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 제11장. 대형아운(大兄牙雲) (40/228)

제11장. 대형아운(大兄牙雲)

- 대형이 온다

십벽진을 내려다보던 오절은 어이가 없었다. 

"호연세가가 아운에게 모두 쓰러지다니. 그리고 아운은 혈랑대를 찾으러 

같다니." 

혈랑대가 십벽진을 습격하기 전에 미리 와서 정찰을 하던 오절은 

표사들이나 짐꾼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운이 어떻게 혈랑대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갔는지는 알지 

못했다. 

단지 오는 길을 미리 짐작하고 사막에서 기다리려 한다고 짐작했다. 

문제는 자신과 혈랑대가 온 길은 기존의 길과는 다른 쪽이었다. 

혈랑왕은 혹시나 표국의 무리가 일찍 출발할 것을 대비해서 그들이 

출발하면 가야 하는 길 쪽으로 우회해서 십벽진으로 오는 중이었고, 

오절은 미리 와서 정찰을 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아운과 마추지지 않고 십벽진으로 온 것이다. 

"대사형, 권왕 아운이 살아 있다면 삼귀를 이겼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 것 같다." 

"설마 아운이 삼귀의 협공마저도 이겼단 말입니까?" 

형가의 계속된 물음에 오절의 대사형인 담대천도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지금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히 아운이 살아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아는 아운의 실력으로 삼귀의 협공을 이긴다면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아운의 무공이 아무리 빠르게 발전해도 삼귀를 이길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력도 제법이고, 운도 좋은 자군요." 

오요홍이 끼어들며 말하자 담대천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과연 운만으로 삼귀를 이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흥분해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아운이 호연세가의 모대건마저 쓰러뜨렸다고 했다. 

그럼 결코 운이라고만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운이란 자, 불가시의한 자입니다. 어쩌면 그 동안 실력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사형?" 

형가가 표사들이 입에 침을 튀며 말하는 아운의 무용담을 듣고, 

오요홍의 말에 조금 의문을 표시했다. 

"어떻게 삼귀를 이겼던, 아니면 운이 좋았던, 지금 아운과 호연세가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기회로군." 

오절의 네 명이 담대천을 본다. 

오요홍이 물었다. 

"기회라고요?" 

"기회지. 우린 어차피 묵가 남매만 처리하면 된다. 호연세가와 아운이 

없다면 남매를 납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형가가 담대천의 말에 찬성하고 나섰다. 

"좋은 생각입니다. 을국진이나 금룡표국의 표두들 정도라면 한꺼번에 

상대해서 다 죽일 순 없지만, 혼란하게 만들어서 남매를 납치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남매는 한쪽에 떨어져 있군요. 

아마도 아운이란 자에게 무엇인가 큰 잘못을 하고 심하게 당한 후 

외톨이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형가의 말대로 묵가 남매는 아운에게 당하고 외진 곳에 따로 떨어져 

있었다.

모두들 묵소정과 묵천악을 힐끔거리며 수군거리곤 했다. 

오절은 그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운과 두 남매가 어떤 일로 크게 

충돌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운은 을국진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고, 

두 남매는 수치심으로 인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요홍과 고벽은 반대편으로 나타나서 이들의 시선을 끌어라! 그 사이에 

나와 형가, 그리고 예혼이 남매를 납치하기로 한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상대의 전력이 강하지 않고 조금은 무방비인 상태라면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정운과 아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을국진은 지금도 그때의 광경이 

뇌리에 선명했다. 

그 무지막지한 힘과 배짱이 그의 가슴에 맺혀서 지워지지 않는다. 

'앞으로 무림에 큰 돌풍이 일겠구나.' 

아운을 생각하며 그의 앞날을 미리 짐작해보던 을국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사막의 한 편으로 두 명의 복면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태연하게 다가왔다. 

모든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남매에게 세 개의 그림자가 다가서는 것을 

본 자는 아직 없었다. 

***

황룡은 이를 악물었다. 

광풍사의 병사들은 무자비했다. 

다행이라면 그들이 신병임을 말해주듯이 아직은 서툰 점이 많아서 

그런대로 대항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거의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병자고 아니고를 가리지 않고 공격해오는 그들의 기세를 보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혈랑대의 인물들을 절대 살려 놓을 것 같지 않았다. 

'대형, 이리로 오지 마십시오. 이리로 오시면 위험합니다.' 

