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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33/129)

제32장. 염원(念願)-원하면 이루어진다

검존의 금분세수는 성대하게 열렸다.

중원 각지에서 찾아온 고수들과 명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검존이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수백의 남궁세가 무인들이 줄지어서 따르며 위세를 뽐냈다.

사람들이 숨죽이며 바라보는 동안 검존은 천지신명께 모든 은원을 정리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알렸다.

그렇게 제례를 마친 검존이 돌아서자, 남궁창천이 물이 담긴 금분을 들고 나왔다.

정갈하게 만들어진 대위에 남궁창천이 금분을 내려놓고 물러나자, 그 앞으로 다가선 검존이 모여든 강호 동도들을 향해 사방으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이 남궁 모가 오늘 강호의 모든 은원을 씻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것을 보증해줄 분을 여러 강호 동도들께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내뻗은 검존의 손짓에 천천히 단상으로 오르는 이를 발견한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무, 무극검 대협이시다.”

“무량진인이야.”

“맹주님이시다.”

사방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단상으로 오른 무극검이 포권을 취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강호의 오랜 명숙의 은퇴가 가슴 아픈 한편, 그동안의 노고를 뒤로하고 편안한 여생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또한 기쁘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검존 남궁호군 대협의 금분세수에 이 무량이 보증인이 될 것을 천지신명께 고하는 바입니다.”

절차에 따라 보증인이 자신을 밝히고 검존의 뒤로 가 섰다.

그에 검존이 다시 나섰다.

“이제 징이 세 번 울릴 것입니다. 그 안에 이 남궁호군과의 은원을 가리길 원하시는 분은 나서주십시오.”

검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첫 번째 징이 울었다.

쭈앙~

사실 웃긴 절차다.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엄청난 수의 무사들을 깔아놓고, 거기다 자신이 아는 명숙이란 명숙은 죄다 초대해서 자신의 무력은 극도로 부풀려 놓고선 원한 있는 사람은 나서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반 각이 지나도 아무도 나서지 않자 검존이 다시 알렸다.

“이제 두 번째 징이 울릴 것입니다. 이 남궁호군과의 은원을 해결하고자 하시는 분은 나서주시오.”

쭈앙~

조금 더 크고 길게 울리는 징 소리에도 불구하고 역시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입가에 다행스런 미소가 그려져 갔다.

“이제 마지막 징이 울릴 것이오. 그 전에 나서지 않으면 내 은원은 모두 씻어 내리게 될 것이외다.”

남궁호군의 음성이 끝나고 마지막 세 번째 징이 울리기 직전, 한 사람이 천천히 단상 앞으로 나섰다.

“이의가 있소.”

단단한 체구에 솥뚜껑만 한 손, 허름한 마의.

좀처럼 누구인지 모를 장년인의 등장에 긴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고덕이 튀어나왔다.

“아! 미안하외다. 내 친구가 술이 좀 과해서 말이오.”

어깨동무를 하고 자신을 끌고 나가는 상대의 모습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바뀐 사내는 어어 거리며 사람들 속으로 파묻혔다.

쭈앙~

비로소 세 번째 징이 울리자 사람들이 커다란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존경받던 백도의 한 명숙이 남은 시간 편안한 여생을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축하하는 함성이었다.

그 함성에 묻혀 한 전각으로 끌려간 사내가 당황한 음성을 토했다.

“패, 패주!”

“패주는 무슨. 집 떠난 게 언젠데 그 소리야.”

자신도 모르게 천마신교를 집이라 부른 고덕의 표정에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왜? 왜 떠나신 겁니까?”

“그걸 내가 너한테 일일이 설명해야 하냐?”

“그, 그건 아니지만…….”

당황하는 혈마에게 고덕이 물었다.

“그나저나 미친 거냐. 이런 곳에 뭐한다고 혼자 와?”

“그게 교주께서…….”

“교주가 뭐?”

“검존의 금분세수식장에서 목을 따오라고…….”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하고?”

“가능성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닌지라…….”

“지랄하네. 그게 왜 안 중요해.”

“명이 우선이니까요.”

“멍청한 놈, 아무리 명이라도 앞뒤 정도는 가려야지. 보증인이 누군지 보기는 했어?”

“무극검이더군요.”

“그래. 그 작자가 나섰어. 그러면 정말 검존의 목을 따고자 했다면 교주가 직접 와야지, 이게 무슨…….”

