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무극신공(無極神功)
- 소산을 지켜 주세요!
“소설, 너무 걱정하지 마. 아저씨는 곧 원하는 것을 얻고 일어서실 거야!”
“그렇지만 벌써 사십육 일째 아무것도 안 드셨다고.”
“계집애야, 넌 정운 아저씨가 하는 소리도 못 들었냐? 무공을 익힌 분들은
그 정도 굶으면서 무공을 수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잖아. 우선 곡기를
끊고 배를 허하게 하여, 기를 몸 안으로 유입한다고 했잖아. 그러니 너무
걱정 하지마.”
“그래두…”
걱정스러워 하는 소설을 보면서 소산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계집애, 그러니까 꼭 아저씨 애인 같네.”
소산의 농담에 소설의 얼굴엔 붉은 노을이 은은하게 번진다.
“계집애가 농담을 해도…”
“호호, 싫진 않은가 보내.”
소산의 웃음소리에 소설은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리며 숨이 가파르게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소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조절할 때였다.
“재미들 있나 보군.”
소설과 소산이 놀라서 자리에 일어나며 급작스럽게 나타난 묵천악을
보았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오늘따라 유난히 불안해 보였다.
“소산, 나를 따라 오너라!”
“예, 공자님.”
소산은 공손하게 대답하고 일어섰다.
“소설은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거라!”
“예, 공자님.”
묵천악이 걸어 나가자 소산이 급히 그 뒤를 따라 나섰다.
소설은 무엇인가 불안한 감정이 솟아났다.
묵천악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갑자기 생각났고,
그의 끈적한 눈이 소설의 기억에 새롭게 떠오른다.
마침 묵천악이 대나무로 만든 초가의 문을 나설 때,
묵소정이 들어오며 마주 쳤다.
“소산을 데리고 어디를 가느냐?”
묵소정의 말에 묵천악은 굳이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누님, 당분간 소산을 제가 데리고 있게 해 주십시오.”
그의 말에 소설과 소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보가 아닌 다음에 누가 모르랴.
소산은 겁에 질린 얼굴로 묵소정을 보았다.
지금 그녀를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그녀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묵소정은 소산과 묵천악을 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동생을 잘 아는 그녀였다.
묵천악이 지금까지 참은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다른 일로 말썽을 부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것이 나을 듯도
싶었다.
“아, 아가씨. 전 아가씨 곁에 있고 싶습니다.”
소산이 묵소정을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묵소정의 표정이 냉정해졌다.
“소산, 너는 내 동생이 싫은 것이냐? 차후 네가 천악의 첩실이 된다면
지금 보다는 여러모로 나아질 수 있다.”
묵소정의 말에 소산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묵천악은 묵소정이 자신의 뜻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자 입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입가로 침이 흐르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흐흐, 너무 걱정 말아라! 너는 내가 앞으로 잘 대해 줄 것이다.”
소산은 물론이고 소설마저 묵천악의 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묵가장의 시녀들 중에 묵소정의 시녀가 둘이었고,
묵천악의 시녀가 셋이나 있었다.
처음 두 명이었던 시녀들은 이미 묵천악의 노리개가 된지 오래였었고,
묵가장의 하인들 중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시녀로 들어온 유란이란 소녀는 묵천악에게 반항했다가 어느 날
묵가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걸로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지만, 묵천악을 섬겼던 또 다른 시녀들의
말대로라면 유란은 묵천악에게 유린당하고 죽었을 것이라 했었다.
“공자님, 저 같이 미천한 것이 어찌 공자님의 첩이 될 수 있겠습니까?
공자님의 이름에 누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전 아직 너무 어립니다.”
소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 네가 나를 거부하는 것이냐?”
묵천악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소산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너는 여자를 어찌 그리 험하게 다루느냐, 잘 달래서 데려 가거라!”
묵소정의 나무라는 소리에 묵천악은 무안한 표정이 되어 소산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흠, 나를 따라 오너라! 너를 귀히 여길 것을 내 약속하마.”
