결은 연환으로 펼쳐야만 제 위력이 나오는 검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나를 실망시키진 않았네. 그런데 자네의 말을 들으니 더욱 기대가 되는군.”
“기대 이상일 것이오.”
철위령이 검을 들어 올렸다.
아련하게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무척 그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용검의 전삼식은 후이식을 숨기기 위한 검초다. 그래서 전삼식과 후이식은 큰 차이가 난다. 그러나 전삼식만 해도 당대에 당할 자가 많지 않으리라.”
“아버지.”
철위령은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머릿속을 울리고 들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철위령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의 눈가에 습기가 어린다.
무엇인가 뭉클거리는 감정이 그의 가슴을 슬프게 한 것이다. 철위령은 그 마음을 달래면서 결심을 굳힌다.
‘반드시 이긴다.’
철위령은 그 마음을 검에 담아 휘둘렀다.
그의 앞에는 상대가 없었다.
그저 휘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아련하게 들리는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휘두르는 철위령의 검은 용검오식의 후이식 중 제일식인 폭풍비룡(爆風飛龍)의 검로를 재현하고 있었다.
능유환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미증유의 힘이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다, 다르다. 이건 이전의 검초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탈명검을 굳건하게 쥐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 *
강호에는 수많은 방파가 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방파가 있는가 하면 삼류 문파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문파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런 삼류 문파 중엔 정말 삼류가 아닌 문파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또는 자신들이 행하는 사업상의 이유로 인해서 삼류를 가장하고 있는 문파들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말 그런 문파는 아주 적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떳떳하게 세상에 제 모습을 내보이지 못하는 일이란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 일이란 것이 대게는 옳지 않은 일들이거나 절대로 타인에게 알려지면 안 되는 일들이었다.
여기 그런 삼류 문파가 하나 있었다.
아니 삼류 문파를 가장하고 아주 지저분한 일들을 처리하는 청부업체가 하나 있었다.
오행문.
하북성 장북에 위치한 오행문은 정말 별 볼일 없는 문파였다. 총 다섯 명의 문주가 있고, 인근의 몇 개 기루를 운영하여 문파의 재정을 충당하는 정도로만 알려진 곳이었다.
오행문은 장북에서는 최고의 문파였지만, 강호라는 큰 바다에서 본다면 그저 삼류 문파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 삼류 문파에 한 명의 인물이 왔다가 간 후 오행문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세 마리의 전서구를 날리는 일이었다.
전서구의 발목에는 암호화된 글이 적혀 있었고, 세 마리의 전서구는 모두 한곳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극비를 요하는 중요한 일엔 만약을 대비해서 모두 세 마리의 전서구를 날리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받은 청부는 그들이 결정하기엔 너무 위험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상부에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으려는 것이다.
설비향은 호연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연란은 지금 막 도착한 비합전서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복잡한 암호로 써져 있지만 그녀가 그것을 읽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호연란은 다 읽은 비합전서를 설비향에게 주었다.
읽어 보라는 뜻이었다.
그것을 다 읽은 설비향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어쩌실 것입니까?”
“재미있잖아.”
그렇긴 합니다.”
“하라고 하지 뭐. 잘못되면 전부 숨어 버리면 될 테고.”
“장로원의 늙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이가 늘면 잔꾀도 늘게 마련이지. 그보다도 늙은이들, 권왕이 두렵긴 무척 두려운가 보네. 이런 꽁수를 다 쓰다니.”
“뭐, 저희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오행문도 서서히 철수시킬 계획이었으니 마지막으로 이일이나 멋지게 해 놓으라고 하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젠 나도 권왕을 한 번쯤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설비향의 눈이 빛났다.
“어떤 각오가 선 것입니까?”
호연란의 입가에 가는 미소가 어렸다.
“뭐, 봐서 정말 괜찮은 남자라면 내 남자로 만들든지. 아니면 과연 내 앞에서 얼마나 당당할지 보는 것도 좋겠지.”
“세상에 소공녀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남자는 없습니다. 비록 북매가 아름답지만 남란이 그에 못지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전에 흑룡과 사마무기도 북매를 사랑했지만, 아가씨 앞에서는 크게 당황했었죠. 그리고 그들은 소가주님에게 은근히 다가서려 했었습니다. 실제 이룡이 북매를 좋아한 것은 소가주님의 근접하기 어려운 위엄 때문이란 것을 전 압니다. 아마도 소가주님과 권왕이 만난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입니다.”
호연란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그동안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자칫 그를 만나면 감정이 더욱 격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설비향은 그녀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은근히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막았었다. 처음엔 호연란이 나서서 권왕을 만나고 그를 유혹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었다. 그러나 아운의 성격을 도통 알 수 없게 되자, 오히려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하였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비향은 호연란이 자신의 넘치는 매력이라면 권왕을 녹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라 나쁠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권왕에게 반발심이 강한 그녀가 권왕을 만나서 도발한다면 권왕의 성격으로 보아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몰라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막았었다.
이제 그녀의 마음이 조금 넉넉해진 다음이고, 권왕을 자신의 남자로 삼아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면, 서로 만난다고 해도 그녀가 상황을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고 성격도 격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분위기 싸움에서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주게 된다.
