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12장 음모첩첩 (101/228)

12장 음모첩첩

- 세상에 인간이 하지 못할 짓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와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밀영은 이제까지 와룡의 곁을 지키면서 그의 표정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굳어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단 말인가? 그리고 권왕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정말 권왕이 천마혈성의 저주에서 살아남았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 설혹 맹주님이라 해도 다섯의 천마혈성이라면 쉽게 상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천마혈성의 피가 독인 줄 모르고 있었다면, 세상의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와룡을 보면서 밀영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로서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섯의 천마혈성과 세 명의 광전사가 죽었으리란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갑작스럽게 실종될 리가 없었다.

 밀영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권왕이 천마혈성을 모두 처리했다면 천마혈성의 비밀도 알게 되었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이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와룡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밀영이 말하는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마혈성의 빔리이 알려지면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실제 천마혈성이 무서운 것은 천마혈독 때문이었다. 천마혈성자체가 중원의 절대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였기 때문에 천마혈독은 무공이 강한 자일수록 치명적이다.

 독이 아니더라도 천마혈성의 무공은 능히 절대고수와 맞먹을 만큼 강했다. 그러나 무공만으로 따진다면 천마혈성 셋으로 십사대고수 중 한 명을 이길 순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중원의 십사대고수 중 한 명당 천마혈성 셋을 동귀어진 시키려 했었다. 그러나 천마혈성의 비밀을 알고 대비한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천마혈성이 없어도 광전사들의 힘이라면 충분히 일을 도모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필요한 희생없이 처리할 수 있는 일에 희생이 따른다면, 그것은 껄끄러운 문제였다.

 "우리는 강하다. 그까짓 천마혈성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거사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껄그러운 것은 권왕의 존재다. 이상하게 그가 거슬린다. 지금까지 잘 진행되어 오던 일들이 그로 인해 자꾸 틀어지고 있다. 아직은 그렇게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꾸 경계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권왕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를 막을 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마혈성과 정룡님을 상대한 후 그가 살아남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쩌면 동귀어진 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보 같은. 권왕을 무시하지 마라! 그는 지금까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거침없이 처리해 왔다. 그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나도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의 능력을 이정도라고 판단할 때마다 언제나 그는 그것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곤 했다. 설혹 그가 죽었다고 해도 지금은 살아 잇다는 가정하에 준비를 해야 한다. 도저히 그가 빠져 나올 수 없는 죽음의 덫을 준비해야만 한다."

 밀영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 권왕의 능력치에 대해서 함부로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십사대고수 이외에는 적수가 없다던 명왕수사 고구를 이겼고, 다섯의 천마혈성 마저 처리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와룡은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 말했다.

 "정말로 천마혈성과 동귀어진이라도 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정룡님과 두 분의 광전사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천마혈독에 중독 되엇다면 제아무리 권왕이라도 정룡님 일행을 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권왕이 아닌 다른 자에게 죽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권왕의 일행 중엔 그분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밀영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일단 권왕의 생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반드시 권왕을 찾아라! 그가 무림맹으로 돌아오기 전에 죽인다."

 "충!"

 밀영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사라지는 밀영을 보는 와룡 사마무기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지금까지 권왕이 숨고자 했을 때, 제대로 찾아 낸 적이 없었다. 결국 권왕은 무림맹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바보가 아니라면 충분히 준비를 하고 오겠지. 그렇다면 나도 준비를 해야겠군.'

 사마무기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호연란과 설비향은 돌아온 제이백호대의 대주인 좌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비향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호연란의 표정은 모호했다.

 설비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갔던 자들 중 이들만 먼저 돌아왔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좌상은 자신이 겪은 일을 가감 없이 전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설비향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러나 호연란은 여전히 냉정하다.

 그러나 그녀 역시 약간의 충격은 받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권왕이 건재하다는 사실이 두 사람에겐 가장 큰 충격이었다.

 설비향은 불현듯 권왕이란 존재가 두려워졌다.

 그의 존재가 점점 커져 나중엔 그의 그림자에 자신이 묻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호연란은 좌상을 보면서 물었다.

 "권왕이란 자가 그렇게 강하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권왕의 무공은 쉽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호연란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지며 좌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비향 역시 굳은 얼굴로 좌상을 본다.

