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章 일벌백계(一罰百戒)
- 그들을 죽이진 않을 것이다.
유대석과 선위무사들은 모두 멍청한 표정으로 육자명을 바라본다.
육자명이 원 없이 상대를 비웃으며 말했다.
“멍창한 자식, 누가 널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정말 멍청하구나. 바늘구멍 같은 틈 사이로 생명이 오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아직 완전하게 터득하지도 않은 무공을 펼치려고 하다니. 혹시 네가 그 초식을 펼칠 때까지 내가 눈 감고 기다려 줄 거라 생각한 것이냐?”
유대석은 대답을 못하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공포에 젖어서 떠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 벌레처럼 여기며 인정하지 않았던 자에게 진 것이 분했고,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에게 충고까지 듣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목에 닿은 차가운 한기가 그의 움직임을 완전히 제어하고 있었다.
“개자식! 한번 이겼다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멍청한 새끼야! 내가 살심을 품었다면 너는 이미 죽은 것이다. 그런데도 입은 살아 있구나. 하지만 나는 너처럼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육자명이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유대석은 이를 뿌드득 갈면서 육자명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분명히 진 것은 진 것이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육자명의 무공이 강해진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자신을 이길 정도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방심.
그렇다.
분명히 방심했기 때문에 졌을 것이다.
유대석은 눈에 살기를 담고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이때 마차의 뒤에서 야한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면서 육자명을 보고 말했다.
“이제 끝난 것이군. 그렇지?”
“그렇습니다, 교두님.”
“네가 이긴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내기에서도 이긴 거지?”
“그렇습니다.”
야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고했네. 그럼 이제 내 일을 봐야겠군. 그리고 자네는 아직 권왕 아운 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놈을 보게. 저게 굴복한 자의 눈빛 같은가?”
유대석의 눈에 어린 살기를 본 육자명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야한은 코웃음을 치고 유대석에게 다가갔다.
“네 놈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느냐?”
“무슨 개소리냐? 네 놈은 어서 비키고 육가 놈을 다시 나오라고 해라! 조금 전에는 내가 방심해서 졌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내, 저놈의 사지를 잘라 죽일 것이다.”
유대석은 당장이라도 야한을 죽이고 육자명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육자명도 지지 않고 검을 든 채 앞으로 나서려 하였다.
그러나 야한이 한 손을 들어 말리면서 말했다.
“좋은 말이군. 그럼 이제부턴 내 차례군.”
“이 개자식아! 그게 무슨 말이냐?”
야한의 미간이 곤두섰다.
“개자식? 그래, 그럼 개한테 물려 봐라!”
야한이 고함을 지르면서 유대석에게 달려들었다.
유대석이 기겁을 해서 검을 휘둘렀지만, 야한은 몸을 기묘하게 틀면서 검의 궤적을 피해 접근해 왔다.
아차 하는 사이에 유대석의 면전까지 다가운 야한이 발로 유대석의 낭심을 걷어찼다.
유대석의 눈이 빠지기 직전까지 튀어나오면서 웅크리자, 야한은 그대로 유대석의 마혈을 제압하였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무공의 차이라기보다는 갑작스런 기습의 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야한은 강호 무림의 삼대살수 중 한 명이었다.
암습과 기습에서 그를 이길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일단 유대석의 혈을 제압한 야한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의 목을 잡은 다음 목덜미를 물어뜯어 버렸다. 피가 튀면서 고통으로 인해 유대석의 눈이 뒤집어졌다.
“개보다 못한 놈. 너 같은 놈은 무사의 자격이 없다. 미친개에게 물렸으니 네 놈은 이제 인생 종친 것이다.”
야한은 거침없이 말하며 목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유대석의 안면을 무릎으로 사정없이 올려쳤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야한의 무릎이 유대석의 입에 들어가 박혔다.
“꾹!”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유대석의 이빨이 부서져 나갔다.
지켜보던 선위무사들이 황급하게 무기를 뽑아 들고 야한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들의 앞쪽에 갑자기 쇠몽둥이가 떨어져 내렸다.
청석으로 깔린 바닥에 무려 오 척이나 들어가 박힌 쇠몽둥이는 아직도 남아 있는 부분이 오 척이나 되는데, 보기에도 무식하게 생겼다.
다가오던 선위무사들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두 번째 마차 안에서 한 명의 거인이 걸어 나왔다.
그를 본 순간 선위무사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나, 탕룡광마!”
어찌 그를 모르겠는가?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는 흑룡을 부셔 놓은 인물이다. 무림맹 안에서 그의 존재는 이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 만한 위치에 있었다.
