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장. 영웅(英雄)-비풍대(飛風隊)의 탄생
영상 왕부와 소흥 왕부의 충돌을 예견하는 소문이 민간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양측의 접경 지역에 사는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두 왕부를 지휘하는 이들은 실제로 행동에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백성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와 상관없이 대단히 높은 것이었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졌다.
섬서성 도지휘사사 소속의 한 하급 무장이 하남성의 친척을 찾아왔다 싸움에 휘말린,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사망자가 스물둘이고, 부상자는 백 단위를 넘어간다 하옵니다.”
하남 자사가 올린 장계를 읽어 내려가는 이첨의 음성이 가늘게 떨려 나왔다.
“사태의 추이는 어떻다는가?”
무거운 음색인 소흥왕의 물음에 이첨이 장계를 훑어보며 답했다.
“현재 하남 안찰사사의 포쾌들을 이용해 난동자들을 잡아들이고는 있사오나, 섬서 자사가 휘하의 향방군을 동원하는 등 강력히 항의하고 있어 위기감이 크다 하옵니다.”
“영보에서 죽었다는 섬서 도지휘사사의 하급 무장은 어찌 되었는가?”
“시신을 수습해 섬서 도지휘사사로 보냈사온데…….”
이첨이 뒷말을 잇지 못하자 뒷짐을 진 채 창문 밖을 바라보던 소흥왕이 시선을 돌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그것이… 머리가 오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이첨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소흥왕이 재차 물었다.
“정녕 머리를 보내지 않았던 것인가?”
“그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사옵니다.”
그 말은 보내지 않았음을 시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에 소흥왕의 얼굴 전체가 찌푸려졌다.
“담당자를 색출해 참형에 처하라.”
“와, 왕야!”
“삿된 감정으로 전란을 일으킬 짓을 벌인 자이다. 감쌀 이유도, 마음도 없다.”
“하오나 그리하시면 민심이…….”
“백성들의 마음이 잘못된 것을 바란다 하여 군왕이 그것을 좇아서야 되겠는가? 시류에 편승하려는 그런 마음부터 잘라내라.”
단호한 소흥왕의 음성에 이첨의 고개가 절로 수그러들었다.
“며, 명심하겠나이다, 왕야.”
“하고, 경공 왕부에 서신을 전하라.”
소흥왕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승지부의 문관이 나섰다.
“무엇이라 전하오리까?”
“이번 사태는 본 왕의 마음과 다른 것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어라.”
소흥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황한 이첨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되옵니다, 왕야.”
“왜 아니 된다는 것인가?”
“어찌 왕야께서 먼저 숙이고 들어가신단 말씀이옵니까?”
이첨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쉰 소흥왕이 물었다.
“하면 고의 자존심을 지키려 전쟁이라도 하란 말인가?”
“군왕의 자존심은 백성의 자존심이고, 왕부의 기백이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백성의 마음이 떠나고 왕부의 기백이 흩어지옵니다. 왕야의 어진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고래로 군왕의 자존심은 종종 전쟁의 이유이기도 하였다는 것을 유념하여 주시옵소서.”
“허허, 이런…….”
틀린 말은 아니다. 군왕의 자존심이 무너지면 백성들은 패배 의식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더구나 상대가 그간 맞서오던 경쟁자라면 그 정도는 더 깊고 심할 것이었다.
“왕야, 그저 하남 자사의 명의로 된 설명 서신 정도로 갈음하여도 무방할 것입니다.”
절대로 무방하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인 하남 자사의 설명을 믿을 만큼 저들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 호 자사는 아직도 귀환하지 않았다던가?”
이럴 때 자신의 군사가 없다는 것이 소흥왕은 못내 답답하기만 했다.
“산서성 순무처의 보고에 따르면 아직 귀환하지 않았다 하옵니다.”
“이거야 원. 시일이 너무 길지 않은가?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로세.”
“군병을 풀어 찾아보오리까?”
“아니, 되었네. 잠시 사적인 용무를 보겠다고 허락을 받고 나간 이를 그리 찾아서야 되겠는가. 기다려 보세. 그도 사태를 알고 있을 테니, 조만간 돌아오겠지.”
소흥왕의 말에 이첨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 그럴 것이옵니다, 왕야.”
“참, 부마는 자금성으로 떠났는가?”
소흥왕의 물음에 이첨의 얼굴에 난감함이 들어섰다.
“그것이…….”
“아직도인가?”
“갈 생각이 없다는 말뿐이옵니다.”
“허허, 이거야. 황상께선 매일같이 독촉 서신을 보내는데, 정작 당사자는 갈 생각이 없다니 이런 황망한 일이. 여봐라.”
