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권. 제3장 쌍룡쟁투(雙龍爭鬪) (77/228)

第 三 章

쌍룡쟁투(雙龍爭鬪)

- 내가 이길 자신이 있을 때다

당당하게 금룡각을 나온 아운은 금룡단을 이끌고 무림맹 정문을 행해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성을 취득했다고 하지만, 평안 무사하게

무림맹을 벗어나기엔 단 삼 일간 아운이 저지른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삼대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아운이 무림맹을 나가게

두진 않았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흑룡 조천왕이었다.

무림맹의 정문을 향해 단 삼십 장도 가지 못하고 아운과 금룡단의 일행은

제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철혈사자대였다.

철혈사자대 앞에는 흑룡 조천왕이 서 있었다.

맹주인 신수(神手) 조진양(趙振揚)의 손자이자, 부맹주인 신창(神槍)

조원의(趙願意)의 아들인 흑룡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위풍당당했다.

흑룡이 아운을 보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아운을

만날수 있었던 것은 운이었다.

아운이 떠난다는 말을 듣자, 지낭인 나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아운과 만나려고 준비를 하던 흑룡이 어렵지 않게

아운을 가로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로원이나 호연세가처럼 이것저것 준비해서 아운을 만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권왕 아운이 나타나기 전만 해도 강호 무림의 모든 젊은 고수들은 흑룡인

그를 닮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런 조천왕도 막상 아운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자신의 조부와 같은 선상의 고수로 알려진 자였다.

무림맹에서의 지위는 철혈사자대의 대주인 조천왕이 금룡단의 단주인

아운보다 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는 총사와 단주의 자리를 분리해서 보았을 때였다. 그러나 금룡단의

단주란 자리는 특수성이 있었다.

총사를 제외하면 그 누구의 명령도 들을 필요가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아운은 이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권왕이란 명성을 지니고도 금룡단주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일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흑룡이 나타나자, 금룡단원들의 안색이 가볍게 굳어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흑룡의 존재 앞에 두려워하는 자는 없었다. 이전이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흑룡 앞에만 서도 주눅이 들어 눈을 돌리기 바빴던 금룡단원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권왕이란 무지막지한 인간이 바로 그들의 단주이고 보면 흑룡의 존재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래도 무림맹의 황태자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으며, 한때 흑룡은 그들의 우상이었던 존재였다.

모두 가볍게라도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흑룡은 아운의 뒤에 서 있는 금룡단원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평소 사람같이

보지도 않았던 존재들이 대부분이었다.

몇몇을 제외하면 자신 앞에서 고재조차 들지 못하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누구도 주눅 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자존심이 상했다.

북궁연의 사연과 어우러지면서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이 흑룡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질투심은 엉뚱하게도 금룡단원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잠시 후면 피눈물을 흘리게 해 주마.'

흑룡은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아운을 보았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그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보는 아운의 시선엔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철저히 무시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 앞에서 흑룡은 난생처음 공포라는 낯선

기분을 느끼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곧 침착해졌다.

세상이 권왕이라고 추켜 주었지만, 흑룡은 그 말을 다 믿지 않고 있었다.

젊은 측에서 자신을 그렇게까지 능가하는 고수가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소문이 사실과 비슷하다 해도 그의 자존심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자신의 수하가 아운의 수하에게 당한 치욕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젊었다.

결코 만용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모든 상황에서

앞뒤를 재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미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온 상황에서 자신이 느꼈던 공포심과 압도당하는

듯 했던 기분은, 그를 더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흑룡은 심호흡을 하고 아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조금 전 기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흑룡의 말은 거칠고 도발적이었다.

"흑룡 조천왕이다. 네가 아운인가?"

흑룡의 말에 금룡단원들의 얼굴색이 변했다.

첫 만남에서 하대라니.

아무리 나이가 우운보다 십여 살 정도 위고 무림맹에서의 직분이 있다지만,

상대는 권왕이었다.

무림에서의 명성은 흑룡이 아운과 비교 될 수 없는 위치였다. 이미 아운의

명성은 십사대 고수와 비견되는 상황이었고, 무림에서의 위치는 그 사람의

명성과 비례하기 마련이었다.

흑룡의 하대는 명백한 도발이었고 도전이었다. 그러나 아운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름은 거청하지만 남자답지 못한 놈이군."

