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 제9장. 호연세가(呼延世家) (24/228)

제9장. 호연세가(呼延世家)

-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다

아운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몇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었지만, 

우선 두 남매를 노리는 무리의 수뇌가 맹주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운은 불안한 시선으로 아운을 보았다.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 나면 아운이 이번의 청부를 거절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운은 묵묵히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록 사라신교가 한 짓은 용서 받을 수 없지만, 저 두 남매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난 운 공자를 믿고 내가 추측할 수 있는 모든 진실을 

말했습니다.”

  

아운이 정운을 돌아보았다.

  

“난 약속은 지킵니다.”

  

정운이 두 손을 모아 포권의 자세를 취하였다.

  

“운 공자님께 두 남매를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내가 아니라 소설에게 하십시오. 난 소설의 청부를 이행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운이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히며 포권을 취하였다. 

아운은 허리를 틀어 정운의 인사를 피하며 물었다.  

  

“혹시 맹주가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맹주가 아니라 그의 충신 중에 이 일을 아는  

자가 있어서, 맹주 몰래 일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맹주가 그 자리를 

내 놓으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질 인물이거나, 소위 과잉충성이란 말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죽여야 하지만, 맹주가 차마 실행을 못하고 고민할 경우 그의 수하 중 

누군가가 주인 대신 일을 진행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주인에 대한 과잉 충성일 수도 있고, 

자신의 주인이 맹주의 자리에 있어야만 자신의 자리도 보전할 수 있기에 

행한 일일수도 있었다.

정운은 아운이 하는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렇다면 맹주의 친아들이자 무림맹의 부맹주인 신창 조원의 밖에 없소.”

  

“결국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다 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일 처리 하는 

능력으로 보아, 이 일을 진행하는 것은 무림맹의 그 유명한 와룡 

사마무기 겠군.”

  

아운은 단정하듯이 말했다.      

이번엔 정운이 아운을 바라보았다.

하나를 말하면 그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헤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이 한 두 마디 했을 때 모든 것을 다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자신의 말은 확인 절차 정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정운의 느낌이었다.

  

‘정말 무서운 자다. 이 자의 적이 된 자는 정말 불행한 자가 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세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물이다. 머리 쓰는 것으로 

세상을 우습게 아는 와룡에게 천적일지도 모른다.’

  

머리를 쓴다는 것은 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먹혀야 한다. 

한데 아운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인물들은 정말 상대하기 힘든 

존재라 하겠다. 

특히 거기에 머리까지 좋다면.

어디로 어떻게 튈지 전혀 예측이 안 된다.   

  

“이제부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제일 먼저 감숙의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와 싸워야 하고, 두 번째는 사막에 존재하는 알 수 없는 미지

의 적과 싸워야 합니다. 세 번째는 진주 언가와 싸워야 하고, 네 번째는 

오절과 삼귀, 그리고 마지막엔 사마무기의 숨겨둔 패를 맞이해야만 

합니다.”

  

정운은 아운을 보았다.

다른 것은 다 이해를 하였다.  

그러나 사막에 존재하는 미지의 적은 무엇이고, 

진주 언가는 왜 갑자기 언급 되는가? 

그리고 사마무기의 마지막 패는 무슨 뜻인가? 

정운의 의문을 알았는지 아운이 설명을 해주었다.

  

“사마무기 정도라면 사막에 자신과 끊이 닫는 또 다른 세력이 있을 

겁니다. 사라신교가 돈황 어디쯤에 있다면,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비밀 세력이 있을 겁니다. 사마무기는 그들을 이용해서 우리의 

앞길을 막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언가가 나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오절이나 삼귀가 성공하지 못했을 때를 감안해 그들을 이용

하려 했을 겁니다. 또한 이번 일의 중요도를 감안했을 때, 사마무기 

정도의 머리라면 모든 것이 실패 했을 때를 대비해서 최후의 패를 

준비해 놓았을 것입니다.”

  

아운의 추리에 정운은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맹주나 무림맹의 누군가가 이 일에 관여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추진하는 자가 사마무기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도 추리에 불과합니다.”

  

아운이 정운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에게 그 이야기를 할 땐 어느 정도 직감이 있었기에 한 말이 아닙니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대비는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겁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일단 우리가 사라신교로 갈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조가 부자뿐이니, 삼귀나 오절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그것으로 증명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모든 것을 가리기 위해 전혀 새로운 적을 맞이할지도 

모르고.”

  

아운의 말에 정운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묵소정 남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던 아운이 걸음을 

멈추었다. 

  

“벌써 시작인가?”

  

정운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아무래도 꽤 많은 것 같은데. 빨리 갑시다.”

  

아운의 번개처럼 일행이 있는 곳으로 사라지자, 

정운이 빠르게 그 뒤를 쫓았다.  

