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제8장. 맹렬남매(猛烈男妹) (66/228)

제8장. 맹렬남매(猛烈男妹)

- 과연 오빠답군요

아운이 고대성의 일로 집을 나가고 나자 아운의 동생 하영영은 오빠가 

집을 나간 이유를 아버지에게 캐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딸 아이의 성격을 잘 아는 아버지 하문영은 절대로 말해 줄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의 오빠가 고대성 때문에 집을 나간 사실을 안다면 당장 

그 집으로 달려가 난리를 치고도 남을 하영영이었다. 

어리지만 그 성깔과 고집은 하영운을 빼곤 당할 자가 없던 하영영이었다. 

그래서 쉬쉬 하였지만, 언제까지 비밀이 될 순 없었다. 

하영영은 아버지의 고집을 아는지라 방향을 바꾸었다. 

집의 하인 중에 아운의 비밀을 알만 한 자를 지목하고 쫓아다니면서 묻기 

시작했다. 

아미 하문영의 지시가 있었던 터라 하인은 절대로 모른다고 시침을 떼었다. 

한 달, 무려 한 달 동안 하루도 안 쉬고 졸라대는 하영영의 등쌀에 하인은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나중엔 뒤를 보러 가도 그 안까지 쫓아오는 통에 변빆지 걸리고, 

며칠 동안 소변까지 못 보게 되자 결국 항복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하영영은 자신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오빠가 왜 집을 나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렸지만, 세상의 누구보다도 오빠인 하영운을 잘 알고 있었다.

결심을 하고 집을 나간 이상 그만한 실력이 될 때까진 죽어도 안 들어 

올 것이다. 

생각할수록 이가 갈렸고, 고대성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북경의 그 유명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녀는 하인에게 시켜서 고대성이 어디를 잘 가는지 알아 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하인은 걱정스러웠지만, 감히 거절하지 못했다.

자칫 잘못해서 그 성격에 말려들면 뼈도 못 추린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잘 아는 하인이었다. 

고대성은 북경의 대로변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엇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다니는 무관에서 무술 수업을 하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때 아주 어린 소녀 하나가 그를 막아섰다. 

당시 열두 살인 고대성은 이 귀엽고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네가 고대성이지?" 

당돌한 물음에, 성깔 있고 나름대로 골통 중 하나라던 고대성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참으며. 

그 순간 그는 얼굴이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하영영이 달려들어 두 손으로 얼굴을 내리 긁은 것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 놀라고 아파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당황할 때, 

달려든 하영영이 고대성의 귀를 물고 늘어졌다.

지나던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들어 둘을 갈라놓으려 했지만, 

하영영은 끈질지게 물고 늘어졌다.

고대성은 그 당시 정말 원 없이 울었었다. 

당시 막 무과에 급제한 마달은 고화준 장군의 눈에 들어 그의 집에 

가신으로 머물던 때였다. 

그 역시 고대성을 마중 나왔다가 그 상황을 보고 어떻게 하든지 떼어 

놓으려고 했었지만, 세상에 태어나 하영영처럼 악착 같은 여자 아이는 

본 적이 없었다. 

고대성의 귀가 안 떨어져 나간 것은 순전히 조상님의 은덕이라고 지금도 

고대성은 말한다. 

한데 그 소식을 듣고 놀라서 달려 온 고화준은 나중에 하영영의 말을 듣고 

껄껄 웃으면서 말했었다. 

"참으로 여장부로다. 당연히 오빠의 복수를 했으니 죄가 없다." 

고화준 장군의 용서로 풀려난 하영영의 복수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관이지만 문 역시 중요하게 여기는 고씨 가문의 전통대로 고대성은 

북경의 대보학당이라고 하는 유명한 학당에 입학을 했다. 

한때 황사를 지냈던 한림대학사 맹진호가 운영하는 곳이라 북경에서 가장 

유명한 학당이었다. 

소수만을 뽑아서 가르치는 곳이라 경쟁률이 항상 수백 대 일을 다투는 

곳이었지만, 고대성은 무난히 입학할 수 있었다. 

고대성이 대보학당에 입학을 하자 하영영 역시 이곳에 입학했다. 

그것도 장원으로. 

그날부터 고대성은 삼 년 내내 하영영에게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다. 

고대성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제를 들고 물어본다. 