“어찌 존엄한 교주의 존체가 이런 곳에…….”

“여전히 중증이로구나. 넌.”

고덕의 힐난에 혈마는 입을 다물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교주의 진짜 생각이 뭐야?”

“알지 못합니다.”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그래도 교주와 제일 잘 통하던 게 너 아니야?”

“그것이… 최근에 교주님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그럼 이번 일의 목적도 몰라?”

“예. 다만…….”

“다만?”

“전쟁을 염두에 두시지 않았나 합니다.”

“전쟁을……?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고덕의 물음에 혈마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었다.

“백도인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저를 보냈습니다. 천하오존의 이름엔 떨어진다 하나 강호십대고수입니다. 더구나 교에선 부교주입니다.”

“네 자랑하지 말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나 대.”

고덕의 말에 혈마가 피식 웃어 보였다.

“여전하시군요.”

“그럼 그 성격이 어딜 가겠냐? 잡소리 그만하고, 하던 말이나 해봐.”

“예. 제 생각엔 이 자리가 제가 죽을 자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죽는다? 네가 이 자리에서?”

“예. 하면 교내의 고수들은 불길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그야…….”

당연하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야수들이 될 테니까.

“상황이 그곳에 다다르면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장로들이 아무리 뜯어말려도요.”

늙으면 생각이 많아진다고, 마교의 원로들은 언제나 온건주의였다.

물론 특이하게 혈기 왕성한 노인네들이 많아져서 호전적으로 변하는 적도 있었다.

그땐 불행하게도 중원 강호 전체가 피바다에 잠기곤 했다.

“그럼 네 생각은 교주가 원로원의 반대를 무산시키고 전쟁을 일으킬 심산으로 널 보냈다?”

“그것 외엔 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네가 멍청한 거야. 답이 왜 또 없어?”

“그럼 다른 답도 있습니까?”

혈마의 물음에 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게 뭡니까?”

“미친 거지.”

“예?”

“교주가 미친 거라고.”

“어, 어찌 그리 험한 말씀을…….”

“험하긴 뭐가 험해. 생각을 좀 해보란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답답하긴. 네 말대로 교주가 전쟁을 준비한다고 치자. 뭐, 심심해서 죽느니 화끈하게 한판 벌이다 죽겠다고 다짐했다고 하자고. 그런데 시작하기 전부터 교에서 가장 강력한 패 중 하나를 버린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원로원의 반대를 이겨 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원로원은 교내 단체가 아니야? 가장 좋은 방법은 원로 하나를 지정해서 너 대신 이곳에 보내는 거야. 가서 검존 모가지 좀 따오라고 말이야.”

“그러면…….”

“이제 감이 좀 오냐? 원로가 와서 죽었어. 원로원이 어떨 것 같아? 그 작자들이 늙어서 잔걱정이 좀 많긴 해도 출신이 어디 가겠냐? 원로 하나 죽는 순간, 전쟁 소리는 원로원에서 먼저 나오게 된다.”

“그런데 왜 절……?”

“그러니 미쳤다는 게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고.”

마지막 고덕의 말에 혈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 *

금분세수를 마친 남궁세가는 서서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몰려들었던 강호인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명숙들이 떠나자, 점점 조용한 남궁세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남궁세가에 거꾸로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다.

남궁세가에 머물고 있던 안휘협가 가주의 전갈을 받고 달려온 것은 나성운과 아랑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아버님.”

나성운의 인사에 협가의 가주인 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실은 검존께서 널 보자고 하셨구나.”

나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석해 있던 검존이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 물었다.

“딸아이가 있다고 들었네만.”

“예. 이 아이옵니다.”

나성운의 말에 아랑이 고개를 숙였다.

“나아랑이라 하옵니다.”

“곱게 생겼구나. 그래, 올해 몇이더냐?”

“열아홉이옵니다.”

“하하하, 좋구나, 좋아. 영호야.”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내총관인 남궁영호가 고개를 조아렸다.

“예, 백부님.”

은퇴를 했으니 호칭이 변했다. 태상가주의 직책은 사라지고 그저 가족으로만 남은 것이다.

“네 며느릿감으로 어떠하냐?”

“예?”

남궁영호만이 아니다. 주변에 배석하고 있던 이들 모두가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남궁영호에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은 남궁태 하나뿐인데, 그는 팽가와 혼담이 오고 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버님, 태는 팽가의 소저와 혼담이 오가는 중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보다 못한 남궁창천이 나섰지만, 이미 약속을 맺은 검존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혼담이 성사된 건 아니지 않냐?”

