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대천광마(大天狂魔)
- 큰일엔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칠은 거의 실신지경이었다.
말을 둘러 메고 대체 얼마를 걸은 것인가?
걷고 걷다가 드디어 말 안장에 있던 물과 음식마저 전부 먹고 말았다.
그런데 늘어진 말은 기절해서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다시 사막을 걷다가 지쳐 쓰러지고 정신을 잃었는데,
지나던 상단으로 인해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이번엔 낙타를 사서 몰고 사막을 횡단하다가 다시 낙타가 쓰러졌다.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도 낙타를 둘러 메고 사막을 걷고 있었지만,
우칠의 신념엔 변화가 없었다.
'나는 대막제일신마다. 인간들에게 지는 것도 모라자 겨우 사막 따위에게
질 수 없다.'
오늘도 이를 악물고 기절한 낙타를 메고 걷던 우칠은 정신이 가물거리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부들거리며 주저앉기 직전, 우칠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멀리서 다가오는 어떤 행렬이 보인다.
무려 수십 마리의 낙타와 하얀 마차가 보였다.
'살았다.'
우칠은 일단 자신의 또 살아났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점차 행렬이 다가오며 그들의 화려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의 시선이 점점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는 무엇인가 깨우쳤다.
'가만. 저 행렬이야 말로 대막제일신마인 나를 위한 행렬이 아닌가? 그래,
나라면 저 정도의 품위를 지닐만한 자격이 있지. 대막의 신인 내가 아니면
누가 감히 저런 위엄을 지닐 수 있겠는가. 하늘이 나를 위해 백옥마차를
보내 주었구나. 캬하하.'
지금까지의 고생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
아륵진과 아륵도는 자신들이 아운에게 진 것은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도(刀) 한 번 뽑아 보지도 못하고 졌다는 사실이 두 사람에게는 더 없이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해 보지도 못했다는 변명거리를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자신들을 말린 집법사자가 불만스러웠지만, 감히 표정에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알게 모르게 그 감정이
묻어나오게 마련이다.
'한심한 놈들.'
묵천악은 자신의 실력과 상대의 실력 차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두 형제를 보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사라신교로 향하는 일행은 서로 조금씩 어색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으며, 사라신교가 준비해온 성찬을 맛있게
먹고 돈황을 벗어난 지 불과 두 시진.
이번엔 상상도 할 수 없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팔 척에 이르는 키.
순박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몸에서 우러나오는 패기만으로 친다면 능히
사막을 뒤집어 버릴 것 같은 청년 한 명이 그들을 막아섰다.
신교의 일행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앞을 가로 막은 청년을 보았다.
우선 어깨에 메고 있는 낙타 한 마리가 그들의 기분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낙타가 사람을 태운 것도 아니고 사람이 낙타를 짊어지고 사막을 넘어
오는 인간이 있으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놀라움은 청년이 당당하게 외친 말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었다.
"이놈들, 모두 멈추어라! 난 대막제일신마 우칠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사막은 내가 접수하였으니,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나를 경배하고
찬양해야 하는 바! 우선 네놈들을 나의 수하로 거두리라! 그리고 옥차는
내 전용 마차로 쓸 터이니 그리 알아라!"
모두 입을 딱 벌리고 일부 인물들은 침까지 흘리며 우칠을 본다.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게 마련이지만,
우칠의 선언은 그 정도를 한참 벗어난 말이었다.
모두 황당함을 지나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운은 묘한 눈길로 우칠을 보고 있었으며,
흑칠랑은 웃고 있었다.
흑칠랑이 어찌 우칠을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황당하고 당당한 모습.
누구든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는 인물이 우칠이리라!
아직도 이 험한 무림에서 살아 있다는 것이 우선 신기했다.
그런데 저 별명은 또 뭔가?
그가 알고 있던 우칠의 별명은 고금천추제이신마였다.
'그 동안 많이 소심해졌군.'
