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14장 권왕귀환 (103/228)

14장 권왕귀환

- 아직 아홉냥이 남았다

 먼저 도착한 아운과 세 명의 살수들은 쓰러져 있는 정찬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정찬의 모습은 얼추 보아도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부러진 뼈만도 몇 군데나 될 것 같았다.

 상계학은 나타난 삼남 일녀를 보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괜한 일에 끼어들었다가 맞아 죽지 말고 그냥 가거라."

 흑칠랑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너처럼 말하는 놈을 보면 난 꼭 패죽이고 싶단 말이다. 그래서 그냥은 못가겠다."

 상계학은 주먹을 들어올리는 흑칠랑을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은 누구냐?"

 "지나가던 나그네다, 이 멍청한 놈아!"

 그말에 한상아가 킥킥거리며 웃는다.

 상계학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네놈은 내가 누군인 줄 알고 함부로 덤비려는 것이냐?"

 "그걸 알아서 뭐 하게?"

 "정말 겁이 없는 놈이군. 감히 내게 덤비려 하다니. 그야말로 권왕 앞에서 주먹질 하는 격이란 걸 알고나 있을지 모르겠군."

 "뭐라고?"

 흑칠랑은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거기서 갑자기 왜 권왕이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자신의 강력한 호적수를 빗대서 한 말이 묘하게 지금 상황과 맞물린다.

 한상아와 야한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상계학을 보고 있을 때, 금룡단이 도착하였다.

 금룡단을 본 상계학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의 뒤에 서서 상황을 즐기던 그의 수하들도 점차적으로 몸이 굳어지고 있었다.

 금룡단원들 중에 서로 얼굴을 아는 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이 나타난 자들이 누구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 금룡단.....금룡단이 돌아오다니, 그렇다면....."

 상계학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수하가 강조하지 않아도 지금의 상황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아운을 향했다.

 보지는 못했지만 귀가 닳을 정도로 들었던 권왕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아랫도리부터 떨리기 시작한 그의 몸이 전체적으로 확산되면서 부들부들 거린다.

 야한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네가 말해떤 권왕이시라면 바로 여기 계신 이분인데, 네놈은 혹시 덤빌 생각이 있으시냐?"

 상계학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수하들은 제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는데, 아운을 보는 그들의 표정은 흠모와 존경심, 그리고 벅찬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북궁명이 쓰러져 있는 정찬을 보고 놀라서 외쳤다.

 "정 조장이 아닌가? 무엇 하는가, 빨리 구하라."

 그의 외침에 제일 먼저 뛰어나간 것은 육자명과 육삼이었다.

 그들은 한때 동료였고, 특히 육삼과 정찬은 서로 죽마고우로, 육삼이 금강선위대에서 조장으로 있을 당시 가장 친하게 지내던 조장 중 한 명이 정찬이었다.

 "정 조장, 대체 어떤 새끼가 널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냐? 엉?"

 육삼은 고함을 지르며 고함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상계학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아운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들을 모두 생포하라. 그리고 쓰러진 자를 치료하도록. 거지!"

 이심방이 앞으로 나섰다.

 "말씀하십시오, 단주님."

 "무림맹의 규칙상, 지금과 같은 상황은 어떻게 처리를 하는가?"

 "일단 장로원으로 압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로원의 재판을 거쳐서 잘잘못을 따진 다음, 책임을 져야 하는 쪽에 벌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벌에 대한 수위는 장로원의 의결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가? 그럼 어떻게 된 사연인지 모르니, 일단 장로원으로 압송한다. 그리고 저놈의 수하들도 모두 생포해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내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이 기회에 장로원이 얼마나 공정한 곳인지 보도록 한다."

 아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금룡단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상계학의 수하들은 감히 덤빌 생각도 하지 못했다.

 토끼가 맹호에게 덤비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니 사건의 전모를 알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상계학의 수하들은 아운의 질문에 딴 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강호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굳이 그게 아니라도 아운의 위엄과 기세, 그리고 그의 명성에 겁먹은 상계학의 수하들은 묻지 않은 것까지 술술 이야기를 하였다.

 아운은 그것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상계학과 함께 장로원에 보냈다.

 봄이 옴과 동시에 무림매이 다시 한 번 들썩거렸다.

 권왕이 돌아왔다.

