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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장 (76/129)

제75장. 참극(慘劇)-백도, 기치가 꺾이다

소문은 발 없이 천리를 간다.

하지만 강호의 풍문은 단숨에 만 리를 간다. 그만큼 이야기의 전파가 빠른 것이 강호였다.

그 탓에 소문이 복건의 남단에 위치한 하포에 도달한 시점도 생각보다 빠른 시기였다.

나이가 너무 많아 시내로 잘 나가지 않는 고길 내외와 애써 세상사에서 관심을 끊은 고덕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술 생각에 고덕의 눈치를 보며 연신 하포 시내의 객잔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던 후량 덕에 다른 이들은 소문을 이미 접하고 있었다.

“이대로 둬도 되는 거요?”

불안한 후량의 물음에 묵린의 시선이 묵묵히 앉아 있는 협련에게 향했다.

고덕의 식객이 되어버린 이들 세 사람은 고만고만한 나이로 인해 서로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강호인의 천성은 어쩔 수 없어서 셋 중 최강자인 협련이 은연중에 수좌로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대협에게 알릴 수도 없잖아.”

협련의 말에 세 사람의 고개가 자동적으로 끄덕여진다.

고덕의 성격상 소문을 내고 돌아다니는 놈들의 목을 죄다 꺾어놓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소문을 싸질러놓고 다니는 놈들의 목은 꺾어져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진과 그 일가가 겪을지 모를 고생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그럼 우리가 나서 볼까?”

후량의 의견에 묵린이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나서서 해결이 될까?”

“적어도 오해는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이어진 후량의 말에 이번엔 협련이 말문을 열었다.

“묵 가는 모르지만, 자네나 내가 나서 봐야 별다른 효과는 없을걸.”

그 말에 후량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듯 나섰다.

“너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렇다고 쳐도 나는 왜 소용이 없단 말이야? 내가 묵 가에게 한 수 떨어진다고는 해도 똑같은 제하이십사강이라 그 말이야. 내 이름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걸.”

“그렇겠지. 하지만 문제는 자네 이름이 사파에 올려져 있다는 것이야. 소문을 들으니 이번 사단의 시작도 자네 때문이라지 않나.”

협련의 힐난에 후량은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솔직히 소문을 듣자마자 고덕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자신의 이름이 문제의 발단이었기 때문이다.

“하면 내가 나서 볼까?”

묵린의 물음에 협련이 고개를 저었다.

“잠시 더 두고 보세. 놔두면 가라앉을지도 모를 소문을 괜히 우리가 나서 키울 수도 있지 않겠나?”

협련의 말에 묵린도, 후량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며칠 후 들려온 소문은 그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놓게 되었다.

“누굴 내쫓아?”

놀란 협련의 물음에 후량이 씩씩거리며 답했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진이를 내쫓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지난 아랑의 성혼식에서 처음 만난 고진은 왕팔과 함께 이 세 사람을 오라버니, 오라버니 하며 따랐다.

그 탓에 기분이 좋았던 셋은 의기투합해서 고진과 의남매를 맺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런 셋을 위해 손수 음식을 만들어냈던 고진에게 실수하는 거라며 불퉁거린 왕팔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여하간 그날 이후로 고진에겐 왕팔 말고도 오라비가 셋이나 생겨 버렸다.

그런 특별한 인연 때문에 후량의 말을 들은 셋의 눈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생전 처음 가져 본 여동생에게 억울한 일이 생겨 버린 탓이었다.

“내 이 잡것들의 목을 죄다 비틀어버리겠어.”

벌떡 일어서는 후량을 말릴 줄 알았던 협련이 오히려 더 파랗게 기세를 세웠다.

“좋아, 아주 피떡을 만들어주자고.”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자신의 애병인 묵창을 들고 일어선 묵린이 스산한 음성을 토했다.

“모두 쓸어주지.”

그렇게 일어선 셋이 호기롭게 문을 박차고 나서다 말고 모조리 얼어붙어버렸다.

고길 내외와 함께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고덕과 정면으로 마주친 탓이었다.

“요새 바쁜 모양이야?”

고덕의 물음에 협련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야?”

“예, 대협.”