설비향은 그것을 알기에 두 사람의 만남을 뒤로 미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호연란의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면, 만나도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상황이고 주먹질이 아니라면 여자가 항상 유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호연란이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권왕이라도 여자에게 이유 없이 주먹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비향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호연란과 권왕의 만남.
그것은 그가 가장 고대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두 사람의 만남은 많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지만 심리적인 면에서 먼저 그를 찾아가 만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남자라면 어차피 남란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시과 약혼한 북매와 쌍벽을 이루는 여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고 무림맹 내에서 오래도록 보지 못하고 있다면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더욱 극적일 것 같았다.
이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우연을 가장한.
호연란이 설비향을 보면서 말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만났으며 sgo. 기회를 봐서 한 번은 망신을 주는 것도 좋겠지.”
설비향이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호연란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 나는 여자. 여자가 자시을 이용해서 남자 한 명 망신시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 그리고 나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도 있어.”
그녀의 입가에 아주 묘한 웃음이 떠올랐고, 설비향은 그녀의 생각이 무엇인지 몰라도 권왕을 만나 그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였다.
금룡각의 연무장.
금룡단원들이 신중한 표정으로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운은 무척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자신의 옆에 있는 우칠과 흑칠랑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 하는 식으로만 열심히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아운의 말에 야한은 무척 자부심이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살수인 자신이 무림맹의 무사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뿌듯했던 것이다.
그런 야한에 비해 흑칠랑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내가 가르치고 있는데, 저 정도는 해야지.”
야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선배는 마치 혼자서 모든 것을 다했다는 말투구려.”
“뭐, 내가 제일 고생했잖아.”
사실 말이 나왓으니까 말이지 가장 빈둥거린 것이 바로 흑칠랑이었다.
야한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는 정말 대단하시오.”
“나야 뭐. 험, 그야 남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 새삼스럽게.”
“그 정도로 얼굴이 두꺼우니 검도 안 들어갈 것이오. 조만간 안면금강불괴신공은 저절로 터득할 것 같소.”
흑칠랑은 독사눈을 하고 야한을 쏘아 보았다. 그러나 야한도 지지 않고 쏘아본다.
“네가 지금 내게 반항하는 것이냐?”
“반항이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것이오.”
“그게 반항이지. 이 우라질 놈의 새끼가.”
둘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면서 아운이 말했다.
“나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 그동안 열심히들 하도록.”
“충!”
우렁찬 고함이 당장이라도 금룡각을 무너트릴 것 같았다. 아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금룡각의 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흑칠랑과 야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운의 말투가 좀 묘했던 것이다.
어째 두 사람더러 열심히 싸우고 있으란 말 같았다.
듣기에 따라서.
금룡각에서 매화각까지는 아운의 빠른 걸음으로 아주 잠깐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으며, 실재 두 각의 사이에는 맹주부의 한 부서인 맹룡전 하나가 가로 놓여 있을 뿐이었다.
맹룡전은 무림맹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장로원이 관리하는 곳이었다.
보통 무림맹의 조직을 이야기할 때, 크게 나누어서 일부, 일원, 칠대삼단, 십이당이라고 말한다.
일부는 당연히 맹주부를 말하는 것으로 맹주부 하나의 크기만해도 장로원을 제외한 십이당을 전부 합친 것보다 크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이는 실제 크기가 아니라 그 힘을 상징적으로 일컬어 하는 말이었다. 맹주부 내부는 또 다시 몇 개로 나뉘어 있었고, 사마무기가 루주로 있는 신기루는 맹주부 소속이었다.
일원은 장로원을 말하는 것이고, 칠대삼단이란 맹주 직속으로 전대의 고수들로만 구성된 등천잠룡대(登天潛龍隊), 장로원에서 선출된 노고수들로 구성된 노호광룡대(老虎光龍隊), 철혈사자대(鐵血獅子隊), 풍룡백인대(風龍百人隊),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적운봉황대, 금강선위대, 풍운수호대의 칠대와 은영단, 맹룡단, 금룡단의 삼단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십이당은 다시 내육당, 외육당으로 나뉘는데, 천검당은 따로 매화연이라고도 불리며, 당주인 북궁연은 총당주를 겸하고 있었다.
무림맹에서는 총당주를 보통 총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호연란이 당주로 있는 월영당은 따로 비월령이라고 불렀으며, 비월령은 순찰과 정보를 통괄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힘을 가진 비월령에 비해서 총당주인 북궁연은 사실 명분만 있는 총사라고 할 수 있었다.
이외에 각 당들은 따로 무력 집단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들 또한 보통 대와 단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에서 당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지위를 가진 단체로 인정한 것은 이들 칠대와 삼단 뿐이었다.
이들 중 금강선위대와 풍운수호대는 무림맹에서 가장 많은 무사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칠대에 포함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당주 급 이상의 지위를 가지는 대와 단에는 금강선위대와 풍운수호대가 포함되지 않고 있었다.
삼단 중 맹룡단은 무림맹의 특수 무력 집단으로 장로원과 인증을 받은 젊은 고수들이 운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노호광룡대와 함께 장로원이나 무림맹주의 허가가 떨어져야만 움직일 수 있는 제약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