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제14장. 강자지미(强者之美) (29/228)

제14장. 강자지미(强者之美)

- 강한 자는 아름답다

십벽진에서 한 시진 거리엔 거친 땅에 한쪽으로는 큰 바위 절벽이 가로 

놓인 곳이 있었다. 

거대한 바위도 드문드문 놓여 있는 곳에서 삼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운이 다가서자 삼귀는 천천히 아운에게 다가왔다. 

특히 아운에게 한 눈을 잃은 곽철의 얼굴엔 살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진짜로 올 줄 몰랐군.”  

  

“어차피 한번은 겨루어야 사막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절도 함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나?”

  

“삼귀의 명성이 아까운 일이지. 어차피 함께 있으나 없으나 상관은 없다.”

  

“배짱은 좋은 놈이군.”

  

곽철이 휘죽거리며 웃었다.

아운 역시 웃는다.

***  

아운이 떠나고 정운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느라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각이 흘렀을 때였다

한 명의 표사가 허둥거리며 다가왔다.

  

“국주님, 삼십여 명의 무사들입니다.”

  

을목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삼십 명은 적은 수가 아니었다. 

표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고 을국진의 지휘로 표두들과 표사들이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서서히 나타난 삼십 여기의 말을 탄 무사들이 다가왔다.

을목진은 나타난 사람이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는 너무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경천묵장(驚天墨掌) 모대건(毛大健).”

  

“나를 알아보다니 영광입니다. 을목진 국주님.”

  

“내가 어찌 사협의 수좌로 그 명성이 사해오호를 떨어 올렸던 모대협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상대가 사협의 수좌인 모대건이란 사실을 알자, 

을국진과 표두들은 굳어졌던 인상이 펴졌다. 

상대는 마적단이 아니었다.

  

“저를 알고 있다니 대화하기가 편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무슨 일인지 말씀 하십시오. 도움이 된다면 을모는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을목진이 웃으면서 말하자, 모대건 역시 정중하게 말했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우리가 데려 갔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정운의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모대건이 무림맹에 속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을목진 역시 상대가 말하는 사람들이 묘운(정운) 일행일거라고 짐작을 

했다. 

상대가 사협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림에서 대협으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고 안 가고는 내 뜻이 아닐 것 같습니다.”

  

“뜻을 알겠습니다. 그럼 저흰 저희가 모셔야 할 손님에게 가 보겠습니다.”

  

을목진의 말이 끝나자, 

그들의 일행 중에 한 명의 대한이 앞으로 달려 왔다. 

백호단의 단주인 백호랑군 자충이었다. 

자충이 묵소정 남매를 가리키자,  

을목진은 천천히 남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운이 빠르게 다가와 그 앞에 섰다.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대건은 정운을 향해 포권을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정 무사님, 제가 모시는 분이 뵙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모대건의 말에 을목진 형제는 물론이고 진경화 조손도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협의 수좌가 모시는 상전이라니.

더군다나 모대건의 모습은 경건했다. 

충심이 없으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제야 정운의 성이 묘씨가 아니라 정씨라는 것도 알았다. 

아마도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성을 바꾸어 말한 것 같았다.

  

정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협의 수좌로, 그 지닌 무공의 끝을 알 수 없다는 모대건이 나타날 것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들이 지금 나타난 것은 운 공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연인가? 그런데 운 공자는 나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뭘까? 일단 지금은 운 공자의 판단을 믿자.’

  

아운은 삼귀를 만나러 가기 전에 정운에게 전음으로 말했었다. 

자신이 떠난 후 누가 오더라도 이 자리를 떠나선 안 된다고, 

여기에 있는 한 안전할 것이라고 했었다.

  

“우리를 보시고자 하는 분이 누구인지 밝히고, 용건을 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운의 말은 옳았다.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결코 위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정운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모대건의 말투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누굴까?’

  

정운은 빠르게 모대건을 보낸 곳이 어딜까 생각해 보았다. 

역시 아운과 이야기를 나눌 때 결론을 내린 호연세가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우린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어느 분이 우리를 뵙고 싶어 하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날 때 우리가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그 분의 성함과 우리

가 갈 곳을 말해 주십시오.”

  

정운의 강경한 어조에 모대건의 이마엔 가볍게 주름살이 생겼다. 

처음부터 쉽게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우리가 무례를 범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강경했다. 

사실상 말을 안 들으면 실력 행사를 하겠다는 표현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일까?’

  

을목진은 강하게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모대건과 함께 온 인물들을 살펴보았다. 

삼십여 명 중에 이십여 명은 똑같이 검은 경장에 가죽 요대를 하고 

있었으며, 가슴에 작은 청룡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십여 명은 각양 각색이었는데 모두 지닌 무공이 상당한 경지인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다시 자충을 향했다.

