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제12장. 금룡표국(金龍驃局) (27/228)

제12장. 금룡표국(金龍驃局)

- 대사막의 인연은 어둠과 함께 깊어가고…

우칠은 흑칠랑에게 혼이 나고 나서 자신에 대해서 몇 달간 요양과 무공을 

수련하며 심사숙고를 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랬다.

  

“휴우, 아직 나의 무공은 완성되지 않았구나. 그러나 그것은 세월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작게 시작을 하자. 그래, 일단 멀리 안휘성으로 

가서 그 곳을 제패하자. 우선 성 하나를 제패하고 그 다음엔 천천히 나의 

실력을 기르고 그 다음엔…”

  

우칠의 생각은 점점 아득해졌다. 

이젠 기분이 나아진다.

  

“자, 가자!”

  

고함을 지른 우칠은 씩씩하게 산을 내려왔다. 

몇 달이지만 나름대로 무공 수련도 착실하게 하였다. 

흑칠랑에게 얻어터진 상처도 말끔했다. 

  

“이젠 나의 아호는 고금을 뺀, 그냥 천추제일신마다. 나중에 강호를 제패

하고 고금이란 말을 다시 찾으리라.”

  

호기롭게 말하고 산길을 내려오던 우칠은, 

마침 비각의 부각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호연란을 보았다. 

그의 눈이 번쩍 떠진다.

  

“허, 그랬구나. 하늘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나의 짝을 찾아 주기 

위해서였어. 역시 남자에겐 자신의 짝이 있어야 한다. 바로 딱 내 취향

이다.”

  

우칠의 입이 가로로 길게 찢어졌다. 

그는 아주 의젓하게 걸어서 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호연란에게 다가갔다.

  

“허허, 낭자…”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으며, 그의 눈이 게슴츠레 하게 변하였다. 

입가에 침이 흐르는 것 빼고는 완벽했다.

비각의 부각주는 황당한 표정으로 우칠을 보았다. 

비각에서 잔머리 하나로 입신출세한 부각주의 눈치로 보아하니,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이었다.

  

‘순진한 총각하나 죽는구나.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을 때. 쯧쯧.’

  

부각주는 슬금 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자칫하면 자신에게도 분노의 파편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뭐냐?”

  

호연란의 목소리에 한기가 어려 있었지만, 

천추제일신마에게 그 정도는 별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귀엽다.

우칠의 인상이 해벌 죽 해진다.

성질도 좀 있고, 여자답지 않게 패기도 있는 것이, 

앞으로 험난한 강호를 함께 헤쳐 나가기엔 그만이었다. 

앞으로 대 천추제일신마의 부인이 되려면 저 정도 성깔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는 짓이 참으로 귀엽군.”

  

그 말을 들은 호연란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지만, 

부각주는 눈을 감고 말았다.

  

‘숫고양이가 암호랑이에게 귀엽다고 하는 것 같다. 저 놈, 저런 눈치로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지.’

  

부각주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고… 흠흠, 그냥 천추제일신마 우칠이라고 하오. 소저의 방명은 

어찌 되시오?”

  

“너 따위가 내 이름을 알아서 뭐 하려느냐?”

  

‘그거 참 갈수록 귀엽네. 근데 코가 좀 납작하군. 아깝다. 저 코만 아니면 

정 부인감인데. 으음, 할 수 없지. 첩으로 삼기엔 너무 예쁘고, 그냥 둘째 

마누라로 삼자.’

  

상상은 자유다.

부각주는 우칠이 호연란의 코를 유심히 보자, 오한이 들었다. 

평소 호연란이 코 이야기만 나오면 얼마나 살벌하게 변하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호연세가에서 그것을 모르면 온전하게 살아남기 힘들다.

호연란이 십구세 때의 일이었다. 

그녀의 애마가 호연란의 코 등에 자신의 이마를 한 번 부빈 적이 있었다. 

순간 그녀의 눈이 살기가 어리더니 단 검에 애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단지 애마는 애교를 부린 것뿐인데.

문제는 코였다.

당시 호연란이 애마를 일 검에 베어 버리고, 

발악을 하듯이 외친 소리를 부각주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개새끼, 살아만 있어라! 내가 언제고 난도질을 해 죽인다. 이 멍청한 

말 새끼도 숫놈이었지.”

