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칠랑야한(七狼夜寒)
- 흑칠랑,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실제 수많은 무인들이 다녀갔지만, 혈전이 벌어지고 광풍사의 시체들이
즐비한 그 장소에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야한과 흑칠랑이었다.
그들은 수십 리에 걸쳐 쓰러져 있는 광풍사 전사들의 시체와 마지막
결전에서 본 참혹함에 치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야한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정말 엄청나서 말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누군지 몰라도 이런 무식한
인간에게 도전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배."
묘한 시선으로 흑칠랑을 돌아보며 마지막 말을 강조한다.
흑칠랑은 그렇지 않아도 가슴 떨리는데,
야한의 그 말을 듣자 참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흑칠랑이 누군가?
그야말로 의지의 살수 아니겠는가?
"흥,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야한이 놀란 표정으로 흑칠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광풍사 삼백을 당장 불러와라. 내가 확실히 보여주지."
흑칠랑의 으름장에 야한은 말문이 막혔다.
전멸 당한 광풍사를 어디서 불러 오겠는가?
참으로 치사한 말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딱히 못할 거란 물증도 없었다.
할 수 있다고 우기면 후배 입장에서 대들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대단하십니다, 선배."
야한의 미묘한 말에 흑칠랑의 얼굴이 아주 조금 붉어지면서 말했다.
"험, 뭐 나야 항상…. 그런데 대체 권왕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교묘하게 말을 돌렸지만, 그러고 보니 중요한 권왕이 보이지 않았다.
"흔적이야 찾으면 되죠."
그들은 추적과 죽이는 일엔 전문가들이었다.
사막이지만 흑풍의 흔적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신형이 흑풍의 흔적을 쫓아 사막의 한 편으로 사라져 갔다.
***
흑칠랑과 야한이 권왕 아운을 찾은 것은,
아운이 흑풍을 타고 혈전의 장소를 떠난 지 삼 일이 지난 다음이었고,
흑칠랑과 야한이 아운의 흔적을 쫓아 나선 지 삼 일에서 네 시진이
모자라는 시점이었다.
두 살수는 삼 일 동안 안자고 아운의 흔적을 쫓아 신법을 펼쳤었다.
흑풍의 목을 잡고 말 위에 있는 아운을 살펴본 흑칠랑과 야한은 그를
우선 땅 위에 내려놓았다.
그의 상처를 살핀 두 살수는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거의 걸레가 된 아운의 몸을 보았을 땐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끈질기게 살아 있었고, 오히려 숨은 고른 편이었다.
그리고 그의 내상을 살펴본 흑칠랑은 더욱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내상이 거의 완치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운의 상태를 파악한 야한이 흑칠랑을 돌아보았다.
살수로서 아운을 죽일 수 있는 정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야한의 시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흑칠랑에게 묻고 있었다.
흑칠랑은 벌떡 일어서서 아운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아씨, 이걸 어쩐다. 확 죽여 버려!'
흑칠랑은 걸음을 멈추고 아운을 째려보았다.
'씨팔, 그럼 도둑질한 고금제일살수라고 남들이 욕하겠지?'
수많은 무림인들이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삼백이나 되는 광풍사를 홀로 다 죽이고 인사불성인 사람을 죽인다면
결과는 뻔했다.
흑칠랑은 한숨을 쉰 후, 갑자기 으아악 하고 고함을 질러대었다.
가슴에 맺힌 무엇인가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럼 살려 놓은 다음 도전하면.
'쌍! 저 괴물 같은 놈과 싸우기 정말 싫은데.'
흑칠랑은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야한을 보았다.
"뭘 봐?"
"결정은 하셨수?"
흑칠랑은 대답 없이 아운을 둘러멨다.
'나 흑칠랑이 언제부터 기회주의자가 되었냐. 대장부답게 살자. 제길,
나중에 붙어서 지면 죽기 밖에 더 하겠냐?'
흑칠랑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야한은 뭐 하냐는 표정으로 흑칠랑을 본다.
흑칠랑은 이빨을 이리처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서 겨룬다. 나 흑칠랑은 나의 적수가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흑칠랑의 말에 야한은 존경스런 눈으로 흑칠랑을 보았다.