묵천악은 소산의 대답을 듣지 않고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소산아.”
소설이 소산을 부르며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자 소산은 힘없는 눈으로
소설을 본 후 묵천악의 뒤를 쫒았다.
그것이 시녀인 소설과 소산의 현실이었다.
이윽고 소산이 문 밖으로 나가자, 소설은 묵소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공녀님, 저와 소산은 지금까지 아가씨를 모시는데,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소산을 도와주세요.”
소설의 애원을 들은 묵소정의 눈빛이 냉정해졌다.
“네 말은 마치 내 동생이 소산을 해칠 것처럼 말을 하는구나. 사실 소산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분 상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냐? 만약 이대로
소산이 어른이 된다면 나중에 하인과 결혼해서 그 자식까지 다시 하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천악이의 첩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사실 묵소정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과 소산은 하녀로 살면서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며 살았던
처지였다.
나이가 어리지만 나이답지 않게 알 것은 어느 정도 다 알고 있었다.
묵천악의 성격에 대해서도 잘 아는 편이었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소산은 그저 노리개일 뿐이다.
데리고 놀다가 싫증나면 그걸로 끝이란 걸 어느 정도 눈치로 알고 있었다.
묵소정 역시 동생의 성격을 잘 아는 편이지만, 자신의 동생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녀는 그래도 동생을 그렇게까지 나쁘게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또한 자신의 동생이 아무리 죽일 놈이라고 해도 자신의 시녀에게서 동생에
대한 좋지 않은 느낌을 보았다면 기분 좋을 리가 없었다.
소설은 울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문득 돌아가신 옛 주인이 생각났다.
묵소정의 어머니는 정이 많고 다정다감한 편이었다.
비록 자식들에 대한 편애가 심하긴 했지만,
소설과 소산에게도 더 없이 다정하게 잘해 주었었다.
죽을 때, 묵소정을 자신과 같이 섬겨 달라고 하던 부탁을 그녀는 잊을 수
없었다.
겨우 열한 살의 시녀에게까지 일일이 부탁하면서 묵소정과 묵천악을
바라보고 서럽게 울던 모습은,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었다.
험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정이란 것을 느끼게 해 주신 분의 부탁이었기에,
그녀와 소산은 마음속의 그 약속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소산에게 너무도 가혹한 시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소설로서는 그 동안 자신에게 향하던 묵천악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소산 뿐이 아니라 자신 또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언제 무슨 일이 있던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친구였다.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소공녀님.”
“이 일은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라! 너는 혹시 네가 아니라 소산이 선택
되었기에 질투하는 것이 아니냐?”
묵소정의 한 마디에 소설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주제가 넘었습니다. 편안하게 쉬십시오.
전 이만 아침 준비를 하겠습니다.”
소설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 다음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초가에서 조금 멀어지지 대나무 밭을 향해 전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묵소정은 밖으로 나가는 소설의 등을 보면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자신 또한 동생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성격도 잘 아는지라 나중에라도 소산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묵천악의 성격으로 보아 어차피 자신이 찍은 소산과 소설을 어떤
수를 써서도 그냥 두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지금 정식으로 허락을 하고 소산을 위해 첩으로 삼을 수
있게 자신이 중재 역할을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한데 무엇인가 그녀의 가슴을 불안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잠시 그게 무얼까 생각하던 묵소정의 놀라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소설이 없었다.
묵소정은 자신의 불안해하던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 정운이 집 앞에 있다가 그녀를 본다.
“소설은 어디 있죠?”
“운 공자에게 가는 것 같았습니다.”
“정 아저씨, 저를 쫓아오세요.”
묵소정이 급하게 말하며 대나무 밭이 있는 곳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정운이 놀라서 그 뒤를 따른다.
“후우”
대나무 밭 안에서 걸어 나온 아운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다가 마침 달려오던
소설을 보았다.
소설이 놀라서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아저씨.”
그녀는 내내 불안해하던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반가 와서 그만 눈에 물기가 어린다.
