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장. 개입(介入)-무림, 끌려들다
흔적을 따라 이동하던 왕팔과 추적대는 한 고루거각군을 앞에 두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가…….”
당혹해하는 왕팔을 대신해 공도가 현판을 읽었다.
“하북팽가!”
북경에 명의 도읍이 들어서며 누백 년 이어오던 가업을 북쪽인 승덕으로 옮긴 무림의 강력한 무가다.
“왜 이곳이 여기에……?”
공도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 공주를 납치한 이의 흔적을 따라온 곳이 바로 하북팽가였기 때문이다.
“설마 이 잡것들이 공주를?”
공도의 말에 염홍과 이필이 동시에 말했다.
“얘들이 왜?”
당연히 드는 의문이다. 하북팽가가 뭐가 아쉬워서 황실의 사람을, 그것도 공주를 납치한단 말인가?
“미친 거지. 정천맹이 망하더니 이것들이 이젠 아주 미쳐 버린 거야.”
육엄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아무리 관과 강호가 서로를 침범치 않기로 하였다곤 하나 공주를 납치한 강호의 무문을 용납할 만큼 만만한 황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아무리 도왕을 보유한 하북팽가라 해도 수십만 황군을 상대로 버텨 낼 만큼의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하북팽가가 황군에 쓸려 버려도 백도 애들이니까 우리야 뭐…….”
공도의 뒷말이 흐려졌다. 분명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백도놈들이 분명한데, 이게 또 관부가 쓸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마음이 개운치 않았던 것이다.
“일단 안을 조사해봐야 하지 않을 까요?”
염홍의 물음에 왕팔이 고개를 저었다.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예?”
“썩어도 준치라고, 도왕이 있는 곳이야. 네들이 간이 커져서 겁이 없어진 모양인데, 난 십대고수가 웅크리고 있는 곳에 숨어들어갈 마음은 없다.”
“그러면 이대로 돌아갑니까?”
공도의 물음에 왕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탓이다. 그런 왕팔의 마음을 눈치챈 염홍이 조심스럽게 권했다.
“조금만 살펴보는 겁니다. 도왕의 그림자만 봐도 도망가면 되잖습니까? 섬마공이면 제아무리 도왕이라도 쫓아오지 못할 겁니다.”
섬마공에 비할 정도의 경공은 개방의 건곤섬공(乾坤閃功)뿐이다. 물론 성취에 따라 속도에도 차이가 나겠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추적대의 섬마공은 공히 칠 성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 정도면 팽가의 대표적인 경공인 어기신풍으로도 쫓기 어려웠다.
그 말에 회가 돌았는지 왕팔이 다짐을 주었다.
“좋아. 대신 도왕의 코빼기만 보여도 튀는 거다.”
“두말하면 잔소립죠.”
대원들의 다짐에 왕팔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팽가를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밤까지 기다린다. 아무리 섬마공이라도 은신법은 아니니까.”
“예, 대주.”
그렇게 날이 지길 기다리는 이들의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마침내 해가 지고 달이 떴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이들을 왕팔이 잡았다.
“달이 질 때까지 기다린다.”
“예?”
“새벽 여명이면 달의 밝기가 가장 어둡다. 그때 움직인다.”
“하지만 여명은 너무 짧습니다. 그 시간엔 안까지 살피지 못한다고요.”
염홍이 투덜거리자 왕팔이 눈에 쌍심지를 돋웠다.
“그러다 걸리면 어쩌고?”
“저하고 이필이 나름대로 은신법을 익히고 있으니 크게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홍의 말에 이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만마대에서 수행하던 임무가 잠입과 척살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자신 있냐?”
“걱정 마십시오. 가능한 한 고수 근처엔 가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래. 세상은 가늘고 길게 사는 거다. 짧고 굵은 거,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실익은 아무것도 없다. 잊지 마라.”
왕팔의 말에 피식 웃어 보인 염홍과 이필이 움직이자 남겨진 왕팔과 공도와 육엄, 가혁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들이 담을 넘는 것을 지켜보았다.
피가 마르는 듯한 시간이 반 시진 정도 흐르고, 이필이 담을 넘어왔다.
“염홍은 어쩌고?”
“공주가 있는 것 같은 전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럼 찾은 거야?”
“그게 확실치 않습니다만…….”
“뭐야, 확실히 말해.”
왕팔의 독촉에 이필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실은 공주로 보이는 여인이 머무는 전각을 발견했습니다. 한데 경비도 없고, 그다지 출입을 강제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팽가의 여인들이 들락거리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그럴 리가 없잖아. 잘못 짚은 거 아니야?”
