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제6장. 아운위기(牙雲危機) (64/228)

제6장. 아운위기(牙雲危機)

- 아직 끝나지 않았다

궁도 광사 타륵하의 죽음을 모르는 육십여 명의 광풍사 전사들이 일제히 

아운을 공격할 때, 아운은 자신의 방심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암습을 가한 궁도 광사 타륵하를 원망하거나 그의 비겁함을 욕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했을지 모른다. 

체면과 긍지 때문에 수많은 수하들이 죽을지 모르는 피해를 감수하는 

것은 이기심과 독선이다. 

자신 혼자만의 문제라면 모르지만, 수십 명의 수하들 생명이 걸린 

일이었다. 

그렇기에 광사의 암습을 탓할 순 없었다. 

잘못은, 그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당한 자신에게 있다고 아운은 생각했다. 

어차피 생사를 걸고 겨루는 결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미리 선포를 하고 겨루는 마당이었다.

어떤 짓을 해서든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전쟁에서 암습을 비겁하다고 

할 순 없었다. 

잠깐의 방심이 아운에게 치명타를 준 셈이었다. 

이는 아운에게 뼈아픈 경험이었다. 

아운은 불괴수라기공을 운용하여 화살 맞은 곳에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게 했다. 

그리고 검상이 난 곳도 마찬가지로 조치를 했다. 

아운이 급히 응급조치를 끝냈을 때, 

광풍사의 전사들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차앗! 

아운의 신형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광풍사의 전사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을 향하여 주먹을 

질렀다.

분광파천뢰. 

삼절파천황의 두 번째 초식이 펼쳐진 것이다. 

아운은 다시 사기가 오른 광풍사의 기를 꺾기 위해 초강수를 둔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내공이 남아 있을 때 써야만 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분광파천뢰였다. 

번쩍 하는 섬광이 이십여 명의 광풍사가 몰려 있는 가운데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오 척 위로 분광파천뢰의 강기가 강렬하게 폭발했다. 

아직 완전하지 않은 분광파천뢰였지만, 강기가 터져 나가는 힘에 의해 

오 장 안은 그 폭풍 속에 잠겨 들었다. 

너무 강렬한 섬광으로 인해 광풍사의 전사들은 눈을 감았고, 

강기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이십여 명의 전사들과 말을 몰아 공격해 

오던 군령이 그 자리에서 머리가 날아가거나 치명적인 중상을 당하고 

쓰러졌다. 

단 한 번에 열다섯 명이 죽고, 다섯 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광풍사의 전사들도 그들의 죽음을 확인할 새가 없었다. 

허공에서 내려온 아운은, 이 엄청난 광경으로 인해 전의를 상실한 

광풍사의 전사들을 덮쳐갔다. 

놀란 순부 전사들이 급한 대로 들고 있던 도끼를 빗발처럼 던져 아운을 

공격했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아운은 큰 상처를 입자, 힘이 있을 대 될 수 있으면 이들을 더욱 많이 

죽여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공에서 몸을 틀어 도끼를 피한 아운은 삼절파천황의 분광파천뢰에 이어 

연격포의 전 육식인 연환육영뢰의 모든 신기를 한꺼번에 펼쳐내었다. 

일기영으로 시작해서 육영추가 끝났을 때, 그 주변은 태풍이 쓸고 간 

것처럼 초토화되었고, 다시 열두 명 이상의 광풍사가 목숨을 잃었다. 

"덤벼, 덤벼라! 저자를 죽여야 우리가 산다." 

마지막으로 단 한 명 살아남은 대군령 철합라가 악을 쓰면서 광풍사의 

전사들을 독려했다. 

그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군령이었다. 

그나마 살아 있던 두 명의 군령 중 한 명은 분광파천뢰의 파편 속에서 

죽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광풍사의 전사들은 군령의 절박한 고함 속에서 그 사실을 깨우쳤다. 

사막의 무적군단, 광풍사의 투혼이 다시 한 번 그들을 움직였다. 

철합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고함을 질렀다. 