'과연 흑칠랑 선배다.'
흑칠랑은 아운을 조심스럽게 흑풍에 올려서 묶은 후 말을 몰기 시작했다.
야햔의 존경 어린 눈초리와 달리 흑칠랑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굳은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내가 미쳤지. 흑칠랑, 너 지금 뭐하는 짓이냐?'
울고 싶은 그의 마음을 누가 헤아릴까?
그러나 그들은 불과 삼백 장을 더 가기도 전에 아운을 찾아온 편일학
일행을 볼 수 있었다.
흑칠랑은 편일학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이젠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혈전 이후 십 일이 지났다.
사라신교의 대전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모두
굳어 있었다.
한쪽으로 신녀복을 차려 입은 소설과 예전에는 볼 수 없을 만큼 단아한
옷차람의 소산이 보였고, 다른 한쪽에는 황룡을 비롯한 풍운십팔령의
형제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소설은 초조한 표정으로 소산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하얀 신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불과 얼마 전의 어려 보이던 그녀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순순해 보였지만,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대전 한쪽에 있는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한이 흑칠랑을 보고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권왕이 죽는 것은 아니겠죠?"
"무슨 소리냐? 권왕은 아직 나와의 일전이 남아 있다. 그 이전에 죽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나직하지만 단호한 흑칠랑의 말에 야한은 좀 야릇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배, 권왕이 죽으면 선배는 그냥 올라가는 것 아뇨? 왜 이전에 그냥
그를 죽이지 않았소?"
순간 흑칠랑의 눈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 변죽 좋은 야한도 이번만은 가슴이 뜨끔 했다.
흑칠랑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기세로 야한을 보면서 대답했다.
"난 정정당당하게 권왕과 겨루어 이기겠다. 난 네놈처럼 비겁하지 않아.
이기더라도 당당하게 이기겠단 말이다."
흑칠랑의 단호한 말에 야한은 눈을 크게 뜨고 흑칠랑을 다시 본다.
흑칠랑은 그런 야한을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섰다.
돌아선 흑칠랑의 얼굴이 침침해졌다.
'염병. 큰 소리는 쳤지만, 진짜 살아나면 정말 겨루어야 하나? 휴, 그래서
처음 사문을 선택할 때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인데. 빌어먹을 스승이 전병
하나로 나를 병신 만드는 구나.'
참으로 억울했다.
그때 배만 고프지 않았다면, 그놈의 전병이 너무 맛있어만 보이지
않았어도 지금 이 꼴은 안 당할 텐데.
참으로 어흑 이었다.
'빌어먹을, 요 전에 죽였어야 한 것인가? 아니지, 내가 누구냐? 천하에
흑칠랑 아니냐? 힘을 내자, 힘을! 사부, 내게 힘 좀 보내주쇼.'
흑칠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힘을 주었다.
그의 등을 야한은 아주 존경스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선배답구나.'
남의 속도 모르는 야한의 철없는 생각이었다.
***
편일학은 아운이 혼자서 그들과 겨룬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어디 그 혼자 뿐이겠는가?
소설이나 풍운십팔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편일학은 사막에 풍운십팔령을 풀어서 아운과 광풍사가 겨루는 장소를
알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광풍사가 지나간 길을 더듬어 혈전의 장소를 향해 가고 있을 때,
흑칠랑과 야한을 만난 것이다.
우칠은 우직한 눈으로 아운이 잠들어 있는 방을 보고 있었다.
그는 아운이 혼자서 광풍사를 전부 몰살시켰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울렁
거릴 정도의 감동을 느꼈다.
그가 원하고 바랐던 것이 바로 지금 아운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두 손을 꾸욱 움켜쥐었다.
'역시 나의 주인님이 될 자격이 있으시다. 내 반드시 고금제일의 충복이
되겠다.'
우칠이 마음을 다짐하고 있을 때, 아운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과연 불괴음자의 말은 거짓이 없었다.
그렇게 심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운은 단 열흘 만에 거의 회복한 상태로
깨어났다.
복부와 어깨에 박힌 활과 가슴을 뚫고 들어간 검은 불괴수라기공이 저절로
밀어냈다.
