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권. 제14장. 대경황룡(大驚黃龍) (58/228)

제14장. 대경황룡(大驚黃龍)

- 모두 적어 놓으시오, 내가 그 빚을 받으리다

우칠과의 관계가 정리되자, 아운은 우칠을 황룡에게 소개하여 돌보게 

하였다. 

이때 편일학이 다시 아운에게 다가왔고, 

마침 아운도 편일학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참이었다. 

"좋은 수하를 거둔 것 같군. 축하하네." 

편일학이 웃으면서 말하자 아운 역시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한데 고금천추 어쩌고 하니 우습기도 하고 

부담도 되는 군요." 

"아직 순진한 친구 같네. 그래도 지금 같은 세상에 저런 말을 하고 돌아

다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뭐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뭔가 사연이 많은 친구 같긴 합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쌍지도에서 여기로 오시게 된 것입니까?" 

편일학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자네가 떠나고 나서 얼마 후의 일일세. 사막에서 마적단의 습격을 받고 

죽어가는 몇 명의 상인들을 쌍지도 근처에서 구할 수 있었네. 그들의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지.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은 몽고군의 동태를 

살피던 명나라의 군인이었네. 그가 전해준 소식 중에 자네가 꼭 알아야 

할 상황이 몇 가지 있어서 이렇게 급히 오게 되었네. 어차피 쌍지도야 

마적단의 습격을 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해서 이왕 오는 김에 함께 오게 

된 것일세." 

"나와 관련해서 말입니까?" 

"그렇네." 

"뭡니까?" 

편일학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일단 군인이 아닌 다른 상인에게 들은 말인데, 북궁세가의 일일세. 몹시 

고전을 하고 있는 모양일세. 아마도 북궁세가의 세력이 약해지고 영향력이 

줄어들자 여기저기서 북궁세가를 넘보는 모양일세." 

아운의 시선에 냉막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들은 나의 처가를 건드린 대가를 받을 것입니다." 

편일학은 잠시 그의 얼굴을 보았다. 

학사풍의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에 떠오른 고집스러움은 마치 요지부동의 

거대한 산악 같았다. 

아운이 그렇게 마음 먹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휴, 아무래도 권왕이 중원에 들어가는 순간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겠군.' 

편일학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혹시 그 안에 종남이 있으면 내 얼굴을 봐서라도 조금 너그럽게 

봐주게나." 

아운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두 번째 소식일세. 바로 명군의 간세가 한 말일세. 이 소식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세." 

아운이 궁금한 표정으로 편일학을 본다. 

"자네의 여동생 이름이 하영영 맞는가?" 

동생에 대한 말이 나오자 아운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편일학을 보았다. 

설마 대사막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동생 이야기를 들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아마도 자네의 동생은 지금 원의 잔당과 싸우고 있는 명군의 어떤 

장군과 혼인을 한 모양일세. 그리고 그를 만나러 대사막을 오게 

되었고, 그 일행을 광풍사가 습격하려 하는 모양일세." 

아운의 눈에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광풍사란 말이죠! 그렇지 않아도 한 번쯤은 상대하려 했던 곳인데, 

내 동생과 매제를 위해서도 더욱 그냥 둘 수 없게 되었군요." 

"어쩔 참인가?" 

"광풍사를 지워 버리겠습니다." 

아운의 장담에 그를 나름대로 잘 안다고 생각했던 편일학도 놀란 표정이 

되어 아운을 바라보았다 

광풍사는 일개 마적단이 아니다. 

그리고 교주와 좌우 호법의 무공만이 절정인 사라신교와도 또 다르다. 

그들 삼백 명이야말로 사막의 신이란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닌 곳이다. 

그런 곳을 지워 버리겠다고 너무 쉽게 말하는 아운에게 편일학은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는 광풍사일세." 

"그렇기 때문에 지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 동생을 납치하면 그냥 

놔두겠습니까? 내 동생을 납치하여 욕보이거나, 그게 아니라도 명군을 

공격하여 그녀를 생과부로 만들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냥 둘 순 

없지 않습니까?" 