  

아운과 정운이 도착했을 때, 

묵천악 남매와 소설, 소산은 간단하게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설과 소산은 아운이 나타나자 반가운 마음으로 다가서다, 

다급해 하는 정운을 보고 멈추어 섰다.

묵천악, 묵소정 남매와 함께 있는 것이 소설과 소산에게는 상당히 어색한 

일이었다.  

괜히 서로 눈치 보다가 아운이 오자 얼른 일어서서 마중을 하려 했었던 

것이었다.

  

“모두 일어서서 한 쪽으로 모이도록.”

  

아운의 말에 묵소정 남매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세를 눈치 채고, 

서둘러 한쪽으로 선 다음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어 들었다. 

소설과 소산은 아운의 뒤쪽으로 이동해서 서로 손을 꼭 잡고 있다.

잠시 후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약 백여 명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감숙성이란 곳이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운과 그 일행은 섬서성의 비단길을 거쳐서 감숙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험로인 사천성을 거쳐 감숙으로 들어왔기에 실상 지금 아운이나 묵소정 

남매가 있는 곳은 난주로 가는 길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곳이었다.

당연히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산적일 가능성도 별로 없었다.   

산적이든 마적이든 사람이 있어야 장사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감숙성 남쪽에 분포한 소수민족들의 마을을 습격하고 다니는 

마적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타난 무리들을 보고 아운은 한숨을 쉬고 말았다. 

손에 검 대신 몽둥이를 들었고, 어떤 사람은 농기구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라면 그들의 눈에 가득한 적개심이었다.

또한 그들은 약 세 네 곳의 소수민족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나이도 백발의 노인부터 이제 십삼사 세나 되었을 것 같은 어린아이까지 

다양했다.

  

“무슨 일인가 있었군. 그것도 우리와 같은 중원인과 관련해서.”

  

아운이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나타난 무리들은 막상 다가와서 여자들이 셋이나 있는 것을 보고 서로 

무엇인가 수군거렸다.  

아운과 정운은 그들을 지켜만 보았다. 

무엇인가 사연이 있어 보였고,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이라 별로 

위협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자신들에게 보여주는 적개심은 정도가 지나쳤다. 

일행 중 노인이 뭐라고 하자 젊은 청년들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갑자기 아운과 정운에게 달려들었다. 

  

말을 타고 달려오며 몽둥이로 아운을 치려고 하자, 

아운의 손이 반원을 그리고 앞으로 나갔다.

순간 맨 앞에 있던 청년의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으며, 

어느새 그 청년은 아운의 손에 잡혀 버렸다. 

주인을 잃은 말만 앞으로 달려 나가다가 멈추어 서서 멀뚱거린다.

  

“공격하지 말고 제 자리에 있으시오.”

  

아운이 나직하게 정운과 묵가 남매에게 말하고 그대로 몸을 날려 

서너 명의 청년들을 바닥에 처박았다. 

가벼운 동작과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몸놀림.

그리고 유연한 동작까지.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아운의 실력에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그들뿐이 아니라 정운과 묵가 남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아운이 보여준 간단한 동작에서 아운의 실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었다. 

묵천악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언제고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 보니 그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타난 일행들은 감히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을 못하고 아운을 보았다. 

아운은 잡고 있던 청년을 그들의 앞으로 가볍게 던져 버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던져진 청년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운이 이들에게 악 감정이 없다고 표시는 한 셈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의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나는 융족의 족장 아르다르라고 한다. 너희는 어디서 오는 무리인가?”

  

상당히 서툴지만 한어였다.

  

“우리는 사천성을 거쳐 난주로 가는 중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우리를 공격한 것입니까?”

  

노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눈에 떠 오른 것은 살기였다.

  

“우리 마을이 중원인들에게 공격을 당했다. 부녀자들이 납치 되어 겁탈 

당했고, 그 중 일부는 죽어서 돌아왔다.”

  

“중원인?”

  

아운과 정운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적개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와는 관련이 없다. 알다시피 여기 있는 여자들은 전부 중원인이다. 

일행 중에 여자가 셋이나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정운의 말에 노인은 그 말을 수긍하는 눈치였다.

사실 그들도 아운 일행이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자들이 아님은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단지 중원인이라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화를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만큼 당한 것이 많다는 뜻이리라. 

  

“여기를 떠나라! 우리는 너희 한인을 반기지 않는다.”

  

아운의 눈에 차가운 한광이 어렸다.

노인은 마치 날카로운 비수가 자신의 눈을 뚫고 들어오는 착각을 느꼈다. 

그의 노련한 경험이 위험 신호를 보낸다. 

눈앞의 젊은 한인은 위험인물이었다. 

여기서 그를 더 자극한다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거란 느낌이었다.

  

“가자.”