권왕의 고금천추제일충복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그의 괴상한 행동과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우칠은 황소의 그것만 한 두 눈을 굴리면서 선위무사들을 보고 말했다.
“그 쇠몽둥이가 있는 곳을 넘어 오는 자식들은 모두 그 몽둥이에 맞아 죽을 것이다.”
“꿀꺽.”
누군가의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감히 아무도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
흑룡도 뭉개놓은 절대고수에게 그들이 무슨 힘으로 반항을 하겠는가? 그 모습을 보고 야한이 만족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우 장사는 대단하오. 그럼 난 볼일 좀 보겠소.”
무림에선 무공이 왕이라고, 제아무리 야한이라도 우칠은 좀 버거웠다.
함부로 반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 장사였다.
흑칠랑과 기회 있으면 싸우려 하는 우칠이고, 실제 무공도 흑칠랑보다 위라는 것을 아는지라, 세상을 넓게 보는 살수답게 미리 꼬리를 내린 것이다.
우칠에게 말을 끝낸 야한의 시선이 육자명에게 향했다.
“멍청한 놈아! 사람을 건드릴 땐 확실하게 해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않는 것이다. 너는 권왕 아운 님이 하는 것을 보지도 못했느냐? 어디 그분에게 당한 멍청이들이 다시 도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확실하게 다루지 않으면 이놈처럼 너의 마음을 알아먹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란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 이놈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봐라! 아울러 나는 아운 님보다 무지하게 인자한 성격이다.”
말을 마친 야한은 유대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이미 마혈을 점해 내공을 끌어올리지 못하게 한 다음이었다. 머리카락이 잡히고 내공을 쓸 수 없게 된 유대석은 수치심과 분함, 그리고 아픔으로 인해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있었다.
“이놈, 당장 머리카락을 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내 당장…….”
물론 야한은 들은 척도 안 한다.
머리카락을 잡은 채 그대로 달려가 땅바닥에 박힌 철봉에다가 유대석의 머리를 박아 버렸다.
텅.
유대석이 눈을 뒤집은 채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보고 있던 우칠이 안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깨졌겠군.”
야한은 유대석에게 다시 다가간 다음 흔들어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팬다.
아무리 때려도 기절하지 않는 것을 보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아운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처음엔 거품을 물면서도 욕을 하면서 대항하던 유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와 고통으로 인해 말문이 막혀 갔다. 하긴 아무리 떠들어도 야한은 아예 듣지도 않고 그냥 때리는 것에만 영중했던 것이다.
그의 자존심은 점차 뭉개지고 있었다.
아운에게 당하던 때를 생각하면서 나중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살려 줘…….”
“내가, 니 친구냐?”
“사, 살려 주…… 주십시오.”
걱정 마라, 죽이진 않을 테니.”
“제, 제발 이제 그만.”
“그게 네 맘이냐? 내 맘이지.”
유대석이 겁에 질린 채 거품을 물고 바둥거리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너 또 덤빌래?”
“저, 절대로…….”
“앞으로 이 형님을 만나면 인사 꼬박꼬박 잘해라!”
“예, 예. 흑흑…… 제, 제발. 혀…… 형님…….”
완전히 쓰러져서 바둥거리는 유대석을 보면서 야한은 손을 털었다.
“역시 나는 아운 님처럼 모질지 못하다니깐. 개보다 못한 동생 놈아,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만약 아운 님이었으면 넌 내공은 물론이고 남아 있는 이빨도 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우칠이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주군이시라면 두 번씩이나 그렇게 드잡이를 하진 않았을 것이오. 죽여서 걸레처럼 널어 놓았겠지.”
야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선위무사들을 돌아보았다.
돌로 조각한 것처럼 굳어 있던 선위무사들은 야한이 돌아보자 몸을 부르르 떤다.
최소한 이들에게 야한과 금룡단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들인지 충분하게 인식은 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금룡단이 행하는 일에 가타부타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으리라.
이제 이 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은 자신의 소관 밖이었다. 다음 부터는 권왕 아운이 알아서 하리라. 하긴, 이미 당해 본 자들이니 감히 반발도 못하리라.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육자명은 멍한 표정으로 누더기처럼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유대석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렇게 당하고도 또다시 금룡단과 권왕의 일에 참견할 수 있다면 그가 금룡단의 단주인 권왕에게 맞아 죽기 전에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한은 만족한 표정으로 마차에 오르면서 말했다.
“모두 가자.”