  

‘저자만 해도 나와 겨루어 별로 뒤질것 같지 않다. 대체 어느 단체에서 

이 정도의 고수들을 한꺼번에 파견할 수 있단 말인가? 무림맹은 아닐 

테고.’

  

무림맹의 고수들이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을목진과 진경화 일행이 모두 궁금해 할 때, 

그 해답을 준 것은 정운이었다.

  

“언제부터 호연세가가 이렇게 무례했습니까?”

  

정운이 정식으로 호연세가를 논하자 을목진과 을국진 형제가 놀라서 

모대건을 보았다. 

과연, 정말인가 묻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모대건 같은 인물을 거둘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그 중 호연세가라면 자격이 넘치고도 남았다.

정운이 직접 호연세가를 논했지만,  

모대건은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마치 벌써부터 정운이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 같았다.

모대건이 정운을 놔두고 을목진에게 다가섰다.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 호연세가의 천각을 맡고 있는 모대건입니다. 

이 일은 세가의 일이라 차후에 이 일에 대한 설명은 따로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냥 모른 척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지 저들 일행이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과 이 일은 무림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사협과 호연세가의 이름을 걸고 말한다면 안 믿을 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무림의 안전까지 들먹이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을목진이 놀란 듯 정운을 보았다.

묵소정은 너무 억울해서 눈에 눈물이 고여 드는 것을 느꼈다. 

천마인혼대법이란 것은 구경도 못했다. 

아니 얼마 전 까지는 들어도 보지 못한 무공이었다. 

처음엔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럼 대체 왜 자신과 동생이 목숨을 위협 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운은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 같아 물어 보았지만 기회를 봐서 알려

준다고만 했다.

묵소정이나 묵천악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일이었다.

  

“대체 왜 우리 남매를 괴롭히는 것이죠?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거죠? 

그거라도 속 시원하게 말해 보세요. 거창하게 무림의 안전까지 들먹이며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가 뭐죠?”

  

묵소정이 독기 어린 눈으로 모대건을 노려보며 말했다. 

격한 그녀의 목소리는 애처로워서 많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샀다. 

그러나 모대건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를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나랑 같이 가야만 너는 살 수 있다.”

  

모대건의 말에 묵소정은 이를 악물었다. 

마치 손 안에 쥐고 있는 무건을 말하는 것 같은 투였다.

힘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서러운 것인 줄 몰랐다. 

힘만 있다면 저들이 감히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진 못할 것이다. 

힘만 있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인간들을 모두 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인가 더욱 아운이 아쉽다.

정운은 상황이 더욱 어렵게 되가는 것을 알았다. 

  

“모 대협,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일단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잠시 자리를 비웠고, 그가 돌아온 다음 의논을 해 

보겠습니다.”

  

모대건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아운이란 자겠지?”

  

말투가 변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 자에게 볼 일이 좀 있습니다. 기다리죠.”

  

모대건의 말에 정운은 일단 가슴을 쓸었다.

이 모든 일을 을목진과 을국진, 그리고 진경화 조손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슴에 작은 반발심이 치밀어 올랐다.  

보기에 무엇인지 몰라도 굉장히 강압적인 방법으로 핍박하는 분위기였다. 

또한 모대건의 행동에 자신들이 무시당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중하지만 그 정중함이 더욱 언짢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있는 십벽진을 둘러 싼 작은 언덕 아래로, 

수백 명의 그림자가 그들을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 

  

  

아운은 곽철의 외눈을 조롱하는 눈초리로 보면서 말했다.

  

“어쩌다가 무림맹의 개가 되었지? 그래도 삼귀라면 자존심 하나는 꽤 

유명하던데.”

  

삼귀의 안색이 굳어졌다. 

설마 아운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곽완이 자신의 놀라움을 빠르게 수습하면서 대답하였다.

  

“네 놈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우리가 왜 무림맹 따위와 손을 잡아야 

한단 말이냐? 우리가 필요한 것은…”

  

“천마인혼대법이겠지? 뭐 사마무기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키던가?”

  

삼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자신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상대는 이미 그렇게 믿고 있으며, 

그 믿음은 절대로 변하지 않겠다는 투였다. 

이건 변명을 한다고 통할 일이 아니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곽완은 결국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가장 적절한 대답이라 할 수 있었다.

아운이 웃으며 이번에는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맨 앞에 서 있는 곽철을 

보면서 묻는다.

  

“오절은 몰론 묵가 남매를 노리고 있겠지?”

  

“알면서도 오다니, 네 놈은 큰 실수를 했다.”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지.”

  

“을목진 형제를 믿는군.”

  

“오절이 을목진 형제와 금룡표국의 정예들을 이길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기더라도 문제가 커지겠지. 을 국주가 소림의 속가 장문인이니.  

그렇다고 다짜고짜 달려들어 죽일 수도 없을 것이고.”

