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1장 (22/129)

제21장. 포획(捕獲)-사냥을 시작하다

여람의 예상처럼 남궁세가에선 직면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의 사람들을 항주로 파견했다.

그들 속에서 고덕은 예상외의 인물을 찾아내곤 슬쩍 그들의 숙소로 스며들었다.

“또 자네로군.”

“대, 대협!”

자신의 출현에 놀라는 외총관 남궁단의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인 고덕이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의 똥줄이 타고 있겠군.”

“대협도 들으셨습니까?”

“대충.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더군.”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강호에서 남궁세가의 이름이 사라질지도 모르게 생겼습니다.”

자못 결연한 음성인 남궁단의 말에 고덕이 물었다.

“말로 안 되면 힘을 쓸 생각인가?”

“그건 불가합니다.”

“역시 관부의 일이기 때문인가?”

“예. 위험하지요.”

“그렇군. 하면 마련된 방법은 무언가?”

“최악의 경우엔 호부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넘기는 것입니다.”

“손해가 클 텐데?”

“감수해야겠지요.”

그 결과는 곧바로 남궁세가의 세력이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날 터였다.

아니, 그것만으로 감당하기엔 벅찰 것이다.

자칫 남궁세가가 이름만 번지르르한 소문파로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조카 손녀인 아랑의 일로 인해 남궁세가를 미래의 사돈감으로 점찍어둔 고덕으로서는 결코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젠장, 이래서 또 딸려 가는 거지.’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은 고덕이 물었다.

“만에 하나 그 문제의 점포들이 다른 이에게 해를 입는다면?”

“누구의 이름이 사용되더라도 남궁세가가 의심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입니다.”

“도저히 남궁세가와 연결되지 않는 이름이 사용된다면 어떻겠나?”

고덕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바라보던 남궁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를 들면 어떤 이름이……?”

“음양마.”

고덕의 답에 남궁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양마라면… 설마 그와도 손이 닿으시는 겁니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고. 어때, 그의 이름이라면?”

“음양마는 백도의 공적입니다. 남궁세가와는 함께 거론될 이름이 아닙니다.”

“그럼 되었네.”

고덕의 답에 남궁단이 물었다.

“정말 가능하신 겁니까? 혹시 일은 직접 하시고 이름만 퍼트릴 생각이시라면… 그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까닭이다. 만에 하나 사실이 드러나면 남궁세가는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 말게. 그 일은 분명 음양마가 벌일 테니까. 대신.”

“대신……?”

“나와의 약속이나 지키게.”

“대협과의 약속이라면 무엇을……?”

남궁단의 물음에 고덕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휘협가에서 했던 약속 말일세.”

“혹시 양 가문의 혼담에 대해서 했던 약속 말입니까?”

“그래. 잊지 않고 있었군.”

“혹시, 정말로 누구 보아둔 아이가 있는 겁니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세.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고덕의 말에 남궁단은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초극의 극의로 알려진 고덕 정도의 고수와 사돈을 맺는다는 것은 남궁세가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힘이 그 인연에 목을 맬 만큼 형편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당금의 남궁세가는 강호십대고수는 물론이고, 제하이십사강에도 남궁의 성을 쓰는 고수의 이름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나가는 고덕을 남궁단은 말리지 못했다.

정말로 이번 일은 그 정도 힘을 가지고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 *

남궁단과 헤어진 고덕은 자신이 머물던 객점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기다리던 목려송을 마주한 고덕이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 좀 하나 해주지?”

이미 검마에게 의탁하기로 한 몸이다. 그 탓에 목려송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물었다.

“어떤 것입니까?”

“상인 몇 명만 손을 봐줬으면 해.”

“남궁의 일 때문이십니까?”

정확히 지목해내는 목려송에게 고덕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하네.”

“왜 남궁세가를 도우려 하시는 겁니까?”

물어오는 음성에서 불만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왔다.

