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 제3장. 신녀지애(神女之愛) (106/228)

第三章 신녀지애(神女之愛)

- 당대에는 그를 이길 자가 없다.

권왕이 돌아온 무림맹의 아침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제지하려 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하고 돌아왔다.

무림맹을 떠나기 전에 비해서 더욱 큰 명성을 지닌 채였고, 현무림 최강 고수 중 한 명이라는 혈궁칠사의 명왕수사 고구를 죽임으로써 이젠 무림의 영웅이 된 상태였다.

혈궁의 핵심 고수 중 한 명인 칠사를 제거한 것은 무림맹의 맹주인 신수 조진양은 물론이고 신주오기의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운의 거침없는 성격과 함께 자신의 연인을 위해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벌인 고구와의 사투는, 젊은 무인들과 여자 무사들 사이에 새로운 충격이었다.

무림맹과 장로원의 위세 속에 항상 전전긍긍하는 무인들만 보아오던 젊은 세대들 중에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큰 불만을 가진자들도 제법 있었지만, 대다수의 젊은 무사들은 그것마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습관처럼 그들 앞에서 오그라들었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보아온 무림맹과 장로원에 대한 모습은 그들을 은근히 세뇌시켜 놓았던 것이다.

맹주부와 장로원은 그렇게 신격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불만이 있어도 뿌리깊이 심어져 온 두려움으로 인해 밖으로 표출할 수 없었고 그들의 그림자만 보아도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곤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지도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가끔 열혈 사내들이 있어서 그 틀을 깨려 하였지만 그들은 소리소문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곤 했다.

이렇게 되자 강호 무림은 집단적으로 무림맹과 장로원, 그리고 장로원에 소속된 문파에 대해서는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보는 상황이었고, 그것은 언제나 당연시되었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어느 누가 감히 그것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권왕 아운이 나타나면서 깨지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벌써 강호 무림을 강타하고 있었다.

특히 그동안 장로원과 그들이 속한 문파의 힘에 눌려 지내던 중소문파들이 조금씩 자신의 소리를 내면서 공공연하게 무림맹과 대문파들의 독선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불이익을 당했던 그들의 분노와 억울함이 드디어 표면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져 갔다.

이제 권왕 아운의 명성과 인기란 것은 단순하게 수치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고, 그럴수록 맹주부와 장로원 그리고 호연세가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권왕 아운에겐 명분과 정당성도 있었고, 그것을 압도하는 힘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무림맹 안에서는 그 누구도 대놓고 아운에게 시비를 걸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장로원과, 호연세가, 그리고 맹주부는 아운에 대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분명한 것은 한 가지.

권왕을 그냥 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그를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권왕 아운은 강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얄미울 정도로 명분을 세워 놓아 대놓고 어떻게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곤 하였다.

한편 무림맹 내에서의 또 다른 관심 중 하나라면 돌아오지 않은 금룡단원들이었다.

금룡단원들 중 상당수가 아운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운은 그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 대한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하였고, 그들과 관련된 문파나 장로들은 궁금하고 초조해 했지만, 아운이 정식으로 보고서를 올리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 누구도 감히 아운에게 직접 묻지 못했다.

금룡각 내.

금룡단의 수하들이 오열로 도열해 있었다.

흑칠랑과 야한은 물론이고 한상아와 우칠까지 전부 모인 금룡단의 인원들은 긴장한 시선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거의 점심 전이나 되어서 일어난 아운은 북궁연과 함께 식사를 한 후 홀로 천천히 금룡각으로 왔다.

아운의 입가엔 은근한 미소가 어려 있었고, 그 미소를 본 이심방과 몽각 등 금룡단원들은 조금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아운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미묘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

그리고 그런 예감은 절대로 틀리지 않는다.

“야한!”

“옙”

야한은 어느새 아운의 충실한 수하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야한의 우렁찬 대답에 흑칠랑은 무엇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쏘아 보았다.

‘살수의 자존심도 없는 놈. 동생을 죽인 자인데, 겨루어 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이다니, 쓸개를 뽑아 개에게 줘도 모자란 놈이다.’

흑칠랑이 자신을 쏘아보는 것을 알면서도 야한은 태연했다.

