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청부이행(請負移行)
- 주먹밥 세 개나 나를 불렀다.
별채엔 모두 네 명의 복면인들과 세 명의 여자,
그리고 한 명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 중에서 중년의 남자와 청부자인 복면인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세 명의 복면인은 세 명의 여자를 감시하고 있었다.
아운은 중년의 남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시녀 소설이 자신에게 청부할 때 소장주인 묵천악과 함께 있었던
그 중년인이었다.
별채 앞으로 다가온 아운은 가볍게 한 숨을 쉬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는데도
두 명의 복면인은 그 사이에 묵가장의 무사들을 전부 처리하고 먼저 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운이 왔을 때, 마침 여자 복면인도 결투에 끼어들어 협공을 하려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그 동안은 여자들을 감시만 하고 있었다가,
두 명의 복면인이 합세하자 이제야 협공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모두 잠시만 기다리시오.”
아운은 별채에 도착하자 일단 결투부터 멈추게 하였다.
아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결투를 멈추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모두 결투를 멈추고 아운을 볼 때, 시녀 차림의 두 소녀 중에 한 명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아운은 한 눈에 소설(素雪)을 알아보았다.
그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걸어가 소설의 앞에 섰다.
소설의 앞에는 외모로 강호 무림의 삼봉에 버금간다는 묵가장의 소공녀인
묵소정(墨少情)이 있었지만, 아운의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않았다.
묵소정은 태어나서 난생처음 남자에게 무시를 당해보았다.
나타난 남자는 처음 나타나서 자신에게 단 한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아니 스치듯이 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시선은 누군가를 찾기 위해 스쳐가는 그런 눈빛이었을 뿐이었다.
다른 누구들처럼 동경에 가득한 시선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아름다음에
감탄한 그런 시선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묵소정으로서는 너무도 낯설은 눈이라 하겠다.
“오랜만이구나, 소설.”
소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말 그 분이 맞나요.”
“맞다. 나는 너의 청부를 이행하러 왔다.”
소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제 죽었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아운이 나타났다.
물론 아운이 나타났다고 해서 지금 이곳의 위험을 벗어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과의 작은 약속을 이행하러 온
아운이 고마웠다.
하지만 너무 위험했다.
소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 그 청부는 취소하겠습니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세요.”
“그럴 순 없지.”
“어쩌자고 이 자리에 오신 겁니까? 여긴 너무 위험해요. 어차피 아저씨가
계신다고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자고라니, 주먹밥 세 개가 나를 불렀기에 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과를 예측하고 청부를 이행하지 않는다.”
소설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 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제발….”
“너무 걱정 말아라.”
아운이 소설을 달래고 있을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의 말을 끊었다.
“뭐하는 짓이냐?”
상황을 몰라 하던 복면인들 중 청부자인 남자 복면인이 아운에게 물었다.
“보면 모르겠소. 나는 이 아가씨에게 청부를 받은 것이 있고,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 청부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요.”
“그러면 이쪽에서 청부한 것은 어쩔 참이냐?”
어느새 자신의 일행과 나란히 선 진구가 물었다.
“청부 우선의 법칙이 있잖소, 미안하지만, 이 소녀가 먼저 청부를 하였기에
어쩔 수 없게 되었소. 참, 그쪽에서 받은 청부금은 돌려 드리겠소.”
아운은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청부자인 복면인에게 던졌다.
“아, 그리고… 이것은 이자요.”
아운은 금 덩어리 하나를 더 꺼내서 다시 던진다.
모두들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하긴 묵천악이나 묵소정은 물론이고 청부를 한 소설마저도 이러둥절한
표정이고 보면, 복면인들에게 안겨진 황당함이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혼검 야이의 눈이 살기로 빛났다.
“잘됐다. 어차피 일이 끝나고 네 놈을 죽이려던 참이었다.”
야이의 말에 아운은 피식 웃었다.
“흑점사 곡현이 시켰던가?”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상황이라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청부자를 말할 순 없지. 하지만 청부금은 황금 열 냥이었다.”
“겨우…”
몹시 실망한 표정.
겨우 열 냥이라니.
“앞으로 일 년 안에 내 몸 갑은 황금 천 냥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아운의 자신만만한 말에 모두들 노골적으로 비웃는 눈빛이었지만,
진구만은 연전히 냉정했다.
