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권. 제2장. 수라마정(修羅魔釘) (60/228)

제2장. 수라마정(修羅魔釘)

- 거리를 확보하라!

광활한 사막을 울리는 말들의 발 구름과 전사들의 투기가 일제히 아운을 

향했짐나 아운의 얼굴은 태연했다. 

감탄은 했을지언정 겁을 먹은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운의 가슴은 긴장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말은 들었지만 막상 마주 대하고 보니 과연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저들이 펼친 진 안에 갇히면 아무리 나라도 살아남긴 불가능할 것 같다.' 

아운이 다시 한 번 그들의 진세를 살펴보았다. 

빈틈이 없었고, 그 안에 휩쓸리면 세상의 어떤 강자라도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았다. 

"돌격!" 

대부령 타미르의 명령이 떨어지자 삼백의 광풍사가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육 열로 서서 달리고 있었으며, 

삼백의 광풍사 앞에는 세 명의 대군령이 나란히 앞장 서 있었다. 

그리고 돌격이 시작되는 순간 대부령과 두 명의 광사는 뒤로 처진다. 

어떤 전쟁에서도 지휘관은 뒤에 있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아니라도 광풍사엔 강자가 많았다. 

맨 앞에 달리는 세 명의 대군령은 광풍사에서도 용맹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광풍사의 전사들 중 궁도 전사들은 일제히 

활에 화살을 먹였다. 

전력으로 질주하면서 활을 들었지만 그들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어쩌면 광풍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들의 화살이 먼저 아운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과는 너무도 싱겁게 끝나리라. 

그러나 그들은 화살을 쏠 기회가 없었다. 

광풍사가 달려오기 시작하자 아운은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광풍사의 전사들이 보았을 때는 어이없는 일이었다. 

싸우기도 전에 등을 보이고 도망가다니? 

앞장 서서 달려오던 대군령 중에 한 명이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린 비겁한 놈. 큰 소리가 심하다 했더니 말만 앞서는 놈이었군. 소리한, 

놈에게 화살 한 대 먹여 줄 수 없을까?" 

궁도 선봉 대군령 소리한이 고개를 흔들었다. 

"거리가 백 장이 조금 넘을 것 같다. 사정거리가 조금 멀어. 지금처럼 

쫓아갈 때는 화살이 날아갈 때 상대가 도망가는 거리를 계산해서 사정

거리가 조금 더 짧아야 한다." 

"그렇다면 조금 더 힘을 내자." 

대군령들은 나름대로 협의를 한 후, 더욱 기세를 올리며 아운을 쫓았지만 

아운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들의 말도 대단했지만, 사라신교의 최고 명마인 흑풍 또한 결코 그들의 

말에 뒤떨어지지 않는 명마였다. 

특히 이때를 위해 보약까지 먹은 말이었다. 

그렇게 반 각 정도를 도망치자 화가 난 창검 선봉 대군령이 고함을 질렀다. 

"이 비겁한 놈아! 컥." 

그러나 고함을 지르던 창검 대군령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아운이 달리는 말에서 몸을 돌렸다. 

정확하게 몸을 돌려 앉았다. 

그리고 아운의 손이 달려오는 창검 선봉 대군령을 향했고, 

그의 손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바로 고함을 지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달려오는 광풍사의 속도와 비례해서 아운이 던진 물체는 섬광처럼 

가까워졌다. 

"암기라니!" 

그것도 지금 아운과 자신들의 거리가 얼마인데. 

자신들이 달리는 속도를 감안해도 거의 백 장 거리를 격하고 날아오는 

암기를 보고 세 명의 대군령은 대경실색했다. 

특히 이미 해가 진 사막의 야음을 타고 유령처럼 날아오는 암기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창검 선봉 대군령이 놀라서 들고 있던 창으로 암기를 쳐냈다. 

순간 암기가 갑자기 사선을 그리고 날아가 대군령의 뒤에 있던 창검 

전사의 이마에 꽂혔다. 

그야말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날벼락인 셈이었다. 

"크악!" 

