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천마혈성
- 바람이 불 때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폭발하면서도 맹독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독인이 존재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절대고수라고 할 수 있는 자들까지도 닿기만 하면 중독시킬 수 있다고 하니, 누가 저들을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저들의 존재를 무림에 알리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훨씬 넘어설 것이다. 더군다나 정룡의 말을 들어보면 십사대고수를 상대로 실험까지 해 보았다고 했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만약 그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천마혈성들은 십사대고수들의 천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독된 아운이 걱정스러웠다.
아운은 속으로 운기를 하면서 정룡에게 물었다.
"물론 그 실험 대상은 검왕이었겠지?"
아운의 말을 들은 북궁명은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설마 하는 표정으로 정룡을 바라보았다.
정룡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감돌았다.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흐흐, 당연히 말해줄 수도 없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험을 할 때에 비해서 지금의 천마혈성은 더욱 진보하엿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완전해진 것이지. 흐흐, 지금의 천마혈독을 맞으면 천하에 누구라도 열을 세기 전에 즉사를 면치 못한다. 그것은 해약도 없다. 우리 역시 아직 해약을 만들지 못했다. 아니 만들 필요가 없었지."
정룡의 말을 들은 금룡단원들은 더욱 기겁을 해서 아운을 보았다. 해약이 있다면 상대를 제압하고 빼앗기라도 하겠지만, 해약자체가 없다면 상황은 절망적이다.
흑칠랑과 야한, 그리고 한상아도 놀라서 아운을 바라본다. 북궁명 역시 이를 악물은 채 아운을 바라보았다.
당장 달려들어서 할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매형의 안위가 먼저다.
아운은 조금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정룡을 바라보았다.
"흐읍, 정말 무서운 맹독이다. 그런데 저런 천마혈성이 대체 몇구나 있기에 십사대고수를 상대한단 말이냐? 내가보기엔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기껏해야 여기 있는 천마혈성이 전부겠지."
"궁금한가 보군. 최소한 다섯 명의 십사대고수들은 이들에게 죽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아운은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좋은 정보군. 그러니까 천마혈성의 숫자가 이들을 빼고도 최소한 열다섯구는 된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십사대고수들 중에 검왕을 제외하고도 최소한 다섯 명은 맹주부와 관련이 없군."
아운의 말에 정룡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머리가 제법이군. 좋을 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우리도 그 이상 만들기는 쉽지 않앗다. 안타깝게도 너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다섯의 천마혈성이 동원되었고, 벌써 셋이나 잃었으니, 상황이 그렇게 된 것뿐이다."
아운은 정룡을 빤히 바라보았다.
정룡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변명하느라 바쁘군. 그러니까 나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명왕수사를 동원하고, 그것도 모자라 셋이면 무적이라는 천마혈성을 다섯이나 동원하였다. 난 또 천마혈성이 남아돌아서 그런 줄 알았지. 와룡은 나에 대해서 꽤 과한 평가를 내렸군. 아니면 당신의 거짓말이든지."
정룡의 입가에 미미한 웃음기가 감돌았다.
"좋아, 권왕의 입담도 그 정도면 대단하군. 뭐, 상상력도 주먹만큼 일품이고."
"당신도 대단해. 표정하나 변하지 않다니. 그런데 말이야, 당신과 함께온 자들은 수양이 좀 부족하군."
정룡은 아차 하는 시선으로 사마풍과 단목을 바라보았다.
사마풍과 단목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정룡은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는 곧 태연한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죽을 테지만, 정말 대단하다."
그 말은 많은 부분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금룡단과 흑칠랑 등은 설마 했던 기분이 한꺼번에 거대하게 무게로 눌러 오는 것을 느꼈다. 속이 답답해지고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절대 알아서는 안되는 금단의 비밀을 안 것 같았다.
"걱정까지 해 주다니 고맙군. 그런데, 이 독이 퍼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피가 몸에 묻고 나서 셋을 셀 시간이면 제아무리 금강불괴라도 중독이 되어 쓰러진다."