소흥왕의 부름에 대전 내관이 쪼르르 달려왔다.
“예이~”
“속히 가서 부마를 찾아오라.”
“부, 부마를 말씀이옵니까?”
대전 내관의 얼굴이 대번에 사색이 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데리러 가는 환관들마다 사지 중 하나가 부러지기 십상이니, 반가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환관들의 사정을 소흥왕이 일일이 따질 리 없다.
“그래. 가서 속히 들라 이르라.”
“며, 명을 받사옵나이다.”
더듬거리며 복명한 대전 내관이 죽을상을 한 채 물러가자 이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네.”
“하온데 환관을 시키시는 것을…….”
“하면 자네가 가볼 텐가?”
“예, 예?”
당황하는 이첨의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인 소흥왕이 말을 이었다.
“부마가 자네라고 사정을 봐줄 것 같진 않지? 마찬가지일세. 그나마 환관들이나 되니까 그런 박대를 참는 게야. 다른 이들이라면 감당할 수 없지.”
“하오면 왕야께서 직접 가시면……?”
“몸이야 성하겠지만 자존심은 시궁창에 처박고 오지 않겠나?”
“설마 부마가 왕야의 말을 거절하기야 하겠습니까?”
“하면 환관들이 전한 명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서 무시되겠는가?”
소흥왕의 답에 이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얼마 전에 연화전으로 이름을 바꿔 단 전각은 과거 문정 군주가 사용하던 전각이었다. 그곳에 지금은 부마란 직함을 가진 괴물이 들어앉아 있었다.
“야, 낯바닥 하얀 새끼, 왜 왔어?”
문을 들어서자마자 인상 험악한 거구의 사내가 큰 목소리로 물음에 대전 내관은 오금이 저려 왔다.
“그, 그것이 와, 왕야의 명을 전하러…….”
“왕야의 명? 누구한테?”
“부, 부마께…….”
“이 새끼가. 주군이 누구 명이나 들을 사람이냐? 다음에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입에 담으면 아예 그 입을 찢어준다는 말 못 들었냐?”
못 들었다. 지난번에 이곳을 찾았던 환관은 작신하게 두들겨 맞고 실려 나와 아직까지 의방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 못 들었습니다요.”
“뭐? 이 새끼가 어디서…….”
“그만!”
갑작스런 음성에 대전 내관에게 다가서던 공도가 뒤를 돌아보았다.
“대주!”
공도의 부름에 왕팔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걔들이 뭔 죄냐. 시키니까 오는 거지.”
“하지만 이 새끼들이 매번 올 때마다 명령 운운하니까요.”
“냅둬라. 다 그놈들도 살려고 하는 짓이니. 그렇지?”
왕팔의 물음에 대전 내관의 고개가 사정없이 끄덕여졌다. 그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왕팔이 손을 까딱였다.
“일로 와.”
왕팔의 부름에 슬쩍 공도를 일별한 대전 내관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옙, 대인.”
대전 내관의 대인 소리가 좋은지 왕팔의 입가에 기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자식,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그래, 대협께 전할 말이 뭔데?”
“지, 직접 뵙고…….”
“너 쟤랑 계속 이야기할래?”
턱으로 공도를 가리키는 왕팔의 말에 대전 내관의 표정은 금방 사색이 되었다.
“아, 아닙니다요, 대인.”
“그래. 그러면 나한테 말을 해줘야지. 그래야 돕든지 말든지 하지. 안 그래?”
은근한 음성으로 달래는 왕팔에게 갈등하던 대전 내관이 입을 열었다.
“그게… 왕야께서 속히 대전으로 드시라는 며… 엉…….”
말을 하다 말고 자신과 공도의 눈치를 보는 대전 내관의 어깨를 왕팔이 두드려 줬다.
“괜찮아. 네 입장에서야 명이지. 이해한다고.”
“예. 감사합니다요, 대인.”
“그래. 그러니까 왕야께서 대협을 찾으신다 그 말이지?”
“예, 대인.”
“그래. 그럼 잠시 기다려 봐라.”
“예?”
“내가 대협을 만나 뵙고 여쭈어보고서 답을 알려 준다고.”
“하, 하오나 왕야의 명은 소인이 직접…….”
“너도 실려 나갈래?”
“아, 아닙니다요.”
바람 소리가 휙휙 들리도록 고개를 젓는 대전 내관에게 피식 웃어 보인 왕팔이 전각 안으로 사라졌다.
“대협, 저 팔입니다요.”
왕팔의 음성에 고덕의 고개가 돌아갔다.
“들어와.”
