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고련(苦聯)-아픈 인연
고덕과 목려송에 대한 왕부 사람들의 대우는 극단적일 만큼 이중적이었다.
하녀들과 하인들은 문정 군주의 손님이라는 것만으로 지극히 공손하고 부드럽게 대했지만, 왕부의 장수들은 한때 호위 무사로 거론되었다는 것만으로 위험할 정도로 적대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부 문관들은 중립적 위치에서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문관들 중 한 명이 고덕에게 접근했다.
고의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러한지 몰랐지만, 문관은 꽤나 서글서글해서 며칠뿐이지만 나름대로 고덕과 잘 지내고 있었다.
“무장들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신임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고덕의 물음에 자신을 호철랑이라 밝힌 문관이 미소를 지었다.
“문정 군주를 모시고 나갔던 이들은 왕부의 무장들이었지요. 모두가 경호 무장으로 선발될 정도로 나름 충성심과 실력을 인정받는 이들이었는데, 일부는 죽고 일부는 실종된 상태에서 군주님마저 행적이 묘연해졌으니 왕부 무장들로서는 커다란 실책을 저지른 셈이 되었지요.”
“하면, 내가 그 실책을 회복할 기회를 막고 있는 사람이라 그 뜻이오?”
“왕부 무장들로서는 그런 셈입니다.”
“흠…….”
그제야 지독히도 적대적이었던 왕부 무장들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그렇다고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아무리 으르렁대도 왕부 무장들이 검을 들이밀진 않을 테니까요.”
호철랑의 말에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목려송이 피식 웃었다.
“왜요? 그들이 도발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 아닙니다. 전 그저 그들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
“예? 왕부 무장들의 안위가 말입니까?”
되묻는 자신의 물음에 목려송이 답을 하지 않았다고 그 의미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말귀가 어두운 호철랑이 아니었다.
목려송의 말대로라면 고덕이라 자신을 밝힌 야인의 실력이 왕부 무장들을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좀처럼 믿기 어려웠다. 수가 적은 만큼 고르고 고른 이들로만 채워 넣은 것이 소흥 왕부의 무장들이었다.
더구나 한번 소흥 왕부의 무장이 되면 엄청난 지원을 받는다.
황제가 특별히 하사했다는 황실 무공서를 열람할 수 있고, 영약이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약재들을 일정 분량 지급받는다.
그렇게 성장한 왕부 무장들의 실력은 강호의 고수들이라고 해도 쉽사리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실례로 강호 문파인 절강 철문의 고수들이 술자리에서 왕부 무장들과 충돌해 적지 않은 피해를 보고 물러났던 것이다.
좀처럼 믿지 못하는 호철랑에게 고덕이 고개를 저었다.
“저 친구가 그냥 해본 말이니 귀담아듣지 마시오.”
“아, 그렇습니까?”
겸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유가 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 말은 고덕의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그 여유는 왕부 무장들을 정말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이었다.
생각이 그에 이르자 어지간한 호철랑도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한 호철랑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소흥 왕부의 녹을 먹는 사람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왜 그리 웃으시오?”
고덕의 물음에 호철랑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소흥 왕부의 사람인 모양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왕부 무장들이 무시를 당한다고 생각하자 괜히 불쾌해지더란 말입니다. 허허.”
호철랑의 솔직함에 고덕의 입가에 미소가 매달렸다.
“그것이 사람인 것이오. 당연한 마음이니 괘념치 마시구려.”
고덕의 말에 호철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거 고 무인의 능력이 정말로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대들의 말처럼 야인이오. 실력이 출중하면 어쩔 것이고, 엉터리면 또 어떻겠소. 그냥 그러려니 하면 좋겠소이다.”
“하하하, 마음을 비우면 그리될지는 몰라도 어찌 사람이 되어 그리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사람의 호기심이란 난폭하기도 해서 가능한 도가 넘지만 않길 바랄 뿐이지요.”
“그 부분은 나도 같은 생각이오.”
고덕의 음성에서 무언가를 느낀 호철랑이 그의 시선을 좇은 곳에서 몇몇 무장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다가오는 기세가 자못 결연하니 좋은 뜻으로 다가오는 것 같지 않자 호철랑이 조용히 속삭였다.