비명과 함께 창검 전사는 말에서 떨어지며 즉사하고 말았다. 

암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다니. 

세 명의 대군령이 암기에 놀라고 비명에 놀라서 뒤를 본 순간. 

선봉 창검 대군령은 자신의 뒤통수가 화끈한 느낌을 받고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처음 날아왔던 암기의 뒤를 이어 날아온 암기가 고개 돌린 그의 뒤통수를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궁도 선봉 대군령 역시 마찬가지로 뒤통수에 삼살수라마정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단 한 번에 세 명이 죽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완벽한 기습이었다. 

놀라서 광풍사가 일제히 멈추었다. 

아운은 세 개의 수라마정이 손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수라마정의 위력은 생각보다 더욱 무서웠다. 

우선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고, 처음 한 개의 수라마정으로 대군령들의 

시선을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 뒤에 은밀하게 쫓아간 두 개의 수라마정은 두 명의 대군령을 

일격에 죽였다. 

설마 백 장을 격하고 날아오는 암기가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광풍사로선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재앙이었다. 

거리, 그리고 암습. 

광풍사를 상대로 아운이 들고 나온 첫 번째 전법이었다. 

아무리 광풍사라고 해도 접근하지 못하면 광풍멸사진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백 장 이상의 거리라면 광풍사의 화살도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광풍사의 궁은 백 장이 한계였던 것이다. 

그것은 대군령이나 광사의 능력에도 역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단지 위력의 차이는 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기어시를 사용하려면 그만큼 내력소모가 크다. 

물론 광사나 대군령들은 조금 더 멀리 활을 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위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내공 소모는 배가 된다. 

반대로 아운은 어검술과 광풍사의 신병들에게 빼앗은 궁법을 연구해서 

삼살수라마정을 이기어시처럼 쓸 수 있게 되었고, 

살상 능력은 백삼십 장까지 늘려 놓았다.

그리고 수라마정은 내공 소모가 아주 적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대군령급 이상의 실력자들이 방심하지 않는다면 백 장 이상의 

거리에서 그들을 죽이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전사들도 그럴까? 

그들이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암기라면, 수라마정이 살문의 최고 무기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불괴수라기공이 정점에 이른 지금 수라마정의 위력도 정점에 달해 

있었다. 

아운은 광풍사가 멈춰선 순간 돌아온 삼살수라마정을 다시 쏘아보냈다. 

거리는 백십여 장 정도. 

막 멈춰선 광풍사들 중 세 명의 전사가 그대로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마음으로 조절하는 암기는 명중률이 떨어질 수가 없다. 

그리고 해가 졌다. 

삼살수라마정은 말 그대로 유령이었다. 

강호무림에서 가장 지독하고 무서운 암기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세 명의 전사를 죽인 아운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역시, 광풍사는 대단하구나.' 

아운은 세 명의 병사가 죽은 것보다, 순부 선봉 대군령이 자신의 암기를 

피한 것에 더욱 부담이 갔다. 

그러나 선봉 대군령 중 살아남은 단 한 명의 대군령이 느끼는 부담은 

아운이 느끼는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못했다. 

분명 암기를 꺼내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다시 세 개의 암기가 날아왔다. 

혹시나 해서 신경을 쓰고 있던 선봉 순부 대군령은 겨우 암기를 피해낼 

수 있었지만, 그 암기는 그대로 날아가 자신의 수하를 죽이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암기. 

그리고 대체 몇 개나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엇다. 

이제야 상대가 왜 늦은 저녁을 결투 시간으로 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상대의 암기는 자신들의 궁보다 더 길게 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밤이면 암기의 능력은 더욱 무서워진다. 

밤에 목표물을 어떻게 찾겠느냐 하겠지만, 

삼백의 무리가 모여 있다면 다르다.

그리고 상대는 내공의 고수였다. 

물론 그는 아운이 불괴수라기공으로 인해 밤을 대낮처럼 잘 볼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지, 그들도 대군령 정도라면 순수한 내공으로 인해 밤에도 큰 지장을 

받지 않기에 그리 짐작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밤눈은 아운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였다. 