알 수가 없어 주춤거리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모른다고 망신을 

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툭하면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하는 바람에 고대성은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끈질지게 학당을 

나가는 고대성이었다. 

어느덧 둘의 관계는 북경에서조차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을 정도였다. 

고화준은 그런 하영영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직접 하문영을 찾아와 두 사람을 맺어주자고 청혼을 했고, 

하문영 역시 두 사람의 결혼을 찬성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사실은 당사자인 두 사람이 이 결혼에 대해서 전혀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다가 서로 사랑이란 감정이 싹튼 것이다. 

그 후 고대성은 결혼을 하기도 전에 완전히 하영영의 개인 소유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고대성이 그것으로 인해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하영영은 고대성을 바르고 강하게 이끌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고대성은 하영영이 무서워서라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하영영은 고화준의 사랑까지 독차지했다. 

껄렁하고 오만방자하던 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서 반듯하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귀엽고 예쁘겠는가? 

그 사정을 잘 아는 마달이니 당연히 하영영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북경 하씨 문중의 고집은 황제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이미 어제 오늘의 

말이 아니었다. 

***

얼마 후 마달 일행이 도착한 녹주는 아담한 크기의 녹주였다. 

사막 한가운데 빙 둘러 언덕이 있고, 그 안에 물 웅덩이 같은 작은 호수 

하나가 있었다.

그 주변을 수십여 그루의 나무가 빙 둘러 울타리처럼 자라고 있었다.

그래도 나무 중엔 제법 커서 그 크기가 오 장이나 되는 것도 있었다.

비록 작지만 아주 아담한 곳으로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필히 거쳐 

갈만한 곳이었다. 

마달을 비롯한 일행이 녹주에 도착하자, 녹주에 있던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일어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명나라의 군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은 조금 안심하긴 했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마달은 그들의 눈초리가 거북했지만, 참고 다가갔다. 

"명군의 천부장인 마달이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여기서 좀 쉬었다 갈까 

합니다." 

뜻밖에도 마달이 예의 바르게 나오자, 

경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빛이 풀어졌다. 

더군다나 상대가 천부장이라고 하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명의 천부장이면 장군 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앉아 있던 무리들 중 상단의 대표인 듯한 노인이 일어서며 마달에게 

말했다.

"산동 백마상단의 이자청입니다. 녹주에 주인은 없는 법입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쉬십시오." 

산동 백마상단이라면 산동성 제일의 상단으로 강북 오대상단의 하나였다. 

마달 또한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특히 이자청이라면 백마상단의 단주였다. 

뜻밖이란 표정으로 이자청을 본 마달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수하들에게 

물을 마시게 했다.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세 조로 나뉘어 한 조는 마차 주변을 경계하고, 

또 한 조는 녹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노숙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조는 호숫가로 가서 물을 마시고 양가죽 주머니에 물을 

담았다. 

이 모습을 본 이자청 일행은 그들의 조직적이고 빠른 행동에 감탄했다.

훈련이 잘된 병사들임을 그 하나로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이런 대단한 장수와 병사들이 동원되어 호위하고 있는 마차 안의 

인물이 궁금해졌다. 

그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마달은 마차에 다가서서 말했다. 

"녹주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셔서 좀 쉬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차 문이 열리며 하영영이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세상이 밟아진다는 말은 이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마치 얼음을 조각해 만든 인형처럼 단아한 모습의 하영영은, 

보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고 환한 마음을 들게 하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만 본다면 어디에도 그 고집스러움을 찾을 수 없었다.

무인들과 상단의 호위무사들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모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시선을 무시하고 호숫가에 다가가 시원한 물을 

마시고,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마치 고고한 학의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달과 그의 수하들이 그녀의 주변에 둘러 앉아 그녀를 암암리에 호위한다. 

언덕이 있고, 언덕이 둘러싼 가운데 호수가 있고, 

언덕 바로 아래엔 병사들이 노숙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호수 바로 주변엔 나무들 수십여 그루가 서 있는데, 

그 나무 아래엔 백마상단의 인물들과 약 십여 명의 무인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호수 한쪽에 마달을 비롯한 하영영 일행이 있는 모습은 조금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있어서 하영영 일행과 백마상단 그리고 무인들 

사이를 갈라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마달은 강북 오대 상단의 하나인 백마상단의 인물들을 둘러보다가 십여 

명이 모여 있는 무인들 집단을 바라보았다. 

