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8장 불괴수라기공 (97/228)

8장

불괴수라기공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무공마다 특성이 있고 가장 좋아하는 상태가 있게 마련이다 . 불괴수라기공은 시전자의 몸이 악조건일수록 활성화되는 특성이 있었다 .

명왕수사와의 대결에서 큰 내상을 입었던 아운의 몸은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 당시의 부상으로 아운의 무극신공이 뒤틀리며 주화입마의 초기 단계까지 진화하였으며 무극신공의 내공이 거의 소멸되고 말았다 .

그때부터 불괴수라기공은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

항상 무극신공의 그늘 아래 숨어 있던 불괴수라기공은 삼 일간의 시간 동안 아운의 기혈을 바로잡았고 , 외상을 치료하였으며 , 주화입마의 초기 단계를 치료하면서 모든 힘을 전부 소진해 버렸다 .

내상까지 완전하게 치료하기에는 그 힘이 모자랐던 것이다 .

그러나 불괴수라기공으로 인해 뒤틀린 기혈이 바로잡히면서 이번에는 무극신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혈이 바로잡히면서 무극신공의 기로가 열렸고 흩어졌던 내공은혈도를 타고 조금씩 단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무극신공은 혈을 타고 흐르며 천천히 아운의 내상을 치료하고 있었다 . 하지만 그 힘이 극히 미약해서 내상을 치료하는 시간이 너 무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

그때 흑칠랑과 야한은 아운의 몸에 자극을 주었다 .

상처 입은 아운의 몸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힘이 어떤것인지 이전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

아운의 무의식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

인간의 잠재력이란 무한한 것이라 음식을 먹을 때도 어떤 영양분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알아낸다 .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아운의 무의식과 그의 잠재력은 상처에 탁월한 불괴수라기공을필요로 하였고 , 아운의 몸에 흩어진 채 겨우 미세한 힘만 존재하던 불괴수라기공을 끌어다가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

흑칠랑과 야한은 그 일부만을 보고 자신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말 무식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

지금 아운의 몸이 끌어다 쓰는 불괴수라기공의 진기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힘이라서 그것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불괴수라기공의 근원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

자칫하면 지금까지 익혀온 불괴수라기공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 그런데 흑칠랑과 야한은 반 시진 단위로 아운의 몸에 상처를 내었다 .

단 두세 번 만에 아운의 불괴수라기공은 거의 완전하게 말라 버렸다 . 대신 그곳을 채운 것은 미세하게 흐르고 있는 무극신공이었다 .그러나 연이어 계속되는 자극은 더욱 많은 양의 불괴수라기공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

하지만 불괴수라기공이 있어야 할 곳엔 이미 무극신공으로 채워진 다음이었으며 , 불괴수라기공의 근원마저도 말라 가는 상황이었다 .

그런 상황에서 흑칠랑은 다시 한 번 아운의 몸에 상처를 내었다 . 계속해서 불괴수라기공의 진기를 찾아가던 아운의 무의식은 원하는 성질의 기운이 거의 없자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성질의 기운을 찾기에 이른다 . 

삼살수라마정은암기지만순수한내공의 결정체였다 .

삼살수라마정은 암혼살문의 전대 문주들이 자신의 내공으로 만들어 놓았고 이를 불괴음자가 불괴수라기공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은 암기 였다 .

그래서 삼살수라마정은 불괴수라기공으로만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

즉 , 암기 하나는 순수한 내공의 결정체였고 불괴수라기공과 성질도 똑같았던 것이다 .

결국 아운의 무의식은 삼살수라마정을 지극하였고 , 미세하게 움직이던 무극신공은 삼살수라마정을 조금씩 녹여서 아운의 몸에 맞는 진기로 만들어 갔다 .

그리고 녹은 삽살수라마정은 불괴수라기공의 진기로 바뀌어 아운의 몸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속도는 빨라졌다 .

그리고 불괴수라기공이 아운의 내상과 외상을 치료할수록 무극 신공의 힘도 거세졌다 .

이렇게 불괴수라기공은 흑칠랑과 야한의 무식한 방법으로 인해 극도로 활성화되어 가고 있었다 .

어느 순간 삼살수라마정 중의 하나가 완전히 녹아서 불괴수라기 공으로 흡수되었고 활성화된 불괴수라기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 르게 아운의 몸을완전하게 만들고 있었으며 다른삼살수라마정마저 끌어들이고 있었다 .

야한은 초조한 표정으로 아운을 보면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권왕 들려시오 . 지금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고 있소 . 빨리 정신을 차리시오 . 씨발 빨리 정신을 차리란 말이야 ! 아니면 다 죽는다고 ! ”

야한의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아운은 무의식중에 듣고 있었다 .