 말을 하는 좌상의 표정엔 존경심과 경외감이 함께 어려 있었다. 패배자로서 가져야 하는 비참함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좌상은 호각이나 천각의 단주들이나 대주들 사이에서도 가장 자존심이 강한 인물로 알려진 자였다. 그리고 뛰어난 성품이나 무사로서의 기질 때문에 수하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수장이었다.

 호연란이나 설비향조차 아직 개인적으로는 좌상의 충성심을 받아내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제일백호대가 아닌 제이백호대의 대주로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좌상은 그부분에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 좌상이 권왕을 이야기하면서 보인 표정은 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특히 호연란은 미묘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자신이 완벽하게 거두지 못한 수하로부터 존경을 받는 적이란 것은 생각하기 싫은 일이다. 그러나 호연란의 표정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었다.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그녀의 기상은 한겨울의 서릿발 같아서 설비향조차도 말을 붙이기 힘든 위엄을 내포하고 있었다. 설비향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였다.

 권왕은 말 그대로 호연세가의 강적이었고, 좌상의 적이었다. 그런데도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그가 저런 표정을 보인다는 것은 권왕의 또 다른 점을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아울러 간접적으로 호연란은 패배감 비슷한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설비향은 눈치 빠르게 호연란의 마음을 눈치 챘다.

 "권왕은 어차피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호연란은 설비향을 바라보았다.

 "맹주부의 준비가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라면 능히 권왕을 처리했을 것입니다."

 호연란이 고개를 흔들었다.

 "권왕이 그들에게 당하지 않기를 바래. 직접 한 번 보고 싶군. 과연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설비향은 호연란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비록 자신이 차지할 수 없는 꽃이지만,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것이면 그는 족했따. 자신의 머리로 그녀를 움직이는 재미는 그를 더욱 달아오르게 하였다.

 좌상이 고개를 들어 호연란을 보면서 말했다.

 "권왕이 전해 달란 말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좌상을 바라본다.

 "어디서든 자신을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설비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호연란의 입가엔 미묘한 비소가 감돈다.

 "호호, 대단하군요.  그렇게 말하니까 더욱 만나고 싶어요. 그가 어떻게 하는지 꼭 지켜보겠습니다."

 좌상은 고개를 숙인 다음 돌아섰다. 

 이제 할 말을 다했으니 돌아가겠다는 뜻이었다.

 설비향은 그런 좌상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적을 보고도 도망쳐 왔으니, 좌 대주는 자숙하고 있으시오."

 좌상은 설비향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각주께서는 제가 무모하게 권왕과 싸워 제이백호대의 대원들을 다 죽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좌상이 나가자, 설비향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언제이고 네놈의 자존심을 꺾어 주마.'

 호연란은 나가는 좌상을 쳐다보지도 않고 설비향을 보면서 말했다.

 "권왕이 생각보다 제법인가 보네. 만약을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난 이만." 

 호연란의 입가엔 호기심에 가까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지하 밀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호연란이었다.

 밀실에는 십여 개의 돌조각상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었다. 모두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기이하게도 흑룡당 시절의 아운과 아주 닮아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있던 호연란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에 살기가감돈다.

 "으아아, 이 개 같은 새끼야! 만나면 죽인다. 뭐 자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그래, 만나면 어쩔 거냐! 내 반드시 네놈을 죽여서 살점을 뜯어 먹겠다. 그리고 좌상, 이 후레자식도 난도질 쳐서 죽이고 말겠다."

 고함과 함께 그녀는 옆에 있던 도를 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따. 열개의 조각상들이 파편으로 튀어 나가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조각상들의 코가 모두 뭉개져 있었다.

 그녀의 약간 삐뚤어진 코처럼.

 아운 일행이 흑칠랑의 안가를 떠난 지 칠 일이 지났다.

 산동성 태산의 중턱에 있는 암혼살문의 안가는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거의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태산의 안가는 암혼살문의 안가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 중 하나였다. 또한 안가라고 해서 기존의 안가와 비슷한 형태는 아니었다.

 절벽의 중간에 있는 천연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광장이 있고, 광장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뚫려 있는 동굴의 갈래 속에 십여개의 인공 석실이 존재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산동성의 안가였다.