우선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인물은 뜻밖에도 여자였다. 

대략 삼십 중반의 여자는 왼쪽 뺨에 길게 난 칼자국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수려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유난히 긴 눈썹이 그녀의 매력을 더해 준다. 

그리고 무인들이 앉아 있는 위치로 보아 그녀의 신분이 십여 명의 무인들 

중에서도 지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그들이 앉아서 서로 잡담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모두 같은 일행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 사이도 무엇인가 어색함이 있었다. 

특히 여자와 한쪽에 모여 있는 젊은 무사들 사이는, 

뭔지 모르는 냉랭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녀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기에 마달은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달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함께 노숙할 인물들을 살피고 있을 때

였다.

무인들의 무리 중 한쪽에 모여 있던 이십대 후반의 청년 세 명이 일어서서 

마달과 하영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언뜻 보아도 모두 명가의 자제인 티가 확 나는 인물들이었다. 

마달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 역시 무림이란 곳을 잘 알기에 그곳에 있는 자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안다. 

자신 역시 나름대로 무공을 익히고는 있지만, 무림이란 곳엔 자신 정도의 

고수는 지천으로 깔렸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영영의 주변에 앉아서 호위하던 병사들이 일어서려 하자, 

마달은 한 손을 들어 그들에게 지금 위치와 자세를 유지하도록 지시한 후, 

일어서서 세 명의 젊은 청년들을 주시했다. 

세 명 중 당당한 체격의 청년은 단창을 들고 있었으며, 

또 약간 호리호리한 체격에 준수한 모습의 청년은 검을, 

그리고 얄팍한 입술에 마치 여자처럼 수려한 인상의 청년은 가늘고 짧은 

도 한 자루를 옆에 차고 있었다.

도의 모습으로 보아 쾌도를 익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달 앞까지 다가온 세 명의 청년은 모두 포권지례를 하며 인사를 했다. 

가장 먼저 도를 허리에 찬 청년이 말했다. 

"섬서 쾌도문(快刀門)의 문형기라고 합니다. 싫든 좋든 오늘 하루는 함께 

있어야 할 것 같고, 가는 길을 보아 상당 시간을 함께 가야 할 듯 합니다. 

그래서 미리 인사를 나누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쾌도문이라면, 관의 인물인 마달도 잘 아는 문파였다. 

한참 욱일승천하는 문파로 하북 팽가와 함께 도를 일가를 이룬 곳으로, 

한동안 하북 팽가의 기세에 밀려 큰 힘을 쓰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 힘과 세력이 팽가를 넘어서고 있었다. 

특히 쾌도문의 전대 문주인 문지호는 지금의 쾌도문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로, 현 무맹의 장로 중 한 명이었다. 

문형기는 쾌도문주의 셋째 아들이었으며, 

전대 문주인 문지호의 세 손자 중 한 명이었다. 

강호 무인들은, 섬서 쾌도문의 세 아들을 일컬어 쾌도삼문(快刀三門)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쾌도삼문의 무공은 젊은 층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마달은 문형기라는 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건 문형기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명의 청년에 대한 인상도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이렇게 정중하게 나오는데,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명군의 천호장 마달입니다." 

"소생은 언화라고 합니다." 

"남궁단이라고 합니다." 

진주 언가의 귀문창(鬼刎槍) 언화와 절환검(切?劍) 남궁단 하면 강호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특히 그들의 오만방자함은 세상이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마달입니다." 

미달은 정중하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남궁단이 하영영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 

그녀는 처음 그대로 바위에 걸터앉아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표정만 보아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아가씨가 주인인 듯 한데, 이왕이면 함께 인사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결국 그들이 다가온 진짜 이유가 하영영 때문임을 알았다. 

남궁단의 말에 마달의 표정이 더욱 굳어지며 조금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는 북경 대장군가의 장자이신 고대성 장군님의 약혼녀이십니다. 

함부로 외간 남자와 인사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북경 대장군가의 고대성이란 말에 세 청년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그들이 무림의 명가 출신이라지만 북경 대장군가라면 대명의 

병권을 쥐고 있는 양대 장군가의 한 곳이었다. 

함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세 사람은 하영영을 다시 한 번 바라보면서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다.

그런데 세 사람이 막 돌아섰을 때였다. 