상황이 급박해지자 아운의 무의식은 남아 있는 무극신공을 전부 쥐어짜기 시작했고 남아 있는 삼살수라마정마저 급하게 녹여서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

그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그럴수록 불괴수라기공의 힘은 커져갔다 . 어느 순간에는 기존에 지니고 있던 불괴수라기공의 힘마저 넘어서고 말았다 .

삼살수라마정 하나의 양은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

아운은 꿈을 꾸고 있었다 .

거대한 철벽을 향해 끊임없이 주먹질을 하고 있었는데 , 피가 튀고 뼈가 깎여 나갔지만 끈임없이 철벽을 향해 주먹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철벽의 반대편엔 북궁연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

수백 명의 괴인들이 끈임없이 북궁연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는데,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기진맥진하고 있었다 .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그녀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녀를 구해 주고 싶었지만, 그녀와 아운 의 사이엔 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

반드시 북궁연을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로 하여금 주먹질을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그 절박함은 점점 더 아운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 어느 순간 자신의 모든 힘을 전부 쥐어짜서 주먹을 휘둘렀다 .

쩡 ! 하는소리와함께 철벽에 금이 가고 있었다 .

북궁연이 괴인의 검에 상처를 입고 쓰러진다. 

“으아아 ! ”

비명과 같은 고함을 지르며 아운의 몸이 그대로 철벽을 밀어내었다 .

쩌정! 하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리며 철벽이 부서져 나갔다 . 아운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괴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

삼살수라마정이 모두 녹아서 완전 이상의 힘을 가진 불괴수라기공은 아운의 몸을 돌면서 일순간에 터져 나가고 있었다 . 동시에 무극신공도 그 자극을 받아 무섭게 소용돌이친다 .아운의 몸 안에서 작은 폭발이 수십 번이나 일어났다 .놀란 야한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현재 아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 갑자기 겁이 났다 .

‘혹시 주화입마는 아니겠지 .’

야한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아운이 갑자기 눈을 번쩍 폈다 .

‘헉! ”

놀란 야한이 짧은 신음을 지를 때 아운이 자리에서 벌먹 일어나앉았다 .

“권왕 , 괜찮습니까 ? ’

아운은 야한을 돌아보며 물었다 .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나 ? ”

“며칠 되었습니다 . 그보다는 지금 밖의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

아운의 눈에 차가운 한광이 어렸다 .

야한은 마른침을 꿀쩍하고 삼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어떤 멍청한 새끼들이 쳐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다죽었다.’

 야한의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

북궁명을 중심으로 뭉친 금룡단원은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 무려십여 명이나상처를 입고 있었는데 그나마흑칠랑과한상아의 활약이 아니 었다면 그들 중 두세 명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 .

북궁명은합광의 도를비켜 막으면서 뒤로한걸음물러섰다 . 합광의 공격은 날카로웠지만, 북궁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 그러나 동료들을 돌보느라 합광을 쉽게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

견오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금룡단이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역시 권왕의 작품인가?”

견오의 뒤에 있던 위맹한 모습의 노인이 말했다 .

“그것도 그렇지만 , 북궁의 자식과 저 두 명의 남녀가 보통이 아닙니다. 좀 전의 상황으로 보아 저들이 공야치를 죽인 것 같습니다.”

“저 두 사람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 공야치를 죽이기엔 부족하지 않겠소? ’

“이곳은 살수들의 안가가 분명합니다. 이곳의 주인이라고 했고 사용하는 무공의 특징을 보니 둘 다 살수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정공이 아니라 기습으로 죽인 것이 아닐까요 .”

견오는 멀찌감치 죽어 있는 공야치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

죽어 있는 시체의 모습과 상처의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한 후 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

‘확실히 주형의 말에 일리가 있소 . 이제 더 이상 미적거려서는안될 것 같소 .”

“내 생각도그렇습니다 . 그럼 이 일은내가나서리다.”

“주형이 나서 준다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 마침 심심하던 차인데 ”

노인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노인이 나서자, 제이백호대의 수히들이 모두 통작을 멈추었고,금룡단원들도 노인을 바라보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노인이 멈추라고 고함을 친 것도 아니었다 . 그러나 앞으로 나선 노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강력한 패기가 모든 사람들의 동작을 멈추게 하였다 

노인은 제이백호대의 대원들을 보면서 손을 저었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서서 도망하는자들을상대하라.”

제이백호대는 빠르게 물러선 다음 금룡단과 흑칠랑 일행을 멀리서 둥글게 포위하였다. 그리고 위맹한 모습의 노인은 허리에서 한자루의 손도끼를 꺼내 들고 천천히 금룡단에게 다가선다.

