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천마혈인(天魔血人)
- 악으로 악을 물리친다
묵소정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린 아운이 사방을 둘러보며 고함을 쳤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내공을 실었기에 아무리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모두 들어라! 이 계집은 동생인 묵천악과 힘을 합해 그 동안 아버지
처럼자신을 보살펴온 정운을 살해했다. 이는 당연히 죽을 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함께 있으면서 느낀 바로, 이 계집이 사라의 신녀가
된다면 죄 없는 수많은 생명을 죽일 것이기에, 지금 내가 그 죄의 싹을
자르려 한다. 더군다나 천마의 피를 이어 받은 계집이라, 이후 천마혈인
이 되어 어차피 살생을 할 수밖에 없는 몸. 내가 이 계집을 살려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묵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많은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하나의 생명으로 대신한다."
"자, 잠깐만…."
당황한 묵소정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아운은 전혀 듣지 않았다.
들어 보았자 뻔한 이야기고, 별로 듣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화만 더 나고, 사막의 날씨도 무더운데 짜증만 가중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아버지 같은 정운을 죽인 것도 모라자, 천마혈인이 되기 위해 수천의
사람을 죽이려 했다."
묵소정은 아운의 차가운 눈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상대는 이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
묵소정의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의 변명거리가 한꺼번에 스치고 갔지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금이 저려오는 공포로 인해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잘 가라!"
아운은 자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묵소정의 멱살을 놓으면서 주먹으로
그녀의 심장을 쳐 버렸다.
퍽!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아운은 그녀를 발로 차버렸다.
그녀의 신형이 묵교소에게 날아간다.
단 일점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모두 놀라서 설마 하는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었다.
여기서, 이 자리에서, 제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설마…
이렇게 믿으며 사라의 전사들이 아운을 포위하였었다.
사라의 교주인 묵교소의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아운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이런 살벌한 가운데, 그들의 신녀를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운은 망설임이 없었다.
날아온 묵소정을 받아 든 묵교소는 그녀의 심장이 가루처럼 부서진 것을
알았다.
제 아무리 천마인혼대법을 터득하고 있다지만,
이런 상황이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만약을 대비한 아운의 내가중수권은 그녀의 심장을 깨트리거나 터지게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모래처럼 부셔 놓았던 것이다.
사라신교에만 도착하면 자신의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묵소정이었다.
그것을 위해 정운을 죽였고, 이제 신녀가 된다면 아운을 종으로 삼고
세상을 제 손에 넣으리라 결심했던 그녀였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무공을 위해서라면, 몇 천의 생명쯤은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묵소정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죽었다.
어찌보면 너무도 허망한 죽음이었다.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라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주었던 아운에게 죽었다는
사실 정도일까?
"크으윽."
묵교소의 몸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핏줄엔 약한 법이다.
더군다나 얼마만에 만난 핏줄인가?
그런데 보자마자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봐야 하는 심정.
좌우호법조차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했다.
"계집이라 머리를 부셔 놓진 않았다. 그것은 나의 자비인 줄 알아라!"
아운의 차가운 목소리에 야한과 흑칠랑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놀라서 아운을 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엔, 모진 놈 쫓아다니다 이젠 죄도 없이 죽는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이, 익! 이 찢어 죽일 놈! 내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묵교소가 몸을 덜덜 떨면서 말하자, 아운이 냉정하게 비웃으며 말했다.
"네 앞에서 네 핏줄이 죽어갈 때 느낌이 어떠냐? 몹시 아플 것이다.
네놈과 이 빌어먹을 사라신교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살아남은 핏줄들도 모두 너 같은 아픔을 느꼈을 것이다. 그 죄를 지금
받는다고 생각해라!"
아운의 목소리엔 여전히 내공이 실려 있었기에 모든 사람들은 다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사라의 일반 교도들이 놀라서 다시 한 번 허리를 폈다.
아마도 그들은 사라신교의 악행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리라.
"이 노옴!"
묵교소가 고함을 지르며 아운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아운은 발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끄으윽."
묵천악의 신음이 배어 나오자 묵교소의 신형이 그 자리에 멈추고 만다.
이젠 아운이 묵천악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만약 아운이 정말 묵천악을 죽여서 사라의 소교주 신분이
천마혈인임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이미 좌우 호법이나 오대사자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일반 제자들이나 교도들이 알게 되면 그 다음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아운이 야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흑칠랑은 뭔 뜻인지 몰라 멍한 표정이었지만, 야한은 그 뜻을 알아챘다.