"저자는 대부령님의 검과 광사님의 화살에 맞아 중상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라! 저자의 주먹은 아까에 비해 위력이 줄었다." 

철합라의 말은 광풍사의 투혼을 일깨웠다. 

그들도 이미 아운의 복부에 꽂혀 있는 화살과 가슴에 난 검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만 해도 그의 주먹 폭풍에 쓰러진 전사들이 이십 명이나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겨우 열둘, 거의 반이나 줄었다. 

용기가 난다. 

광풍사의 전사들이 무기를 들고 아운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다. 

아운은 적이지만 광풍사의 끈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어떤 군대라도 이 정도면 포기를 해도 몇 번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기가 저하되었다가도 또 살아나고, 

다시 죽이면 또 살아난다. 

특히 그들의 수장인 군령들의 투혼은 아운으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삼십여 명도 안 되는 인원만 남은 광풍사였다. 

거의 괴멸에 가까운 상황이었지만, 아운은 지금까지 싸워 왔던 그 어떤 

결투에서보다도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치명적인 상처를 두 군데나 입고 있었다. 

가슴 깊게 스치고 지나간 대부령의 검강으로 인한 내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고, 광사 타륵하의 화살은 오른쪽 복부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 올려 분광파천뢰와 육영뢰를 

펼쳤다. 

전신이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과 확연하게 다가오는 피로가 아운의 

마음과 육신을 무겁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하다.' 

아운은 이를 악물고 연환육영뢰를 다시 한 번 펼쳤다. 

어차피 내공 소모가 많은 육영뢰는 지금 아니면 다시 펼치지 못할 것 

같았다. 

주먹에 닿은 것들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검이나 도나 방패나 모두 소용이 없었다. 

권강에 충돌하면 부서지고 날아갔으며, 그 무기의 주인은 으깨져 죽었다. 

그러나 연환육영뢰가 다 펼쳐지고 났을 때 죽은 자는 겨우 아홉이었다. 

좀 전의 육영뢰에 비하면 셋이나 덜 죽었다. 

그리고 공격 중에 두 번이나 창에 찔린 아운이었다. 

그의 상처에서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천하에 불괴수라기공도 이젠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았다. 

광풍사 전사들의 눈엔 광기가 어렸다. 

광풍사 전사로서의 자존심과 오기, 그리고 아운의 강함으로 인해 전해

오는 두려움과 공포가 그들을 오히려 더욱 잔인하고 더욱 악착같이 

덤벼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죽음과 공포 앞에서, 그것을 잊기 위해 오로지 전투엠나 몰입하는 과정은 

그들의 수련 중 가장 힘든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효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었다. 

마치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의 용맹한 투기가 아운을 옥죄어 온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아운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기인 연격포는 마지막 

한 초식만 남겨 놓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론 그것도 펼칠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광풍사의 전사들을 향해 연격포의 마지막 초식인 

태양무극섬을 펼친다고 해도 그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일이고, 

아운 또한 더 이상 무공을 펼칠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하고 말았다. 

그 다음은 누구라도 아운을 죽일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큰 부상을 입고 있다면, 제 위력이 나올 수도 없거니와 그들이 

모여 있어도 한 번에 다 죽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운은 복부에 전해 오는 고통을 참으며 생각했다. 

'내공 소모가 별로 없는 무공만 골라서 써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될 수 있으면 힘을 아끼고, 될 수 있으면 힘이 있을 때 단 한 명이라도 

상대를 더 죽여야 했다. 

그게 아운이 사는 길이었다. 

이미 육삼쾌의연격포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남은 무공들 중에 내공 소모가 적은 단룡십팔장과 삼살수라마정만을 

집중적으로 사용해서 광풍사의 전사들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결정타를 날리는 것도 연환금강룡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공이 적게 

드는 선풍팔비각을 사용하기로 했다. 

아운이 다짐을 하고 있을 때, 

두 개의 창이 아운의 가슴과 머리를 겨냥하고 찔러 왔다. 

지금처럼 지치고 큰 부상을 당했을 때, 

기마병의 공격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아운은 남은 힘으로 칠보둔형을 펼치면서 삼살수라마정을 던졌다.