"쉬운 상대들이 아닐세."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고 피해갈 순 없습니다." 

"자네 혼자 상대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려고 합니다." 

편일학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권왕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광풍사를 상대할 순 없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자네의 무공이 절대 쌍절이나 칠사, 오기보다 위라고 생각하는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들보다 위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겠지. 경험 면에서나 무공 면에서나 그들이 아직은 자네보다 위일 

것이라 생각하네. 한데 그들이라고 해도 혼자라면 절대로 광풍사를 이길 

수 없단 말일세. 그리고 광풍사이 대부령은 칠사와 비교해서 크게 떨어

지지 않는 무공을 지니고 있네. 또한 그들 삼백의 광풍사가 펼치는 광풍

멸사진(光風滅私陣)은 소림의 백팔나한진보다 아래가 아니라고 알려져 

있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칠사 정도의 무공을 지닌 고수 서너 명이 

함께 하여도 이길 수 없을 것이네."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혼자 그들을 상대하겠단 말인가?" 

"그들은 이길 수 없지만, 난 이길 수 있습니다. 이건 내가 그들보다 

강해서가 아닙니다." 

아운의 말에 편일학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휴우, 자네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방법이 있는 것 같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비록 열혈이긴 하지만, 어리석진 않습니다. 

희망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걸지도 않습니다." 

편일학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어떻게 싸울 셈인가?"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싸울 수 있게 만들기만 하면 제가 

이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야겠지요." 

"지금은 자네를 믿을 수밖에 없겠군." 

말을 마친 편일학은 새삼스럽게 아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큰 그릇일지도 모른다. 만약 광풍사

와의 싸움이 권왕의 말대로만 된다면 앞으로 중원무림은 정말 권왕의 

이름 아래 놓일 수도 있다.' 

편일학은 아운을 알면 알수록 늪 속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가 끝일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아운이 묵교소나 천마혈인을 이긴 것만 해도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강호무림에 거대한 폭풍이 될 만한 일이었다. 

아마도 이 두 사건만 해도 아운의 이름은 무림사에 영원히 빛나리라. 

"선배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저는 아무래도 급하게 가 봐야겠습니다. 자칫하면 동생이 욕을 당한 

다음일 수도 있습니다. 미리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데, 

여기 사라신교의 일은 편 선배님이 마무리 해 주십시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일단 사라신교의 신녀라는 존재는 특별한 존재라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

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그 자리에 앉혔으면 합니다." 

"소설을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일세. 이미 사라신교의 교도들에게 자네는 

신처럼 보일 테니, 자네가 한 마디만 한다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네." 

"그리고 우칠을 일단 소설의 호법사자로 임명하고 그 외는 풍운십팔령

에게 골고루 나누어서 일을 맡기고, 편 선배님이 모든 것을 총괄하면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육당주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들과 타협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제로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부분은 벽룡과 흑칠랑 그리고 야한에게 맡겨 

놓으십시오. 그들은 전문가들입니다." 

하긴 그들이라면 육당주는 장난감 정도일 것이다. 

"육당의 일을 풍운령들에게 맡길 셈인가?" 

"아닙니다. 그들은 전사들이지 앉아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단지 육당주들한테서 필요한 부분을 얻어내서 정리하는 것까지만 할 것

입니다. 육당에 필요한 인재들은 사라신도들 중에서 편 선배님이 뽑아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네. 그럼 자네는 언제 출발할 셈인가?" 

"오늘 중으로 내가 여기서 할 일을 처리하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 생각

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황룡을 무림맹에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무림맹?" 

"나의 약혼녀에게 전해줄 서신과 물건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황룡을 직접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한데 황룡과 풍운령의 형제들은 아직도 자네의 정체에 대해서 

잘 모를 텐데." 

"이제 알게 되겠죠. 하지만 아직 북궁연고의 관계는 말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차후 자연히 알게 될 거라 생각됩니다." 