사라신교의 의원들은 거의 한 일이 없을 정도였다.
마치 죽순이 돋아나듯이 새살이 돋고 몸이 저절로 아무는 것을 본
의원들은 그저 놀라서 입을 벌릴 것이 전부였다.
깨어난 아운은 조용히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 들어왔던 소설은 그 모습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그의 생명을 구해준 부처님께 인사를 하는
것으로 그 기쁨을 대신했다.
***
대전엔 풍운십팔령을 비롯해서 우칠과 두 명의 살수,
그리고 편일학과 소설, 소산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운은 편일학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사라신교가 제대로 정비된 것 같습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네. 각 당의 임시 당주는, 원래 사라신교의 교도들
중 쓸 만한 자들로 골라서 직분을 주었네. 그들은 자네와 신녀에게 정말로
충성을 하는 자들일세. 악마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것이 자네라고
생각하기에 자네를 신처럼 생각하고 있네. 더군다나 사막의 신이라는
광풍사를 혼자서 괴멸시켰다는 소문을 듣고부터는 충성심이 더욱 깊어졌네.
그래서 자네가 지정한 사라신녀 소설을 볼 때, 그들은 자네를 보는 것처럼
섬긴다네. 아직 자네의 의중을 몰라 일단은 임시로 해 놓기는 하였네."
사라신교라는 정신적인 지주가 사라진 지금 아운과 소설이 그 자리를 더
크게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정식 당주로 임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라신교는
앞으로 소설과 풍운십팔령이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정비했으면 합니다."
아운의 말을 들은 황룡과 풍운십팔령의 형제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저희는 형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소설을 도와줘라. 아직은 힘이 필요할 때다. 그리고
여기서 부지런히 수련하도록 해라. 너희들의 힘은 아직 많이 미약하다."
아운의 말에 풍운십팔령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들도 스스로의 실력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운의 말대로 사라신교엔 아직도 무력이 필요했다.
편일학이 아운을 보면서 물었다.
"자네는 어쩔 셈인가?"
"전 중원으로 돌아갑니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약혼녀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아운의 말에 소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소산의 손을 꼭 잡으며 겨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
소산은 그녀의 손에서 전해 오는 마음을 읽고,
더욱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소산 역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감정을 겨우겨우 다스릴 수 있었다.
'내가 울면 난처해지실 것이다.'
소설은 그 생각으로 마음과는 달리 편안한 얼굴을 할 수 있었다.
"형님, 사라신교를 직접 다스리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황룡의 말에 아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난 자유롭고 싶다. 단체를 거느리면 어쩔 수 없이 걸리는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다."
아운의 말을 들은 편일학이 말했다.
"강해지고 싶다 하지 않았나. 혼자보다는 동료들이 있을 때 인간은 더
강해지는 법일세."
"동료가 있으면 나태해질 수 있습니다. 난 그 모든 것을 다 초월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습니다. 굳이 일개인이 아니라 단체를 상대해도
내 의지가 꺾어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아운의 말에 황룡이나 편일학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황룡은 누구보다도 아운의 고집과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편일학 또한 아운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굳이 다른 말을 더하진 않았다.
아운의 패기 넘치는 말을 들은 야한은 흑칠랑을 슬그머니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소설은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말했다.
"하지만 사라신교를 제가 맡아서 다스린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걱정마라. 말 뿐이지만 내가 태상교주라는 허울로 있을 것이고, 여기
편 선배님은 장로의 신분으로, 그리고 저 두 사람도 사라신교의 호법
으로 있을 것이며, 황룡을 비롯한 풍운십팔령이 사라의 전사로 너를
보필할 것이다."
아운의 말이 끝나자 흑칠랑과 야한의 눈이 등잔만 해졌다.
흑칠랑이 화난 표정으로 따졌다.
"뭐, 뭐야? 왜 네 맘대로 내가 사라신교의 호법이냐?"
"그럼 계속 살수 노릇이나 하다가 죽을 작정인가? 노후에 살수직을
제자에게 물려주고 여기 와서 편히 쉬란 뜻이다. 뭐 싫음 말고."
아운의 말에 흑칠랑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까지 자객 노릇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노후에도 손에 피를 묻힐 순 없지 않은가?
