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제11장. 칠랑결정(七浪決定) (26/228)

제11장. 칠랑결정(七浪決定)

- 아운의 약점을 찾아야 한다

연환육영뢰의 엄청난 위력 앞에 벽사단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아운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벽사단의 무사들이 놀라서 굳어지는 순간, 

아운의 신형이 옆으로 아동하면서 사구아의 초식으로 발을 올려 찼다. 

뱀이 공격하여 이빨로 물어뜯는 다는 초식.

주로 상대의 허벅지나 낭심을 공격하는 초식으로, 

위력이 강한 것보다 빠르고 날카롭게 공격하기 좋은 무공이었다.

  

퍽!

“끄악!” 

또 한 명의 벽사단 무사가 낭심이 터진 채 쓰러졌다.

살아도 다시는 여자와 동침하긴 불가능하리라. 

아내가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연인지 몰라도 지금 쓰러진 무사는 이번 여자 사냥에서 가장 혁혁한 

공로를 세웠던 자였다.

공격이 너무 빨라 쓰러지고 나서야 서서히 통증이 온다.

  

“크아악!”

  

그의 비명 소리가 벽사단 무사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서둘러 무기를 들고 다시 대항하려 할 때, 

아운의 신형이 날아오르며 벽사단의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지금까지 치고 빠지던 전법과는 전혀 다른 공격법이었다. 

그의 주먹이 연환육영뢰의 다섯 번째 힘을 쏟아 내었다.

번쩍!

섬광이 일면서 다시 칠팔 명이 비속의 고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인원이 사방으로 퉁겨 날아가는 순간, 

천둥소리가 평야를 집어 삼키듯이 울려 퍼졌다. 

마치 하늘이 포효하는 듯 했다.  

잠시 시간이 멈춘다.

  

아운이 가볍게 호흡을 하고, 한 발을 들어 올렸다.  

마치 교차하듯이 육영뢰의 진기가 단전으로 모여들면서 선풍팔비각을 

위한 진기로 변환하였다.

벽사단의 무사들이 움찔하는 순간, 

아운의 신형이 물로 질퍽한 바닥을 차고 올랐다가 내려오며 발로 공격을 

감행한다. 

선풍비혼차(?風匕魂車)의 초식으로 돌아가는 아운의 발길질에 다시 

세 명의 무사가 머리가 깨진 채 쓰러졌다.

양 옆에서 겁에 질린 채 무의식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던 두 명의 

무사는 아운의 단룡지혼(湍龍指魂)으로 인해 머리에 구멍이 나고 말았다. 

이어지는 아운의 손은 주먹으로 변환하며 비성추혼(批星追魂), 

유운성월(流雲星月)의 초식으로 벽사단 무사들을 뭉개 버린다.  

  

그의 모습은 마치 실체가 없는 그림자 같았다. 

비와 사람 사이를 교묘하게 헤집고 가는 것은 칠성둔형보법이었는데, 

일 보에 주먹은 세 번, 네 번 질러온다.

신묘한 보법은 의기를 상실한 무기들을 그저 들고 있는 쇳덩이로 만들어 

놓았다.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십여 명이 쓰러지고 다섯 명이 전투 불능이 

되어 버렸다.

  

의정풍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미 공포로 인해 전의를 상실한 벽사단의 수하들은 더 이상 무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도망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두 명의 단주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허리가 꺽인 채 바닥에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이 그들의 처량한 모습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미 벽사 쇄혼진을 펼치기엔 늦었다.

어느 순간 벽사단의 무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무사들은 그래도 봐줄 만 했다.

어떤 무사는 땅바닥을 기어 도망가고 있었다. 

무려 백여 명이 죽은 다음이었다.

천둥과 번개 속에 서 있는 아운의 모습은 마치 전신 같아 보인다. 

  

도망가도 소용이 없었다. 

넓은 평야지대에서 어디로 도망을 간단 말인가? 

숨을 곳도 없었다. 

그리고 뛰어 보았자, 번개 앞에서 용쓰는 꼴이였다.

섬전어기풍은 그들이 피하기에 너무 빨랐다.

할 수 없이 덤비면 덤비는 대로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말았다.

  

이각의 시간이 더 지나자, 이미 성한 자들이 없었다.

의정풍이 슬금 거리며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사실 너무 얼이 빠져 도망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도망갈 기회가 없었다. 

그의 앞엔 어느새 아운이 서 있었다.