대군령은 다시 한 번 죽은 전사들을 보았다. 

분명 암기에 죽은 것 같은데, 어떤 암기를 썼는지 암기가 보이지 않았다. 

광풍사의 전사들이 놀라서 웅성거릴 때 다시 날아오는 세 개의 암기. 

"피해랏!" 

순부 선봉 대군령이 고함을 질렀지만, 모여 있던 광풍사들이 피하면 

어디로 피할 것인가? 

"크아악!" 

비명과 함께 무려 다섯 명의 전사가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한 개의 암기가 두 명씩 관통하고 지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개는 한 명을. 

이제 상대는 대군령이 아니라 전사들만을 노린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의 대군령과 아홉의 전사가 죽었다. 

도합 열한 명. 

아운은 직선으로 쏘아 보내면 한 개에 두 명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기꺼웠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용맹의 대명사 광풍사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감정이 떠올랐다. 

뒤에 있다가 앞으로 온 대부령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일단 수습을 해야 한다. 

대부령은 빠르게 머리가 돌아갔다. 

순부 선봉 대군령이 다가오며 보고했다. 

"암기입니다." 

"암기라고?" 

대부령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거리는 어림잡아 백십 장. 

대체 어떤 암기가 백십 장을 날아와 무림 고수라고 할 수 있는 광풍사의 

전사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의문은 나중이었다. 

우선 대군령의 말을 믿어야 했다. 

"우사, 좌사, 앞장선다." 

"그보다는 저 혼자 앞장을 서겠습니다." 

대부령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순부 좌사 타우루가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방패로 암기를 막으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좋다. 좌사가 앞장을 선다." 

결정을 하고 돌격 명령을 내리려 할 때였다. 

다시 세 가닥의 암기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미 해가 완전히 기울었다. 

아무리 고수라도 시야가 상당히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대부령 타미르 역시 암기가 보였다기 보다는 느낌이었다. 

좌사 또한 그것을 느꼈는지 방패를 들었다. 

대부령도 자신의 무기로 암기를 쳐내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오만이었다. 

암기는 철저하게 그들의 무기가 닿지 않는 곳으로 비잉 돌아서 모여 있는 

광풍사의 전사들에게 향했다. 

"크아악!" 

다시 세 명의 전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설혹 피한 자가 있어도 그 순간 그 뒤에 있는 전사가 대신 죽고 말았다. 

다시 셋. 

이제 죽은 일반 전사만 해도 열두 명이다. 

대부령은 어이가 없었다. 

이건 전투도 아니었다. 

아니 전투를 할 수도 없었다. 

멸사진이고 폭사진이고 상대가 있을 때 이야기다. 

그리고 활도 거리가 닿아야 쏜다. 

"전사들은 뒤로 후퇴하라! 나와 두 명의 광사가 저자를 맡는다." 

순간 전사들이 뒤로 돌아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사는 활을 겨냥하고 아운을 노린다. 

백십여 장. 

우사의 실력이면 화살을 날려 보낼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이 거리에서 아운을 죽이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사는 활을 겨누고 아운이 다가서지 못하게만 했다. 

아운이 뒤로 돌아 후퇴하는 전사들을 향해 다시 암기를 날렸다. 

회선을 그리며 암기가 광풍사 전사들의 등을 노리고 날아갔다. 

"차앗!" 

고함과 함께 한 명의 광사와 대부령 그리고 한 명의 대군령이 암기를 

향해 몸을 날리며 자신들의 무기로 삼살수라마정을 쳐내었다. 

그러나 대군령이 쳐낸 암기는 사선을 그리면 날아가 광풍사의 전사 

한 명을 죽이고 말았다. 

힘이 떨어지고 속도가 죽었지만, 후퇴하기 위해서 등을 돌린 전사로선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두 개의 암기는 실패했다. 

처음으로 광풍사를 죽이지 못하고 삼살수라마정이 되돌아 왔다. 

역시 먼 거리에서 일정 이상의 고수를 죽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광풍사의 일반 전사 열셋, 대군령 둘. 