허락이 내려지자 문을 열고 들어선 왕팔의 시선엔 사흘 전에 고덕으로부터 모종의 명을 받고 나갔던 적표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적 부대주 왔어?”
“예, 왕 선배.”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있던 고덕이 왕팔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밖에 대전 내관이 와 있습니다.”
“왜?”
“왕야께서 뵙자고 하신답니다.”
“무슨 일로?”
“그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만, 뻔한 거 아닐까요?”
“또 황제에게 가라는 건가?”
“그거 아닌 다음에야 요사이 대협을 찾을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관부 일엔 더 이상 끼어들 생각이 없다.”
고덕의 말에 왕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전하라 할까요?”
“그래. 아니, 내가 직접 가지.”
“예?”
생각지 못한 답에 놀라는 왕팔에게 고덕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내가 가면 안 되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거절하시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피해왔다만, 계속 이렇게 있을 순 없게 되었다.”
그 말끝에 적표를 바라보는 고덕의 시선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느낀 왕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그게… 호 판관, 아니 호 자사가 동북어위도총부에 연금된 모양이다.”
“예~ 에?”
새된 음성이 흘러나올 법도 했다. 호 자사의 부친이 바로 동북어위도총사인 호경명이라는 걸 왕팔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적표가 확인한 사실이다.”
“아니, 왜요?”
“그야 나도 모르지.”
“하오시면 가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냥 두기엔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서 말이다.”
“무슨……?”
왕팔의 물음에 슬쩍 고덕의 표정을 살핀 적표가 답하고 나섰다.
“주변으로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들이 목격되었습니다. 수가 서넛 이상인 데다 저로선 감조차 잡지 못할 정도의 고수도 보인 탓에…….”
적표의 말에 왕팔의 표정에 놀람과 걱정이 함께 들어섰다.
적표가 아직 화경의 벽을 넘지 못했다지만 그의 경지는 초극의 극의를 초월한 정점이다. 결코 만만한 수위가 아닌 것이다. 그런 이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고수였다면 상대는 화경을 뛰어넘었을 공산이 컸다.
“아무래도 가보셔야겠군요.”
“그래.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말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고덕을 따라 왕팔과 적표도 움직였다.
* * *
“왕야, 부마가 드셨사옵니다.”
왠지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전 내관의 기다란 소성 끝에 문이 열리며 고덕이 들어서자, 기다리던 소흥왕은 물론이고 이첨을 비롯한 몇몇 대신들도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제가 잘못 온 겁니까?”
들어서다 말고 묻는 고덕에게 소흥왕이 웃음을 보였다.
“아, 아닐세. 자네가 정말로 오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해서 그랬네.”
“오라고 하신 게 아니었습니까?”
“이전에도 그랬지만 자넨 오지 않았으니까.”
책망 같기도 하고, 이제라도 와서 다행이라는 의미 같기도 한 소흥왕의 말에 고덕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생각할 게 많았습니다.”
“그랬다니, 내가 괜히 심란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고덕의 답에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인 소흥왕이 물었다.
“아직도 갈 생각이 없는 겐가?”
“예. 관부의 일엔 더 이상 나설 생각이 없습니다.”
“하나, 황상의 부름이야. 아무리 강호인이라 할지라도 대명의 백성임은 맞을 터. 만상의 지존이신 황상의 부름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일세.”
소흥왕의 책망에 고덕이 설핏은 미소를 지었다.
“황제가 제게 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을 모두 이행했으니 서로 빚진 게 없습니다. 하니 부른다고 갈 이유도 없지요.”
“어허~”
소흥왕의 걱정 어린 소성에도 고덕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봐야 할 일도 생겼고 말입니다.”
“일? 무슨……?”
소흥왕의 물음에 잠시 갈등하던 고덕이 입을 열었다.
“호 자사가 동북어위도총부에 연금되어 있다는군요.”
“그, 그게 무슨 소린가? 호 자사가 왜 동북어위도총부에?”
놀라는 소흥왕에게 고덕이 답했다.
“그의 사가가 동북어위도총부와 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번에 사가에 일을 보러 갔다가 아마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가서 데려와야겠습니다.”
“그리해주겠는가?”
호철랑의 존재는 소흥왕으로서도 대단히 중요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한 이후 소흥 왕부의 대소사에 호철랑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드물었던 탓이다. 이젠 그가 없으면 일을 어찌 처리할지 모를 정도가 되어 있었다.
“예. 하니, 황제에겐…….”
고덕의 말에 소흥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허허, 이거야 원. 호 자사의 일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긴 하나, 그만큼 황상의 명도 지엄한 것을…….”
“그것은 왕야께 맡기겠습니다. 그럼.”
