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분광검법(分光劍法)
- 달 없는 하늘은 높고 시리기만 하더라!
아운 일행이 쌍지호를 완전히 소유한 후 삼 일이 지났다.
그 동안 아운 일행은 광폭했던 혈랑대의 무리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전부
사막응로 쫓아냈다.
실제 그들은 몇 명 되지도 않았다.
그러고 나자 쌍지호엔 여자들만 남게 되었다.
아운은 그들을 따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차후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여자들은 전부 돌아갈 수 있게 해주기로 약속을 하였다.
여자들로서는 관량의 횡포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었기에 아운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러나 뜻밖이라면, 의외로 고햐엥 돌아가려 하는 여자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녀들은 이미 욕된 몸으로 고향에 돌아가 보았자 자신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냥 쌍지도에 남아 남은 여생을 살아가려는 듯
했다.
일단 쌍지호의 일이 마무리 되자 아운은 조용한 곳에 거처를 만들고 무공
수련에 들어갔다.
그 외의 모든 일은 흑룡당의 형제들과 편일학에게 맡겨 놓았다.
다행히도 소설과 소산은 흑룡당의 형제들과 친해져서 이젠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었다.
***
아운은 편일학이 준 칠절분광영검법(七絶分光靈劍法)을 펼쳐 들었다.
백오십여 년 전, 검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광검(光劍) 이유성의
칠절광영검법(七絶光靈劍法)에 종남파의 이십사수분광검을 가미하여
만들어 놓은 칠절분광영검법은 편일학의 피와 땀이 베어 있는 절기였다.
아운은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한 자씩 읽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운은 새로운 무학에 대한 신비함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분광(分光), 비영(匕影), 단혼(斷魂), 폭렬(爆裂), 분광척(分光剔)으로
이어지는 전 오식의 검결도 놀랍지만, 그를 진정으로 놀라게 한 것은
후 이식인 분광기어검(分光氣馭劍)과 분광월인벽(分光月刃碧)이었다.
분광기어검은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이었고,
분광월인벽은 심검(心劍)의 경지에 도달해야 펼칠 수 있는 검초로,
초식을 펼치는 순간 검강이 초승달처럼 형상화 되면서 베지 못할 것이
없다는 절기였다.
아운은 한 자 한 자 빼놓지 않고 분광영검법을 읽어 나갔다.
열두 시진이 지나서야 아운은 분광영검법을 단 한 자도 빠짐없이 다 읽을
수 있었다.
다 읽고 난 후 아운은 다시 명상에 빠졌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선 광풍사와 싸울 것을 생각해 보았다.
자신의 무극신공이 팔 단계에 올라서도 삼백의 광풍사와 싸워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러나 아운은 분광영검법을 보면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그가 열두 시진이 짧은 순간에 깨우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열두 시진씩이나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아운은 분광영검법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무극신공과 육삼쾌의연격포를
다시 한 번 검토해보고 다른 무공과 비교해서 장단점을 하나씩 비교해
보았다.
특히 온전한 초식을 전부 알고 있는 분광영검법의 경우 비교하기에 아주
좋은 무공이었다.
권법과 검법을 비교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무공의 본질이 강기를 이용한 최상승 무공이라는 점에서
아운은 전혀 거리끼기 않았다.
그리고 아운이 깨우친 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확실히 무극신공과 육삼쾌의연격포는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만약 무극신공의 팔 단계를 터득한다면 칠절분광영검법을 십이 성 대성한
자와 겨루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냉정하게 비교해서 아운의 여덟 번째 주먹까지는 상대가 받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아홉 번째 주먹엔 분광영검법의 어떤 초식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운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상대가 분광영검법 외에 편일학이 펼쳤던 분광영신법마저 대성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내가 펼친 아홉 번째의 주먹을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고 피해낸다면.'
물론 연격포의 아홉 번째 초식은 분광영검법이나 보법으로 피하기란 쉽지
않은 무공이었다.
연격포의 아홉 번째 강기는 빠르다.
주먹에서 뿜어진 강기는 번쩍 하는 순간 이미 상대를 공격하고 난 다음
이었다.
무적권문의 선조들은 이 아홉 번째 초식의 최고 미덕을 상대가 피할 수
없는 빠르기와 이겨낼 수 없는 강함에 중점을 두었다.
태양 같은 강한 화기를 내포한 번개 문양의 강기는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공격이 끝난다.
그리고 그 강기에 당한 상대는 재로 변해 흩어질 것이다.
금강불괴가 소용없는 무공이었다.
그러나 아운은 자신의 무극신공이 구 단계 이상이 아닌 한,
상대가 예비 동작을 보고 피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설혹 구 단계라 할지라도 상대가 절대로 피할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구 단계에 이르면 강기를 뿜어내다가 거두는 동작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
지지만, 팔 단계에서는 일단 뿜어내기 시작한 강기를 중간에 거두지
못한다.
