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 제6장. 권왕무정(拳王無情) (109/228)

第六章 권왕무정(拳王無情)

- 무인의 혼은 유정하지만 무인의 주먹은 무정하다.

새벽에 십여 대의 마차가 금룡각으로 들어간 후 다시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 하루 동안 아운을 비롯한 금룡단은 금룡각 안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갑작스런 일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무림맹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 하고 있던 금룡각은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무림맹의 무사들 간에는 금룡각으로 들어간 마차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했다.

과연 그 마차들 안에는 무엇이 실려 있었을까? 그리고 아운을 비롯해서 금룡단의 모든 인원들은 금룡각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모두들 궁금해 했지만, 어느 누구도 금룡각에 접근하는 자는 없었다.

금룡각 정문 앞에 우칠이 그 무식한 쇠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 동안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은 육자명과 유대석의 결투였다.

삼류에 불과했던 육자명이 명문의 후예인 유대석과 정면 대결에서 이겼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특히 삼류에 불과했던 육자명을 단시간에 고수로 변모시킨 아운의 능력에 대해서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 더불어 궁금해지는 것이 있었다.

겨우 삼류에 불과했던 육자명이 지금처럼 발전을 하였다면, 현재 금룡단의 단원들 중에 육자명보다 강했던 대다수의 고수들은 얼마나 발전을 하였을까? 다시 한 번 아운의 능력에 경외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림맹의 무사들은 아운과 흑룡의 약속(철혈사자대와 금룡단의 결투)을 기억해 내곤, 그것으로 다시 한 번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운이 패도문의 일을 처리하고 늦게 무림맹으로 돌아온 것은 자신의 수하들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뒷소문까지 퍼지고 있었다.

철혈사자대를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에 무림맹으로 돌아온 것이라는 말로 그 소문은 귀결되고 있었다.

금룡단과 철혈사자대의 대결을 두고 내기를 거는 무사들도 한두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다수의 무사들이 철혈사자대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비록 유대석이 육자명에게 지기는 했지만, 상대를 얕보았다가 당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철혈사자대의 조장들은 유대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자들이었던 것이다.

현재 금룡단에서 철혈사자대의 조장들과 겨룰 수 있는 자는 우칠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교두들뿐인데, 두 교두는 정식 금룡단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 결전에 나설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고수는 우칠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외에 무당의 우영이나 소림의 몽진, 그리고 개방의 이심방이 있었지만, 이들은 철혈사자대의 조장들에 비해서 어리고 내공이나 경험, 그리고 실력에 있어서도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제아무리 아운에게 무공을 새로 배웠다고 해도 육자명과는 달리 이들은 모두 명문의 후예들이었다.

아운이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이들 사문의 진산 무공을 알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새 무공을 배운다면 그건 시간상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란 계산 대문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육자명과 유대석의 대결은 다시 한 번 아운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고, 소문은 철혈사자대와 금룡단의 결투 자체를 현실화해 버렸다.

이 상황에서 결투가 무산된다면 피하는 쪽은 비겁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소문속에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날이 밝자 무림맹은 다시 한번 엄청난 충격속에 빠져들었다.

유대석의 일과 권왕에 대한 일로 아침부터 설비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호연란은 자리에서 벌떡일어섰다.

"그게 무슨말이냐?"

금룡각에서 단숨에 달려온 비월령 예속 잠영대(潛影隊)의 대주(隊主)인 요월(妖月)의 얼굴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굳어져 있었다.

잠영대는 비월령에서도 가장 중요한 정보수집을 하는 곳이었다. 호연란은 맹의 허락하에 이 잠영대를 만들면서 호연세가의 수하들을 비밀리에 투입하여 정보수집은 물론이고 특수한 임무까지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비밀 집단으로 탈 바꿈 시켜놓았다.

이 잠영대의 대주인 요월은 호연세가에서도 최고의 기밀이라고 할 수있는 밀각의 고수였다.

세상이 무너져도 굳걸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요월의 표정이 굳어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는 뜻인 것이다.

"금룡각을 감시하던 수하의 보고를 받고 제가 직접가서 보고온 사실입니다. 금룡단의 단원들 중 칠십여명이 금룡단주의 형벌을 받은채 금룡각의 정문 밖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령주님의 명령을 받던 자들도 전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호연란과 설비향의 놀랐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명령을 들었던 자들이나 성향상으로 도저히 권왕과 어울릴 수 없는 자들이 금룡단엔 칠할 이상이나 되었었다. 사실 권왕이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궁금해 하던 차밍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아직까지도 금룡단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찜찜하던 참이었다.

