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十二 章
철타귀이(鐵打鬼耳)
-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아운과 금룡단이 무림맹을 나가고 이 개월이 흘렀다.
맹주부의 사마무기를 비롯해서 호연세가의 정보원들 그리고 장로원의 중추
세력인 동심맹의 정보원들은 사력을 다해서 아운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운을 찾을 수 없었다.
아운을 찾던 인물들은 차츰 초조해져 가고 있었다.
그 동안 탕룡광마 우칠의 명성은 아운의 이름과 함께 무림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이제 최고의 후기지수를 말할 때 최고의 고수가 삼룡삼봉이라고
하던 시절은 갔다.
권왕 아운이야 이미 삼룡삼봉과 같이 말할 수준은 이전에 넘서 섰고, 우칠을
일컬어 일광이라 하여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고수로 꼽는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일왕을 포함한 십오 대 고수가 있었고, 그 뒤를 잇는 후기지수들로
일광삼룡삼봉(一狂三龍三鳳)이 있다고 하였다.
그 중 가장 고수가 일광이라는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연세가의 설비향도 북궁연을 건들지 못했다.
설비향의 명령으로 다시 한 번 아운의 행방을 물으면서 은근히 우칠을 떠
보려 했던 가신 두 명이 우칠의 철봉에 폐인 된 후론 완전히 포기했다.
우칠의 존재가 걸렸던 것이다.
자칫하면 일이 크게 번질 것을 우려한 호연란은 당분간 북궁연을 건들지
않고 무림맹 밖에 있는 권왕을 먼저 치기로 결정하였다.
어차피 권왕만 없으면 상황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렇듯
우칠의 존재는 무림맹 안에서 무력의 저울추를 미묘하게 만들어 놓았따.
사마무기나 설비향은 그래서 더욱 초초했다.
사라지기 전에 아운이 무엇인가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사실도 짐작하였다.
우칠의 존재가 그것을 확인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운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백이십여 명의 금룡단원과 함께.
맹주부와 호연세가 그리고 장로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운의 존재가
커져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칠의 힘은 곧 아운의 일부인 것이다.
무림맹의 부맹주인 조원의와 군사인 사마무기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한 명의 서생이 앉아 있었다.
언뜻 보아도 여자처럼 아름답게 생긴 남자는 몸매조차 호리호리해서 잘만
꾸면 놓으면 여자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가에 훈훈한 미소까지.
비록 나이는 중년으로 보였지만 여린 몸매 속의 살은 희고 근육은 탄탄했다.
이 연약하게 보이는 중년서생 앞에서 무림맹의 부맹주와 사마무기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사형이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올 시기다 다 되어 가는데 일은 자꾸
꼬이는군."
사마무기가 더욱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칸. 제가 모자라서 그렇습니다."
서생이 사마무기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번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문제는 말일세, 아직도 구천혈맹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중원의 상황도 권왕 한 명으로 인해 이상하게
변질되어 간다는 것일세. 아직은 아니지만 권왕이란 존재가 자꾸 마음에
걸려. 언제 폭풍이 되어 다가올지 모르는 자란 말일세."
"어차피 패도문으로 올 것입니다. 권왕은 받드시 그 곳으로 올 것이니
거기서 기다리면 됩니다."
"내가 나온 것을 세상이 알리는 곳으로도 그 곳이면 적당하겠지.
마침 피가 그립던 참인데 딱 좋은 장소군. 호연 늙은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권왕이 숨어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점일세."
"아무래도 안가로 숨어 든 것 같습니다."
"살문의 안가 말인가?"
"그렇습니다. 지금처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지듯이 사라질 수 있는
곳이라면 안가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권왕은 칠초무적자의 후예가 아니라 살수의 후예란 말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운의 수하들 중에 살수로 보이는 자가 둘이나 있다는
정보입니다. 어쩌면 그 중 한 명이 흑칠랑이나 야한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난 패도문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겠네. 그리고 상황을 보아
행동하기로 하지. 자네들은 북궁세가와 우칠이란 아이를 잘 다스리고 있게.