“그게… 저희도 긴가민가했습니다만, 그곳이 아니면 공주가 있을 만한 곳이 없습니다.”
“감옥은?”
“감옥이요?”
“뭐,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비슷한 곳이 있을 거 아니야?”
“비슷한 곳을 발견하긴 했습니다만, 설마 공주를 그런 곳에 가둬두었으려고요?”
“미친놈들이 뭔 짓은 못해.”
“그럼 다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하고.”
“예.”
답한 이필이 막 몸을 돌리려는 찰나 염홍이 구렁이가 담을 타듯 조용히 넘어왔다.
“왜?”
“찾았습니다.”
“어디? 감옥?”
왕팔의 물음에 염홍이 이필을 바라봤다.
“말씀 안 드렸냐?”
“드렸는데 그럴 리 없다면서 감옥 같은 데를 찾아보라고…….”
이필의 말에 염홍이 고개를 저었다.
“틀림없습니다. 팽가의 여인이 방에 있던 여자한테 공주라고 부르는 걸 이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정말이냐?”
“예.”
고개를 끄덕이는 염홍을 못 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왕팔이 물었다.
“혹시 이름이 공주는 아니고?”
“대주!”
“그래, 알았다. 제길, 그러면 저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데…….”
“제가 빼내오겠습니다.”
자신 있게 나서는 염홍에게 왕팔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상대는 도왕이야. 아무리 섬마공에 비해 처진다는 어기신풍이라고는 해도 화경의 고수가 펼치면 어떤 효용이 발휘될지 장담할 수 없다.”
“하면 어쩝니까?”
“내가 들어간다.”
“대주가요?”
“그래. 여기서 나보다 빠른 사람 있냐?”
왕팔의 물음에 서로를 쳐다보던 대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경공에 있어선 천하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고 고덕이 장담한 인사가 바로 왕팔이다. 고덕을 따르는 이들 중에 유일하게 화경을 돌파한 협련조차 경공에선 왕팔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하지만 은신법을 모르시잖아요?”
“상관없어. 무작정 돌파, 그리고 도주다.”
한마디로 무작정 뛰어 들어가서 들쳐 업고 튀겠다는 소리다. 일견 무식하지만 왕팔의 경공과 합쳐 놓고 보니 나름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 전각까지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멍청한. 그리되면 넌 어쩌고?”
왕팔의 지적에 염홍이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려 봐. 내가 찾아갈 테니까.”
왕팔의 말에 염홍과 이필이 상의해가며 대충 안을 그려 놓았다.
“찾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자신들이 그려 놓았지만 정작 자신들도 그려진 약도만으론 찾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았기에 묻는 것이었다.
“기와 모양.”
“예?”
“기와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용마루는 특히 더하지. 어때?”
왕팔의 물음에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염홍과 이필이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별 장식 없었는데요.”
“두꺼비요.”
서로 다른 답을 내놓은 둘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왕팔이 그나마 뭔가를 표현한 이필에게 물었다.
“두꺼비라고?”
“예. 분명 두꺼비였습니다.”
그 말을 곱씹던 왕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용마루로 두꺼비를 쓰는 곳은 없다. 비슷한 것이라면 물을 상징하는 해태 정도다. 불에 취약한 목조건물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비방인 셈이었다.
용마루로 해태를 쓸 정도라면 연못이 멀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연못은 집에서 남쪽에 둔다. 불을 상징하는 주작이 남쪽의 신수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 건물이 북쪽으로 치우쳤단 뜻이기도 했다.
별것 아닌 거 같은 정보로 꽤나 많은 것을 유추해낸 왕팔이 몸을 풀었다. 사람을 하나 들쳐 메고 달리자면 구 성의 섬마공을 모조리 풀어내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가 담을 넘는 순간 도주해라. 방향은 남쪽, 목적지는 자금성이다. 제아무리 도왕이라고 해도 설마 자금성까지 들어오진 않겠지.”
왕팔의 말에 추적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시작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라. 도왕은 결코 만만한 작자가 아니다.”
“옙, 대주.”
대원들의 답을 들으며 숨을 고른 왕팔이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담장을 넘자 사방에서 호각 소리가 일어나며 팽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그 반응에 추적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쪽을 향해 빛살처럼 뻗어나갔다.
팽가의 담장을 넘은 왕팔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전각들을 재빨리 훑어보며 해태상이 용마루로 쓰인 전각을 찾았다.
“여기구나.”
발견하자마자 냅다 전각으로 뛰어들었다.
“꺄악!”
비명이 터지고, 그보다 놀란 왕팔의 욕설이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잡아라!”