"그거야 자네 맘이지." 

편일학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이렇게 소설은 사라신궁의 신녀가 되었고, 

아운은 광풍사와의 결투를 결심하게 되었다. 

권왕이 사막에서 이루어 놓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신화가 되어 버린 광풍대전(狂風大戰)은 이렇게 결정되었다. 

***

황룡은 거대한 무림맹의 세 개의 정문 중에서 백호문을 보고 기가 질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을 지키는 선위무사에게 다가갔다. 

선위무사는 조금 귀찮다는 표정으로 떠돌이 낭인무사로 보이는 황룡을 

바라보았다. 

외눈이라 그런가? 

어떻게 보면 사파의 무사 같기도 한 황룡의 모습이 별로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무림맹에 온 심부름인지라 목욕에 새 옷까지 사 입은 황룡으로선 

조금 억울한 일이었다. 

'언제고 네 놈들이 나를 바라볼 때 먼저 고개를 숙이는 날이 올 것이다.' 

황룡은 속으로 다짐을 하며 포권지례를 하고 말했다. 

"무림맹의 총사님을 뵈러 왔습니다." 

황룡의 말에 선위무사는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무리 북궁세가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북궁세가는 그 누구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곳이었다. 

특히 북궁연의 경우라면 무림매의 남자무사들 뿐만 아니라 전 무림의 

모든 남자들에게 있어서 꿈속에서라도 마주 보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이십니까?" 

말투가 달라졌다. 

"북경의 하씨 문중에서 심부름을 왔다고 전해 주시면 아실 것입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문을 지키던 십여 명의 선위무사 중에 한 명이 무림맹 안으로 사라졌다. 

선위무사 뒤를 쫓아가는 황룡은 무림맹의 거대함에 다시 한 번 기가 

질리고 말았다. 

마치 거대한 봉우리가 중첩한 산악처럼 무림맹 안의 건물들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첫 문을 지나서 두 번째 문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는 

기루와 생필품 가게들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마치 어떤 성도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가 아는 건덕의 시가지보다 훨씬 크고 발달한 곳이었다. 

시가지를 한참 걸어서 지난 후 다시 하나의 문에 다가서자 그곳엔 또 

다시 다섯 명의 선위무사들이 지키고 있는 거대한 대문이 나타났다. 

그를 거기까지 데리고 온 선위무사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말했다.

"무림맹의 외성 선위무사 장칠입니다. 북궁연 총사님의 손님을 모셔 

왔습니다." 

"수고했다." 

문을 지키던 선위무사가 간단하게 그 인사를 받았다. 

황룡은 무림맹이 외성과 내성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같은 문을 지키는 무사라도 내성무사와 외성무사는 신분상의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외성의 규모에 놀라고 있던 황룡은 무림맹의 거대함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외성 선위무사가 돌아가자 내성을 지키던 선위무사들 중 선위조장은 잠시 

황룡을 살펴보고 포권지례를 한다. 

"대총사님을 찾아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황룡은 인사를 받으면서도 내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아운과 북궁연의 

관계였다. 

그가 아는 사실이라곤 아운이 북경 하씨 문중의 대공자란 사실뿐이었다. 

심부름을 오기 전에 그 사실을 안 황룡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운이 비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에게 글공부를 시키면서도 

언제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던 아운이었기에 명문의 자제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점에서 아운의 명령으로 그가 읽은 책을 사오면서 아운의 학문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건덕에서 단 하나의 서점을 운영하던 이 노인은 아운이 사가는 책의 

수준을 보고 황사에 버금갈지도 모른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설마 하고 있었지만, 그의 신분이 북경 하씨 문중의 대공자란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궁연의 이름을 모르는 남자가 있었던가? 

황룡 역시 귀가 뚫린 인간으로 북궁연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은 적이 

있었다. 

