ㅌ第七章 폭풍전야(暴風前夜)
-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
무림맹이 생기고 나서 이보다 청격적인 일이 있었을까?
단연코 없었을 것이다.
목숨만 붙어 있는 칠십여 명의 금룡단 죄인들은 무림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한두 명씩은 반드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다.
기명 제자든 무기명 제자이든 명백하게 관련이 있었고, 그들이 지은 죄를 적어 놓은 벽보에는 그들의 출신과 아울러 그들의 사문이 이들의 잘못을 어떻게 감싸고 숨겨 왔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특히 이 죄목 중에는 수많은 수수께끼를 남기고 미궁에 남았던 사건들과 연결된 것들도 많았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건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알면서도 쉬쉬했던 일들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죄목은 더욱 신빙성이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밝혀진 이들의 죄질 중에는 충격적인 내용들도 적지 않았다.
구환도(九環刀) 대도명.
섬서성 대명장의 장자이자, 화산의 속가제자.
삼 년 전 섬서성의 소문파인 장가보의 장녀인 장서림을 탐하여 구혼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야밤에 대명장의 수하들을 대동하고 침입하여 장가보의 식솔들을 몰살하고 장서림을 납치, 일 년 동안 대명장에 가두어 놓고 노리개로 삼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집안의 무사들이 이를 눈치 채자, 그들과 함께 장서림도 죽여서 암매장하였다.
당시 대도명의 아비인 대서군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묵과.
탈면서생(?面書生) 이붕.
점창파의 일대제자.
이가보의 보주인 이명의 장자.
얼굴에 흉터가 심해서 탈면서생이란 별호를 얻었지만, 그는 이 별호를 아주 싫어함.
길을 가다가 어린아이가 자신을 보고 울었다는 이유로 그 일가족을 몰살. 얼굴 탓으로 여자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자, 자신의 무공을 이용해서 부녀자 삼십여 명을 납치, 간음하고 죽임. 이후 이가장의 장주와 점창의 장로가 이 사실을 알고 자숙할 것을 요구하면서 금룡단에 강제로 입단시킴.
팔황금강권(八荒金剛拳) 하숭.
하남성 정주표국 국주이자, 소림의 속가제자인 하진의 둘째 아들. 대를 이어 소림의 속가제자로 입문.
재질이 뛰어나서 소림 속가제자들 중, 젊은 층에서 가장 무공이 강한 자 중에 한명.
정주의 소문파인 용문방의 제자가 대들었다는 이유로 때려죽임. 용문방에서 항의를 하여 책임을 묻자 열흘 후 용문방의 모든 식솔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몰살당함.
하승의 자백으로 그와 정주표국의 짓임이 드러남.
소림은 진상 조사를 위해 원백 대사를 보냈지만, 사건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돌아갔음.
아직도 미궁으로 남아 있던 사건임.
이 개 같은 자식이 나와 같은 하씨임이 부끄러워 견씨로 바꾸어 주었음.
권왕 아운.
그 외에도 사자명과 그를 따르며 금룡단의 이름으로 저지른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이들에게 직접적인 명령을 내린 자가 호연란이었음을 밝히고 있었다.
이들은 정확하게 죄 없는 중소 방파 열다섯 곳을 몰살시켰는데, 그 이유가 호연세가의 명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며, 북궁세가를 지지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건 적나라해도 너무 적나라했다.
있는 그대로 적어 놓은 벽보 앞에서 무림맹의 무사들은 물론이고, 각 대문파의 제자들도 넋을 잃고 말았다.
칠십여 명의 무리들 중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이고 제법 잘나간다 하는 문파들 십여 개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특히 호연세가의 가신을 자처하던 상당수의 문파들이 받은 타격은 더욱 컸다.
그들은 어차피 주류가 될 수 없는 세력이었고,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호연세가였으며, 호연세가는 이들 문파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대거 금룡단에 입단시켜 사적으로 이용해 왔었다. 그런데 그들이 망가져도 아주 망가진 채로 버려지고 만 것이다.
대문파와 달리 그들에게 있어서 단 한 명의 인재는 문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동량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들 문파의 희망이 꺾어진 결과가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이 한 짓거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는 그 문파들에게도 치명적이었지만, 호연세가 입장에서도 굉장히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이번 일로 무림이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이미 무림맹 밖에서 돌린 수백 장의 전단과 벽보가 사방으로 퍼져 가고 있었기에 어떻게 막고 숨길 수도 없었다.