일단 펼치면 끝까지 가야 한다.
'거리다.'
아운은 상대와의 거리에 따라서 절정의 분광영신법으로 연격포의 아홉
번째 주먹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팔 단계의 경우는 예비 동작을 보고 피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았다.
만약 상대가 아홉 번째 주먹을 피한다면 아운은 그 다음엔 더 이상
연격포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팔 단계의 경우는 이각(삼십 분) 동안,
구 단계의 경우는 일각(십오 분) 동안이었다.
그 시간 동안은 단룡수와 금강룡의 권법,
그리고 비응천각괴의 무공만으로 싸워야 한다.
물론 연격포를 펼치기 전보다 힘도 많이 빠진 상황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연 자신이 분광영검법을 대성한 자를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물론 칠보둔형보법이 있어서 분광영검법의 후이식을 피할 순 있었다.
그러나 피할 수 있다고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각의 시간이면 절대 고수와 충돌했을 경우 몇 번이 아니라 몇 십 번
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연격포는 강하고 빠르지만 단순하다. 다른 무공에서 가지고 있는 변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운은 그 점에 있어서 지금까지는 큰 불만은 없었다.
변을 넣으면 쾌가 손상을 입는다.
절대 강함이라면 빠르기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아운은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삼백 년 전이라면 이 정도로 충분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일 대 일로만 싸운다면 무극신공을 구 단계 이상 터득할 경우 거의
적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은 반드시 일대일로만 덤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연격포는 좀 더 강해져야만 했다.
아운은 단순히 일대일의 무적이 아니라 절대무적이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극신공의 구 단계는 언제 도달할 지 모르는 경지였다.
구 단계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강해져야만 한다.
그래야 사라신교도 광풍사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강해지고 발전된 연격포가 필요했다.
'너무 단순한 것은 좋지 않다. 빠르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변화라면….'
다시 한 번 명상에 빠져든다.
다시 이틀이 지났다.
모두 걱정이 되어 아운이 있는 거처를 찾으려 했지만,
이미 경험이 있는 소설과 소산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편일학 역시 그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말로 흑룡당 형제들의
걱정을 무마 시켰다.
차츰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역시 다시 생각해도 연격포는 너무 단순하다. 하지만 분광영검법의
몇 가지를 응용하면 지금보다 더욱 날카롭고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아운의 결론이었다.
우선 아운은 자신이 생각한 부분을 이론적으로 정리를 한 다음,
그 특성에 맞게 연격포의 각 주먹에 초식 명을 만들어 넣었다.
우선 연환육영뢰의 경우는 간단하게 일기영(一氣影), 이벽권(二闢拳),
삼권척(三拳斥), 사환권(四環拳), 오금강(五金剛), 육영추(六影椎)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운은 연환육영뢰의 경우엔 약간의 변화만 가미하여 연환으로 펼칠 때
그 힘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자신이 생각한 특정 성질에 따라
초식 이름을 지었다.
또한 이 무공들을 다시 정리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 다음 삼절파천황은 이미 생각한 이론에 따라,
제일권(第一拳)을 월광분검영(月光分劍影),
제이권(第二拳)을 분광파천뢰(分光破天雷),
마지막으로 제삼권(第三拳)이자 연격포의 마지막 주먹을 태양무극섬
(太陽無極閃)이라고 지었다.
이렇게 강호 무림사에 가장 강했다고 전해지는 육삼쾌의연격포,
혹은 구전무적신권(九轉無敵神拳)이라고 불리던 무공의 기틀이 만들어
졌으며, 첫 무공이 만들어지고 삼백 년 만에 각 초식마다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아운의 나이 스물다섯 구월이었다.
'천천히 하자.'
아운은 일단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해놓고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새롭게 무공을 정립하여 만들어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일 수 없다.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무극신공의 팔 단계는 다른 무공의 십 성에 해당하는 경지와 같았다.
신공을 운용하고 응용하는데 막힘이 없는 경지라 하겠다.
그 경지에 도달해야 자신이 생각한대로 초식을 변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괴수라기공을 최소 십일 성까지 연성해야 했다.
그래서 삼살수라마정에 이기어검술인 분광기어검을 가미하는 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우선 그 부분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살펴본 분광기어검의 구결은 삼살수라마정을 펼치는 초식과 상당부분
유사한 곳이 많았다.
아운은 그 안에서 광풍사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놓고 있었다.
'생각한대로만 된다면 혼자서 광풍사를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아운은 자신의 무공에 대한 정립이 끝나자 칠절분광영검법을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르하의 품 안에서 꺼낸 광풍사의 무공을 꺼내어 들었다.