 그것만으로 무림맹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거기에 권왕은 돌아오자마자, 장로원의 장로들 중에서도 상당한 힘을 가진 상규의 손자를 체포해 버렸다.

 제아무리 개 같은 짓을 했어도 장로들의 친족이 잡혀서 장로원에 온 경우는 지난 이십 년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상계학이 잡힌 사유가 알려지자, 중소문파의 무사들은 모두 분노하였다.

 죄 없이 구타를 한 데 이어 내공까지 파해한 상계학의 행위는 규칙상 거의 사형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벌칙을 내리는 데 있어서 장로원의 결정이 절대적인지라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우선 상계학을 체포한 것이 권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중소문파들이 예전처럼 당하고만 있으려 하지 않았다. 아운으로 인해 그들은 이미 하나로 힘을 합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자신들의 발언권을 확장해 가는 중이었다.

 장로원은 그들을 한 번에 쓸어버릴 생각이었지만, 아운이 돌아오면서 그 기회를 잃고 말았따. 그런 상황이라 장로원도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재판은 현장에서 범인이 잡힌 경우라 십이 시진 이내에 열리게끔 되어 있었으며 규칙상 집법당에서 공개 재판으로 열리게 되었다.

 장로원은 빠르게 합의를 하고, 상계학이 압송된 지 불과 네 시진안에 재판을 진행하겠다고 공고를 붙였다.

 이는 상계학의 친인척이 올 시간을 주지 않고 처리하겟다는 뜻이었다. 만약 상계학의 부모가 재판 전에 온다면 여러 가지로 껄끄럽기 때문이었다.

 북궁연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분이 돌아오셨단 말이지?"

 소홀이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럿습니다. 오시자마자, 벌써부터 한 건 하신 모양입니다."

 "한 건이라니?"

 소홀은 상계학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다 듣고 난 북궁연의 환해졋던 얼굴이 약간 굳어졌다.

 "그 일을 처리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네."

 소홀은 조금 조급해 하는 북궁연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단단하시던 분도 사랑 앞에서는 결국 여자인 것인가?'

 "저와 함께 그분이 있는 곳으로 가 볼까요?"

 북궁연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얼굴을 굳힌다. 

 "지금은 그 일로 바쁘실 거야. 기다리면 오시겠지. 조금 더 기다리지 뭐."

 소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따.

 "그럼 그렇게 하셔도 되고요."

 북궁연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아쉬움이 스쳐갔다.

 소홀은 돌아서면서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네 시진 안에 재판을 한다고 하니, 금룡단의 실질적인 단주로서 그곳에 가 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북궁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그럼 할 수 없이 가 봐야겠네."

 대답을 한 북궁연이 조금 바쁘게 걸어가자, 소홀이 물었다.

 "어디를 가시게요?"

 "그래도 준비는 좀 해야잖아."

 소홀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 네 시진이나 남았습니다. 아가씨."

 그러나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매화각의 정문을 지키고 서 있던 우칠의 입이 대문짝만해졌다.

 그에게 아운의 소식을 전해주던 호난화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한다.

 "우하하하, 주군께서 돌아오셨으니 이제 무림맹을 한 손에 뭉게 놓으시겠군. 그렇지 않아도 이놈 저놈 다 맘에 들지 않았는데."

 우칠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호난화는 샐쭉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우칠이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주군께서 돌아오셨는데 그럼 안 좋단 말이오?"

 호난화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어휴, 이런 미련 곰탱이 같으니라고.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가지고.'

 자신이 그렇게 친절을 베풀어도 그저 덤덤하던 우칠이었다. 그런데 아운이 돌아왔다는 그 하나로 저렇게 좋아하니, 야릇한 여심이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난화의 입장에서 보면 바윗돌 앞에서 춤을 춘 것 같은 허탈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정말 놓칠 수 없는 남자가 아닌가.

 "그럼 얼른 가서 보고 오시지 않으시고요."

 "이제 곧 보게 될 것인데, 서두를 핑료가 뭐 있습니까? 나는 주군의 명령으로 주모님을 지키는 중입니다. 그 명령이 철회될 때까지는 반드시 내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호난화가 조금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충신 났군요."

 "으하하, 그걸 이제야 아셨소. 내가 바로 고금천추제일충복인 우칠이라오."