야한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하며, 품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아운에게
공손히 바친다.
도끼 자루를 받아 쥔 아운이 고함을 질렀다.
"내 곁에서 십 장 이상 물러서라!"
내공을 담은 고함 소리에 아운을 포위하고 있던 사라의 전사들이 기겁을
해서 뒤로 물러섰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위력이었다.
그러나 일반 교도들에겐 아무런 위해도 없는 듯 했다.
다시 한 번 아운의 무공이 입증되는 순간이었지만,
사라신교의 그 누구도 그것을 눈여겨 볼 상황은 아니었다.
도끼 자루를 든 아운은 발을 뒤로 뺀 후, 묵교소를 보고 씨익 웃었다.
묵교소가 불안한 마음에 가슴을 졸이며 아운을 본다.
"네놈의 증손자는 너무 많은 죄를 저릴렀다. 우선 아버지와 같은 정운을
죽였고, 쌍지도에서 정을 통한 여자를 죽였다. 내가 쌍지도에서 이놈을
단죄하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지금부터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아
내겠다. 만약 내가 도끼를 휘두르는 동안 접근하는 놈이 있다면 그냥
이 개자식의 머리를 부수어 버리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운은 사정없이 도끼 자루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인정사정없이 휘두르는 아운의 도끼 자루는 묵천악의 머리부터
다리까지 잘근잘근 부셔 버릴 것처럼 날아 다녔다.
"크아악, 사, 사려주세요오~!"
다급하게 외치는 말은 발음까지 이상했다.
너무 기가 막힌 장면이라 사라신교의 제자들은 그저 멍하니 아운을 볼
뿐이었다.
그렇다고 감히 아운에게 덤비지도 못했다.
접근하면 소교주가 죽을 것이다.
"이, 이놈! 당장 멈춰라!"
묵교소와 두 호법이 몸을 벌벌 떨면서 외치자, 아운이 태연하게 말했다.
"내 성질 건드리지 말아라! 그리고 너무 접근하지도 말아라! 자칫 내가
흥분해서 도끼 자루에 들어간 내공이 강해지기라도 하면 그 다음은 책임
못 진다."
협박이었다.
한 마디로 접근하거나 화나면 도끼 자루로 때리는 게 아니라
쳐 죽이겠다는 말 아닌가?
만약 묵천악이 죽는다면 사라신교의 대가 끊어지게 된다.
누가 함부로 움직이겠는가?
"끄아악."
묵천악의 몸이 바르르 떨린다.
어느 정도 죄에 합당한 매질을 하고 난 후 아운이 묵천악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모두 들어라!"
아운은 묵천악을 번쩍 들고 고함을 내질렀다.
"너희들이 믿고 있는 사라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아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묵천악을 바닥에 거꾸로 쳐 박으며 그의
심장을 발로 내질렀다.
"크억!"
순간 묵천악은 눈이 뒤집히며 천천히 악마의 얼굴로 변해갔다.
아운은 묵천악을 다시 한 번 높이 들어 올렸다.
천마혈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다.
"아, 안 돼! 당장 저 놈을 죽여라!"
당황한 묵교소가 고함을 치며 제일 먼저 아운에게 달려들었고,
삼천의 제자들도 일제히 아운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아운은 묵천악을 사라의 전사들에게 던지고,
교묘하게 묵교소의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일단 묵천악이 아운의 손에서 벗어나자, 묵교소는 더 이상 아운을
공격하지 못하고 묵천악을 향했다.
그러나 그땐 이미 너무 늦었다.
사라의 제자들 한 가운데로 떨어진 묵천악은 이미 이지를 상실한 채
천마혈인으로 각성해 있었다.
"크아아악!"
괴성과 함께 묵천악은 닥치는 대로 살수를 펼치며 사라의 전사들을 공격
하기 시작했다.
이것이야 말로 악으로 악을 퇴치하는 방법이었고,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었다.
묵교소나 좌우 호법 그리고 오대사자는 모두 당황하고 말았다.
설마 아운이 묵천악이나 묵소정의 비밀을 이렇게 철저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었고, 이런 방법으로 자신들을 상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 오늘 사라신교를 이 땅에서 지우리라."
이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객기니 했었지만,
이젠 아운이 두려워진다.