“우선 자리를 피하시지요. 뒤는 제가 맡지요.”
아무리 야인이라고는 하나 문인이 무인의 뒤를 맡아주겠다는 소리에 고덕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아직 그렇게 삭지는 않았으니 한번 부딪쳐 봅시다.”
“고 무인!”
안타깝게 부르는 호철랑을 뒤로 세운 고덕이 돌아서자, 어느새 무장들이 지척으로 다가섰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이 있소?”
“그저 조용히 따라오라.”
“이유를 알아야 따라가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니오.”
“어허! 어찌 감히 야인 따위가. 따라오라면 따라와!”
자못 거칠게 나오는 무장들의 모습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호철랑이 비집고 나섰다.
“왜 그러는 것이오?”
“이건 장군부의 일이니 호 판관은 물러서시구려.”
“군주님의 손님이 연관된 일에 어찌 이 호 모를 물러나란 말씀이오. 못 보았으면 모르되 내가 이미 보았으니 이 또한 내 일이외다.”
호철랑의 대찬 대꾸에 무장들의 표정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문관이라고는 하나 그 직책이 판관이다.
왕부에 소속된 판관은 왕부가 위치한 소흥의 판관이기도 했지만, 왕부 내에서 벌어지는 일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왕부 판관의 일도 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뿐이오. 하니, 호 판관께선 물러서주셨으면 하오이다.”
다가온 무장들 중 가장 상급자로 보이는 중년 장수의 말에 호철랑이 고개를 저었다.
“아실 만한 막 천호께서 젊은 장수들을 다독이지 못하실망정 이리 함께 행동해서야 되겠습니까? 전하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기 전에 그만두시지요.”
은근한 협박이다. 그만두지 않으면 소흥왕에게 고해바치겠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전하의 위명에 누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그것은 이 막 모가 보증하리다.”
막 천호라 불린 이의 말에 호철랑이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상대가 저리 나오는데도 고집을 피우고 가로막으면 화기를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호철랑의 입장을 느낀 고덕이 나섰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니 어디 한번 가봅시다.”
앞으로 나서는 고덕의 모습에 호철랑이 낭패한 모습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고 무인…….”
걱정 어린 호철랑의 손을 다독여 떼어낸 고덕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별일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그 말을 두고 무장들과 함께 멀어지는 고덕의 모습을 호철랑은 불안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 *
다음 날, 호철랑은 고덕과 목려송이 자주 나와 앉는 자리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의 둘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니 무사한 것 같아 이 호 모가 마음이 놓입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려.”
웃음을 보이는 고덕의 모습에 호철랑은 안도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내 괜한 걱정으로 두 분을 심란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호철랑의 말에 고덕과 목려송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그런 둘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눈 호철랑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우연히 막 천호와 마주쳤다.
“마, 막 천호!”
놀라는 호철랑의 음성에 막 천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런 막 천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호철랑의 고개가 연신 갸웃거려졌다.
막 천호의 두 눈두덩이 판다처럼 퍼레져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방금까지도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고덕과 목려송이 있던 곳을 바라보는 호철랑의 고개가 저어졌다.
불가능한 일이 머리를 스쳤던 탓이다.
문정 군주의 부름으로 내원으로 나아간 고덕은 정원을 함께 걷자는 군주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묵묵히 정원을 걷던 문정 군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무장들에게 위해를 당하지는 않았나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녀들의 말엔…….”
아마도 어제의 일을 발견한 하녀들이 군주에게 고한 모양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정말인가요?”
“예.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 말만 던져 놓곤 정원을 걷는 문정 군주의 뒤를 따르는 고덕의 눈엔 아픔이 가득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이가 다시는 다가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던 문정 군주가 물었다.
“만약에 말이에요.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면 고 무인은 그를 찾아갈 건가요?”
문정 군주의 물음에 잠시 흠칫했던 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 것입니다.”
“그가 기억을 잃었어도요?”
다시금 이어진 물음에 아픔이 묻어나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고덕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도 찾아갈 것입니다.”
“혹시 알아보지 못하면 어쩔 건가요?”