아마도 자신을 공적으로 선포했던 백도와의 감정 탓인 모양이었다.

그런 목려송에게 고덕이 어설피 웃어 보였다.

“그게… 미래의 사돈이라서 말이야.”

“미래의 사돈이요?”

“조카 손녀가 남궁세가의 머저리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거든.”

고덕의 답에 목려송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 이유 하나로 관부의 추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한 일을 저지르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부의 추적이 벌어질 겁니다.”

“괜찮아,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추적을 받는 당사자가 태평한 검마가 아닌 바로 본인, 목려송이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엔 내가 모든 걸 책임진다.”

최악의 경우? 그럼 일반적인 경우엔? 의문이 든 목려송이 물었다.

“최악 이전엔 그럼 어찌하란 말씀이십니까?”

“그야 숨어 지내야지.”

“어디서요?”

“우리 집에서.”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는 고덕에게 목려송은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친다는 말은 않으니 의리는 있다고 봐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 * *

그날 밤, 어둠이 내려앉은 저자를 목려송과 고덕이 휘저었다.

다음 날 잿더미로 변한 세 개의 점포와 주인의 목이 꺾인 네 개의 점포가 모습을 드러내자, 항주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술렁거림 속에 음양마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음양마가 그 점포들을 왜?”

“그야 모르지. 애초에 원한이 있었던지 아니면 우연히 겹친 건지.”

“아무리 우연이 겹쳤기로서니 일곱 곳이 겹칠 순 없잖아.”

“맞아, 맞아. 이건 분명 남궁세가의 짓이라고.”

“어허, 입조심해. 괜히 남궁세가의 무인들에게 해코지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상황이 그렇잖아, 상황이.”

“하긴 그렇긴 해. 그래서 그런가? 관부에서도 남궁세가를 조사한다고 하던데?”

서로 떠들던 사람들 중에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데 음양마는 어떻게 거론된 거래?”

“불태워진 점포들 중에 한 곳의 주인이 천운으로 살아남았잖아. 그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웬 꼽추 노인 하나가 들이닥쳐서 번 돈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던데?”

“꼽추 노인이라고 모두 음양마는 아니잖아?”

“그게, 점포에 고용되어 있던 경비 무사 열을 손짓 한 번에 모조리 황천길로 보냈다지 않나. 꼽추이면서 그런 실력을 갖춘 이가 흔하다고 생각지 않아. 더구나 노인이.”

“그건 그렇군. 한데 음양마가 언제부터 돈을 노린 거지?”

“요사이 음양마의 사정이 곤궁했다더군. 그 탓에 강호에선 음양마의 소행으로 거의 굳어가고 있는 모양이야.”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일어서는 고덕의 표정에 만족함이 가득했다.

거래를 타진 중이던 점포들의 괴사에 관부는 즉각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워낙 거래 규모가 크고 또 거래 품목의 용처가 특이했던 탓에 조사는 조밀하고 엄격했다.

하지만 항주에 나와 있던 남궁세가 사람들에 대한 조사에서 별다른 것을 찾지 못한 관부는 할 수 없이 예정대로 그들과의 거래를 타진할 수밖에 없었다.

남궁세가로선 거래가 늦어진 탓에 예상보다 이득이 줄었지만,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할 상황에서 기사회생하게 된 덕에 그런 작은 부분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 * *

봉공이라고 불렸던 혈포의 사내가 흑면조장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럼 일은 실패인가?”

“아, 아직은 아닙니다.”

“절강의 일이 틀어졌는데 일이 실패한 건 아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청성에 나가 있는 조원들도 건재하고, 단리세가에선 일조차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흑면조장의 답에 봉공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남궁세가의 지원이 이루어지면 단리세가를 흔드는 일은 어려워. 모르진 않을 텐데?”

“하, 하오나 우리의 목표는 단리세가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틈을 벌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하면 지금 상태에서도 그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충분합니다.”