크윽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기마병이 죽었지만, 

아운은 또 다른 전사의 공격으로 인해 등에 작은 상처를 입었다. 

아운은 몸을 틀어 자신을 공격한 광풍사의 전사를 향해 단룡십팔장의 

살수를 펼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습격했던 광풍사의 전사는 죽었지만, 

그 순간 사방에서 네 명의 전사들이 악귀처럼 달려든다. 

그들도 이미 아운이 큰 부상을 당해 힘겨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용맹이란 불꽃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아운은 이를 악물었다.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이 얽히고 설키면서 아운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네 명이다. 

단룡십팔장으로는 버거웠다. 

그렇다면 선풍팔비각 뿐이었지만, 선풍팔비각은 내공 소모가 적은 대신 

동작이 커서 심하게 다친 상처가 부담스럽고 체력의 고갈 또한 문제가 

되었다. 

삼살수라마정도 생각을 했지만, 세 개를 던져도 상대는 넷이었다. 

아운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었다. 

그는 몸 안에 있는 진기를 전부 끌어서 양 발에 모으고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말을 타고 공격해 오는 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위로 뛰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운의 신형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광풍사 군령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단 한 명의 군령인 철합라는 

광풍사의 전사들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는 역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궁도 전사가 활을 

겨냥하고 있었다. 

아운이 허공으로 뛰어 오르는 것을 본 철합라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지금처럼 큰 부상을 당하고 하늘로 몸을 날리는 경공은 굉장히 많은 

체력과 내공을 소진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철합라와 그의 뒤에 있던 궁도 전사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슉! 

궁도 전사가 쏜 화살이 아운을 향해 날아갔고, 

그에 앞서 아운을 공격하는 네 명의 전사들 뒤에 포진하고 있던 네 명의 

순부 전사가 일제히 도끼를 던졌다. 

순부 전사들이 도끼를 던지는 방법은 실로 교묘해서, 

양날 도끼가 마치 빗발처럼 허공을 선회하며 날아갔다. 

그리고 또 다른 창검 전사들은 창을 들어 던질 준비를 했다. 

아운이 도끼를 피하는 순간, 창이 날아갈 판이었다. 

아운이 부상으로 주춤하는 사이에 소광풍멸사진이 발동한 것이다. 

비록 인원이 부족하고 그들을 이끄는 군령들이 없었기에 완벽하진 

않았지만, 지금의 아운에겐 확실히 위협적이었다. 

아운은 공중으로 몸을 날릴 때, 이미 그들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치밀할 줄은 몰랐다. 

원래 내공심법이 뛰어나지 않았던 비응천각괴 오칠의 무공들은 어떤 무공

이든지, 내력 소모가 아주 적은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섬광어기풍 역시 내력 소모가 아주 적은 장점을 지닌 신법, 

경공이었지만, 지금의 아운에겐 역시 힘든 무공이었다. 

그래서인가 그의 움직임은 바로 조금 전에 비해 상당히 둔탁했다. 

뿐이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순간 오른쪽 아랫배를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이야말로 진퇴양난이요, 사면초가였다. 

아운은 이를 악물었다. 

칠보둔형을 허공에서 펼치기엔 지금의 아운으로선 너무 무리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않다면 날아오는 도끼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아운의 신형이 더욱 느려진다. 

그리고 그 틈에 네 자루의 도끼가 아운을 향해 비상하고 있었다. 

아운은 네 개의 도끼가 대기를 가르고 무섭게 접근해 오는 기세를 느끼자, 

망설이지 않고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천근추의 묘리로 몸을 급강하 

하면서 도끼를 한꺼번에 피해 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날아온 화살이 그의 어깨에 들어가 박혔다. 

허공에서 교묘하게 몸을 틀었지만, 화살을 완전히 피하기엔 그의 내공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몇 개의 창이 아운을 향해 날아온다. 

참으로 교묘한 배합이었고, 적절한 순간에 날아오는 창들이었다. 

아운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지금 순간에 그가 살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조금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그 뿐이었다. 