  

곽철이 입가에 냉소를 머금었다.

  

“네 놈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운의 입가엔 더욱 차가운 웃음이 어렸다.

  

“기껏해야 마적 때로 변신을 하거나, 정말 마적단을 이용하겠지.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을걸.”

  

아운의 말에 삼귀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고 보니 묵가 남매를 탐내는 곳이 있더라고. 그들의 힘도 만만치 

않을걸.”

  

아운은 빙글거리며 웃었다.

매우 순진해 보이는 웃음이었지만, 삼귀가 보기엔 섬뜩한 웃음이었다.

  

‘단순해 보이는 놈이 계산은 영악하다. 그렇다면 무얼 믿고 여기에 나타난 

거지.’

  

삼귀의 대형인 곽영은 아운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임을 

알았다. 

그런데 그런 판단력과 영악한 머리를 가진 인간이 홀로 여기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설마 진짜로 혼자 싸울 생각인가?

  

‘그 동안 만년 동자삼이라도 먹었나?’

  

곽영의 의문은 당연했다. 

아운과 헤어진 것은 불과 몇 개월 전이고, 

당시에 아운은 곽철을 겨우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런 실력으로 삼귀 앞에 당당하게 나타났다면 무엇인가 계산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겠는가?  

다른 일행이라야 별로 도움도 안 될 테고, 결국 혼자서 자신 있다는 말인데, 

그것은 아운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삼귀의 입장에서 보자면 납득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네 놈 배짱하나는 인정하지만, 오늘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곽영의 말에 아운은 그의 생각을 읽었다.

  

“내가 무슨 배짱으로 혼자 나타났는지 궁금한 모양이군.”

  

곽영은 속으로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마라! 난 혼자 왔고 오로지 내 주먹을 믿을 뿐이다.”

  

아운의 말에 곽철의 외눈이 살기를 뿜어 내었다.

  

“개자식, 오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팔다리를 전부 잘라 버리겠다.”

  

아운은 측은한 눈으로 곽철의 하나 밖에 없는 눈을 보면서 말했다.

  

“많이 아팠겠다. 나도 가슴이 아팠다. 두 눈을 다 파내야 직성이 풀렸을 

텐데, 너무 아쉬웠거든. 그 때는 억울해서 울 뻔 했지. 근데 하나씩 올래? 

아니면 셋이 한꺼번에 올래?”

  

곽철은 화가 나서 하나 남은 눈알까지 빠지는 것 같았다.

  

“이 노옴.”

  

고함과 그는 혈륜탈명삭(血輪奪命索)으로 비혈란(批血亂)의 초식을 펼쳐 

단 일격에 아운을 쳐 죽이려 하였다. 

무지막지한 쇠사슬의 그림자가 아운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일격필살의 기세였다. 

  

아운이 일보를 움직이며, 주먹을 쳐낸다.

단 일 보였지만, 머리를 칠 것 같은 쇠사슬이 허공을 치고 말았다. 

  

곽철은 공격이 빛나가는 순간 가슴을 향해 밀려오는 주먹의 그림자를 

보았다. 

곽철의 입가에 엷은 비웃음이 어렸다.  

그는 자신의 금강철강공(金剛鐵?功)을 믿었다. 

이전의 결투에서 아운의 최고 무공을 이겨낸 금강철강공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운의 주먹은 섬광이 어리던 주먹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공격해봐야 자신의 강기공을 뚫진 못할 것이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아운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 오며서 그의 주먹이 

곽철의 가슴을 격타하였다. 

약간, 찌르르한 통증이 온다. 

그뿐이었다. 

그러나 곽철이 그 찌르르함을 무시하고 아운을 공격하려 할 때, 

아운은 삼 보를 걸어 곽철의 가슴으로 파고 들어와 있었다.

거리가 얼마인데, 단 삼 보만에. 

  

아운의 빠른 보법에 모두 놀랐지만, 곽철이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거리가 좁아져 쇠사슬을 사용하기엔 절대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곽철의 장기가 쇠사슬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곽철이 다른 무공으로 전환하기도 전에 아운의 주먹이 곽철의 명치 

한 곳을 향해 작렬하기 시작했다. 

연환금강룡의 권법 중에 비성추혼이란 초식을 연이어 펼친것이다. 

조금 투박하고 강하기만 했던 금강권은 연환육영뢰의 빠름을 이어받아 

금강룡으로 변하였고, 그 빠르기만으로 따지자면 육영뢰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었다. 

  

퍼버버벅!

한 호흡에 무려 이십 사 번의 주먹이 날아갔는데, 그 빠름이란.

제 아무리 철강공의 위력이 강하지만, 

한 곳만 집중타를 맞으면 도리가 없었다.  

“크헉!”

곽철은 고통어린 소리와 함께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과연 삼귀의 곽철 다웠다.

