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제12장. 십절벽력창(十絶霹靂槍) (13/228)

제12장. 십절벽력창(十絶霹靂槍)

- 힘이 있는 자는 자유롭다

벽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온 아운은 땅 바닥에 착지를 하기도 전에 자신의 

복부를 향해 날아오는 창 하나를 보았다. 

  

“언가창(彦家槍).”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주먹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운의 신형이 휘청하면서 옆으로 누운 채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갔다. 

동시에 그의 발이 사구아(蛇口牙)의 초식으로 자신을 창으로 찌른 인물의 

허벅지 안쪽을 차버렸다. 

아운을 기습한 청면호(靑面浩) 언벽(彦璧)은 소운십절창으로 대변되는 청년 

고수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을 가진 고수였지만, 

설마 자신의 급작스런 공격을 피해내고 오히려 공격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언벽은 고스란히 허벅지를 내주고 말았다.

  

“컥!”

신음과 함께 허벅지에 전해오는 뻐근한 고통을 느끼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동시에 아운의 손이 주저앉은 언벽의 목을 움켜쥐었다.

실로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설마 기습이 실패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언벽의 동료들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그들은 자신의 동료가 잡혀 있자 함부로 달려들지도 못한 채 아운의 

눈치를 보았다. 

아운은 손에 잡힌 언가의 제자를 끌어 당겨 가슴에 바싹 안은 채 사방을 

둘러보며 당장이라도 안벽을 죽일듯한 자세를 한다. 

자신이 빠져 나온 방향으로 언가의 무사들이 몇 명 있었고, 

곧 대 여섯 명의 무사들이 더 합세를 하였다. 

아마도 흑점사의 집을 포위하고 있었다가 모두 합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손에 짧은 단창을 들고 있었다.

  

‘모두 열. 이들이 언가의 소운십절창이군.’

  

그들 사이로 위맹하게 생긴 노인이 나타나났다. 

길게 늘어트린 흰 수염이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노인의 오른손에는 길이가 일장에 가까운 장창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십절벽력창(十絶霹靂槍) 언행(彦幸)이었다.

  

오대세가의 하나인 진주 언가에서 가장 강하다는 언가삼로(彦家三老) 중 

한 명이었다.

강호 무림사에 창으로 유명한 가문은 모두 셋이 있었는데, 

이들 세가와 그들의 창법을 묶어, 

각각 양가창(楊家槍), 악가창(岳家槍), 언가창(彦家槍)으로 불렀다. 

이들은 강호 무림사에 있어서 창법의 조종이라 할 만하였다. 

물론 이들 세가의 창법이외에도 유명한 창법들이 있었지만, 

하나의 세가를 이루고 창법에만 주력해온 이들은 각자 독특한 창법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세력에서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 아직까지 제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언가창이 유일했고, 

언가는 오대세가의 하나로 벌써 사백 년째 그 성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세 개의 가문 중에 언가창이 가장 약했었다는 사실을. 

  

물론 지금은 다르다. 

그들은 그 동안 많은 노력을 하였고, 

언제부터인가 창하면 언가를 떠 올리게 되었다. 

그런 가문에서 가장 강한 세 명 중에 한 명이라면 언행의 무공을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네 놈이 내 동생을 죽인 살수 놈이냐?”

  

아운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내가 그 살수 맞다.”

  

“제법 기개가 있군.”

  

“기개가 아니라, 어차피 다 알고 온거 아닌가?”

  

“확실하게 짐작은 못했었지.”

  

“결국 알게 될 일이지.”

  

언행의 살기가 아운을 조여 왔지만, 

아운은 태연하게 그 살기를 받아내었다.

언행의 입가에 고소가 걸린다.

  

“제법이구나.”

  

“뭐 당신도.”

  

아운이 다시 한번 웃는다. 

근데 아운의 웃음은 묘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몹시 기분 나쁘게 

하였다. 

마치 상대를 깔보는 듯한, 아니면 비웃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쪽이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놈!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후후, 뭐 별거 업지. 난 인질이 있으니 일단 여길 벗어날 생각인데. 물론 

당신의 협조가 있어야겠지.”

  

언행의 입가가 매섭게 일그러졌다.

아운은 여전히 태연하다. 