그리고 와룡은 흑룡과 다투지 말게나. 더 이상은 곤란하네. 만약 다시 한
번 두 사람이 다툰다면 북궁연 그 계집의 목을 비틀어 버릴 것이네."
사마무기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얼른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믿겠네. 나는 이만 가네."
중년의 서생이 일어서자. 조원의의 얼굴에 조금 안도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사숙께서 가시니 권왕은 죽은 거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중년서생은 입가에 고소를 머금고 말했다.
"재미있었으면 좋겠는데. 권왕이란 아이가 나의 무료함을 달래 줄 수 있을까?"
명왕수사(明王殊死) 고구의 얼굴에 기대라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보는 조원의와 사마무기는 권왕이 명왕수사에게 십 초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조원의는 명왕수사 고구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혈궁칠사란 그냥 얻은 이름이 아닌 것이다.
아운 일행이 무림맹을 나온 지 삼 개월이 다 되어 가는 어느 날 오전,
하남성 개봉으로 가는 산 속 길로 사십여 명의 인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북송의 수도로서 동경이라 불리던 개봉은 무림인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십만 개방의 총타가 개봉에 있기 때문이었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일행 중 맨 앞에 선 인물은 바로 흑칠랑이었다.
아운은 안가에서의 수련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살수의 길을 따라
산동성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일행 중에는 하인이 된 금룡단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운은 그들이 방해가 된다며 안가 안에 가두어 놓고 온 것이다.
내공을 제압한 후 당분간 살 수 있는 식량만 던져준 채로.
일행의 맨 뒤에 따르는 인물은 몽진과 소걸개 이심방이었다. 몽진은
무엇인가 생각에 골몰하는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안가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내 생각에 잠겨 있는 몽진을 이상한 시선으로
보던 이심방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쳇! 뭐가 그리 고민이 많은 거요. 나도 좀 압시다."
몽진의 나이는 이심방보다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중이라 형이라고도 못하고, 그렇다고 친구로 삼을 수 있는 나이차도
아니었다.
몽진은 잠시 이심방을 보았다가 다시 아운을 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아미타불, 참으로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거지시주."
이심방은 더욱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궁금하다니, 대체 뭐가 궁금하다는 말이요."
"우리를 이렇게까지 강하게 만들려는 단주님의 의도 말입니다."
"그거야 철혈사자대와 겨루기 위해서 아니겠소. 권왕의 자존심상 자신의
수하가 철혈사자대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고."
"아미타불, 단주님의 성격에 그 대결을 받아들인 것부터가 이상하단
말입니다. 단주님의 성격이라면 무시하고도 남을 텐데 말입니다. 결코
체면 따위에 움직일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심방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권왕의 성격이라면 '미친놈, 내가 뭐 하러 그 짓을 하냐?'
그 말 한마디면 족할 사람일 것 같기도 했다.
"몽지나한님,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해 보십시오. 이 거지가 궁금해서
머리가 터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요."
"아무래도 단주님은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 계획 속엔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미리 말하고 도움을 청했을 것 아닙니까?"
이심방의 말에 몽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쫓아오던 안 쫓아오던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정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즉, 그의 뜻을 따르고 안 따르고는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몽진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심방이 말했다.
"혹시 몽진나한님은 풍룡백인대와의 대결 때 들었던 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이심방도 그 말을 가슴에 새겨 두고 있었던 듯싶었다.
"아미타불,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내 생각해 보았지만, 그때 들은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고 지금 혈궁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내 생각이 틀림없다면 단주님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냥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무엇인가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바란다면 단주님의 계획이 정의롭기만을
바랄뿐입니다."