건덕의 반점에 왔던 무림맹의 인물들이 말하기를 서시와 달기를 합해 

놓아야 북궁연과 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또한 무공의 깊이를 놓고 본다면 혈궁대전 이전의 십대고수와 견줄 수 

있으리란 말까지 나도는 재녀가 아니던가? 

여중 제일고수요, 제일 미인이라 했다. 

그런 미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면서도 가장 궁금한 것은 숨길 수 없었다. 

'대체 북궁연 낭자와 대형은 어떤 사이일까?' 

물론 아운과 북궁연이 혼약한 사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가라서 가고 전하라 해서 전하러 온 것뿐이다. 

가서 북경 하씨 문중에서 왔다고 하면 통할 것이라 해서 의심 없이 

왔었다. 

그 만큼 황룡에게 있어서 아운은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잠시 후 무림맹의 내성에서 삼십대 중반의 여자가 나타났다. 

황룡은 나타난 여자를 바라보았다. 

왼쪽 뺨에 긴 칼자국이 인상적인 미녀였다.

나타난 여자는 소홀이었다. 

선위무사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데, 

그들은 모두 소홀을 두려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소홀은 황룡을 바라보고 조금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북경 하씨 문중에서 왔다고 하길래 선비 차림의 서생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대는 외눈의 무사였고, 그의 분위기로 보아 세상을 상당히 

거칠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경 하씨 문중에서 오셨습니까?" 

"하씨 문중이라기보다는 대형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대형?" 

소홀은 의아한 표정으로 황룡을 바라보았다.

"하영운 대공자님이 저의 대형입니다." 

뜻밖의 말에 소홀은 조금 놀란 눈으로 황룡을 바라보았다. 

무고은 그다지 깊은 것 같지 않은데 패기와 배짱은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

전혀 주눅 든 모습이 아니었고, 소홀의 투기에도 눌리는 기색이 없었다. 

"따라 오십시오.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홀이 앞장서고 황룡이 그 뒤를 따랐다.

황룡은 하나밖에 없는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표정 관리를 

하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지금 그의 앞에는 그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많은 미녀들을 전부 합해도 

비교할 수 없는 미녀가 조용히 서서 황룡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본 최고의 절세미녀라고 생각했던 묵소정의 미모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미인의 그것에 비하면 거대한 바위와 사막의 모래 정도로 차이가 

날 것 같았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마음을 진정시려는 황룡의 노력이었다. 

심호흡을 한 황룡은 조금 전의 놀람을 감추고 정중하게 포권지례를 했다. 

"황룡이 총사님께 인사드립니다. 총사님의 모습이 너무 눈부셔서 잠시 

실례를 하였습니다." 

북궁연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비록 놀라기는 하였지만 당황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북궁연입니다. 낭군의 심부름으로 오신 분인데, 직접 마중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커헉…" 

황룡은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들었다. 

"나, 낭군… 이시라구요? 저희 형님이!" 

북궁연이 조금 묘한 표정으로 황룡을 바라보았다. 

"모르셨습니까?" 

"예… 에…. 아, 저 그러니까!" 

황룡은 허둥거리며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자신의 대형이 북궁연과 연인 사이일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말 능력 좋으십니다. 역시 대형이십니다. 과연 대형이 아니면 누가 

감히 저렇게 아름다운 분을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황룡은 감탄 반 부러움 반의 심정이었다.

새삼 대형인 아운이 자랑스럽고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아운을 만난 것은 행운이요, 

복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마치 자신이 북궁연을 차지한 것처럼 기쁘고 마음이 들뜬다. 

자신의 미모를 믿고 아운을 유혹하려 들었던 묵소정을 생각하자, 

새삼 그녀가 불쌍해질 정도였다. 

얼른 마음을 수습한 황룡이 그 자리에서 엎드려 큰 절을 하면서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황룡 배대근이 형수님께 인사드립니다." 

아무리 북궁연이지만 남에게 이렇게 큰 절을 받아 본적도 없었고, 

형수란 말은 들은 적도 없었다. 