그렇게 집중 공격을 당하고도 큰 상처를 입지도 않았고,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강기공은 이미 흩어진 상황이었다.

  

뒤에 서 있던 곽완이나 곽영은 곽철에게 가려져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단지 곽철이 비명과 함께 물러서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섬광이 어린 

아운의 주먹이 곽철의 명치를 다시 한 번 파고들었다. 

이미 금강철기공이 흔들린 곽철은 아운의 공격에 대응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곽철의 신형이 무려 삼 장이나 날아가 땅에 

고꾸라지면서 기절해 버렸다.

곽완과 곽영의 신형이 멈추었다.

곽철이 아운을 공격하고, 곽철이 무너지기 까지 걸린 시간은 밥 한 수저를 

떠서 입안에 넣을 정도의 시간도 안 걸렸다. 

너무 놀라서 그들도 걸음을 멈추고 말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린 곽완은 빠르게 곽철에게 다가섰고, 

곽영은 상당히 놀란 눈으로 아운을 본다. 

  

  

놀란 인물은 또 있었다.

멀리서 아운이 싸우는 것을 지켜 보던 흑칠랑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그는 멀리서 보았기에 아운이 어떻게 이겼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단지 찰라의 순간에 승부가 끝난 것만 보았을 뿐이었다.

  

‘저, 저거, 저 시키는 대체 뭘 쳐 먹었길래 무공이 갑자기 늘은 거냐? 

혹시 안가에 만년 묵은 구렁이 내단이라도 숨겨 놓았던 거 아닌가? 

아 씨, 세상 참 불공평하다.’

  

흑칠랑은 괜히 억울하고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지만 뭐 어떻게 

하랴.

괜히 눈을 크게 뜨느라고 눈만 아플 뿐이다.

  

  

곽영의 검은 동자가 더욱 짙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놀라움이 배어 나왔다.

  

“어떻게?”

  

“많이 놀랐나 보군. 몇 개월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지. 나는 이만한 자격을 얻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곽영은 가볍게 한 숨을 몰아쉬었다.

  

“직접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할 만큼 발전을 이루었군.”

  

“뭐 저 덩치가 흥분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 실력을 제대로 알았다면, 

지금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대단했다. 하지만 나를 막내와 비교하지 말아라!”

  

곽영은 말을 하면서 자신의 양 어깨에 꽃혀 있던 두 개의 검을 한꺼번에 

뽑아내었다.

순간 그의 몸을 흐르는 피가 맹렬하게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카락이 하늘로 꼿꼿하게 섰으며, 

눈에는 은은한 혈광이 어린다. 

  

“검을 몸에서 뽑아내면 낼수록 강해지는 무공인가? 세상엔 기이한 무공이 

많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참으로 신기하군.”

  

아운은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곽영을 보았다.

  

“네 놈은 오늘 반드시 죽는다.”

  

작은 목소리로 다짐을 하듯이 중얼거린 곽영은, 

양 손에 들은 검을 십자로 교차한 채 아운을 향해 돌진하였다.  

아운은 곽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의 무게를 느끼고 연격포의 

연환육영뢰를 끌어 올렸다. 

그의 주먹에 섬광이 어린다.

  

“가랏.”

  

고함과 함께 곽영의 쌍검이 좌우로 휘둘러지면서 검에서 환 모양의 검기가 

뿜어져 아운을 공격해 왔다. 

  

‘비격쌍절환(批格雙絶環).’

  

곽영이 지금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기 중 하나였다. 

장기전이 아닌 단 일합 만에 승부를 보려는 듯 했다. 

이미 아운의 무공 내역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초강수를 둔 

것이다.

  

아운의 주먹이 일순간에 두 번을 교차하였다.  

너무 빨라 그림자가 그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곽철을 공격한 첫 주먹부터 계산해서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주먹이 연이어 펼쳐진 것이다.

두 개의 환은 아운의 두 번째 주먹에 부서져 나갔고, 

세 번째 주먹에서 뿜어진 섬광은 곽영의 가슴을 향해 공격해 갔다. 

설마 아운의 주먹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놀란 곽영은 쌍검을 틀면서 두 개의 검으로 검막을 펼쳐 아운의 주먹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아운의 주먹은 그대로 쌍검막을 부수고 앞으로 밀려 들어왔다.  

곽영은 다 급한 나머지 몸을 뒤로 젖혀 피하려 하였고, 

곽철을 돌보던 곽완은 자신의 혈륜을 던져 협공을 해 왔다. 

  

곽완이 던진 방패에서 붉은 색의 검날이 나오면서 강한 회전과 함께 

아운을 향해 날아온다. 

곽영에게 마지막 한 주먹을 날리려던 아운은 주먹의 방향을 혈륜으로 

향했다. 

  

콰앙!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면서 곽영을 비켜 날아간 아운의 세 번째 

주먹이 바로 뒤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부수워 버렸고, 

네 번째 주먹은 혈륜을 날려 버렸다.