‘어쩌면…’
진구는 아운의 말이 무조건 허튼 소리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무시하기엔 조금 전에 아운이 보여준 몇 번의 무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태연해 보이는 야이 역시 아운의 실력에 대해서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서는 확실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 뿐이다.
아운이 아무리 뛰어난 무공실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지금 자신을 포함하여 이 자리에 있는 여섯 명의 고수들 보다 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라도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운이 익힌 십단무극신공으로 인해 내공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관계로
그의 무공 실력을 가늠하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았다.
“허황된 생각은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만, 오늘 네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진구의 말에 아운은 여전히 태연했다.
“그런 능력이 될지 모르겠다.”
“미친놈!”
진구가 싸늘하게 말하며 달려들었다.
이미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진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성명절기인
개산권을 펼치려 하였다.
한데.
“기다려.”
아운의 고함에 공격하던 진구의 동작이 멈칫 하였다.
“뭐냐?”
“칠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나에게 칠초만 견디면, 내가 진거로 하지. 아니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하고 모두 순순히 물러서라”
묵가 남매는 물론이고 칠살무정검(七殺無情劍) 정운조차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묵가장의 인물들이 그 정도니 복면인들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황당함이 지나치자 마치 놀림을 당한 기분이었다.
“이런 개자식이!”
고함과 함께 제일 먼저 한 명의 복면인이 달려들었다.
복면인은 손에 들은 단검으로 아운의 입을 찔러 왔다.
빠르고 명쾌한 동작이었다.
‘어색하다.’
아운은 복면인의 동작에서 무엇인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어색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검을 사용하는 자가 아니군. 자신의 진짜 절기를 펼치지 않고 덤비다니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아운의 주먹이 복면인의 검봉을 향해 직선으로 치고 나왔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맨주먹으로 찔러오는 상대의 검 끝을 치고 나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검과 주먹의 충돌 바보가 아니면 누가 이길지 다 안다.
아니 바보도 그것은 알 것이다.
한데 검봉과 주먹이 마주 치려는 순간,
아운의 손이 묘하게 틀어지면서 복면의 검봉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동시에 아운의 손에서 기이한 반탄력이 생기면서 복면인의 검을 옆으로
밀어내었다.
검봉을 타고 내려온 아운의 손바닥이 다시 앞으로 향하며서 복면인의
가슴을 내 친다.
설명이 길뿐 그 모든 동작은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는 단룡수의 용현단추(龍?斷鎚)로 상대의 무기를 쳐서 자신을 방어함과
동시에,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초식이었다.
비록 방어에 중점을 둔 초식이었지만, 맨살로 상대의 무기를 쳐내는 것이
아니라 손에 경기(勁氣)를 뿜어 상대의 무기를 쳐내고,
상대를 공격을 일순간에 받아치는 공격 수법이었다.
복면인은 기겁을 해서 몸을 틀었지만,
아운의 손바닥을 피하기에는 둘 사이가 너무 가까웠다.
“퍽!”
소리와 함께 복면인이 뒤로 약 일 장 정도나 주루룩 밀려났다.
“컥!”
복면이 물어 젖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복면인들과 묵가장의 인물들은 모두 얼어붙고 말았다.
설마 아운의 무공이 복면인을 단 일초에 제압할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물론 지금의 경우엔 복면인이 약간 흥분한 상태였고,
아운을 얕보았던 점도 관과 할 순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해도 아운이 보여준 한 수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 실력으로 어떻게 백 냥이나 받고 살수 노릇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군.”
아운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복면인은 가볍게 심호흡을 한 다음 복면을
벗어 버렸다.
마치 살쾡이처럼 생긴 얼굴, 그리고 뺨에 있는 커다란 반점이 인상적인
오십대의 남자였다.
피를 머금은 입술이 비정상적으로 붉었다.
남자의 이름은 갈천리였다.
“네 놈은 지금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글쎄, 난 내가 한말에 후회 한 적이 없어서.”
아운은 여전히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표정과 말투를 본 정운은 은근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호에 초출인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여유를 가질 수 있다니.
저건 몇 번이나 생사의 결투를 해 본 노강호의 모습 같구나.’
정운이나 복면인들로서는 아운이 뒷골목에서 얼마나 거칠고 모질게
살았는지 알 리가 업었다.
“이놈! 네 주둥이가 언제까지 나불거릴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빨리 와라. 날 세기 전에.”