아운은 화살을 맞은 상황에서 허공을 격하고 칠보둔형을 펼쳐 세 자루의 

창을 겨우 피해내었다. 

복부를 비롯해 찢어져 나가는 전신의 아픔이 아운을 오한 들게 하였지만, 

그는 그 상황에서도 강하게 몸을 회전했다. 

회전하는 그의 몸과 함께 두 발이 선풍비혼차와 선풍비격의 초식을 

번갈아 사용해 네 명의 공격자를 역공격하고 있었다. 

아운은 단 두 가지의 초식으로 무려 십여 번의 발길질을 가했다. 

퍽! 퍽! 

네 명의 전사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평상시면 일각 일살이었을 것이다. 

아운은 그들을 공격하면서 삼살수라마정을 철합라가 있는 곳으로 쏘아 

보냈다. 

그의 수라마정에 마지막 군령 철합라에게 날아가는 순간, 

다시 세 개의 창이 아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아운은 자신의 공격으로 죽은 전사들이 타고 있던 말 등과 말 등을 밟으며 

다시 한 번 칠보둔형의 보법으로 창들을 피해내었다.

동시에 창검 전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고, 창검 전사들은 검을 뽑아들고 

아운에게 마주 공격해왔다. 

공격하는 아운은 눈이 뒤집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아야 했다. 

활에 맞은 복부와 어깨가 터져 나갈 것 같은 고통으로 아운을 괴롭혔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아운이 날린 세 개의 삼살수라마정은 삼각형의 대형을 이루며 군령 

철합라의 등 뒤에 숨어 있던 궁도 전사를 향해 날아갔다. 

"조심하라!" 

고함과 함께 철합라가 하나의 삼살수라마정을 쳐내었고, 

그 순간 두 개의 마정은 마지막 남은 궁도 전사를 향해 날아갔다. 

궁도 전사는 필사적으로 한 개의 수라마정을 피했지만, 

뒤이어 날아온 또 하나의 수라마정에 심장을 관통 당하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즉사였다. 

이렇게 광풍사의 궁도 전사들은 모두 전멸했다. 

철합라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죽은 궁도 전사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아운을 

보았다. 

'정말 대단하다. 한 명에 의해 광풍사가 전멸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저자가 정말 인간인가? 대체 얼마나 강한 자인가? 광풍사의 진정한 전사들

이라는 광전사들 보다도 더 강한 것 같다.' 

철합라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볼수록 대단하고 무서운 자였다. 

그러나 언제까지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 순간에도 아운은 악착 같이 자신의 수하들을 죽이고 있었으며, 

이제 그의 수하들은 열 명도 안 되는 숫자가 남았을 뿐이었다. 

아운의 살수는 조금도 사정이 없었다. 

다시 두 명의 전사가 쓰러지는 것을 본 철합라는 말을 몰아 아운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 일곱. 

아운은 살아남은 자가 일곱임을 알았다. 

가물거리는 시선 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그림자의 숫자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군령까지 합하면 모두 여덟. 

'조그만 더 힘이 있었으면.' 

아운은 안타까웠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선 채 자신을 둘러싼 

광풍사의 전사들을 노려보았다. 

두두두. 

아운의 귓전으로 어렴풋이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아운은 단 한 명 남은 군령이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있던 일곱 명의 전사들이 거의 동시에 아운을 덮쳤다. 

말발굽으로 아운을 깔아뭉갤 듯한 기세였다. 

아운은 칠보둔형의 보법으로 자신의 전면에서 공격해 오는 전사의 

말 옆으로 돌아갔다. 

말 옆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손바닥이 내기를 품고 전사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비명 소리와 함께 장법에 가격당한 전사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바둥거리며 죽어갔다. 

아운은 한 명의 전사를 죽임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삼살수라마정을 던졌다. 

그리고 바로 등 뒤로 쫓아온 또 한 명의 전사를 선풍팔비각으로 걷어찼다. 

막 아운을 공격하려던 세 명의 전사 중 두 명은 수라마정에, 

그리고 바로 뒤에 있던 자는 발에 차여 절명했다. 