사방에서 고성이 터지며 사람들의 발걸음이 급격히 다가오자 당황을 수습한 왕팔이 침상의 휘장을 뜯어 목욕통에 들어앉아 있던 여인을 냅다 말아 어깨에 얹더니 곧바로 지붕을 뚫고 튀어올랐다.
“저기다!”
새카맣게 몰려나온 팽가의 무사들을 일별한 왕팔의 신형이 남쪽을 향해 돌려졌다.
“이노~ 옴!”
하지만 지붕을 모조리 때려 부술 기세로 달려오는 사내를 발견한 왕팔의 신형은 다시 팽그르르 돌아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분기탱천한 도왕이 미친 듯이 따라붙었다.
그 둘을 따라 많은 수의 팽가 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자 놀란 표정의 여인이 자신의 손을 꼭 쥐고 있는 청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모르겠소. 괴인이 침입해 연이를 납치해간 모양이오.”
“어마, 한데 공자가 이리 있으셔도 되나요?”
납치되었다는 팽연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있는 청년의 친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나설 만한 입장이 아니니…….”
그 말에 여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도 공주를 사랑한 나와 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않겠소.”
팽호량의 말에 운라 공주가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
그런 두 사람의 머리 위 용마루엔 분명 두꺼비가 앉아 있었다. 물론 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란 게 문제였지만…….
왕팔이 북쪽으로 도주한 것을 알 길이 없는 추적대는 미친 듯이 남쪽을 향해 달렸다. 잡히면 죽을 수도 있다는 왕팔의 경고가 아니어도 충분히 도왕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게 달리던 이들의 시선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저거 뭐냐?”
염홍의 물음에 옆에서 달리던 공도가 답했다.
“여자들 뽑아 가잖냐.”
“저게 뽑아 가는 거냐?”
“내 눈엔 강제로 끌고 가는 거 같은데.”
이필이 끼어들자 추적대원들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냥 갈 거냐?”
“저것들 수가 많은데?”
“그래도 여자잖냐.”
육엄의 말에 갈등하던 이들은 뒤이어진 가혁의 말에 두말없이 진로를 바꿨다.
“오호~ 이쁜데.”
무시무시한 속도로 들이닥친 추적대원들과 흥륭 인근의 작은 마을을 약탈하던 산적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어쭈, 제법이다.”
도끼를 쓰는 품새가 이름 없는 이들은 아닌 듯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산적들 중 하나가 호통을 내질렀다.
“감히 사패련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죽고 싶더냐?”
“사패련? 남쪽 깡패 새끼들?”
“이익, 살려 둘 가치가 없는 놈들이다. 모두 죽여라!”
그가 두목이었던지 이내 갖가지 괴성을 지르며 산적들이 밀어닥쳤다.
한데…
“뭐, 뭐가 이렇게 많아!”
달리면서 보았던 수보다 훨씬 많은 산적들이 괴성을 지르며 밀려들고 있었다. 마치 중원의 산적이란 산적은 모조리 모여든 것처럼…….
* * *
추적대가 느닷없는 싸움에 휘말린 시각, 황도의 방어를 맡은 구문제독부의 지휘부에선 심각한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첩보가 사실이라면 대규모의 산적들이 이곳 흥륭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략적인 수가 얼마나 되기에 비상을 발령한 겐가?”
못마땅한 표정의 구문제독에게 정보 담당관인 젊은 장수가 어두운 표정으로 보고했다.
“우선 집계된 수치만으로도 이만가량입니다, 제독.”
“이만!”
구문제독이 경악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황도의 방어를 책임진 구문제독부의 병력이 바로 이만인 까닭이다. 더구나 상대가 산적이라고 무시할 수도 없다. 개중에 녹림이라는 강호의 세력이 끼어 있는 까닭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 녹림의 작은 산채 하나를 토벌하기 위해 입는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탓에 최근엔 녹림의 산채는 관에서도 눈을 감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것도 이틀 전에 집계된 수치입니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기에 지금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정보대는 뭐하기에 알 수 없단 말인가?”
서슬이 퍼런 구문제독의 물음에 정보 담당관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투입된 정보대원들이 모조리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연락 두절은 전사로 간주되기 나름이다.
“하면 놈들이 관병을 해쳤다는 뜻이 아닌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옵고, 여기…….”
정보 담당관이 내미는 서신을 받아든 구문제독이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흥륭현 이포지소의 현승이 올린 장계입니다.”
정보 담당관의 말에 서신을 펼쳐 든 구문제독의 볼 살이 푸들거렸다.
“산적과 전투 중! 구원을 청한다? 이것이 어디를 통해온 것인가?”