그들의 앞엔 언제 나타났는지, 

얼굴에 검상이 있는 삼십대의 여자가 서 있었다.

마달이 인상 깊게 보았던 칼자국의 여자였다. 

그녀를 본 언화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감돌았다. 

"초검낭자(草劍娘子) 소홀, 남자 같은 여자라더니 저 아가씨에게 반하기

라도 한 거요." 

그의 모욕적인 말에도 소홀의 얼굴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꺼져." 

그녀의 차가운 말에 창을 들고 있는 언화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계집, 기울어가는 북궁가의 위세를 믿고 말을 함부로 하는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홀의 몸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뻗어나왔다. 

언화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린다. 

초검낭자 소홀이라면 자신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살기를 느꼈음인가? 

남궁단과 문형기도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남궁단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기를 거두시오. 삼대일이면 소낭자도 우리를 이기긴 힘들 것이오." 

소홀의 서늘한 시선이 남궁단을 향했다. 

"남궁가의 망나니. 너로 인해 네 가문이 큰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남궁단은 소홀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의 말은 조금 전과 달리 거칠어져 있었다. 

"이 계집이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말을 함부로 하는군, 누가 있어 감히 

남궁가를 건드린단 말이냐? 네년이야 말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그러다 북궁세가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전이라면 남궁단 따위가 북궁가의 가신인 그녀에게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남궁단의 말에 소홀은 피식 웃으며 그들을 무시하고 마달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래 조금만 기다려라! 아주 무시무시한 사람이 너희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 셋은 나란히 이름을 올려놓았다." 

물론 그들은 소홀이 하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단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가문을 알고 감히 대항한 자들은 없었다. 

그래서 소홀의 말을 흘려버릴 수 있었다. 

누가 있어서 감히 자신들의 가문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었다. 

이들이 속한 가문은 모두 무림맹의 삼십삼 장로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가문들이었다.

그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무림맹을 상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개개인의 가문만 놓고 본다면 북궁가를 당할 순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장로들의 모임인 동심맹(同心盟)의 힘이 너무 

강했다.

무림맹 밖에서는 구중천이라 불리는 동심맹에 속한 누군가를 건드리면, 

그들은 바로 집단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힘은 이미 무림맹을 지배하고 있었고, 

현 무림맹의 맹주조차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부분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 힘을 믿고 세 명의 청년은 북궁가의 가신인 소홀에게 도발한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일이 얽히다 보니 소홀과 그들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하필이면 이들이 한 자리에 있게 된 사실부터가 어떤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언화와 문형기는 소홀을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보는 눈만 없다면 당장 사로잡아서 욕보인 다음 죽여서 땅에 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가 한 말을 그냥 흘려듣지 말았어야 했다. 

후에 너무도 가혹한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란 사실을 그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 잘 나갈 땐, 보이는 게 없기 마련이었다.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고, 지금 지닌 힘이 끝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무림맹은 천하 무림을 움직인다. 

바로 그 무림맹의 핵심인 동심맹을 건드릴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천하제일가문이었던 북궁세가도 그 동심맹에 밀려서 지금은 쇄락하고 있지 

않은가? 

세 청년은 소홀의 등을 보며 묘한 미소를 흘리고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갔다.

아쉽다면 하영영이나 소홀 같은 여자를 두고 이 밤을 그냥 보내야만 하는 

사실이었다. 

소홀 역시 그들을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고 마달에게 다가가 포권지례를 

하면서 말했다. 

"무림맹의 소홀이라고 합니다. 저 소저 분은 혹시 북경 하씨 가문의 

하영영 소저가 아닌지요?" 

소홀의 말에 마달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맞습니다만." 

"그렇다면 저 분의 오빠가 하영운 공자님이 맞지요?" 

"그렇습니다." 

소홀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어렸다. 

"북궁가의 가신이 아가씨를 뵙고 싶다고 전해 주실 수 있습니까?" 

북궁가라는 말을 들은 마달은 놀라서 소홀을 바라보았다. 

한때 천하제일세가였고, 지금은 비록 그 세력이 기울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 삼위를 다투고 있는 무림세가가 바로 북궁세가였다. 

정파를 대표하는 최고의 고수 중 한 명인 검왕(劍王) 북궁손우(北宮遜友)가 

있는 가문. 