금룡단원들은 노인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 앞에서 잔뜩 긴장한모습들이었다.

본능적으로 상대가 맹수임을 알아본 것이다. 흑칠랑은 노인이 든 도끼를 자세히 살펴보았다.도끼날 위에 붉은 혈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본흑칠랑의 얼굴이 굳어졌다.

“패왕혈부 ( 훌륭王血쏟 ) 주굉 ! ”

노인이 가볍게 웃었다 .

"나를 알아보는 후배가 있다니 놀랍군.”

금룡단원들은심장이 떨걱 내려앉는기분이었다 .

주굉 역시 견오와 마찬가지로 혈궁대전 이전의 고수였다 . 강남의 광동성을 위주로 활동하던 고수로 그의 잔인한 손속은 무림에서너무 유명했다 .

당시 십사대고수를 제외하고 가장 강하다고 했던 고수들 중 , 흑도사파의 대명사였던 구흉의 한 명이었다.

구흉의 무공은 십사대고수들보다는 못하지만, 두 명만 모이면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졌던 마두들이었다. 생사장견오에 비해서 절대 뒤떨어지는고수가아니었다. 금룡단원이나 흑칠랑 등이 상대할 수 있는 고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잔인한 명성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금룡단원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북궁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핑을 보면서 말했다.

“당신들은 무림맹의 토벌 전에서 모두 죽었다고 들었는데 .”

“흐흐 그래서 세상은 재미있는 것이다 . 죽은 자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이 또한 반전이라 할 수 있겠지. 이렇게 오묘한 세상의 이치를 어린 너희들이 어찌 알겠느냐? 세상은 보이는 것과 가려진 것 이 따로 존재하는 곳이다. 진짜 중요한 일의 칠 할은 지금처럼 가려진 곳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주핑이 도끼를들어 올렸다.

흑칠랑은 한숨을 쉬고 한상아를 돌아보았다 .

“상아 , 그래도 총각을 면하고 죽게 해줘서 고맙소.”

한상아는 흑칠랑을 보고 생긋이 웃었다 .

“그래도 오라버니를 만나고 죽어서 다행이에요.”

-이번 일에 상아는 끼어들지 마라. 전면전이 벌어지면 무조건 여기서 도망쳐. 너라도 살아라.

한상아의 눈썹이 곤두섰다.

-나더러 혼자 도망가란 말인가요?

-가라 . 가서 내 몫까지 살아라.

-그렇게는 못해요. 그리고 늦었어요.

흑칠랑이 한상아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정말 자신들이 도망칠곳은 없었다.

흑칠랑의 얼굴이 굳어졌다.

금룡단원들도 이제 마지막 일전을 생각한 듯 모두 각오를 굳히는 것 같았다.

“늙은이 말이 맞을 수도 있지. 확실히 세상의 중요한 일은 보이 지 않는곳에서 이루어지는것이 많아. 늙은이도 그 보이지 않는세상에서 아무도 모르게 다시 죽어 갈 것이다 .”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는 무척 담담했다 .

크지도 않고 기세가 강한 목소리도 아닌데 그 말을 들은 주굉의 몸이 부르르 딸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은 북궁명의 얼굴은 환하게 변했다. 금룡단원들 역시 긴장했던 얼굴이 활짝 펴진다. 견오를 비롯한 그의 일행들은소리가난곳을향해 시선을돌렸다.

두 명의 청년이 서 있었다. 둘 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그 중에 한 명은 이제 이십 중반 정도인데 여리여리하고 키도중키였으며, 문사처럼 유약해 보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청년은 제법 강단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제이백호대원들은 모두 강단이 있어 보이는 청년을 바라보았지만, 견오와 주굉은 정확하게 중키의 큰 특징이 없어 보이는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단이 있어 보이는 청년이 씨익 웃으면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권왕 납시오!”

그말이 끝나자, 금룡단이 일제히 허리를굽히며 말했다 .

“단주님을 뵙습니다.”

아운은 금룡단원들을 훑어보았다. 부상자는 있어도 다행히 죽은 자는 없는 것 같았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아운의 짧은 한마디에 금룡단원들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상대가 견오와 주굉인 것을 알고 이젠 죽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권왕이 나타난 것이다. 마치 지옥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기분이었다. 일부 금룡단원들의 눈에는 물기가어리고 있었다. 아운의 말 한 마디에서 그들은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뭉클한 무엇인가가 가슴을 관통하는 기분이 었다.   