‘흥, 칼을 맞아 봐야 아픈 줄 아는 놈은 모두 죽을 놈들뿐이다. 난 바보가 아니다. 선배처럼 불쌍하게 살진 않겠다. 잘 빌붙으면 살수짓 안 해도 즐겁게 살 수 있을 텐데, 뭐 하러 싸우는가. 더군다나 내 취미 생활도 점점 즐거워지는데, 흐흐.’

야한은 스스로의 판단에 아주 만족해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권왕과 흑칠랑의 대결.

이게 말이 되는가? 죽으려면 차라리 칼을 거꾸로 물고 바위 밑으로 뛰어 내리든지.

둘이 팽팽하게 신경전을 하고 있을 때 아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칠과 함께 금룡단을 데리고 가서 안가에 있는 하인들을 전부 끌고 오게.”

신경전을 벌이던 흑칠랑과 야한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흑칠랑이 물었다.

“그것들, 데려와 봐야 귀찮기만 할 텐데, 데려다 뭐 하려고 하는 것이지?”

“이제 시작을 해야지. 저쪽에서 잔머리를 굴리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터트리는 것이 좋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기폭제가 조금 필요할 것 같아서.”

흑칠랑과 야한뿐만 아니라 금룡단원들 모두는 의아한 시선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아운이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모두 제대로 망가져 있을 것이다. 데려올 때 아주 거칠게 데려오도록. 그리고 몽진 화상은 가서 전해라! 내가 움직일 것이니 틈을 잘 보고 이득을 취하라고.”

하지만 몽진 나한은 아운의 말을 못 알아듣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네놈이 비밀리에 몸담고 있는 곳의 그 잘난 누구에게 가서 전하란 말이다.”

몽진 나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제야 알아들은 것이다.

“가라!”

몽진 나한은 아운에게 인사를 한 다음 이심방을 슬쩍 보았다가 급히 금룡각의 문을 나섰다.

나가고 있는 몽진을 본 아운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보는 눈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대낮이라 오히려 의심은 덜 받을 것이니 능력껏 조심해서 전해라!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를 이용하려 한다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란 말도 꼭 전해줘라. 화상이 말을 잘 전하는 것이 나와 충돌하지 않는 길이란 것을 명심해라!”

걷고 있는 몽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권왕의 경고.

이미 아운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몽진은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정신없이 걸어 나가던 몽진 나한의 걸음이 갑자기 멈추어졌다.

‘여긴 무림맹이다. 여기서 그를 찾아가란 말은 서, 설마…….’

몽진은 다시 한 번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제자리에 멈추어 섰던 몽진은 고개를 돌리기가 두려워 부지런히 걸어 나가야만 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던 손오공이 된 기분이었다.

아운은 몽진에게 전음을 보낸 다음, 이심방을 바라보고 말했다.

“거지와 도사는 남아서 나를 돕는다. 그리고 한 낭자는 이곳에 남아 주십시오. 아무래도 움직이는 데 조금 불편할 것입니다.”

한상아가 생긋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아운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야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야한과 우칠은 지금 다녀오게. 단, 돌아올 땐 자정이 넘은 새벽에 와야 할 것이고, 그들을 마차에 나누어서 숨긴 다음 이곳까지 데려와라. 아무래도 몰골이 말이 아닐 것이니.”

“옙”

야한이 씩씩하게 대답을 한 다음 금룡단과 함께 금룡각을 나갔다. 혹시 무림맹의 정문에서 마차를 수색하면 어쩔 것이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지금 금룡단은 이전의 금룡단이 아니었다.

누가 감히 금룡단의 깃발이 달린 마차를 수색하려 하겠는가? 한상아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잘 갔다 와, 동생. 호호호.”

“윽.”

야한은 묘한 인상으로 한상아의 배웅을 흘러 넘겼다.

흑칠랑은 무엇인가 불만인 표정으로 아운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난 무엇을 하면 되겠나?”

“자네는 그냥 자게.”

흑칠랑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뭐야, 이런 썅. 너 당장……”

걸어가던 야한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기대가 가득한 시선으로 흑칠랑을 본다.

흑칠랑이 손으로 자신의 검을 툭 치면서 말했다.

“그렇지 나는 너의 수하가 아니지. 하하하, 이제야 자네가 나를 적수로 보기 시작했군. 음, 항상 조심하게.”

흑칠랑은 태연하게 돌아섰고, 한상아는 그의 기개에 감탄한 듯,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야한을 비롯한 금룡단은 무엇인가 속았다는 표정들이었다.