***
하남성 숭산 태실봉 아래의 무림맹.
북궁연은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한 점으로 보이는 작은 구름이 창백한 하늘에 점을 찍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막힌 곳이 없구나."
북궁연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정말 작은 구름 주변엔 온통 파란 하늘뿐이었다.
탁 트인 하늘.
담장도 없고, 바람도 잔잔하다.
작은 구름을 구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갈 수 있을 것 같은 모습.
너무도 자유로워 보였다.
"내가 답답하기 때문일까?"
북궁연은 가볍게 웃었다.
자신답지 않은 생각이라고 변명하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선다.
마치 그때를 기다리기도 한 것처럼 소홀이 안으로 들어왔다.
스스럼없는 행동.
북궁연과 그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가씨."
북궁연이 돌아섰다.
소홀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결코 화려한 옷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담백한 그녀의 미모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슬의 깨끗함.
새순의 싱그러움.
가을의 풍만함.
소홀은 숨을 가다듬고 웃으며 말했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소홀, 칭찬으로 들리지 않아요. 매화가 아름다워도 그것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랍니다."
북궁연이 웃으면서 말하자, 소홀이 고개를 흔들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전부 아가씨를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부 어떻게
하든지 아가씨와 말을 걸어 보고 싶어 한답니다. 특히 최고의 남자들이라는
이룡은 반드시 아가씨의 마음을 차지하겠다고 하는 중이랍니다. 봐 주는
사람이 없다니요."
"잠시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고 넘보는 것은 나에 대한 모독이요, 자신들에
대한 오만일 뿐입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녀의 의지를 들여다보기엔 충분했다.
소홀은 그런 모습의 북궁연이 좋았다.
아름답지만, 오만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품성이었다.
의지가 강해서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 만다.
외유내강(外柔內剛).
그녀를 위한 말이라고 소홀은 생각했다.
청순하면서 이지적인 모습 속에 숨은 여장부의 기질을 소홀은 너무도 잘
안다.
"아가씨다우십니다."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던 소홀의 시선 안으로 가지런히 놓인 문방사우와
한 장의 한지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 위에 가지런히 써 내려간 시 한 구절이 보인다.
마치 한 마리의 봉황이 수를 놓은 듯한 글씨였다.
능히 대학자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 글씨였고,
그 시 또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가슴에 검을 품고 잠을 자다,
매화 향에 취해 문을 열고 나섰다.
치마 자락에, 바람이 나를 떠미는데,
매화꽃은 어디가고 잔가지만 남았더라!
서리 내린 가지가 내 꿈에 취해 불렀나 보다.
달이 보고 싶어 하늘을 보았더니,
휭 한 어둠 속에 별만 가득하였다.
보고 싶은 이름 있어 길게 불렀더니,
떠난 사람 소식은 긴 이별로 남았는데,
달 없는 하늘은 높고 시리기만 하더라!
소홀은 시 안에 담겨진 북궁연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시기였다.
호연세가의 힘은 이미 북궁세가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고,
무림맹의 원로들은 공공연히 북궁세가를 적대시 하고 있었다.
무림맹을 등에 업고 사십 년 동안 권세를 누린 원로들은 어떻게든
그 권세를 놓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런 자들에게 언제나 깨끗하고 올바른 북궁세가는 눈엣가시나 마찬가지
였다.
일부 뜻 있는 지사들이 북궁세가를 중심으로 뭉쳐 무림맹의 체질 개선을
주장했던 사건도 그들에겐 전혀 탐탁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맹주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호연세가를 지지하는 세력이나 마찬가지
였다.
특히 누가 맹주가 되든 자신들의 자리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원로들이 봤을 때 북궁세가는 배척 일 순위에 해당하였다.
그런 북궁세가의 힘이 약해지자 지금에 와서는 노골적으로 적대시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그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북궁세가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힘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그 틈을 이용한 무림맹의 대공자 흑룡의 애정 공세는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는 북궁세가의 영화를 위해서 자신들을 택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북궁연은 탐탁하지 않아 한다.
그녀는 명가의 후예답게 어릴 적에 이미 정해 놓은 혼처를 저 버리지
않고 있었다.
이럴 때 가장 힘이 되어 주어야 할 사람이 바로 하영운 공자였지만,
그는 집을 나가서 아직도 소식이 없다.
그녀로서도 많이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 안에 그런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힘이 들수록 그분이 그리워지는 모양이시다.'
소홀은 의연한 모습의 북궁연을 보면서 그녀의 속마음을 조금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 북궁연에게 있어서 하영운이란 존재는 사랑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상징적인 존재일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조금 뜻밖이었다.