묵묵히 걸어가던 이심방이 조금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단주님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단주님의 행동을
하나씩 집어보면 의외로 대협의 면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비록
행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과 다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효과가 더욱 뛰어나고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단지 그로 인해 드러날 사문과
무림맹의 수많은 치부들이 무서울 뿐입니다. 단주님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나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사문의 치부가
그저 별거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참으로 어렵습니다. 단지 근래 들어 드는
생각이라면, 단주님만이 무림을 정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봅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단주님 같은 분이 나타난 것도 하늘의 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무림맹은 너무 비대하고, 맹주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호연세가는 자신의 영달이 목적이고,
장로원은 권력의 노예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것은 거지도 알고 이 땡중도
아는 사실입니다. 이때 단주님이 나타났고, 그들과는 완전히 등을 진
상황입니다."
소걸개 이심방의 얼굴은 더둑 어두워졌다.
항상 웃음을 걸고 사는 이심방의 모습에 비한다면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몽진나한은 그의 마음을 능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아운의 행보와 사문의 문제가 자꾸 갈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일 것이다.
정작 두려운 것은 그 안에 내재된 수많은 문제들이었다.
그걸로 인해 사문과 권왕 아운은 이미 충돌하고 있었다. 그것이 표면화
되었을 때 자신들은 어떻게 해동해야 할 지 벌써부터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흑칠랑이 걸음을 멈춘 것은 그때였다.
흑칠랑이 걸음을 멈추자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본다.
흑칠랑은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아운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싸움 구경이라면 그냥 갈 수 없지. 그 보다도 어떤 도적이기에 대 낮에
관도 위에서 사람을 죽이려 드는지 봐야겠네."
흑칠랑은 아운의 말을 듣자 두 말하지 않고 앞장서서 신법을 펼쳤다.
그 뒤를 이어 아운과 야한 그리고 금룡단 전원이 신법을 펼치며 그 뒤를
쫓았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개봉으로 향하는 제법 넓은 관도였다.
그 곳엔 약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마차 하나를 둘러싸고 공격하는 중이었다.
약 십여 명의 호위무사들이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벌서 여섯이나 죽어
있었고, 겨우 네 명만이 창과 검을 든 채로 복면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적잖은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네 명의 호위무사들 중 위맹하게 생긴 중년인이 이를 부드득 갈면서 말했다.
"네 놈들은 이 마차 안의 주인이 누군인지 알고 있느냐?"
복면인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알지. 이젠 낙향한 지방 관리의 딸로 제법 예쁘장하단 것까지. 그래서
그 계집이 필요한 것이다."
"네 놈들은 아가씨를 납치해서 무엇을 하려 하는 것이냐?"
"세상엔 말이다. 돈이 썩어나는 자식들이 많고, 그 자식들은 조금 반반하고
제법 귀티 나는 계집을 좋아하거든. 그리고 우린 그 자식들의 돈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중년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빛났다.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 것이다.
"네 놈들은 국법이 무섭지도 않단 말이냐?"
"그 자식, 누가 관리 출신 아니랄까봐 별 소릴 다하네. 아차피 네놈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고 계집과 시녀들은 모두 세상에서 사라질 텐데 누가 안단
말이냐? 후후, 그러니 괜한 방항은 하지 마라!"
중년인은 분한 표정으로 복면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의 무공은 자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사방에 죽어 있는 수하들의 시체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중년인과 말을
나누던 복면인이 동료들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빨리 끝내라!"
복면인들이 신형을 날려 마차를 호위하는 호위무사들을 공격하려 할 때였다.
"쯧, 대낮부터 잘하는 짓이다."
나직했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크기의 목소리였기에 복면인들은
주춤하였다.
한 명의 청년이 그들과 이 장의 거리를 두고 나타나 있었다. 보고 있던
아운이 나타난 것이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기적조차 느끼지 못했다.
당황한 복면인들은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복면인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나타난 청년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명령을 내렸던
복면인이 아운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빨리 사라져라! 괜한 일에 끼어들다가는 목숨이
열개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걸걸한 복면인의 목소리에 아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협박에 능숙한 걸 보니, 하루 이틀 일해 본 솜씨가 아니군. 요즘 거지들은
비러질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강도질로 먹고 사는 모양이군."
아운의 말에 복면인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무슨 말은, 네 놈의 기운이 내가 아는 거지랑 비슷해서 말이지. 아무래도
같은 류의 내공을 터득한 것 같아서 한 말이다."