"으흐흑, 뭐 저런 무식한 놈이 다 있냐? 덕분에 우린 덤으로 죽는구나."
흑칠랑이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묵천악이 천마혈인임을 알고
놀란다.
그리고 묵천악을 각성하게 하여 사라신교를 공격하게 하자,
자신도 모르게 경탄하며 야한을 보고 말했다.
"역시 나의 호적수 답지 않은가?"
야한 역시 야릇한 표정으로 사라의 전사들을 보면서 말을 받았다.
"죽이자니 하나 남은 교주의 혈육이고, 그냥 있자니 자신이 죽을 판이고,
도망가지니 저 일반 교도들 중에 자신의 가족들이 있을 것이고. 캬아!
죽인다, 죽여. 정말이지 권왕의 잔머리란."
마지막 말이 좀 이상했지만, 야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어차피 사라신교의 제자들은 일반 교도들 사이에서 선출하고 지금 이만의
일반 교도들은 바로 일반전사들의 가족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만약 자신들마저 도망하고 만다면 천마혈인이 된 소교주는 바로 자신의
어미니요 아버지, 또는 자식들을 향해 살수를 펼치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천마혈인의 무자비한 살수는 그들을 유린하고
있었으며, 사라의 일반 교도들은 놀라서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때 아운이 두 살수에게 다가왔다.
흑칠랑과 야한이 움찔해서 아운을 본다.
"혼란스러울 때, 저 뒤의 오대사자를 모두 죽여라! 정면 대결이라면
몰라도 살수의 검이라면 충분하리라 믿는다."
이건 명령이었다.
두 살수가 멍한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우, 우리가 왜?"
흑칠랑이 화난 표정으로 말하자, 아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냥 있다가 죽던지."
두 살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운의 웃음이야말로 두 사람에겐 악마의 미소였다.
이젠 별 수가 없었다.
살려면 먼저 죽이는 수밖에.
이렇게 무림사의 한 장을 장식했던 사라대혈전의 막이 올랐다.
당시의 무림사를 기록한 천유서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 사라대혈전에 얽힌 이야기는 권왕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
그리고 그의 치밀함과 결단력, 광오할 정도의 자신감이 잘 어우러진
결전이었고, 혈전의 원인을 분석해 보면 권왕이 대협의 성품을 지녔음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준 사건이었다. >
물론 그 이후에도 권왕 아운에 대한 분석은 분분 했지만,
그것은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이라 할 수 있었다.
***
폭주한 묵천악은 닥치는 대로 사라의 전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인성을 잃은 그는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
묵교소와 좌우 호법 그리고 오대사자들은 모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묵천악을 본다.
"교주님."
호법사자인 모윤이 묵교소를 불렀다.
약간의 내공을 사용한 관계로 묵교소의 귀에 천둥처럼 들려왔다.
정신이 번쩍 든다.
자칫하면 수백 년 사라의 맥이 끊어질 판이었다.
"어떻게 하던 구하라!"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그 의미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었다.
사라의 전사들이 얼만가 죽던 상관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어차피 일반 전사들이야 언제든지 보강하면 된다.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묵천악의 모습을 본 자들은 전부 죽여야만
했다.
반드시 비밀이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좌호법."
"충, 교주님."
좌호법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십이맹표의 여섯을 데리고 악이를 보호하라!"
"충."
[얼마 전 집법사자가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악이가 이미 한 번의 각성을
했다고 들었다. 이렇게 된 것 차라리 그들 도와서 두 번째 각성을 풀게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말은 전음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교주님. 사라의 전사들은 소교주님을 위해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역시 전음으로 대답하였다.
좌호법 우종량은 교주 묵교소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이 끝나면 대대적인 청소 작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사라신교에 충성을 하는 자들을 빼곤,
소교주의 모습을 본 자라면 전부 죽여야만 한다.
소교주의 진면목을 본 교도들에게 더 이상 충성심을 바라긴 힘들어졌고,
그들의 입을 막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기회에 그들을 죽여 소교주를 도와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반 교도들이야 어차피 사라신교를 벗어날 수 없으나 차후에 천천히
정리해도 될 것이다.
좌호법은 서 있는 열 명의 십이맹표 중 여섯을 호명하였다.
소교주의 끔찍한 모습에 넋이 빠져 있던 십이맹표들 중 여섯이 좌호법의
차출에 정신을 차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이미 굳어 있었다.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다.