“그야…….”

“그러니 늦은 건 아닌 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천하의 팽가와의 혼담을 깨고 약체인 안휘협가와 인연을 맺는 것을 남궁창천은 방관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미 도왕께서도 알고 있는 일이고…….”

“팽현 그 영감이 장가를 가는 것도 아닌걸. 그자를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하오나 아버님…….”

“어허, 제 애비가 가만히 있는데 네가 왜 나서. 나서길.”

검존의 질책에 남궁창천이 입을 다물자, 남궁영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 생각도 가주님과 같습니다. 진행되던 혼담을 아무 이유 없이 깨는 것도 예에 어긋나는 일이고…….”

“지금 내가 태상가주 직을 내놓고 은퇴하였다고 무시하는 것이더냐?”

“아, 아버님!”

“그 무슨, 절대로 아닙니다. 백부님.”

당황하는 남궁창천과 남궁영호를 바라보며 검존이 못을 박았다.

“네놈들의 결정을 보고 내게 가진 효심을 재볼 것이야. 그리 알거라. 어험!”

그렇게 검존이 크게 헛기침을 하고 나가버리자 난감해진 것은 안휘협가의 사람들이었다.

어색한 가운데 몇 마디를 주고받던 이들이 객사로 물러나자, 나현을 통해 고덕이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전해들은 나성운이 아랑과 함께 찾아왔다.

“처숙부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래. 자네도 잘 지냈고?”

“예. 처숙부님 덕에 잘 지냈습니다.”

“덕분은 무슨……. 그래, 우리 아랑이도 왔구나.”

“안녕하셨어요, 외숙조부님.”

“오냐오냐. 그런데 얼굴빛이 왜 그 모양인 게야?”

시무룩한 아랑의 낯빛을 본 고덕의 물음에 나성운이 조심스럽게 일전의 일을 전했다.

그 말을 다 들은 고덕이 턱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남궁가의 가주와 내총관이 반대다?”

“아무래도 팽가의 신위도 있으니…….”

그 말은 이쪽이 치우친다는 뜻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고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를 가시게요?”

“잠시 만나볼 사람이 있구나.”

“처숙부님, 아랑의 일이라면 그냥 두세요.”

“아니, 왜?”

“치우치는 혼사는 그만큼 힘이 듭니다. 전 아랑이가 시집가서 힘들게 사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 자신이 겪었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성운의 말에 고덕은 안심하라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일은 없네. 아니, 없게 만들 수 있네.”

“처숙부님…….”

걱정스런 나성운의 부름에도 고덕은 귀담아듣지 않는 표정이었다.

“돌아가 기다리게.”

그 말을 남기고 바쁘게 걸어 나가는 고덕을 바라보는 나성운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하지만 걱정인 아비와 달리 아랑의 표정엔 기대감이 가득해졌다.

업무를 보던 남궁단은 씩씩거리는 고덕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자네, 한 입으로 두말할 생각인가?”

“예?”

“내게 약속했지 않았어?”

“뭐, 뭘 말씀입니까?”

“혼사 말이야. 혼사.”

“아! 예. 약속은 드렸습니다만, 갑자기 그 이야긴 왜……?”

“뭐야? 아직 모르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우리 손녀와 자네 조카 간에 혼담이 진행 중일세.”

“예에? 정말입니까?”

“그래. 방금 전에 자네 백부께서 그리 말했다더군.”

“백부라시면… 설마 태상가주님, 아니 지금은 아니지만 그분 말씀이십니까?”

“그래.”

“혹, 백부님과도 인연이 있으십니까?”

“자넨 지금 그게 중요한가?”

“그야…….”

“일단 약속부터 이행하게. 가주와 내총관이 반대한다니 그걸 설득해야 할 거야.”

“제가 말입니까?”

“그럼 내가 하나?”

“아, 아닙니다.”

“서둘러주게. 부탁함세.”

고덕의 말에 엉겁결에 집무실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밀려 나선 남궁단이 사촌인 남궁영호를 찾았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할 말이 있어 들렀네.”

“머리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면 좋겠군.”

심란한 표정인 남궁영호의 말에 남궁단이 물었다.

“태의 일 때문인가?”

“소문이란……. 그게 벌써 외원에까지 퍼진 모양이지?”