"좋군. 그런데 당신은 셋을 아주 느리게 세는 모양이지?"
그 말을 듣고서야 정룡과 사마풍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 너는......"
아운의 입가에 기묘한 웃음기가 번졌다. 보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안 됐군. 나에겐 이 천마혈독이란 것이 잘 안 통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당황한 정룡의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어, 어떻게?"
"어떤 양반이 있었지. 나의 스승님들 중에 한 분인데, 그분이 정말 믿었던 자에게 독수를 당했거든. 그래서 독이라면 치를 떨었고, 그 복수의 일환으로 천하의 모든 독에 극성인 무공을 만들게 되었지. 하도 큰 소리를 쳐서 안 믿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는 중이거든."
아운의 천연덕스런 말에 정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마풍이나 단목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천마혈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무려 백 년 이상의 세월을 투자하였다. 그 이전 대원(大元)의 시절부터 연구해 온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 세월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리고 결국 천마혈성을 완전하게 완성한 것은 근래의 일이었다.
십사대고수 중 한 명을 중독 시킬 때만해도 아직은 미완성이었다. 그런데도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완성된 천마혈성에 대해서는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천마혈성을 완성하고 만난 첫 상대에게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으니 그 허탈함을 어떻게 표현하랴.
"믿을 수 없다."
"믿기 싫음 관두고. 어쨋거나 천마혈성이란 것들 이래저래 살려둘 수 없는 마물들이군."
아운은 나지막하게 말하며 신형을 날렸다.
당황한 정룡과 사마풍, 그리고 단목은 일제히 아운을 향해 달려들며 고함을 질렀다.
"공격하라!"
명령을 들은 천마혈성들도 아운을 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선공은 아운이 먼저였다. 천마혈성들이 공격하려 했을 땐 아운의 주먹이 벌써 벼락처럼 질러 가고 있었다.
천마혈성들이 일제히 마주 공격해 왔다.
제법 빠른 동작이었고, 무공도 무시 못할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었다.
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오호연환중첩장의 절기가 펼쳐지면서 두 명의 천마혈성이 그 자리에서 터져 나갔다. 정룡과 사마풍 등은 그래도 고수답게 늦었다 싶은 순간 천마혈성들의 피에서 벗어나려고 다급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그 순간 아운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팽이처럼 돌아갔다.
터져 나온 천마혈성의 핏방울들이 아운의 회전에 튕겨지면서 공격해오다가 급히 뒤로 물러서는 정룡과 사마풍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기겁을 한 그들이 더욱 뒤로 도망칠 때 아운은 터져서 너덜너덜한 천마혈성들의 시체에서 그들의 피를 흡자결로 끌어 올린 다음 연환육영뢰의 일기영과 이벽권 삼권척의 권강에 실어 날렸다.
세 명의 광전사들은 기겁을 해서 몸을 움츠리며 피해 내고 있었다. 천마혈독의 무서움을 아는지라 감히 맞대응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아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풍팔비각으로 바닥에 널린 피를 풍차처럼 돌리면서 쏘아 보냇다.
허공으로 올라간 질퍽한 피들이 순차적으로 내려오면서 광전사들을 공격해 갓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붉은 우산이 펼쳐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광전사들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지금 그 피의 우산을 완전히 벗어나도 그 다음 공격해 올 아운의 공격을 막아낼 자신이 없엇던 것이다.
그래도 살고는 싶은지 각자 무공을 휘두르며 천마혈독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아운의 신형이 유령처럼 움직이며 그들의 위로 돌아가 있었다.
미처 천마혈독을 다 피하기도 전에 아운의 공격이 그들의 뒤통수를 노린 것이다. 당황한 세 명의 광전사들은 천마혈독을 막으면서 동시에 아운의 연환육영뢰를 막아야만 했다.