“자신 있어 하는군. 그럴 만한 일이 있나?”

“일전에 실패했던 소흥 왕부의 일을 다시 도모할 생각입니다.

“소흥 왕부의 일을?”

“예. 이번에도 계획대로 소흥 왕부만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그야……. 하지만 그 일은 검마의 출현으로 무산된 것으로 아는데?”

“하오나 이젠 그를 피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척살령을 이용하잔 말인가?”

“예, 봉공. 정확히는 그 명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적면조장을 이용하고자 합니다.”

“그와 검마를 붙여 보겠단 소리로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경호를 맡았던 강호인들은 모두 흩어지지 않았나?”

“그래도 상관없지요. 흩어졌다면 검마도 떨어져 나갔다는 뜻이니 우리의 일은 더욱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흑면조장의 말에 봉공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러니 검마가 있으면 적면조장을 붙이고, 떨어져 나갔다면 일을 수월히 처리하겠다?”

“예. 더구나 정보론 조만간 문정 군주가 자금성을 나설 것이라 합니다.”

“귀가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일을 재개하겠다면 말리진 않지. 하지만 정체가 탄로 나서는 곤란해. 아직은 교의 상황이 관부와 척을 질 정도로 완전하지 않아.”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진행을 허락하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봐.”

“감사합니다.”

마지막 기회가 아직은 유효하다는 것에 흑면조장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 같았다.

그런 흑면조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봉공이 물었다.

“소흥 왕부가 동원된다 하더라도 일을 바로잡기엔 어려울 텐데, 어찌할 생각인 거지?”

“아직 남궁세가와 호부의 거래가 성사된 것은 아닙니다.”

“그야……. 하면, 소흥 왕부를 끌어들여 그 거래를 틀어볼 생각인가?”

“예, 그러합니다. 우선 소흥 왕부의 위민상단을 끼워 넣어 거래의 시간을 끌어볼 생각입니다.”

“단지 거래의 시간만 끌어서 될 일은 아닐 텐데?”

“아닙니다. 이번 일은 시간이 관건입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남궁세가는 파멸이니까요.”

“결국 남궁세가에서 저가에 호부와 거래를 맺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그래서 원래 소흥 왕부를 끌어들이려던 것입니다. 그들이 끼어들면 호부는 그리 쉽게 결정하지 못할 테니까요.”

아무리 상단이라고는 하나 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상단이다.

그런 상단이 거래를 하자고 나섰는데 조건이 좋다고 무조건 다른 곳과 계약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관부에서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흠… 그게 가능하겠나? 나라를 위해 군주의 안위를 포기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냔 말일세.”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소흥왕은 자녀를 두지 않았습니다. 형제가 자객에게 죽어나간 것을 목격한 소흥왕이 어린 동생을 지켜 내기에 바빠 그럴 짬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지난 세월 왕부들의 알력은 정점을 달리고 있었다.

연이어 급사한 선황들의 뒤를 이은 황제의 나이가 어렸던 탓이다.

더구나 힘이 강한 숙부가 적통인 조카에게서 황위를 찬탈했던 세조, 영락제의 전례가 있는 황실이기에 그 혼란은 특히 심했다.

그런 혼란 속에서 힘이 약한 소흥 왕부가 살아남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는 혹독했다.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예. 그래서 선택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높아지겠군.”

“예. 더구나 당금 황제에게 유일하게 우호적이었던 소흥왕입니다. 들리는 소문엔 문정 군주가 자신과 동년배인 사촌 조카를 불쌍히 여긴 탓에 소흥왕이 황제의 편에 선 것이라 합니다.”

“문정 군주가 황제를 불쌍히 여겼다?”

“예. 아마도 부모를 일찍 여인 것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덕분에 위기에 처한 황제를 위해 소흥왕이 사병들을 몰아 자금성으로 구원에 나서기도 했었지요.”

“그건 알고 있네. 그 도움으로 황제가 위기에서 벗어났지.”