그들이 한 일로 인해 아운에게 협박까지 당했던 호연란이다. 호연란의 표정이 다시 침착해 졌다.

"잘됐군. 어차피 그들에게 금룡단을 나오라고 명령을 내리려던 참이었는데. 그리고 상당히 험한 꼴로 금룡단에서 쫓겨 나오리란 것도 어느정도 예상했던 일이고. 단지 좀 갑작스럽군. 지금까지 아무일도 없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런데 대주의 얼굴이 굳어진 것으로 보아 그들이 생각보다 조금 더 험하게 당한 모양이지?"

"그들은 숨만 쉬고 있을 뿐 모두 죽었다고 보아야합니다. 아니 차라리 죽은 것보다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말을 듣고서야 호연란과 설비향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들 중 일부분은 호연세가의 가신과도 같은 가문 출신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을 따르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당한것에는 자신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잇었다.

어지간하면 모든 치료를 호연세가에서 해주고 금전이나 또 다른 이익으로 그들의 사문과 당사자들에게 보상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호연란이었다. 그러나 지금 요월의 말을 들어보면 상황은 보상으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란 말이냐?"

"사자명의 경우 팔과 다리가 완전히 부서졌고, 무공이 전폐되었으며 다시는 여자를 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한 이가 단 한 대도 없으며, 늑골이 전부 부러졌고…… 대부분 그 정도의 상해입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 다시는 내공을 익히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호연란과 설비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칫하면 호연세가와 권왕의 문제 이전에 자신의 명령을 들었던 중소문파의 수장들이 책임을 묻고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금 요월이 말한 정도라면 정말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중상이라면 보상만으로 처리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설비향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개자식은 정말 상상을 불허하는 놈이구나. 대체 어쩌자고 이런 개 같은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래도 자신은 군사였다.

일단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킨 설비향이 물었다.

“칠십여 명이라면, 세가의 명령을 받던 자들 말고도 상당수가 있다는 말인데, 남은 자들 중에 현 아운의 측근들을 제외하면 그들은 전부 장로원의 장로들이 뽑은 모사들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자들입니다. 설마 그들도 사자명처럼 당했단 말입니까?”

요월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조금 전에 보았던 참혹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한기가 도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권왕 앞에는 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렇습니다, 군사. 그중엔 오히려 사자명보다 더욱 심하게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설비향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의 맞은편에 있던 호연란이 가볍게 숨을 불어낸다.

호흡을 조절하는 것 같았다.

호연란은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권왕의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호연란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증오가 끓어오른다.

만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도를 뽑아 들고 달려들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권왕을 대면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권왕을 생각하면 언제나 자신의 코를 뭉개 놓았던 그 볼품없던 날건달 녀석이 떠오른다.

이미 권왕 아운의 초상화도 보았었다.

기이하게도 가슴속에 한을 품게 만든 그 개자식과 비슷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물론 그 날건달이 권왕과 같은 인물이란 황당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미천한 뒷골목의 파락호와 북경 하씨세가의 장자가 동일인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분명히 지하 동굴 속에 생매장을 당했던 것이다.

어디로 빠져나갈 곳도 없는 곳이었다.

분하고 억울하다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가?

권왕 아운이 그 재수 없는 자식과 가끔 겹쳐진다.

새삼 이가 갈린다.

‘그놈이나 이놈이나, 남자 놈들은 모두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원한을 가슴속으로 삭이며 다시 권왕 아운을 생각하자 머리가 새로 지끈거린다. 하지만 마음을 진정시킨 호연란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벌어진 일이다.

그렇다면 걱정을 할 게 아니라 해결책을 생각해야 했다.

‘아무리 독불장군이라도 천하를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다.’

분명히 그녀의 생각이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권왕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자가 어떻게 아직도 멀쩡하지?’

작은 의문을 속으로 삼켰다.

언제나 상상 밖의 일을 벌이는 자이지만 금룡단의 이번 일은 정말로 제 무덤을 판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장로원과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탄원을 받은 맹주부에서도 나설 석이다.

자신을 비롯한 호연세가 역시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정 도면 현 무림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리 권왕이 강하고 북궁세가가 그의 뒤에 있다지만, 이번의 경우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권왕과 금룡단 그리고 북궁세가만으로 천하 무림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호연란이 잠깐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설비향이 침중한 표정으로 요월에게 질문을 하였다.