  

그 말 속에 얼마나 많은 살기가 맺혀 있었던지, 

듣고 있던 부각주는 다리가 떨려서 움직이지를 못했었다. 

  

‘저 멍청한 자식이 설마…’

  

부각주는 우칠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래도 저 불쌍한 녀석을 위해 아무래도 눈치는 줘야할 것 같아 우칠을 

보았다. 

우칠은 마침 눈치 없는 부각주를 쏘아보던 참이었다.

  

“네 놈은 눈치도 없는가? 아랫 것이 알아서 자리를 피해줘야 할 것 

아닌가?”

  

부각주는 눈치를 줄 필요성을 잃어 버렸다.

그냥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우칠은 더욱 우쭐했다. 

시종 녀석이 제법 사람을 알아본다. 

한 눈에 자신이 영웅인걸 알아보고 자리를 피해주는 것 같았다.

  

“들으시오. 나는 장차 천하 무림을 제패할 생각이오. 그리고 그대를 나의 

곁에 두고 무림의 왕비로 삼을까 생각중이요. 비록 코가 조금 납작하지만

(여기서 부각주는 그냥 뒤로 돌아섰다.) 그것 또한 내가 너그럽게 보아 

넘기고 그냥 둘째 부인… 크허헉!”

  

우칠은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호연란의 열 손가락이 인혼귀영조(刃魂鬼影爪)의 살수로 우칠의 얼굴을 

내려 그었다. 

단단하기가 금강석 같은 우칠의 얼굴에 십차선의 우마차로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피가 눈에 들어가 앞이 안 보인다.

  

“크헉.”

  

비명과 함께 고개를 들어 호연란을 보려 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호연란이 가볍게 날라 발을 허공으로 차 올렸다가 

발꿈찌로 우칠의 코를 매리 찍어 버렸다.

찜찜한 눈에 붉은색 고의가 보이는가 하더니, 

갑자기 아래로 확 쏠리는 무게 중심과 함께 우칠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코 등을 타고 하체로 내려가는 고통과 함께, 

우칠은 이번에도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는 반사적으로(이젠 척하면 착이다.) 철푸덕 엎드리며 빌었다.

  

“크허헉… 누… 누니… 나 살려주…”

  

애원하는 우칠의 입으로 호연란의 발이 들어가 박혔다.

그리고 일각 후 부각주는 황당함에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인간이 저렇게 맞고도 살아 있다니, 저게 인간인가? 정말 금강불괴가 

존재하긴 하는가?’

  

우칠의 눈이 서서히 돌아가면서 정신을 잃어갔다.

  

‘내 죽어도 이쁜 계집은 건들지 않으리. 빨간 속곳 입은 계집도 싫다 싫어! 

크흐흐!’

  

죽어가며 하는 맹세였다.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

감숙성의 난주에서 출발하여 돈황을 거쳐 서역으로 넘어가는 비단길은 

군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상당히 중요한 도로였다. 

또한 사람이 빈번하지만 길이 험해 마적단들이 심심치 않게 출현하곤 

하였기에, 보통 개개인이 홀로 그 길을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근래의 변방은 몽고족과 명과의 전쟁으로 상당히 불안한 시기였기에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다. 

무서운 것은 몽고족만이 아니었다. 

간간히 명의 군사도 변복을 하고 상단의  재물을 노리는 경우가 있어, 

변방에서 군사라면 우군과 적군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비단길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무리들이 적었다. 

특히 작은 상단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이야 말로 큰돈을 벌 수 있는 호기이기도 했다.

이럴 때 움직이는 작은 상단이나, 여행을 하는 무리들은 보통 큰 상단이나 

믿을 수 있는 표국이 움직일 때 함께 묻어가는 것이 생명을 오래 보전하는 

길이라 하겠다. 

또한 대 사막을 통과해야 하는 여정이므로 물과 그 외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도 확실하게 챙겨 가는 것이 좋다.

“서둘러라!”

  

인상은 험하지만 표사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통하는 총표두 을국진(乙國震)이 

국주인 을목진을 대신해서 열심히 표사들과 쟁자수들 그리고 짐꾼들을 독려 

하였다. 

사막의 밤은 추웠고, 무엇보다도 모래사막 한 가운데서 노숙을 할 순 

없었다. 

서둘러 가면 반시진 안에 십벽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일단 모래 바람을 막아 주고, 

상당히 큰 샘도 있어서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은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었다. 