점점 집요해지는 묵천악의 시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녀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에, 언제나 불안한 하루하루였었다.
묵소정조차 묵천악의 눈빛을 이해한다는 눈치였기에 그녀가 가지는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녀인 그녀로서는 묵천악이 접근한다면 그 접근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아니라 소산에게 그 불행이 닥쳐왔다.
그리고 소산이 묵천악에게 끌려가자 소설은 아운을 생각했다.
묵소정이 아니라면 지금 그녀를 도울 사람은 아운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묵소정을 곁을 빠져 나오자마자 아운에게 달려온 것이다.
“무슨 일이냐?”
“아저씨, 소산을 지켜 주세요.”
“소산, 네 친구 말이냐?”
소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운은 소설의 표정과 몇 마디 말로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묵천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의 시선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행동도 없었고, 소설과 소산은 묵가장의 시녀였다.
주인이 시녀를 어떻게 하던 타인이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비록 어느 정도 몰락하긴 했지만, 북경 명가의 자식이었기에 그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운이였다.
실제 묵천악의 행동을 제제할 수 있는 어떤 대의명분이 없었다.
관습과 법으로 따지면 그랬다.
“가자.”
아운은 한 손으로 소설을 껴 앉고 몸을 날렸다.
무극진기가 그의 청력과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리고 있었다.
아운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불괴수라기공이 만들어 준 살수의 감각과 무극진기의 초감각으로 묵천악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묵소정과 정운은 아운이 소설을 안고 몸을 날리는 것을 보자 급히 그의
궤적을 쫓아 몸을 날렸다.
묵천악이 소산을 데리고 간 곳은 연못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나무
뒤쪽이었다.
안가를 둘러싼 절진이 시작되기 전의 숲 안쪽에 있는 작은 공터인데,
꽃과 나무로 적당히 시야가 가려졌고,
바닥은 작고 부드러운 풀들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작업하기 닥 좋은 장소다.
묵천악은 서슴없이 나무 밑에서 대나무 잎으로 역은 커다란 자리를 꺼내어
펼치자 나름대로 멋진 요가 되었다.
이미 때를 기다리며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를 해 놓았던 모양이었다.
묵천악은 나뭇잎 요를 가리키며 소산을 보았다.
“이리 앉거라!”
제법 점잖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고, 공자님!”
“뭐하느냐?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어서 앉거라!”
소산이 주춤거리며 한 귀퉁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묵천악은 슬며시 그녀를 보았다.
소산의 등 너머로 보이는 초록의 나무 이파리가,
그녀의 싱싱한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꿀꺽.”
묵천악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리 오너라!”
묵천악의 명령에 소산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무 가지를 기어가던 송충이가 옷 안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이리 오란 말이 안 들리느냐?”
소산이 고개를 들었다.
평소 시녀들 중에서도 당차기로 유명했던 그녀였지만,
주인이자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묵천악 앞에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된 묵천악의 강압된 말에 소산은 가슴을 치밀어 오르는
반발심을 느꼈다.
“소공자님.”
소산이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묵천악을 보며 무슨 말인가 하려 한다.
“너무 감격할 것 없다. 이제부터라도 네가 나를 잘만 섬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묵천악은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표정이었고,
소산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자고로 남자란 인간들은 보통 여자의 뜻을 제 멋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묵천악이 소산에게 다가섰다.
숨이 막힌다.
묵천악이 소산의 손을 잡자, 소산은 놀라며 손을 빼려고 하였다.
묵천악이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준다.
“공자님, 저 같이 천한 것을 건드려서 어쩌시려고 하십니까?”
“무슨 소리냐?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하고 같이 자는 순간 너는
더 이상 천하지 않다. 네가 나의 첩실이 된다면 누구도 너를 천하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시녀로 차 심부름 따윈 안 해도 된다.”
“전 그냥 시녀가 좋습니다. 절 이대로 놔두시면 안 되는지요?”
소산이 묵천악을 보면서 제법 또렷하게 말했다.
