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권. 6장 활근지액 (95/228)

6장 활근지액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자, 공야치 같은 놈

긴장하고 있던 금룡단원들은 흑칠랑이 축 처진 모습으로 눈까지 붉게 충혈된 채 돌아오자, 모두 괴이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그의 바로 뒤에 한 명의 아리따운 소녀가 나타나자, 더욱 이상한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엇다.

늘씬한 체형의 소녀는 이제 열입곱이나 되었을까?

후리후리한 키에 얼굴엔 보일 듯 말 듯한 잔상이 매력적인 소녀였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고 잇었다.

모든 시선이 흑칠랑에게 모아졌다.

누구냐고 묻고 있었다.

당연히 흑칠랑은 말할 수 없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어려 보이는 한상아의 외모도 문제였지만, 그녀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자신을 먹어 치운 소녀?

'으흐흐, 내 팔자야."

흑칠랑은 생각 같아선 한상아를 쫓아 버리고 싶엇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녀만 보면 맥이 빠지고 겁이 난다. 

조금 전 사건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호호. 여기가 랑 오라버니의 안가로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군요. 이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죠?"

이심방이 우영을 보고 말했다.

"랑 오라버니래. 그럼 교두님의 여동생인가?"

"무,무량수불. 그럴 리가? 저 얼굴에 어떻게 저런 동생이."

"가끔 불가해한 일도 있으니. 그럼 애인인가?"

순간 모든 시선이 이심방을 향했다.

그 시선들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ㅣ냐고 말하고 있었따.

아무리 봐도 흑칠랑의 검은 얼굴과 해맑고 아름다운 한상아의 모습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다.

흑칠랑은 대답도 안 하고 안가의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금룡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준비해라. 이제부터 모두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상대는 강하고 인원도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흑칠랑의 말에 금룡단원들은 모두 놀라서 그를 바라보다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햇다. 무기를 점검하고 운기를 하는 등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의 정체가 궁금했지만, 그들도 눈치가 있는지라 더 이상 묻지를 못했다.

단지 흑칠랑이 그녀를 제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서로 잘 아는 사이란 것만 눈치 챘을 뿐이었다.

한상아는 조금 놀란 듯 흑치랑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을 듣고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사실 그년는 자신에게 청부를 맡긴 자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쫓는 자들의 정체나 그들을 쫓는 이유에 대해서도 몰랐다.

청부자의 조건에 그런 점도 포함되어 있었떤 것이다.

단지 청부를 이행하다 보니 자신이 추적하는 자가 살수란 것을 알았고, 실력으로 보아 삼대 살수 중 한 명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그래서 혹시 흑칠랑이 아닐까 의심을 했던 것이다.

흑칠랑은 그녀의 시선을 모른 척하고 안가 안에 있는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한상아는 조금 망설이다 흑칠랑의 뒤를 따라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흑칠랑이 들어오자 북궁명과 야한이 얼른 일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선배. 그런데 나갔던 일은 어찌 되었습니까?"

"누군가가 안가를 정찰하고 돌아갔다. 이제 공격이 시작되겠지. 우린 이 안에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비밀통로로 빠져나가서 도망을 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선배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도망을 가도 문제고, 여기서 적을 상대하는 것도 역부족일 것같다."

흑칠랑의 말을 듣고 있던 야한은 뒤이어 들어오는 한상아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누구?"

흑칠랑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이때 한상아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칠랑 오라버니의 연인이랍니다."

북궁명과 야한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하며 흑칠랑을 바라본다.

특히 야한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선배,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그렇지 저렇게 어린 소녀를. 대체 선배의 나이가 몇이오. 혹시 강제로?

흑칠랑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이런 씨앙. 그렇지 않아도 돌아버리기 직전인데, 너 죽을래?

흑칠랑의 이해할 수 없는 살벌한 전음에 야한은 빠르게 입을 다물고 얼른 한상아에게 다가서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둘은 살수.

그것도 삼대 살수 중 두 명이었다.

서로 상대의 기를 읽은 둘은 멈칫거렸다.

야한이나 한상아나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흑칠랑은 둘응ㄹ 흘낏 본 다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쪽은 한상아, 그리고 여긴 야한. 서로 잘 알 테니 더 이상 소개는 안 하겠다."

한상아와 야한의 눈이 커졌다.

설마 상대가 자신과 같은 삼대 살수 중 한 명일 줄이야.