좌호법은 이미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십이맹표는 사라신교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 인재들이었다.
이들마저 사라신교에 등을 돌린다면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강제적이고 무조건적인 명령은 안 된다.'
물론 그들의 충심으로 보다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결코 좋은 방법일 수 없었다.
판단을 내린 좌호법은 부드러운 표정이지만 강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라! 지금 소교주님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주화입마에 걸리셨다. 지금
소교주님의 상태는 강호 무림맹의 간교한 함정에 의한 것이다. 십이맹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교리에 따라 교주님과 나의 명령에 따르라! 여기에
대한 해명은 추후에 설명하겠다."
좌호법의 설명에 십이맹표들의 표정이 가벼워지며 일제히 허리를 숙인다.
"충."
역시 이들의 충성심은 일반 전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교주인 묵교소 역시 좌호법의 적절한 조치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호명을 한 여섯의 십이맹표는 내 뒤를 따르라!"
좌호법과 여섯의 맹표가 묵천악의 이십 장 근처로 접근해 갔다
이미 삼천의 사라전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묵천악은 상대를 쫓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마구 잡이로 살수를 펼치고
있었는데, 간간히 사라전사들의 생기를 흡수하는 광경은 보는 자들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사라의 전사들은 모두 들어라! 지금 소교주님은 주화입마에 걸리셨으니,
모두 힘을 합해 소교주님을 제압하라! 맹표들은 저 분의 근방 이십여 장
밖에 흩어져서 상황을 지켜볼 것이며, 내 명령이 떨어진 후 소교주님에
게서 도망하는 사라의 전사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라!"
십이맹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좌호법의 고함에 도망치던 사라의 전사들은 그 자리에 주춤했다.
마침 겁에 질린 몇 명은 그 소리를 들을 새도 없이 도망치다가 십이맹표의
손에 죽고 말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라의 전사들을 향해 묵천악의 무자비한
살인은 멈추지 않았다.
좌호법 우종량이 묵천악을 향해 달려가자 묵교소의 시선으 멀리서 여유
있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아운에게 향했다.
아운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들어 보이는 여유까지 보여 준다.
묵교소의 눈에서 불 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광명사자와 집법사자, 그리고 탈명사자는 권왕을 내게 잡아 와라! 그리고
음영사자와 호법사자는 나머지 십이맹표와 함께 중원의 이대살수를 주살
해라!"
"교주님, 이제 약관의 청년입니다. 아무리 들리는 소문이 있다지만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셋씩이나 상대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광명사자 율무교는 자존심이 심하게 상한 얼굴로 말했다.
그 뿐 아니라, 탈명사자인 고군 역시 조금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그들 오대사자 중 삼대사자가 협공한다면 설사 교주라 해도 결코 방심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들이 본 아운은 결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광명사자의 말에 우호법의 얼굴이 냉막하게 굳어졌다.
"사로 잡으려면 결코 많은 인원이 아니다. 그리고 감히 교주님의 명령에
불만을 가지다니, 지금 상황만 아니라면 사라의 율법이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 광명사자의 얼굴이 파르르 떨린다.
"충. 반드시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광명사자가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공으로 죄를 사하라!"
묵교소의 나직한 명령이 떨어진다.
"충."
고함과 함께 오대사자는 남아 있던 십이맹표와 함께 몸을 날렸다.
그들은 삼 대 이로 나뉘어져 셋은 아운을 향해,
둘은 이대살수를 향하고 있었다.
아운은 편안한 자세로 서서 묵천악을 살펴보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 명의 기세를 느끼고 다가오는 자들을 살펴보았다.
성질 급하고 성격이 열화 같은 광명사자가 아운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놈을 사로잡아서 찢어 죽이고 말겠다."
"싸우러 왔으면 빨리 덤벼라! 무서워서 세 명씩이나 몰려온 주제에 말이
너무 많군."
아운의 빈정거리는 말에 광명사자의 얼굴일 일그러졌다.
그는 두 명의 사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두 분 사자는 먼저 나에게 기회를 주시오. 이 쥐새끼 같은 놈에게
사라신교의 오대사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줄 생각이요."
"하지만 교주님의 명령입니다."
집법사자인 무태가 제동을 걸고 나왔다.
이미 아운과 함께 있으면서 그의 무공이 결코 자신들보다 아래가 아님을
느끼고 있었던 무태였다.