광풍사가 생겨나고 처음 있는 치욕의 순간이었다. 

아운은 일단 삼살수라마정을 거두었다. 

이제 저들은 광풍멸사진을 포기하고 소수의 고수들로 공격을 해 올 것이다. 

자신이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올까? 

자신의 암기 정도는 능히 피하거나 쳐내면서 접근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대부령을 비롯해서 두 명의 광사, 그리고 대군령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두 명의 광사와 대부령이 직접 나설 것 같았다. 

호전적이고 전사의 기질이 강한 그들의 성향으로 보아 이런 일에 직접 

나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의 계획상으로도 당연히 그들이 나와야만 했다. 

이제 광풍사의 전사들은 자신의 사정권에서 멀어졌다. 

무려 백오십 장의 거리. 

저 정도 거리라면 삼살수라마정도 별 수 없다. 

그리고 대부령과 두 명의 광사가 말을 몰아 달려온다. 

아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두 명의 광사와 대부령만 해도 자신 혼자서는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가 필요한 때였다. 

아운이 도망가자 대부령 타미르는 이를 갈며 명령을 내렸다. 

"반드시 잡아라!" 

두 명의 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다짐하는 말 같았다. 

대부령 타미르는 앞장서서 말을 몰고 있었다. 

광사들도 말을 몰아 달린다. 

세 마리의 대완구가 황진을 구름처럼 달고 달리기 시작하자, 

아운 역시 흑풍에 박차를 가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광풍사의 전사들은 뒤에서 심하게 야유를 보냈지만, 

아운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라!" 

대부령은 아운의 후퇴에 무엇인가 함정이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자신의 수하들에게 미리 명령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추격하다가 다시 암기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그것도 난감한 

일이었다. 

아운이 아무리 강해도 세 명의 협공을 이기진 못할 것이다. 

"이놈, 멈춰라! 도망가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대부령 타미르의 고함에 아운이 코웃음을 쳤다. 

"일대일이라면 겨루겠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한 명만 와라!" 

아운의 고함에 우사는 혹여 대부령이 그 말에 응할 것이 두려웠다. 

물론 대부령이 진다는 생각은 안했지만, 

권왕 아운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자칫해서 대부령이 죽기라도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는 대부령이 대답하기 전에 먼저 고함을 질렀다. 

"이놈! 네놈은 우리 광풍사에게 도전한 것이 아닌가? 누구에게 일대일로 

도전한 것이 아니었지만, 내가 받아 주겠다. 그 자리에 멈춰라! 멈추어서 

나와 일대일로 겨루자!" 

"네놈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러니 그냥 한 명만 쫓아와라! 나머지 

두 명과 거리가 생겨난다면 내가 일대일로 겨루어 주마." 

아운의 말에 성질 급한 좌사가 대답했다. 

"이 낙타 불알 같은 놈아! 누가 네놈 마음대로 움직인다더냐? 개소리 

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서라!" 

"네놈이 네 처지라면 서겠냐?" 

"이익!" 

좌사가 이를 갈 때 대부령 타미르가 말했다. 

"내가 너의 도전을 받아 주마. 나와 일기토로 겨루겠는가?" 

대부령의 말에 광사들이 놀라서 대부령을 보면 만류한다. 

"대부령, 그건 안 됩니다. 차라리 제가 겨루겠습니다." 

"전쟁에서 지휘관이 직접 싸우는 경우는 없습니다." 

"됐다. 이는 명령이다. 혹시 내가 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대부령의 말에 두 명의 광사는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운이 말을 멈추었고, 두 명의 광사와 대부령도 그 자리에서 말을 

멈추었다. 

한데 말을 멈추고 그들을 보던 아운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마음이 변했다. 난 너와 겨루고 싶지 않다." 

아운의 갑작스런 말에 대부령의 안색이 굳어졌다. 

"네놈은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냐? 아니면 겁을 먹은 것이냐?" 

"둘 다 아니다." 

"그럼 무엇이냐?" 

"간단하다. 내가 너 하나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너와 싸우고 나서 

그 다음이 문제다." 