“예. 그 일로 구대 왕부가 팔대 왕부로 줄어들기도 했습지요.”

줄어든 왕부의 결말은 참혹했다. 역적의 죄를 받아 왕부에 머물던 인원이라면 강아지 한 마리까지 황제의 검을 피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랬지. 그런데 호부가 소흥 왕부를 홀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호부 상서가 금사 왕부의 사람이기 때문입니까?”

“그래. 금사 왕부는 지금 사면초가야. 소흥 왕부의 체면을 보아주며 시간을 끌 입장이 못 된다는 말이야.”

금사 왕부가 위치한 곳이 난이 일어난 광서성과 접경인 귀주성이기 때문이다.

일을 늦게 처리하면 할수록 광서성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금사 왕부의 안위가 위태로웠던 것이다.

“그래도 호부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가 있나?”

“당금의 황제가 동년배인 사촌 고모를 끔찍이도 아끼기 때문입니다.”

“문정 군주를 황제가 아낀다?”

“예. 소흥왕이 자신을 왜 지원했는지 황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니, 호부상서가 황제의 눈치를 볼 것이란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아무리 호부상서가 금사 왕부 출신이라 해도 관인의 입장에서 황제의 눈치보다 무서운 건 없을 테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하면, 소흥 왕부의 일에 모든 걸 거는 것인가?”

“예. 제 목을 그 일에 걸겠습니다.”

흑면조장의 답에 봉공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좋을 대로. 그리고 음양마의 일은 어찌 처리하기로 했지?”

“일전의 명대로 적면조에 의뢰했습니다.”

“적면조에선 누가 나섰나?”

“적면 일호와 이호가 나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대가 음양마인데 그들 둘로 될까?”

“하지만 적면조장은 검마의 일로……. 그리고 적면조장의 말로는 그 둘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적면조는 교주의 직할이다. 봉공의 입장으로서도 적면조의 일엔 개입할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다면 할 수 없겠지. 그들에게 맡겨 둘 밖에. 그나저나 음양마가 갑자기 왜 끼어들었는지는 알고 있나?”

“아무래도 우리 뒤를 쫓는 것 같습니다.”

“뒤를?”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나?”

“검마의 출현으로 복주상단의 일이 틀어진 이래로 음양마는 영약을 포기해야 했을 겁니다. 그 보복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검마에게 붙어 먼저 배신한 건 음양마가 아닌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는지라…….”

“무슨 소린지 알아듣게 설명해봐.”

“검마와 음양마는 함께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과거 마교에 의탁하려던 음양마를 검마가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어서…….”

“하면 음양마가 검마에 억하심정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함께 움직인 거지?”

“바로 그것입니다. 해서 전 음양마가 검마의 힘에 눌려 억지로 이용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음양마는 우리가 힘을 실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양마가 검마에게 거절당했다는 정보가 정확해야겠지. 그 정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교주께서 확인해주신 것입니다.”

“교주께서?”

“예. 마제에게서 확인한 정보라 하셨습니다.”

“마제에게서 확인한 정보라……. 그가 사실대로 말했을까?”

“설마 교주께서 진위를 판별해내지 못하셨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흑면조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봉공은 걱정이 되었다.

교주가 갖는 강자들에 대한 일종의 믿음이 너무 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면 지금의 음양마는 검마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보나?”

“그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검마가 남궁세가의 일에 나설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더구나 검마라면 직접 나서지, 남을 시킬 사람이 아니질 않습니까?”

“그래. 네 판단을 믿어보기로 하지. 만에 하나 그것이 실수라면……?”

“죽음으로 갚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봉공의 음성에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 * *

숨어 있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음양마 목려송은 항주에 머물면서 사태의 진행을 지켜보고 있던 고덕에게서 떨어져 나와 홀로 항주의 한 야산에 들어 있었다.

“제길, 이런 생활이나 하자고 붙은 건 아니었는데…….”