 호난화는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금룡단이 오자마자 바빠졌고, 재판이 열리는 장로원의 집법당은 재판 두 시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일정 이상의 신분이 아니라면 집법당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통제를 하였고, 장로원과 맹주부에선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지만, 모여든 인원은 적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가자, 중소문파의 수장들 중 대표격인 몇몇 무인들이 집법당에 나타났고, 잠시 후엔 금룡단 전원이 당당하게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 되었다.

 금룡단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마치 큰 전쟁터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병사들의 그것과 같았다. 지켜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감탄과 함께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권왕의 직석 수하가 된 그들이 부러웠다. 더러는 그들의 잘라진 기도에 놀라고 있었다.

 이전의 금룡단에 비해 지금의 금룡단은 확연하게 달랐다. 그러나 몇몇 무림인들은 의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금룡단의 숫자가 겨우 삼분의 일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삼분의 이 이상의 금룡단이 사라졌다고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던 참이었다.

 그들에 대한 수많은 낭설들이 떠돌고 있었기에 더욱 궁금해진다. 그러나 남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던 금룡단은 준비된 자신들의 자리에 앉았다.

 이제 금룡단이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은 곧 나타날 권왕의 존재로 인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척한 모습의 교소희도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연인인 정찬이 당했다는 것을 알자, 그 충격으로 인해 실신지경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녀의 주변으로는 봉황대의 여무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으며, 대주인 당수련은 바로 교소희의 옆에서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녀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상계학의 부모를 비롯한 친인척들이 들어왔고, 바로 뒤이어 세 명의 남자들이 나란히 집법당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금룡단이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 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본 몇몇 사람들이 아운을 알아보고 짧은 감탄사를 토해 냈다.

 "권왕이다."

 모든 시선이 아운을 향했다.

 아운이 자리에 앉았다.

 집법당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아운을 향해 모아져 있었지만, 아운은 담담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상아가 들어와 흑칠랑의 옆에 앉으며 아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북궁연 님에게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전했습니다.

 -매번 고맙소.

 -호호, 뭘요. 그런데 왜 그분을 이곳에 오지 말라고 한 것이죠?

 -좀 험한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오.

 한상아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운을 보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윽고 재판을 진행할 세 명의 장로들이 나타났다.

 나타난 세 명의 장로들을 본 아운은 이 심방을 바라보았다.

 소걸개 이심방은 아운이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장로원에서 가장 힘없는 자들입니다. 저들은 동심맹의 하수인들이라 할 수 있는 자들로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실제적으로 엄청난 부를 차지한 갑부들이기도 합니다. 지독할 정도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들입니다. 아마도 장로원이 저들을 내세운 것은 이번 재판으로 인한 책임을 저들 선에서 정리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심방은 세 명의 장로들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세 명의 장로 중 재판장이라 할 수 있는 요지명은 자신의 딸을 대장로들 중 한 명에게 첩으로 바치고 장로원의 장로가 된 자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두 명도 만만치 않은 방법으로 장로가 된 자들이었다.

 아운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윽고 세 명의 장로 중  요지명이 일어서서 고함을 쳤다.

 "이제 재판을 시작합니다. 범인을 들이라!"

 상계학이 묶인 채로 두 명의 집법 무사에게 끌려 들어왔다.

 아운에게 몰렸던 시선이 잠시 상계학과 세 명의 장로들에게 모아졌다. 요지명이 북궁명을 보고 말했다.

 "범인의 죄상을 보고하시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금룡단의 단주인 북궁명이 잡혀온 상계학의 죄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그 보고를 들으면서 교소희는 더욱 흐느끼고 있었으며, 중소문파의 무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하기도 하였다.

 요지명이 주먹으로 탁상을 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조용히 하시오!"

 좌중이 조용해지자, 요지명은 상계학을 보고 말했다.

 "무사 상계학은 지금 금룡단의 보고한 내용에 대해서 인정을 하는가?"

 상계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건을 조사한 것은 권왕과 금룡단이었다.

 부정한다면 권왕과 금룡단이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히 죄를 인정하고 벌을 받는 것이 편했다.

 이미 그의 조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상계학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일부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나는 겨우 열대 정도만 때렷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중 한 두대가 잘못되어 정찬의 내공이 흩어진 것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상계학이 죄를 인정하자, 소란스럽던 장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세 명의 장로들 중 한 명이 일어서며 말했다.

