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74장 (75/129)

제74장. 오판(誤判)-백도, 실수하다

정천맹으로부터 답신을 받은 남궁창천은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도인과의 연은 백도의 기상을 저해하는바, 남궁세가는 마도와의 인연을 정리하길 맹의 이름으로 권한다.

-정천맹주 구환 대사

서찰을 받은 남궁창천은 수뇌 회의에 앞서 이미 은퇴해 유유자적하게 지내던 부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흠…….”

정천맹에서 보내온 서찰을 받아든 남궁호군은 침음만 흘릴 뿐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검존이란 무명으로 강호를 떨어 울리던 강자의 침묵에 남궁창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찌하여야겠습니까?”

“지금 구환 대사가 맹주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더냐?”

“일 년이 채 안 됩니다, 아버님.”

“무량도장이 아무 말도 없이 물러날 인사가 아닌데……?”

“전임 맹주셨던 무극검께서 무언가 언질을 남겨 놓았을 것이란 아버님의 생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부친의 예측이 틀렸다 말하고 있는 탓인지 남궁창천의 음성은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아니, 그렇지 않을 게야.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면 정천맹이 마교의 재건을 여태 모른 척하지 않았을 터이니까.”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하면 왜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일까요?”

아들의 물음에 기억들을 더듬던 남궁호군은 불현듯 대화 하나가 생각났다.

‘구환 땡초 말이야. 어디서 만년삼이라도 주워 먹었던 모양이야.’

금분세수가 끝난 직후 찾아온 도왕의 말에 자신이 물었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가?’

‘글쎄, 그 땡초의 기세가 아무래도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변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설명을 하시게.’

자신의 재촉에 도왕은 불편한 표정으로 답했었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야. 소림에 현경의 고수가 나올지도 모르겠어.’

그 말을 기억해낸 남궁호군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래도 피가 흐를지도 모르겠다.”

“피라니… 설마 맹이……! 아무리 재건 중이라고는 하나 마교의 핵심 고수들은 모조리 살아 있지 않습니까? 겉만 보고 달려들면 그 피해를 어찌 감당하려고……?”

걱정이 태산 같은 아들을 바라보며 남궁호군은 침중한 음성을 흘려 냈다.

“아무래도 소림에 권황이 출현한 모양이다.”

“권… 황이요?”

그 말뜻을 더듬던 남궁창천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아들의 모습에 남궁호군이 걱정 어린 음성을 이었다.

“그리되면 백도에 현경의 고수가 둘이 된 셈이지. 마제가 사라진 지금, 마교는 검마 하나만 남았구나.”

“그렇다면 승산이 있는 게 아닙니까?”

남궁창천의 말에 남궁호군의 고개가 저어졌다.

“무극검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둘이 아니라 셋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인사라고 했던 말이 내 귀에 아직도 선명하구나.”

“예? 서, 설마요.”

검마의 무서움을 인정하던 아들마저도 설마라 말하니, 구환 대사의 오판도 무리는 아니다 싶었다.

하긴 그 오판의 단초는 검마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무극검이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무극검에게만 무어라 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패배를, 그것도 무극검 정도의 인사가 만천하에 까발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찰을 보내야겠다.”

“설마 맹주를 만류하시려는 것입니까?”

당황한 남궁창천의 물음에 남궁호군이 고개를 저었다.

“금분세수까지 마치고 은퇴한 이가 어찌 정천맹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할까? 그저 옛 인연에게 인사나 전하려 할 뿐이지. 무당에 보낼 것이니라.”

“무당이라시면……?”

“무량도장에게 금분세수의 즐거움을 알려 주어야겠구나.”

“아버님!”

남궁창천의 입에서 비명 같은 음성이 터져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 남궁호군은 무량도장, 즉 무극검에게 은퇴를 종용하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남궁창천의 놀람에도 불구하고 남궁호군의 서찰을 소지한 세가의 무사가 무당을 향해 출발했다.