"뭐라고?" 

자신을 이긴다고 쉽게 말하는 아운의 배짱에도 화가 났지만, 

그 다음이 문제라는 말도 궁금한 대부령이었다. 

"생각해 봐라! 내가 싸우는 중에 네놈들의 수하가 나를 포위하고 있으면, 

너를 죽여도 광풍멸사진에 죽을 것이 아닌가? 내 비록 너를 죽일 자신은 

있지만, 광풍멸사진 한가운데서 살아날 자신은 없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

라도 너를 상대하고 나면 저 두 명의 광사와 싸우게 될 텐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아운의 말에 대부령은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두 명의 

광사는 분명히 아운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싸우는 중에 삼백의 광풍사가 포위한다면 설혹 자신을 죽여도 

대광풍멸사진과 겨루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무서운 자다.' 

대부령이나 두 명의 광사는 아운이 생각보다 더욱 까다롭고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공명심에 눈이 먼 자이거나 자신을 너무 믿는 광오한 자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도 아니면 복수에 눈이 멀어 광풍사를 우습게 여기는 자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광풍멸사진 한가운데 몰아 놓고 일순간에 분쇄시켜 죽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의 오만함을 비웃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결투를 시작하면서 거리를 두고 광풍사를 공격해 왔을 때, 

대부령과 광사들은 많이 놀라고 당황했었다. 

확실히 아운의 공격 방법은 광풍사를 공략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백 장이 넘어서 화살로 공격할 수도 없었고, 

가까이 있지도 않으니 광풍멸사진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도대체 백 장 밖에서 광풍사의 전사를 죽일 수 있는 암기가 무엇인지 

지금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운은 일대일로 겨루는 것조차 안하려 한다. 

어지간하면 대부령이 일대일로 겨루자고 했을 때, 

의연하게 응대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도 깨졌다. 

그는 흔히 영웅호걸인 척 하는 자들과도 달랐다.

냉정하고 용맹한 자였다. 

'철저하게 준비를 한 자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승산을 가지고 덤볐다는 

사실인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상대하려 하는 것인가?' 

대부령 타미르는 그 점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수하들에게 맡기면 너무 피해가 클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할 수 없다. 끝까지 쫓아가서 저자를 죽인다." 

대부령의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두 명의 광사가 말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대부령 타미르 역시 말을 몰아 아운을 쫓는다. 

대부령 타미를 비롯한 두 명의 광사는 자신들이 타고 있는 대완구를 믿고 

있었기에, 아운이 도망쳐 보았자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만의 생각이었다. 

아운이 탄 흑풍 역시 명마 중의 명마라 아무리 달려도 백여 장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좁혀질듯, 좁혀질듯 하면서도 좁혀지지 않자 쫓는 자들은 조금씩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반 시진을 달리자 사람 서너 명이 올라가서 잘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바위 십여 개가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곳에 이르렀다. 

아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위 사이로 흑풍을 몰아갔다. 

아운의 그림자가 바위 속으로 숨어들자, 

대부령과 두 명의 광사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시라도 암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위 근처까지 다가섰을 때, 순부 광사 타우루가 말에서 내리며 말했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두 분은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조심하게." 

대부령의 말에 타우루는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부령. 일단 제가 안으로 들어가서 신호를 보내면 

쫓아오십시오." 

좌사 타우루의 말을 들은 우사 타륵하가 말했다. 

"그럼 전 바위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살피겠습니다." 

"부탁하네." 

우사 타륵하는 즉시 바위 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단 바위 군집이 있는 곳을 빠져 나가서 도망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이 바위들 사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좌사가 아운을 찾아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자, 

우사는 활시위에 화살을 먹이고 준비했다. 

이제 아운이 나타나는 순간 우사의 화살이 날아갈 것이고, 

밖에서 대기 중인 대부령이 한순간에 달려와 합세를 할 것이다. 

좌사는 세 개의 바위를 지나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지만, 

아직도 아운을 찾지 못했다. 

그는 궁도 광사(우사)인 타륵하가 자신을 잘 볼 수 있는 곳을 택해 

걸아가고 있었다. 