물론 소심해지게 된 동기를 흑칠랑은 대충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기죽지 않고 큰소리치는 우칠이 어찌보면 자신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칠랑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만도 했다.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는 아운의 벽이 있음에도 끝까지 기죽지 않고
도전하는 면과 우칠의 행로는 일면 닮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가, 흑칠랑은 우칠이 밉지 만은 않았다.
전에 자신이 좀 과하게 힘을 쓴 것도 왠지 미안할 정도였다.
우칠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모두 멍한 표정이 되어 버린 사라신교의
인물들을 보면서 감격하고 말았다.
'아! 드디어 이 우칠의 기세가 제대로 먹히는구나. 역시 사막은 강호
무림과 비교할 순 없지. 흐흐, 짜식들. 모두 얼어붙은 표정들이라니.'
힘들었던 사막 횡단의 고단함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제 멋대로 상상한 우칠은 더욱 어깨에 힘을 주었다.
"이놈들 뭐 하느냐? 어서 무릎 꿇고 사막의 주인을 맞이하거라!"
목소리 하나는 그런대로 그럴 듯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라신교의 인물들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고 있었다.
특히 성격 급한 아륵진과 아륵도는 그렇지 않아도 가슴이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고 있던 참이라, 한꺼번에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저놈을 잡아와라!"
집법사자의 명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인 아륵진이 뛰쳐나가며 고함을
질렀다.
"이 낙타 같이 생긴 놈아! 그렇지 않아도 열 받는데, 너 자알 만났다."
고함이 끝나기도 전에 아륵진은 이미 우칠의 앞까지 단숨에 날아갔고,
그의 환도는 이미 직도양단의 기세로 우칠의 머리를 찍었다.
그런데.
따앙!
쇳소리가 들리면서 아륵진은 손목을 타고 오는 충격에 하마터면 도를
노칠 뻔했다.
기겁을 한 아륵진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든 도를 보았다.
분명히 강철로 만든 도가 분명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우칠을 향했다.
머리에 철갑 같은 것을 두른 흔적은 아무리 봐도 없었다.
그런데 쇳소리라니.
강철과 맨 살이 충돌해서 어떻게 쇳소리가 나고 쇠가 튕겨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어찌 아륵진 뿐이겠는가?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우칠을 보았다.
도가 들어가지 않는 머리.
모두들 다시 한 번 놀랄 때,
우칠은 머리가 부서지는 고통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확실한 것은 정말 그의 사부가 몸뚱이 하나만은 제대로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죽어서 고혼이 된 사부에게 감사를 하여 우칠은 아륵진을 노려보았다.
"칼질도 제대로 못하면서 감히 내게 대들다니. 너 이 새끼 일루 와라.
사지를 찢어 죽이고 말겠다."
우칠의 사나운 기세에 아륵진은 움찔하고 말았다.
상대가 거의 금강불괴에 이른 괴물임을 안 다음에야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졌다고 하기엔 사라신교의 용사라는 말이 부끄럽다.
아륵진이 도를 고쳐 잡고 다시 앞으로 나설 때였다.
"그만, 잠깐 기다리시오. 자네는 여기서 또 보는군."
우칠에게 호감을 가진 흑칠랑이 앞으로 나서며, 다시 달려들려고 하는
아륵진을 막고 우칠을 보면서 말했다.
우칠은 흑칠랑을 보고 눈이 점점 커졌다.
'헉! 하필이면 여기서 고금천추제일인을 보다니.'
흑칠랑은 졸지에 고금천추제일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우칠은 흑칠랑에게 지기 전, 삼귀에게 먼저 패한 적이 있었지만,
자신을 이긴 두 사람 중에 누가 제일인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흑칠랑은 고금천추제일이거나 제이였다.
우칠이 겁먹은 표정으로 흑칠랑을 보자,
사라신교의 인물들은 다시 놀랐다.
설마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일 줄이야.
그리고 천하제일살수라는 흑칠랑의 명성을 다시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집법사자인 무태는 기이한 눈으로 우칠을 보았다.
우선 우칠을 보고 그가 금강불괴에 가까운 무공을 익혔으리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의 무공이 전혀 드러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무태가 상대의 능력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운에 이어서 두 번째
였다.