 "상계학이 잘못을 시인했으므로 더 이상의 취조 없이 바로 재판에 들어갑니다."

 무척 빠른 속도였다.

 금룡단에서 미리 철저하게 조사를 한 덕이라고 생각했다.

 세 명의 장로는 고민을 했지만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미 위쪽에서 지시를 받은 것이 있었다.

 비록 상대방이 심하게 다쳤지만, 다친 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중소문파의 소보주일 뿐이고, 상계학은 장로의 친손자였다.

 무죄를 주고 싶었지만, 그를 연행해 온 아운이 걸렸다.

 그는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권왕이었다.

 "재판의 결론입니다."

 좌중은 조용해졌다.

 아운과 금룡단의 단원들도 결과를 지켜본다.

 "일단 상계학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여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립니다."

 중소문파의 관계자들과 교소희의 옆에 있던 여자들로부터 와아!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무림맹의 중추라는 장로원의 친혈육이 공개재판에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근 이십 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계학은 모두 열 번의 주먹질로 정찬을 때렸으니......주먹 한번당 한 냥씩 모두 황금 열 냥을 벌금으로 낼 것이며, 이 돈은 피해자인 정찬에게 보상금으로 지급된다. 그리고 그 보상금 중 오 할은 재판 주체자인 장로원에서 수수료로 취한다. 이상입니다."

 환호성을 지르던 중소문파의 인물들과 금룡단원들의 얼굴이 순간 핼쓱해졌다.

 상대의 팔다리를 분질러 놓았고, 단전을 파괴하였다.

 무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무공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단 열냥의 벌금이라니, 그리고 수수료가 오 할이란다.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반대로 상계학 쪽의 사람들은 모두 희희낙락이었다.

 그들에게 황금 열 냥은 큰 부담이 아니었다.

 모두들 웅성거리고 있을 때, 아운이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상계학과 장로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모두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제아무리 아운이라고 해도 재판장에서 험한 행동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는 무림의 공적이 될 것이다.

 아운이 웃으면서 재판장인 무림맹 장로에게 말했다.

 "이제 재판이 끝낫소?"

 요지명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재판과는 상관없는 무인이로군. 맞소?"

 "마,맞소!"

 "재판하느라 수고했소. 그런데, 주먹 한 방에 황금 한 냥에 벌금이라고 했소?" 

 "정당한 재판이었소, 혹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정식으로 제소하시오."

 "제소라니, 정말 멋진 재판이었소."

 재판을 담당했던 장로들은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아운이라고 내려진 재판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승자의 기분을 만끽했다.

 "그런데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한 가지만 물어보아도 되겠소?"

 "물어보시오."

 "재판에서 결정된 판결은 무림맹의 규칙으로 정해진다던데, 그게 사실이오?"

 "그, 그렇소.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오?"

 아운이 주머니 하나를 불쑥 내놓으며 말했다.

 "받으시오." 

 "이건 무엇이요?"

 "규칙을 지키기 위해 벌금을 미리 내는 것이오."

 모두 놀란 시선으로 아운을 본다. 

 "모두 황금 백 냥이요. 지금부터 나는 황금 백 냥에 해당하는 죄를 지으리다. 그럼."

 아운이 돌아섰다.

 그리고 그의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상계학의 앞에 섰고, 어느 새 한 손으로 상계학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 다른 놈들도 있으니, 네 놈에겐 딱 열 냥에 해당하는 주먹질만 하겟다. 미리 말하지만 내 주먹은 좀 아픈 편이다."

 그 말을 들은 장로들과 각 문파의 사람들, 그리고 상계학의 부모들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한 냥이다!"

 아운의 고함과 함께 그의 주먹이 사정없이 날아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상계학의 이빨 십여 개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걸 본 흑칠랑이 야한에게 말했다.

 "아프겠다."

 "두고두고 아플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아홉 냥이나 남았는데. 으흐흐, 저놈 죽었다.

 "크흑."

 상계학은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꼇다. 그러나 어찌 천하의 아운이 그 정도에 멈추겠는가?

 "두 냥이다!"

 아운의 주먹이 이번에는 상계학의 단전을 후려쳤다.