사방에 나붙은 벽보를 보면 그것은 무림맹을 떠나서 정파의 주류라 할 수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장로원의 모든 고수들을 향한 권왕의 도전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들이 그동안 해 온 잘못을 꾸짖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겠다는 포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덤빌 테면 덤비라는 권왕의 배포가 고스란히 드러난 벽보였다.
그리고 벽보에는 금룡단주가 아니라 권왕 아운의 이름으로 직인이 찍혀 있었다.
이는 곧 무림맹의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무인 아운으로서 이들을 단죄하겠다는 의지라 하겠다.
한편 아운의 벽보가 나붙은 후 중소 문파의 무인들은 분노와 경멸 어린 시선으로 장로원과 이들이 속한 대문파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싸늘했다.
한 명의 스님이 빠르게 금룡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육 척에 달하는 장신에 곰처럼 우람한 덩치의 젊은 승려의 머리엔 굵은 심줄이 몇 개나 돋아나 있었다.
얼굴도 붉에 달아오른 것으로 보아 상당히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 스님이 이를 부드득 갈면서 숨결보다 더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몽진, 이 죽일 놈. 몽춘이 죽는 것을 방관하더니, 이번엔 사문의 제자가 병신이 되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척해! 더군다나 사문에 이런 큰일이 벌어졌는데 사전에 보고도 안 하다니. 이놈이 이젠 소림을 버리고 권왕의 그늘에서 권세를 누리겠단 것인가? 평소 제 혼자서 잘난 척하더니 이젠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하는구나. 이놈, 스승님을 만나기 전에 먼저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화를 참지 못하고 혼자서 중얼거린 승려는 더욱 걸음을 빨리 하였다. 단 한시라도 빨리 몽진을 만나서 그에게 책임을 묻고 분풀이를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금룡각의 정문이 보이자, 젊은 중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금룡각 정문에는 서너 명의 인물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의 뒷모습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들 역시 자신과 같은 지시를 받고 이곳에 왔을 것이다. 한데 그들은 모두 금룡각의 정문에서 한 명의 거한과 대치를 하고 있었다.
자신도 제법 한 덩치 하지만 금룡각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거한의 덩치는 자신의 그것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났다.
소림의 후기지수들 중에 최고라는 십팔동나한 중에서도 서열 이위에 해당하는 몽광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소림 십팔나한 중에서 가장 충동적이고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몽광이었다.
몽광의 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그가 사람들 사이로 나타나자, 그 자리에 있던 인물들이 얼른 그에게 아는 척을 하였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지라 몽광도 마주 인사를 하였다.
대충 서로 인사를 끝낸 몽광은 그들 중에 한 명의 도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미타불,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도사는 입가에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무량수불, 사조님의 명으로 사제를 데리러 왔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도사는 무당 장문인의 둘째 제자인 한정검(漢正劍) 우명이었다. 몽광은 그가 자기처럼 사문의 명을 받고 금룡단 소속의 운현검 우영을 데리러 왔을 것이라 짐작하였다.
이번 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는 금룡단에 소속된 제자들에게 모두 집합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자신 또한 몽진 나한을 데리러 온 상황이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입니까?”
우명은 대답 대신 시선을 금룡각의 정문으로 향했다.
우명을 보고 있던 몽광도 그의 시선을 따라 금룡각의 정문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거한의 청년에게 시선을 옮겼다.
갑자기 짜증이 확 치민다.
막았다고 못 들어가다니.
걸리적거리는 것은 치우고 가면 그만 아닌가?
언제부터 장로원의 에하 문파들이 남의 눈치를 보고 행동을 했던가?
간단하게 생각한 몽광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아미타불, 소림의 몽광일세. 사문의 사제인 몽진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으니 안으로 기별 좀 해 주게. 아니면 내가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좀 열어 주게.”
거한의 입에서 휴 하는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젠장, 이거 같은 말을 또 해야 하나? 잘 들어라 화상. 단주님께서는 앞으로 삼 개월간 금룡단의 수하들은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라! 가서 삼 개월 후에 다시 와라. 그리고!”
갑자기 말을 강조한 거한의 청년이 몽광을 노려보았다.
그 사나운 기세에 몽광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중놈이 예의범절은 어디에다 버리고 처음 본 사람에게 하대를 하느냐? 이 하늘 아래 고금전후로 나에게 하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유일하게 주군 한 분뿐이시다. 다시 한 번 내게 하대를 하면 대갈통을 후려쳐 버리겠다. 그러니 말조심해라! 이 중놈아!”