 동굴의 입구는 절진으로 막혀 있어서 밖에서 보면 그저 절벽으로만 보이고, 그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진을 모르면 절대 입구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동굴 안쪽으로는 흐르는 샘물과 동굴 벽에 서식하는 석균은 안가의 식량으로, 아운 일행이 당분간 먹고 지내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석균은 맛이 달콤해서 먹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안가의 석실 중에서도 가장 큰 석실 안에 금룡단과 흑칠랑, 그리고 야한과 한상아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엔 아운이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더 없이 진지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중답지 않게 성격 급한 소림의 몽진나한 이었다.

 "아미타불, 소승이 먼저 묻겠습니다. 권왕께서는 우리에게 해 줄 말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조금도 숨김없이 지금 무림의 비밀에 대해서 말해 주었으면 합니다."

 "비밀이라. 사실 생각해 보면 비밀일 것도 없지.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아미타불,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분명히 대답하겠습니다."

 아운의 시선이 몽진나한을 거쳐 이심방과 우영을 향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제자들이 모두 무림맹의 장로들처럼 썩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금룡단원들 중 몇몇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대놓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아운의 말이 거북했지만, 쉽사리 반발하지도 못했다.

 아운은 냉정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답해라. 너희들 중 한 명이라도 나의 말에 대답할 수 없다면, 나도 너희들에게 해 줄 말이 없다."

 말을 하는 아운의 시선이 이심방의 얼굴에 멈추었다.

 이심방은 움찔하면서 아운을 바라보고 물었다.

 "왜 그것을 저에게 묻습니까?"

 "내 생각에 그 말에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너이기 때문이다."

 "제가 말입니까?"

 "자꾸 말 돌리지 마라! 네가 얼마나 나를 알고, 네가 얼마나 금룡단을 사랑하는지 모르지만, 자파의 제자를 죽인 나를 지금까지 따르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엔 내가 죽인 자가 이미 죽어 마땅한 자임을 알기 때문일 테고, 그드로가 너의 뜻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몇 가지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이심방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주님, 무슨 뜻입니까?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운의 눈에 차가운 한기가 어렸다.

 "내가 아는 세상의 이치는 이렇다. 어떤 곳이든 양지가 잇으면 음지가 있고, 썩은 곳이 있다면 성한 곳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전부 썩었다면 이미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존재는 더 이상 무림의 구심점이 될 수 없겠지. 그리고 양지가 성하면 음지의 인물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게 마련이다. 지금은 동심맹을 중심으로 한 무림맹의 장로들이 양지겠지. 그러나 그들의 행태는 실로 가관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반발하여 자파의 정도를 바로 잡으려는 자도 분명히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음지의 인물들. 힘이 약할 테니 서로 뭉칠 테고, 현 상황으로 보아 아주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만약 내 짐작이 틀려 정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 뜻있는 지사들이 없다면 내가 모두 쓸어버릴 것이다. 거지는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심방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꼇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시선이 이심방을 향해 있었다.

 지금 아운이 하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 깨우친 것이다.

 이심방은 아운을 바라보았다.

 '혹시 단주가 개방을 자극한 것은 나를 시험하기 위해서였을까? 그것은 아니다. 단주가 극락원의 일에 끼어든 것은 우연한 것이었다.'

 이심방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하지만 저로선 참으로 난감합니다. 저에겐 무엇을 말할 자격도 없고 그것을 판단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불가."

 아운의 강경한 말에 이심방의 얼굴이 흑빛으로 굳어졌다.

 아운은 그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강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단의 무리에게 완전히 우롱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가?"

 아운의 말에 금룡단원들과 세 명의 살수들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아운이 직접 언급을 하자, 그 무게가 달랐다.

 이심방은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상님의 말이 정확한 모양이구나.'

 아운은 이심방을 비롯해 금룡단원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는 무림의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과 여러 가지 정황을 정리해 보면 지금 무림맹의 맹주는 대원의 후예가 분명하다."

 금룡단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너무 큰 충격으로 인해 갑자기 사고가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소림의 몽진나한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운은 자신이 대사막에서 겪은 일들을 정리해서 말해 주었다.