곽영과 곽완은 가슴이 시리는 느낌이었다.

  

이건 강해도 너무 강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 몇 개월 사이에 두 세 배씩이나 강해질 수 잇다는 사실이 믿어 지지 

않았다. 

물론 무공이란 수련을 하다 보면 전혀 진전이 없다가도 어느 순간 

깨우침을 얻거나 어떤 단계를 넘어서면 갑자기 급상승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경우였다. 

아운의 나이를 감안하면 지금 무공 수위는 불가해한 일이었다.

  

곽영은 갑자기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수련해온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강한 상실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자신이 있었다.

  

“네 놈은 최초로 삼단금검해체잠인대능력(三段禁檢解體潛人大能力)의 

마지막을 보는 자가 될 것이다. 영광으로 알아라!”

  

곽영이 말을 하면서 오른손에 들었던 검을 허리에 차고, 

복부에 꽃혀 있던 마지막 검을 천천히 뽑아 내었다. 

사람이 제 몸에서 검을 뽑아내는 장면은 기괴하였다. 

곽완이 놀래서 곽영을 본다.

  

“형님. 안 됩니다. 그건 위험합니다.”

  

“됐다. 지금에 와서 무엇을 아끼겠는가? 어차피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분하지만 상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다. 협공을 하겠다. 

비겁하다고 하지 마라!”

  

곽영의 말에 곽완은 비장한 각오로 혈륜을 집어 들었다.

  

“비겁하다니. 힘이 모자라서 협공하는 것이 비겁할 리가 없지 않은가? 

체면 때문에 혼자 덤비다 죽는 놈이 멍청한 거지. 생사를 담보로 싸우는 

결투에 무슨 체면이 필요한가.”

  

맞는 말이다. 

곽영은 조금 기이한 눈으로 아운을 보았다. 

참으로 대단한자다. 

배짱도 그렇지만, 의지력과 행동 방침도 그렇다. 

적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상대가 부러웠다.

  

“넌 정말 대단한 자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감탄한 몇 안 되는 인간 중에 

한 명이다. 그렇지만 이번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별 걱정을 다 하는군.”

  

검이 완전히 뽑혀 지자, 곽영의 몸에 혈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은은한 혈광이 어리던 그의 눈은 점점 붉어졌고, 

온 몸에 터져 나갈 것 같은 힘의 기세가 아운을 옥죄려 하였다.

  

‘이건 지독하군.’

  

아운은 조금 긴장한 상태로 곽영을 지켜보았다. 

그의 주변에 있던 대기가 무섭게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며, 

하늘을 향해 바늘처럼 일어선 그의 긴 머리카락조차 은은한 혈기가 

감돌았다. 

마치 안개 같은 붉은 기류가 꿈틀거리며 그의 주변을 맴돈다.

  

“크아아아!”

  

마치 짐승 같은 괴성과 함께 곽영의 몸에서 뿜어진 혈기가 아운을 단숨에 

찢어 놓을 것 같았다. 

  

‘으윽, 이건 지독하다. 이 정도라면 연환육영뢰의 초식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아운은 이를 악물고 곽영의 기세에 대항하면서 내공을 끌어 모았다.

  

“가라!”

  

고함소리와 함께 곽영의 손에 들린 두 개의 검을 아운에게 던졌다. 

동시에 곽완의 혈륜이 아운의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

아운은 정면 대결을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곽영이 자신의 몸에서 검을 뽑을 기회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칠보둔형보법을 사용한다면 조금 더 편하게 싸울 수 있었지만, 

아운은 지금 자신의 실력, 특히 연격포의 위력을 확실히 알고 싶었다.

  

두 주먹이 연환육영뢰의 다섯 번째와 삼절파천황의 첫 번째 주먹의 힘으로 

동시에 뻗어 나갔다. 

여섯 번째 주먹을 제외하고 일곱 번째 주먹이 먼저 나간 것이다. 

연환육영뢰가 아닌 삼절파천황은 언제든지 먼저 사용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 무공을 펼치는 순서는 역시 육영뢰처럼 차례대로 펼칠 수밖에 

없었지만.

  

왼손의 다섯 번째 섬광은 혈륜을 향해, 그리고 오른 손의 일곱 번째의 

섬광은 곽영이 던진 두 개의 검을 향해 뿜어졌다. 

꽈앙! 

퍼억!

연이어 들리며 사방 오 장 안이 혈기와 섬광의 회오리 속에 잠겨 들었다. 

아운의 다섯 번째 주먹은 곽완의 혈륜을 멀리 튕겨내며 사라졌고, 

일곱 번째 주먹은 곽영의 검 두 개와 동시에 충돌하면서 그 주변을 갑자기  

진공상태로 만들었다가, 폭발하였다.  

