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광마소소(狂魔小笑)
- 고금천추제일신마 우칠, 무림에 나오다
아운은 신법을 펼치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일단 상대방의 시선을 끌어 놓고 원래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을 튼
것이다.
아운은 오절의 표정을 보고 오절과 언가가 따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행동으로 언가 일행을 조금이라도 지체 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운은 방향을 틀어 약 반 시진을 달리고서야 숲 안으로 들어가 은밀한
곳에 주저앉았다.
다시 두 시진이 지났다.
아운은 겨우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한번 육삼쾌의연격포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
처음 육삼쾌의연격포를 사용하고 나서 무려 세 시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원래 운기를 하지 않아도 두 시진이면 회복되어야 했지만 그 만큼 아운의
부상은 심했다.
그의 몸에는 무려 세 군데나 크고 적은 상처가 나 있었고,
특히 형가의 도가 만들어 놓은 등의 상처는 너무 컸다.
다행이 십단무극신공과 불괴수라기공이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치명적인
상처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육 단계에 머물고 있는 십단무극신공은 그의 내부를 완전하게
보호해주진 못했다.
다행이라면 불괴수라기공이 그의 몸에 있는 상처를 가장 빠른 속도로
치유하고 있었기에,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아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진기를 회복한 아운은 잠시 자신의 무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약하면 죽는다.
근래에 아운이 절실하게 느낀 것은 강호의 살벌한 법칙이었다.
물론 그런 면에서 뒷골목의 법칙도 철저했다.
그렇기에 아운은 자신의 처지를 빨리 돌아볼 수 있었고,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조금이라도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무공엔 너무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오늘 나를 기다리게 한자라면,
그 약점을 파악하고 있을 테고, 이제 그들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나를
상대하려 할 것이다.’
아운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도 자신의 약점을 잘 안다.
구전무극신공의 진기를 아홉 바뀌 돌리면서 한번 돌릴 적마다 일 권씩
펼칠 수 있는 것이 육삼쾌의연격포였다.
그래서 일격을 펼치면 그 일격은 더 할 수 없이 빠르고 강하지만 일격과
이격 사이에 마디가 생긴다.
한 호흡에 일권부터 육권까지 펼칠 수가 없다보니 그 틈새를 노리고
누군가가 공격해온다면 수세로 몰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그 마디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칠보둔형보법이 있기에 그 약점을
상쇄하고 남음이 있었지만, 자신과 동급의 고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마디가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의 무공 중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
반드시 일 권부터 펼쳐야 한다는 점은 너무도 강한 약점 중 하나였다.
상대가 십의 힘으로 공격해 온다 해도 결국 일의 힘으로 대항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강자를 만나서 상대가 처음부터 최고의 절기로 밀어 붙인다면
칠 초까지 가기 전에 죽기 딱 알맞은 무공이었다.
더군다나 한번 펼치고 나면 그 다음은 두 시진 동안 무방비다.
검사가 검을 들고 싸우다가 검을 버린 채 두 시진을 버텨야 하는 상황이나
같았다.
이것은 너무도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어떻게 하던지 보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무공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깨우침을 얻던지, 부단하게 노력을 해야 조금씩 성장하는게
무공 아닌가?
자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칠초무적자의 내공도 하루아침에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운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단 한 가지의 단점이라도 보완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란 것은
알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일 권부터 펼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문제는 십단무극신공의 단계가
팔 단계로 올라가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고 했으니 지금은 아무리 노력
해도 방법이 없다. 한번 펼치고 두 시진 동안 연격포를 다시 펼치지
못하는 것도 특성상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완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마디를 없애고 주먹과 주먹 사이의 틈을 없애는 것.’
아운은 일단 자신이 나갈 방향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강자를 만나서 일 권부터 펼치게 된다면,
결국 칠 초까지는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운은 그 해답을 칠보둔형보법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일곱 걸음이면 피하지 못할 공격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아운이 생각해도 그 말이 오만하지 않은 보법이었다.
나중에야 그 가치를 알았고,
나중에야 둔형보법을 등한시 한 것을 크게 후회했었다.
차후 많은 부분을 이 보법에 할애하였고,
결국 칠보둔형보법을 무극신공의 진기로 운용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실제에서 응용은 아직 미숙한 점이 많았다.
몇 번의 결투에서 아운은 그것을 충분히 깨우쳤다.
‘칠보둔형보법과 무극진기의 조화에 더욱 힘을 쓰자, 상대가 강한 초식으로
나오면 정면 대결을 자제하고 보법으로 피하면서 주먹을 쓰면 된다. 그리고
주먹과 주먹 사이를 어떻게 하던 더욱 밀착시켜야 한다.’
아운은 앞으로 수련해야 할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아운은 문득 손을 들어 보였다.
그 손에는 보이지 않는 암기 삼살수라마정(三殺修羅魔釘)이 숨어 있었다.
정말 최후의 순간이 온다면 이 암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
‘아직 내 모든 것을 드러내선 안 된다.’
아운은 일단 방향이 정해지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우선 급한 일은 따로 있다.’
아운의 신형이 다시 한번 허공을 비상하였다.
낭인촌에서 묵가장 까지는 이틀거리에 있었다.
물론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친다면 그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 질 것이다.
***
상강이 호남성을 가르고 지나와 동정호와 만나는 근처,
제법 깊은 산을 한명의 거한이 나서고 있었다.