 꺼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단전이 파괴되었고, 내공이 흩어져 버렸다. 오장육부가 전부 갈가리 찢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했지만, 이상하게 정신을 잃을 수가 없었다.

 "세 냥이다!"

 아운이 발로 상계학의 턱을 걷어찼다.

 상계학의 아비인 상대영이 달려와 권왕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어째서 생사람을 패는 것이오!"

 "당신의 아들은 어떤 이유로 정 조장을 구타한 것이지?"

 "그, 그건...."

 이때 상계학의 어미인 초소향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침착하게 아운을 보면서 말했다.

 "아들이 잘못을 한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벌칙으로 벌금을 물었고, 학이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잘못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것은 대인답지 못한 짓입니다."

 아운이 밝게 웃었다.

 "대인이 아니라서 참으로 미안합니다. 그리고 걱정마시오, 부인. 나도 벌칙에 상응하는 벌금을 내놓지 않았습니까. 아, 그리고 나중에 내 잘못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반성할 것입니다."

 아운은 씨익 웃으면서 금룡단을 보고 말했다.

 "들었느냐? 주먹 하나에 한 냐이다. 혹시 그동안 손봐 줄 놈이 잇었는데 참았다면 오늘 다 풀어라. 돈은 내가 무한정으로 대 주마."

 아운의 말에 흑칠랑과 야한의 신형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그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자 집법당을 벗어나려던 세 명의 장로들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흑칠랑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도망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네놈들은 누구냐?"

 "권왕의 단 한 명뿐인 적수"

 "권왕의 집법사자다."

 흑칠랑과 야한이 제멋대로 자신을 소개할 때 아운의 신형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세 명의 장로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나이든 노인을 주먹으로 칠까?

 아운은 그 뜻을 읽고 나서 말했다.

 "무인은 나이로 판ㄷ안할 수 없지. 그리고 네놈들은 나잇값을 못했다. 상계학이란 놈에게 열 냥을 썻으니, 이제 얼마 남았지?"

 뒤에 서 있던 야한이 신이 나서 말했다.

 "구십 냥 남았습니다."

 아운의 주먹이 추혼금강룡의 형으로 뻗어 나갔다.

 퍽!

 세 명의 장로 중 요지명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남은 두 명의 장로들 얼굴이 파랗게 질려갔다.

 아운은 두 명의 장로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번 일의 재판은 꼭 세 분이 다시 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움직일 수 있다면."

 아운의 주먹이 다시 날아갔다.

 인정사정이 없다.

 와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세 명의 노인이 나가 떨어지자, 아운이 흑칠랑과 야한을 돌아보고 말했따.

 "내가 낸 벌금 다 써도 된다."

 흑칠랑과 야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세 명의 장로와 상계학은 아주 좋은 밥이었다.

 한상아는 아운이 왜 북궁연을 오지 못하게 했는지 아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야한이 달려가면서 고함을 질렀다.

 "내가 오십 냥이오."

 "이놈아! 냉수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멍하니 아운과 두 교두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있던 금룡단의 이심방이 말했다. 

 "아무래도 단주께서 작심하고 움직이시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절환검 남궁단이 사나운 기색으로 말했다.

 "단주님이 나섰는데, 우리도 그냥 있을 순 없겠지요."

 이심방과 몽진나한은 남궁단을 바라보았다.

 남궁단은 품 안에서 고이 간직하고 있던 황금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이전에 사 놓았던 것으로 능히 황금 이십 냥은 되는 물건이었다.

 남궁단은 단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거슬리던 인간이 있었는데, 황금 이십 냥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분이 풀릴 듯."

 이심방은 가볍게 얼굴을 굳혔다. 

 '내일이면 무림맹이 난리가 나겠군. 서로 원한 맺은 일도 많은 곳인데.'  

 이심바으이 우려는 그 다음날 까지 가지도 않았다.

 상계학의 재판과 아운의 일이 알려진 것은 재판이 끝난 직후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수십 배로 늘어났고, 의원들은 정신없이 바빠졌으며, 무림맹의 곳곳에서 혈투가 벌어졌다.

 장로원은 급하게 규정 강화에 대한 방안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튿날 무림맹 곳곳에 방이 나붙었다.