몽광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소림의 십팔나한이면 수십만 무림인들 중에서 가장 귀한 신분을 가진 축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 저렇게 막말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같은 막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물론 자신의 눈앞의 거한에게 처음부터 하대를 한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거니와 그 부분에 관해선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소림 십팔나한의 둘째.
그 정도의 신분이면 충분히 하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통해 온 진리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상대는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한 것 같았다.
물론 그는 자신의 뒤에서 뻣뻣하게 얼어붙은 우명과 그 외, 다수의 사람들 모습을 보진 못하고 있었다.
“허, 참으로 무식한 종자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소림 십팔나한의 한 명인 몽광…….”
또렷한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자신을 소개하던 몽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한의 청년이 갑자기 들고 있던 철봉을 휘둘러 공격을 해 온 것이다. 물론 누가 갑자기 기습한다고 놀랄 몽광은 아니었다.
문제는 상대의 공격이 문제가 아니라, 공격해 오는 철봉에 실린 힘과 속도였다.
누가 말했던가? 공기를 찢고 태산을 가를 것 같다고.
거한의 공격은 딱 그 정도였다.
기겁을 한 몽광이 고함을 질렀다.
“이런 미친놈이…….”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목소리는 중간에 끊어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몽광의 민머리에 거한의 청년이 휘두른 철봉이 떨어진 것이다.
막고 피하고 할 사이도 없었다.
무지막지한 고통과 함께 몽광의 눈이 서서히 뒤집어지고 있었다. 정신을 잃어 가는 몽광의 귀에 거한 청년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이 멍청한 중 새끼야! 나는 고금제일무적권왕의 고금천추제일충신인 우칠 님이시다. 네 놈의 사제인 몽진의 얼굴을 봐서 죽이진 않으마.”
이제야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어째서 이제야 그것을 개우쳤단 말인가? 우명 등이 감히 상대에게 덤비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사연도 지금은 이해가 갔다.
미리 자신에게 상대가 누구인지 알려 주지 않은 우명을 원망하며 몽광은 정신을 잃었다.
우명을 비롯해서 우칠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자들은 모두 멍한 표정으로 우칠과 기절해 버린 몽광을 바라보았다.
십팔나한의 둘째라는 몽광이 철봉 한 방에 기절이라니.
아무리 갑작스런 공격이라고 해도 이건 듣던 것 이상으로 무지막지한 자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칠은 철봉으로 땅바닥을 꽝 하고 내리찍은 다음에 말했다.
“이 멍청한 작자들아!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지 말고 다 꺼져라! 아님 나를 여기서 이기고 안으로 들어가든지. 그럴 자신이 없으면 가서 전해라! 금룡단의 수하들은 그들 문파 이전에 무림맹 소속이고, 또한 그 이전에 금룡단 소속의 수하들임을 명심하라고, 그러니 그들은 단주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들 알고 꺼져라!”
모두 멍한 표정들이다.
그들이 어디 가서 이렇게 문전 박대를 당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무시당하고 그냥 멍하니 있어 본 적이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덤벼?
아무리 생각해도 저 무식한 놈을 이길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도 없었다.
우칠의 얼굴에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에이, 멍청한 새끼들. 나는 이전에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목숨 걸고 덤볐다. 그래서 일곱 번이나 죽었다 살아났구만, 저것들은 어째 상대가 조금만 강하다 싶으면 꼬랑지를 내리나.”
우칠이 하는 말을 그들은 다 들었다. 그래도 덤비지 못한다. 그냥 조금 무시당하는 것이 매 맞고 기절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으로 셋을 세겠다. 그때까지도 여기 남아 있는 것들은 내게 도전한 것이라 생각하겠다. 하나.”
우칠의 일방적인 통고에 쭈삣거리던 자들은 정말 우칠이 숫자를 세기 시작하자 모두 얼굴들이 창백해졌다.
“둘.”
숨도 안 쉬고 우칠이 둘을 세자, 갑자기 우명이 앞으로 나왔다. 비록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어려 있었다.
모든 시선들이 그에게 모아진다.
역시 무당의 제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량수불, 금룡단주의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무림맹 소속이 될 때 선약한 것도 있으니 그것을 어길 수는 없지요. 그럼 전 이만 돌아가서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우명은 우칠에게 포권지례를 한 후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사라질 때 펼친, 우명의 절묘한 신법이 무당의 그 유명한 태극환허공공신법(太極幻虛空空身法)이란 사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모두들 허탈하고 멍한 표정으로 우명이 사라진 허공을 보고 있을 때였다.