거한은 산언저리에 서서 하늘을 보았다.
맑은 공기가 입안으로 가득 들어와 가슴에서 멈추었다.
상쾌한 기분과 함께 웅심이 하늘 끝까지 올라간다.
그 기분.
대천광마(大天狂魔)라는 인물이 있었다.
혈궁대전이 벌어지기 전에 강호 무림을 호호탕탕 질주하며,
세상이 좁다고 설치던 인물이었다.
비위에 거슬리면 애 어른 없이 닥치는 대로 죽이는데다,
종잡을 수 없는 괴팍한 성격이어서, 강호무림의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살마(殺魔) 또는 광마라고 부르며 두려워했었다.
워낙 성질은 더럽고, 무공은 무식하게 강해서 아무도 상대하려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죽이려던 어린 아이가 방긋 웃는 모습을 보고
문득 깨우치는 것이 있어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개과천선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별 일이다 싶었는데,
그는 정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일컬어 ‘광마소소(狂魔小笑)’ 라고 부르며 신기한
일이라 하였었다.
누가 뭐라고 하던지 절대 무관심한 광마는,
산에서 도를 닦으며 생활하다가, 근처 나무꾼의 아들을 제자로 삼아
물심양면으로 자신의 무공을 가르쳤다.
또한 그는 죽기 전엔 자신의 진원 진기마저 제자에게 전부 넣어주고
죽었다.
죽기 전에 광마는 자신의 제자에게 유언처럼 한 마디를 남겼다.
“이제 네가 나의 내공을 전부 네 것으로 만들고, 나의 무공을 완벽하게
터득하면 너는 천하제일인이다.”
광마의 성격은 여전히 광마였다.
제자는 그 말을 하늘처럼 믿었다.
그리고 드디어 삼 년.
죽어라 무공을 익힌 제자가 드디어 오늘 세상에 나온 것이다.
대천광마의 제자인 우칠(牛七)은 자신 있었다.
비록 사부의 무공을 완전히 터득하지 못했고,
사부가 죽기 전에 자신의 몸에 넣어 준 내공도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 우칠이 세상에 나간다. 모두 기다려라!”
고함 소리가 하늘을 찢어 버릴 것 같았다.
“이제부터 나의 별호는 고금천추제일신마(古今千秋第一神魔)다. 내 십 년
안에 천하를 제패하고 세상에 홀로 빛나리라.”
그 사부에 그 제자였다.
도를 닦는다던 광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제자에게 이상한
호승심까지 남겨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부의 제자인 우칠은, 광오한 포부를 외친 후 나름대로
계획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 우선은 쓸만한 수하들이 있어야 한다.”
우칠은 큰 깨우침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결정에 아주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의 결심을 하늘에서 알아준 듯 한 명의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키가 작고 나이가 들어 보이기는 하지만 저건 시종을 쓰면 딱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마침 결심을 하자마자
사람을 마났으니 이것은 하늘이 자신에게 계시를 내려준 것이 분명했다.
한데 이어서 두 명의 인물이 또 나타났다.
‘모두 세 명씩이나.’
우칠이 기꺼운 표정으로 다가오는 인간들을 보다가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나타난 인간들의 형색이 모두 괴이했던 것이다.
일단 한 명의 덩치는 자신과 얼추 비슷했다.
대머리에 쇠사슬을 칭칭 동여매고 있었는데,
그 덩치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저건 호위병으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셋 중에서 한명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장발을 길게 늘어트리고, 눈은 기분 나쁘게 동자까지 검은색이었으며,
몸에 검을 세 개씩이나 박아 놓고 다니는 인간을 누가 좋아하겠나.
'그냥 죽여 버리자.‘
간단하게 남의 생명을 결정지은 우칠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네 놈들은 모두 그 자리에 서라.”
모두 제 자리에 섰다.
말도 잘 듣는다.
“나는 천추제일신마 우칠 님이라고 한다. 이제 강호에 나가 강호를 제패
하려고 하는 바, 내 첫 번째 수하들로 너희들을 택했다. 모두 영광으로
알고… 커억.”
말을 하다가 우칠은 그 자리에서 주저 않고 말았다.
정말이지 자신보다 조금밖에 작지 않은 대머리의 사내가 어느 틈에 다가와
있었고, 그의 주먹이 명치끝에 틀어 박혀있었다.
꼬로록 하는 소리와 함께 천추제일신마 우칠은 뒤로 휘청하고 물러섰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머리의 사내는 정말 무자비하게 우칠을 구타하였다.
이건 아파도 너무 아팠다.
아픔이 전신을 지배하자, 그 동안 배운 무공은 전혀 무용지물이었다.
어떤 무공의 어떤 초식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현듯이 공포가 치밀어 올랐다.
재수가 없어서 강호에 나오자마자 천하제일고수를 만난 것 같았다.
때를 아는 것이 영웅이라고 했다.
우칠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허헉, 그냥 부하 시키지 않… 으… 께에… 컥컥.”
우칠의 첫 강호행이였다.
그리고 그를 때린 인간은 칠흉의 삼귀 중 막내인 금강혈귀(金剛血鬼)
곽철(郭鐵)이었으니, 안 죽은 것만으로도 하늘이 도운 셈이었다.
그렇게 칠흉의 세 명이 묵가장을 찾아 호남성의 동정호로 왔고,
우칠은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