아운의 덤덤한 목소리 앞에서 흑룡의 존재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철혈사자대도 금룡단도 모수 숨을 죽이고 아운과 흑룡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에 흑칠랑과 야한만이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 선배, 저 검은 지렁이가 아무래도 오늘 맛이 살짝 간 것 같지 않소.

아니면 눈앞에 있는 괴물을 물로 보았던가?

흑칠랑 역시 전음으로 점잖게 대꾸했다.

- 원래 귀하게만 자란 놈들은 철이 없게 마련이다. 저 놈은 다른 사람들이

용용 하니까, 스스로 진짜 용인 줄 착각하고 있군. 멍청한 놈.

- 흐흐, 역시 선배답게 냉철한 눈이요.

- 당연하지, 저 아운이란 괴물과 맞장 뜰 수 있는 인간은 이 흑칠랑님

뿐이라고.

그 전음을 들은 야한의 턱이 빠지고 말았다.

대체 저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야한은 가끔 흑칠랑이 부럽고 존경스러울 때가 있었다.

물론 그 기분엔 항상 황당함도 함께 묻어 다니지만.

아운의 말을 들은 흑룡의 눈에 기광이 어렸다.

"네 놈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냐? 말에 대해서 제대로 해명을

못한다면 각오해야 할 것이다."

아운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치졸한 놈이군. 시비 걸러 왔으면 남자답게 한 판 붙자고 해라!

신분도 한참 어린놈이 어른에게 예의 없이 굴지 말고.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쌍놈이라고 욕먹는다."

그 말을 들은 흑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철혈사자대나 금룡단원들

얼굴도 굳어졌다.

철혈사자대들 입장에서 보면 설마 아운이 이렇게 막나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때문이었고, 금룡단원들 입장에서 보면 역시 권왕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속으로 통쾌했던 것이다.

그래서 금룡단원들은 얼굴이 굳어졌다고 보기 보다는, 속마을을 감추려고

표정 관리를 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들과 달리 흑칠랑과 야한은 대놓고 비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역시 권왕은 맘에 든단 말이야. 무림맹의 황태자라더니 까불다

뭐 됐군 그래."

"선배, 원래 용의 혀가 짧았습니까? 그러다 맞아 죽을 텐데, 흐흐."

아무리 흑룡이 담대한 인간이라고 해도 이 말을 듣고 태연할 순 없었다.

흑룡 조천왕의 몸에서 무서운 살기가 폭사되어 흑찰랑과 야한을 향해

쏘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흑룡의 또 다른 실수라고 할 수 있었다.

강호 무림에서 일 위와 이 위를 다투는 살수들이다.

흑룡의 살기에 겁먹을 위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둘은 흑룡의 살기를 완전히 무시한 채 둘이서 히히덕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용 새끼가 살기까지 뿜어내는군."

"그래 보았자 진짜 용 앞에선 지렁인데요 뭐. 맞아서 혼이 허공에서 춤을

추기 전에는 깨우치치 못하겠죠."

"그걸 알면 진짜 용이지. 아무래도 뒤에 있는 아이들은 조금 믿는 모양이군."

흑칠랑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말했다.

흑룡은 그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가슴에 무엇인가 얹힌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자신의 살기를 쉽게 받아 넘긴 두 사람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흥분하면 진다는 진리를 그는 아는 자였다.

흉폭하지만 그래도 삼룡 중 하나가 그였다.

그리고 흑칠랑의 말대로 권왕 앞에 자신 있게 나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철혈사자대 때문이기도 했다

철혈사자대는 무림맹의 무력 단체들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단체 중 하나였다.

풍룡백인대가 비록 아운에게 당했다고 들었지만, 조천왕은 그것이 순수한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광풍멸사진을 제대로 펼쳤다면 제 아무리 아운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살아나올 순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운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을 감안해도 삼호령이 포함된 풍룡백인대를 이겼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운을 직접 상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따.

하지만 자신의 연적인 아운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어차피 무림맹을

나간다면 아운이 살아남기 힘들 거란 사실을 흑룡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고 그의 실력을 가늠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운의 수하들 중에 우칠을 제외하고도 무시 못 할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왕 각오를 하고 온

상황이었다.

"시비 걸려고 온 것을 알다니 오히려 말하기가 쉽겠군. 간단하게 말하겠다.

철혈사자대의 이름으로 금룡단에 결투를 신청한다."

아운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아운에게 도전한 것이 아니라 금룡단에 도전을 하였다.