“그렇단 말이지. 바쁘지도 않은데 일도 나오지 않고, 밥은 꼬박꼬박 먹고 말이지.”

그제야 고덕의 말뜻을 알아들은 협련이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 그게 알아볼 것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으래, 알아볼 거… 그게 뭔지 굉장히 궁금한데 말이지.”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오는 고덕의 모습에 협련이 뒤로 비척비척 물러났다.

그러니 자연히 뒤에 서 있던 후량이나 묵린과 얽혀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커다란 창을 들고 있던 묵린과 얽힌 순간, 셋은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뒤로 나뒹굴고 말았다.

나동그라진 이들의 손에 각자의 병기가 들려 있는 걸 본 고덕의 눈에 이채가 흐르고, 의미심장한 음성이 흘렀다.

“어디 재미 좀 보러 가나?”

“재, 재미라니요. 저, 절대로 아닙니다.”

황급히 무기를 숨기며 하는 말로는 신임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나 좀 도와도 되겠군.”

“예?”

“바쁜 것도 아니고, 어디 가는 것도 아니면 일 좀 도와도 되겠다는 말이야.”

“아… 그, 그게…….”

주저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던 고덕의 입가가 비틀렸다.

“설마 나와 형님이 뼈. 빠. 지. 게 일해 거둔 소출로 먹기만 하겠단 소리는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요. 절대로 아닙니다, 대협.”

“그럼 잔말 말고, 점심 먹고 모두 일 나와.”

못을 박아놓은 고덕이 돌아서자 세 사람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손을 닦고 방으로 들어가자 고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농사일이란 게 그리 쉽게 적응되는 것이 아닌데, 시간을 더 주지 그랬냐?”

“그래서 충분히 시간을 준 거였수. 더는 저들에게도 좋을 게 없단 말이요.”

“안 좋다니?”

고길의 의문에 고덕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몸이 편하면 잡생각이 많아지잖수.”

“그럴 사람들론 보이지 않더라만…….”

“세상에 그럴 놈 저럴 놈이 따로 있소?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다 그렇게 변하는 거라우.”

가벼운 음성이었지만 나름대로 삶의 철학이 묻어나 보였다.

그것이 신기했는지 고길이 웃으며 말했다.

“싸움질만 배운 줄 알았더니 그래도 배운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구나.”

“아 참, 그건 싸움질이 아니었다니까.”

고덕의 불퉁거림에 고길이 핀잔을 주었다.

“세상에 사돈집에서 하객을 쥐어 패는 것도 모자라 멀쩡한 건물을 주저앉힌 놈의 말로는 별로 믿음이 가진 않는구나.”

“그런 게 아니라니까 형은 왜 내 말을 안 믿어. 그놈들이 먼저 덤빈 거라니까.”

“네 나이가 몇인데 덤빈다고 싸움질이란 말이냐. 더구나 사돈집에서! 내 그때 창피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뜨거워, 이놈아.”

고길의 호통에 고덕은 입만 삐죽일 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계속해봐야 형에게 구박만 들을 뿐, 좋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뭉그적거리며 협련 등이 들어오고 곧이어 형수가 밥과 찬이 가득 든 상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형수님도 참, 여기 있는 애들 좀 부리시라니까.”

벌떡 일어서 상을 받아 든 고덕이 멀거니 앉아 밥상을 받는 협련들에게 눈을 부라리자 형수가 손사래를 쳤다.

“아직은 서툴러서 그런 걸 그리 타박하시면 안 되지요, 도련님.”

“형수도 그렇고 형도 그렇고, 그렇게 무르게 대하니까 이 인간들이 점점 더하는 거라구요. 이런 인사들은 그냥 굶겨야 하는데…….”

투덜거리는 고덕을 향해 고길이 핀잔을 주었다.

“어허, 밥상 앞에서 그 무슨… 자자, 이놈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와서 드시게들.”

고길의 말에 미적거리면서도 밥상 앞으로 다가앉던 협련 등을 고까운 눈으로 바라보던 고덕도 손에 수저를 쥐어주는 형수의 손길에 마지못한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팔이는 어디 갔어요?”