묵천악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제서야 묵천악은 소산이 자신의 여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수치심과 분노가 그의 얼굴을 붉게 변화 시켰다.
시녀가 주인의 수청을 거절하고 살아남은 예가 거의 없었다.
아니 시녀 따위가 주인의 청을 거절한 예조차 있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묵천악이었다.
더군다나 묵천악은 나름대로 반듯한 외모에 문무를 겸비하여 여자들에게
상당히 많은 인기를 구가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자가 일개 시녀에게 거부를 당했으니,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이미 가문이 멸문하여 남은 거라고는 바로 두 시녀 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미 잊었다.
“이런 천한 계집이, 제 주제를 모르고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묵천악은 광폭한 눈으로 소산을 노려보았다.
소산이 두려움에 몸을 떨며 뒤로 주춤거리고 물러서자,
그는 한 순간에 그녀의 마혈을 짚어 버렸다.
소산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이 천한 계집아! 나는 너를 살리기 위해 죽음과 사투를 하면서 여기까지
업고 왔다. 그런데 그 은혜도 모르고 감히 날 거부해. 천한 노예 계집이
감히 나를 거부하다니, 네 년은 정말 죽고 싶은 게로구나. 네 년을 내
노리개로 삼아 데리고 놀다가 사창가에 팔아넘기고 말겠다.”
묵천악은 거의 일순간에 소산의 옷을 벗겨 내렸다.
그 손놀림은 능해 초절정을 넘어선 경지였다.
“살려 주세요. 소공자님. 제발 절 그냥 놔둬 주세요.”
소산이 울면서 묵천악에게 애원을 했지만,
그것은 묵천악의 흉성에 불을 지른 결과밖에 안 됐다.
“이, 개 같은 년 감히 나를 거절하다니.”
묵천악이 흥분해서 말하며 이미 상체가 완전히 벗겨진 소산을 안으려고
하였다.
“개 같은 놈은 너지.”
차가운 목소리에 묵천악이 놀라서 행동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아운과 소설이 그의 뒤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수치심, 그리고 무안함.
그 다음에 밀려오는 자격지심과 당황함으로 묵천악은 감정이 더욱
격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아운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을 가지고 있던 묵천악은
자신의 일을 방해한 아운이 더 없이 싫어졌다.
“당신은 보표일 뿐이다. 내 일에 관여하지 마라! 소산은 우리 묵가의
시녀일 뿐이다.”
묵천악은 애써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히 소산은 묵가의 시녀였다.
자신의 시녀를 어떻게 하던 그것을 남이 뭐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네 누나도 알고 있는 짓이냐?”
아운은 묵천악의 말을 묵살하고 물었다.
마침 정운과 묵소정이 그 자리에 도착하였다.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친 두 사람은 도착하면서 마침 묵천악과 아운의
말을 들었다.
“제가 허락한 일입니다. 이 일은 묵가장의 일이니 운 공자님은 빠져
주셨으면 합니다.”
아운은 차가운 눈으로 묵소정을 보았다.
분명히 묵소정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소설은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소산은 그저 울기만 한다.
상의가 벗겨진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물에 빠진 작은 새 한 마리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채 익지도 않은 가슴이 그녀의 가쁜 숨을 따라 작게 움직인다.
아운은 천천히 소산과 묵천악 그리고 묵소정을 보았다.
두 남매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아운이 무슨 말을 하던 그들은 대꾸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
사회규범상으로 그들에게 하자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묵소정은 말로 한다면 얼마든지 아운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아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난 말이지, 고리타분한 문사가 싫다. 그리고 너희 같은 족속들도 싫어.
차라리 노상강도질을 하는 산적이 더 자유롭고 정직해 보인다. 강도들은
자신의 감정에 그런대로 충실한 편이지. 최소한 열 받고 화나면 대의명분
이나 잡스런 관습 따위는 안 가리고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거든.