황룡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운이 오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황룡을 비롯한 일곱 명의 형제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대사막으로 온 흑룡당의 이십여 명은 한 곳에 모여서 

이를 악물고 싸우는 중이었다. 

흑룡팔수 중 막내는 혈랑대의 본거지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혈랑왕은 중원에서 온 흑룡당의 형제들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 중 한 명은 언제나 그들의 본거지에 남아야 했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남은 형제는 목이 떨어질 것이다. 

황룡은 지금 상황에서는 그나마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막내야, 우리가 죽거든 너라도 살아서 우리 몫까지 대형을 모시거라!' 

창검 소군령인 다르하는 만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신병들은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었다. 

비록 간간히 죽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이렇게 죽음의 전장 속에서 살아남은 극소수 정예만이 광풍사의 

새로운 예비 병사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살인에 대한 감각과 전사로서의 면모를 가지게 

되었을 때, 살아남은 자들은 따로 몇 년간 다시 집중 조련을 받고 진정한 

광풍사의 일원으로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광풍사에서 죽는 병사가 있으면 이들 중 수위에 있던 병사가 다시 

그 자리를 매운다. 

광풍사가 언제나 삼백 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물론 광풍사의 병사들이 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어떤 전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훈련을 받는다. 

항상 적당히 강한 자들과의 목숨을 건 대결. 

신병들의 실력이 호연세가를 상대하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혈랑대의 잔존 무리라면 훈련 상대로 가장 적당했다. 

그래서 광풍사는 혈랑대를 지원했고, 

혈랑왕 관량은 자신을 반대하는 무리들을 이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공생공사라던가. 

다르하의 안색이 조금 찌푸려졌다. 

혈랑대의 무리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자들이 있었다. 

우선 혈랑대의 반골이라는 함사량이었다. 

그리고 한쪽에 모여 있는 삼십이 조금 모자라는 무리들. 

강하진 않지만 악착 같았다. 

특히 그들 중 일곱 명의 사내들은 무공도 제법이었고, 

특히 싸울 줄 아는 자들이었다. 

이미 그들에게 세 명이나 되는 신병이 목숨을 잃고 있었다. 

그 외에는 거의 도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랴!" 

고함과 함께 다르하의 말이 땅을 박차고 달린다. 

장창을 든 다르하가 말과 함께 함사량에게 달려들며 장창을 밀어 넣었다. 

피하고 어쩔 사이도 없이 장창은 함사량의 가슴을 관통했다. 

창을 뽑아 든 다르하의 눈이 서늘해졌다. 

"뭐하느냐! 대광풍사의 용사들이 될 너희들이 그 정도 밖에 되지 

못하느냐! 그러고도 광풍사의 신병들이라 할 수 있느냐!" 

다르하의 고함에 자극을 받은 몽고병사들은 더욱 악착 같이 달려 들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섯 명이 황룡의 일행에게 달려 들었다. 

황룡의 동료들 중 몇 명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는 빠르게 늘어난다. 

싸움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자신이 있던 그들이지만, 

압도적인 무공의 차이는 그들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황룡은 입술을 악물었다. 

"대형이 오고 있다. 이를 악물고 버텨라! 곧 대형이 오신다." 

황룡의 고함에 살아남은 흑룡당의 형제들이 마지막 용기를 내고 있었다. 

사실 황룡은 지금 흑룡 아운이 나타난다고 해도 무슨 수가 생기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형제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아운의 이름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살아남은 십여 명의 흑룡당 인물들과 흑룡팔수의 나머지 여섯은 자신의 

죽음을 도외시 하고 광풍사의 신병들에게 달려들었다. 

다섯의 신병들이 그 기세에 멈칫한 순간, 

다르하가 창을 말 안장에 걸고 대검을 뽑아 든 다음 말을 흑룡당의 

무리가 있는 곳을 향해 돌진해 갔다. 

광풍사 창검병들의 수호무기인 묵옥신검(墨鈺神劍)이 햇살에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단 일 격이면 황룡의 목을 베고도 남을 것이다. 

아니, 황룡 뿐만 아니라 흑룡팔수의 일곱 형제 정도는 단 일 격에 

도살할 수 있는 기세였다. 

이미 다른 곳의 도살은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형제들과 함께 생명을 걸고 싸우던 황룡은 미처 다르하를 보지 못했다. 

보았어도 그 죽음의 검을 피하기는 불가능했지만…

광풍사의 십부장인 다르하의 검이 호선을 그리고 허공을 갈랐다. 

차르릉. 