  

을국진은 강북 오대 상단 중 하나인 용진회의 부탁으로 상단을 호위하며 

돈황으로 가는 중이었다. 

같은 하남성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용진회와 금룡표국은 아주 가까운 사이

였다. 

특히 용진회의 회주인 진경화와 금룡표국의 국주인 추풍고검(追風古劍)  

을목진(乙木震)은 오랜 친구였다. 

당연히 용진회는 금룡표국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다.

용진회가 천축에서 오래도록 교역을 해온 상인회와 큰 교역이 성사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양측은 돈황에서 만나 큰 상거래를 하기로 약조를 하였다. 

용진회로서는 변방의 상황이 위험했지만, 

이번 일로 얻는 이득이 너무 많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진경화는 평소 믿을 수 있는 금룡표국에 물건의 보호와 

상인의 대표로 가는 자신의 보호를 의뢰하였다. 

이 여정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을목진은 친구의 부탁을 

흔쾌하게 허락하였다.

그리고 표국의 대표인 자신이 직접 나섰고, 

동생이자 표국의 총표두인 을국진이 진두지휘를 맡았다. 

아직 젊은 을국진의 현장 감각은 형인 을목진보다 나은 편이었다.

상단의 규모는 쟁자수와 물건을 나르는 인원이 오십여 명이고, 

용진회 회주인 진경화, 그리고 진경화의 손주인 진성현, 

금룡표국의 국주인 울목진과 총표두인 을국진, 

그리고 표두 열 명과 표사 삼십 명이 동원 되었다.

  

사실상 하남성 제일 표국이라는 금룡표국의 고수들이 총 출동한 셈이었다. 

총 팝십여 명이 넘는 인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예정된 시간 안에 

십벽진에 도착하였다.    

노숙 준비를 끝낸 후, 서서히 음식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새로 고용한 일꾼들이 아주 열심인데.”

  

을목진의 말에 진청화가 웃으면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 보아도 친구의 콧수염은 멋지다. 

벌써 육십이 넘은 나이지만, 젊은 사람 못지않은 굳건한 모습의 그를 보면 

진작 무공을 배우지 못한 게 한이었다. 

바싹 마르고 하얀 머리카락으로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외모의 자신과 

비교하면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아 보였다.

그래서 손자만큼은 일찌감치 소림사로 보내 무공을 익히게 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소림사에 쏟아 부은 돈이 얼마인지 그 조차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만족하고 있네. 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구한 일꾼들이라 믿음직스럽네."

"그런데 나이가 많은 노인들도 몇 있군." 

을목진의 말에 진경화는 몇몇 일꾼들 중에 나이 많은 노인들 몇 사람을 

바라보았다. 

"모두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일세. 그래도 아직 정정하고 경험이 많고 일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짐꾼들을 부리는데 능숙해서 고용하였네." 

"한데 저 노인은 처음 보는군." 

을목진이 말을 하며 키가 작은 백발의 노인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노인은 발까지 절면서 열심히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편 노인 말이군. 육 개월 전,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고용된 사람일세. 

비록 다리를 절고 나이는 많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일세." 

을목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진경화를 보았다. 

말해서 변명하지 않아도 친구의 성격을 잘아는 을목진은 그 노인이 

불쌍해서 거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진경화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에겐 부자가 가지는 사치성이나 오만함이 거의 없었다. 

또한 거둔 것을 뿌릴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어떤 인연으로 노인을 거둔 것인지는 모르지만 진경화의 사람 보는 눈은 

믿을 만 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쓰지 않고 여기까지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경화는 을목진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한테는 억지로 위험한 일에 동참 시킨 듯해서 미안하네. 

하지만, 나로서는 너무도 중요한 일일세.”

  

“그런 말 하지 말게. 덕분에 나도 이번 일로 큰돈을 만질 수 있으니 오히려 

고마워 할 일일세.”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이왕 시작한 것 잘 해보세. 왠지 꼭 잘 될 거란 기분이 드네. 그러니 

걱정 말게.”

“고맙네. 하지만, 요즘 변방이 너무 심상치 않아 참으로 걱정일세. 명군이 

많이 고전하는 모양일세. 또한 마적단의 기세도 대단하다고 들었네. 듣기

로는 명군의 패잔병들이 모여서 마적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군." 