뭐 강자 앞에서는 꼬리를 말아도 말이지. 그 때도 그들은 구차한 변명은
안한다. 그냥 도망치거나 업드려 비는 경우가 많지. 보통 명문의 지위
있는 자들이나 머릿속에 뭐 좀 들었다는 인간들은 좀 달라. 분명히 잘못
된 일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애써 말로 설명하고 증명하지 못하면 대의
명분이란 허울 속에 뒤로 물러선다. 때론 아주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이 상대를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참아야 한다. 난 그게 아주
싫었거든. 그래서 강해지려고 했었다. 강해지면 내 뜻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황제가 세상을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
아운이 웃고 있었다.
그러나 묵천악과 묵소정은 웃을 수 없었다.
“네 말이 옳다. 난 네 집안 일에 관여할 수 없지. 하지만 그따위 명분은
다른 곳에서 찾아라! 난 내 감정대로 하겠다. 지금 난 그냥 화가 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화를 풀어야겠다. 이 자리에서 네 놈이나 네 놈의 누나라는
계집이나 다 때려죽이고 그냥 편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겠다.”
아운이 격정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가볍게 내질렀다.
순간 그의 손에서 뿜어진 섬광이 한 아름은 될 것 같은 나무를 후려쳤고,
그 나무에 거대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그러고도 힘이 남은 섬광은 그 뒤쪽으로 다섯 그루의 나무를 뚫고 나갔다.
숲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묘한 비명을 질러 대는 것 같았다.
모두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
소름이 돋아났다.
그들은 보고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어떤 권장이 있어서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아운이 대나무 숲에 들어가기 전보다 엄청난 무공 증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운이 묵천악에게 다가서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묵천악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운과 묵소정은 아운을 보았다.
죽이고도 남을 표정.
정운은 숨을 들이켰다.
묵소정이 용기를 내서 또 다시 따지려는 모습을 보이자, 기겁을 하였다.
정운의 감각은 여기서 다시 말로 설득하려 했다간 그대로 머리가 부서질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은 그런 것이 통할 작자가 아니었다.
묵소정이 하는 말이 이치에 맞고 안 맞고는 소용없었다.
아운의 말대로 산적이 그런 것 따지면 일 못한다.
정운이 묵소정의 손을 잡았다.
“잠깐만, 운 공자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정운을 본다.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말 많은 족속들이 싫다. 그리고 말 잘하는 인간들은 더 싫어. 나와
말싸움 할 거라면 치워라! 좋은 주먹 놔두고 난 말로 대답 안 할 것이다.”
묵소정은 하려던 말이 쑥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세상엔 꼭 눈치 없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아운의 기세에 놀려 바닥에 주저앉았던 묵천악은 정신이 돌아오자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수치스러움이었다.
겨우 아운 같은 떠돌이 낭인 무사 때문에 겁을 먹고 주저앉았다는.
“네 놈이 뭔데 묵가의 일에… 켁.”
아운의 주먹이 묵천악의 입에 틀어 박혔다.
“나도 너 하는 일에 관여 안 할 테니, 내가 내 주먹 휘두르는데 상관하지
마라! 요 멍청한 강아지 새끼야. 내가 전에 살수 행을 갔다가 열 받아서
청부자까지 다 죽인 몸이시다. 그러니 내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아라! 난
내 맘대로 한다.”
강아지에게 새끼가 있었던가?
뭐 어찌 되었던 묵천악의 얼굴이 거의 등 뒤까지 돌아갔다가 탄력 있게
돌아오면서 서너 대의 이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운이 다시 주먹을 드는데 그의 주먹에 맑은 섬광이 어려 있었다.
그것을 본 묵소정과 정운의 얼굴이 퍼렇게 질리고 말았다.
저 주먹이 어떤 주먹인지는 알아도 너무 잘 안다.
저걸 휘두른다면 묵천악의 머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열 받아서 청부자까지 죽였다고 말하는데,
세상에 협박도 그런 무식한 협박이 없었다.
청부자도 죽이는 마당에 청부자의 주인이라고 못 죽이겠는가?
그리고 정운과 묵소정은 지금 아운이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지 맘대로, 자기 맘 가는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말로 설득
하겠는가?
