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 제9장. 칠성쾌도(七星快刀) (10/228)

제9장. 칠성쾌도(七星快刀)

- 일곱 개의 별은 유성처럼 빠르다  

아운은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아운은 무림에 나온 이후 처음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개산권 진구나 사혼검 야이, 그리고 금강유성퇴 갈천리 등 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아운이 모대건에게 납치 당하기전, 귀가 따갑게 들었던 고수들이 바로 

오절이었고, 오절 중에 형가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고수였다. 

긴장과 함께 묘한 흥분, 그리고 기대감, 설래임. 

아운은 자신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다행히 겁은 나지 않았다.

  

‘나도 전사의 체질인가?’

  

아운은 그렇게 생각하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한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 형가의 마음을 비틀어 놓았다. 

마치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듯한 표정이 아닌가. 

형가의 눈이 살기로 빛났다.

  

 “네가 잠시 후에도 웃을 수 있는지 보겠다.”

  

형가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가장 무식한 직도 양단의 초식으로 자신의 도를 내리쳤다. 

순간 형가의 도에 일곱 개의 별이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칠성쾌도, 거기다가 검기상인의 경지라니.”

  

한 쪽에서 내상을 치료하던 사혼검 야이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강호 무림에 존재하는 수 천 개의 도법들 중에서 칠성쾌도는 십위 안에 

드는 절대의 도법이었다. 

지금 형가가 펼친 도 초는 칠성쾌도(七星快刀) 중의 칠성단(七星斷)이란 

초식으로 완벽한 검기상인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빠르다.’

  

아운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탄만 할 순 없었다. 

아운은 유성처럼 날아오는 칠성도와 형가를 향해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렀다.

역시 겉보기엔 전혀 변함이 업는 아주 단순한 주먹질이었다. 

네 번의 주먹질이 똑 같다.

  

“꿀꺽.”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일곱 개의 별이 하나로 뭉치면서 아운의 주먹과 충돌하였고, 

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맨주먹과 도가 충돌한 소리치고는 매우 경쾌하고 깔끔한 소리였다.

  

“크윽.”

신음 소리와 함께 아운의 신형이 뒤로 오 척이나 주르륵 밀려나며 입가에 

피가 흘러 나왔다. 

모두들 움찔할 때, 형가 역시 세 발 정도를 뒤로 물러서서 아운을 

쏘아보고 있었다.

확실히 손해 본 것은 아운이었지만, 

형가 역시 일시적으로 진기가 끊어지면서 빠르게 재공격을 감행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운은 죽었으리라.

  

“더 강해지다니.”

  

진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저 새파란 애송이가 펼치는 주먹질은 어디까지 강해질 참이란 

말인가? 

어떻게 펼칠 적마다 강해질 수 있는지 이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형가의 도법을 보고 이번에만큼은 아운이 쓰러지고 말 것이라 

생각했었다.

  

‘지독하다. 어떻게 더 강해졌지.’

  

형가의 생각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너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형가의 표정이 더 없이 신중해졌다.

오요홍은 사형인 형가가 저런 표정으로 도를 든 것은 근래에 처음 보았다.

'그렇게 강한 것인가? 저 어린 놈이.' 

오요홍은 아운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감탄하며 사형인 형가를 보다가 눈이 

커졌다.

형가의 손에 들린 칠성도의 도신에 일곱 개의 별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도신에 문신을 새겨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조금 전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한데 그 밝은 별의 모양이 점차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칠군청랑성(七軍靑狼星)”

  

이번에 말한 것은 묵소정이었다.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으며, 형가의 무공을 알아보고 있었다. 

형가 이 전에 칠성쾌도를 사용했던 인물은 칠성마군(七星魔君) 백무군

(百武君)이었다.

백무군은 이 칠군청랑성이란 검초 하나로 화산파의 장로 두 명을 일 검에 

죽임으로서 그 이름을 강호 무림에 떨쳤었다.

형가 역시 강호 무림에 나와 이 무공을 펼친 적은 단 한번 뿐이 없었다. 

그리고 그 한번으로 무당의 고수를 이길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팽팽한 긴장으로 마주 공격하려 할 때, 

묵소정의 귓전으로 묵천악의 전음이 들려왔다.

  

[저 두 사람이 정면 대결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 

어떨까? 어차피 저 자도 우리를 지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으니…]

  

말하자면 두 사람이 싸울 때, 그것을 기회로 도망가자는 말이었다. 

아운이 들었으면 기가 막힌 일이었다. 