단지 그 말만 남긴 고덕이 휑하니 자리를 떴지만, 소흥왕은 차마 그를 붙잡지 못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첨의 물음에 소흥왕이 곤혹스런 음성을 토했다.
“우리 왕부로서도 호 자사의 존재는 대단히 중요하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거야 참……. 일단 황상껜 부마가 외유 중이라 보고를 올릴 밖에.”
“여태 있다 외유 중이란 보고를 올리면 진노를 사지 않을지……?”
걱정하는 이첨에게 소흥왕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분이시네. 아마 적지 않은 사연을 읽어내실 걸세. 하니 그런 걱정은 묶어두게.”
“소장은 그저 왕야의 말씀을 따르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이첨을 바라보며 소흥왕은 답답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황제도 자신만큼 답답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 * *
고덕이 동북어위도총부를 향해 떠난 지 나흘. 소흥 왕부에 황제의 급보가 도착했다.
“이, 이것을 어찌하옵니까?”
이첨이 당황할 만도 한 것이, 궁이 침궐을 당해 선대 황제인 정덕제의 여식인 운라 공주가 납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흉수는. 흉수에 대한 단서는 없다던가?”
분노한 소흥왕의 물음에 이첨이 고개를 저었다.
“흉수에 대한 단서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하옵니다.”
“하면, 현재 어찌하고 있단 말인가?”
“동창과 금의위는 물론이고, 서창마저 나서 공주님을 찾고 있으나 달리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옵니다.”
“한데 우리에게 급보라니. 무엇을 원해서?”
“급히 부마를 보내달라 청하셨습니다.”
“부마를……?”
사람을 찾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 바로 부마다. 물론 고덕의 명에 실제로 그 일을 한 것이 왕팔이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오해였지만…….
“어찌하올지……?”
걱정스런 이첨의 물음에 소흥왕도 당황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그 존재 가치가 희미해진 선대 황제의 여식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공주의 위를 가지고 있는 데다 현 황제의 손윗사람이었다.
만에 하나 찾지 못한다면 황제의 체면은 땅바닥에 떨어지고, 황실의 권위는 더 이상 내세울 수가 없게 될 터였다.
“일단 협련, 협련을 들라 이르라.”
고덕이 자리를 비운 이상 소흥왕이 도움을 청할 곳은 그뿐이 없었다. 이내 대전 내관이 연화전으로 뛰었다.
대전 내관과 함께 협련이 대전으로 든 지 얼마 후, 이번엔 대전 내관이 왕팔을 안내해 대전으로 들었다.
“찾으셨습니까?”
나름대로 정중히 포권을 취하는 왕팔에게 협련이 물었다.
“잠시 도와줘야겠어.”
“뭘?”
왕팔의 물음에 슬쩍 소흥왕의 기색을 살핀 협련이 답을 했다.
“황궁에서 사람이 사라졌다.”
“사람? 황궁에서 사람이 사라졌는데 왜 내가?”
“그게, 흔적을 찾지 못하는 모양이야.”
그제야 자신이 불려 온 이유를 안 왕팔이 힐끗 소흥왕을 일별하곤 물었다.
“중요한 사람이야?”
“공주일세.”
소흥왕의 답에 왕팔이 놀란 눈을 크게 떴다.
“공… 주 말입니까?”
“그러하네. 찾아올 수 있겠는가?”
“시도는 해볼 수 있겠지만…….”
뜸을 들이는 왕팔의 모습에 조급했던 소흥왕이 조건을 걸었다.
“성공하면 내 커다란 상을 내리지. 약속함세.”
“일단 움직여 보겠습니다, 왕야.”
“고마우이. 내 부탁함세.”
“예.”
다시 포권을 취해 보인 왕팔이 나가자 소흥왕의 시선이 협련에게 돌아갔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자인가?”
“대협께서도 사람을 찾는 일에 있어선 저자를 따라올 이가 세상에 없다고 믿는 이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천마심공에 섬마공을 익힌 이후 왕팔의 추적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달했다. 오죽하면 자신의 발전 속도에 왕팔 스스로가 기겁을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야……. 한데 저자 혼자 보내도 되는 건가? 흉수의 무위가 결코 예사롭지 않다고 들었네만.”
“아마 추적대를 이끌고 갈 것입니다. 그들이라면 저조차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요사이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화경의 극의에 올랐다는 협련이다. 그런 이가 감당할 수 없다는 말에 소흥왕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소흥왕의 걱정과 기대를 받으며 왕팔과 추적대가 소흥 왕부를 벗어났다. 이후, 비월대의 이름이 천하를 진동하는 계기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