  

진경화의 말에 을국진이 끼어들었다.

  

“경화 형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몽고 토벌군의 대장군직을 

맡은 고화준(高化俊) 장군은 대명 제일의 장군이 아닙니까? 특히 그의 

기개와 충심은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고대성도 

아직 젊지만, 용맹과 무예가 특출하다고 합니다.”

  

“고화준 장군이라면 믿을 만하지. 하지만 말일세. 몽고군에는 광풍사가 

있네.”

  

광풍사란 말에 을목진과 을국진을 물론이고 진경화의 손자인 진성현의 

얼굴마저도 파랗게 질렸다.

  

광풍사는 몽고의 전설이었다. 

원이 망할 때 그들은 지니고 있던 영약과 무림의 고서들을 빼돌렸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최강의 전투 부대를 만들었으니 그들이 바로 

광풍사였다. 

겨우 삼백여 명에 불과한 광풍사의 이름은 대명에게 있어서는 지옥이었다. 

그들이 나타나면 풀 한 포기조차 남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십 년 전 광풍사가 처음 나타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특히 삼백의 광풍사가 일만의 명군을 격파한 일은 그들의 전설 중 한 부분

일 뿐이었다. 

당시에 일만의 명군은 뽑고 뽑은 정예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그들 중 백 명은 활을 귀신같이 쏘는데, 

그 유효 사거리가 무려 백 장에 이른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그들이 쏜 화살은 팔십 장 밖의 바위를 뚫고 나간다는 말도 

있었다. 

어떤 방패로도 방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십만의 군사를 뚫고 들어가 적장을 죽이고 유유히 사라지는 부대가 바로 

광풍사였다.

일반 군사가 아니라, 원의 무공 중 정화만을 골라 터득한 무공의 고수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개개인의 무공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종남파의 장로 중 한 명이 광풍사의 일반 병사와 겨루어서 패했다는 

이야기는 강호에서 조차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였다.

특히 광풍사는 가끔 대상단을 공격해서 그들의 물자를 보급하기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몽고군이기도 하고 마적단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자존심상 작은 상단은 건들지도 않는다.

진경화와 진성현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쳐갔다. 

  

“군의 일은 군에게 맞기면 되는 일일세.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적은 그들이 

아니라, 대사막의 늑대들이라는 마적단일세. 특히 그 중에서도 혈랑대를 

비롯한 삼대 마적단을 만나면 벅찬 상대가 될 것일세." 

진경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걱정 말게.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점을 좀 보았네." 

  

을목진의 호쾌한 말에 모두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 뭐라고 나왔나?”

  

“음, 이번일은 잘 될 거라고 그러더군.”

  

“에이, 사숙님의 말씀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진성현이 뭔가 기대했다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을목진과 진성현은 같은 소림의 속가 제자로 사문이 같았고, 

을목진이 사숙이었다. 

그래서 진성현은 언제나 을목진을 사숙이라고 불렀다. 

진성현을 소림의 몽현대사에게 소개한 것도 을목진이었다. 

  

“어허, 그렇게 쉽게 생각하다니. 그 점쟁이가 말하길, 우린 귀인을 만나 

그로 인해 위험을 해쳐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 점쟁이는 용하기로 유명

한 인물이다.”

  

진성현이 다시 반박을 하려고 할 때였다.

초번을 서던 한 명의 표사가 을목진과 을국진 그리고 진경화 조손이 함께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지나가는 여행자인가 봅니다. 모두 여섯 명의 일행인데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을목진이 거 보란 듯이 말하며, 진성현을 보았다.

  

“그 점장이가 나한테 말하기를 사막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라고 하였으니, 이들이 바로 그 귀인들일 걸세.”

  

을목진이 하도 자신 만만하게 말하자, 을국진과 진경화 조손은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당연히 믿을 리가 없었다.

불안해하는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인지라 그런가 보다 할

뿐이었다.

  

잠시 후, 여자 셋, 남자 세 명의 일행이 말을 몰고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모두 피풍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남자들은 뒤로 젖혀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남자들은 사십 대의 중년인 한 명에 이십대 초반과 중반의 청년이었다.