  

노인은 그 한 마디를 던지고 돌아서서 말을 몰았다. 

다른 사람들은 사나운 모습으로 아운과 일행을 노려보고 노인의 뒤를 

쫓아 사라져 갔다.

아운은 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대체 누가 그랬을까요?”

  

정운이 혼자말로 중얼거리듯이 아운에게 물었다. 

무의식적으로 물었지만, 정운은 아운이 무엇인가 짐작하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를 기다리던 자들일 것입니다.”

  

아운은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삼귀나 오절이?”

  

아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심성이 나쁜 자들은 아닙니다.”

  

“칠흉 중에 삼귀에요.”

  

묵소정이 아운의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떠들지 마라! 삼귀가 과거에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그들이라면 최소 부녀자들을 납치해서 강간하고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왔던 자들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한두 명이 한 짓은 아니다.”

  

아운의 말에 묵소정은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운의 단호함에 입을 닫고 말았다. 

대신 정운이 묻는다.

  

“운 공자, 짐작 가는 자들이라도 있습니까?”

  

“정 선배님은 묵씨 남매를 잡아가려고 했던 자들을 기억합니까?”

  

정운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들이거나 그들과 관련 있는 자의 짓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들은 우리가 감숙으로 가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묵씨 남매가 맹주와 관련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것을 알았다면, 당연히 사라신교를 생각하고, 

우리가 감숙으로 올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리 길목을 

지키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숨어 있던 시간과 오는데 걸린 시간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상당

기간 와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 수십 일 동안 

얌전히 앉아서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은 좀 힘든 일이지요. 그리고 이곳은 

오지라 어디에 가서 무엇을 즐길 만한 곳도 없습니다.”

  

이치적으로 아운의 말이 맞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의문은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요란하게 일 처리를 해서 우리가 알게 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운의 물음에 아운은 웃었다.

실제로 아운 일행이 노인과 그 일행을 마주친 것은 이 넓은 감숙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건을 일으키는데 그런 것까지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운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지만, 

실제 중원의 한인들은 변방의 이족들을 무시하고 우습게 알았다. 

그들을 죽이고 약탈하는 일에 큰 도덕적 상처를 입진 않았을 것이고, 

오랜 기다림으로 약간 해이해진 면도 있었을 것이다.

혈기 왕성한 남자들에게 성욕은 아주 중요한 욕구였다. 

이런 오지에서 여자를 구할 방법이라곤 납치와 약탈밖에 더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힘도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지 아운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몰랐는데, 이젠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정운이 아운을 보았다.

  

“미리 알면,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분통을 참지 못할 것 같아, 애써 알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 서 기다리고 있다면, 이젠 

누구인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운의 말에 정운은 의문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들이 누구인 줄 알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지금 무림맹주가 하야 한다면 그 자리에 오를 가장 강력한 

후보가 누구인 줄 알면 됩니다.”

  

아운의 말에 정운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림맹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 주십시오.”

  

아운의 물음에 정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무림맹에서 맹주가 하야 할 경우 가장 강력한 차기 맹주는 신주

오기 중 셋입니다. 그 중 세력적인 면에서 보면 호연세가의 전대 노가주인 

참마도(斬魔刀) 호연각((呼延角)입니다.”

  

“호연각, 호연씨란 말이죠.”

  

아운의 눈이 사납게 변하였다.

정운이 움찔거린다.

  

“호남성의 호연세가는 무림 오대세가 중에서도 가장 무섭고 가장 세력이 

강한 곳입니다.”

  

“호남성이라…”

  

아운의 입가에 고소가 걸린다.

한 명의 계집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지독하게 예쁘고, 독한 계집. 

무공을 완성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 상대역으로 쓰고, 

나중엔 상대를 죽이는 것에 전혀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던 계집. 

세 명의 사부에게 독을 사용했던 호연성의 후예라고 생각되었기에 

호연세가라고 하자 자연스럽게 떠 오른 기억이었다.

  

‘코 평수가 좀 늘고, 코뼈가 약간 주저앉았겠지.’

  

그 때를 생각하던 아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선 그가 알고 있는 무림 오대세가 중에 호연세가가 없었다. 

만약 무림 오대세가 정도 되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천하제일세가라니.

그가 아는 천하제일세가는 따로 있었다.

  

“호남성엔 오대세가 중 이 위에 해당하던 모용세가가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천하제일세가는 산동의 북궁세가 아닙니까?”

  

정운은 아운의 말을 듣고 아운이 무림에 출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오 년 전입니다. 모용세가는 돌연 호연씨로 성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삼백 년 전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모용씨로 성을 바꾸고 

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본래의 성을 찾아 모용씨가 

아니라 호연씨로 돌아온다고 선포를 하였었습니다. 그래서 호남모용세가가 

호연세가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제 성을 찾은 이후 호연세가는 무섭게 

성장하여, 지금은 북궁세가를 제치고 제일 세가의 위치까지 올라왔습니다.”