아무리 관부의 인물이라고 해도 모를 수가 없는 가문이 바로 북궁세가

였다. 

마달은 조금 전 소홀과 세 명의 청년이 다툴 때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북궁가란 말이 오고가는 것을 듣지 못했다. 

세 명의 청년들도 북궁세가를 함부로 말할 수 없어서 그 말을 할 때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며 내공을 운용했기 때문이었다. 

마달은 소홀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하영영과 어떤 친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영영은 오랜만에 맑은 물을 보면서 고대성과 집을 나간 오빠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때 마달이 다가왔다. 

"아가씨." 

하영영이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깨어나 마달을 바라보았다. 

"북궁세가의 가신이란 분이 뵙기를 청합니다." 

순간 하영영의 얼굴에 기광이 스쳤다. 

"그 분이 어디 계신가요? 얼른 이리로 모셔 오세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모셔오겠습니다." 

하영영의 말을 들은 마달이 소홀을 데리러 가자 하영영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북궁세가의 가신이라면 앉아서 맞이할 수가 없는 인연이 있었다.

소홀이 마달과 함께 다가오자 하영영은 얼른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하영영입니다. 북궁세가의 가신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연 언니는 잘 계신

지요?" 

그녀의 질문에 소홀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소홀입니다. 남들은 저를 초검낭자라고도 부릅니다. 연 아가씨는 물론 

잘 계십니다. 지금도 노심초사 운 공자님을 기다리고 계시답니다." 

그 말을 들은 하영영이 무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너무 합니다. 돌아오면 그 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 것입니다. 언니에겐 정말 미안할 뿐입니다." 

하영영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말하자 마달은 이상한 눈으로 하영영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는 하영영이 저런 표정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소홀과 주고 받은 몇 마디 말은 마달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운 공자라면 영영 아가씨의 오빠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연 낭자는 

누구를 말하는 거지? 설마 북궁세가의 북궁연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하씨 문중과 북궁세가가 사돈관계?' 

마달은 눈이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그가 알고 있기로 하영영에게 오빠는 하나뿐이고, 

그 오빠는 집 나간 지가 십 년이 넘은 것으로 안다. 

물론 그는 하영운이 왜 집을 나갔는지 그 황당한 사연을 잘 아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하영운이 무림제일기녀라는 북궁연의 약혼자란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문영이 망신스러워서 비밀로 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는 고대성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소홀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 답니다. 요즘 아가씨에게 운 공자님은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답니다." 

그 말을 들은 하영영의 눈이 커졌다.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었나요? 어떻게 그럴 수가! 집에는 전혀 연락도 

없었는데…. 흥! 그러니까 집보다 연인이라 이 말인가? 만나기만 하면 

그냥 콱!" 

사실 아버지인 하문영에게는 이미 두 번이나 기별을 했지만, 

하영영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까지 쥐던 하영영이 소홀을 보고 배시시 웃으면서 

말꼬리를 돌렸다. 

"그런데 어떤 소식이 있었기에, 연 언니가?" 

소홀은 이 귀여운 아가씨가 아직 오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음을 

알았다.

소홀은 슬쩍 무인들이 앉아 있는 곳을 보았다. 

'말해도 될까? 자칫해서 운 공자님의 정체가 알려지면 하씨 문중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다.' 

소홀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영 아가씨, 아무래도 하영운 공자님과 북궁연 아가씨가 연인 관계인 

것을 아직은 다른 사람이 알아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 주십시오. 무인들의 귀는 아주 밝답니다." 

하영영은 소홀이 하는 말의 뜻을 알진 못했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달을 보며 말했다. 

"병사들을 물리고 나와 소홀 언니, 둘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마달이 즉시 병사들을 자연스럽게 뒤로 물려주었다. 

하영영이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말하세요. 언니." 

소홀은 하영영이 참으로 귀여운 아가씨라고 생각을 했다. 

재치도 있고, 말귀도 빨리 알아듣는다. 

"그럼 내가 나이가 많으니 동생이라고 부를게." 

"전 벌써 언니라고 했는 걸요." 

소홀이 웃으면서 하영영을 보고 말했다. 

"동생은 오빠가 누구인지 알아?" 

하영영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소홀을 바라보기만 했다. 

"동생은 혹시 요즘 대사막을 뒤집어 놓은 젊은 고수에 대해서 들어 

보았어?" 