의정풍은 부르르 몸을 떨며 자신의 주변을 보았다. 

처참했다. 

눈앞에 서 있는 아운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약속 시간이 되었군. 네 놈은 지금부터 지옥을 보게 될 것이다.”

  

의정풍은 몸에 오한이드는 기분이었다.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머리를 쥐어 짠 그의 말은 한 단체의 우두머리가 할 말은 아니었다.

  

“너, 너는 벽사단을 다 죽일 때까지 날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공격할 시간에 도망가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사방에 널부러져 있거나, 땅바닥에 주저 않은 채 거품을 물던 벽사단의 

수하들은 모두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아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숨을 멈추어야 죽은 것이 아니다. 네 눈엔 지금 여기에 있는 네 놈의 

부하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운의 말에 의정풍은 다시 충격을 받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성한 자가 없었다. 

살아남은 백 수십 명의 수하들은 무공이 폐지되었거나, 

최소한 척추 하나는 부러져 있었다. 

운 좋은 사십여 명은 사타구니를 끓어 앉고 바닥에 구르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다시는 남자라 불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성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신을 제하고는.

  

이미 무사가 아닌 무사.

남자가 아닌 남자.

죽은 거와 뭐가 다르겠는가?

의정풍은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멍청한 개자식들. 뭐 벽사단이면 아운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의정풍은 비각의 천주인 모대건과 비각의 각주인 설비향을 욕하고 말았다.

  

“그럼 난 이제부터 약속을 지키지.”

  

“자, 잠깐… 커억!”

  

아운의 주먹이 당황한 의정풍의 입에 들어가 박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빨이 우수수 떨어지고, 

이어지는 사구아의 발길질에 사타구니를 감싸고 쓰러진다.

그 다음부터 무려 이각(삼십 분) 동안 의정풍은 구타를 당해야 했다. 

  

아운이 얼마나 살벌하게 차고 때리는 지, 

지켜보고 있던 벽사단의 수하들은 그대로 오줌을 지린 인물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이 입을 헤 벌리고 비바람을 맞으며 아운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흑칠랑이었다.

아운이 안가를 나오면서부터 그가 뿌려 놓은 천리추종향이 다시 위력을 

발휘하였고, 그는 여기까지 쫓아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운이 단독 행동을 하자, 

호기심에 여기까지 쫒아온 흑칠랑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운이 호연세가의 벽사단과 단신으로 겨루려 하자 흑칠랑은 

머리가 도는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서 쫓아가 아운의 멱살을 잡고 욕을 하고 싶었다.

  

“이, 이런 멍청한 새끼를 보았나. 아니 혼자서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야.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그럴 거면 나하고 겨루어 천하제일살수자리나 

내 놓고 뒈지던지.”

흑칠랑이 혼자서 거칠게 욕을 하며 아운에게 팔뚝질까지 해댔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과 함께 비까지 쏟아진다. 

비로 시야가 좁아지자, 다시 적당한 거리로 접근을 한 후 다시 욕을 

해대었다.

  

“이런 빌어먹을, 저 우라질 망아지 새끼가 완전히 미쳤군. 어디서 맞아 

뒈지기 전에 여기서 살아나면 무조건 도전이다. 이거 비오는 날에 나도 

춤을 춰야 하는 것 아닌가?”

  

흑칠랑은 투덜거리며 빨리 아운이 일 처리를 끝내길 빌었다. 

여차하면 자신도 끼어들어 빨리 정리하고, 

아운과 천하제일살수 자리를 논하겠노라고 아주 굳게 다짐을 했다. 

그렇게 지켜 본 싸움이었다. 

그리고 흑칠랑의 눈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윽고 아운의 연환육영뢰를 보았다.

  

“저, 저게 인간이냐? 우이씨, 이거 뭐 저렇게 강하지? 뭐야! 저 인간 약 

먹은 것 아닌가? 어떻게 저럴 수가…”

  

흑칠랑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운의 엄청난 무위.

눈이 찢어질 만큼 커졌고, 

벌어진 입으로 비가 새어 드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결투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 결과는 흑칠랑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이어서 아운이 의정풍을 구타하는 모습이 보였다.

  

“꿀꺽.”

  

흑칠랑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입속에 들어간 빗물이 함께 넘어갔지만, 그것도 의식을 못한다.

의정풍이 맞을 때마다, 꼭 자기가  맞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그, 그래, 아직 서두를 필요는 없다. 굳이 지금 도전할 필요는 없지. 