금룡단원들의 표정에 비해서 아운의 모습은 무척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권왕과 금룡단원들의 마음이 통화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생사를 함께 한 동료로서 아운을 보게 된 것이다.

흑칠랑이 아운을 보고 눈에 불을 켠 채 말했다.

“오려면 좀 일찍 오지. 난 또 내가 무서워서 도망쳤나했네.”

야한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권왕이란 말에 견오와 주굉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세 명의 노인들 시선이 모두 아운을향했다.

제이백호대의 대원들 역시 아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엔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경외감이 떠올라 있었다. 아운은 흑칠랑을 슬쩍 훑어본 다옴에 한상아에게 다가갔다. 한상아는 권왕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그저 다가올 뿐인데 숨이 턱턱 막혔던 것이다.

그의 모습이 아니라 이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권왕이 그녀 앞에 멈추어 섰다. 한상아는 그저 권왕을 뚜렷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데 긴장을 해서 말문이 막혔다.

“아운이오. 은혜를 입었소. 잊지 않으리다.”

말을 마친 아운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돌아서서 주굉과 견오가 있는 곳을 향했다. 주굉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쳐 견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상대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주늑이 드는 기분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막상 견오와 어깨를 나란히 하자, 어깨를 폈다.

상대가 비록 칠사의 한명인 명왕수시를 이긴 자라고 하지만, 견오나 자신이 힘을 합하면 능히 칠사의 한명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렇다면 아운에게 주늑이 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과 견오의 뒤에 버티고 있는 세 노인도 결코 만만 한 자들이 아닌지라 여차하면 다섯이서 함께 덤비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편 한상아는 멍한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권왕으로부터 지금과 같은 말을 들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현 강호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며, 설혹 그것이 아니더라도 십 년 안에 천하제일고수가 될 것이 확실한 사람이 었다 . 그녀 역시 무인이다. 권왕을 흠모하던 사람중에 한명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한낱 살수에 불과한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묘한 전율이 그녀의 가슴을 흔들어 놓았다.

“권왕은 결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흑칠랑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고맙다고 인사를 한 것뿐이야. 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권위와 소문에 미혹되지 않는다. 감사할만한일에 감사한것뿐이야 . 그것이 누구이든 그는 그랬을 것이다. 세상에 권왕의 감시를 받은 사람은 결코 몇 명 되지 않지. 흐흐 그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

한상아는 반짝이는 눈으로 흑칠랑을 바라본다.

“참으로 신통해요.”

흑칠랑이 한상아를 바라보았다. 무슨뜻이냐고묻고 있는시선이었다.

“오라버니 같은 바보살수가 어떻게 권왕과 친분을 가질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요.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은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네요.”

흑칠랑의 얼굴이 흉악하게 구겨졌다.

“친분이라니. 권왕은나의 적수라고.”

그의 큰 소리에 모든 시선이 잠시지만 흑칠랑에게 모였다. 흑칠랑은 당당하게 어깨를 편다. 그 시선의 의미가 무엇이든 흑칠랑은 스스로가 당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야한의 한숨 소리는 처음부터 무시하고 있었다 

아운은 견오와 주핑을 바라보고 말했다.

“싸울 텐가? ’

두 노인의 얼굴에 분노한 기색이 떠올랐다.

“선배에 대한 예의가 없군.”

"당신들은 나를 죽이려고 온 지들이다. 나는 마음에 없는 예의는 차리지 않는다.”

주굉이 자신의 손도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아운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싸우는데 절차가 복잡하군.”

아운의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견오가 안색을 굳히면서 말했다.

“작은 명성을 얻었다고 오만방자하군 . 생사장이 왜 십사대고수와 비견되는지 가르쳐 주마 .”

아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틀렸다.”

“뭐가 틀렸단 말이냐?”

“생사장 견오가 당신인 줄은 몰랐다. 당신은 분명 강하다. 인정하지. 그러나 십사대고수와 견줄 수는 없다. 아주 오래전에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견오의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떠올랐다.

“네놈은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 ’

“자질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다. 비록 옛날에는 비슷했다고 해도 지금 십사대고수들은 당시와 비교해서 많은 발전을 하였다.”

“우리는 놀고 있었던 줄 아는가?’

“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자질에도 차이가 있고 익히는 무공의 크기도 다르다. 십 년 동안 당신이 이룬 경지가 십이라면 그들이 같

은 시간에 이룬 경지는 최소 백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견오와 주굉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아운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할 순 없 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넘어서기 위해서 지금까지 견디어 온 인고의 세월이 너무 억울했다.

“네놈이 어쩌다 명왕수사를 이겼다고 세상의 일까지도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는구나. 너를 죽여서 우리가 십사대고수보다 아래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하겠다.”