"아! 권왕 아운이란 사람 말인가요?" 

"맞아! 그 사람." 

"당연히 들어봤죠. 귀에 딱지가 들어앉을 만큼 들었지요. 병사들은 물론

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만 해서 이젠 지겨울 정도예요. 뭐 다시 

들어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소홀이 웃으면서 하영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보던 하영영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서, 설마…?" 

소홀의 웃음기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것은 긍정의 표시였다. 

"지, 지금 언니는 그 권왕이란 자가 오빠라는 말인가요?"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왜 안 그렇겠는가?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고수 중 한 명이 바로 친오빠라는데.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나갈 땐 동전 한 푼 없이 벌거숭이 몸으로 세상에 나간 오빠였다. 

그런데 자수성가는 물론이고 천하의 고수가 되어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하영운과 아운의 나이가 비슷했고, 

끝에 운자로 된 이름도 비슷했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았다. 

설마 권왕 아운이 자신의 오빠라니. 

"이건 내 생각인데, 잘 생각해 봐. 광풍사가 권왕이란 사람에게 전멸당한 

것은 어쩌면 너 때문일지도 몰라." 

그 말에 하영영은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광풍사가 자신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중간에 집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소문이 들리고 나서 얼마 후, 

광풍사가 권왕에게 괴멸당한 것이다. 

"그, 그럼…?" 

"아마도 그분 성격에 자신의 동생을 노리는 자들을 그냥 둘 수 없었겠지." 

"그렇군요." 

하영영은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오빠가 권왕이라니. 

그러고 보니, 소문에 들은 권왕 아운의 성격을 조합해 보면 오빠랑 너무도 

비슷하게 닮았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아야만 했다. 

'오빠다우시군요.' 

그녀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본 소홀이 가볍게 눈을 흘기며 웃었다. 

"오빠가 권왕이라서 유감인가? 울긴…." 

소홀의 말에 하영영이 눈물 맻힌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오빠에 대해서 말 좀 해 주세요." 

하영영의 말에 소홀은 웃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두 여자는 그때부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두 여자가 소곤거리며 웃고 우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그 모습을 보는 언화와 남궁단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설마 북궁가의 가신인 소홀이 북경 대장군가와 연줄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보아야 관의 인물일 뿐이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무시하기엔 북경 대장군가가 너무도 유명한 가문이었다. 

하영영은 소홀의 이야기 중에 북궁연에게 선물로 백지 책자를 보낸 내용을 

듣고는 과연 오빠답다고 하면서 깔깔거렸다. 

소홀은 먼 곳에서 자신들을 힐끔거리고 있는 세 명의 청년들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저 자들도 적어 놓았거든. 아마도 나중에 볼 만 할 거야." 

세 명의 청년이 있는 곳으로 하영영이 눈길을 주자, 

셋은 괜히 어깨를 펴고 늠름한 척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소홀은 더욱 웃음을 참기 어려웠고, 

하영영의 눈은 사납게 변했다. 

"그러니까 저치들이 감히 연 언니를 괴롭혔단 말이죠?" 

"아마도 충분한 대가를 받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 동생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흥, 생긴 것부터가 맘에 안 들더라니. 언제고 한 번 제대로 혼이 나야 

할 자들이군요." 

하영영의 쌀쌀한 말을 들으며 소홀은 이 나이 어린 아가씨가 오빠 못지

않은 여장부란 생각이 들었다. 

이때 서쪽 언덕 위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 한 명이 마달에게 달려왔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몇 명이나 되는가?" 

"모두 다섯 사람입니다." 

"뭐 하는 사람들 같은가?" 

"아직 멀어서 분간할 수는 없지만, 무인들 같습니다. 그리고 둘은 승려 

같습니다." 

"승려에 무인?" 

마달의 표정이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아무래도 무인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사막에서 만나는 승려라면 라마승일 가능성이 높고 그들은 정말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특히 라마승들의 무공은 괴이악랄 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런 라마승들과 어울리는 자들이라면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마달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엔 북쪽을 경계하던 

병사가 다시 달려왔다. 

"모두 네 명의 인물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엔 네 명인가? 역시 무인들 같은가?"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 시비가 붙지 않도록 조심하고 각자 위치를 지키도록." 

수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린 마달이 서쪽 언덕을 바라 볼 때 그곳으로 

다섯 명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