'많이 힘드신가? 그래서 얼굴조차 모르는 하영운 공자가 그리울지도
모른다.'
북궁연은 소홀이 자신의 시를 보자 침착하게 종이를 접어 한 쪽으로
가지런히 놓았다.
자신의 마음을 들켰지만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참으로 좋은 시에 멋진 글씨입니다, 아가씨."
북궁연이 웃으며 자라에 앉자 소홀도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인가요, 소홀?"
"명 공자님이 언가의 언보행 공자와 심하게 다툰 모양입니다."
북궁연은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북궁명의 실력으로 보아 지진 않았으리라.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예전이었다면 언가의 언보행이 어떻게 북궁세가의 공자와 다툴 수
있었겠는가?
"다행히 서로 검까지 뽑지는 않았지만, 명 공자님이 심하게 화가 났었던
모양입니다."
"명아가 잘 참은 모양이군요."
"언보행이 대놓고 빈정거린 모양입니다. 맹 안에서는 함부로 무기를
뽑거나 무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으니, 명 공자님은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하지만 많이 분해 하는 모습이었다."
북궁연은 의연하게 말했다.
"겨울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봄으로 보답을 합니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지요. 분한 것은 자신을 다듬는 보약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소홀은 다시 한 번 속으로 감탄을 한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단단함이 보기 좋기도 하고,
조금은 안타깝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홀은 안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문득 지금처럼 힘들 때 하영운 공자가 절세의 무공을 익혀 그녀의 곁에
와 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생각해 보았다.
몇 가지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만다.
북궁연은 소홀이 갑자기 웃자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
"소홀, 왜 웃었지요?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소홀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잠시 실없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북궁연이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소홀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만약에 하영운 공자님이 대기연을 만나 절세의 무공을 익혀 아가씨
곁으로 돌아온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소문이
한창인 권왕 같은 인물이 만약 하영운 공자님이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소홀의 말에 북궁연도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일단 살아서라도 돌아오셨으면 합니다."
북궁연의 말에 소홀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아가씨의 마음이 뜻밖에도 깊은가 봅니다. 하지만 그분을 본 것은
어려서 뿐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북궁연은 가볍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세상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랍니다. 그리고 시가 모든 것을 대변하진
않겠지요."
소홀이 더욱 궁금해진 표정으로 북궁연을 볼 때였다.
"아가씨."
밖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다음 말을 가로 막았다.
"무슨 일이냐?"
"금룡표국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금룡표국?"
북궁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북궁세가와 금룡표국은 아무런 거래도 없던 곳이다.
"금룡표국의 을목진 국주님이 표물을 들고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표물?"
갈수록 의문이 든다.
"모셔 오너라!"
북궁연은 일단 시녀에게 명령을 내린 후 소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홀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무슨 일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소홀은 마치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말했다.
북궁연은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룡표국은 무림맹과 같은 하남성에 있지만,
무림맹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었다.
단지 금룡표국의 국주는 소림의 속가 장문인인 만큼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
자신의 무공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한 아운은 다르하의 품 안에서
나온 책을 한 권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먼저 창검편으로 시작해서 궁도편, 그리고 순부편을 차례대로 읽어 간
아운은 읽어가면서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권에 모두 두 가지씩의 절기가 적혀 있는데,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 익히기에 적합하도록 기초부터 제대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책자 안에 적혀 있는 무공들은 생각보다 더욱 대단해서 기초무공
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또한 각 무공에는 그 무공에 어울리는 내공심법이 한 가지씩 적혀 있었다.
내공심법은 내공이 약하거나 이제 무공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배우기에
알맞았고, 나이가 들어서 배우거나 다른 무공을 익히고 있어도 큰 문제가
없는 내공심법들이었다.
'흑룡당의 형제들에게 가르치기엔 더 없이 좋은 무공들이다. 마치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 같군.'
아운은 그 무공들 중에 모두 세 가지만 취하고 나머지는 전부 버리기로
했다.
그 세 가지가 궁(弓), 검(劍), 부(斧)였다.
그 중에서 궁술에 관한 것은 자신의 삼살수라마정과 이기어검을 접목
하는 데도 좋은 지침서가 될 것 같았다.
모든 결심이 서자 아운은 밖으로 나왔다.
삼 일이 지나고 나서야 아운이 나타나자 흑룡당의 형제들은 놀라서 모여
들었고, 소설은 이미 준비해 두었던 음식을 들고 왔다.
그녀는 전에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그다지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아운은 일단 식사를 하고 운기를 하여 몸의 피곤을 풀었다.
삼 일 정도 잠을 자지 않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겐 큰 무리일 수 있지만,
아운 같은 내공의 고수들은 단 한 번의 운기행공으로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