꽈르르릉!

엄청난 소리와 함께 주변의 바위가 뿌리 채 뽑혀 올라가다가 부서지며, 

모래로 변해 버렸다.  

마치 회오리바람 같은 두 개의 기류가 용트림처럼 꿈틀거리며 사납게 

돌아가다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곽영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아운을 향해 

달려들면서 일도양단의 초식으로 내리쳤다. 

검에서 뿜어진 혈기가 사나운 기세로 아운을 향해 찍어 왔다. 

충돌의 압력으로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던 아운의 주먹이 내밀어졌다. 

작은 섬광이 번쩍였다가 사라진다. 

순간 파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혈기의 호오리가 안개처럼 번졌다가 

사라졌다. 

갑자기 찾아온 고요한 정적 사이로, 세 사람의 모습이 천천히 들어났다.

곽완은 멍청히 서 있었고, 곽영은 일 장 정도 물러서서 한쪽 무릎을 꺾고 

앉아 있었다. 

입과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보아 상처가 심한 듯 했다.

아운 역시 뒤러 다섯 걸음이나 물러서 있는데, 

입가로 약간의 핏물이 세어 나온다.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아운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곽영에게 다가섰다. 

곽완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곽영의 고개가 서서히 숙여지더니 기절한 채로 무너졌다. 

단 세 초의 겨룸이었지만, 곽영의 무공은 정말 무서웠다. 

만약 아운이 무극신공의 칠 단계를 터득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으로 여덟 번째의 주먹을 사용했다.

아운이 다시 곽영에게 다가서려 할 때였다.

곽완이 번개처럼 달려와 그 앞을 가로 막았다.

  

“훗, 좋아 아직 성한 노인이 있었군. 마침 연환육영뢰의 여섯 번째 주먹이 

남아 있었는데, 잘 되었군.”

  

아운이 웃으면서 주먹을 들자, 곽완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아운은 빠르게 진기를 돌려 보았다. 

내상은 좀 있었지만, 다행히 여섯 번째 주먹을 쓰기엔 충분할 것 같았다. 

이제 아운에게는 연환육영뢰의 여섯 번째 주먹뿐이었다.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육영뢰의 여섯 번째 주먹으로 끝을 내야 한다. 나에게 기회는 단 한번

이다.’

  

아운은 속으로 계산을 한 후, 

육영뢰의 진기를 주먹에 모으고 곽완을 보았다. 

아운의 얼굴에 갑자기 황당한 표정이 떠오른다. 

곽완이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를 죽여 분을 풀고, 형님과 아우를 살려 주십시오.”

  

곽완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이 팔십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무릎을 꿇고 우는 모습도 드문 일이지만, 

자신을 살려 달라는 말이 아니라서 더욱 놀랐다. 

사정을 하지만, 비겁해 보이지 않았다.

아운은 잠시 동안 곽완의 얼굴을 본다.

  

“우리는…”

  

“됐소.”

  

곽완이 말을 멈추고 아운을 보았다.

  

“자존심 강한 남자가 무릎을 꿇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오.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리다. 다른 말은 들어봐야 구구절절할 것이고. 

내가 알아서 무엇 하겠소. 다시는 적으로 보지 맙시다. 그리고 형에게 

전해 주시오. 정말 굉장한 무공이었다고.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아운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곽완은 멍한 표정으로 아운이 점으로 변해가는 곳을 보았다. 

설마 이렇게 쉬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조건조차 없이 살려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던 형님과 아우만이라도 살아서 부모님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알면 알수록 계산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곽완은 천천히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큭, 크흐흐흑.”

  

곽완은 자신도 모르게 숨죽인 울음이 터트리고 말았다. 

이제 다시 부모님을 볼 수 있다는 감사함과, 형제들이 죽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그로 하여금 울음을 참지 못하게 하였다. 

안도의 울음이라고 해야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로지 서로만을 의지하고 살아온 형제들이었다. 

그들이 죽는다면 자신도 살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세상이 버린 형제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키워 준 분들이 계셨다. 

죽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더 효도를 하고 죽어야만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죽으면 부모님은 그렇게 자신들을 기다리시다가 돌아가실 것이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부모님을 뵙지 못하고 죽을 순 없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들을 기다리고 계실 분들을 생각하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울던 곽완의 흐느낌이 점점 웃음으로 변해갔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치면서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곽완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사마무기, 네 놈은 제대로 강적을 만났구나. 저자가 얼마나 강한지 너는 

아직 모르고 있겠지. 그래 나도 모르는 것으로 하마. 은인을 돕지는 못할

망정 고자질까지 할 수야 없지. 난 네 놈이 이번 일에 실패 한다는 것에 

내 모든 것을 걸겠다.”

  

곽완은 아운에게 진 것보다, 사마무기가 아운에게 당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후련하였다.  