자칫 한 명의 호승심으로 인해 더욱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광명사자의 인상이 조금 굳어졌다.
"설마 집법사자는 내가 이 자식 한 명도 못 이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요?"
거칠다.
광명사자의 호승심과 열혈한 성격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변함이 없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주님의 명령을 어길 셈입니까?"
"십 초. 십 초 안에 내가 저 애송이를 이기지 못하면 협공합시다.
그러면 되겠지."
그 정도라면 양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운이 광명사자보다 강하다 해도, 십 초 안에 이길 순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운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회로군. 단 시간에 끝내야 한다.'
아운은 두 주먹을 말아 쥐고 광명사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광명사자 율무교다."
"난 아운이다. 너희들이 권왕이라 부른다더군."
전혀 위축된 기미가 없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무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훗, 이놈 정말 대담하구나. 그 점은 감탄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당연히
생각하고 있겠지?"
"율무교."
갑자기 아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광명사자는 흠칫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사라신교는 언제부터 주둥이로 싸웠냐?"
"뭐, 뭣! 억!"
광명사자는 미쳐 화를 내기도 전에 다가오는 아운의 그림자를 보았다.
정말이지 아운의 보법과 신법 하나만큼은 절묘함 그 자체였다.
흐릿하게 흩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아운은 이미 지척에 디가와 있었다.
당황한 광명사자의 손이 평소 수련한 본능대로 허리에 찬 검을 잡았다.
비록 당황은 했지만, 광명사자의 동작은 기민했다.
검을 잡은 순간 어느새 사라신교의 호교무공인 사라묘인검법(沙羅妙忍劍法)
을 펼쳐내고 있었다.
제일 초식이자 발검술을 포함하고 있는 묘묘섬영쾌(妙猫閃靈快)는,
사라묘인검법의 십삼 식 검초 중 세 번째로 강한 살검이었다.
광명사자의 허리에서 뿜어진 검광이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아운의 심장을
찔러 갔고, 동시에 아운의 주먹에서 뿜어진 섬광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광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아운이 보법으로 다가서고 광명사자가 검을 뽑아 다가온 아운을 공격하기
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창졸지간이었다.
집법사자 무태와 탈명사자 고군은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두 개의 힘이 충돌하는 순간 광명사자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권경과 권기의 단계를 지나 권강의 단계를 이룬 연환육영뢰였다.
비록 그 힘이 가장 약한 제 일권인 일기영(一氣影)이었지만,
그 힘은 예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광명사자는 강했지만, 검강을 이룬 정도는 아니었다.
광명사자는 손아귀가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면서 검을 놓칠 뻔했다.
"끄윽!"
그는 신음과 함께 휘청거리며 뒤로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지독한 위력이다.'
광명사자는 권왕의 주먹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강한데 놀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또 하나의 섬광이 자신의 머리로 밀려오는
것을 보았다.
지독하게 빠른 연환 공격이었다
광명사자는 급한 대로 묘인검법의 절기를 펼쳤지만,
마치 망망대해에 부는 미풍처럼 허약하게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퍽!
거친 소리와 함께 광명사자는 머리가 부서진 채 뒤로 천천히 무너져
버렸다.
"저… 저…."
집법사자인 무태와 탈명사자 고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대사자 중 한 명인 광명사자가 단 이 초 만에 죽어
버리다니.
당황은 일시적이다.
미처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기도 전에 아운의 신형은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두 사자가 아운의 공격을 보았을 땐,
이미 두 번이나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권왕의 주먹은 뒤로 갈수록 강해진다.
이미 사막에서는 유명한 말 중에 하나였다.
두 번째 주먹에 광명사자가 죽었다.
그렇다면 그것보다 더 무서운 세 번째, 네 번째 주먹은 얼마나 더 무서울
것인가?
'정면대결은 미친 짓이다.'
집법사자 무태와 탈명사자 고군은 자신들이 아는 가장 빠른 보법으로
움직이며 몸을 틀었다.
순간적으로 삼사권의 권경이 그들의 이마와 어깨 아래 부근을 스치고
지나갔다.
식은땀이 배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의 위험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운의 신형이 섬전어기풍의 신법으로 탈명사자 고군을 향해 날아갔다.
권경을 피하느라 틀은 몸을 제 자리에 돌리기도 전에 이미 아운의
신형은 그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기겁을 한 고군의 두 손이 작은 월아도를 나누어 든 채 사선을 그리고
아운을 공격했다.