* * *

사막의 바람은 사나웠다.

그 사나운 바람도 쉬어 가는 곳.

광활한 사막 속에 있는 녹지는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거대한 바다에 있는 작은 배가 이와 같을까? 주변이 황량하기에 녹지는 더욱 빛이 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그 녹지에는 사막의 성전이라고 불리는 사라신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라신교.

공포와 힘으로 사막을 지배하던 악마의 사교 집단.

그러나 이전의 사라신교와 지금의 사라신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전에는 공포와 무력으로 사막을 지배했던 사라신교였지만, 권왕에 의해서 평정된 후 소설이 사라신교의 신녀가 되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들은 더 이상 사막의 공포가 아니었다.

사라신교는 더 이상 없었다.

대신 교가 아닌 사라신궁과 신이 된 궁주,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존경을 받고 있는 신녀만이 존재하였으며, 신녀는 바로 사라신궁의 상징이었다.

신녀가 된 소설과 사라신궁의 전사들은 사막의 부족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앞장서서 그들을 도왔으며, 대사막의 교역을 확충해서 가난했던 사막의 작은 부족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사라신궁의 전사들은 주변의 마적들을 완전히 제압하여 사막을 지나가는 상인들을 보호하였고, 사막 부족들의 안전을 지켰다.

이제 사막의 부족들에게 사라신궁의 궁주인 아운과 신녀는 진정한 신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는 신녀인 소설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선행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이루어 가고 있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이름은 신격화되어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항상 권왕 아운의 이름이 있었다.

소설과 풍운십팔령이 일을 행하면서 항상 권왕 아운의 이름을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이는 사라신궁 내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아운과 소설을 존경하고 경외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찻잔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천천히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사내.

그러나 고집스런 눈빛은 어느 누구도 감히 마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설은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넘볼 수 없는 분이시다. 그리고 넘봐서도 안 되는 분이다. 그분에게는 이미 정혼자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에게 이미 그 부분에 대해서 언질을 주셨다. 그러나 보고 싶다. 그저 그분의 곁에서 그분을 볼 수만 있다면 그러면 나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눈에 습기가 어렸다.

맑은 물방울은 그녀의 흰 살결을 타고 흐르다가 뺨에서 멈추었다. 잊으려 했지만, 그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곁에 있을 때는 덜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일을 만들어 움직였지만,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지는 차향과 같았다.

찻잎에 물을 부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지기 마련이다.

그리움도 그와 같았던 것이다.

‘내가 장 노사의 일을 핑계로 중원에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분을 찾아가는 것이 그분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보고 싶다. 그리고 장 노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분에게 반드시 전해야 한다. 어쩌며 ㄴ그분만이 검혼을 대신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소설은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직 나이 어린 소설에게 있어서 사랑은 버거운 짐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천하의 장부요, 그에겐 이미 사랑하는 약혼자가 있지 않은가.

“신녀님,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문 밖에서 말하는 시녀의 말에 소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았다. 내 곧 가마.”

소설은 눈가의 물기를 닦으며 서둘러 일어섰다.

휘장이 젖혀진 방 안에 한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손 하나를 잃은 노인의 모습은 무척 초췌해 보였지만, 눈동자에 어린 정광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방 안에는 종남검성 편일학과 황룡이 함께 있었는데, 두 사람은 모두 노인에게 공손한 표정들이었다.

황룡은 가끔 경외감이 어린 시선으로 노인을 보곤 하였다.

봉명우사 장문산.

신주오기의 한 명이자 강호 십사대고수의 한 명으로 도가의 무공에 강호 무림의 최고봉이라고 알려진 기인. 장문산으로 인해 무당과 화산은 도가제일문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었다.

소림의 불패승 목우와 함께 일승일도로 불리면서 무적이라고 알려진 무인.

그런 그가 팔 하나를 잃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일면 신기하기만 하였다.

검혼을 찾아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정신을 차린 노인이 신주오기 중 한 명인 봉명우사임을 알았을 때, 편일학과 황룡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설마 사막에서 부상을 당하고 쓰러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노인이 천하 십사대고수 중 한 명일 줄이야.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인이 단 한 손으로 펼쳐 보인 초식을 보고 편일학과 황룡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

앙상하게 마른 손을 들었을 때, 편일학과 황룡 일행은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손에서 붉은 기운이 어리는 것을 보고 표정이 굳어 졌다. 그리고 손에 나타난 붉은 기운이 점차 낙엽의 모양이 변하는 것을 보고 경탄을 했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낙엽 모양으로 변한 붉은 강기가 마치 비엽도처럼 쏘아져 날아갔었다.