“이익!”
괴이한 고함과 함께 갈천리는 검을 네 던진 채로 아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의 발이 기이한 각도로 휘면서 아운의 얼굴,
정확하게는 아운의 입을 향해 날아왔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상대의 발을 보면서 아운은 상대의 장기가 각법
임을 알 수 있었다.
아운의 몸이 뒤로 젖혀지면서 사구아의 초식으로 발을 쭉 뻗으며 들어
올렸다.
아주 간단하게 초식을 펼쳤는데 이 초식이 아주 기가 막히게 상대의
허점을 파고든다.
아운을 공격하기 위해 공중에 거의 정지 상태로 휘두른 갈천리의 발은,
아운이 몸을 젖히면서 허공을 차게 되었고, 쭉 뻗어서 차 올라오는 아운의
발끝은 공중에 떠 있는 갈천리의 괄약근을 공격하는 양상이 되었다.
기가 막힌 받아 차기라 할 수 있었다.
모두 아운의 깔끔한 공격에 감탄하는 순간,
갈처리는 그 자리에서 몸을 회전하며 한 발로 아운의 발을 막아감과
동시에 다른 한 발로는 아운의 칠대 사혈을 걷어차고 있었다.
허공에서 뜬 채로 이런 동작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그의 발은 직선 운동을 하면서 연환으로 아운을 공격하려 하였다.
멋지다.
기가 막힌 공격법이었다.
보던 사람들의 눈에 경탄한 빛이 떠오른다.
마치 유성처럼 난타하는 갈천리의 발길질은 당장이라도 아운을 뭉개
버릴 듯 했다.
“금강유성퇴(金剛流星腿) 갈천리(葛天理)였군.”
정운이 중얼거리는 소리는 비록 작았지만, 모든 사람이 듣기엔 충분했다.
모두 새삼스런 눈으로 갈천리를 본다.
호북성에서 발을 쓰는 무공만 따진다면,
가장 강한 세 명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호북삼각(湖北三脚)이라 불리는 세 명의 고수 중에 가장 잔인하고,
자존심도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무공은 소림의 십팔금강퇴(十八金剛腿)를 토대로 만들어졌는데,
원래의 소림무공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위력도 강하다고 소문은 절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의 공격이 그것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정운의 말을 들은 소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갈천리라면 그녀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이제 나이 이십대 중반의 초보 무시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젊은 축에서 제법 강하다고 할 수 있는 묵가장의 남매라도 일대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가 갈천리였다.
소설이 안타까운 눈으로 아운을 보다가 눈을 둥그렇게 뜬다.
모두들 아운이 곧 쓰러질 것이라 생각할 때였다.
아운의 양 손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며 갈천리의 발을 천부 쳐내는 것이
아닌가?
단룡수 중에 무호관인(舞護貫忍)이란 초식이었다.
모두들 자신도 모르게 와! 하며 신음 비슷한 감탄성을 내 지를 때,
상대의 발을 막기만 하던 아운의 주먹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우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막강한 경기가 그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와 아직도
허공에 있는 갈천리의 가슴으로 밀려갔다.
금강신권의 절초인 금강추(金剛鎚)였다.
“이익!”
갈천리의 발이 막강한 경기를 머금고 아운의 주먹과 정면으로 충돌해 갔다.
그러나 꽝! 하는 소리가 들리며 끄윽! 하는 소리와 함께 갈천리의 신형이
바닥에 내려서더니 무려 다섯 걸음이나 물러서고 말았다.
아무래도 허공에 떠 있던 갈천리가 불리한 상황이었다.
근데 서 있는 갈천리의 오른발이 덜렁거리는 것으로 보와 방금 전의
충돌로 상당히 손해를 본 것 같았다.
갈천리가 공격하기 시작해서 단 사 초식만의 일이었다.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아운을 본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다섯의 복면인들 중에 청부자인 남녀를 제하고는
일대일로 갈천리와 겨루어서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을 만한 고수는
없었다.
결국 진구나 야이가 달려들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뜻과 같았다.
“대체 무슨 권법이냐?”
진구는 우선 그것이 궁금했다.
진구는 권으로 일가를 이룬 고수였다.
당연히 권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무림에 제법 알려진 권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아운이 사용하는 무공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소림의 백보신권(百步神拳)이나 아미의 금강사자신권(金剛獅子神拳)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달랐다.