투덜거리며 모닥불에 장작을 밀어 넣던 음양마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에서 오신 고인들이시오?”

어느새 잘게 조여 오며 주변을 완벽하게 틀어막은 기파.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결코 자신의 하수가 아니라고 판단한 음양마의 음성은 신중했다.

그런 음양마의 물음에 건조한 음성이 답을 해왔다.

“배신의 대가를 받으러 왔다.”

“배신? 무슨 배신을 말하는 것이오?”

고개를 갸웃거리는 음양마의 물음에 동과 서에서 붉은 복면인이 한 사람씩 솟아올랐다.

묵직한 신위에 짜릿하게 일어서는 솜털들…….

둘 모두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강호십대고수에 필적할 이를 둘씩이나 동원할 수 있는 곳이 언뜻 짐작되지 않았다.

“정천맹인가?”

물으면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천맹의 인사가 복면을 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궁금증은 염라전에 가서 풀도록.”

서로 시선을 교환한 복면인들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양쪽에서 덮쳐 드는 강력한 기세에 음양마는 모든 내공을 끌어올려 강하게 휘둘러 쳤다.

콰광-

희대의 마공이라는 음양혼원공이 지독한 한기를 머금은 빙장과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열양장을 동시에 뿜어냈다.

그 두 장공과 부딪친 복면인들의 공격이 허공에서 소멸했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을 뿐, 소용돌이치며 몰아치는 공격이 이어졌다.

두 복면인의 공격을 받아내는 음양마 목려송의 형편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직은 뭉클거리며 솟아오르는 내력의 힘으로 양쪽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자신과 동급인 고수 두 사람의 공격을 언제까지 방어해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두 적과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던 음양마의 어깨 어림에서 피가 솟구쳤다.

상대의 장공이 스친 것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호신강기가 씌워진 살갗이 찢어지고 뼈가 상했다.

급히 물러서며 지혈을 한 음양마의 시선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미 내력의 양이 달리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저들을 뚫고 나가기로 마음먹은 목려송의 신형이 빛살이 되었다.

쾅-

느닷없는 공격에 강하게 되받아친 복면인의 입에서 당황성이 튀어나왔다.

“저, 저런!”

자신의 공격이 주는 충격을 이용해 음양마가 도주를 택한 탓이다.

“쫓아!”

다른 한 명의 복면인이 친 고함에 당황해 서 있던 복면인도 신형을 뽑아올렸다.

그렇게 달려가는 이들의 앞엔 항주 시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 * *

한참 잠을 청하던 고덕은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음양마가 숙소의 창문을 부수고 난입한 것이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불쾌한 음성을 토하는 고덕의 시선은 곧바로 들이닥친 두 복면인에게 향했다.

“뭐야? 쫓긴 거야?”

“저와 동급인 놈들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경고성에 언뜻 그를 바라보던 고덕의 시선에 피가 묻은 음양마의 어깨가 들어왔다.

“뭔 원한이 그리 많아서 잠도 못 자고 이 꼴이야?”

“죄, 죄송합니다. 그게 워낙 꼬인 놈들이 많아서…….”

음양마의 사과에 혀를 찬 고덕이 붉은 복면을 쓴 사람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백도 말고 다른 곳하고도 척을 졌나?”

“예? 그게 무슨……?”

“백도 애들이 복면을, 더구나 저렇게 뻘건 복면을 뒤집어쓸 이유가 없잖아?”

고덕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의문이 들었던 음양마가 물었다.

“도대체 어디의 누구냐?”

음양마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답이 없었다.

“이것들이 왜 대답을 안 해?”

사실 고덕의 등장에 당황한 것은 정작 붉은 복면을 한 이들이었다.

“흐음… 검마!”

자신의 정체를 단번에 찍어내는 상대의 반응에 고덕이 이채를 머금었다.

“이것 봐라. 날 알아?”

“…….”