갑작스런 황룡의 행동에 북궁연은 난감한 심정이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마치 십대의 소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들뜬다. 

'형수라고….' 

무엇인가 신선한 말이었고, 자신이 정말 아운의 약혼녀란 사실이 다시 

한 번 상기되는 말이었다. 

호흡이 가빠졌지만, 겨우 진정시켰다. 

하지만 표정엔 그 심정을 숨기고 말했다. 

"어여 일어서십시오. 당황스럽습니다." 

"예, 형수님. 명대로 하겠습니다." 

소홀은 황룡의 뒤에서 웃음을 참고 있었고, 

북궁연의 얼굴은 결국 붉게 물이 들고 말았다. 

황룡의 행동엔 가식이 없었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가 평소 자신의 대형을 얼마나 생각하고 따르는지 

절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분은 잘 계시겠지요?" 

북궁연의 물음에 황룡의 얼굴이 밝게 빛을 발했다. 

얼굴에 자랑스러운 빛이 역력해진다. 

"대형께서는 잘 계십니다. 얼마 전에 사라신교를 완전히 소탕하면서 

약간의 상처를 입기도 하셨지만, 벌써 완쾌하셨습니다." 

황룡은 말하면서 특히 사라신교를 소탕했다는 말에 힘을 주었다. 

북궁연과 소홀은 놀란 얼굴로 황룡을 바라보았다. 

"사라신교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형님은 단독으로 사라신교를 완전히 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천마혈인까지 일 권에 뭉개 버렸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지만, 황룡의 말엔 조금도 가식이 없어 보였다. 

북궁연은 물론이고 소홀로 말하자면 그녀가 맡은 직책상 상대가 하는 

말이 거짓인지 허풍인지, 아니면 진실인지 정도는 가려낼 수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시선 속에서 황룡의 말은 진실로 다가왔다. 

"많이 다치셨나요?" 

"크게 다치시진 않았습니다." 

북궁연의 걱정스런 물음에 황룡은 얼른 대답을 하였다. 

그녀가 걱정을 할까봐서 였다.

"이야기 좀 해 보세요. 하영운 공자님 혼자서 어떻게 사라신교를 무너뜨릴 

수 있었죠?" 

황룡은 소홀이 묻자 조금 당황하였다.

아운이 서신만 전해주고 오라고 했었다.

물론 광풍사와 겨루는 일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고 언질을 받았었다. 

그러나 황룡은 이 아름다운 형수님에게 대형을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당신의 낭군이자 자신의 대형인 하영운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형수님이 더욱 자신의 대형을 사랑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대가 잔뜩 어린 저 아름답고 고혹적인 눈. 

어떻게 배신하란 말인가? 

'형님, 나중에 맞아 죽어도 할 수 없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번 딱 

한 번만 명령을 어기겠습니다.' 

결국 황룡은 결심을 굳히고 아운이 사라신교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묵가 남매의 호위무사가 된 이야기는 간략하게, 

그리고 사라신교에 가서 벌어신 일 등등. 

황룡의 이야기 중 아운이 우호법과 묵교소를 쓰러트리는 부분에서 

북궁연과 소홀이 감탄을 더한다. 

특히 천마혈인을 각성하게 하여 악으로 악을 퇴치하는 이야기엔 감탄과 

함께 탄성까지 지르는데, 황룡은 신이 났다. 

드디어 마지막에 천마혈인을 쓰러뜨리고 그로부터 힘없는 교도들을 구한 

것까지 이야기 하자 북궁연과 소홀은 손뼉을 치고 좋아했다.

결국 아운이 권왕이란 사실을 두 여자는 이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야기가 마무리 될 즈음이었다.

예쁘장한 시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황룡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웃으며 북궁연에게 말했다. 

"음식이 준비 되었습니다." 

시녀의 말에 북궁연이 웃으면서 황룡을 보았다. 

"이런 실례를 하였습니다. 이야기에 빠져 접대를 제대로 못했는데, 이제 

음식이 준비되었다고하니 우선 식사부터 하십시오." 