이제 남은 전사는 셋. 그리고 군령 하나. 

아운은 상대의 숫자를 세면서 더욱 힘을 내려 했다. 

그때 이들 틈으로 달려온 군령 철합라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아운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아운은 그 자리에서 몸을 굴려 겨우 피해냄과 동시에 벌떡 일어서며, 

자신을 재차 공격해오는 세 명의 전사들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막 되돌아온 삼살수라마정이 다시 한 번 날아가며 살아남은 세 명의 

전사를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군령의 검은 사정없이 아운의 가슴을 쑤시고 들어왔다. 

아운은 자신의 가슴을 쑤신 군령의 검을 두 손으로 잡은 채, 

끝까지 삼살수라마정을 조종했다. 

수라마정이 날아오는 순간 전사들은 어떻게 하든 수라마정의 살기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그러나 피하기엔 너무도 가까운 거리였고, 

지금 아운은 끝까지 수라마정을 보면서 조종하고 있었다. 

한 명의 전사가 겨우 수라마정을 피하는 듯 했지만, 

아운은 수라마정을 조종하여 전사가 피한 곳으로 수라마정을 꺾어 놓았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며 수라마정은 피할 것 같았던 전사의 뺨을 뚫고 

들어갔다.

그렇게 광풍사의 전사들은 완전히 전멸했다. 

단 한 명의 대군령 철합라만을 남긴 채. 

군령 철합라는 치가 떨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지독한 인간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는 아운의 가슴에 찔러 넣은 검에 힘을 주고 아래로 내리 그으려 했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가 그의 마지막 남은 내공을 전부 끌어 모으게 

만들었다. 

힘을 모은 군령 철합라는 이제야말로 너는 죽었어 하는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마침 세 명의 전사를 삼살수라마정으로 죽인 아운이 자신을 보면서 냉소를 

짓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넌 이제 죽었어 하는 표정. 

군령은 그 웃음에 소름이 오싹하는 느낌을 받고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아운의 미간에서 번쩍 하는 짧은 섬광을 보았고, 

그 섬광이 자신의 이마를 뚫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뚫지는 못했다.

탈명수라마정은 약 절반 정도가 군령 철합라의 이마에 들어가 박혀 있었다. 

단 한 줌의 진기가 없어도 쏘아 보낼 수 있는 것이 탈명수라마정이다. 

하지만 아운의 내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이었고, 

그 일부마저도 철합라가 내리그으려는 검을 부여잡고 있는 두 손에 끌어 

모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신마저 혼미했기에 탈명수라마정은 제 위력을 완전하게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탈명수라마정을 쏘아 보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상대를 죽이기엔 충분했다. 

군령 철합라의 안색이 파르르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미간에서 암기가 튀어 나올 수 있는가? 

죽으면서도 그는 이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탈했다. 

영광의 광풍사가 이렇게 몰살을 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그의 시선 속에 널려 있는 광풍사 전사들의 

시신은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게 했다. 

아무리 손에 힘을 주려고 해도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지 않았다. 

억지로 육신을 이탈하려 하는 혼백을 부여잡은 철합라의 눈에 물기가 

고인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용사로서 싸우다 죽는 것은 당연했다. 

언젠가는 이렇게 죽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를 죽이기 바로 직전에 죽는 것은 억울했다. 

죽일 수 있는 상대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자신이 광풍사의 마지막이란 사실에 그는 절망했다. 

이제 광풍사의 힘으로 복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희망은 가질 수 있었다. 

아운이 입은 적지 않은 상처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광사는 대전사에게 지금의 상황을 적어서 보냈다. 

"이렇게 광풍사가 무너지는가? 그러나 너도 무사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운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 역시 군령 철합라와 마찬가지로 혼미해지는 정신을 겨우겨우 부여잡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운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너의 검은 나의 심장을 뚫지 못했다." 

아운은 힘겹게 말을 하면서 검을 움켜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마치 검이 뚫고 지나간 곳이 심장이 아니란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에 검 끝을 심장에서 비켜낸 아운이었다.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군령 철합라의 검을 단 한 번은 피할 수 있어도 두 번, 세 번은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운은 부상이 심했다. 