특히 야한은 한상아의 나이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에 더욱 놀랐다. 그런데 한상아와 흑칠랑이 서로 아는 사이였다니. 더군다나 이런 중요한 곳까지 대동하고 들어올 정도라면, 서로 대충 아는 사이가 아니란 뜻이었다.

"야한입니다. 그런데 무지 어리게 보이십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고, 그때의 모습을 간직하며 원한을 키우기 위해 특수한 무공을 익혔답니다. 그러니 이해하세요. 호호, 그런데 제가 나이가 조금 많으니 동생이라 해도 되겠죠?"

흑칠랑은 그 말을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 말을 거부하기가 힘들었지만, ㅣ무엇인가 맺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특히 흑칠랑이 한상아를 몹시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을 보자, 더욱 그 계감이 강해졌다.

흑칠랑을 잘 아는 야한으로선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흑칠랑은 그냥 눈을 질끈 감고 말앗따.

한편 옆에서 지켜보던 북궁명은 두 사람의 이름을 듣는 순간 무엇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한상아와 야한, 무림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이름들이었다.

보통 살수들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다니지만, 유일하게 삼대 살수들만은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세상에 밝히고 다녔다.

북궁명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서, 설마.... 이들이 그럼 삼대 살수?"

한꺼번에 흑칠랑의 정체까지 파악하는 순간이었다.

흑칠랑은 북궁명의 표정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었다.

"이쪽은 북궁가의 자제인 불궁명. 자네는 우리의 정체를 비밀로하게."

북궁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흑칠랑의 말은 자신의 짐작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그럼......진짜......"

"그렇게 되었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자네 매형에게 물어보게. 난 지금 내 일만으로도 골 아프니까."

흑칠랑이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가 북궁명이라고 하자 한상아는 북궁명보다 더욱 놀랐다.

실제 북궁명의 명성은 결코 삼대 살수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검왕의 손주니, 그것만으로 그의 이름은 이미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검왕의 후계자를 여기서 보다니. 호호, 정말 영광입니다."

북궁명은 얼른 예를 취하며 말햇다.

"무영사의 명성은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어찌 북궁가의 명성과 견주겠어요. 호호, 그런데 어찌 극과극인 분들이 함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흑칠랑과 야한 그리고 북궁명의 시선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아운에게로 향했다. 한상아의 시선도 아운을 향했다.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오라버니, 이분은 누구인가요?"

흑칠랑은 여전히 한상아가 부담되는 듯 우물쭈물했고, 야한이 대신 대답했다.

"그분은 권왕입니다."

한상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그녀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더이상 커지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커진 그녀의 눈은 새삼 아운을 다시 보고 또다시 본다.

천하를 경동시킨 아운의 명성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쫓던 사람이 권왕일 줄이야.

'이런 썅, 하마처면 죽을 뻔했잖아.'

그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제아무리 삼대 살수 중 한 명이라고 해도 명왕수사를 일 대 일 대결로 죽인 아운과 비교할 숭ㄴ 없엇다. 더군다나 명왕수사를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강호에 파다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엇다.

적이면 여자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은 아운의 매서운 성격도 이미 너무나 유명했다. 제아무리 대담한 한상아라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만약 자신이 쫓아야 하는 적이 권왕인 줄 알았다면 절대로 청부를 맡지 않앗을 것이다. 모르고 맡았기에 흑칠랑을 만났으니,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신이 들자 그녀는 흑칠랑을 바라보았다.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대체 어떻게 아운과 함께 있단 말인가?

흑칠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결투를 하기로 한 사이다. 나의 유일한 적수지."

"에에에....???"

한상아는 턱이 빠질 뻔했고 야한과 북궁명은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북궁명은 흑칠랑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실력이 아니라 그 외의 것으로.

한상아는 겨우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럼 명왕수사와의 대결에서 권왕도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군요."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지금 밖에 있는 무리들은 권왕을 해하려는 자들이고, 조금 전의 청년들은 무림맹의 금룡단이겠죠?"

흑칠랑이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

"그럼 적은 권왕의 무공을 감안하고 준비를 했을 텐데, 어떻게 상대를하려는 것이죠?"

흑칠랑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흑칠랑 역시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도망을 칠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싸울 것인지를 의논하기 위해 돌아온 참이엇다.

하지만 무엇을 택하든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빠져나갈 길이 막막했다.

한상아 외에도 사찰을 염탐하고 돌아간 자가 있으니 곧 적이 공격해 올 것이다. 한상아는 권왕을 바라보았다.