그 물음엔 잠시 생각하던 고덕이 답했다.
“날 모르냐고 물어야겠지요.”
“그렇겠죠. 소중한 사람이면 찾는 게 당연하고, 기억을 못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냐고 물어주긴 하겠죠?”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 음성 뒤로 문정 군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덕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정 군주와 정원을 거닌 뒤 내원을 나서는 고덕의 앞을 무장 서넛이 가로막았다.
“대장군께서 보고자 하신다.”
왕부에서 대장군이라 불리는 사람은 왕부 장군부의 수장인 지휘사 이첨, 그 한 명뿐이었다.
그가 자신을 찾는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제 자신을 도발했던 장수 셋을 두들겨 패준 것을 따져 물으려 하는 것일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장단에 놀아줄 만한 마음이 아니었다.
“내일 찾아간다고 전해주시오.”
고덕의 거절에 무장 하나가 불같이 화를 냈다.
“네놈이 간이 부었구나. 감히 네깟 놈이 어찌 대장군의 부…….”
호통을 치던 장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고덕의 시선에 어린 흉포한 광기에 짓눌린 탓이다.
전신으로 엄청난 시위를 뿜어내 무장들을 밀쳐 낸 고덕이 휘적휘적 걸어갔지만, 앞을 막아섰던 무장들은 누구도 그런 그를 막아서지 못했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무장들을 본 대장군 이첨은 불같이 분노했다. 결국 그가 직접 무장들을 이끌고 고덕을 찾았다.
기세등등하게 나선 이첨은 고덕을 보자마자 호통을 쳤다.
“네 감히 왕부 무장에게 위해를 가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심란한데 찾아와 시끄럽게 구는 장수들을 훑어보는 고덕의 눈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한 목려송이 나섰다.
“그것을 따져 물으려거든 내게 먼저 오시오. 그 무장들의 몸에 손을 댄 것은 나였으니까.”
목려송의 말에 이첨의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섰다.
“무어라! 네깟 놈이 감히! 뭣들 하느냐. 속히 저놈을 꿇어앉혀라!”
이첨의 명에 뒤에 서 있던 무장 서넛이 달려 나갔다.
하지만 무엇을 어찌했는지도 파악하기 전에 달려 나왔던 무장 셋이 바닥에 거꾸로 처박혔다.
상대의 몸놀림이 예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이첨이 명했다.
“방심하지 마라!”
그의 명에 다시 대여섯의 장수들이 달려 나갔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순식간에 볼썽사나운 형상으로 바닥에 처박힌 장수들의 모습에 눈이 돌은 이첨이 장군검을 뽑아들었다.
“무기를 사용해도 좋다. 놈을 반드시 꿇려라!”
이첨의 호통에 뒤에 남아 있던 장수 십여 명이 함성과 함께 한꺼번에 달려 나갔다.
“와아아아~”
퍼버버버벅!
강렬한 격타음의 뒤로 드러난 정경에 이첨의 눈이 튀어나올까 걱정일 정도로 부릅떠졌다.
검과 도를 꺼내들고 달려 나간 장수들이 하나같이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널브러진 탓이다.
“이, 이것이 어찌…….”
당황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던 이첨이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지만, 그가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웃는 얼굴로 주먹을 날리던 꼽추 영감의 모습뿐이었다.
모조리 나가떨어진 장수들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고덕이 갑자기 피식 웃어버렸다.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그들의 모습으로 새삼 깨달은 까닭이었다.
관부의 세상은 관부인에게 모든 것이듯이, 강호인의 세상은 강호뿐이었다.
아무리 은거를 했다곤 해도 그것이 바뀔 리는 없는 일. 고덕이 바라보는 여인은 하포의 아내 연화가 아니라 소흥 왕부의 군주인 문정 군주였던 것이다.
“하아~ 그런 것이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고덕의 표정이 유난히 쓸쓸하다고 느낀 목려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까지 그는 문정 군주와 고덕 사이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 * *
정신을 잃은 무장들이 깨어나는 것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무장들을 소흥왕이 찾은 탓에 그들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다니던 하인들이 결국 무장들을 찾아낸 곳은 객원 앞마당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소흥왕의 명을 받아 찾아 나선 길이니 당연히 소흥왕의 귀에도 보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린 무장들은 소흥왕의 앞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니까 군주가 경호 무인으로 삼겠다는 이에게 당해 그 모양이 되었었단 말인가?”