기성과 함께 다르하의 검이 황룡의 목 근처에서 기적적으로 멈추었다.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황룡의 동작이 멈추었다. 

"모두 멈추어라!" 

다르하의 고함과 함께 나머지 흑룡팔수 중 여섯이 결투를 멈추었다. 

그리고 흑룡당의 형제들도 결투를 멈추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열일곱 명, 

흑룡팔수 중 일곱과 나머지 십여 명 뿐이었다. 

그들 외에 남아 있던 혈랑대는 거의 모두가 고혼이 된 후였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황룡의 눈이 꿈틀거렸다. 

"뭐 하느냐? 난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형제들은 어찌해서 적장의 말을 

듣는가?" 

황욜의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다르하의 미간이 좁아졌다. 

과연 보던 대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 실력이 아니라 패기와 용기가 그랬다. 

둘째인 벽룡(碧龍) 청안귀(靑眼鬼)가 앞으로 나섰다. 

푸른 눈동자의 용자. 

그는 멀리 파사국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다. 

부모님을 쫓아 머나먼 이국으로 여행을 왔었다가 부모가 거의 같은 

시기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덕분에 낯선 이국 땅에서 혼자 살아가야 했던 그였다. 

어려서부터 푸른 눈의 귀신이라고 불리며 험악한 세상을 떠돌다가 

흑룡에게 거두어졌다.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겠다. 황룡 형을 해치지 

말아라!" 

다르하가 웃으면서 검을 거두고 황룡의 등을 밀었다. 

열일곱의 흑룡당 형제들과 마주 선 다르하가 그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훗! 가진 재주는 보잘 것 없지만, 모두 제법 하더군. 아니 싸울 줄 

알더군." 

황룡의 입술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우리가 전부 덤벼 보았자, 너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를 모욕하지 말아라! 네놈에게 모욕 당할 만큼 하찮은 

우리가 아니다." 

황룡은 대항을 포기했다. 

대항한다면 오히려 더욱 처참할 뿐인 것을 안다. 

상대는 자신들에 비해서 절대의 무공을 지닌 자였다. 

대항해 보았자 무의미했다. 

황룡과 형제들은 다르하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당당한 놈들이군. 하지만 네놈들은 모두 죽는다." 

다르하의 으스스한 말에 황룡이 웃었다. 

"네놈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로 우리의 대형이 오고 계신다." 

"대형?" 

"그 분이 오기 전에 우리를 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르하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황룡을 보았다. 

이들의 실력으로 보아 오고 있는 대형의 실력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마적단의 대형이 강해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런데 황룡의 입에서 대형이란 말이 나오자 그의 뒤에 있던 자들의 

눈빛이 변한다. 

대단한 믿음이었다. 

하지만 다르하가 보기엔 그저 어쭙지 않은 뒷골목의 의리에 불과했다. 

제법 귀엽게 보인다. 

"너희들 대형이 마치 대단한 자라도 되나 보군." 

"그런 것은 모른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말해줄 수 있다." 

"뭐지?" 

황룡의 말에 다르하가 물었다. 

"네놈이 우리를 죽이고 난 후, 네놈은 대형에게 가장 처참한 죽음을 당할 

것이다." 

황룡의 말에 다르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 용감해 보이기에 상대해 주었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그래, 내가 너희들을 살려준다면?" 

"그럼 편하게 죽을 것이다. 어차피 네놈에게 죽은 형제들이 있으니까." 

황룡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건덕 시절에 아운은 항상 그랬었다. 

자신의 형제를 죽인 자는 가장 처참하게 죽여 복수를 했었다. 

황룡과 형제들은 그때의 아운이 얼마나 무섭고 지독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의 형제들을 함부로 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다르하가 듣기엔 참으로 지독한 모욕이었다. 

겨우 마적단 주제에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놈들! 전부 죽여라!" 

이미 혈랑대를 완전하게 처리하고 그의 뒤에 서 있던 병사들 중 십여 명의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천천히 걸어왔다. 

황룡과 흑룡당의 형제들은 이제 죽어야 할 시기가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황룡이 마지막으로 다르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네놈은 우리들의 대형이 이곳으로 오고 있음을 명심해라!" 

전혀 협박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잘 됐군. 오면 죽여서 네놈들의 뒤를 따르게 해 주마." 

툭 던지듯이 말한 다르하가 자신의 수하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쳐라!" 

다르하의 명령과 함께 십여 명의 병사들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흑룡당의 형제들에게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퍽! 