그리고 던진 삼살수라마정으로 살아남은 세 명의 전사들을 모두 죽이지 

못하면, 자신 역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가슴으로 군령 철합라의 검을 받으면서 끝까지 세 명의 전사를 

죽였다. 

세 명만 죽이면 단 한 명의 군령만 남는다. 

그렇다면 아운은 모험을 할 만 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것은 탈명수라마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모험이었다. 

성공했지만, 아운 역시 그 대가가 너무 컸다. 

아운의 말에 철합라가 입으로 피를 토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네 상처라면 죽지 않더라도 폐인이 될 것이다. 쿨럭… 다, 당연, 

그리고 사, 살아난다면 너는 더한 지옥을 볼 것이다. 이제 우리가 전부 

죽었으니 진정한 광풍사의 숨은 힘이 너를 쫓기 시작할 것이다. 그, 

그들, 광전사는 정말 무섭다. 크흐흐." 

그 말을 끝으로 철합라의 고개가 꺾어졌다. 

검을 쥔 손에 힘이 풀리며 그의 시신은 사막의 메마른 땅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그가 한 마지막 말은 아운의 가슴을 누른다. 

진정한 광풍사의 힘이라고 했다. 

광전사들이라고 했다. 

쿨럭. 

아운은 피를 토해 내었다. 

그러나 손으로 움켜 쥔 검을 뽑지는 못했다. 

뽑을 힘도 없었고, 뽑았다가 출혈 과다로 상처가 더욱 악화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흐릿해지는 시선 안으로 흑풍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겨우 흑풍의 등에 올라타 말의 목을 움켜 쥔 채 정신을 잃었다. 

아운이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그의 이사부인 불괴음자가 적은 놓은 

말이었다. 

< 아무도 너를 죽일 수 없다. >

그 말을 기억하며 아운은 무의식 중에 불괴수라기공의 구결을 끊임없이 

외우고 있었다. 

흑풍은 아운이 자신의 등에 타자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흑풍은 이미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는 듯, 

사막을 향해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인의 상태를 아는지 일정 이상의 속도를 내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무사하에서 벌어진 결투는 하루 밤낮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그 승자는 권왕 아운이었다. 

차후 무림의 사가들은 이 날의 결전을 무사하의 혈전이라고 칭했으며, 

어떤 이들은 무사하를 일컬어 광풍사의 무덤. 

즉, 광풍묘(光風墓)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이 날의 혈전은 아운의 이름을 진정한 권왕으로 인정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

아운이 무사하에서 광풍사와 죽음의 혈전을 치른 후,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무사하에서 일기 시작한 모래폭풍은 전 사막과 강호 무림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마리의 전서구들이 무사하의 혈전을 알리기 위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단 한 명이 광풍사 전체를 몰살시킨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놓고 수많은 

무인들은 설왕설레하였지만, 그 장소에 가 본 수십 명의 무인들은 소문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파장은 너무 컸다. 

혼자서 사라신교를 무너트렸을 때만 해도 그를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번엔 그들도 아운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권왕 아운의 이름은 강호 무림을 뒤흔들어 놓았고, 

그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그 동안의 대한 상식을 깨는 일이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하루에도 몇 십 개씩 새로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강호 무림에서는 아운을 쌍절오기칠사와 나란히 놓고 말하기 시작했으며, 

명문가의 제자나 자손이 아닌 무사들은 아운의 절대적인 추종자가 되어 

갔다. 

혈전의 장소를 십여 일에 조사한 개방의 장로이자 강호 무림의 명숙인 

무이신개(武理神?) 양몽(楊夢)은, 장문인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 광풍사의 시체는 수십 리에 걸쳐 널려 있었으며, 그들이 죽은 모습으로 

보아 권왕의 무공은 신묘한 암기술과 파괴력을 계산할 수 없는 권법, 

빠르고 날카로운 각법, 그리고 일격에 서너 명을 죽일 수 있는 검강에, 

다량의 벽력탄까지 지니고 있는 것으로 사료됨. 