"어떻게 여길?"
우칠은 흑칠랑의 눈치를 보면서 물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운명은 꼬여도 뭐가 이렇게 꼬였단 말인가?
하필이면 이 먼 사막에서 자신을 이긴 단 네 명의 인물 중에서 한 명을
다시 만나다니.
"그렇게 되었지. 그런데 자네 용케도 살아 있군 그래. 보아하니 그 동안
많이 고생을 한 것 같군."
흑칠랑의 말을 듣자 우칠은 그 동안 고생한 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무림에 꿈을 품고 출도한 후, 그 짧은 시간에 우칠이 겪은 우여곡절은
실로 다사다난하다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사막에서 죽었다 깨어난 것까지 합하면 무려 다섯 번이나 죽었다
살았난 셈이다.
이제 겨우 무엇인가 이루어질까 했는데 하필이면 흑칠랑을 만나고 말았다.
물론 우칠은 흑칠랑을 만남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죽을 고비를 모면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다.
"끄흐흐, 사막이 내 수중에 들어올 찰나였는데. 하필이면…. 크허허
어엉엉."
우칠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억울해도 너무 억울했고, 그 동안 고생을 해도 너무 했다.
그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 난감한 표정으로 우칠을 본다.
흑칠랑은 우칠이 서럽게 울자, 자신도 콧날이 시큰해졌다.
그 동안 아운으로 인해 당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눈물이
글썽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우칠의 처지가 누구보다도 이해가 되었다.
원래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잘 아는 법이다.
흑칠랑은 살수답지 않게 우칠의 등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자, 기운을 내고 일어서게. 대막제일신마 우칠이 이 정도에 기가 죽어서
되겠는가? 힘을 내야 꿈을 이룰 것 아닌가? 자네는 누가 뭐래도 대막제일
신마가 될 자질이 있네."
우칠이 울음을 뚝 멈추었다.
고금천추제일, 제이를 다투는 자가 인정했다.
그럼.
우칠이 힘을 내고 벌떡 일어선 순간이었다.
"기이한 일이군. 속에 가득한 힘은 능히 역발산인데, 쓸 수 있는 힘은
그 중 백분지 일도 안 된다니."
우칠은 일어서다 놀라서 상대의 얼굴을 보았다.
마침 중천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그의 머리를 이고 후광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반짝이는 눈은 한 눈에 우칠을 찍어 누른다.
우칠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우칠과 흑칠랑을 다시 한 번 주눅 들게
만들었다.
흑칠랑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만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고, 이는 우칠에게 다시 한 번 충격을 주었다.
'세, 세상에! 고금천추제일인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사람이 겁을 먹는
사람이라니. 그럼 대체….'
우칠은 존경과 감탄이 가득한 시선으로 아운을 본다.
"우선 먹고 마셔야겠군. 여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가져다주게."
아운이 아륵진을 보고 마치 명령을 내리듯이 말하자,
아륵진은 자신도 모르게 물과 음식을 가지러 가고 있었다.
그 만큼 지금 아운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는 가공했다.
그 기세를 본 집법사자 무태는 다시 한 번 아운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
인지 깨우쳤다.
'사라신교로 들어간 다음엔 반드시 죽여야 할 자다. 절대로 살려 둘 수
없는 자다. 그런데 저 자와 신녀님은 어떤 사이올 얽혀 있는가?'
무태는 그 점이 염려스러웠지만, 일단 사라신교로 들어간 다음엔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아운이 강해도 사라신교의 힘을 혼자서 감당할 순 없으리라.
그것은 무림의 최강자라는 절대 쌍절이나 칠사, 오기 중 누구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라고 무태는 자신했다.
세 번째다.
우칠을 보면서 황당한 마음이 드는 것도 이젠 면역이 될 것 같았다.
저 정도 덩치면 얼마나 많이 먹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물 몇 모금과 죽 한 대접만 먹고는 충분하단다.
보통 사람이라도 저 정도 굶고 나면 최소 몇 그릇은 먹고도 남으리라.
산만한 덩치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식(小食)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우칠은 아주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래, 이제 어쩔 셈인가?"