남궁호군은 세가에서 가장 발이 빠른 이를 특별히 뽑아 보낼 정도로 신경을 썼다.

그런 부친을 남궁창천은 말리지 못했다.

그는 아직 백도의 대의와 세가의 이익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 *

남궁호군의 서찰을 소지한 세가의 무사가 떠난 후, 자신의 침소에서 두문불출하던 남궁창천이 수뇌들을 불러들였다.

“가주!”

자신의 설명을 모두 들은 수뇌들은 기절초풍할 만큼 놀랐다.

특히 남궁단의 놀라움은 경악에 가까웠다.

“그리 놀라기만 할 일은 아닐세.”

“하지만 가주, 아니 형님, 그가 검마라는 것을 떠나서 그는 세가에 은혜를 베푼 이입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입니다!”

남궁단의 주장에 남궁창천이 물었다.

“하면, 자넨 세가의 이익을 위해 백도의 대의를 저버리잔 말인가?”

“어찌 그 일이 세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마교를 척결할 가장 좋은 시기일세. 그 기회를 무너트리며 우리가 얻는 건 무엇인가? 바로 검마란 절대 강자의 사돈이라는 명패일세. 은혜를 입은 보은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세인들의 눈엔 그저 세가의 이익을 지키려는 치졸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란 말이야.”

“세인들의 시선이 무엇이 그리 중합니까? 우린 우리의 대의를 찾아가면 그만입니다, 가주.”

남궁단의 거센 반발에 남궁창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게 되었단 말이야. 이미 아버님의 서찰이 무당으로 가고 있네. 무량도장께서 아버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면 우린 세가의 이익을 위해 백도의 대의를 가로막은 셈이 되는 것이란 말일세.”

남궁창천의 말엔 남궁단도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은퇴한 이라 해도 여하간 남궁의 이름을 가진 이가 영향력을 행사해 백도의 대계를 훼방 놓은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궁단이 입을 다물자 남궁창천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깊은 고심이 있었네. 세가를 위해서라면 난 눈을 감고 입을 닫는 것이 옳겠지. 그럼으로써 강호는 지금처럼 평안할 테고, 세가의 앞날은 탄탄대로겠지. 하나, 하나 말일세. 후일은 어떨 것 같은가? 지금의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 자신할 수 있느냔 말일세.”

재건된 마교의 발호를 말하는 것이다. 그 말뜻을 알아들은 남궁단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검마, 아니 고 대협이 있는 이상 마교는 발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나도 그 생각엔 동의하네. 하니 고심을 했던 것이지. 하지만 그는 불사신이 아닐세.”

“예?”

“그의 사후를, 우리의 사후를 생각해보란 말일세. 그 후에도 마교가 백도를 도모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남궁창천의 물음에 남궁단은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음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가주의 고뇌에 찬 결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궁단이 완전히 물러나자 남궁창천의 시선이 내총관인 남궁영호에게 돌려졌다.

“자네에겐 미안한 마음뿐일세.”

남궁창천의 말에 여태 눈을 감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던 남궁영호가 눈을 뜨고 미안한 표정이 역력한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다.

“형님, 아니 가주, 그 결정이 아집이 아니란 것을 압니다. 또한 대의에 맞는 것도 압니다. 그렇기에 이 아우는 아무런 말씀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소제의 가족사로 인해 세가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든 듯하여 마음이 무거울 뿐입니다.”

“태와 새아기에겐…….”

“태는 이해할 것입니다. 새아기는… 마도의 가족이라고 마도인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형님.”

자신을 물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우에게 남궁창천은 차마 고개를 젓지 못했다.

“새아기의 상처가 깊을 수도 있네.”

“그것 또한 태가 짊어져야 할 짐이겠지요.”

“흠… 그래, 그것은 세가의 짐이기도 하겠지. 아우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남궁세가는 적어도 가족을 버리진 않네.”