타다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 중 가장 무공이 약했던 단목이 아운의 공격으로 인해 어깨가 분질러졌다. 그리고 사마풍은 다리가 부러졌으며, 가장 강한 공격을 당한 정룡은 울컥 피를 토하며 주저앉을 뻔했다.
아운은 선풍팔비각으로 정룡의 턱을 차 버렸다.
털썩!
정룡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아운은 사마풍과 단목의 목을 잡은 다음 바닥에 집어던졌다.
광전사라 칭해지던 그들은 자신들의 무공은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어이없이 당하고 말았다. 바닥에 쓰러진 그들이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아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죽을 거면서 뭐 하러 그리 바둥거리나?"
정룡은 이를 갈며 아운을 노려보았다.
"우린 아직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않았다."
"대단하군. 그런데 천마혈성의 독은 해독할 수 없다며?"
정룡과 사마풍 그리고 단목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이 처박힌 땅은 천마혈성의 피로 질퍽해진 곳이었다. 근처의 풀과 흙까지 피의 맹독으로 인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으으으으."
세 사람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몸이 천천히 녹아들고 있었다.
권왕다운 응징이었다.
"끄으으으."
괴상한 비명과 함께 그들은 자신들이 자신 있게 데려왔던 천마혈성의 피로 인해 한 줌 독수로 녹고 있었다. 금룡단과 흑칠랑, 그리고 야한과 한상아 등은 이 흉악한 결전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잇었다.
온몸에 피칠을 한 아운의 모습이 더 없이 강인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금룡단의 이심방은 이제 아운과 조금 더 진지한 이야기를 해 봐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금룡단과 아운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자신과 몽진나한 등이 회피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피해선 안 된다'
이심방이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아운이 피칠을 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흑칠랑의 앞에 선 아운이 물었다.
"목욕할 곳은 있겠지?"
흑칠랑은 아운의 몸에 묻은 피가 묻을 까봐 기겁을 하면서 말했다.
"이, 있다."
"다행이군. 아무래도 이제 이곳은 다시 쓸 수가 없겠지. 꽤 좋은 안가 같았는데."
"할 수 없는 일이지. 제길, 아무래도 내가 너무 손해를 보는 것 같단 말야."
흑칠랑은 투덜거리면서 앞서 걸어갔다.
아운이 그 뒤를 쫓는다.
북궁명 일행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치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몽진나한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권왕이 선언했던 대로 무림이 그의 주먹 아래 놓일지도 모르겠구나."
이심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지권평천하(武林之拳平天下)라. 그 말을 듣고는 웃었었는데. 어떤 미친놈이 헛소리한다고."
"아미타불, 그 말을 믿은 무인들은 어차피 없었습니다."
이심방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대답했다.
"이젠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나도 미친놈이지."
"아미타불, 소승은 그래서 불안하외다."
이심방이 몽진나한을 바라보았다.
이유를 묻는 눈빛이었다.
"작은 바람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권왕 같은 강자가 나타난 것에는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권왕이 세상에 태어는 것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거대한 피바람이 몰아칠 거란 예감이 들곤 합니다. 아미타불, 권왕의 힘이 강할수록 더욱 무서워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권왕이 아니라면 그 피보라가 더욱 거세질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권왕의 힘으로 그 피보라가 일기 전에 잠재울 수도 있습니다. 몽진나한님의 말대로 권왕이 세상에 나타난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할지도 모르지요."
"아미타불, 그렇다면 정말 다행일 것입니다. 그러나......"
몽진나한은 말끝을 흐렸다.
묵묵히 듣고 있던 우영이 말했다.
"단주님이 정의롭기만을 바랍니다. 싫든 좋든 이제 우리는 단주님과 함께 해야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바로는 단주님은 결코 악한 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손속이 맵긴 하지만 그것도 명분 없이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외에 걸리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차츰 좋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결론을 내리듯이 한 말이었지만, 이미 근룡단은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