“그, 그것이…….”
차마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이첨을 바라보는 소흥왕은 어이가 없었다.
이첨이 비록 노장이라고는 하나 강호에 나가서도 어느 정도 통할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실례로 얼마 전엔 암행을 나갔다가 절정 고수라던 강호인과 결투를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직접 목격했던 소흥왕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제대로 고하라. 그것이 사실인가?”
소흥왕의 물음에 이첨은 어쩔 수 없이 답했다.
“그, 그렇사옵니다. 전하.”
이첨의 답에 소흥왕이 진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의 실력이 정말 그리 출중하더냐?”
“그, 그것이…….”
“어허, 답답하다. 속히 고하라.”
소흥왕의 재촉에 이첨은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은 그 고 무인이라는 자가 아니라 그의 동료에게 당한 것이옵니다. 왕부의 이름에 먹칠을 하였으니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무장들이 모조리 고개를 조아리며 죄를 청하자 소흥왕의 표정에 이채가 어렸다.
“고 무인이라는 자도 아니고, 그의 수하로 보이던 그 꼽추 노인에게 당했다?”
“죽여주십시오, 전하.”
이첨의 음성에 소흥왕이 허공을 향해 물었다.
“너라면 어찌하겠느냐?”
“상대를 읽지 못하였사옵니다.”
허공에서 들려오는 음성에도 불구하고 이첨을 포함한 장수들은 놀라지 않았다.
음성의 주인공을 알기 때문이다.
“염홍.”
어전시위 염홍.
황제가 자객의 공격에 시달리는 소흥왕을 위해 특별히 보내준 어전시위다.
소속은 금위위로 직급은 교령이다.
황실 무예로 단련된 금위위는 강호 고수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무인들이었다.
그들 중에 가리고 가려 뽑은 어전시위들 중에 한 명일 정도로 염홍의 실력은 출중했다.
“하명하소서.”
“그의 실력을 알아볼 방법이 있나?”
“어전시위인 협련을 부르소서.”
“협련?”
“예. 시위장을 뺀 어전 시위들 중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자이옵니다.”
“황상의 안위를 책임지고 있는 그를 내 어찌 사사로이 부르겠는가?”
“강자와의 대결은 그가 원하는 오직 하나의 일이옵니다. 전하의 전언이라면 폐하의 윤허는 그가 스스로 받을 것이옵니다.”
“그 정도인가?”
“그러하옵니다. 하옵고 강자와 대결은 어전시위들의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옵니다. 그것은 폐하께도 도움을 드리는 일이 될 것이옵니다.”
염홍의 말에 소흥왕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갈을 보내라. 그에게 속히 오라고 말이다.”
“명을 받습니다, 전하.”
허공의 음성이 사라지자 소흥왕의 시선이 이첨을 비롯한 왕부 무장들에게 향했다.
“강자에게 패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더구나 무장은 일대일의 능력으로 뽑는 이들이 아니다. 그대들의 소용은 전장에서 왕부의 병사들과 함께 적을 막는 것에 쓰이는 것. 낙담하지도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아라. 염홍의 말처럼 강자와의 결투는 발전의 토대로 삼으면 그만이다.”
소흥왕의 말에 이첨을 비롯한 왕부 무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감읍하옵니다, 전하!”
“그래도 기대는 되는구나. 그의 무위가 말이다.”
그 말에 이첨을 비롯한 왕부 무장들의 얼굴에도 궁금증이 떠올랐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는 감정이었다.
이상하게도 무장들은 협련이라는 어전시위를 고덕이나 자신들을 거꾸러트린 꼽추 노인이 이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 * *
협련이라는 이가 소흥 왕부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삼 일 후였다.
자금성이 있는 북경과 소흥 간의 거리를 생각하자면 그가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부진 인상의 협련을 곁에 둔 소흥왕의 부름에 목려송을 대동한 고덕이 대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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