말로 설득 하려다가는 주먹에 맞아 죽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지금 아운의 기세가 그랬다.
강도에게 도덕과 규범을 설명하여 설득 하려 한다면,
멍청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그게 통할 것 같으면 뭐 하러 강도 짓을 하겠는가?
비유가 이상하지만, 지금 아운을 보는 묵소정이나 정운은 그게 그거였다.
“운 공자님, 뭐든 말하십시오.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주겠으니,
주먹질은 이제 그만 해 주십시오.”
아운이 정운을 돌아본다.
“운 공자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운의 주먹이 다시 허리 아래로 내려왔다.
묵소정과 정운은 겨우 숨을 돌렸다.
묵천악은 그 자리에 다시 철퍽 주저앉았는데,
앉은 자리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운은 전혀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개자식을 지금 죽이지 않는 대가를 말하는 것이냐?”
아운은 자신이 두 남매를 살려 줬느니 어쩌니 하는 말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냥 죽이려고 했는데, 그걸로 협상하기에 충분하다는 조건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지난 것 가지고 따지는 것도 귀찮고,
여차하면 지금 당장 죽이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정운은 다르게 토를 달지 않았다.
지금은 살고 봐야 한다.
“목숨 값이라! 그렇다면 소설과 소산에게 자유를 주어라! 저 쓰레기에
비하면 내가 너무 큰 손해긴 하겠지만, 장사란 가끔 밑지기도 하는
것이라 그 정도로 참겠다.”
아운의 말에 묵소정은 잠시 망설이는 빛을 보였다.
정운이 뒤에서 손가락으로 묵소정의 옆구리를 찔러대며 빨리 대답하기를
촉구했다.
“좋아요. 소설과 소산은 오늘부터 노예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묵가장의
시녀도 아닙니다. 내가 주인이었으니, 이걸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운 공자
님도 두 가지 약속을 해 주세요.”
“말해봐라!”
“첫째는 우리를 감숙까지 무사히 데려다 줄 것, 둘째는…”
묵소정은 말 대신 아운의 주먹을 본다.
아운이 주먹을 들어 보이며 피식 웃었다.
“좋아. 내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는 주먹질을 하지 않겠다. 안전하게
감숙의 지정된 장소에 도착 할 때까지 이 약속은 주효한다.”
“운 공자님을 믿겠습니다.”
“난 이래 보여도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은 진다. 단 오늘부터 소설과
소산의 손 끝 하나도 건드리지 마라! 그렇다면 나도 내 성질대로 하겠다.”
묵소정은 소설과 소산을 보았다.
소설은 그 와중에도 소산에게 옷을 입혀주며 아운과 묵소정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녀들의 모습은 어떤 기대감과 불안함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소산의 혈도는 언제 어떻게 풀어졌는지 풀어져 있었다.
아운이 했을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언제 손을 썼는지 보지도 못했다.
다시 한 번 가슴이 서늘해진다.
“소설, 소산. 이리 오너라!”
소설과 눈에 눈물이 가득한 소산이 묵소정에게 다가섰다.
“너희들은 이제 자유인이다. 그 점을 분명히 한다.”
“아가씨.”
소설과 소산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너무 급작스런 일이라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이제 자신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란 사실이었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묵소정이 서둘러 소설과 소산에게 말한 다음 아운을 보았다.
“좋아. 그럼 나도 이제부터 묵천악에게 주먹질을 하지 않기로 하지.
그리고 청부는 잘 이행해 주겠다.”
정운과 묵소정이 겨우 숨을 돌리고 묵천악을 보았다.
묵천악은 점차 제 정신을 차리고 나자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이제 소설과 소산에게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여자들과 누나 앞에서 정말 못난 꼴을 보였다는 수치심이
그의 심정을 못 견디게 하였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소설과 소산을 강탈해 간 아운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그의 머리를 마비시킨다.