아운의 물음에 우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일단 함께 가세."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것 없지. 그럼 함께 가는 것으로 하지."
말을 하며 아운은 집법사자를 보았다.
함께 가도 되겠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스스로 다 정해 놓은 것 아닌가?
그러나 집법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운은 만족한 표정을 지은 다음 다시 우칠을 보았다.
'이상하다. 이 자의 안에 있는 힘이 묵천악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혹시 천마인혼대법을 익힌 천마혈인인가? 그런데 그런 것 같지 않다.'
아운의 의문이었다.
처음 우칠을 보았을 때, 그 힘을 느끼고 아운은 자신의 힘을 개방해서
우칠을 자극해 보았었다.
만약 상대가 천마혈인이라면 어떤 식이던지 대항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무극신공이 팔 단계에 이르고서야 아운은 묵천악의 몸 안에 숨어 있는
천마인혼대법의 기운을 조금이지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은밀한 기운이 천마인혼대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묵천악이 이미
그것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미세한 기운이 무엇인지 알 순 없었으리라.
그런데 그 힘과 비슷한 느낌을 우칠에게도 느낀 것이다.
더군다나 우칠에게서 느낀 힘은 묵천악과 비슷했지만,
더욱 정제되어 있었으며, 훨씬 더 은밀했다.
만약 그 느낌이 맞는다면 서너 번의 각성을 하고 난 다음의 힘일 것이다.
알려지기로 천마인혼대법은 일곱 번 죽었다 살아나야 완전해진다고 했었다.
물론 단 세 번이면 각성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다는 말도 있었기에 실제론
세 번만 의식을 거친 후 나머지 네 번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 세 번이다, 일곱 번이다, 하는 두 가지 설이 있었지만,
아운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확실한 것은 일곱 번 죽었다 살아나야 완전해지고,
그때마다 수많은 인간의 고혈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칠은 거의 완전한 천마혈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어야 했겠는가?
그리고 지금 우칠처럼 떠도는 인생이라면 이미 강호 무림의 공적이 되어
있어야 옳았다.
아운은 그것이 더욱 큰 의문이었다.
그런데 아운이 자신의 힘을 개방하면서까지 알아 본 바에 따르면 우칠은
자신이 지닌 힘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각성을 하고 난 다음엔 자신이 천마혈인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칠이 익힌 무공은 천마인혼대법이 아니란 말인가?
'그래도 그 힘이 지닌 기의 성질이 너무 비슷하다.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아운은 그렇게 생각하고 우칠을 자신의 일행에 합류시킨 것이다.
***
백옥차의 안은 묵소정이 지금까지 봐 왔던 어느 누구의 방보다도
호화로웠다.
푹신한 백호 가죽이 깔린 의자는, 마차가 움직여도 그 느낌이 앉아 있는
몸에 거의 전해져 오지 않을 정도였다.
천정엔 야광주가 달려 있었고, 마차 벽은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마차 안에는 모두 세 명의 인물이 타고 있었다.
묵천악과 묵소정, 그리고 집법사자 무태였다.
묵소정이나 묵천악은 마차가 움직이고 조금 지나서야 지금 자신들의
처지에 적응할 수 있었다.
역시 적응이 빠른 것은 묵소정이었다.
"어머니를 본 적이 있으셨나 봅니다."
"신녀님이 중원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제가 그 분의 호위사자
였습니다."
집법사자인 무태가 황송한 표정으로 말하자,
묵소정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다시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저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셨었습니까?"
"두 분이 태어나신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림맹의 감시로 인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신녀님은 어떻게 하던 두 분을 사라신교로 보낸다고
약속을 하셨었기에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주이신 목교소님께선
항상 그 때를 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이제 도착하면 삼 일 안에 소교주
와 신녀가 되는 절차를 마치고 합당한 교육을 받으시게 됩니다."
묵소정은 자신의 어머니가 정운을 통해 사라신교와 몇 번의 서신을 주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협사이자 무맹의 수하인 정운으로선 그 서신을 전해주는 것 이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을 데리고 사라신교로 가는 것조차 많이 망설였으리라.