지켜보던 금룡단의 단원들은 선위무사들을 한 번씩 쏘아보고는 모두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완전히 사라지기전까지 선위무사들은 그 자리에서 한 명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움직이면 당장이라도 야한이 달려올 것 같았던 것이다.
누군가 억지로 쥐어 짠 것처럼 움푹 지그러진 초승달이 은은하게 금룡각의 연무장을 비추고 있을 때, 금룡단의 모든 단원들은 대 아래 도열해 있었다.
연무장 뒤쪽에는 일곱 대의 마차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야한이나 우칠, 그리고 금룡단의 단원들은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운은 천천히 몽진 나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 말을 전했는가?”
몽진 나한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가 다시 펴진다.
“아미타불. 소승은 분명히 전했습니다.”
“그럼 됐고, 그럼 이제 저것들을 처리하면 되겠군.”
아운의 시선이 마차를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몽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들 중에는 자신과 같은 사문 출신도 있었던 것이다. 비록 속가 문파의 제자들이지만, 분명 소림 출신은 소림 출신이다.
몽진뿐만 아니라 이심방이나 우영 등의 표정도 굳어져 있었다. 역시 지금 실려 온 자들 중에는 그들 사문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성향이 전혀 달라 친하지 않거나 아주 싫어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래도 한 사문의 사제나 사질 정도의 신분으로 맺어진 자들이었다.
아주 모르는 척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짓은 너무 심해서 함부로 변론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다.
몽진은 가볍게 한번 염불을 외운 다음 아운을 보고 말했다.
“아미타불. 소승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해 봐라! 화상.”
“지금 하인이 된 자들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그게 뭔데?”
“아미타불. 이제 저들도 지은 죄에 해당하는 만큼 벌을 받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비록 그들이 지은 죄는 크지만. 그만큼 혼이 났으면 저들도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상태로 더 간다면 각 문파의 동량들이 채 피지도 못하고 쓰러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림도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고, 이는 맹주부나 호연세가에게 유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만 저들을 용서하고 풀어 주시든지 아니면 잘 회유해서 권왕이 거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아운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
아운은 몽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상.”
“말슴하십시오, 단주님. 소승은 세이경청하겟습니다.”
“네 놈들은 그것이 글렀다.”
몽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운은 차가운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동량은 동량이고 죄를 지은 것은 죄를 지은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저들의 죄는 몇 번 죽어도 모자란 자들이 수두룩하다. 호연세가를 위해서 그리고 장로원을 위해서 죄도 없는 중소문파 이십여 곳을 멸문시키고 그들을 전부 죽였으며, 그 가운데 부녀자를 간음하고 죽인 것만도 부지기수다. 명문 정파의 제자들이란 자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거리를 저들은 태연하게 하였다. 물론 그것은 사자명을 비롯한 자들의 죄명이지만, 그 외의 자들도 그에 못지않은 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고 있다. 명문의 제자들이란 것 때문에 아무도 그 죄를 묻지 못했을 뿐 이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는 거지는 물론이고 중도 알고 도사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문파의 동량이라고 용서하고 무림의 고수라고 용서한다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대체 세상의 도덕적인 기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결국 너, 중의 말은 죄를 짓고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힘없고 돈 없고, 재질 없는 자들만 받아야 한다는 말 아닌가? 물론 내 말도 조금 과격한 부분은 있지만,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너희 구파일방이나 기존의 오대세가라는 정파의 떨거지들이 그동안 어떻게 해 왔는지 모르지만, 그 따위 대의명분은 너희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내 뜻대로 한다. 그러니 다시는 내 앞에서 그 일로 입을 놀리지 마라.”
몽진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대꾸를 했다가는 아운의 주먹이 날아올 것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아운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아운은 금룡단을 보고 말했다.
“하인들을 몽땅 데려다가 정렬시켜라!”
아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금룡단은 일사분란하게 뛰어가서 마차안에 종이처럼 구겨진 채 포개져 있던 하인들을 둘러메고 왔다.
야한답게 거칠게 다룬 흔적이 곳곳에 보였지만, 금룡단원들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물론 개의치 않는 금룡단원들 중에서 이심방과 우영, 그리고 몽진 등 대문파의 제자들은 제외하고였다.
하지만 모두들 야한이 갔을 때 능히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아운은 금룡단원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조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안 되겠지. 정확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 지금부터 이들에 대한 취조를 시작한다. 그리고 조사된 내용은 하나도 빠짐없이 문서로 작성되어 낱낱이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아운의 말에 몽진과 이심방을 비롯한 상당수의 금룡단원들 표정이 변하였다. 자신과 한 사문의 무공을 익힌 자들을 생각하자, 가슴이 조급해진다.