“소문은 무슨……. 그런데 그 혼처가 마음에 안 차서 그러는 건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지금 태는 팽가와 한창 혼담이 진행 중이었네.”

“이야기는 들었네만, 혹 성과가 있었던 겐가?”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라……? 구체적으로 말해보게.”

남궁단의 물음에 남궁영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그 일은 왜?”

“실은 난 안휘협가 쪽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상황일세.”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차석의 사돈이라는 사람 기억하지?”

“누구, 호원의 이명리 차석의 사돈?”

“그래. 지난 절강성의 혈사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는.”

“그래, 기억하지. 그 탓에 이번 행사에도 초청이 된 것으로 아는데.”

“맞네.”

“한데, 그가 왜?”

“실은 이번에 혼사가 거론되는 안휘협가의 처자가 그 사람의 조카 손녀일세.”

“정말이야?”

“그래. 더구나 내 그에게 혼사가 거론될 때 적극적으로 지지하겠단 약속을 하였으니…….”

“흠… 곤란하게 되었군.”

“해서 하는 부탁일세.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되겠나?”

“그게 쉽지 않아.”

남궁영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남궁단이 물었다.

“쉽지 않다니?”

“팽가에선 이미 태상가주인 도왕께 허락을 구한 모양이야.”

“이런 낭패가…….”

“만에 하나 우리 쪽에서 혼사를 먼저 깼다는 걸 알면 도왕의 성질상 그냥 있진 않을 거란 말일세.”

“그야……. 그렇다고 큰일이야 있겠나?”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그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팽가와의 화기를 크게 해치게 될까 두려운 걸세.”

“하면 가주께서 반대하시는 이유도 그 때문인가?”

“가주의 생각은 조금 다른 거 같더군.”

“다르다니?”

“안휘협가보다는 팽가와 연을 맺는 게 낫다는 것이지.”

“이런… 우리가 팽가에 기댈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그야 물론이지. 가주께서도 기대고자 하시는 건 아닐 걸세. 단지 복잡해지는 정세 속에서 든든한 우군을 만들어두고자 하시는 것이겠지.”

“틀린 생각은 아니지. 지난 구파와의 대립 때만 해도 그러하니.”

“맞네. 그렇기에 팽가의 혼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기도 하고.”

“하면 협가의 처자에겐 기회가 없는 겐가?”

“아무래도…….”

“어허, 낭패로세.”

“근데 왜 꼭 태여야만 한다던가?”

“그게 정분이 났었던 모양이야.”

“누가? 그 처자와 태가?”

“대충은 그런 듯하이.”

“이런…….”

“그러니 더 문제라는 걸세.”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건 가문의 미래가 달린 일이야!”

남궁영호의 단호한 말에 남궁단은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집무실로 돌아와야 했다.

“그러니 뭔가? 우리가 물러나라?”

“송구합니다, 대협.”

“이게 자네가 말한 목숨과도 바꿀 약속의 무게로군.”

“대, 대협.”

당황하는 남궁단의 손길을 거부하고 물러나온 고덕은 남궁호군의 거처로 향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고덕의 방문에 남궁호군은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

“약속이 참 잘 지켜지더군.”

“그게…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끼어서…….”

“그래서 나도 한 가지 말을 전해주러 왔어.”

“그, 그게 무엇이오?”

“혈마 말이야. 아직 나와 함께 있는 건 알지?”

“아, 알고 있소.”

“그가 여전히 임무를 완수하길 바란다는 걸 알려 주려고.”

“그, 그건 협박이 아니오?”

“협박? 진짜 협박 좀 당해볼 텐가?”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고덕의 기세에 놀란 검존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내 조속히 해결해보겠소.”

“좋아. 마지막으로 믿어보지.”

엄포를 놓은 고덕이 나가자 검존의 행동이 분주해졌다.

그렇게 검존의 반 협박성 발언들이 이어진 탓인지 남궁세가의 분위기는 애매하게 흘렀다.

안휘협가가 처지긴 해도 아예 이름이 없는 곳도 아니고, 초극의 극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 고덕의 존재도 부각되며 의견은 혼조세를 보였다.

그 상황을 남궁태가 결정적으로 갈랐다.

그가 아랑과 함께 도주를 선택했다 발각된 것이다.

잠시 난리가 났지만, 그 일로 결혼 상대는 깨끗하게 결정된 셈이었다.

혼담이 성사된 후 돌아가는 아랑의 활짝 피어난 얼굴을 바라보며 고덕은 자신마저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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