새삼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이 미안해진다.
'어쩌면 어머니는 정운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죽음을 택하신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죽음으로 남긴 유언이 정운의 마음을 흔들었고,
무맹 맹주가 자신들을 죽이려 하자 어쩔 수 없이 돈황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소교주님은 이미 각성을 하셨군요."
무태의 말에 묵소정과 묵천악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아보지 못하던데, 집법사자님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묵소정은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고,
묵천악은 조금 불안한 시선으로 무태를 본다.
"집법사자인 제가 도련님을 완전히 각성시키는 수련을 맡고 있습니다.
당연히 알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약간이짐나, 조금 비슷한 무공을
익히고 있습니다. 이제 도착하고 정식으로 소교주님이 되시면 완전한
각성을 위한 수련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묵소정은 불안한 시선으로 무태를 보면서 물었다.
"천마인혼대법은 사라신교의 무공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천마인혼대법을 익힌 것은 전 소교주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신녀이신 묵희영님은 그 구결을 알고만 계셨지요. 아마도 무맹의
감시로 인해 익히지 않으시고 계시다가 소교주님에게 전해 준 것
같습니다."
잠시 호흡을 조절한 무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천마인혼대법이 처음 사라신교에 전해진 것은 삼십 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중원에서 한 명의 무사가 사라신교로 도망쳐 왔었는데, 그가 바로
천마인혼대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대법을 사라신교에 바치고
교의 인물이 되었으며, 나중에 전대 소교주님과 중원 정벌을 함께 하였
다가 실종 되었습니다. 당시 소교주님이 천마인혼대법을 완전히 익히기
만 했어도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너무 늦은 나이에 익히
느라 완전히 익히시질 못했었습니다."
사라신교가 중원 정벌을 자신하게 되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천마인혼대법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교주가 천마인혼대법을 익히고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이었다.
"제가 알기로 천마인혼대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일곱 번이나 죽어야 하고,
한 번 죽을 때마다 사람의 피를 보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천 명의
사람을 죽여야만 완성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수련을 하려는 것
입니까?"
묵소정이 불안한 얼굴로 묻자, 무태는 정광을 번쩍이며 말했다.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엔 무공을 모르는 자들이라도 상관이
없지만, 나중엔 무공을 익힌 자들이라야 합니다. 천 명이 아니라 모두
삼 천의 피가 필요하고, 그 중 천 명이 무사라야 합니다. 물론 전부
무사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소교주님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천의 사람들은 신교에 죄지은 자들로 준비되어 있고, 천은 이미 훈련
을 끝내 놓았습니다 이천은 어차피 죽어야 할 자들이고, 신교의 제자들
은 소교주님을 위해 죽는 것을 영광응로 알 것입니다. 장소 또한 완벽
하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수련은 제가 도울 것이고 이미 한 번의
각성으로 인해 운 좋은 백여 명은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묵소정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지만,
묵천악의 눈은 흥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 동안 참아 왔던 흉성과 피에 대한 갈구로 인해 이미 인내의 한계까지
도달해 있던 참이었다.
무태 또한 몇 천의 사람을 죽이는 것에 별 다른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이천의 무리란 사라신교의 죄인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기저기서 납치한 자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라신교에 죄를 짓고 죽을 자들이 이천이나 될 리가
만무했다.
'그래. 어차피 큰 일엔 희생이 있게 마련이다. 세상의 역사를 보아도
피 없이 영웅이 된 자가 몇이나 되었던가? 어차피 힘이 없으면 당하는
세상이다.'
묵소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보면 아운 역시 권왕이란 칭호를 얻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여자는 천마인혼대법을 익힐 수 없는 것인가요? 나 역시 천악과 같은
무공을 익혔는데 나는 왜 각성을 하지 않는 거죠?"
묵소정의 말에 집법사자가 신녀를 보면서 말했다.
"여자도 익힐 수 있습니다. 단지 여자는 세 번의 각성을 하면 되는 대신,
수련 기간이 남자보다 훨씬 길어집니다. 아직 각성을 하시려면 조금 더
있으셔야 합니다."