아암 그렇고 말고. 조금 더 지켜보고 약점을 찾은 다음에 싸우자.”

  

조금 전에 굳건했던 도전 정신을 너무 쉽게 배신한 흑칠랑이었지만, 

그는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기엔 가슴에 치미는 오한이 너무 춥다.

  

  

  

구타를 멈춘 아운이 벽사단의 수하들과 의정풍을 보면서 웃었다.

  

“이제 저기 있는 여자들이 각 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들은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그때까지 재주껏 감숙을 빠져 나가봐라. 이제부터가 

진짜 지옥이겠군.”

  

아운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후, 의정풍은 살아남은 벽사단의 병신들에게 또 다시 구타를 당해야 

했다. 

화가 난 벽사단의 수하들은 의정풍을 그 자리에 묶어 놓고 여자들이 속한 

부족들이 추적하기 전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차후, 무공이 폐지되거나 불구가 된 벽사단의 수하들은 내내 감숙성의 

소수부족들에게 쫒기고 쫒기다가 겨우 다섯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때부터 권왕의 전설은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아니고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묶여 있던 의정풍은 소수부족들에게 사로잡혔다. 

부족 대표들은 의정풍을 벌판에서 산 채로 말려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당시 피해 부족들은 나무로 아운의 

동상을 만들어 모시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감숙성 남단의 소수부족들을 건드리면, 

번개 신의 저주를 받아 누군가에게 맞아 죽는다는 전설도 이때부터 전해진 

이야기였다.

  

흑칠랑은 그 날 이후부터 불변의 밤을 지내야만 했다. 

눈을 감으면 아운에게 쥐어 터지는 자신의 모습이 보여서, 

기겁을 하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전멸.”

  

설비향의 입이 딱 벌어졌다.

전멸이라니. 

벽사단 전원이 죽었다고 한다. 

이백 명의 벽사단 무사들 중, 겨우 다섯 명만 병신이 되어 살아 돌아왔다는 

말을 들은 비각의 각주 설비향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정보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보를 알게 될수록 충격의 강도는 더욱 강해져 갔다.

무림맹에서 호연란을 보좌하고 있었다. 

호연란이 태상호법인 호연낭과 호연세가로 잠시 돌아온 후, 

그도 역시 호연세가의 비각에 복귀해 있던 참이었다.

한데 그 동안 전혀 종적을 찾을 수 없었던 아운과 묵소정 일행의 소식이 

전해졌다. 

벽사단의 전원이 아운에게 몰살당했다는 소식과 함께.

설비향은 한 동안 충격에서 벋어 날 수 없었다.

그가 짐작하고 있는 아운의 무공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다섯 명으로부터 전투 과정을 모두 들은 설비향이 느낀 

충격은 좀 더 컸다.

  

‘대단히 뛰어난 자다. 벽사단이 벽사 금쇄진을 펼칠 수 없게 만들면서 철저

하게 유린하였다. 무공도 무섭지만 전략 전술에도 뛰어난 인물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행동력과 그 행동력을 받쳐 주는 배짱이다. 대체 이렇게 

뛰어난 인물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지금 알아본 무공 수위만 

해도 어쩌면 호연란 소공녀님과 능히 겨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비향은 잠시 더 아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빠르게 정리가 되었다. 

이제 여자로서 최초로 세가의 소가주가 된 호연란에게 보고를 해야만 했다. 

벽사단의 전멸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모대건이 펄펄 뛰겠군.’

  

속으로 모대건을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수하에게 묻는다.

“지금 소가주님은 어디 계시냐?”

  

“묵가장에서 돌아오시는 중이십니다.” 

  

“출발하신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반 시진 전이라 하였습니다.”

  

비각의 인물 중 그의 심복이 부복하며 대답하였다.

아운과 묵소정 일행이 전혀 흔적 없이 사라지자 호연란은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모대건을 감숙성으로 보낸 후, 자신은 묵가장을 중심으로 

천라지망을 형성한 채 샅샅히 뒤지고 있었던 참이었다.

  

아운이 살수 노릇도 했었다고 했으니, 

소문으로 듣던 안가라는 곳도 있을 테고, 

정말 그렇다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 안가는 묵가장에서  

아무리 멀어도 삼백 리 안이라고 짐작했었다. 

그런데 지금 날아온 비보는 아운 일행이 이미 감숙에 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버젓이 나타나서 벽사단을 몰살시켰다.