더군다나 묵소정의 시녀들은 무공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결국 두 명의 시녀마저 놔두고 자신들만 도망가자는 이야기 아닌가? 

묵소정은 자신보다 조금 늦게 태어난 죄로 동생이 되어버린 묵천악을 

보았다. 

둘은 쌍둥이였다. 

그래서인가 둘은 유난히 닮은 모습이었다. 

특히 얼굴 윤곽이나 눈 코 입은 거의 빼다 박았다.

갑자기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른다. 

그 닮은 모습이 싫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에게 침을 뱉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자신이나 묵천악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보 같은 소리 말아라! 지금 저쪽은 오요홍 말고도 세 명의 고수가 

호시 탐탐 이쪽을 노리고 있다. 비록 부상을 당했지만, 운신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정운이 오요홍을 막는다고 해도 우리 둘이서 저 

세 사람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 시녀들은 어떻게 

하고.]

  

묵천악은 쓴 웃음을 머금었다. 

어차피 시녀들이야 죽던지 말던지 별 상관이 없었다. 

물론 묵소정에게 그렇게 말 할 순 없었다. 

그러나 묵소정이 그것을 못 알아듣진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묵소정의 말을 듣고 보니 현 상황이 생각보다 쉽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 아운이 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리며 기회를 보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하며 아운과 

형가를 보았다. 

  

  

“차앗”

  

고함과 함께 형가의 도가 대각선으로 흘러 내렸다. 

순간 칠성도에서 뿜어진 일곱 개의 푸른 별이 아운의 칠대 사혈을 노리고

날아왔다. 

십단무극신공으로 가득한 아운의 주먹이 다시 한번 앞으로 쳐 나간다.

  

“이번에도…”

  

같은 초식이었다. 

너무나도 똑 같은 주먹질.

보고 있던 소설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진다.

  

콰앙!

격한 소리와 함께 아운의 몸이 뒤로 휘청거리며 밀려 났다. 

그리고 신음과 함께 아운은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핏덩어리를 다시 집어 

삼켰다. 

하지만 형가 역시도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있었고, 

복면이 찢어져서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선이 가늘면서도 미려한 사십대 중년의 얼굴에, 

독사처럼 예리하게 찢어진 두 눈이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보아 아무래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적아를 막론하고 크게 놀라면서 다시 한번 아운을 

본다. 

오절 중에 두 번째라는 형가의 공격을 막았다. 

무엇보다도 조금 전 주먹보다 또 강해졌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강해지는 주먹인가? 

심호흡을 한 형가는 찢어진 복면을 벗어 던졌다.

  

“대단하다. 대체 무슨 무공이냐? 아니면 힘을 아꼈다가 조금씩 올려서 

쓰는 것이냐?”

  

“연환육영뢰라는 주먹질이다.”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하겠다. 한데 어떻게 사용할 적마다 강해질 수 있는 

것이지? 사공인가?”

  

“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묻는군. 내가 대답해주면, 네 목을 내게 줄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물론 못한다.”

  

“나도 그래.”

  

“뭐 상관없겠지. 얼마나 더 강해지는지 보자.”

  

“얼른 와라. 나도 급해.”

  

아운의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가의 도가 직선으로 찔러 갔다. 

그 모습은 마치 한줄기 섬광이 뻗어가는 것 같았다. 

단순하게 빠르다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도법이었다.

극쾌의 칠군청랑성은 조금 전보다 더욱 빠르고 더욱 날카로웠다.

모두들 형가의 도가 아운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칠성쾌도의 정수가 펼쳐진 셈이었다.

  

이건 너무 빠르다. 

그러나 아운의 주먹 역시 빨랐다. 

섬광이 갑자기 멈추었다. 

모든 사람이 눈을 크게 뜨고 아운과 형가를 보았다.

닿아 있었다.

형가의 도 끝은 정확하게 아운의 주먹과 딱 마주 닿아 있었다. 

정확하게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떨어져 있었다. 

그 상태로 두 사람은 마주 본체 서 있었다. 

마주 대한 아운의 주먹엔 밝은 광채가, 형가의 도 끝에는 푸른 광채가 

어려 있었고, 두 광채는 정면으로 대치하며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 신비한 광경에 모두들 눈을 돌리지 못할 때, 

묵소정이 정운에게 살며시 다가오며 전음으로 말했다.

  

[정 아저씨, 지금 저 젊은 사람의 실력이 형가와 비슷한 경지인거 맞나요?]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믿을 수 없지만, 조금 전 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저런 상황이라면 자칫 양패구상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선 안돼요. 어떤 수를 쓰던 형가가 지지 않으면 우리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설마…]

  

정운은 자신의 설마가 맞다는 것을 알았다. 