“항마금강신권이라고 하는 사문의 권법이니, 당신이 몰라본다고 스스로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을 거야.”
아운이 진구의 마음을 읽은 듯이 말했다.
“대단하군.”
“아직 완전하진 못하지.”
개산권 진구로서는 정말 기죽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운의 권법이 자신의 개산권 보다 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제 한 명 쓰러졌군. 다음은 누구지?”
아운이 복면인들을 주욱 훑어보며 한 말이었다.
모두 움찔한다.
“모두 뭣들 하는 것이냐? 한꺼번에 덤벼라!”
복면녀의 고함과 함께 개산권 진구, 사혼검 야이와 또 한명의 복면인이
한꺼번에 아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아운의 신형이 좌측으로 주르륵 비켜갔다.
그렇게 되자 아운의 좌측 가슴 부분을 공격하던 사혼검 야이와 정면으로
마주치는 상황이 되었다.
아운의 주먹이 앞에 있는 사혼검 야이의 정면으로 올 곧게 뻗어갔다.
순간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밝은 광채를 띤 경기(勁氣)의 소용돌이가
아운의 주먹에서 튕겨 나왔다.
그것을 본 청부 복면인과 여자 복면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궈, 권기상인(拳氣傷人)?”
“어떻게 저 나이에…!”
권기상인의 경지라면 권경(拳勁)이나 권의 경기(勁氣)와는 차원이 다른
무공이었다.
물론 검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검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펼치는 검기상인과 자신의 신체 일부분으로 펼치는 권기상인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면도 있었다.
기의 흐름과 기의 특성상 맨 손으로 펼쳐야 하는 권기상인의 경지가 더욱
어렵다.
무림에 권강(拳?)은 둘째 치고,
권기상인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몇이나 되었던가?
당연히 지금 아운이 펼치는 육삼쾌의연격포(六三快意連擊砲) 중,
전 육식에 해당하는 연환육영뢰(連環六影雷)는 최고수준에 이르면
권강(拳?)의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드디어 삼백 년 만에 구전무적권문의 최고 절기가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야이는 기겁을 해서 자신의 검으로 검기의 막을 펼치며 아운의 일 권을
막았다.
“검기막(劍氣膜)이다.”
모두 다시 한번 경탄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과연 낭인촌 최고의 살수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비록 강강으로 펼치는 검막과는 차원이 한참 아래지만,
검기막 또 한 상당히 어려운 검의 경지였다.
하지만 지금 아운은 절대 무적이라는 육삼쾌의연격포를 펼치고 있었다.
물론 누구도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콰앙!
격한 폭발음과 함께 야이의 검이 부러져 날아갔고,
야이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크윽.”
신음과 함께 입가에 핏줄기가 턱 아래까지 이어졌다.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탓이다.
야이가 아운의 공격에 내상을 입는 그 순간,
진구는 자신의 개산권 중에 최고의 절기인 개산천봉(開山千峰)의 초식으로
아운의 얼굴을 공격하였다.
그때 아운이 진구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진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한데 그 권법이 조금 전 야이를 공격하던 그 초식 그대로였다.
또한 그 주먹에서 뿜어져 오는 권기의 광채도 같았고, 힘도 비슷해 보였다.
또한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아운은 자신의 전 힘을 그 한주먹에 모두 실은
것 같았다.
그것을 본 모든 사람들은 아운이 익힌 것은 권기상인을 펼치는 단 하나의
강기공(?氣功) 뿐이라고 생각했다.
진구는 이미 아운의 힘을 보았기 때문에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비록 야이를 부상 입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라면 자신의 개산권 최고의
초식도 크게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암습을 장기로 하는 야이에 비해, 권을 장기로 하는 진구의 내공이 훨씬
정심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구는 정면충돌을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 사이에 자신의 동료인 복면인이 아운을 해치우면
된다.
그러면 손해 볼게 업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강기공도 마찬가지지만, 한번 펼칠 적마다 많은 내공이 소모
된다.
강기공을 완벽하게 익혔다고 해도 지금 아운이 펼친 무공 정도라면 결코
두세 번 이상을 연달아 펼칠 수 없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강기공은 숨겨 두었다가 마지막 마무리로 사용하거나 정말
급할 때, 사용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한데 처음부터 강기공을 펼친 아운의 경우는 경험이 미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생각은 무공을 제대로 모르는 두 시녀를 빼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정운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당장이라도 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의 앞에는 침입자들 중 가장 강한
복면인(청부자인 복면인)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묵가장의 남매 또한 마찬가지였다.