  

“으음. 결국 소장주님은 헛고생만 하셨구나. 내가 지금 소장주님에게 

가겠다. 채비를 하라! 그리고 소가주님과 함께 있는 부각주에게 대충의 

사정을 알려서 먼저 보고를 올리게 하라!”

  

“예, 각주님!”

  

수하가 물러서자 설비향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자의 무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갑자기 무공이 높아진 것인가, 

아니면 그 동안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벽사단의 무사들을 전부 

죽일 수 있었는데도 살려두었다. 물론 겨우 다섯 명이고 어쩌면 몰살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확실하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누가 오던 어떤 상황이던 자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경고일까?’

  

설비향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갑자기 아운이 했다던 말이 떠오른다.

천하를 자신의 주먹아래 놓겠다고 했다던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설비향은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마무기는 아직 아운의 무공 실력을 제대로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사마무기를 골탕 먹일 수도 있겠군. 그리고 이 아운이란 자, 지금

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머리가 뛰어난 자다. 이런 자라면 말이 통할 것 같기

도 한데. 호연세가의 봉공으로 회유할 수 없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설비향은 책사답게 벽사단의 전멸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 

새롭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벌써부터 여러 가지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는 역시 타고난 책사였다.

그러나 아직도 아운에 대한 것은 모호하였다.

  

  

“이렇게 대단한 자였다니.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우리를 따돌리고 

감숙성까지 갈 수 있었을까?”

  

호연란은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아무리 세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소수로 천라지망을 펼쳤다지만, 

호남의 패자라 할 수 있는 호연세가의 눈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따돌릴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무공을 전혀 모르는 두 명의 시녀까지 대동하고 말이다.

호연란의 입장에서 보자면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벽사단의 전멸이라니. 

대체 아운의 무공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호연란은 지금까지 아운이란 인물에 대해서 알고 있던 여러 가지 정보가 

모두 뒤죽박죽되는 느낌이었다.

호연란의 앞에 부복해 있던 비각의 부각주가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설 각주의 추측에 따르면, 아운이란 자가 암혼살문의 진전까지 익혔거나, 

그들의 힘을 일부라도 얻지 않았을까? 짐작한답니다.”

  

호연란의 얼굴이 굳어졌다.

  

“삼백 년 전의 그 암혼살문 말인가?”

  

“그렇습니다. 당시 암혼살문의 경우 그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일급 이상의 살수들은 모두 그런 길을 알고 있지만, 암혼살문

의 경우는 아무도 그 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교묘하다고 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여러 가지로 고려했을 때, 그것밖에는 해답이 없다고 했습니다. 현세

에는 호남성의 지리를 호연세가보다 더 잘 아는 자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을 한 비각주도 실제 그러기는 상당히 희박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혹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상은 해 두는 것이 좋을 거란 당부였습니다.”

  

호연란은 조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삼백 년 전의 살수문이라니. 

대체 그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나 그녀는 비각의 각주인 설비향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런 짐작을 한다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일단 감안은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호연란은 그 암혼살문이 자신의 호연세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울러 아운이 자신의 코를 주저앉게 만든 장본인임도 아직은 모른다. 

둘의 관계는 이렇게 다시 얽히고 있었다.

  

“그리고…”

  

부각주가 다시 말을 꺼내자 호연란이 그를 바라본다.

  

“이 아운이란 자를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세가로 끌어 들일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를 세가의 사람으로 만들려면, 

아무래도 소가주님께서 직접 움직이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설 각주가 직접 와서 의논을 한다고 했습니다.”   

  

“나더러 미인계를 쓰란 말인가?”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알았다. 나중에 각주랑 이야기해보지.”

  

호연란은 정말 아운이란 자가 탐이 나긴 했다. 

하지만 벽사단의 전멸과 함께 지금까지 헛수고를 한 걸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개자식, 호연세가의 사람으로 만들더라도 그냥은 아니다. 반 죽여서 개처럼 

길 들여 주마.’

  

호연란이 이를 갈았다.

한데 이렇게 독이 오른 호연란에게 다가오는 인물이 있었다. 

마침 그 장소에는 호연란과 부 각주만 있었고, 호연세가의 태상호법이자, 

철마녀란 이름으로 악명이 높았던 호연낭은 잠시 다른 곳에 가 있었던 

참이었다. 

호연란의 무공을 모르는 파락호가 본다면 군침 흘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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