“단순히 그들을 그렇게까지 요절을 내놓기만 했단 말인가? 대체 어떻게 감당을 하려고? 그렇군.”

묻던 설비향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았다.

호연란과 요월이 그를 바라본다.

설비향이 호연란을 보면서 창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권왕은 정말 무서운 자입니다. 우리는 정말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일에서도 그자는 무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그것은 당분간일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권왕은 처음부터 그들을 일벌백계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루어 온 것은 이들이 지은 죄를 고백받아서 정당한 방법으로 처리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소공녀님도 알다시피 금룡단에는 각 문파에서 가장 골치 아픈 자들이 모여 있던 곳입니다. 실제 그들 중에는 죽어도 몇 번은 죽을 만한 죄를 지은 자들이 대다수입니다. 권왕은 그 점을 노린 것 같습니다. 우선 금룡단에는 공신력이 있는 몇몇이 있습니다. 이들이 있는 곳에서 자신이 처리하려는 자들의 죄를 강제로 실토하게 만든 다음, 그것을 빌미로 이들을 처리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 죄에 대한 비밀은 문서로 작성해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금룡단원의 서명을 받은 채로, 아마도 몽진 나한이나 무당의 우영 도장, 그리고 개방의 소걸개 이심방 등이 그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누구도 자신과 북궁세가를 해할 수 없게 하려 할 것입니다.”

호연란은 눈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더군다나 지금 권왕 아운은 영웅이다.

그가 충분히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들을 벌한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나설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금룡단 내에서의 일로 처리한다면, 규칙상 단주인 그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대문파이고 보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수도 있는 일들이 많아서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요월은 고개를 흔들었다.

“군사님이 한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설비향과 호연란이 요월을 바라보았다.

“다른 것은 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자는 벌을 받은 자들에게 자백 받은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고 적어서, 그들이 있는 곳에는 물론이고 무림맹 곳곳에 붙여 놓았습니다. 심지어는 무림맹 밖에도 붙여 놓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호연란과 설비향은 모두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요월은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벽보에는 그들이 지은 죄는 물론이고, 벌을 받은 내역까지 전부 적혀 있었습니다. 거기엔 그들의 사문에 대한 책임까지도 묻고 있었습니다.”

설비향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한기가 드는 느낌이었다. 또 다시 자신의 범주를 벗어났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깐. 무엇인가를 깨우친 듯 놀란 표정으로 요월을 보며 조금 급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설마?”

요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명을 비롯해서 세가의 명령을 받고 행한 일들도 여과없이 벽보에 붙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의 이름까지도 붙어 있습니다.”

요월은 마지막 말을 할 땐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호연란과 설비향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설비향은 가볍게 한탄을 하였다.

한동안 호연세가와 맹주부, 그리고 장로원이 강호 무림을 손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를 때,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앞길을 막지 못했었다. 그럴 힘을 가진 자는커녕 배짱을 가진 자조차 없었다.

북궁세가와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정파의 정기를 이으려는 자들이 있었지만, 북궁세가는 몰락해 가는 가문이었고, 비밀 세력의 힘은 너무 미미한 것에 불과했었다. 그래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설사 대항 하려 하는 자가 있어도 압도적인 힘으로 죽이면 그만이었기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렇게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꽤 오랫동안 이어져 왔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구 하나 대놓고 불만을 말할 수 없는 분위기였고, 이미 강호의 모든 힘 자체가 권력을 쥔 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기에 대항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호연세가나 장로원은 스스로의 힘을 믿고 조심성을 잃고 말았다.

어떤 면에서는 대놓고 일을 벌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니 누군가가 증거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금룡단 안에 수하들을 두고 부린 것도 지금 생각하니 조심성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권왕만 아니었다면 그것도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결국 권왕이 나타나면서 무림의 상황이 바뀌고 있다.

‘어떻게 하든지 제일 먼저 그를 죽여야 한다.’

설비향은 속으로 한탄을 하며 결심을 굳혔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터진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후회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소가주님, 상황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상황이라면 더 이상 참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장로원과 힘을 합해 권왕이 말한 그들의 죄목이 무효임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우선 힘으로 눌러 놓으면 됩니다. 고문으로 그들에게 거짓 자백을 받았다고 말하면 됩니다. 일이 더 확대되기 전에 빨리 서두르셔야 합니다. 지금은 힘을 아끼고 숨길 때가 아닙니다.”