그렇다면 철혐사자대의 대표들과 금룡단의 대표들이 결룬다는 말이었고,

실상 금룡단의 실력으로 철혈사자대를 이긴다는 것은 지금 상황으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혹 시간을 둔다고 해도 금룡단 단원들의 무공을 하루 이틀에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며 그럴 시간도 없엇다. 그렇다고 도전을 거절한다는

것도 체면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흑룡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투였으면, 아운의 곤란함을 즐기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웃음기를 머금던 흑룡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운의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조천왕은 여기서 한 번 더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금룡단의 쓰레기들이야 철혈사자대의 상대가 될 수 없겠지. 하지만

네 놈의 다른 수하달은 꽤 실력이 있던 것 같던데. 너와 나를 뺀 오 대 오

시합으로 하자. 어떠냐? 도전을 받겠는가? 자신 없으면 말고."

아운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대답 이전에 먼저 해결애야 할 일이 있다."

"해결? 그게 뭐냐?"

"우선 네 놈의 말버릇부터 고쳐놔야겠다."

아운의 말에 흑룡이 놀라서 주먹을 들어 올리는 순간 아운의 주먹이 일 자로

뻗어왔다.

주먹을 들었다 싶은 순간 아운의 권경은 이미 흑룡의 가슴에 다가와 있었다.

기겁을 한 흑룡은 몸을 뒤로 젖혀 겨우 피해냈다. 그러나 아운의 공격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펼쳐진 연환육영뢰는 일기영의 뒤를 이은 이천권으로 이어졌고,

연환으로 공격해오는 두 번째 주먹의 권경이 흑룡의 복부를 노리고 있었다.

흑룡은 이를 악물고 몸을 틀면서 양 주먹을 휘둘렀다.

대를 이어 내려온 조가의 버전 삼대무공 중에, 흑룡 조천왕이 유일하게

익힌 선풍사자신권이었다.

그의 조부이자 무림맹의 맹주인 시수 조진양은 선풍사자신권을 극성으로

익힐 수 있다면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실제 강호의 사가달은 칠초무적자의 무적신권(현 아운의 육삼쾌의연격포)과

선풍사자신권 그리고 마도의 광룡철권(狂龍鐵拳)을 일컬어 무림삼대권공

(武林三大拳功)이라고 하였으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무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만큼 이 세 가지의 권공은 독보적으로 강했고, 능히 무적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세 가지 권공 중 어느 것이 가장 강한 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칠초무적자의 무적신권이 가장 강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었다.

이 세 가지 권공이 서로 대결을 벌인 적도 없었고, 나타난 시기도 달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종에 달하는 무림의 권공 중에 오로지 이 셋만이

최고라고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무림사에 가장 강하다는 두 가지 권공이 처음으로 격돌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인물들 중에 그 사실을 아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운 역시 상대의 무공을 알아보지 못했고, 조천왕 역시 아운의 무공이

칠초무적자의 무공일거라 짐작은 했지만 정확하지가 않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근래 들어서는 아운의 무공이 칠초무적자의 무공이 아니란 것이

대세였다.

무적신권엔 주먹에서 검강이 나가거나 벽력탄과 같은 위력을 내는 초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아운에 의해서 발전하고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바뀐 육삼쾌의연격포는

기존의 무적신권과는 너무 바뀌어서 누구라도 알아보기 힘든 무공이 되어

있었다.

꽝!

거친 굉음이 들리며 흑룡이 충돌의 힘을 견디기 못하고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서고 말았다.

하지만 뒤로 물러서기도 전이 이미 아운의 삼권척은 그의 머리를 향해

공격해 오고 있었다.

흑룡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이를 악물었다.

상대의 무공은 그의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빨랐으며 주먹의 위력 또한

선풍사자신권을 압도하고 있었다.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은 흑룡은 선풍사자신권 중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초식인 선풍사자추와 붕산사자혼을 연이어 펼쳐내었다.

꽝!

소리와 함게 삼권척은 선풍사자추의 초식과 충돌하면서 흩어졌다. 한데

바로 그 뒤에서 일곱 개의 권영이 북두칠서 모양으로 흩어진 채 흑룡

조천왕을 공격해 왔고, 일곱 개의 권영은 붕산사자혼의 초식을 감싸면서

충돌하였다.

꽈르릉!

연이어 소리가 들리는 순간 조천왕의 신형이 다시 십여 걸음이나 물러서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제 팔성에 이른 선풍사자신권으로는 아직 아운의 적수가 될순 없었던

것이다.