‘멍청한 자식! 꽤나 난 척 하더니, 겨우 이 정도였나.’
묵소정은 속으로 아운을 욕하고 말았다.
자신을 돕기 위해서 왔지만, 처음부터 자신을 무시한 아운이 이유 없이
눈에 거슬렸었다.
그렇게 각자의 생각을 묻고 있을 때,
아운의 권기와 진구의 개산권이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충돌하였다.
“커억!”
헌데, 격한 신음 소리와 함께 진구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 났다.
“이, 이런 비겁한 놈, 본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컥.”
진구는 피를 토해 놓고 억울한 표정으로 아운을 보았다.
결국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않고 말았다.
아주 심한 내상을 입었으리라.
지금 아운의 권경은 조금 전 야이를 공격 할 때보다 무려 배 이상이나
강했다.
그러니 본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오해를 살만도 했다.
아운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지만, 뭐 어떻게 하랴.
이 상황에서 놀라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마 저 정도로 강할 줄이야. 더군다나 진구의 말을 빌리면 교활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멍청한 놈. 내가 실력을 숨기고 있었는지 아닌지도 파악하지 못한 주제에
말이 많군.”
아운은 냉랭하게 비웃으며 또 한명의 복면인을 보았다.
복면인은 도를 한 자루 들고 있었다.
호남성에서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진혼도(鎭魂刀) 정곽(丁郭)은,
개산권 진구가 아운과 충돌하는 순간 기습을 하려고 했었다.
한데, 뜻밖에도 진구가 단 한주먹에 무너지고 말자 주춤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운의 주먹이 다시 한번 내질러 온다.
세 번째 주먹이었다.
그리고 그 주먹이나 기세, 하다 못하 강기의 질까지 조금 전과 똑 같았다.
“또 같은 무공인가?”
정운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두 번의 정면 충돌에서 아운 역시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내공 소모도 많았을 것이다.
그 점이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경력(勁力)을 담은 도와 아운의 주먹이 충돌
하였다.
순간 크악! 하는 비명과 함께 하나의 그림자가 뒤로 주루룩 밀려나더니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얼핏 보아도 즉사한 것 같았다.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운과 복면인을 보던 묵가장의 식솔들이나 청부자인
두 남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연히 죽은 것은 복면인, 진혼도 정곽이었다.
그가 자랑하던 박도는 네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고,
가슴은 완전히 함몰되어 있었다.
실로 언청난 권력(拳力)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아운이 보여준 주먹의 힘은 조금 전보다 오할 정도는
더 강해보였다.
처음 주먹으로 권기상인의 경지를 보여주었을 때에 비해서 부려 세 배
정도의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전력을 다한 강기 무공이 뒤로 갈수록 강해질 수 있을까?
보기는커녕 들어보지도 못한 괴사였다.
“또 강해졌다.”
여자 복면인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침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강호에 그 이름조차 생소한 청년 무사 하나가 단 세 주먹으로 강호의
노 고수 두 명을 무력화 시켰고, 한 명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묵가장의 소장주라고 알려져 있는 묵천악은 멍한 시선으로 아운을 보았다.
후기지수 중에 자신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자는 몇 안 된다고 자부했었다.
한데, 아운이 지금 보여준 무공은 자신으로선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였다.
한 주먹에 한 명씩이라니.
같은 밥 먹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면,
비슷한 나이에 어찌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겠는가?
묵천악은 슬며시 고개를 드는 강한 질투심을 느꼈다.
특히 아운을 보고 감탄해 하는 정운을 보다 이상하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제길 사람을 죽였다.’
태연한 표정의 아운은 속으로 끓어오르는 혈기를 겨우 집어 삼키며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세 번의 정면충돌에서 아운 역시 가벼운 내상을 입고 있었다.
아주 무거운 상처는 아니지만, 결코 가볍지도 않은 상처다.
더군다나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쓰리게 하였다.
사실 육삼쾌의연격포는 일단 펼치기 시작하면 펼치는 사람조차 그 위력을
통제할 수 없었다.
뒤로 갈수록 첫 초식의 일 배씩 강해지는 연환육영뢰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다.