인질을 잡고도 당당하였다.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동생은 그다지 행실이 좋진 못하더군.”

  

“네 놈이 입을 놀리면, 난 여기 있는 낭인촌의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서 

입을 봉하겠다.”

  

언행의 차가운 말에 아운은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이군.’

  

아운은 언행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과연 대단한 정파로군.”

  

아운의 비꼬는 말투에 언행은 차갑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뭐 그럼 입을 다물기로 하지. 그럼 난 인질을 잡고 여기를 떠나겠소. 

그러니 잡지 않기를 바라겠소.”

  

“비겁한 놈! 나하고 일대일로 겨루어 볼 마음은 없느냐?”

  

“내가 왜 그래야하지?”

  

“인질을 잡는 것은 당당한 무인이 할 짓이 아니다.”

  

“난 당당이고 뭐시고 여기서 살아야겠으니, 쓸데없는 소리는 혼자서 하지.”

  

언행은 아운을 노려 볼 뿐이었다. 

그렇게 나오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그럼 난 이만. 그리고 말하는데, 당신은 언가의 인물들 말고 저들의 행동도 

제약을 해야 할 거외다.”

  

아운이 웃으면서 집 박으로 나와 자신을 호시탐탐 노려보는 오절을 

가리켰다.

  

“빨리 꺼져라! 이후 언가는 너를 반드시 잡아서 사지를 찢어 죽이고 말 

것이다.”

  

오절은 아운의 뒤를 따르려 하다가 언행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멈추었다. 

감히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로서도 감히 언가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는 언행의 말이 곧 법이라고 할만했다. 

아운은 그것을 보면서 좀 뜻밖이란 생각을 하였다.

  

‘오절이라면 강호에서 충분히 유명한 고수들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언행의 

한 마디에 제약을 받다니, 오대세가가 그렇게 대단한가?’

  

아운은 이 단순한 상황 안에서 무림의 명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운이 비록 무림의 일에 나름대로 밝은 편이지만, 

그 내부에 존재하는 진실에 대해서는 많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무림의 지식이란, 뒷골목 시절에 이리 저리 알아본 

단편적인 지식들이 전부였다.

물론 그것도 상당한 양이지만, 

세상은 원래 들어난 진실보다 숨겨진 진실이 많게 마련이었다.

  

아운은 인질을 잡고 서서히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 되자 섬전어기풍을 펼치기 

시작했고, 이젠 하고 생각이 드는 순간 인질을 바닥에 던지고 달리려 

하였다. 

인질을 막 바닥에 놓았을 그때였다.

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무엇인가가 아운을 향해 섬광처럼 날아왔다.  

아운은 불괴수라기공(不壞修羅氣功)을 끌어 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기겁을 하였다.  

아운과 이십여 장 거리에 언행이 있었고, 

언행이 던진 장창이 대기를 가르고 아운을 향해 날아오는 중이었다. 

언제 쫓아 왔을까? 

내공이 미력해진 아운은 미쳐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 보다는 도망하기에도 힘이 든 상황이었다.

  

언행이 던진 창은 빠르기도 빨랐지만, 

그 안에 내재된 힘은 아운으로 하여금 몸서리치게 할 정도였다. 

불괴수라기공이 아운에게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아운은 막 끌어올린 섬전어기풍을 칠보둔형으로 바꾸며 몸을 틀었다. 

순간 아운의 신형이 두 개로 갈라지며 아슬아슬하게 언행의 창을 피해

내었다. 

아운의 몸을 스치고 날아간 창은 어른의 한아름은 뒬 것 같은 거대한 

노송을 다섯 그루나 뚫고 들어가 커다란 바위에들어가 박혔다.

그러고도 힘이 남아 윙윙하는 소리를 낸다.

상대를 죽이지 못한 것을 억울해 하는 것 같았다. 

아운은 그 광경을 뚜렷하게 보면서 섬전어기풍을 전 힘을 다해 펼쳤다. 

비응천각괴의 이 신법은 아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일단 인질을 내려놓고 나자 몸이 가벼워진 아운의 신법은 말 그대로 

질풍이었다. 

언행은 아운의 빠른 신법에 놀란 듯 그 자리에 서서 보고만 있었다. 