 아운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금룡단과 세 명의 살수들이 받은 놀라움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세 명의 살수들은 지금까지 아운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자신들이 몰랐던 부분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깨우쳤다.

 한동안 유지되던 침묵의 시간이 지나갔다.

 북궁명이 말했다.

 "지금 단주님의 말씀은 맹주부가 사실상 대원의 잔존 세력들이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사연들이 겹쳐져 있다는 말씀입니까?"

 "내가 아는 한 그렇다. 나는 혈궁대전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도 어떤 음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리고 사라신교의 준동에는 확실히 무림맹의 음모가 깔려 있었다."

 아운의 말을 들으면서 이심방은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은 조금 더 들어보고 판단하기로 하였다.

 우영이 물었다.

 "그것이 어떤 음모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운은 우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도사에게 묻겠다. 만약 몽고군이 무림을 장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어떤 음모를 꾸민다면, 어떤 방법을 택하겠는가?"

 "도사는 우매하여 잘 모르겠습니다. 단주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나라면 무림의 정파 최고 고수들에게 명예와 부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그들에게 주지육림의 쾌락을 알게 할 것이고, 그들에게 권력을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깨우치게 해 줄 것이다."

 우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몰라서 묻는 것인가? 권력에 중독 되면 친형제는 물론이고 어미아비도 쉽게 죽인다. 권력은 친자식과도 나눠 갖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운의 말에 이심방과 금룡단원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깨우친 듯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운은 그들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말했다. 

 "사라신교의 준동으로 무림맹이 만들어졌고, 장로원이 만들어졌다. 장로원의 무림 명숙들은 권력을 알게 되었지. 그리고 그들의 욕심은 점점 강해져 갔다. 하지만 자파 안에는 명문 정파로서의 명예를 지키려고 하는 제자들이 많았다.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었지. 그런데 그들과의 갈등이 표면화될 즈음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신교가 준동을 하였다. 사라신교와의 결전은 장로원의 꿈을 방해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었지. 그 이후 장로원은 자파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무림맹에서도 항거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권력의 노예가 되었고, 그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어떠한 짓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자들이 되었다. 실상을 알고 보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이 원하는 대로 된 것이다."

 아운의 말은 벼락이었다.

 금룡단원들은 아운의 충격적인 말에 잠시 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중 두세 명은 아운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꼇다.

 그동안 걸어 왔던 안개 속을 벗어나는 느낌이었다.

 몽진나한이 말느침을 삼키고 말했다.

 "아미타불, 지금 단주님이 하신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현 장로원의 고수들은 모두 맹주부의 계략으로 권력의 노예가 되었고,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무림을 병들게 했다는 말입니까?"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간단하게 그렇다."

 딱딱하게 굳어진 금룡단원들의 얼굴 표정은 그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삼대 살수들 역시 너무 놀라서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아운을 볼 뿐이었다.

 북궁명이 숨을 고르며 아운에게 물었다.

 "그럼 극락원은?"

 "내 생각으로 극락원은 두 가지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각 문파내에 있는 자신의 반대 세력을 회유하기 위해서 사용했을 것이고,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서도 사용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우영이 말했다.

 "뒤에 말은 믿기 어렵습니다. 비록 장로원의 명숙들이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고 해도, 한때는 무림의 기둥이셨던 분들입니다. 그런분들이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어라고......"

 "아직도 정신이 덜 든 멍청한 자식이 있군. 사람이란 권력을 차지하고 나면 그것을 누리려는 속성이 있다. 누리지 못하는 권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정파의 명숙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더해진 것이다.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 필요할 것이고, 극락원은 그런 부분에서 아주 훌륭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사람이란 묘한 적응력이 있어서, 한번 살인을 하게 되면 수백 명도 우습게 죽일 수 있고, 돈과 권력에 눈이 멀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쾌락이란 것도 한번 빠지게 되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마련이다. 이런 부분은 굳이 내가 아니라도 인간의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세상에 인간이 하지 못할 짓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반문을 하지 못했다.

 아운의 말은 그가 언급한 대로 인간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단하게 역대 황궁의 역사만 살펴보아도 얼마나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앗던가?

 더군다나 극락원을 직접 보고 난 다음이었다.

 아운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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