묵소정은 조금 실망했지만,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방법은 꼭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까?"
"없습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몇 십 년 동안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육십 년 전의 대천광마(大天狂魔)가 천마인혼대법을 익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불문의 제자였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천마
인혼대법을 익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천마인혼대법
의 살심을 억누르긴 했지만, 가끔은 광인이 되어 버리곤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 살심을 더 이상 누를 수 없자, 그의 친인에게 반드시 천마인혼
대법의 살심을 없애고 익힐 수 있는 방법을 만들겠다고 말한 후 사라졌다
고 합니다. 그 서신을 받고서야 그 친인조차 대천광마가 익힌 무공이
천마인혼대법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 후 전해진 바에 따르면 일곱 번의
죽을 고비만 넘기면 완전히 천마인혼대법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고 서신으로 전해 왔었다 합니다. 하지만 그 후에 살심을 이기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조차 확인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에 그의 후인
이 있다면 천마인혼대법을 온전하게 터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천광마의 그 말이 사실이라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방법은 한 가지군요. 하지만 절대 피하지 않겠습니다. 천악 역시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묵천악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집법사자의 얼굴에 흐뭇한 표정이 떠올랐다.
"당연하십니다. 어차피 신교의 제자들은 두 분을 위해 죽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바로 세상의 위험과 짊어진 삶의 무게
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습니다. 그들 중 모든
사람이 힘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결국 힘이 없는 자는 지배당하게 되고,
지배당하게 되면 삶이 고단해지고 불쌍해집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은
고달픈 삶을 억지로 이어가게 됩니다. 죽음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죽지도
못합니다. 그것을 대신 해주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죽음으로
내세에는 가진 자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묵소정과 묵천악은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장 자신들만 해도 힘이 없어서 서러움을 당할 땐 당장이라도 죽고 싶지
않았던가.
무태가 다시 정색을 하고 물었다.
사실은 두 남매가 다른 생각을 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으리라.
"권왕이란 자와는 어떤 사이십니까?"
권왕이란 말이 나오자 묵소정의 얼굴을 상기되었고,
묵천악은 뿌드득! 하는 소리를 내면서 이를 갈았다.
그러나 혹시라도 아운이 들을까봐 다른 소린 하지도 못한다.
무태가 무엇을 느낀 듯 말했다.
"이 옥차는 방음장치가 완벽합니다. 안에서 하는 말을 밖에서 들으려면
최소한 칠사 정도의 무공은 지니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걱정 말고 말하
십시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묵천악이 말했다.
"그 개새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습니다. 죽여도 그냥 죽이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전부 주고 나서 천천하 말려 죽이고
말겠습니다."
무태는 놀란 표정으로 묵천악을 보았다.
그래도 자신들을 보호해준 인물이 아닌가?
"그건 안 돼. 저 자는 내가 처리하겠다. 나한테 맡겨 놔. 집법사자님,
신녀가 된다면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지게 되나요?"
"교주님 다음입니다. 신녀의 신분은 소교주님과 동등합니다."
묵소정은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혹시 사라신교엔 무공이 강한 자를 꼼짝 못하게 속박하는 방법이
있나요?"
"있습니다. 고독을 쓰면 됩니다. 암수 두 마리의 고독 중 수놈을 사용하고
암놈을 자신의 배속에 키운다면, 고독에 당한 자는 암놈을 가진 자의 명령
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 고독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제 아무리 강한 자라도
명령을 안 들을 수 없습니다. 만약 암놈을 뱃속에 넣은 여자가 죽는다면
수놈에게 당한 자도 함께 죽습니다."
"그렇다면 사라신교에 도착한 후 고독을 사용해서 권왕을 나의 하인으로
쓰겠어요."
고독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독충을 삼켜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겠다고 하는 묵소정을 보고 묵천악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렇게 된 후에 아운을 괴롭혀도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아주 두고두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는 자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당사자가.
한 명의 일행이 더 늘은 아운과 사라신교 일행은 삼 일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