가주의 결정에 남궁영호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직후, 남궁세가에서 붉은 꼬리를 가진 전서응이 날아올랐다. 정천맹에 지급으로 보내는 전서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붉은 꼬리를 이끌고 멀어져 가는 전서응을 바라보던 남궁호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세가의 결정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 * *

남궁세가에서 날아온 특급 전서를 받은 정천맹은 무당을 향해 맹이 보유한 특급 전서를 날려 보냈다.

그 전서는 남궁호군이 보낸 전서구가 도착하기 직전에 무당에 닿았다.

“소림의 홍복이로군. 불황의 탄생이라…….”

장문인 일성 진인의 말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장로 현운자가 도호를 외웠다.

“무량수불… 백도에 또 하나의 꽃이 피었습니다, 사형.”

“그러니 말일세. 한데 남궁세가에서 오는 전서를 폐기해 달라니, 이해를 하지 못하겠군.”

“더구나 발신인이 남궁호군이라면…….”

“은퇴한 검존 도우지. 한데 그걸 청한 이가 다름 아닌 남궁세가의 가주라니. 이거 참…….”

“설마 남궁세가에 분란이라도…….”

현운자의 조심스런 의견에 일성 진인은 고개를 저었다.

“남궁세가의 단결력은 사천당문만큼이나 강하지. 절대 그건 아닐 걸세.”

“하면 무슨 일일까요?”

“폐기할 전서를 보면 짐작을 할 수 있을 듯도 한데…….”

“하나 보지 말고 폐기해 달라지 않습니까?”

“그러니 궁금하달밖에…….”

두 노도장들의 대화를 끊으며 문 밖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장문 사조님, 남궁세가에서 전서가 도착하였습니다.”

아마도 전서방을 맡은 이대 제자일 터였다.

“수신인이 누구더냐?”

문도 열지 않은 일성 진인의 물음에 경공심이 가득 담긴 제자의 답이 돌아왔다.

“장생전주께 온 전서입니다.”

제자의 답에 일성 진인과 현운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잠시간이 흐르고, 일성 진인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그대로 불태워 없애거라.”

“예?”

놀란 제자의 반문에 일성 진인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남궁세가주의 요청이 있었느니라. 보지 말고 불태워 달라고 말이다. 하니, 그대로 행하여라.”

“아, 알겠습니다, 장문 자조님.”

멀어지는 제자의 기척을 애써 무시하는 두 노도장의 입에선 끊임없이 도호가 흘러나왔다.

“무량수불…….”

* * *

급박한 움직임 속에서 직격탄을 맞은 곳은 안휘협가였다.

안휘협가엔 검마의 이름을 직접 거명한 맹주의 서신이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안휘협가는 당장에 분란에 휩싸였다.

갈등하는 가주와는 달리 대부분의 장로들은 검마란 이름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그것도 자신들과 사돈으로 엮였단 부분에선 거의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즉시 내당주의 직위를 폐하고 그 가족들과 함께 내쳐야 합니다.”

가장 길길이 날뛴 이는 외당주인 나호군이었다.

그는 가주의 동생으로 유난히 안휘협가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그런 그의 입장에서 그간 들어왔던 억울한 소문이 그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 그들을 내치면 당장 검마가…….”

“가주, 우리의 뒤엔 정천맹이 있습니다. 여기, 맹주도 필요하다면 맹이 전력을 다해 도울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나호군의 주장에 소가주인 협가검, 나평출이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로서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던 서자를 내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던 탓이다.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놈은 마교도와 결탁한 놈입니다. 그런 놈을 세가에 계속 두면 우린 소문을 부정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아버님.”

두 사람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이들도 적극적으로 동조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결국 나현도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검마란 방패보다는 정천맹과 백도 전체란 창이 더 두려웠던 탓이었다.

결국 나성운과 그 일가는 마도의 끄나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세가에서 쫓겨나야 했다.