아운의 차가운 시선이 견오를 쏘아본다.

견오는 등풀이 시린 것을느꼈지만 애써 태연한표정을 지었다.

“지금돌아가면 살수 있다. 그러나 덤비면 죽는다.”

“광오한놈이군. 하지만거기까지다.”

견오의 신형이 아운을 향해 쏘아갔다. 그의 두 손에서 청색의 섬광이 어리며 아운의 얼굴과 심장을 향해 날아갔고, 동시에 주굉의 도끼가 직도양단의 기세로 아운의 머

리를향해 찍어 갔다.도끼에서 뿜어진 은은한 혈광이 노을처럼 번지며 허공에 아름다운 수를 놓았다. 한때 강호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혈부가 펼쳐진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아니었다. 견오와주굉의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노인들도 일제히 검을뽑아들고 언제라도 아운을 협공할 준비를 하였다.

제이백호대와 금룡단의 무사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천하의 살수라는 한상아도 처음으로 보는 절대 고수들의 대결 앞에 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흥분과 긴장감을 겨우 참고 있었다 .

아운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자리에서 단 한 발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견오의 생사장과 혈부의 혈기가 막 아운을 난도질하려는 찰나였다.

아운의 신형이 뿌떻게 흐려졌다. 그리고 그의 신형이 교묘하게 굴곡을 이루며 두 사람 사이를 빠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아운은 비응천각괴의 이형신기광의 신법을 펼쳐

견오와 주굉의 뒤에 있던 세 명의 노인을 공격해 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이형신기광은 섬광어기풍의 신법 중에서도 가장 빠른 신법 절기였다.

언제든지 협공할 준비를 하고 있던 세 노인은 갑자기 돌격해 오는 아운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세 노인은 장기인 삼절연환검진을 형성조차 하지 못하고 아운을 맞이해야만 했다. 아운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단 일 수에 아운의 양 주먹이 다섯 번이나 휘둘러졌고, 그 주먹들은 세 노인을 번갈아 공격하고 있었다.

아운은 단 한 번에 오호연환중첩권의 다섯 초식을 전부 펼친 것이다 . 실제 초식이라기보다는 다섯 식이라고 봐야 옳았다. 오호연환중첩권 자체가 하나의 초식과 비슷했던 것이다.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아운 주변 삼 장의 공간이 주먹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들어갔다. 세 노인은 검을 휘두르고 신법을 펼쳐 아운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단 일 권이기에 한 번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이어 밀려온 중첩의 강기는 그들의 검초를 무력화시키면서 내상을 입혔고, 연이어 펼쳐진 일권삼절풍, 낙성혼원기는 당황해 하는 두 명의 노인을 완전히 부수어 놓았다.

그들 중 살아남은 한 노인은 너무나 놀라서 땅바닥을 구르며 빠져나가려 했다. 그리고 놀란 견오와 주굉이 아운을 다시 한 번 협공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운의 신형이 칠보둔형의 보법으로 다시 한 번 두 사람 의 공격권을 벗어났고 뇌려타곤의 부끄러운 초식으로 아운의 공격을 피했다가 겨우 땅바닥에서 일어서려는 노인 앞에 다가섰다.

노인이 기겁을 하는 그 순간에 아운의 선풍팔비각이 노인의 가슴을 차버렸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노인의 눈이 뒤집어졌다. 그리고 아운이 돌아섰다. 마침 견오와 주굉이 이를 악물고 협공을 해오는 중이었다. 세 번째 협공이었다.

아운은 피하지 않고 주먹을 들었다.

변쩍 !

섬광이 일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초승달의 모습을 보았다. 초승달은 횡으로 누운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그 신비한 광경에 모두 넋을 앓고 있을 때 견오와 주굉의 몸이 천천히 분리되면서 쓰러지고 있었다. 단 일 권에 두 명의 절대 고수가 아래위로 분리되어 죽은 것이다. 모두 숨조차 함부로 쉬지 못했다.

한상아의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

‘이것이다 . 이것이 바로 절대 고수의 힘이구나. 나는 오늘 무의 진정한 경지를 보았다.’

한상아는 죽을 때까지 지금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이다.  살수는 음지의 무인들이다. 하지만 누구도 음지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양지의 무공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한상아 역시 당당한 무사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품고 살아 가는 살수였기에, 더욱 아운의 무공에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 그러나 이겼지만 아운의 모습은 그다지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이들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호연세가의 세력이든 맹주부의 세력이든, 다른 하나의 세력이 근처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이 있을까?'

아운은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제이백호대의 인물들 중 한명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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