형수의 물음에 고덕이 입안 가득 밥을 퍼 넣으며 답했다.

“살 게 있어서 잠시 시내에 나갔어요. 금방 올 거예요.”

그 말에 협련을 비롯한 세 사람의 동작이 그대로 굳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미뤄놓았던 일들이 많다며 바쁘게 움직이는 고길 내외를 따라 고덕과 함께 다니느라 왕팔도 근래 시내를 전혀 나가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시내를 나갔으니, 그간 자신들끼리 쉬쉬해왔던 일들이 모두 다 드러날 것이 걱정되었다.

적어도 왕팔이라면 그 소문을 접한 고덕이 앞으로 저지를 일을 생각하기보단 무조건 고해바치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세 사람은 밥을 먹는 동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온 신경을 방 밖에 썼지만, 다행히 식사가 다 끝나고 고길 내외와 고덕이 다시 밭으로 나갈 때까지도 왕팔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하러 안 가냐고 윽박지르는 고덕을 며칠 더 쉬라며 고길이 끌고 간 덕에 세 사람은 이번에도 집에 남을 수 있었다.

“큰일이군.”

협련의 걱정에 후량이 말했다.

“지금까지 안 온 거 보면 소문을 못 들은 게 아닐까?”

하포는 작은 동네다. 그 탓에 그 흔한 무관 하나 없었다. 그런 만큼 강호의 소식을 소재로 삼는 이들이 적었다.

세 사람도 우연히 들은 소식을 기준으로 일부러 강호의 소식을 모으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하포의 시내엔 강호 소식이 화젯거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포 사람들에겐 그다지 상관없는 강호의 이야기보다는 올해 배추 값이 내려갈 건지 아니면 올라갈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글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것보다 지금 우리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묵린의 말에 협련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서둘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진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 걱정되지 않아?”

“아! 이런, 대협 때문에 정신이 나갔었나 보군. 서두르지.”

묵린의 말뜻을 뒤늦게 이해한 협련이 툇마루에서 일어서자 후량이 말리고 나섰다.

“잠깐만. 그렇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가도 되는 거야? 대협이 우리가 도망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런 오해는 나중에 다녀와서 풀어도 돼. 하지만 진이의 상황은 한시가 급하니까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고.”

협련의 말에 결국 후량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 사람은 즉시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렇게 집을 나서는 세 사람을 향해 왕팔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묵린의 말에 협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낸 모양이군.”

“어쩌지…….”

후량의 걱정에 나머지 두 사람이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 동안 도착한 왕팔이 숨넘어가는 음성으로 그들이 알고 있는, 그리고 파다하게 소문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잔뜩 흥분해서는 욕설과 누구를 향하는지 분명치 않는 주먹질을 섞어가며 자신이 알아온 이야기를 쏟아내던 왕팔의 입이 다물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던 세 사람의 반응이 그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느낀 탓이다.

“서, 설마 알고 있던 겁니까?”

왕팔의 물음에 협련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어, 어떻게 그, 그 소문을 듣고,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있을 수 있는 겁니까?”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왕팔에게 묵린이 설명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나서는 길이었소.”

“나서요? 어딜… 그럼 지금 진이에게 가는 겁니까?”

“그렇소.”

묵린의 답에 왕팔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대협은요? 설마 벌써 떠나신 겁니까?”

왕팔의 물음에 난감한 표정의 묵린이 협련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협련이 왕팔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대협이 아시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들고 다닌 놈들의 입에서 옥수수를 죄다 털어내고, 협가 놈들의 대가리를 깨놓으시겠지요.”

왕팔의 말에 협련이 고소를 베어 물었다.

“그보다 소문을 낸 이들의 목을 꺾어버리고 협가 사람들의 목을 죄다 베어버리지 않으시겠소?”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세 사람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말을 하다 마는 왕팔에게 협련이 물었다.

“설마 대협의 무명을 잊진 않았겠지요.”

“그야… 검… 마……. 흠… 충분히 그러고도 남겠군요.”

“그럴 거요. 어쩌면 손을 쓴 정천맹도 안전할 순 없을 거요.”

“설마…….”