“셋.”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기겁을 해서 돌아보는 순간 우칠이 철봉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반각 후.
금룡각으로 왔던 자들은 모두 기어서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기절해 있는 몽광을 발끝으로 다시 한번 걷어찬 우칠이 돌아서서 금룡각 안으로 들어갔다.
대신 그 자리를 지키고 선 것은 육삼과 왕구였다. 이제 더 이상 힘쓸 일은 없을 것 같았기에 교대를 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몽광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휘청거리며 사라지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연무대 아래 모여 있는 금룡단 단원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특히 대문파의 제자들인 소림의 몽진과 개방의 이심방, 그리고 무당의 우영과 종남의 정명호, 화산의 운몽, 세우검 추운, 남궁세가의 남궁단 등은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아운의 명령대로 따르고는 있었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자신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설마 했었다.
아무리 그들의 죄가 무겁다고 해도, 아운과 야한이 그 정도로 심하게 다룰 줄은 생각하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지금처럼 그들의 죄를 전부 적어서 벽보로 붙일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운의 성격을 알면서도 그동안의 관습으로 그들은 또 다른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이미 호되게 당한 자들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봐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어느 정도 선은 지켜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배신을 당했다.
당해 놓고 생각해 보니 권왕이라면 당연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란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또한 당한 자들의 죄질로 보아 그만큼 당해도 충분할 만큼 죄를 저지르긴 하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자신의 일에는 관대해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지만, 한 사문의 동문들이고 보면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사문에서 이 일과 관련해 자신들에게 문책이 들어올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것도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들 스스로 지금 생각하는 굴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동문의 누군가가 큰 잘못을 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서 항명하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외면과 모르는 척하는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방황이 전부였다.
그들은 그렇게 길들여져 왔던 것이다.
모두 긴장해 있을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금룡각의 문이 열렸다가 닫히며 우칠이 쇠몽둥이를 들고 걸어 들어왔다.
아운은 힐끔 우칠을 보았다가 금룡단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사문에서 호출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당분간 이곳에서 무공을 익히는 데만 열중하도록.”
아운의 말을 들으면서 몽진과 이심방 등은 우칠이 금룡각의 문 앞에서 무슨 일을 하고 오는지 대략 짐작을 하였다. 아운의 말을 듣고 오히려 얼굴이 더욱 굳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문과 금룡단 그리고 아운 사이의 갈등은 깊어지고, 그 사이에 끼인 채 고사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운을 말릴 순 더더욱 없었다.
말릴 힘도 없었고, 명분도 없었다.
아운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그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다. 그리고 한 번 선택을 했다면 그것을 믿고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 남자다. 나는 내 수하들이 그런 남자들이기를 바란다.”
아운의 담담한 말에 몽진과 이심방, 그리고 우영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그렇다.
그들은 이미 선택을 하였고, 선택엔 책임과 함께 그에 반하는 어려움도 따르게 마련이다.
어차피 구파일방, 오대세가를 비롯한 정통의 명문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알고 바로잡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이 정도의 일은 수도 없이 벌어질 것이다.
그들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였다.
금룡각의 거대한 대문이 벌컥 열리며 육삼이 뛰어 왔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모아진다.
우영은 혹시나 하느 svywjd으로 이심방을 바라보았다.
“혹시 장로원에 계신 분들이 직접 온 것은 아닐까?”
우영의 말에 근처에 있던 몽진을 비롯한 몇몇의 얼굴들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이심방은 바로 고개를 젖는다.
“말코, 불가능한 일이지. 그분들이 와 보았자 단주님은 고사하고 저 우악스런 우칠을 넝어서기도 힘들 걸게. 어차피 말이 통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분들도 그것을 아는데 누가 직접 오려고 하겠는가? 가뜩이나 체면과 허영에 찌든 분들인데, 여기 와서 망신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일세.”
이심방의 말을 듣고서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아운에게 다가온 육삼이 허리를 숙이고 보고를 하였다.
“단주님, 북궁 총사님이 오시고 계십니다.”
아운의 얼굴에 언뜻 반가운 표정이 어린다.
“안으로 모시게.”
“옙.”
육삼이 뛰어간 잠시 후 금룡각의 대문이 열리면서 모두 다섯 명의 여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