"험, 뭐 그렇다면야…."
흑칠랑이 슬그머니 후퇴하자 야한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말해 보았자 손해만 볼 뿐이고, 그 자리가 싫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난 몸과 마음을 완전하게 만든 다음, 일단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버님을 뵙고, 그 후 무림맹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내 여자가
상당히 어려운 모양입니다. 여기는 편 선배님께 맡겨 놓겠습니다."
편일학은 아운의 말을 들으면서 무림맹이 한 차례 떠들썩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궁금했다.
과연 아운이 얼마나 강해지고 그가 무림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그렇게 하게나."
편일학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흑칠랑이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말했다.
"나를 떨어트려 놓을 생각은 말게. 우리의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운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암습해주기 바라네."
그 말을 들은 야한이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하하,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길 가능성이 있어야 덤비죠. 아마도
흑 선배는 아운님이 늙어 죽거나 자연사 하길 기다릴지도…. 허험, 뭐
그렇다는…."
야한은 말하다가 흑칠랑의 사나운 눈초리를 보자, 그만 찔끔해서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이미 할 말은 다 한 셈이었다.
야한은 흑칠랑이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처럼 굴자 가슴이 덜컥해서
딴청을 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있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텐데. 지도 겁먹고 있으면서…. 쯔쯧.'
차마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조금 전 존경의 시선을 보내던 때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운의 말을 듣고 나서야 다시 깨우친 사실이
있었다.
흑칠랑이 없어져야 자신이 천하제일살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왕이면 빨리 붙어서 어서 가 주었으면 하는 맘인데,
하는 짓을 보니 빠른 시간에 도전하긴 그른 것 같았다.
그래서 심통이 났던 것이다.
순간, 흑칠랑의 사나운 시선에 당황해서 엉뚱한 말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나, 나도 갑니다. 선배."
"네가 뭐 하러 오냐? 이 원숭이 같은 후배 놈아!"
흑칠랑의 말에 야한의 눈이 위로 찢어졌다.
"나처럼 잘 생긴 원숭이 봤소?"
"허, 네가 잘 생겼냐?"
"내가 못 생겼단 말이요?"
"동경도 안 보는 모양이군."
"어제도 보았소."
"네 수준 알 만하다. 그건 그렇고 네가 왜 우리와 함께 간단 말이냐? 난
네놈이 정말 싫다."
"나도 흑 선배와 함께 가시 싫소. 하지만 어쩌겠소. 나는 심판이요,
심판. 지금 같은 살수 대결에서 나 말고 누가 심판을 볼 자격이 있냐
이 말이요?"
말은 맞다.
두 사람 빼고 현재 최고의 살수는 야한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아운을 따라 중원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우칠 또한 아운을 따라가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함께
가게 되었다.
***
무사하의 혈전이 있은 후 두 달이 지났다.
광활한 대사막을 일단의 군사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마차 하나를 호위하고 있었는데,
기병의 수가 삼십이요, 병사의 수가 백이나 되었다.
언뜻 보아도 그 행렬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병사들은 이끄는 장수는 명 군사의 천부장인 마달이었다.
그는 현재 만부장인 고대성의 심복으로,
대장군가인 고가의 식솔이라고 봐도 될 만한 인물이었다.
멀리서 모래 먼지를 날리며 달려오는 두 명의 기마병이 보였다.
앞서서 미리 순찰을 나갔던 병사들이었다.
마달 앞으로 달려 온 두 명의 병사가 말에서 뛰어 내리며 보고를 했다.
"삼십 리 밖에 녹주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하나의 작은 상단과
십여 명의 무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모두 중원으로 가는 행렬 같습니다."
"수상한 자들은 없던가?"
"다행히 없어 보입니다. 무사들도 강호 무림에 명성이 있는 자들
같습니다. 위험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들과 함께 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 아가씨께서 많이 피곤하실
테니 길을 서둘러라."
마달의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들은 발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마달은 말 위에서 마차를 바라보았다.
마달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그녀가 고대성과 맺어진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마달이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런 마달이었다.
자신의 직속상관인 고대성조차, 하늘 아래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바로
마차 안의 여자, 하영영이었다.
마달 역시 그녀가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