공격이라기보다는 방어 본능으로 자신의 절기인 쌍월아 초식을
휘둘렀으리라.
순간 아운의 신형이 급격하게 낮아지면 몸을 반 회전하였고,
그의 오른발이 그의 몸을 쫓아 회전하며 탈명사자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다.
고군은 자신의 무기인 쌍월아만 있다면 광풍사의 대군령과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큰 소리를 쳤던 자였다.
그 만큼 자신의 절기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변변히 자신의 무공조차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고군이 약한 게 아니라 아운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퍽!
북 치는 소리와 함께 고군은 자신의 한쪽 종아리가 부서져 나가는 통증을
느끼며 중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집법사자 무태는 고군이 다리 공격을 당하고 무너지는 광경을 보자 그대로
돌아서서 몸을 날렸다.
'내가 상대할 수 없는 자다.'
집법사자 무태는 자신이 협공을 해 보았자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인식하는
순간, 바로 교주가 있는 곳으로 도망하려 한 것이다.
'미안하오, 고군. 하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니 이해하시오.'
빠른 판단이었고, 어떤 면에서 그의 행동은 올바른 행동일지도 몰랐다.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친 집법사자 무태는 약 삼십여 장 정도 도망하여
조금 안심이 되자 아운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마치 햇살 하나가 날아오는 것 같았다.
수많은 사라의 전사들 사이를 헤집고 날아오는 하나의 암기를 느끼는
순간 퍽! 소리가 그의 골을 흔들고 뒤로 흘러갔다.
그의 이마에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뚫리고 천천히 피가 배어 나왔다.
천천히 그의 신형이 뒤로 넘어진다.
묵교소와 우호법이 있는 자리에서 불과 이십여 장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중심이 무너진 탈명사자를 연환육영뢰의 세 번째 주먹인 삼권척(三拳斥)
으로 공격한 아운이 도망가는 집법사자에게 삼살수라마정을 날린 것이다.
집법사자 무태가 머리에 구멍이 나서 죽었을 때,
탈명사자 고군은 가슴이 으깨진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아운이 집법사자와 탈명사자를 공격할 때 사용한 세 번째와 네 번째
주먹은 연환육영뢰가 아닌 연환금강룡의 권법이었기에 고군을 죽인
주먹은 삼권척이 된 것이다.
이미 무극신공이 팔 단계에 들어서고 연환금강룡의 권법을 십이 성 대성한
상황이라 그 위력은 연환육영뢰의 제 일 권인 일기영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아운이 무극신공의 팔 단계에 들어서면서 가장 편해진 점이라면 진기의
자유로움이었고, 그로 인해 연격포의 권법 사이에 다른 무공의 초식을
끼어서 사용하거나, 다른 무공의 초식을 연격포와 응용하기가 쉬워졌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처럼 중간에 다른 무공을 섞어 사용하면 상대를 속이거나 연격포로
상대를 무력화 시킨 다음, 다른 일반 초식으로 마무리를 지으면 사용에
한계가 있는 연격포를 함부로 남발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군다나 무극신공이 단계를 높여 감에 따라 다른 무공의 위력도 덩달아
강해져서, 특벼맇 강한 상대거나 빠르게 승부를 보아야 할 상황이 아니
라면 굳이 연격포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였다.
여기저기서 혼전을 겪고 있을 때,
우칠은 느릿하게 움직여 묵교소에게 다가갔다.
'이놈이다. 이놈만 죽이면 사라신교의 교주는 내가 된다.'
원래 앞뒤가 없는 우칠은 그거 하나만 생각했다.
그의 우람한 신형이 어느 틈엔가 묵교소의 정면에 마주섰다.
멀리서 아운과 삼대사자의 결투를 지켜보던 묵교소와 우호법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아운이 저렇게 강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삼대사자 중 광명사자가 죽는 것을 본 바로 그 순간,
우호법은 아운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명의 거대한 몸체가 햇볕을 가리고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묵교소와 우호법은 나타난 우칠을 바라보았다.
우칠은 말뚝 같은 손가락으로 묵교소를 가리키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얼굴 표정만으로 말한다면 사라신교의 교주는 이미 그의 차지였다.
"네 놈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그리고 오늘부터 사라신교의 교주는 나다."
묵교소와 우호법의 얼굴은 정말 보기 딱할 정도로 구겨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