쫓아도 따라 잡기 힘든 신법이었고, 무기를 거두는 일도 중요했다. 

맨손으로 쫓기엔 아운이 보여준 실력이 부담된다.

언행의 이 행동이 아운의 생명을 또 한번 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일곱 번의 주먹을 다 쓴 아운의 지금 상태는 

최악이었다. 

특히 내공에 있어서도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라 언행이 쫒아왔다면, 

얼마 안가서 아운은 더 이상 신법을 펼치지 못했으리라.

신법을 펼쳐 도망가는 아운은 언행의 창을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다. 

만약 자신이 정상이라고 했어도 과연 언행의 창을 받아 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할 이상의 자신이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주먹을 사용했을 경우에 한해서였다.

  

‘일곱 번째 주먹이라면, 승률이 오 할이다. 연환육영뢰(連環六影雷)의 

주먹질로는 이길 수 없다. 나의 무공이 싫던 좋던 처음부터 펼쳐야 

하니, 결국 일곱 번째 주먹질을 하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아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질 수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물론 결투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고, 신법이나 보법에서 자신이 위라고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일곱 번째 주먹질을 할 때까지 버틸 것 같지 

않았다. 

버틴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오 할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은 주먹질을 더 이상 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결과는 뻔했다.

  

‘세상은 넓구나. 그리고 삼백 년 동안 강호의 모든 무공은 더욱 발전했을 

것이다. 언가의 삼로 중 한명이 저 정도라면 언가주의 무공은 어떨 것이고 

무림의 전설이라는 수많은 고수들은 또 얼마나 강할 것인가?’

  

아운은 처음으로 자신의 무공이 많이 부족함을 깨우쳤다. 

또한 십단무극신공과 육삼쾌의연격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연구해볼 

필요를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많은 부분에서 놓친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무적이라고 자신하던 무공들이었다. 

배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스승과 조사님들이 그랬고, 

강호에서도 그렇게 인정했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분명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아직 육성 정도만 터득했지만, 생각보다 무엇인가가 부족해 보였다. 

실전을 하면서 아운은 그것을 분명히 느꼈다.

***  

  

  

장절 담대천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갈수록 아운이란 인물이 마음에 걸렸다. 

오만하고 고집이 강하면서도 행동하는데 있어 거침이 없었다. 

조금 전, 세상이 뒤집히고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기어코 복수를 하고 

만 아운으로 봐서는 인질을 잡고 도망가는 행위가 이질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점 또한 아운의 두려운 점 중 하나라 생각

되었다. 

  

‘결국 자신이 결심한 일에 대해서는 무모할 정도로 용기를 지니고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상황에 따라 행동한단 말인가? 아니면 지금의 행동도 그의 

말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인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누구든지 저자와 적이 되는 자는 정말 불편해질 것 같다.’

  

놀라는 것은 오절 뿐이 아니었다.

언행 역시 아운의 빠른 신법에 감탄하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그러나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언행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네 놈이 조카 년을 죽인 것도 죽어 마땅한 죄지만, 언가의 자금줄을 끊어 

놓은 것은 더욱 죽을 죄다. 더군다나 언가 여자의 더러운 곳을 알고 있으니, 

그 입을 나불대기 전에 반드시 죽어 주어야겠다.’

  

사실 언가로서는 언교해가 살해당한 것도 화가 나는 일이지만, 

그녀의 치부를 아는 아운이 그것을 이리저리 말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정파란 체면에 살고 체면에 죽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 않았던가.

협박으로 입을 봉할 수 있지만, 죽이는 것만큼 안전하고 깔끔한 입막음은 

없다. 

더군다나 언가에서 언교해를 무공도 모르는 항주의 부자에게 시집보낸 

이유가, 막대한 금력 때문이었다. 

한데 이젠 그것마저도 위태롭게 되었다.

이래저래 너무 막대한 손해를 본 언가의 입장에서 아운은 정말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존재였다.

소운십절창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언행이 소운십절창들을 보면서 명령을 

내렸다.

  

“찾아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도망간 그 놈을 잡고야 말겠다.”

  

언행의 호통 소리와 함께 소운십절창이 몸을 날렸다. 

그들의 신형은 아운이 사라진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운의 뒤를 쫓아 사라지고 난 후, 언행은 오절을 보았다. 