아운은 불괴수라기공과 십단무극신공의 효능으로 상대의 기감을 판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불괴수라기공은 최고의 살수무공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눈감고도 찾을 수 있는
무공이었다.
그것은 상대의 체위, 그리고 그 사람의 독특한 기운, 목소리 등을 구분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상대의 무공이 지닌 기운을 감지하고 구분하는 방법이 가장
쉽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불괴수라기공은 독보적이라고 봐야했다.
아운은 소걸개 이심방의 내공과 복면인의 내공이 같은 종류임을 한 눈에
알아본 것이다.
소걸개라면 개방십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소걸개가 익힌 무공은 단연히 개방의 독문 무공일 것이고, 눈앞의
상대 역시 그렇다는 말과 같았다.
다시 말해서 상대는 개방에서 상당한 직분의 인물인 것이다. 그의 내공이
소걸개에 못지않았던 것이다.
복면인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운은 자신의 짐작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네 놈은 누군데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내가 누군지 말하면 네 놈도 누군지 말하겠느냐?"
복면인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누군지 말해서는 당연히 안 된다.
"저 헛소리 하는 놈부터 죽여라!"
우두머리 복면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 명의 복면인이 마차 일행을
감시하고 그 외의 복면인들이 아운을 향해 다가왔다.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아운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복면인들이 놀라서 두리번거릴 때였다.
"나를 찾나?"
우두머리 복면인의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모두 기겁을 해서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몸이 굳어
버렸다.
언제 어떻게 상대가 움직였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아운은 우두머리 복면인의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복면인의 뒤통수에 대고 있었는데, 마음만 먹었다면
우두머리 복면인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
아운은 손바닥으로 복면인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넌 누구냐?"
복면인들은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 중에 가장 강한 자가 언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고 당한 것이다.
우두머리 복면인은 하마터면 오줌을 지를 뻔하였다.
복면인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말 안 해도 아는 수가 있지."
아운은 손이 단룡십팔수 안의 교룡출나(膠龍出羅)로 복면인의 마혈을
제압하였다.
단 일 수에 제압당한 복면인은 다른 복면인들을 돌아보며 고함을 질렀다.
"도망가라! 가서 이 사실을 알려라!"
명령이 떨어지자 복면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그들은 신형을 날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하였다.
사방에서 그들을 포위하고 나타난 인원들이 무려 사십여 명이었다.
숨어 있던 금룡단원들이었다.
그들은 아운의 지시로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운의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제압하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십여 명의 금룡단이 복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제압당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우두머리 복면인은 나타난 무리가 순식간에 자신의 수하들을 제압하자 크게
놀란 듯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당황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복면인들을 모조리 제압하자 아운이 우두머리 복면인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네 놈이 누구인지 말해라!"
복면인은 냉랭한 말투로 대답하였다.
"내가 누군지 알면 네 놈은 크게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얼른
나를 풀어주고 이 일에 끼어들지 말라!"
아운은 더 이상 말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거지 나와라!"
아운의 명령이 떨어지자 길가의 숲에서 소걸개 이심방이 나타났다.
그는 아운의 전음을 받고 명령이 있을 때까지 숨어 있던 참이었다.
이심방을 본 복면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곧 당당한 눈빛으로
변했다. 오히려 더욱 당당해진 시선으로 소설개를 본다.
아운은 그것을 보고 복면인에게 말했다.
"후후, 내가 보기에 네 놈도 개방도가 분명하니, 소걸개를 잘 알겠지.
거지, 이 자식의 복면을 벗겨라! 대체 뭐 하는 놈인데 대낮부터 여자를
납치하려 하는지 알아야겠다."
아운의 명령을 받은 소걸개는 우두머리였던 자의 복면을 벗겼다. 그러자
약 삼십 세 정도의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상당히 청수한 모습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양쪽 귀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 조금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청년을 본 소걸개 이심방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소걸개는 누구인지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와, 왕 사형."