"결국 권왕을 회복시키는 방법밖에 없군요."

그걸 누가 모르나?

"그런데 오라버니, 이제 그들이 공격을 해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

모두 그녀를 바라보앗다.

한상아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보며 야한이 희망을 품고 물었다.

"혹시 방법이 있습니까?"

"어쩌면."

"그게 무엇입니까?"

"공짜로 알려 달란 말인가요/ 난 그냥 도망치면 그만인데."

얀한과 흑칠랑 그리고 북궁명이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북궁명이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하며 말했다.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해드릴 수 있는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드리겠습니다."

한상아가 상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뭐,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칠랑 오라버니가 제게 사과를 하고 부탁한다면 방법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북궁명과 야한의 시선이 흑칠랑을 향했다.

흑칠랑은 떨떠름한 표정에 불안한 시선으로 한상아를 바라보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 속고 있었지만, 그만은 한상아가 얼마나 상식 밖의 여자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야한이 흑칠랑을 보면서 말했다.

"선배, 뭔지는 몰라도 남자가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흑칠랑은 울화가 치밀었다.

대체 뭘 사과하란 말인가?당하기(?) 전에 도망간 것을 사과하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사정을 말할 순 없었다. 그건 너무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런데 흑칠랑을 바라보는 북궁명과 야한의 시선이 야릇했다.

그 표정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보가 아니라면 짐작할 수 있을 정도 였다.

'쯧, 무지 껄떡거렸나 보군.'

하는 표정들이었다.

흑칠랑은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도 없엇다. 하지만 정말 억울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만만하게 누워 있는 아운을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저놈을 위해서.'

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남자라면 시작한 일의 끝은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지금 생각해 보니, 아운이 살아나지 못하면 자신도 죽는다. 지금 공격해 오는 자들이 자신을 살려 놓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미,미안하다. 그리고 부탁한다."

"호호호, 뭘 그 정도로요.  하지만 오라버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마세요. 소녀도 처음이었답니다. 뭐 당연하지만."

흑칠랑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뜨거워졌고, 야한과 북궁명은 궁금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본다.

한상아는 사뿐사뿐 걸어와서 품 안에 있는 작은 옥병을 꺼내 들었다. 마개를 뺀 다음 아운의 입을 벌리고 그 안의 액체를 흘려 넣었다.

손으로 목의 혈을 쳐서 약이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 다음, 마개를 닫고 옥병을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이건 제가 우연히 구한 활근지액이에요."

한상아의 말을 들은 흑칠랑과 야한 그리고 북궁명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활근지액이라면 그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명약이아.

비록 그 액체를 마시고 몇 십 년의 내공이 불어나거나 하는 영약은 아니지만 내, 외상을 치료하는 데엔 천고의 명약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팔십 년 전, 무림의 명의로 알려진 천수신의가 만든 것으로 아주 적은 양만이 남아 있다고 알려진 것이었다.

특히 활근지액은 내공을 북돋아 주고 원기를 회복해 주며, 아무리 심한 내상이라도 숨만 붙어 있으면 완치시킬 수 있다고 소문난 명양ㄱ이었다.

그들도 소문만 들었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귀중한 것을 쉽게 내놓는 한상아가 오리혀 신기할 정도였다.

야한은 흑칠랑과 한상아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앗다.

'체 어떤 사이기에 저런 귀중한 것을......'

북궁명은 감격한 표정으로 포권지례를 하면서 말햇다.

"여협께서 큰마음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매형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아 드리겠습니다."

한상아는 북궁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엇다.

"호호, 정파라 자처하는 자들 중엔 오히려 악인보다 더 지독한 자들이 많아서 잘 믿지 않아요. 하지만 칠랑 오라버니와 권왕의 얼굴을 보고 믿어 줄게요."

북궁명은 씁쓸하게 웃었다.

한상아는 권왕을 힐끗 쳐다보며 야릇한 미소르 지었다.

'칠랑 오라버니를 지금처럼 살수로 놔둘 순 없다. 앞으로 무림은 권왕의 세계가 될 확률이 가장 높으니, 칠랑 오라버니를 위해서도 그의 그늘 밑에 있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마다하겠는가. 더군다나 지금처럼 어려울 때 권왕에게 은혜를 베풀어 놓으면, 반드시 그 이상의 이득이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권왕이 없으면 오라버니도 살아남기 힘든 상황.'

그녀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판단하고 기꺼이 명약을 내놓은 것이다. 이때 통나무집 문이 벌컥 열리며 이심방이 뛰어들엇다.