“정말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청부자인 복면인은 정말 감탄한 목소였다.
“하지만, 네 놈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복면인의 전신에서 갑자기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으로 보아 복면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절기를 제대로 발휘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주먹은 써 봐야 아는 것이고, 무력은 맞 붙어봐야 아는 것이다. 너무
장담하면 곤란한데.”
아운은 여전히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복면인은 등 뒤에 차고 있던 도를 뽑아 들고 아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 기세로 인해 아운의 옷자락이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일단 청부자인 복면인이 아운에게 다가서자 당황한 것은 여자 복면인
이었다.
우선 그녀 혼자로서는 정운이나 묵가장의 남매를 한꺼번에 상대하기가
벅찼다.
칠살무정검(七殺無情劍) 정운(鄭雲)이라면 그녀와 실력에서 막상막하였다.
거기에 묵가장의 남매가 합세한다면 절대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라면 복면인이 안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허리에서 비단 체대를 풀어,
두 겹으로 겹쳐 있던 비단을 펼쳤다.
그러자 안에서 절편(絶鞭) 하나가 나타났다.
약 오 척 칠 촌 정도의 짧은 편은 검은 색으로 은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정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금 전 아운에게 다가서는 복면인과 겨루어 본적이 있었다.
한데 그는 도를 사용하지 않고도 전력을 다한 자신과 겨루어 뒤지지
않았다.
지금 복면인이 도를 뽑아 들었다면, 그의 절기가 도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도를 뽑으면 자신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일 것이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정체가 궁금했었다.
한데, 여자가 꺼낸 절편을 보고서야 여자의 정체는 물론이고 복면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추혼절편(追魂絶鞭) 오요홍(吳妖紅)이었군. 그렇다면 저 자는 칠성쾌도
(七星快刀) 형가(邢苛)겠지.”
정운의 말을 들은 묵가장의 남매는 물론이고 같은 편인 진구의 표정마저
굳어졌다.
근 백 년 전부터 현제에 이르기까지 무림은 최고의 부흥기라 할 만큼
많은 고수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구파일방을 비롯해 오대세가로 대표되는 정파는 물론이고,
흑도 사파의 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힘이란 지니고 있으면 쓰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많은 고수들이 나타나면서 그들은 자신의 실력을 인증 받기 위해,
또는 자신의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그 결투는 다시 원한 관계를 만들어 또 다른 결투를 만들어 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실력 좀 있는 무림인들은 여기저기서 피를 흘렸다.
특히 정파와 흑도사파의 인물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죽이고 죽였다.
결국 무림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어제 나타나서 절대지지 않을 것 같았던 고수가,
오늘 나타난 신진 고수에게 쓰러지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결국 사십 년 전, 혈궁대전(血宮大戰)이 벌어지면서 그 혼란은 어느 정도
일단락 되었지만, 그 이후 강호무림은 무림맹과 사혼혈궁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단체로 양분되고 말았다.
또한 혈궁대전은 절대쌍절과 신주오기 혈궁칠사란 절대의 영웅 고수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무공은 말 그대로 천외천.
절대 강자들이라 할 수 있었고, 무림사에 이렇게 강하고 이렇게 많은
고수들이 한꺼번에 나왔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십 년, 그런데 그 사십 년 동안 무림엔 또 다시 수많은 신진
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엔 무림맹과 혈궁의 인물들도 있었지만,
그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고수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들은 혈궁대전이 있기 전에 사라졌던 수많은 고수들의 후예이거나,
그들의 진전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추후 혈궁이나 무림맹에 귀속되는 자들도 많았지만,
자신만의 영역을 지닌 채 자유롭게 강호를 주유하던 자들도 많았었다.
이 자유 무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고수들이 칠흉과 사협, 삼살, 오절
이었다.
그리고 형가와 오요홍은 바로 이 오절 중의 인물이었다.
강호 무림을 혈궁과 무림맹이 양분하고 있는 가운데,
오절이라는 명예까지 얻은 형가와 오요홍이였다.
그 오만한 구파와 오대세가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정도라면,
그 무공의 깊이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삼 년 동안 사라졌던 저들이 어떻게, 왜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이건
정말 안 좋다. 설마… 제발 내 생각이 틀리길 빈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정말 너무도 비참한 일이다.’
정운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운이 형가를 이길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저들을 여기로 보낸 인물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것만큼은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