 - 같은 무림맹 수하끼리 구타나 결투가 있으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 그리고 이전의 재판으로 정해진 규칙은 지금 이 시간부로 폐한다. -

 무림맹의 황금 한 냥에 주먹 한 방 사건은 이렇게 결말을 맺었다. 그 이후 장로들은 권왕과 관련된 재판에서 아무도 재판장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재판 직후 장로원의 장로들은 동심맹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어떻게 하든지 아운을 처리해야만 그들이 두 발을 편히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호연세가와 맹주부에서도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 더 철저하고 확실하게 아운을 처리하려 했다. 

 문제는 장로원의 장로가 세 명이나 완전히 무인으로서의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야한과 흑칠랑은 세 명의 장로, 그리고 상계학을 잡아 놓고 결국 백 냥을 채웠던 것이다.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했던지,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못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어진 이 일단의 사건으로 장로원의 권위는 완전히 땅으로 추락했다. 어떤 식이든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그러나 명분으로도 할 말이 없었고, 혐박도 소용이 없었으며, 무력으로도 안 된다.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매화각으로 항의를 하러 간 장로원의 사절단은 우칠이 무식한 철봉으로 땅바닥에 박으며 고함을 지르자 겁을 먹고 도망쳐 왔다. 이래저래 장로원의 장로들은 근심만 깊어 갔다.

 사마무기가 밀영을 보고 말했다.

 "부맹주님과 상의를 끝냈다. 가서 혈궁 전사들에게 전해라! 가장 빠른 시일 안에 북궁세가를 치라고. 그래서 아운과 북궁연이 다시 한 번 무림맹을 나서게 하라고. 그 다음 아운을 죽이고 북궁연을 사로잡는다. 그 이후 북궁연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 흑룡과 담판을 짓겠다." 

 "충!"

 밀영 일호가 사라졌다.

 사마무기의 표정은 냉혹했다.

 "이제 시작인가?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먼저 권왕부터 처리한다. 제아무리 권왕이라도 빠져 나올 수 없는 올가미를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북궁연을 차지하겠다."

 와룡의 맹세였다.

 매화각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우칠은 아운의 모습을 보자 그 자리에서 오체복지하며 고함을 질렀다.

 "충! 우칠이 주군을 뵙습니다."

 "그동안 잘 있었나?"

 "몇 번의 충돌이 있었지만, 주군의 명령을 어김없이 이행하였습니다."

 "고생했네. 이제 쉬도록. 내일쯤에 금룡단에서 거하게 한 잔 하세."

 "충!"

 아운이 매화각으로 들어오자, 여자 무사들은 사방에서 얼굴을 내밀고 아운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녀가 기겁을 하면서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분이......그분이 오셨습니다."

 소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북궁연이 황급하게 일어섰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서 아운이 들어온다. 소홀은 얼른 인사를 하고 시녀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북궁연과 아운은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아운이 무림맹을 떠난지 육 개월 이상이 지난 후였다.

 시선을 마주 보던 북궁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조금 지체가 되었었나 봅니다."

 아운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일에는 준비가 필요한 법이오. 내 이제 세상과 싸울 준비를 다하고 돌아왔으니, 연 누이는 안심하시오."

 "늦으신 핑계를 그렇게 대시는군요."

 북궁연의 말투엔 약간의 원망하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 모습이 아운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만들었따.

 "허허, 내 그래도 복숭아가 너무 익어 절로 떨어지기 전에 돌아왔지 않소."

 아운의 말에 북궁연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당황한 그녀는 어쩔 줄을 모른다.

 "그, 그동안 음탕해지셨습니다."

 말을 하고 당황한다.

 자신도 모르게 한 말이었다.

 말해 놓고 보니 민망했던 것이다.

 "그거야 연 누이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 아니오. 자고로 남자를 음탕하게 만드는 것은 여자라오. 그러면서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음탕하다고 욕을 하지요, 흐음."

 말을 하던 아운이 묘하게 웃으면서 북궁연을 바라본다.

 북궁연은 그 시선에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그, 그말을 누가 옳다고 인정하던가요?"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운은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안았다.

 붉어진 얼굴을 아운의 가슴속에 감춘 그녀는 마음이 조금 안정 되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아운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했다.

 "오늘은 권왕이 복숭아를 따는 날이오."

 북궁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권왕무적 10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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