  

아운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본래 성인 호연씨로 돌아온 것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계집의 무공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연세가에 내 나이 또래의 계집이 한 명 있지요.”

  

“호연란 말입니까? 남란이라면 무림맹의 이화, 이룡 중 한 명으로 무림에서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룡, 이화.”

  

“북매 북궁연과 남란으로 불리는 호연란, 그리고 와룡 사마무기와 흑룡 

조철양을 일컬어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강호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을 일컬어 무림십영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그들과는 격이 다른 사람들

입니다. 무림인들이 말하길, 이화와 흑룡의 무공은 이미 나이 백 살이 넘은, 

쌍절과 오기, 그리고 칠사를 빼고는 당적할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 중 

와룡은 무공보다는 책사로서 그 이름이 높습니다.”

  

아운은 북궁연이란 이름이 나오자 아련함을 그리고 호연란이란 이름이 

나오자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가슴속에서 삭인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나이가 내년이면 삼십이 되겠구나.’

  

북궁연을 생각하던 아운은 문득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약혼자로서 그녀에게 너무 못할 짓을 한 것 같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그래도 이화 중 한 명이니 제법 이쁘긴 할 것 같았다.

  

‘호연란 그 계집과 비교해서 누가 더 이쁠까?’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빨리 일을 마치고 북경으로 돌아가야 하겠다.’

  

결심을 한 아운은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호연세가의 인물들일 가능성이 가장 많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호연세가 자체가 워낙 신비한 구석도 많고, 

욕심도 많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엉뚱한 말에 뜻을 몰라 모두 아운을 본다.

아운의 입가에 고소가 걸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당히 가슴 차갑게 하는 웃음이었다. 

마치 누군가를 비웃는 듯하기도 하고 어떤 결심을 했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서 이삼 일 더 노숙을 해야겠습니다.”

  

“여기서 말입니까? 그들을 빨리 피해는 것이 아니고…”

  

“피하다니요. 여기까지 와서 내 수고를 덜어 주었는데, 그 보답은 아주 

착실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운 공자, 어쩌려고 하는 겁니까?”

  

“한인을 욕먹게 하였고, 함부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평화로운 가족을 파괴

하고 부녀자를 욕 보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간살 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세상에 살아서 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는 하늘이 자신의 의무를 포기한 

셈이죠. 그렇다면 사람이 그 의무를 대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호연세가라면 절대 그냥 놔둘 수 없다.’

  

이는 아운의 결심이었다. 

지금도 호연란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그리고 그때 아운이 스스로 한 결심이 있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운은 그들이 호연세가 일거라고 직감했다. 

아운의 속마음이 어떻든, 패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말이었다.

이럴 땐 무엇인가 대협 같은 냄새가 난다.

소설과 소정은 서로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설, 아저씨 너무 멋있다.”

  

“원래부터 멋있었어, 바보야!”

  

소설이 뭔가 뻐기는 투로 말했다. 

먼저 알았고, 조금 더 가까운 사이임을 확실히 하는 말투였다.

그렇게 두 소녀의 눈엔 별이 내려와 앉아 있었다.

그러나 두 소녀와는 달리 정운과 묵소정 남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대체 뭘 믿고 저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의 죽다 시피하여 도망친 것이 불과 삼, 사 개월 전이었다. 

만약 지금 상대하려는 자들이 정말 그때의 그 무리들이라면 부단주 

한 명만 해도 아운이 겨우 이겼었다. 

그런데 지금 홀로 그들을 벌주겠다고 하니 정운과 묵소정 남매가 듣기에는 

제 정신에서 나온 말로 들리지 않았다. 

물론 그 동안 아운이 열심히 무공을 수련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삼, 사 개월 사이에 무공이 얼마나 발전을 하였겠는가? 

물론 나름대로 발전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발전이란 것은 상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 시간에 얼마나 발전하였겠는가? 

그것이 정운이나 묵소정, 묵천악의 생각이었다.

  

‘미친놈, 죽으려고 칼을 입에 물고 업어지는구나.’

  

묵천악은 속으로 욕을 한다.

그리고 정말 그들이라면 어차피 자신들을 해치려고 하는 자들도 아닌데, 

굳이 적으로 돌려놓을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까짓 오랑캐들이 죽던 말던 상관 안하면 그만 아닌가? 

왜 목숨을 걸고 적을 만들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거야 당연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운이 아니다.

아운은 누가 뭐라던 이미 결심을 굳혔고, 

그가 결심을 굳혔다면 이미 돌이키기엔 많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놈들, 제대로 문질러 주마.’

  

아운의 눈에 차갑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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