호연란 역시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요월이 그들의 앞을 막으면서 말했다.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설비향과 호연란이 그녀를 바라본다.

금룡간.

십여 대의 마차가 그 안으로 들어간 지 하루가 되는 날 아침 해가 뜰 무렵.

금룡각을 멀리서 감시하던 각 세력의 간자들은 금룡각 정문에 약 칠십여 명의 무사들이 걸레처럼 버려지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접근하였다가 얼굴이 창백해졌다.

버려진 자들의 처참한 광경도 놀랍지만, 그들의 정체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금룡각 정문으로부터 대로를 따라 양옆으로 거의 벌거벗겨진 채 꽁꽁 묶여서 내던져진 그들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아서 궁금해 하던 나머지 금룡단원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금룡각 정문에서 내원 쪽으로 죽 나열되어 쓰러져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상태였다.

전원이 모두 무공이 전폐되었고, 단전이 파괴되어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상당수는 손발의 힘줄이 끊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삼 분의 이 이상이 다시는 여자를 접할 수 없게 그곳이 파괴되어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평생 동안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고, 병신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권왕이 독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독할 줄은 몰랐던 무인들은 모두 경악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었다.

무림맹의 내외성 벽, 수십여 곳에 그들의 죄를 낱낱이 적은 벽보가 나붙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죄목은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만하였다.

먼저 죄인들의 벽보가 붙은 곳에는 금룡단주의 이름으로 지금 상황에 대해서 적힌 글이 있었다.

나 아운이 금룡단주가 된 후 직속 단원들에 대한 내사를 벌인 결과,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들이 있었으므로 단주의 권한으로 그들에게 벌을 내린다.

이들이 직권을 남용하고 금룡단이란 이름 아래 지은 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숨겨진 죄를 찾아내고 그들을 사주한 자들을 찾기 위해 그동한 이들에 대한 처벌을 미루어 왔었다.

이제 이들의 죄를 세상에 알리고 금룡단의 단주로서 이들에게 타당한 벌을 내린 후 금룡단에서 추방한다.

죄질로 보아서는 일검에 목을 쳐도 타당한 자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죄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것이 이들에게 너무 편한 벌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으며, 죄인들 중 상당수는 명문 정파의 후예나 제자들로, 사문과 가문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켰기에 이들이 속한 사문이나 가문에서 따로 그 여죄를 물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일일이 열거하여 공고하였으니 각자 죄인들의 사문이나 가문에서는 이를 참조하여 조사한 후 이들에게 남은 여죄를 묻기 바란다.

아울러 벌을 받은 금룡단원들의 사문과 그 가문에 고한다.

죄인들이 저지른 죄가 어찌 이들만의 잘못일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 사문이나 가문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며, 당연히 거기에 대한 책임도 따라야 할 것이다.

그 책임에 대한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피해 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피해를 당한 문파나 피해자를 찾아 그에 대한 보상도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내가 단주로서 죄인들을 벌한 부분을 떠나서 이들에게 가혹한 벌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사문이나 가문 출신의 제자나 수하들의 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은 누구든지 내게 와서 따져라!

그것이 자신의 제자나 자식에 대한 명목이든 복수이든, 아니면 이들의 죄를 들추어 낸 나에 대한 분노이든, 정말 자신의 사문 출신이나 가문 출신의 죄인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고 믿든, 그것은 따지지 않고 나는 이들 죄인들의 사문이나 가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여기는 무인의 땅.

무인답게 그 기회를 주껬다.

앞으로 이 개월 후, 무림맹의  연무장에서 여섯 시진의 시간을 주겠다. 그날 나에게 이들의 일로 불만이 있는 자들은 누구든지 내게 도전을 하라.

일대 일이든 아니면 일 대 다수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단 한 번에 한 문파씩 도전해 와라. 그러면 상대가 누구든 받아 줄 것이다.

하지만, 도전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를 빌어 이들 죄인을 그대로 방치한 이들의 사문과 가문에 그 책임을 물을 것이며, 반대로 나에게 도전하는 자들은 당당하게 힘으로 자신의 제자나 자식의 무죄를 증명해 보여라!

나는 여선 시진 동안 홀로 연무장에 있을 것이고, 그동안 내게 도전하면 된다.

단 이것은 알아야 할 것이다.

무인의 혼은 유정할 수 있지만 진정한 결투에서 주먹은 무정하다는 사실이다.

권왕 아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