“두고 봐라! 언제고 내가 이 수모를 백배로 갚아주겠다. 썅 개년들, 결국
저런 떠돌이의 노리개가 되려고 나를 거부하다니, 언제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묵천악이 악에 바쳐 고함을 지르자, 정운과 묵소정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소설과 소산도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미 묵가장 시절 묵천악이 얼마나 집요한 인간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이 가지는 무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설과 소산에게나 통하는 말이었다.
아운이 눈에 살기를 머금고 묵천악에게 다가섰다.
묵소정이 얼른 앞으로 한발 나서면서 말했다.
“아운 공자님, 약속은 지키리라 믿습니다. 조금 전에 다시는…”
“맞아, 누가 뭐래. 걱정마라, 나는 비록 막 가는 성격이지만, 약속은
지킨다.”
“흐흐, 꼴에 남자다운 척은 다하는구나. 나를 패고 싶겠지. 하지만 약속은
중요한 거다. 내 노리개를 둘이나 강탈해간 강도 새끼.”
묵천악은 갈수록 악에 받치고 있었지만,
조금 전 약속을 상기하며 깨진 입을 벌리고 웃었다.
나름대로 속이 시원했다.
아운이 웃는다.
묵소정은 당황한 표정으로 묵천악을 보았다가 아운을 보면서 급히 말했다.
“천악! 입 닥쳐라! 운 공자님 약속을…”
“물론 약속은 지킨다. 난 절대 주먹질은 안 할 거다.”
“감사합니다.”
“대신!”
“…”
“발로 밟아 죽일 작정이다.”
묵천악과 정운, 그리고 묵소정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아운의 발이 묵천악의 다리를 걷어찼다.
나름대로 무공 실력이 제법이라고 생각했던 묵천악이었지만,
전혀 반항 한번 못해보고 차일 수밖에 없을 만큼 빠르고 날카로웠다.
“크억!”
비명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마치 한반신이 마비될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묵천악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고, 순간 아운의 발은 그 자세 그대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묵천악의 혈을 짚어버렸다.
내공을 끌어 올리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 다음은 무자비하게 발로 밟기 시작했다.
“커억, 켁. 켁.”
아운은 발로 묵천악의 전신을 골고루 밟고 있었는데,
주로 발뒤꿈치로 찍거나 엉덩이 가운데의 괄약근, 정강이, 허벅지
그 다음엔 가슴팍에서 머리통까지 아플만한 곳은 한 군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발길질이 얼마나 빠른지 보는 사람들은 발의 잔영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한번 때린 곳은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더 때렸다
손은 절대 안 쓰겠다는 뜻으로 뒷짐을 진 채 발길질을 하는 아운의 모습은
오히려 한가로워 보였다.
맞는 사람 빼고.
“으허헉 캑캑, 누… 누나, 사… 사려주… 컥.”
말이 새면서 누나를 부르자, 아운의 발이 이번엔 입을 걷어찼다.
그러나 묵천악이 애타게 찾고 있는 그의 누나 묵소정과 정운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운의 몸에서 뿜어진 무형의 기운이 두 사람을 손가락하나 움직일 수
없게 묶어 놓은 때문이었다.
“자… 잘… 모… 해… 으허헝, 사, 살려주세요.”
묵천악은 일곱 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빌고 또 빌었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한번 맞으면 골까지 흔들리는 기분이었고,
뼈가 전부 부러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미 뒷골목 시절에 상대를 어떻게 때려야 가장 아프고,
가장 고통스러우며, 가장 공포스러운지 완벽하게 깨우친 아운의 발길질
이었다.
소설과 소산은 한쪽에 서 있었는데,
소설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지만,
묵천악을 보는 소산의 얼굴 한 편엔 통쾌하다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히 그녀는 조금 당찬 면이 있었다.
“억울하냐? 억울하겠지. 하지만 너 한테 당했던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네가 보기에 너의 시녀들이 그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
으로 보였겠지. 난 네가 내 맘대로 죽일 수 있는 쥐새끼로 보인다.
쥐새끼는 발로 밟아 죽이는 것이 제일 좋다. 너도 잘 기억해둬라.”