그들은 사마무기와 무림맹에 쌓인 원한이 많은 형제들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형과 아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둘 다 내상이 심하고 충격이 크긴 했지만,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썅, 삼귀 이름이 아깝다. 아까워! 칠흉의 수좌가 되어 가지고 겨우 

애송이 한 명 못 이기냐? 나야 살수니까 숨어서 공격하는 것이 장기라 

어쩔 수 없다지만, 에이, 바보 같은 자식들.”

  

흑칠랑은 괜히 삼귀에게 짜증을 내었다. 

자기 아니면 누구도 아운을 죽일 수 없다던 그였지만, 

지금 보여준 아운의 무공은 또 다시 흑칠랑의 다리를 떨리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죄 없는 삼귀만 욕을 먹고 만다.

  

“근데, 저 자식의 무공 수준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 거냐? 휴우,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지금 당장. 그래 노장의 장기가 뭐냐, 인내 아니냐, 인내. 

참고 기다리다 기회가 오면 그 자리에서 슥삭. 흠, 난 살수니까 기습도 

죄가 안 되겠지.”

  

혼자말로 중얼거리는 흑칠랑의 눈에 굳은 결의가 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껄인다.

  

‘곽완이란 놈, 창피하게 무릎을 꿇고 울다니. 제기랄, 설마 나중에 나도 

저런 모양으로…’

  

그건 절대로 안 된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근데 뭔가 자꾸 불안하다.

***

   

자신의 애마에게 다가서던 모대건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언덕을 향한다.

고요했다.

어둠속의 정적이 어둠너머의 어떤 기세 속에 조금 씩 요동치고 있었다. 

아주 미세한 기척이지만 모대건은 그것을 감지하였다.

  

“모두 준비를 하라!”

  

모대건이 나직하게 말하며 자신의 말로 뛰어 갔고, 

그와 함께 온 십여 명의 을급 고수들과 천룡대의 이십여 대원들이 빠르게 

자세를 잡아 갔다. 

을목진과 을국진 형제 역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무엇인가 깨우친 것이  

있었기에 표두들과 표사들에게 그들만의 방법으로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표두와 표사들의 움직임이 기민해

졌다. 

먼저 마차로 진을 치기 시작했고, 그 안에 무공을 모르는 짐꾼들과 말들을  

그 안으로 몰아넣었다. 

마차는 언제나 돌발 상황이 있을 것을 대비하고 놓여 있었기에, 

진 형태를 갖추는 것은 아주 쉬었다.

그리고 표두와 표사들이 각자 맡은 구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을목진은 진경화 옆에 서고, 진성현은 을목진의 옆에 선 채, 

작은 단창을 꺼내 들었다. 

창이라기보다는 작은 단봉에 칼날을 단것 같은 형태였다.

을국진의 지휘 아래 마치가 거의 진 형태를 다 갖추고 있을 때였다.

  

파파파팟!

  

거친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무려 백여 발의 화살이 어둠을 찢고 날아왔다.

  

“모두 조심하라!”

  

고함과 함께 모대건의 쌍장이 하늘을 향해 원을 그렸다. 

순간 수십 개의 화살이 그의 소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세 명의 표사들이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을목진과 을국진 형제의 눈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그것에 신경 쓸 사이가 없었다.

언덕 위로 서서히 나타나는 무리들.

  

“광풍사.”

  

밤이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검은색의 말들,

그리고 삼백여 명의 무사들, 

칠흑 같은 갑옷과 손에 장창을 든 창기병들과 검을 차고 궁을 든 백여 명의 

궁수들, 그리고 역시 도끼를 허리에 차고 방패를 든 백여 명의 방패수들. 

소문으로만 듣던 광풍사가 분명했다.

나타난 자들이 광풍사임을 알아본 을목진의 안색이 검게 변했다.

  

“믿을 수 없다. 연긴 전쟁터와도 수백여 리의 거리인데, 그리고 이 지역에서 

광풍사가 나타났던 적이 없는데.”

  

그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을국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영역을 넓힌 모양입니다.”

  

을목진이나 진경화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나타난 무리들은 천천히 그들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사방을 포위하고 천천히 도는 무리들. 

말 발굽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마치 유령의 군단을 보는 것 같았다. 

최종 공격을 하기 전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자아내는 행동이었다.

저러다 언제 화살을 쏠지, 언제 정면으로 공격해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을목진 형제와 진경화 조손은 손에 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그럴진대 다른 표두들과 표사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정운은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광풍사가 나타나지 않던 곳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광풍사가 나타난 것도 무림맹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제 끝인가? 운 공자도 삼귀랑 싸우러 갔으니 쉽게 이기진 못할 것이다.’

  

정운은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희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다 인 것 같소. 그러나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오. 지켜봐 주시구려.’

  

마음으로 다짐을 한 정운은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묵소정과 묵천악을 

보았다. 