몇 개의 큰 바위를 지나고 난 후, 타우르는 자신의 곁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보았다. 

이는 그가 지나쳐 온 다섯 번째 바위로 마치 거대한 소처럼 생긴 바위였다.

그리고 그의 귀에 약간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말이다.' 

그 숨소리는 분명히 말이 숨 쉬는 소리였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 보았지만, 사람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타우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유인책인가 아니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멀리서 자신을 보고 있는 우사에게 손짓을 해 보이고 천천히 바위를 

지나쳐 바위 뒤를 보았다. 

검은 말 한 마리가 얌전히 서 있었다. 

혼자서. 

타우르는 천천히 사방을 돌아보았지만, 

아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타우루는 천천히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섰다.

발을 내려놓는 순간 그는 발바닥이 뜨끔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광풍사의 순부 광사(좌사) 타우루가 이 세상에서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은 뒤로 뻣뻣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타우루를 주시하던 타륵하가 놀라서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보내고 단숨에 

타우루의 근처로 날아왔다. 

밖에 대기하던 대부령도 말을 몰아 달려왔다. 

그들이 도착 했을 때 타우루는 이미 죽어 있었고, 

바위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타륵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타우루의 시신을 살피던 대부령이 무엇인가 발견한 듯, 

땅바닥에 장풍을 날렸다. 

그러자 바람에 바닥의 흙이 말려 올라가고 그 자리엔 사람 하나가 숨어 

있을 정도의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제야 타륵하는 타우루가 두 군데에 암기를 맞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는 발바닥이었고, 하나는 사타구니였다. 

이제야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상대는 미리 이 장소에 구덩이를 파놓고 있었으며, 

자신들을 이곳으로 유인한 후, 구덩이에 숨었다가 타우루가 오는 순간 

암기로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타우루 정도의 고수가 쉽게 당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아운이 살수의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에 언제 사라졌단 말인가? 

대부령 타미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불괴수라기공과 수라마정은 살수무공 중에서도 정점의 무공이었다. 

정면승부로도 타우루가 아운을 이길 수 없을 텐데, 

숨어서 공격하는 암격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더군다나 운 나쁘게 그의 발은 정확하게 아운이 숨은 구덩이를 밟으려 

했었다.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암습이라고 해도 좌사가 너무 쉽게 당한 것 같아 믿어지지 않습니다." 

"상대는 살수 무공도 익히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한 암습 

따위에 좌사가 쉽게 당할 리 없다." 

대부령의 말에 우사도 수긍했다. 

이제 그들은 아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또 한 가지를 수정해야 했다. 

상대는 살수 무공까지 익혔다는 사실이었다. 

"내 반드시 좌사의 복수를 하고 말겠다." 

"당연합니다, 대부령." 

"지금부터 우리는 일 장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 

"알았습니다." 

이때 멀어져가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이익!" 

대부령이 이를 갈았다. 

약은 자였다. 

둘이 모여 있자, 그는 다시 도망하고 있는 것이다. 

"가자!" 

둘은 좌사의 시체를 그대로 두고 출발하려 했다. 

대부령은 말에 올라탔고, 우사는 바위 군집 밖에 있는 말을 찾으러 

신법을 펼쳤다. 

그런데 말을 찾으려고 신법을 펼친 우사의 앞에 갑자기 거대한 절벽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기겁을 한 그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대부령이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갑자기 절벽이!" 

"절벽?" 

대부령이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절벽은 보이지 않았다. 

우사는 다시 한 번 바위 위로 신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환상이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몇 번의 신법을 펼친 우사는 자신 앞에 있는 대부령을 

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제야 대부령도 무엇인가 느낀 듯, 말을 몰아 앞으로 달렸지만 한동안 

달려서 다시 우사가 있는 곳으로 오고 말았다. 

우사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말했다. 

"진법입니다." 

"이자가 진법까지도 알았던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우리를 여기에 가두어 놓고 어디론가 혼자

떠났습니다. 제 생각대로라면 그는…." 

우사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부령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 역시 우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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