아운의 말에 묵소정과 정운은 얼굴은 더욱 파랗게 질려 버렸다.
아운의 기세를 보면 그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묵천악은 정말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고통에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니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아운은 자신의 발길질을 피해 기어가려던 묵천악의
괄약근을 걷어찼다.
엉덩이 한 가운데서 시작한 짜릿한 고통이 등줄기를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영혼마저 흔들어 놓았다.
푹 업어지자, 아운은 발로 차서 다시 뒤집어 놓았다.
입에서 거품을 문채 완전히 풀어진 눈으로 아운을 보는 묵천악은 이미
살아도 산 자가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맞고 밟혔는지, 셀 수가 없었다.
아운은 기술적으로 차고 밟아서 고통은 최대한 주되 절대 기절할 수 없게
하고 있었다.
아운의 발이 묵천악의 사타구니에 얹어졌다.
그의 발에 지긋이 힘이 들어가자 묵천악은 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벌렸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거시기가 깨질 것 같은 압박과 고통에 삐그덕
거린다.
“거… 거긴. 아… 아대요오~·”
묵천악이 필사적으로 외치는 모습은 차라리 광대의 그것과 흡사했다.
“안 되긴 내 맘이지.”
“으흐헝.”
아운은 발에 조금 더 힘을 가했고, 묵천악의 입은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사내새끼가 되어 가지고 여자를 맞이하려면, 능력껏 그녀의 마음을
얻어야 함이 기본이다. 아무리 시녀라도 여자임은 분명한데 마음을
얻지 못하고 강제로 육체를 탐하려 하다니, 참으로 한심한 놈이로다.
이걸 달고 다니기 아까운 놈일세. 확 깨버릴까?”
묵천악이 바르르 떤다.
아운이 다시 한 번 묵천악을 내려다보았다.
“너 또 덤빌래.”
“아, 아니니다. 아닙니다. 저얼대로~~.”
“말대꾸 할래.”
“절대 아니니다.”
말이 샌다.
그래도 살고는 싶었는지 필사적이었다.
“잘 들어 둬라, 소설의 주먹밥 세 개의 청부 중 두 개의 값이 바로 그녀에
대한 보호였었다. 그리고 난 그것을 우선하기로 약속했었다.”
아운이 거기까지 말한 다음 소설을 보고 다시 소산을 보았다.
“좋은 친구란 자신과 같은 것이다. 친구가 상처를 입으면 자신도 큰
상처를 입게 되지. 이런 일로 청부자가 마음이 상한다면 나는 제대로
지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앞으로 알아서 잘 행동해라. 멍청한
놈아.”
이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결국 묵가 남매보다 소설이 우선 청부 대상임을 말해 주었고,
소산은 소설의 소중한 친구이기에 보호 받을 가치가 있다는 말이었다.
한 마디로 소설과 그녀의 친구에게 잘못했다간 알아서 해라라는 말이었다.
아운의 발에 은근히 힘이 들어갔다.
“다시 한 번 허튼 짓하면 그땐 이걸 제대로 밟아 주마. 또 그럴래?”
묵천악이 다시 꼬로록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소설과 소산은 아운의 말에 감격해서 서로 손을 잡고 마주 볼 뿐이었다.
그녀들은 앞으로 묵천악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저렇게 맞고도 자신들에게 해꼬지를 하려 한다면 정신병자가 분명할
것이다.
아운은 발을 내려놓으며 묵소정을 보고 씨익 웃었다.
묵소정은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잘 들어라, 계집! 오늘부터 네가 할 일은 네가 해라! 그래도 소설에게
받은 청부가 있으니 감숙까지는 데려다 주마. 내가 보기에 네 년도 저
개자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그것을 고치지 못하면 감숙에 데려다
놓고 밟아 주겠다.”
묵소정의 몸이 바르르 떨린다.
그러고도 남을 인간임이 분명했다.
아운은 소설과 소산을 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이제 나갈 준비 해야지? 감숙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묵천악은 그제서야 기절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