묵소정과 묵천악은 그래도 크게 겁을 먹은 표정은 아니었다.

정운은 품에서 조그만 깃발 하나를  꺼내 묵소정에게 주었다. 

묵소정이 정운을 보면서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던 여기서 살아나면, 돈황으로 가서 영웅객잔을 찾아 가십시오. 

그리고 그 깃발을 거기 주인에게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모든 

것이 저절로 됩니다.]

  

정운의 전음에 묵소정이 그를 바라본다.

  

“정 아저씨, 엄마를 사랑하신 걸 알고 있습니다. 엄마도 정 아저씨를 

사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 아저씨를 믿고 

의지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말해  주세요. 지금  

저들이 광풍사라면 우린 어차피 살아남기 힘이 듭니다. 이유를 알아야 

억울하게 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정운이 듣기엔 충분했다. 

  

“휴우.”

  

작은 한 숨소리가 긴장으로 가득한 십벽진에 흩어졌다.

더 이상 숨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을 위해서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도 별로 없었다.

정운은 아주 짧게 두 사람이 사라신교의 후예임을 말해 주었다. 

그러나 차마 두 사람의 아버지가 무림맹의 맹주고, 

그 아버지가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는 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사라신교의 후예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사라신교에 가서 증조부를 만나 들으라고 말했다. 

두 남매의 신형이 얼어붙었다.  

설마 자신들이 사라신교의 후예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잠시 동안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라신교는 강합니까?”

  

묵소정이 겨우 숨을 돌리고 처음 한 말이었다. 

의외로 의연한 목소리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이는 것 같았다.

  

“강합니다. 무림맹도 함부로 공격해 오지 못할 정도로 강합니다.”

  

“그렇다면, 아운 정도의 고수도 쉽게 죽일 수 있겠군요.”

  

묵천악의 물음에 정운은 가슴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묵천악을 보자 묵천악이 별것 아니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저씨, 제 말은 그 정도의 고수가 여럿 있느냐는 말입니다.”

  

정운은 무엇인가 개운하지 않았지만,  

묵천악을 더 의심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전 무림에서 무림맹과 혈궁을 빼고는 가장 강한 단체입니다. 

아운 정도의 고수는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이번엔 묵소정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 신분은 사라신교에서 어떤 위치입니까?”

  

“돌아가신 마님께서는 두 분이 사라신교로 간다면, 묵공자님은 소교주가 

될 것이고, 아가씨는 자신의 뒤를 이어 신녀가 될 것이라고 했었습니다. 

지금 사라신교의 유일한 핏줄들이라 했습니다.”

  

묵소정과 묵천악의 얼굴이 빛났다. 

그들은 사라신교의 악명보다도 자신들에게 힘이 생긴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리라 다짐한다.

두 사람에게는 살아서 사라신교에 가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

  

일행이 있는 십벽진으로 달려가던 아운의 신형이 무섭게 앞으로 

쏘아가다가 천천히 멈추었다. 

조금 으슥한 곳으로 자리를 잡은 후, 자리에 앉아 운기에 들어간다.

자신의 짐작이 맞는다면, 

지금쯤 십벽진은 호랑이 우리로 변해 있을 것이다.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고 난 후에 가야 한다. 

상황이 다급해도 지금은 몸과 마음을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다. 

물론 삼귀를 용서한 것은 그 마음도 조금은 작용했을 것이다. 

어차피 삼귀의 곽완을 죽이려면 주먹 하나를 더 써야 하고, 

그 만큼 회복이 늦을 것이다. 

하지만 아운이 진짜 삼귀를 용서한 것은 곽완의 눈물이 진실했기 

때문이었다.

아운은 천천히 무극진기를 끌어 올렸다. 

   

  

‘저, 저거, 이건 기회다.’

  

흑칠랑의 눈이 빛났다.

운공을 하는 자를 기습해서 죽인다고 살수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그게 살수다. 

그리고 살수의 겨룸에서 먼저 상대방을 죽이는 방법도 있다. 

더군다나 아운은 부상을 입은 것 같았다. 

이건 정말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 동안 자신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하늘이 이런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아운에게 다가서려던 흑칠랑은 무엇인가 망설여졌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이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아운의 무식함(?)이 너무 마음에 걸린다. 

그러면 지금 기습을 해야 하는가?

흑칠랑은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차가운 달빛이 그의 그림자를 따라 가볍게 요동을 한다.

  

“아이씨, 저 씹새는 여러 가지로 날 번거롭게 하네. 어떻게 해야지? 크윽, 

하늘에 계신 사부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에, 어떻게 해야 하냐

고요? 아, 말 좀 해보시라고요. 말 좀.”

  

죽은 그의 사부가 말할 리가 없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던 흑칠랑이 아운을 바라본다. 

그의 눈이 점점 새파란 살기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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