자신들을 내보내며 퍼붓던 세가인들의 욕설과 비방 속에 등장한 검마란 인물과 자신이 보아왔던 처숙부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없었던 나성운은 식솔들을 추려 세가가 위치한 육안 시내의 객잔에 잠시 자리를 잡았다.

친정의 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고진은 남편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지만, 정작 나성운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분이 검마였다니. 허허, 내 눈이 해태였던 모양이오.”

“미안해요, 여보.”

“허허, 무슨 말이오. 내 말은 그런 고수를 눈앞에서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라오.”

“여보…….”

“걱정 마시오. 그분이 검마란 이름에 묶여 있더라도 내가 본 처숙부께선 소문처럼 피에 굶주린 마두가 아니셨소. 강호의 소문처럼 믿지 못할 것이 또 어디에 있겠소. 하니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세가의 사람들도 오해가 풀리면 괜찮아질 것이오.”

말은 그리했지만 나성운도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풀어질 오해였다면 검마란 극강의 고수를 적으로 돌릴지도 모를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종의 일이 세가를 넘어 정천맹 단위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그렇게 걱정에 싸여 있던 나성운에게 다가서는 이들이 있었다.

“나 당주.”

“아! 단리 대협.”

갑자기 등장한 단리명의 모습에 나성운이 놀라 일어섰다. 나이도 그렇고, 배분으로 보아도 단리명이 자신의 위였기 때문이다.

“기우이길 바랐는데 아니었던 모양이구려.”

단리명의 말에 안색을 붉힌 나성운이 답했다.

“부끄럽습니다.”

가족을 내친 세가를 말함인지, 그렇게 되도록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을 말함인지 모를 말이었지만 단리명은 그것을 따져 묻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일세.”

안휘협가를 말함이다. 지금은 미처 몰라서이겠지만 소식이 들어가면 그 즉시 안휘협가의 무력 집단이나 장로가 나와 나성운의 일가를 협가의 권역에서 내쫓을 것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면 어디로 갈 생각이신가?”

“아무래도 처가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성운의 말에 단리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까 걱정되어 왔는데 잘 온 듯하구려.”

“예?”

자신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성운에게 단리명이 말을 이었다.

“요사이 안휘가 시끄럽다오. 맹의 서찰을 받은 곳이 남궁세가와 안휘협가만은 아니었단 말일세. 온 백도가 들썩이니 긴 여정은 결코 안전하지 못할 걸세.”

검마의 피붙이다. 차마 혈육을 인질로 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미처 생각이 그곳까지 미치지 못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을 내쫓은 안휘협가와 달리 소식을 접한 다른 백도의 문파들은 그들 일가를 인질로 잡으려 들 터였다.

그들에게 나성운의 일가는 검마라는 극강의 고수를 압박할 좋은 인질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단리명의 말에서 알아차린 나성운이 안색을 굳혔다.

“하오시면 혹, 대협께서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성운에게 단리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혜를 원수로 갚으라는 가르침을 배운 적이 없어서 말일세.”

“대, 대협…….”

“함께 가세. 단리세가가 울타리가 되어줄 것일세.”

생각지 못한 단리명의 말에 나성운이 걱정스런 음성을 건넸다.

“하나, 그리되면 단리세가는 백도에서 고립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단리세가는 협의가 백도의 대의라 믿네. 누가 뭐라고 해도 단리세가는 우리가 믿는 대의를 따를 것일세.”

“대협!”

감격한 나성운의 음성에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 단리명이 눈물을 글썽이는 고진에게 부드러운 음성을 전했다.

“부인을 초청하게 되어 단리세가는 참으로 기쁘답니다.”

“고, 고맙습니다, 대협…….”

아무리 아녀자라고는 하나 강호의 세가에서 살아온 시간이 적지 않았다.

그 탓에 검마라는 이름이 주는 파괴력이, 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대강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단리세가가 보여 주는 모습은 결단코 쉬운 행동이 아니었기에 고진은 고마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부모들의 마음이 상할까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던 두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탓에 단리명에게 포권을 취하는 두 청년의 눈에도 옅은 습막이 자리하고 있었다.