흑룡이 주전앉자 철혈사자대의 대원들이 놀라서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운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순가, 아운의 발이 흑룡의 얼굴을 밝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힘을 주면 흑룡의 머리는 두부처럼 부서질 것이다.

"조용, 내가 흥분하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그러니 잠시 얌전하게

기다리도록."

아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철혈사자대는 모두 꼼짝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서 아운을 볼 뿐이었다.

아운은 발을 조천왕의 얼굴에서 내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발길질을 가했다.

퍽!

아운의 발이 조천왕의 입에 들어가 박혔다.

철혈사자대의 대원들은 모두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림맹 안에서 맹주의 아들을 발로 차다니.

흑룡의 또 다른 별호는 사자천왕이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별호를

광장군(狂將軍)이라고 불렀었다.

한번 화가 나면 그의 눈엔 광기가 흐르고 광기에 휩싸이면 그는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무서운 인물이었다.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고 수하를 때려죽인 일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에

불과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당시 아무도 나서서 그를 말리지 못했었다.

광기에 한 번 물들면 너무 흉폭하고 무서워 앞뒤를 가리지 않는 광장군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광장군이 지금 자신이 다름 사람들에게

한 것처럼 당하고 있었다.

아운의 발길질은 무자비했다.

흑룡이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운의 몸에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한

기세 앞에서 철혈사자대는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아니 나설 수가 없었다.

만약 누가 나선다거나 철혈사자대가 아운을 공격한다면 아운은 그 자리에서

흑룡 조천왕을 죽일 듯한 기세였다.

기세뿐만 아니라 철혈사자대원들의 귀에 아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놈들이 나를 방해하거나 네 놈들이 입이라도 벙긋하면 조천왕은

물론이고 철혈사자대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그러니까 입닥치고 보기만

해라!"

나직하게 말하는 아운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그러나 철혈사자대는 물론이고

금룡단의 단원들도 그 목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권왕이 한 말이었다.

단순히 협박으로만 들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엔 조천왕 이외에도 두 명의 조장들이 더 있었다.

제일조 조장인 장군검(將軍劍) 후수진과 팔조 조장인 경혼쾌검(驚魂快劍)

사곤이였다.

두 사람은 모두 조천왕의 최측근들이었고, 철혈사자대의 열명이나 되는

조장들 중에서도 특출한 자들이었다.

호수진은 철혈사자대에서 대주인 흑룡과 두명의 부대를 빼고 가장 강한

자로서 지낭으로 통하는 제삼조 조장인 지군호검(智軍狐劍) 나호와 함께

철혈사자대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팔조 조장인 사곤은 흑룡의

가장 많은 신임을 얻고 있는 조장이었다.

명색이 그 정도의 인물들이니 상대가 그냥 하는 말인지, 아니면 정말 하는

말인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만한 자들이었다.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아니 철혈사자대가 달려들어 힘이 모자라 전멸한다 해도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흑룡이 죽는다면 그건 사정이 달랐다. 그래서

부대주이자 제일조 자장인 호수진을 비롯한 철혈사자대원들은 멍하니

보고만 있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들이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흑룡 조천왕은 패왕의 기질을 지닌 자였다.

흉폭하지만 인세에 드문 영웅이자, 효웅이라 할 만하였다.

그런 자가 누군가에게 뒷골목 파락호처럼 맞는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가? 지금의 사실이 현실

같지 않았던 것이다.

영웅이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개처럼 맞아 죽는 것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아무리 개 같은 짓을 해도 주인공은 언제나 주인공답게

죽는다.

한 나라의 왕자가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몰매를 맞을 수 있을까? 이야기 속에서도 불가능한 이야기 였다.

아무리 죽을 짓을 해도 왕자는 왕이고 영웅은 영웅이다.

그들에겐 그 만한 대접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영웅에게 죽은 수많은 피들이야 각자 사연이 있겠지만, 영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왕자가 평민을 죽인다고 죄가 될 순 없었다.

그에 다른 벌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한데 지금 그들의 상식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이 자신들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죽이는 것도 아니고 무차별 구타였다.

얼마나 심하게 때리는지 보는 사람들이 오싹할 정도였다.

지금 그들이 본 흑룡은 영웅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개처럼 맞아

죽는 것 같은 비현실성을 느끼게 만들었다.

흑룡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아운에게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울화가 치밀어

기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차피 한두 번 맞아서 정신 차릴 놈이 아니니까 이번엔 이 정도로 하지."