"공격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북궁명이 벌떡 일어섰다.

단주가 없다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 여기는 제이교두님과 한상아님께서 남아 주십시오. 제일 교두님은 저를 도와 적과 싸워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지."

흑칠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한상아도 따라 일어서며 말햇따.

"저는 칠랑 오라버니 옆에서 함께 싸우겠어요."

흑칠랑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싫어도 싫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북궁명이 미안한 표정으로 한상아를 보면서 말했다.

"도움에 감사합니다."

한상아는 북궁명을 보고 만족한 표정으로 대답햇다.

"호호, 구닥다리들처럼 괜히 빼지 않아서 보기 좋네요. 자, 어서가요."

그녀의 신형이 밖으로 사라지자, 흑칠랑과 북궁명이 그 뒤를 따랐다.

금룡단원들이 모두 모여 있엇다.

북궁명은 그들 앞에 서서 금룡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의 적은 강하다. 그러나 우리는 금룡단이고, 우리의 단주님은 권왕이시다.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 새롭게 무에 눈을 떳으며,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적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는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금룡단원들의 눈이 빛났다.

권왕 아운이 싸우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갑자기 가슴에 호연지기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엇다.

그 모습을 보면서 흑칠랑과 한상아는 다시 한 번 북궁명을 바라 보았다.

흑칠랑은 북궁명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역시 맹호의 자식이란 말이지.'

북궁명은 금룡단의 사기를 진작시킨 다음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다행이라면 여기 한 여협의 도움으로 단주님의 내상이 회복직전이다. 앞으로 반 시진이다. 반 시진 후면 단주님이 부상에서 회복 되실 것 같다. 그때까지만 살아 있으면 된다."

"와아아!"

금룡단의 사기가 더욱 올라갔다.

권왕이 돌아온다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그들이었다.

북궁명은 흑칠랑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을 교두님의 구역입니다. 교두님께서 지시를 내리면 저희가 따르겠습니다."

흑칠랑은 북궁명을 바라보았다.

가장 적절한 조치엿다.

이곳에서 싸우려면 자신의 지시를 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자신이므로.

부단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하고 지휘권을 넘길는 북궁명은 많은 부분에서 성장해 있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시작이다."

흑칠랑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한상아가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6-2

비밀통로와 연결된 지하는 몇 개의 나무로 만든 작은 건물 안에 있었다.

현재 통로 안을 통과해서 들어오고 있는 자들은 장로원의 수하들 오십여 명과 호연세가의 수하들 오십여 명을 비롯한 백여 명이 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호연세가의 비밀 세력이자 밀각의 고수 중 한 명인 구환명 공야치였다.

밀각은 현재 호연세가의 가장 중추적인 세력이었고, 호연세가의 꿈과 모든 희망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공야치는 이전에 아운에게 죽은 소구환명 양묘의의 사부였다. 천각 백호단의 부단주였던 양묘의는 묵소정을 납치하려다가 아운에게 죽임을 당했다.

제자를 잃고 복수의 기회만 노리던 공야치에게 있어서 지금은 하늘이 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살수의 안가답게 비밀통로 안 여기저기에는 기관과 함정이 도사리고 잇었다.

공야치는 그 지독함에 치를 떨었다. 결국 그들이 비밀통로를 거의 다 통과할 때쯤엔 무려 이십여 명이 죽고 십여 명이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엇따.

그러나 공야치는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죽은 자들은 장로원에서 온 자들이 대부분이엇다.

그들이 죽거나 말거나 공야치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어차피 장로원에서도 죽어서 증거가 남을 수 있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를 비롯한 장로원 예하 문파의 수하들은 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중이떠중이를 모아 만약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소모용 무사들을 보냈을 뿐이엇다. 이들이 죽어도 장로원의 동심맹을 눈도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공야치 일행이 거의 비밀통로의 끝까지 왔을 때였다.

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비밀통로가 한꺼번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로의 양옆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왓다. 한눈에 독인 것을 알아챘다.

"이런 제기랄. 어서 피해라!"

고함과 함께 공야치의 신형이 비밀통로의 출구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뒤를 살아남은 장로원의 수하들과 호연세가의 수하들이 뒤따랐다. 그의 뒤를 살아남은 장로원의 수하들과 호연세가의 수하들이 뒤따랐다.