복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맨 앞에 서 있던 세 명의 병사가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뒤로 넘어졌다. 

놀라서 바라본 곳. 

하나의 인형(人形)이 바람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대꾸도 없었고, 묻지도 않았다. 

날아온 인물은 살아남은 일곱 명의 병사들 사이로 뛰어 들었다. 

맨 앞에 있는 병사의 턱을 올려 차고, 

그 다음 병사의 머리를 주먹으로 날려 버렸다. 

땅에 내려서기도 전에 허공을 밟고 위로 솟구치면서 두 병사의 머리를 

발로 차 버렸다. 

빠르다. 

다르하가 어어 하는 사이에 십여 명의 병사가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다. 

모두 죽은 채로. 

다르하의 눈이 커지면서 안면이 굳어졌다. 

신병들이고 아직 광풍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수련을 한 자들은 

아니었지만, 결코 약자들이 아니었다. 

이들 열 명이면 실제 광풍사의 일반 병사 두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뭐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죽어갔다. 

문제는 상대의 빠르고 강함이 자신의 아래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아운은 일단 병사들을 처리한 후 자신의 형제들을 보았다. 

모두들 감격과 놀라운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얼마만인가? 

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다. 

수많은 시체들. 

낯익은 얼굴 둘이 보인다. 

아운의 시선이 죽은 형제들의 얼굴로 향해지자, 

황룡이 고개를 숙이고 오열한다. 

다른 흑룡당의 형제들도 고개를 숙였다. 

아운의 시선이 다르하와 그의 신병들에게 옮겨졌다. 

다르하는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을 느끼고 내공을 끌어모았다. 

"누구냐!" 

아운이 묻는다. 

다르하는 대답 대신 마른침을 삼켰다. 

"황룡." 

"예, 대형." 

"누구냐? 어떤 개자식들이 우리의 형제를 죽였는가?" 

"저 자와 그의 병사들입니다." 

황룡이 다르하와 그의 신병들을 가리켰다. 

아운의 눈에 살기가 떠오른다. 

다르하가 자신도 모르게 대검을 뽑아 들었다. 

"황룡, 우리의 법을 말해 보아라!" 

황룡이 허리를 펴고 말했다. 

"우리의 형제를 죽인 자는 상대가 누구든 두 눈을 뽑고, 사지를 자른 다음 

목을 잘라 죽입니다." 

다르하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는다. 

아운이 굳어진 다르하를 보며 말했다. 

"원칙은 그렇다. 그러나 네놈이 내 한 주먹만 견딘다면, 너를 죽이지 

않으마."

다르하가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는 일단 마음이 안정되자 천천히 화가 치밀었다. 

감히 광풍사의 소군령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있으리라 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광풍사의 소군령은 말 그대로 신이 내린 태양의 아들이었다. 

일반 병사들의 만부장보다 위에 있는 신분. 

몽고의 병사들에게 있어서 광풍사의 소군령은 곧 그들의 우상이요, 

꿈이었다. 

소군령 다르하. 

"네놈은 정말 광오하구나. 넌 내가 누구인 줄이나 아느냐?" 

"네놈이 광풍사의 소군령이든 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네놈이 여기서 죽을 거란 사실이다. 네놈의 동료들은 살려보냈지만, 

넌 그럴 수 없어서 유감이다." 

아운의 눈에 어린 살기가 다르하의 몸을 옥죄어 온다. 

다르하는 등골에 서리가 내리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그런데도 당당한 자다. 

무엇보다도 동료들을 살려 주었다는 말은 누루치 일행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운의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누루치와 아달라가 누군데 쉽게 쓰러지겠는가? 

특히 대군령인 누루치의 무공은 채 열 명이 안 되는 대군령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아운의 당당한 표정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불안함을 씻어내기 위해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묻는다. 

"네놈. 동료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네 마음이 알고 있을 것 아니냐?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믿고 안 믿고 역시 네 마음이다." 

아운의 몸에 사나운 기세가 어리면서 그의 주먹에 섬광이 어리자, 

다르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네놈이 권왕이란 애송이냐?" 

다르하의 말에 아운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몽고의 병사가 나를 알다니, 과연 네놈들은 중원의 누군가와 끈이 닿아 

있구나." 

다르하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표정 관리 좀 해라! 멍청아!" 

다르하는 자신의 실수를 깨우치고 얼굴을 굳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잘 견디어라! 약속대로 단 한 방이다." 

아운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하자, 

다르하는 말에서 내려 긴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대검을 세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