그들 중에 사십대의 장한이 다가와 포권으로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묘운이라고 합니다. 일이 있어서 사막을 여행하는 중입니다. 잠시 곁에서 

피곤을 풀고 떠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자자, 이리 오십시오. 보아하니 다 같은 중원의 식구들 같은데, 서로 

편하게 지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누가 말하기도 전에 을목진이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타난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을목진이라고 합니다.”

  

을목진이란 말에 묘운이라고 말했던 중년인은 조금 놀란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 나란히 있는 을국진을 본 다음 재차 포권을 하였다.

  

“대사막의 한 가운데서 추풍고검 을목진 대협과, 일의검(日義劍) 을국진 

대협을 함께 만나다니 영광입니다.”

  

을목진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여기서 나를 알아보시는 분이 있을 줄이야. 오히려 제가 영광입니다. 

자, 이리로 앉으시지요.”

  

여자를 대동하고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을 찾아보긴 힘이 든 일이었다.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 여자를 대동하고 사막을 여행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닌 다음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일행이었다.

  

을국진과 진경화 조손은 조금 수상한 눈으로 나타난 일행을 보다가, 

을목진이 먼저 반갑게 맞이하자 어쩔 수 없이 이들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인사를 나누기 위해 피풍의를 벗자, 

아름다운 여자 세 명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묵소정의 미모는 충분히 절색이라 할 만 했고, 

소설은 아직 어리지만, 그녀의 미모는 보는 사람에게 청초함을 느끼게 

하였다. 

소산 또한 상당히 귀여운 얼굴인지라 사막 한 가운데서 그녀들을 보는 

느낌은 상당히 신비함을 느끼게 하였다. 

  

여자들의 모습에 을목진 형제와 진경화 조손은 감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진데, 일반 표두들과 표사들, 그리고 짐꾼들의 표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였다. 

그러나 여자들은 별로 신경을 쓰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운입니다.”

  

“여천악이라고 합니다.”

  

“여소정이라고 합니다.

  

일행이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아운 일행은 상대편 상단이 용진회 임을 

알고 또 다시 놀랐다. 

더군다나 용진회의 회주까지 같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어지간히 큰 거래가 아니면 회주인 그가 직접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다.

사막의 밤은 차가운 기운과 함께 시작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렇게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마침 아운 일행이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 준비가 되었고, 

사막에서는 누리기 힘든 맛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행운까지 누리게 

되었다. 

   

한편 여행자들의 휴식처인 십벽진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 위에 몸을 

파묻고 처량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그가 바로 흑칠랑이었다.

구수한 냄새가 거기까지 흘러 들어온다.

  

“꿀꺽.”

  

침이 넘어간다.

  

‘맛있겠다.’

  

그럼 뭐하겠는가? 

가서 달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품 안에서 딱딱한 육포를 꺼내어 씹자니 마치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썅, 누군 입이고 누군 주둥이냐? 누군 재수 좋아 좋은 일행 만나 만난 

음식 먹고, 누군 모래 위에서 잠을 자며 하늘보고 육포나 씹어야 하다니.’

  

개 같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천하제일살수라는 그 한 마디 때문에 오늘도 꿋꿋하게 참고 있는 

흑칠랑이었다. 

한데 표사 중 한 명이 그가 있는 쪽으로 터벅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육포조차 제대로 씹게 놔두지 않는다.

흑칠랑은 빠르게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잠시 후 표사는 흑칠랑이 있던 곳으로 다가와 잠시 사방을 두리번거린 후, 

참으로 으슥한 곳임을 알고 나자 망설이지 않고 바지춤을 내렸다.

  

쏴아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모래가 축축하게 젖어온다. 

표사는 참으로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흑칠랑이 숨어 있는 모래 위에서.

  

모래 속의 흑칠랑은 너무 기가 막혔다.

하마터면 숨을 멈추고도 오래 동안 버틸 수 있는 귀식대법이 흩어질 

뻔하였다. 

점점 젖어 오는 모래의 습기가 따뜻한 온도로 데워지면서 축축한 기운이 

그의 입과 코로 몰려왔다. 

살수 생활 십수 년에 처음 있는 대 위기였다.

그러나 어쩌랴, 살수의 미덕 중 하나가 참는 것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난 흑칠랑은 결국 눈물이 맺히고 만다.

  

‘씨발, 아운 너 이 새끼 두고 보자, 내가 똥통에 쳐 박아 죽이고 말겠다.’

  

흑칠랑은 이 모든 고난이 아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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