쾅아! 하는 소리와 함께 비밀통로의 문짝이 날아가면서 나무로 만들어졌던 작은 건물도 함께 날아갔다. 그리고 허공으로 둥근 물체 하나가 튀어 올랐다.

구환명 공야치였다.

보통 무림의 사람들은 그를 대구환명, 그의 제자를 소구환명이라고 불렀다. 마치 겁구이 등처럼 딱딱한 강기가 그의 전신을 가리고 잇었다 강호의 유명한 절기인 구환명공을 펼친 모습이었다.

공야치가 막 땅에 발을 디디고 구환명공을 풀 때였다.

서늘한 검기가 그의 목을 노리고 날아왓다.

기겁을 한 공야치는 뒤로 물러섬녀서 허리에 찬 검을 뽑아 휘둘럿다.

차르릉!

맑은 쇳소리와 함께 공야치의 검과 흑칠랑의 검이 허공에서 출돌했다.

"크윽!"

흑칠랑의 신형이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혈궁대전 이전의 전설적인 고수 구환명 공야치의 무공은 흑칠랑이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흑칠랑은 겁먹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혹 그 유명한 공야치 선배가 아니시오?"

공야치는 괴이한 표정으로 흑칠랑을 보면서 말햇다.

"나를 알다니 기틀한 후배로군."

"흐흐, 그거야 당연히 알 수 밖에 없지. 우리 사부님이 말씀하시길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자를 일컬어 공야치 같은 놈이라고 한답디다."

공야치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놈, 죽어도 그냥 죽이지 않겠다."

"당연히 칼로 쳐 죽일 생각인가 보구려. 잘 해보슈."

"이놈."

고함과 함께 공야치의 검이 흑칠랑의 목을 노리고 쏘아 갔다. 흑칠랑은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서며 검을 교묘하게 휘둘렀다. 공야치의 검을 정면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흘려보낸 것이다.

"이거 뭐, 무공도 별로인 것 같소."

흑칠랑의 빈정ㄹ거리는 소리에 공야치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린놈이 죽고 싶냐!"

흑칠랑이 뒤로 다시 물러서며 이죽거렸다.

"난 죽고 싶지 않소.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나 가보는 것이 어떻소?"

"이노옴!!"

공야치의 검이 무섭게 회오리치며 흑칠랑을 몰아갔다.

흐길랑은 겨우 그 공격을 막으면서 무려 십여 걸음이나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자리에 멈추었다.

등 뒤의 거대한 나무 때문에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섯 군데나 상처를 입은 흑칠랑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공야치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흑칠랑은 허겁지겁 나무 뒤로 숨어려 햇다.

"놈, 늦었다."

공야치의 검이 파리한 섬광을 허공에 뿌리며 흑칠랑의 심장을 겨냥하고 찔러 갓다. 흑칠랑은 뒤로 몸을 젖혀 나무 뒤편으로 쓰러지면서 겨우 그 일 검을 피해 냈다. 그러나 겨우 일 검을 피했을 뿐이었다.

공야치의 검이 허공에서 기묘한 호선을 그리며 아래로 향했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공야치의 동작이 멈추었다. 그의 검은 흑칠랑의 코앞까지 와 있었고, 흑칠랑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멍하니 공야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공야치의 머리엔 검 한 자루가 박혀 있었다.

거대한 나무의 줄기가 흐릿해지면서 한상아가 나타났다.

"늙은이가 멋대로 날뛰다가 죽었군."

코웃음을 치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흑칠랑은 멍하니 한상아를 바라보았다.

둘은 이미 약속을 하고 나타난 무리 중 수장을 상대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흑칠랑은 설마 상대가 전대의 고수인 구환명 공야치일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덕분에 흑칠랑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다.

공야치로선 흑칠랑이 계속 이죽거리는 바람에 잔뜩 화가 나 있던 상태라, 미처 한상아가 나무의 모습으로 은신해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공야치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휴, 정말 죽는 줄 알았네."

흑칠랑이 한숨을 내쉬자 한상아가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오라버니의 무공은 정말 대단해요. 이 늙은 거북이를 상대로 그 정도나 겨룰 수 있다니."

한상아는 정말 감탄한 표정이었다.

사실 공야치의 명성을 생각하고 그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살수인 흑칠랑이 그와 정면으로 겨루어 무려 사십여 합이나 싸운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흑칠랑은 그 칭찬이 별로 반갑지 않았다.

조금 전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저릿해 온다.

"금룡단을 도와야겟어."

흑칠랑이 벌떡 일어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