오절 또한 언행을 본다.

  

“혹시 그 자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장절 담대천은 고개가 흔들었다.

  

“우리도 알고 싶소.”

  

마치 자신의 수하를 대하는 듯한 언행에 기분이 상한 담대천이었지만, 

그 불만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조금 퉁명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담대천과는 달리 오절의 막내인 청월지 예혼과 비천검 고벽의 

눈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그들을 막은 것은 형가와 오요홍이었다.

[참아라! 대사형도 좋아서 참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형가의 전음에 고벽은 두 손을 꾹 움켜쥐며 말했다. 

[저자는 너무 오만합니다. 오절이 언제부터 이렇게 무시당하고 

살았습니까?]

[현실이 그렇다.]

형가의 말에 고벽은 입술을 문다. 

그렇다. 

지금 현실이 그랬다. 

자신들 또한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사마무기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 아닌가? 

그때 이미 꺾어진 자존심이었다.

언행은 담대천의 말투를 그냥 무시해 버렸다. 

별로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는 행동이었다.

  

“너희는 왜 그자와 원한 관계를 맺었느냐?”

  

담대천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답을 안하면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은 기세였다. 

속으로 울컥하는 반발심을 느꼈지만, 여전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언행의 물음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때를 대비해 이미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흑점사에게 청부를 받은 것뿐이오. 그 자가 자신을 노린다고 했기에 우린 

돈을 받고 흑점사를 지켰소.”

  

“흑점사는 왜 그자와 원한 관계를 맺은 것이냐?”

  

“그거야 바로 노 선배님의 가문 때문이 아니겠소.”

  

“우리 가문 때문이라니.”

  

“알다시피 아운이란 자가 언씨 문중의 여자를 살해했고, 흑점사는 그것을 

알아서 당신들에게 알렸소, 자칫하면 자신도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렇데 그 자가 그것을 눈치로 안 모양이오. 그 작자는 

당연히 입이 싼 흑점사를 죽이려 했고, 흑점사는 그것을 눈치 채고 우리를 

고용한거요. 한데 이렇게 대범하게 나올 줄은 몰랐소. 특히 그의 무공이 

생각보다 너무 강해서 우리도 낭패를 본 상황이오.”

  

언행은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에게 정보를 준 흑점사가 당하는데 자신들은 별로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알고 보면 그가 그렇게 된것도 자신들 때문이 아닌가? 

또한 오절을 부른 것은 자신들을 믿지 않아다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흑점사를 노리다니 정말 배짱 하나는 일품인 

놈이군.”

  

알고 보면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화자찬이었지만, 

그것을 뭐라고 할 사람이 이 자리에 있겠는가? 

오절은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명문 대파의 인물들이 가지는 오만함은 끝이 

없었다.

오절과 언행이 떠났다. 

그들이 나타나고 낭인촌엔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모두 어딘가로 숨어 있거나, 혹시라도 그들과 시비라도 붙을까봐 멀리 

피해버린 탓이다. 

한데 다 가고 나자 흑점사가 사는 집 지붕을 뚫고 하나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정말 대단하다. 한데 어째서 암혼살문의 무공은 펼치지 않는 걸까? 정말 

아까 그 자식이 내가 찾는 살수가 맡긴 한거야.”

  

삼대살객 중 하나인 흑칠랑은 암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살수라기보다는 투사나 전사에 가까운 아운을 보니, 

정말 저자가 암혼살문의 살수인가 싶었다. 

그러나 아니라고 하기엔 언행의 말이나 담대천의 말을 너무도 정확하게 

들었다. 

또한 아운 스스로도 언교해를 죽였다고 했으니, 틀림없을 것 같긴 했다. 

  

“뭐 좀 더 살펴보면 알겠지.”

  

흑칠랑은 코를 벌름거리며 씨익 웃었다.

  

“비전의 천리추종향을 뿌렸으니 이제 넌 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천천히 쫓아가 볼까?”

  

흑칠랑의 신형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한줄기 바람으로 변해 날아갔다. 

아운이 사라진 방향과 반대 방향이었다.

***

  

사마무기의 입가에 고소가 걸렸다.