그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날아간 강기의 비엽도가 거대한 바위를 예리하게 자르는 것을 보고 보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고 말았었다.

그 무공은 도가의 삼대수공이라는 단엽수의 절초인 단엽인이 분명했다.

세상에 그 무공을 익힌 사람은 단 한 명, 봉명우사 장문산뿐이란 것은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특히 편일학은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황룡은 당시의 충격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거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대체 천하에 적수가 없다는 장 우사님의 팔을 자른 도혼이란 노인은 얼마나 강한 것일까?’

고개가 저절로 흔들어졌다.

황룡뿐만 아니라 편일학 역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장문산에게 들은 이야기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장문산이 정신을 차린 후 그가 누구인지 안 다음 편일학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장문산 역시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일행 중에 강해 보이는 노인이 종남검성 편일학임을 알고 몹시 놀랐었다.

그 후 소설과 함께 두 노인은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장문산은 자신이 있는 곳이 사라신궁 안이란 것을 알고 다시 한 번 놀랐다.

사라신교가 어떤 곳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라신교가 권왕에게 멸교당했다는 말을 들은 다음이라 몹시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권왕으로 인해 사라신궁이 새로 태어났고, 현재 신녀가 권왕의 동생이란 사실을 안 장문산은 많이 놀랐다.

 소설은 장문산이 편안하게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게 편리를 봐주었고, 편일학 또한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혹시 잘못 물으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상처가 치유된 장문산은 소설과 편일학이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자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몽혼지약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봉명우사가 도혼에게 당한 이야기를 들은 편일학과 소설은 좀처럼 믿어지지가 않았다.

 세상에 도혼처럼 강한자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직접 당한 봉명우사가 한 말이니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는 잘려진 팔을 들어 보이며 스스로의 말을 증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후 편일학은 중원으로 아운을 찾아가서 알려야 한다는 결심을 하였고, 마침 건강으 회복한장문산도 검혼을 찾아 중원으로 갈 상황이라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거기에 소설이 함꼐 가겠다고 나섰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 편일학은 장문산과 의논하여 허락하였고, 그녀가 나서면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부령주인 벽룡을 비롯한 풍운십팔령의 네명도 따라나서게 되었다.

풍운십팔령은 서로 따라 나서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황룡은 사라신궁의 수호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남아야 했고 대신 부령주인 벽룡이 소설을 따라나서기로 하였으며, 그를 제외한 네명은 제비뽑기로 결정되고 말았다.

 소설이 방안으로 서둘러 들어서서 장문산과 편일학에게 인사를 하였다. 먼저 소설과 장문산이 인사를 주고받기를 기다린 후, 편일학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어서오너라!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던 참이었다."

"죄송합니다.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괜찮다. 그보다도 중원에 갈 준비는 다 되었느냐?"

"예, 일단 사라신궁의 일은 소산에게 일임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령주님이 함꼐 있으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편일학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장문산을 돌아보고 말했다.

"장선배님,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문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어보시게."

"혹시 짐작하셨는지 모르지만, 저와 사부님은 이 이야기를 권왕 오라버니께 전할까 합니다."

장문산은 잠시 동안 편일학과 소설을 바라보았다.

"자네들은 권왕이 이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군.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권왕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들끼리의 이야기일세.

자칫하면 좋은 인재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변을 당할 수도 있네. 몰론 대전사에 대해서라면 어치피 알게 될 일이니 말해도 좋을 것일세. 단, 그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일세.”

소설과 편일학은 장문산을 바라보았다.

그가 하는 말의 뜻을 충분히 알아듣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편일학이 끄덕이며 말했다.

“혹시 장 우사님께선 권왕에게 지금 상황을 말한다면 젊은 혈기에 바로 대전사에게 도전이라도 할까 봐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장문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비록 권왕이 홀로 광풍사를 전멸시켰다고 하지만 그들과 광전사들, 특히 대전사를 비교해서는 안 되네. 지금 상황으로 보아 대전사를 상대할 수 잇는 사람은 오로지 검혼뿐일세. 그러나 그것도 대항할 수 있을 뿐이지 검혼이 대전사를 이긴다는 것은 아닐세. 이미 오래전에 패했으니. 허나, 지금까지 대전사처럼 무공에만 전념하였다면 견제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게 전부일세.”