단지 사용한 암기는 이미 수거해 간 듯함.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지닌 암기의 숫자가 몇 개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과, 다량의 벽력탄을 터트린 것 같은데 어디에도 화약의 

흔적이나 벽력탄의 파편이 없다는 것임. 

이 부분은 더 조사가 필요. 

그러나 무이신개는 보고서를 보낸 직후 자신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광풍사는 완전히 전멸한 것이 아니었다. 

분광파천뢰로 인해 팔다리가 날아가면서 기절했던 두 명의 광풍사가 

살아 있었고, 우가차와 함께 아운을 공격했던 군령 중 한 명 역시 

분광파천뢰에 당해서 죽음 직전의 중상을 입고 쓰러져 기절해 있다가 

살아났다. 

비록 얼마 살지 못할 만큼 중상이었지만, 가장 치열한 혈전 중 하나였던 

군령들과의 전투 상황을 말해줄 수 있는 증인이 살아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아운과 광풍사의 전사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상세하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혈전에서 살아남은 세 사람을 모아 놓고 이야기를 들은 강호의 

명숙들은 십여 명이 넘었다. 

이들 중엔 무림 대파와 무림맹, 그리고 호연세가와 북궁세가의 조사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앞에서 두 명의 전사와 한 명의 군령을 통해 알려진 아운의 

무공과 결투 방식, 그리고 그가 광풍사를 상대로 펼친 전략, 전술이 확연

하게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무림의 명숙들은 백삼십여 장을 날아

가는 무시무시한 암기에 대한 이야기와 주먹에서 검강과 벽력탄 십 배 

이상 위력의 폭발력을 지닌 강기를 뿜어낸다는 말을 쉬이 믿을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무공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그들이었기에 더욱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 사람의 이야기가 전부 일치함으로 인해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광풍사 전사들이 한 말들 중 아운의 암기술이나 권강에 대한 이야기는 

명숙들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충돌이 심했던 부분이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쪽과 가능하다는 쪽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던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쪽의 이야기는 아운이 무엇인가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는 쪽은 전사들이나 군령들의 무공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말을 믿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차후 아운이 다시 한 번 이 권강을 구사하기 전까지 이들의 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했었다. 

특히 암기 부분에 있어서, 그 장소에 있었던 사천당가의 원로 당기천은 

가장 반발이 심했다. 

평소 암기와 독의 조종이라고 자인하던 당가의 입장에서, 

아운의 암기술에 대해 광풍사 전사들이 한 말 그대로 믿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그 말을 믿는 순간, 당가는 암기의 천하제일이라는 자리를 내 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반발이 강했던 당기천도 전사들이 말한 아운의 암기에 대한 

그 어떤 해석도 내 놓지 못했다. 

결국 부상이 심한 군령이 죽었고, 살아남은 전사 두 명은 무림맹으로 

압송되면서 무사하의 혈전에 대한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그러나 아운에 대한 전설은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운이 광풍사와 싸운 이야기는 세상에 흘러 나가 수많은 전설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아운을 확실하게 권왕으로 불리게 만들어 주었다. 

무사하 혈전 이후 어느 누구도 권왕 아운이란 말에 시비를 걸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전략전술과 승리에 대한 의지는 스승이 제자에게 무공을 

가르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아운에 대한 소문은 무림만이 아니었다. 

사막과 새외는 물론이고 특히 명의 군사들 사이에서는 더 없이 존경을 

받는 이름이 되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들에게 가장 공포스런 존재인 광풍사를 단독으로 괴멸시킨 당사자가 

아니겠는가? 

이때만 해도 명의 대장군 고화준이나 하영영의 약혼자 고대성은 아운이 

하영운일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 고대성이 가장 존경하며 만나고 싶어 했던 인물이 권왕 

아운이었으니, 세상 일은 참으로 묘하다면 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알까? 

자신의 코뼈를 반드시 박살내겠다고 벼르는 인물이 있고, 

그가 바로 권왕 아운임을. 

고대성으로서는 참으로 너무 큰 적을 둔 셈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