그들이 평소 하던 짓거리를 잘 아는 지라 더욱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들의 죄가 세상에 모두 밝혀진다면 사문에 큰 누가 될 것이다.
속가제자이든 아니든 그 책임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금룡단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전체를 십 할로 계산했을 때 장로원의 장로들이 사 할을 뽑고,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서 무조건 사 할을 뽑는다.
그 외의 단원이라야 겨우 이 할 정도에 불과할 뿐이었다.
물론 아운이 단주가 되고 단주의 권한으로 다섯 명 정도를 새로 영입하였고, 몇 명의 단원들을 새로 뽑긴 했지만 그래도 장로원과 구파일방이나 기존 무림의 세력에서 뽑힌 단원들이 무려 칠 할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의 모두가 하인으로 전락했다.
만약 아운이 그들을 향해 주먹을 들고 가혹한 형벌을 내린다면 거의 무림 전체와 정면 대결을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몽진 나한은 조금 망설이다 다시 한 번 나서며 말했다.
“아미타불, 단주님은 이들의 죄를 모두 공개할 작정이십니까?”
“당연하다. 그뿐만 아니라 그 죄에 상응하는 벌도 받아야 할 것이다.”
권왕의 성격으로 보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그 다음엔 다시 한 번 무림맹이 뒤집어지고 기존 정파들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다. 아니 더 이상은 고개를 들고 무림에 활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아운과 전 무림의 정면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정작 아운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하다.
몽진과 이심방 등은 모두 아운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한 투기 앞에 간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사문을 위해서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막상 아운을 보고 나니 그럴 용기가 싹 사라진다. 하긴 막으려 한다고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심방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쉬쉬한다고 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기회에 구파일방을 비롯해, 무림의 정통 문파들이 진정한 정파의 중심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과연 가능할까? 그보다도 그렇게 되면 관련된 문파들은 더 이상 참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단주님은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하는 것일까? 서로 충돌이 일어나면 좋은 것은 맹주부와 호연세가 뿐일 텐데.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이미 단주님은 전 무림과 등을 지고 있는 셈이니 그렇게 하나 안하나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뭐, 나름대로 생각이 있으시겠지.’
소걸래 이심방은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중 당장 지금의 상황과 크게 관련이 있는 자들은 자신을 비롯해서 소림 십팔나한중의 한명인 몽진, 남궁세가의 적자인 절환검(切幻劍) 남궁단, 강호 이문 중 하나인 섬서 쾌도문의 비호섬(飛虎閃) 문형기, 종남의 직전제자인 은형분광(隱形分光) 정명호, 무당의 운현검(雲炫劍) 우영과 화산 장문인의 둘째 제자인 매화고검(梅花孤劍) 운몽 등이었다.
그들 역시 얼굴이 굳어 있었지만, 함부로 반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반대로 중소문파의 제자들인 금룡단원들 얼굴에는 기대감이 충만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지금은 오히려 중소문파 출신인 그들이 부러워지는 이심방이었다.
이운이 이심방을 보고 물었다.
“거지, 금룡단 내부의 일은 금룡단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들었다. 특히 단주는 수하들이 죄를 지었을 경우 생사여탈권을 가지게 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이심방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찌 이심방뿐이겠는가? 듣고 있던 금룡단의 수하들은 모두 같은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이심방은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였다.
“원칙으로는 그렇습니다.”
“원칙적으로 그렇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니지.”
아운의 목소리에 살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안 이심방은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심방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차려 자세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단지 이전 단주님이셨던 검후 총사님께서는 단 한번도 그 권한을 사용한 적이 없어서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죄가 확실하면 죽여도 된단 말이지. 그렇지 않은가?”
이심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단주가 하는 말은 어떤 말도 그냥하는 말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그렇습니다."
아운의 입가에 만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아주 마음에 드는 규칙이야. 그렇지 않은가? 뭐, 걱정말게. 그렇다고 저놈들을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그,그렇습니다."
우렇찬 이심방의 대답이 밤하늘에 울려퍼지고 있었으며, 그 대답을 듣는 금룡단의 인물들은 모두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커질 것 같았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온 아운의 말은 이심방의 얼굴을 더욱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냥 죽이면 저놈들 너무 편하게 죽는 것이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저놈들의 사문에서는 무조건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저놈들도 죽을 놈들이지만 그걸 묵과한 사문과 가문도 당연히 책임을 지게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