“흥륭현 지현이 보내왔습니다. 현에 주둔 중인 안찰지소의 병력을 이끌고 출병한다는 장계를 끝으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정보 담당관의 보고에 구문제독의 명이 빠르게 떨어졌다.
“즉시 금의위에 비상 상황을 전파하고 구문을 닫아라. 전군 비상이다. 모두 전투에 대비하라!”
“충!”
복명한 장수들이 일제히 뛰어나가자 구문제독의 시선이 여전히 서 있는 정보 담당관에게 향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남았는가?”
“송구한 말씀이오나 구문제독부의 병력만으로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를 입에 담았으니 평소 같았다면 대번에 목을 쳤을 일이다. 하나, 그 대상자가 언변이 자유로워야 하는 정보 담당관이기에 구문제독은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지원을 청해야 하옵니다.”
“지원?”
“예. 가장 가까운 세력은 하북성 향방군이오나, 그들은…….”
“소흥 왕부와의 훈련을 위해 안휘로 내려가 있지.”
“맞습니다. 그 탓에 그들은 너무 멉니다. 하오니 다른 이들에게 지원을 청해야 합니다.”
“어디를 말하는 겐가?”
“현재로서 가장 가까운 병력은 동북어위도총부의 지휘를 받는 요녕성 향방군이고, 그다음은 소흥 왕부의 지휘를 받는 산동성 향방군입니다.”
“그들보다는 차라리 황실의 명을 받는 전군도독부를 불러들이는 것이……?”
“전군도독부의 주둔지는 산서의 양고. 그들도 역시 너무 멉니다, 제독.”
비로소 정보 담당관의 말뜻을 이해한 구문제독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귀관의 말은 알겠네만, 동북어위도총부는 안 돼.”
“그간의 이상 징후 때문입니까?”
“그래. 하니, 소흥 왕부로 기발을 띄우게.”
“함께 제남으로도 기발을 보내겠습니다.”
“제남의 도지휘사사로 기발을 보내도 소흥 왕야의 허락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을 공산이 크네.”
“아옵니다. 하기에 폐하의 친서를 휴대시킬까 합니다.”
“폐하의 친서라…….”
“예. 아시겠지만 산동 자사는 과거 폐하의 태사였던 분이니…….”
“그렇군. 그리하게.”
구문제독의 허락에 정보 담당관이 고개를 숙였다.
“충!”
이내 그마저 나가자 구문제독의 시선이 자금성을 그려 놓은 지도로 향했다.
“참! 북문의 성벽을 다시 쌓는다더니, 혹시 공사는 다 마쳤더냐?”
그의 물음에 수행 부관이 서류를 뒤적이다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공사 기간이 이달 말일까지입니다.”
“이런! 당장 공병들을 북문 쪽으로 집결시켜라. 서둘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충!”
자신의 명을 받은 수행 부관이 뛰어나가자 구문제독도 호위 무장들과 함께 북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추적대원들은 사신대의 일원이었다.
사신대는 다대일 전투에 대해 정예화된 군병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 당연한 것이 수십 명으로 수천, 내지는 수만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인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여과 없이 투영되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다 상대가 길게 늘어서면 느닷없이 돌아서 달려들어 피를 부른다. 그렇게 휩싸이면 또다시 도주를 택한다. 처음엔 많은 수를 믿고 별 상관없이 덤벼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을 이해하게 된다.
지금 추적대원들을 쫓는 부귀도 추치가 그랬다.
박 터지게 싸우다 말고 냅다 튀는 놈들의 뒤를 쫓다 다시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길 얼마인지 모른다. 거의 하루 온종일을 그렇게 보낸 것 같았다.
문제는 고수라 생각되는 이들이 그 와중에 거의 모두 죽어 나갔다는 것이다. 하필 녹림의 총표파자인 사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추치는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추적을 중단하자니 사부가 돌아온 뒤에 할 말이 없게 생겼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라고, 녹림과 추적대의 싸움은 그렇게 해가 지고 달이 떠서도 그쳐지지 않았다.
“채주,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수하의 제지에 분노에 물든 추치의 시선이 뒤를 돌아보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수하들의 수가 훌쩍 줄어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렇게 멀어져 가는 추적대를 추치는 그냥 놓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추적대가 녹림과 싸움을 벌인 탓에 약탈을 당하던 마을 사람들은 그 틈에 모두 도주하고 말았다. 결국 녹림으로서는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생떼 같은 수하들만 수백이나 잃은 셈이었다.
그날 이후 강호에 새로운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비풍대. 바람처럼 날쌘 협사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열도 되지 않는 소수가 천이 넘어가는 산적들을 도륙하며 힘없는 백성을 구했다는 소문이 그렇게 강호를 진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