황룡은 황송한 얼굴로 북궁연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음식들이 즐비하게 나오는데, 

그 중에 황룡이 아는 음식은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산해진미였다.

대체 몇 가지의 음식이 들어왔는지 세기도 벅찼다. 

나중에 황룡은 틈만 나면 자신의 아우들을 불러 놓고 이때 먹은 음식을 

죽을 때까지 자랑하였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풍운십팔령 중에 머리가 가장 둔한 오한이 이때 황룡이 먹은 

음식 이름을 자면서도 줄줄이 다 외고 다녔을까? 

(황룡은 돌아갈 때 시녀에게 부탁해서 이때 먹은 음식 이름을 전부 써 

달라고 부탁했었다. 물론 당시의 이 예쁘장한 시녀는 나중에 황룡의 

아내가 되었다. 둘의 사랑 이야기는 나중에 나오겠지만.) 

음식이 나가고 나자 황룡과 북궁연은 다시 마주 앉았다. 

황룡은 아운이 보낸 서신과 보따리 하나를 북궁연에게 전해주었다. 

북궁연은 우선 서신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 그 동안 잘 있었소? 

이제 반 년 안에 내가 찾아가리다. 

그리고 내가 보낸 선물은 잘 수련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겠소. 

괜히 소홀히 해서 나를 섭섭하게 하진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겠소. 

그리고 함께 보낸 것은 나의 작은 마음이요. > 

북궁연은 편지를 읽으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소홀은 북궁연이 정말 오랜만에 웃는다고 생각했다. 

'서신에 무어라고 적혀 있기에….' 

소홀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아내고 있었다. 

북궁연은 서신 아래 놓인 작은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는 작은 책자 하나가 쌓여 있었다. 

'이번엔 어떤 무공이길래?' 

북궁연은 책자를 들어서 첫 장을 넘겨보았다. 

백지. 

책은 전부 백지로 되어 있었다. 

한 장씩 넘겨보았지만, 책자에 적힌 글자는 단 한 자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보곤 북궁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호호호호." 

북궁연이 갑자기 큰소리로 웃는다. 

소홀은 너무 궁금한 표정으로 북궁연을 바라본다. 

북궁연이 웃음을 멈추고 손에 든 책을 소홀에게 주었다. 

마지막 장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요즈음 여러 가지로 어렵다고 들었소. 

그리고 많은 자들이 당신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소. 

당장 달려가 나의 여자을 무시하는 자들을 몽땅 잡아다가 시궁창에 

쳐 박아 버리고 싶지만, 할 일이 있기에 일단 참고 있는 중이요. 

그 대신 여기 책자 하나를 보내오. 

당신을 무시하는 자나 힘들게 하는 자들을 이 책자에 모두 적어 놓으시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갔을 때 다시 이 책자를 돌려주시오. 

이후 이 책자에 이름이 오른 자들은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것이오. 

그들에게서 열 배의 대가를 받아내어 본보기를 보이겠소. 

만약 스스로 적기 불편하면 시녀라도 시켜서 꼭 적어 놓길 바라겠소. 

그리고 글을 쓰는 도구쯤이야 그 곳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보내지 않았소. > 

소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어떻게 하실 것인가요?" 

소홀의 물음에 북궁연은 그저 웃는다. 

"아가씨, 이 책자를 제가 대신 보관하게 해 주십시오." 

북궁연은 잠시 소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홀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그렇게 해요." 

소홀은 북궁연이 허락을 하자, 손에 들고 있는 책자를 바라보았다. 

소홀은 자신이 작성하게 될 인명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몇 년이 흐른 후 무림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았다. 

< 권왕의 여자를 모욕하거나 넘보는 것은 패가망신(敗家亡身)의 

지름길이다. > 

차후에 무림사에서는 소홀이 작성한 인명록을 일컬어 말하기를. 

< 한 여자가 작성한 인명록 하나로 인해 무림의 질서가 바뀌었다. >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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