  

“왔었단 말이지. 근데 오절이 놓쳤다고. 허허.”

  

사마무기는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는 흑포에 흑두건을 쓴 인물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정말 대단한자로군.”

  

“그렇습니다. 더군다나 언행과 소운십절창까지 농락당했다고 합니다.”

  

“그건 통쾌하군. 자존심 많이 상했겠군. 일그러진 언행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참으로 아쉽군.”

  

“그리고 아직도 묵가장의 남매를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직 흔적도 못 찾았다. 그렇다면 아직 묵가장에 있는가 보군.”

  

복면인이 놀란 눈으로 사마무기를 보았다.

  

“아마도 묵가장엔 비밀 밀실이 있을 것이다. 아운이란 그 자, 아마도 

그들을 그 곳에 숨기고 낭인촌에 갔었을 테지. 제법이다.”

  

사마무기는 몹시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오절에게 흑점사를 지키라고 했었다. 

그런데 정말 거길 오다니, 참으로 상상을 불허하는 자다. 

사마무기 조차 혹시나 했지만 정말 오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었다.

한데 그런 자가 인질극을 벌이면서 도망쳤단다.

사마무기는 모든 서류를 샅샅이 훑어 본 다음 마지막으로 오절의 견해서

까지 다 읽어 보았다.

  

“재미있겠어. 마치 사냥을 하는 기분이군. 아쉽다면 사냥이 너무 빨리 끝날 

것 같다는 거지만.”

  

복면의 사내는 사마무기를 보고만 있었다. 

그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며.

  

“일곱 번이다.”

  

복면의 사내가 사마무기를 본다. 

눈빛에 변함이 없었다.

  

“여기 올라온 보고서가 정확하다면 아운이란 살수, 아니 살수라고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군, 아운이란 자가 쓰는 무공은 단 일곱 번의 주먹질만 가능

한 무공이다. 그리고 그 무공은 상당히 많은 단점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복면인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너도 분석을 했으니 대충은 알 것이다. 네 분석을 말해 보아라! 설마 

신기루(蜃氣樓)에서도 분석에 관해서는 가장 뛰어나다는 네가 모른다고는 

하진 않겠지.” 

  

복면인은 사마무기의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분석한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운이 쓰는 무공의 특징은 일권보다 이권이 배로 강하고, 삼권은 

일 권의 세 배 정도 강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뒤로 갈수록 제일 권만큼씩 

강해지는 특성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일곱 번째 초식은 모든 

힘을 전부 폭발시키는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육 권은 

일 권의 여섯 배에 달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고, 마지막 일곱 번째 초식은 

얼마나 강한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육 권의 배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

합니다. 일 권의 열두 배에 해당하는 위력입니다.”

  

사마무기의 얼굴에 같은 의견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 이 무공의 약점은?”

  

“아무래도 이 무공은 삼백년 전 무적이라 불리던 칠초 무적자의 무공을 

어설프게 흉내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치명적인 약점이 

세 개나 됩니다.”

  

“말해보게.”

  

복면인은 자신이 생각한 아운의 무공에 대한 약점을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결투를 검토해 보면 아운이란 자는 상대가 강하던 약하던 

반드시 일 권부터 펼쳤습니다. 그걸로 보아 이 무공은 무조건 일 권부터 

펼쳐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권과 권 사이가 투박한 것 같습니다. 

권을 연속으로 펼쳐 상대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뒷밭침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질을 잡고 도망한 것을 보면, 아운의 무공은 칠 초

까지 단 한번만 펼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사마무기가 생각한 아운의 약점과 일치하였다. 

그렇다면 아운을 상대하기란 결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생각도 같네. 그럼 이 약점을 삼귀에게 전해주게. 그리고 언가가 먼저 

끼어들어 혹시라도 무엇인가를 눈치 채면 곤란하겠지.”

  

“둘 다 조치해 놓겠습니다.”

  

“좋아. 그럼 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네. 그리고 죽은 자 중에 

사혼검 야이가 있다고 들었네. 그렇다면 야한에 대한 감시도 소홀히 

하지 말게. 상황을 봐서 아예 그에게 청부할 것도 생각해 놓게.”  

“명심하겠습니다.”

  

사마무기는 담담한 웃음을 머금고 복면의 사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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