‘그럴 리가요?’라고 하려던 왕팔의 음성이 느려지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가능성이 있군요.”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혼자 무당으로 쳐들어갔던 것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말이다.

“맞소. 그래서 우리가 알려 드리지 못한 거요.”

협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왕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근데 그렇게 되면 대협이 위험하긴 하겠지만, 막말로 그렇게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들인 건 맞지 않나요?”

왕팔의 물음에 협련이 웃음을 보였다.

“물론 그렇소. 우리 가족에게 손을 댄 놈들이라면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놈들이지. 하지만 말이오. 그 뒤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소?”

“뒤요?”

“그렇소, 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해보란 말이요. 아무리 자신들을 내쫓은 이들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쳐 죽인 사람의 조카딸과 함께 살기엔 쉬운 일이 아니지 않겠소.”

“설마, 매제 그놈이!”

대번에 그놈이란 말이 튀어나오는 왕팔의 행동에 웃음을 지어 보인 협련이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 그런다면 단매에 쳐 죽여도 시원치 않겠지만… 그렇게 매제가 죽으면 진이와 조카들은 또 어떡한단 말이오.”

협련의 말뜻을 충분히 알아들은 왕팔의 음색이 대번에 낮아졌다.

“해서 어쩔 생각이신 겁니까?”

“일단 대협껜 비밀로 하고, 우리가 나서서 해결을 보아볼 생각이라오.”

고덕과의 인연 덕에 이렇게 말을 섞고 있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은 그 인연이 아니었다면 왕팔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정천맹이나 그와 결부된 이들의 결정이 갖는 깊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왕팔은 이들 세 사람이 나선다고 해도 일이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흠… 일리가 있군요. 하면 잠시만 기다리시죠.”

“아니, 왜 그러시오?”

“급한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서찰을 남겨야 하니까요. 아니면 대협은 우리를 찾기 위해 강호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과거 고덕이 연화를 찾아 강호로 나왔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던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협련이 의문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건 왕 대협이 남아서 잘 이야기해줘도 되는 게 아니오?”

“지금 절 빼놓고 가겠단 말씀입니까?”

“그, 그럼 왕 대협도 가겠단 말이오?”

“당연하지요. 우리 진이의 일인데, 오라비인 내가 안 가면 누가 간단 말입니까?”

생각 외의 장애물을 만난 세 사람은 당황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눈짓에 밀린 협련이 왕팔에게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냥 기다리는 게 도와주는 게 아닐지…….”

“경공이라면 자신이 있습니다. 후 대협은 알지 않습니까?”

왕팔의 말에 후량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 둘이 납치되었던 호철랑의 흔적을 찾아 움직이며 왕팔의 경공 실력을 확인했던 까닭이다.

그런 후량의 모습에 협련이 조금 더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일신의 무예가…….”

“제가 세 분 대협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제 추적술은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세 분을 가장 빠르게 진이네 식구에게 데려다줄 수 있을 겁니다.”

왕팔의 말에 서로를 바라보던 세 사람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게 넷으로 불어난 진이 구출대가 집을 출발한 지 한참이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기에 집으로 들어서던 고덕은 툇마루 위에 놓인 서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급한 일이 있어 잠시 나간다고? 그것도 네 놈이 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젠 성실한 팔이 놈까지 끌고서… 내 이 자식들을!”

버럭 화를 낸 고덕의 신형이 빛살이 되어 사라지자, 곁에서 서찰을 넘겨보던 고길이 혀를 찼다.

“쯔쯔, 그러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는데도 말을 안 듣더니……. 그나저나 그 사람들도 참, 일하기가 그렇게 싫었던가?”

“도련님은 어딜 저리 급히 가는 거예요?”

“따라왔던 이들이 팔이를 꼬여 가출을 한 모양이구려.”

“예에? 그럼 어째요?”

“어쩌긴, 덕이가 잡으러 갔으니 끌려오겠지.”

“쯔쯔… 사람들이 그렇게 안 보았더니……. 괜히 성실한 팔이만 물들었나 봐요.”

“그러게 말이오.”

그렇게 협련을 비롯한 세 사람은 성실한 친구를 꼬여 낸 불량 장년인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7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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