혼잣말로 중얼거린 아운은 호수진을 보면서 말했다. 마침 무기를 뽑아 들고

아운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호수진은 아운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움찔하고 행동을 멈추었다.

아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놈. 미련한 짓은 하지 마라. 죄 없는 네 놈의 수하들이 몰살당할

수 있다. 억울하면 나중에 네놈들 대주가 깨어난 다음에 다시 덤벼라!"

호수진은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상대의 말대로 자칫했다간 정말 몰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룡을 단 몇 번의 주먹으로 제압하는 것을 보았다.

철혈사자대가 강해도 풍룡백인대보다 훨씬 강한 것도 아니었다.

지낭이라 불리는 삼조 조장인 나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 그의 말대로 흑룡을 말리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였다.

흑룡이 나설 때 가장 반대가 심했던 것은 삼조 조장인 지군호검 나오였었다.

그러나 아운이 무림맹을 나간다는 말을 듣자, 흑룡은 나호의 말을 듣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게 마련이다.

호수진은 이를 부드득 갈아붙이며 말했다.

"오늘 일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요."

아운은 부대주의 말을 싹 무시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했다.

"흑룡에게 그대로 전해라! 패도문의 일을 처리하고 돌아와서 도전을 받아

준다고. 방식은 그때 정하기로 하지. 그럼 준비 잘하고 있어라!"

아운은 그 마을 남기고 돌아섰다.

금룡단원들은 흘린 듯이 그 뒤를 따랐고, 흑칠랑과 야한은 끝까지 흑룡을

바라보면서 실실거리고 있었다.

"흐흐, 불쌍한 놈. 그러게 덤비길 왜 덤벼. 나처럼 확실히 이길 자신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흑칠랑의 말을 들은 야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흑칠랑은 야한이 한숨을 쉬자, 물었다.

"넌 왜 한숨을 내쉬고 있느냐?"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말이요."

"무엇이 말이냐?"

"선배와 권왕의 대결 말이요."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이길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으니 천 년을 기다린들 가당키나 한

소리요."

"뭐야 이 호로 새끼야!"

흑칠랑이 야한을 노려보며 눈을 부라렸지만 야한이 그런다고 눈이나

깜짝하겠는가.

"그럼 언제쯤 이길 수 있겠수? 대충이라도 말해 보시오. 선배."

흑칠랑의 얼굴이 완전히 찌그러진다. 하지만 그는 역시 흑칠랑이었다.

"내 무공이 권왕보다 강해질 때쯤이면 내가 이길 수 있다. 이 눔아!"

"아 그러니까 그때가 언제쯤이냐고 묻지 않소?"

"내가 이길 자신이 있을 때쯤이다. 왜?"

"으으."

"흐흐, 그러니 그때까지 죽지 말고 기다려라! 확 성질나는데, 우선 만만한

놈부터 시험 삼아 죽여보고 도전할까 보다."

야한의 입이 그 자리에서 봉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흑칠랑이 만만하다고 말한 사람이 이 상황에서 자신일

확률이 아주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주 옳은 생각이었다.

이렇게 아운 일행은 무림맹 밖으로 사라졌다.

결국 마지막까지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놓고 사라진 것이다.

아운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로원의 사자가 금룡각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텅텅 빈 금룡각의 빈 건물뿐이었다.

아운이 패도문을 치러 간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서둘러 온 상황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이것저것 준비하고 떠나려면 최소 두세 시진 정도는 걸릴

거라 생각했었다.

장로원의 사자는 아연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가야만했다.

헛고생을 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호연세가의 설비향 또한 그에 못지않은 허탈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장로원의 사자와 그가 다른 점은 있었다.

장로원의 사자가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돌아갔다면 설비향은 아운의 뒤를

쫓아 무림맹 밖으로 나갔다.

일이 더욱 크게 진해되기 전에 아운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반드시 그를 우리 편으로 만들겠다.'

설비향의 결심이었다.

권왕만 회유할 수 있다면, 그 동안 경쟁자로 여겨왔던 와룡을 완전히 누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호연란에게 든든한 힘을 만들어 줄 수 있었고, 차후 호연세가가

무림맹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면 자신은 제일등 공신이 되는 것이었다.

만나보고 정 안되면 그냥 피해 버리면 된다.

아무리 권왕이라도 아무나 함부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언변과 머리를 지나치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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