“헌앙한 장부들이로세. 자, 가세나.”

그렇게 객잔을 나서는 나성운 일가의 주위를 단리명을 따라온 단리세가의 무인들이 둘러쌌다. 만일을 대비해 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 * *

안휘협가에서 내쫓긴 나성운 일가가 단리명의 보호 아래 단리세가로 향하던 시각, 무당의 장문인인 일성 진인은 그의 사백인 무극검과 마주 앉아 있었다.

“불가한 일이오, 장문.”

“사백님, 이제 현경에 올라선 구환 대사와 사백께서 힘을 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왜 불가하다고만 하십니까?”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일성 진인에게 무극검, 무량도장이 말을 이었다.

“그가 현경의 고수 두엇으로 잡을 수 있는 인사였다면 이 퇴물말코는 결코 마교의 재건을 그냥 두고 보진 않았을 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백님.”

“장문, 얼마 전에 장생전을 수리한 적이 있소이다. 기억하시오?”

“예. 장생전의 사조들께서 장난을 치시다 망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일성 진인의 답에 무량도장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장난이었다면 장난일 수도 있었겠지. 그래도 현경의 고수가 둘씩이나 있는 장생전에 숨어든 이를 그냥 보낼 수 없었으니 말일세.”

“자, 잠시만요, 사백님. 현경의 고수가 둘이라니요? 장생전에 제가 알지 못하는 현경의 고수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장문인은 내소림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내소림은 소림의 환란에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 속의 수호 법승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야…….”

실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던 적이 전해오니 그저 헛소문만은 아니리라.

“그런데 말일세. 소림에도 있는 것이 이 무당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가?”

무량도장의 말에 일성 진인의 눈에 경악이 들어섰다. 말뜻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하, 하오면……?”

“장생전은 그저 밥값이나 축내는 노인정은 아니라오, 장문.”

“사, 사백님.”

놀라는 일성 진인에게 무량도장은 더욱더 충격적인 말을 전해야 했다.

“그 장생전이… 이 무당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말이외다. 장문.”

“마, 말씀하십시오, 사백님…….”

무슨 놀라운 말을 전하려는지 말을 끄는 무량도장의 입을 주시하는 일성 진인의 목으로 마른침이 넘어가고 있었다.

“단 한 사람에게 깨어졌다오. 화경의 고수 하나와 초극의 극의를 밟고 있는 이들 여섯이 펼쳐 낸 극성의 칠성검진이 깨어졌고, 초극의 고수 셋이 펼친 면장이 부서졌소. 이 무량을 넘어서는 경지를 달리고 계신 사백께서 기범대라선공을 펼치고도 죽음을 눈앞에 두었었다 그 말이오.”

무량도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경악에 겨운 것들뿐이었다.

결단코, 결단코 일성 진인은 무당이 그만한 힘을 담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저, 정말입니까? 그분들이, 정말 그분들이 우리 무당에 계십니까?”

“허허, 장문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패퇴시킨 이가 있다는 말을 더 중히 들어야 할 게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일성 진인의 눈에 불안감이 가득 들어찼다.

“서, 설마……?”

“그 설마가 검마란 이름에 닿아 있거든 의심을 품지 마시구려. 장문.”

“허억!”

너무 놀란 나머지 절로 나오는 경악성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 일성 진인을 바라보며 무량도장이 말을 이었다.

“치고자 하면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로 산을 쌓을 게요. 물론 그가 무당을 침범하면 장생전은 목숨으로 그 발길을 잡을 것이오. 하나 장문, 사조들의 넋이 담긴 이 청정도량, 무당을 지켜 낼 자신이 우리 장생전의 늙은 말코들에겐 없다는 것이 두렵구려.”

무량도장의 마지막 말이 경악에 휩싸인 일성 진인의 귓가를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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