“참으로 암담한 일이군요. 말씀대로라면 대전사는 계속 강해지고 있을 텐데.”

편일학의 말에 장문산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운다.

“휴우, 그게 사실일세. 그래서 말이지만, 앞으로 중원의 미래는 권왕을 비롯한 젊은 무인들에게 달렸다고 봐야 하네. 우리는 우리대에서 어떻게든 대전사를 막아 볼 것일세. 우리가 그를 상대하는 동안 젊은 기재들은 오로지 무공에만 전념하면서 살아남아야 할 게야. 그래서 우리 이후의 무림을 그들이 책임져야 할 것일세.”

편일학과 소설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소설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아운 오라버니가 대전사와 겨룰 수 있을까요?”

장문산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네. 아마도 나를 비롯한 신주오기나 칠사라 해도 그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일세. 무엇보다도 그의 무공은 지금도 무섭게 발전하고 있지. 권왕이 천재라면 대전사도 천재일세. 설혹 그들의 천재성에 차이가 조금 난다고 해도 백년 이상의 세월을 넘어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편일학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설은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장문산의 헐렁한 소매를 보고 말을 삼켜야 했다.

눈앞의 노인은 강호 무림에서 가장 무공이 높다고 알려진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가 하는 말이라면 결코 쉽게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 역시 이런 부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 아닌가? 그러나 소설은 그렇게 믿지 않았다.

소설이 작은 입술을 가볍게 개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아운 오라버니를 믿는다. 오라버니라면 반드시 대전사가 살아 있을 때 그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설의 맹목적인 믿음이었고, 여자의 직감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편일학은 조금 답답한 숨을 토해내면서 말했다.

"장우사께서는 지금 대에서는 대전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말입니까?"

"내 생각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일세. 권왕은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들었네. 대전사의 나이는 일백이 훨씬 넘었지. 바라는 일이라면 대전사가 죽은 후에 우리 다음세대에서 그가 이루어 놓은 것을 무너트려 주는 것일세. 물론 이제 갈 때가 된 늙은이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전부 동원해서라도 대전사를 막을 것일세."

듣고 있던 소설이 고개를 가볍게 흔들면서 말했다.

"장우사님 말씀대로라면 그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 대전사가 살아서 그의 뜻을 이룬다면 다음 세대에서도 그 정기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후대의 인물 중에 누군가 나타나서 대전사가 한 것 처럼 몽고의 광전사를 정당한 대결로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네. 비록 그러기 위해서는 꽤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이겠지만. 지금 자네와 편 노의 말대로라면 권왕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네."

편일학은 장 우사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아무래도 장우사는 아직 권왕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구나. 하긴 직접 보지 않으면 정말 누가 그의 능력을 그대로 믿겠는가? 그보다도 천하의 장우사를 저렇게 만든 대전사가 두렵구나. 어떻게 졌기에 십사대고수 중 한명인 장우사가 그와 싸우는 것을 포기한단 말인가?

상황을 보아하니 몸과 마음이 모두 굴복당한 것 같다. 이건 단순하게 패한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자친하면 대전사 한명으로 인해 주우언 무림의 정기가 무너질지도 모르겠구나.'

편일하은 걱정스러웠지ㅏㄴ 그것을 얼굴에 표현하지 않은채 말했다.

"선배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일단 우리 대전사에 대한 것을 권왕에게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그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것입니다."

"그렇게 하게나."

"그럼 이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던 참일세."

장문산의 대답에 편일학이 앞장서서 방밖으로 나왔고, 소설과 장문산이 그 뒤를 따랐다. 일행이 사라신공의 연무장으로가자, 그곳엔 황룡과 네명의 풍령들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은 조금씩 들떠있는 모습들이었다.

중원에서 도망쳐 사막으로 들어온지 벌써 몇넌인지 모른다. 이제야 중원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그들의 기분은 말 안해도 알것 같았다.

그 주변엔 가지 못하는 풍운십팔령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사라신궁이 다시 한번 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른 상황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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