묵소정이 소매에서 비녀를 꺼내 손에 감추는 것을 본 것이다.

  

[안 됩니다. 아가씨…]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요.]

묵소정의 말에 정운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지금은 묵소정의 말이 맞았다. 

어치피 자신들을 죽이려고 기습을 해온 무리였다.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무슨 정도가 필요한가? 

살아남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었다. 

한데 무엇인가 마음에 걸렸다. 

  

‘저 자다.’

  

아운이었다. 

아운의 눈빛이 걸렸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아직은 아닙니다.]

  

정운의 전음을 받은 묵소정이 멈칫 할 때였다.

  

푸르륵.

괴이한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후욱!”

거칠게 숨을 내 쉰 아운과 형가가 눈을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가는 기가 막혔다.

설마 이제 이십 중반 정도의 젊은 애송이와 싸워 자기가 이기지 못할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못했다.

어이가 없지만 현실이었다.

  

“대체 어디가 끝이지?”

  

“아직 한 주먹은 남았다.”

  

아운이 다시 주먹을 내지르려고 하자 오요홍이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쳐라!”

  

순간 기회를 보고 있던 사혼검 야이와 개산권 진구, 

그리고 유성금강퇴 갈천리가 동시에 아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또한 형가도 몸을 일으켜 다시 한번 칠군청랑성을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 뿜어낸 칠군청랑성은 조금 전의 그것에 비해 겨우 육 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또 하나의 다행이라면 오요홍이 정운을 견제하느라 움직이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그와 동시에 묵소정의 손에서 비녀가 형가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적절한 도움이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아운의 처지가 좋아진 것은 절대 

아니었다. 

무려 네 명의 협공. 

물론 그들은 모두 내상을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운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을 조여 오는 가공할 위력의 절기들. 

아운은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 희미한 모습으로 떠오르는 북궁연과 여동생의 모습까지, 

그리고 고대성의 모습이 한꺼번에 아운의 기억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아운은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뚜렷하게 알고 

있었으며, 판단력 또한 흔들리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뒷골목을 전전하며 수십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아운이었다. 

이 정도에 절망하진 않는다.

  

일곱 걸음이면. 

  

칠보둔형신기를 전력으로 펼쳤다. 

그러나 완벽하게 익힐 시간이 없었기에 무엇인가 비숙한 기분이었다. 

후회가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 멀리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이름을 부리진 않았지만 그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란 걸 알 수 

있었다. 

아운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내 질렀다.

여섯 번째 주먹이었고, 연환육영뢰의 마지막 주먹이었다.

공격하던 네 명의 공격이 하나로 모아지며, 

아운의 주먹에서 뿜어진 밝은 광채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퍼엉!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운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비명이 연이어 터지면서 아운과 정면으로 충돌한 

네 명 중 사혼검 유이는 무려 삼 장이나 날아가 즉사했고, 

진구와 갈천리는 땅바닥에 쳐 박힌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눈에 보아도 치명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형가 역시 일장이나 뒤로 밀려 나가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왼쪽 어깨엔 묵소정의 비녀가 꽃혀 있었다.

오요홍은 감히 덤빌 생각조차 못하고 그저 멍하니 아운을 본다. 

이제 몸 성한 침입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

  

“크억!” 

신음과 함께 피를 토해낸 아운은 시원한 표정으로 정운과 묵가 남매를 

돌아보았다.

  

“이제 갑시다. 아무래도 우리만 온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정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묵가 남매는 질린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으며, 

소설은 눈물이 글썽한 시선으로 아운을 살피고 있었다.

아운은 소설에게 다가섰다.

아직 여자라고 말하기엔 너무 어린 소설은 흑백이 또렷한 눈으로 아운을 

올려다보았다.

  

“지금부터 너의 청부를 이행하겠다.”

  

소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제 서야 정운은 아운의 정체를 알았다. 

낭인시장에서 그 볼 품 없어 보였던 삼류 낭인무사. 

그때를 떠올리고 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눈을 파버리고 싶었다.

  

‘정운아 넌 아직 멀었구나. 그렇게도 사람 볼 줄 모르다니, 나보다 이제 

열네 살의 어린 시녀가 더 났구나. 허허.“

  

정운은 허탈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때 자신과 묵천악이 했던 행동을 떠 올렸다. 