자신의 물음에 묵묵부답인 그들의 모습에서 고덕은 전날 마주쳤던 복면인들을 떠올렸다.

“오호~ 파란 복면을 쓰는 놈들이랑 한패로구나.”

천천히 다가오는 검마의 모습에 붉은 복면을 쓴 둘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상대가 천하오존의 일인인 이상 자신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문정 군주의 곁에 있던 것이 아니었나?”

순간 고덕의 걸음이 멈추었다. 잊고자 노력해도 잊을 수 없었던 이의 이름이 나온 탓이다.

“그녀를 어째서……?”

상대의 반응에서 자신들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엿본 붉은 복면인들이 의미심장한 음성으로 물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보내주겠소?”

“사실이라는 걸 어찌 알지?”

“들어보면 알 것이오.”

상대의 말에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껄여 봐.”

다소 거칠어진 고덕의 반응에 속으로 미소를 그린 복면인들이 말을 이었다.

“조만간에, 아니 벌써 출발했겠군. 여하간 문정 군주가 자금성에서 나와 귀가하게 될 것이오.”

“그런데?”

“그 행렬을 급습하게 될 거요.”

이전에도 복면을 뒤집어쓴 놈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물러간 적이 있었다.

그러니 자신에 대비한 충분한 준비를 갖췄다면 다시 시도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왜 그녀를 노리는 거지?”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녀, 문정 군주와 이곳의 일이 무슨 상관이라고?”

“몰랐던 모양인데, 문정 군주는 소흥 왕부의 사람이오.”

여람에게 들었던 소흥 왕부가 거론되자 고덕은 대강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그녀를 이용하겠단 말이로군.”

“그런 건 우리도 모르오. 사실대로 말했으니 이제 약속을 지켜 주시오.”

복면인의 말에 고덕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너희를 살려 보낸다면 그녀가 더욱 위험해지겠지?”

고덕의 음성에서 살기를 읽어낸 복면인들이 주춤거리며 말했다.

“약속했잖소!”

“약속한 적은 없어. 지껄여 보라고 말한 적은 있어도.”

고덕의 답에서 그가 자신들을 놓아 보낼 생각이 없다고 판단한 복면인들이 동시에 치고 나왔다.

선공이 아니라면 아예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공격에 대비하는 고덕의 지척에서 두 복면인의 신형이 방향을 틀었다.

공격을 가장한 탈출이었던 것이다.

복면인들이 벗어나려는 순간, 고덕의 신형이 팽이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압력이 회전에서 발생하며 모든 것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벗어나려던 복면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주변의 기물들과 함께 끌려든 복면인의 신형이 고덕의 주변으로 다가서는 순간, 회전의 중심에서 눈이 멀 것 같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가가각-

마치 돌이 갈려 나가는 것 같은 소음이 터졌다.

강렬한 광채와 소름 돋는 소음에 시선을 돌렸던 음양마가 다시 눈을 돌렸을 땐 흥건한 핏물 속에 흩어진 육편과 부서진 집기의 잔해들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과 동급의 고수 둘을 순식간에 육편 조각으로 갈아놓은 고덕의 무위에 음양마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 그에게 고덕이 물었다.

“자금성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주로 어떤 길을 택하게 되지?”

고덕의 물음이 문정 군주의 이동 경로에 관한 것이란 걸 직감한 목려송이 답했다.

“관인의 이동은 언제나 관도를 따르기 나름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추상적이다. 관도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슬쩍 찌푸려지는 고덕의 인상을 확인한 목려송이 말을 추가했다.

“거기에 자금성에서 소흥 왕부로 향하려면 산동과 강소를 거칠 확률이 높습니다.”

“하면?”

“경로상의 성도는 반드시 들립니다. 우선은 강소의 남경을 확인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산동의 제남으로 향하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목려송의 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덕의 신형이 부서진 창문을 통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가 문정 군주를 구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판단한 목려송도 그 뒤를 급히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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