청년이 흉측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오랜만이다. 육사제. 그런데 나를 제압한 자가 누구냐? 감히 대
개방의 일에 방해를 하다니."
소걸개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아운을 바라보았다.
아운이 물었다.
"누구냐?"
"저의 삼 사형입니다."
"삼 사형? 철타귀이(鐵打鬼耳) 왕방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소걸개 이심방의 말에 금룡단원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새삼스럽게 왕방을
바라보았다.
철타귀이 왕방은 개방의 후기지수인 개방십걸의 세 번째로, 개방의 장문인인
지개(地開) 운중화의 세 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개방십걸의 한 명이라고 해서 아운이 기가 죽을 일은 전혀
없었다.
"허."
아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왕방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개방의 일대 제자 중에서도 알아준다는 후기지수가 왜 백주대낮에
여자를 납치하려 했단 말인가? 그 보다도 아운은 왕방의 눈가에 가득한
사악한 기운을 읽고 놀랐다.
명문 정파의 제자가 지닐 수 있는 기운이 아닌 것이다.
아운이 기가 차서 말을 못하자, 왕방은 자신이 개방의 직전 제자란 사실에
놀라서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조금 더 의기양양해졌다.
왕방은 화가 난 표정으로 아운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 놈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겠다. 그러나 여기 개봉부는 개방의 영역이다.
개방이 하는 일에 끼어들지 말고 빨리 나를 풀어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은 살아서 개봉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운 차가운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왕방을 바라보았다. 아녀자를 납치하려던
자 치고는 너무 당당했다.
아운의 성격을 잘 아는 소걸개 이심방의 얼굴이 참혹하게 변했다. 무림맹의
안방에서 한 행동을 생각한다면, 개방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도 왕방이
무사하긴 힘들 것 같았다.
사실 지금 상황은 소걸개 이심방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체
개방에서 여자를 납치해서 어디다 쓰려했단 말인가?
아운은 왕방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마차의 호위무사였던 장년인에게
걸어갔다.
장년인은 죽었다 살아난 상황이었지만, 침착하게 인사를 하였다.
"상명운이 은인께 인사 올립니다."
뒤에 엉거주춤 서 있던 세 명의 호위무사들도 얼른 인사를 하였다.
뒤이어 마차 안에서 세 명의 여자가 걸어 나왔다.
상당한 미모의 여자와 두 명의 시녀였다.
여자는 아운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소녀 고희란이 은인께 감사드립니다."
아운은 잠시 상명운과 고희란을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인사는 나중에 받겠소. 먼저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개방의 인물에게
원한을 진 일이 있소? 아니면 어떤 은원 관계라도?"
상명운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가씨의 아버님은 호북성의 작은 현에서 지현(知縣, 정칠품) 벼슬을
하시던 분으로, 이번에 고향인 산동성의 제남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저는 아가씨를 모시고 먼저 가는 중이었는데, 지현 어른께서는 개봉 쪽엔
아시는 분도 없거니와 개방의 방도들 역시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 저자도 단순히 아가씨의 미모를 보고 납치한다고 했었지,
어떤 은원문제 때문은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왕방이 한 말은 아운이나 일부 금룡단원들도 들은 이야기였다.
소걸개 역시 그 말을 들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걸개는 그 말을 들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실력이 안 되면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이미 무림에서는 자신이 금룡단에 들어갔고, 금룡단의 단주가 권왕 아운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쯤은 권왕 아운의 성격을 모르는
무림인은 없을 것이다.
개방이 대단하지만 권왕의 권위가 그 보다 못하지 않았다.
아니 천하 십오 대 고수 중 한 명이 아닌가? 이미 무림맹의 맹주에 버금가는
명성을 지닌 아운이었다.
세상의 정보에 가장 능통하다는 개방의 후기지수라면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왕방은 아직도 아운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알았다면 지금쯤은 알아서 기는 것이 이로울 텐데, 이 멍청한 사형은 이곳이
자신의 안방과도 같은 개봉이란 것과, 자신이 개방 방주의 직전제자란
사실만 믿고 의연한 표정이나 답답한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