속으로 자신과 묵천악을 얼마나 비웃고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끄러워하는 정운에 비해 묵천악은 화가 났다. 

  

‘교활한 새끼,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나를 놀렸구나.’

  

묵천악은 실력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아운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생각은 별로 고맙지 않았다.

그 보다는 자신보다 잘나 보이는 아운이 싫었다.

너무 뛰어나서 자신이 그에게 가려진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위축되는 

자신이 싫었고, 모든 관심이 그에게 머물러 있는 지금의 상황도 싫었다. 

그래서 아운이 싫었다.

  

  

아운은 묵소정에게 다가섰다. 

  

“소설의 주인인가?”

  

처음으로 아운이 묵소정에게 제대로 시선을 주었다.

묵소정은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이 마치 꿈인 것 같았다. 이제 눈을 뜬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왜? 무엇 때문에 자신과 동생을 죽이려 했을까? 

재물을 노리고 공격한 인물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역시 밖에서 나도는 말도 안 되는 소문 때문일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의심쩍었다. 

그러나 의문은 나중이었다. 

  

묵소정은 아운을 보았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약간 마른 몸과 보통정도의 키. 

겉으로 보기엔 별로 강해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자가 조금 전 그 무지막지한 위력을 보여주었던 인물이 맞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 본 현실이었다. 

  

믿어야만 한다.

이상하게도 상대는 반말을 했는데, 반감이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니 그 정도는 용납해도 된다는 무의식에 

발로일지도 모른다.

묵소정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맞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내가 보호한다.”

  

“나를 죽이러 오지 않았나요?”

“그랬지.”

  

“그런데, 왜?”

  

물라서 묻는 것일까? 

조금 전 대충 설명한 것 같은데, 확인절차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확실하게 해 두려는.

아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못 들었나, 소설이 먼저 나를 샀고, 난 그녀의 청부를 수락한 적이 있었지. 

그 청부가 바로 당신들을 돌봐 달라는 것이었어.”

  

묵소정은 소설을 보았다. 대체 무슨 돈으로 이런 강자를 살 수 있었단 

말인가? 

아운은 묵소정의 의문을 알았다.

  

“주먹밥 한개.”

  

묵소정이나 근처에 있던 묵천악, 그리고 정운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기에 아운을 보고만 있었다.

아운은 확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청부금이 주먹밥 한 개였다.”

  

“겨우…”

  

묵천악이 자신도 모르게 한 말이었다. 

아운이 묵천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에 광채가 어린다.

묵천악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만근의 무게로 자신을 내리 누르는 느낌이었다. 

  

“주먹밥 한 개의 가치를 우습게 보는 군. 차후 주먹밥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아운은 천천히 걸어가며 소설을 손짓으로 불렀다.

  

“소설, 이제 여길 나가자.”

  

소설은 묵소정을 바라보았다.

  

“좀 기다려요.”

  

묵소정은 아운의 걸음을 멈추게 한 후 다시 별채 안 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아운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간단하게.”

  

묵소정은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아운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면서 무극진기를 끌어 올렸다. 

아직 마지막으로 한 초식을 펼칠 수 있는 힘은 남아 있었다. 

두 시진이 지나면 다시 처음부터 초식을 펼칠 수 있지만, 

그 안에  강적을 만난다면 단 한번의 주먹질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껴야 한다.

아운은 잠시 동안 조금 전의 격렬한 결투들을 하나씩 떠 올려 보았다. 

이번의 대결에서 아운은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 지니고 있는 무공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아운은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자기가 제대로 배우고 터득했다고 생각했던 무공들이 실제 생사를 건 

결투에서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우선 십단무극신공과 육삼쾌의연격포만 해도 그 힘을 제대로 다 사용하지 

못했다.

단순하게 주먹질 여섯 번 한 것밖에 없지만, 

그 안에 숨은 묘리를 제대로 알고 펼친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자신은 아직 십단무극신공을 육단계까지 밖에 터득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육삼쾌의연격포가 지닌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또한 칠보둔형신기는 제대로 응용조차 못했다. 

특히 무극신공과의 조화가 엉망이었다.

역시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과 수련은 많이 달랐다.

  

‘좀 더 연구하야고 배워야겠다. 내 대에 와서 구전무적권문의 이름을 

수치스럽게 할 순 없다.’

  

아운은 결심을 굳혔다. 

  

‘이왕이면지지 말자.’

  

그의 시선이 형가를 보았다가 묵가 남매를 향했다.

  

‘지면 자존심 구겨지잖아. 그건 안 되지.’

  

아운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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