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20장 (21/129)

제20장. 함정(陷穽)-강렬한 유혹

복주상단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상만이 복주상단을 뒤엎자고 일을 벌였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점포들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탓이다.

상단주의 상세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그를 맡았던 의원은 무사히 돌아온 가족들의 모습을 확인하곤 고덕의 발밑에 엎드려 감사를 연발했다.

“상단은 곧 원래대로 회복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처숙부님의 은혜입니다.”

여곤의 감사에 고덕이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로군. 그나저나 흑상회에 넘기기로 했다는 절강의 점포들은 어찌했지?”

“흑상회와 계약을 철회했습니다. 그쪽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의 강동 쪽 점포들을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흑상회도 이용을 당했다는 뜻이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들이 이번 일의 주동자가 아니란 소리일세.”

“하면 그들을 저대로 두란 말씀도 그 때문이셨습니까?”

“그래. 알지도 못하는 이들과 드잡이질을 하며 피해를 보느니 참고 진범을 잡는 것이 나으니까.”

고덕의 말에 여곤의 표정에 이채가 떠올랐다.

“혹시 진범을 알고 계십니까?”

“글쎄……. 조만간에 스스로 드러나겠지. 참, 절강 쪽 점포들에게 주의를 주었나?”

“예. 말씀하신 대로 흑상회 쪽 점포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라 이르긴 했습니다만…….”

여곤의 답에 고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미 드러난 흑상회 쪽 점포들이 아니라 아마 숨겨진 점포들이 있을 게야. 그것들을 찾아 주시해야 하는데…….”

“그럼 이상 징후를 보이는 점포들이 생기는지 주의를 기울이라 할까요?”

“그래, 그게 더 낫겠군. 그리 전갈을 해주게.”

“알겠습니다. 한데, 그 일이 진범을 잡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아니라면 그런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없겠지.”

고덕의 답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여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데, 한도회 말씀입니다.”

“한도회가 왜?”

“그곳과 연을 댈 수 있을까요?”

“한도회와 연을? 왜, 뒷배로 삼을 요량인가?”

“이번 일을 계기로 느낀 것이 많습니다.”

사실 복주상단은 뒤를 봐주는 무문이 없었다.

그것은 상가가 무가와 얽혀 좋을 게 없다는 가풍 탓이었다.

“뒤를 봐주는 곳이 있었다면 당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적어도 이렇게 맥없이 당하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연결된 무문도 자금줄을 잃는 걸 원치 않을 테니 그리 쉽게 물러서진 않았겠지. 하지만 이번 일에 동원된 이를 생각해봐. 그 정도 무인이 관련되면 한도회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무문도 물러설 수밖에 없어.”

음양마 목려송을 말하는 것이다.

강호십대고수가 연관된 일에 뛰어들 문파는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그 한 번으로 문파의 현판을 내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의가 있는 곳을 찾아야겠지요.”

“그곳이 한도회다?”

“대문파라 부를 순 없지만, 육웅도 조극동의 일을 처리했던 과정을 보면 신의는 있어 보였습니다.”

“조극동의 일이라…….”

여곤이 거론한 일은 고덕도 들은 적이 있었다.

사파에 몸담고 있던 조극동이 어릴 적 죽마고우였던 칠파도 묵광겸의 설득으로 백도인 한도회로 전향한 사건을 말함이다.

당시 조극동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백도의 수많은 고수들과 문파들이 한도회에 가한 압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한도회의 회주인 예자문은 자신의 수하인 묵광겸을 믿고, 그 압박을 묵묵히 받아내었다.

간혹 걸어오는 도전은 예자문이 직접 나서 대신 받아내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당한 부상이 적지 않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예자문과 한도회는 조극동을 버리지 않았다.

“예. 그 일을 보면 신의는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뭐, 나쁘진 않겠지.”

“연결을 해주시겠습니까?”

“내가?”

“예. 처숙부님과 연이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만…….”

“누가? 칠이가 그러던가?”

“아… 닙니까?”

주저하며 묻는 여곤에게 고덕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칠이를 통해 알게 된 곳일세. 연결하고자 한다면 칠이를 통하는 게 옳겠지.”

“처남이 그 정도의 능력이 있겠습니까?”

“칠이의 말 한마디에 복주 분타에서 무사를 보냈네. 힘이 없다고 보는가?”

“하나 분타주의 말엔 처숙부님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고…….”

“다 인사인 게지.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단 말인가. 더구나 칠이의 직급이 위각의 부각주일세. 그만한 힘이 없겠는가?”

한도회의 구성은 잘 모르지만, 한 조직에서 일각의 부각주라면 결코 낮은 직급이 아니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하니, 그 일은 칠이와 의논해보게.”

“아, 알겠습니다.”

답하는 여곤의 표정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덕은 걱정하지 않았다. 한도회 정도의 문파가 복주상단이 내민 손을 잡지 않을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도회의 식구인 고칠의 매형이 이어받을 상단이다. 믿을 수 있기에 더욱 적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고덕의 생각이었다.

* * *

고덕의 생각대로 고칠의 연통을 받은 한도회는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고 부각주가 큰일을 해냈습니다.”

한도회의 군사인 설지평의 말에 회주인 예자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데 한시름 덜게 되었어.”

“그러게 말입니다. 회에서 상단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그 소득이 너무 적어서…….”

말을 잇는 설지평의 표정이 무안함으로 가득했다. 그 상단을 지휘한 것이 설지평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다 자기 밥그릇이 따로 있다는 말은 허투루 있는 게 아닌 것이지. 자네가 무가의 일엔 뛰어나도 상인의 재목은 아니듯이, 저들도 상인의 자질은 뛰어나도 힘을 기를 순 없었던 게야.”

“저도 회주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우린 힘을 키워 그들의 뒤를 봐주고 그들은 돈을 버는 일에 전념하는 것. 서로의 이점을 살리는 일이니 우리도, 또한 저들도 득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칠파도 묵광겸의 말에 설지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나,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설지평의 말에 묵광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니?”

“고칠 부각주가 보내온 보고서를 보면 암중의 세력이 복주상단에 손을 대었던 모양입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 보이나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닌 듯합니다.”

“하면, 그 암중의 세력이 여전히 복주상단에 손을 대고 있단 말씀이오?”

“예, 묵 전주님.”

한도회에서 묵광겸의 지위는 육웅도전의 전주다. 그 직함을 부르는 설지평의 답에 묵광겸이 가슴을 쳤다.

“그렇다면 이 묵광겸을 보내주시구려. 내가 가서 놈들의 목뼈를 추려 다시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하겠소.”

묵광겸의 호기에 설지평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이번 일에 암중의 세력이 동원한 인물이…….”

말을 끄는 설지평의 모습에 답답하다는 듯이 묵광겸이 물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그러는 거요? 설마 나보다 높은 경지의 고수이기 때문이오? 아시겠지만 나 혼자서 안 된다면 조극동이랑 함께 가서 뒤집어엎어놓겠소. 하니 걱정 마시오.”

인생을 뒤바꿀 정도로 우애가 깊은 사이이기 때문인지 조극동과 묵광겸 두 사람이 펼치는 연수합격은 대단히 무서웠다.

묵광겸은 지금 그걸 믿고 나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묵광겸의 자부심은 설지평의 말 한마디로 곧바로 뭉개졌다.

“그게… 그들이 동원한 인물이 음양마였답니다.”

“누, 누구? 설마 강호십대고수의 그 음양마 말이오?”

놀라 말까지 더듬는 묵광겸에게 설지평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끄응…….”

대번에 묵광겸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무리 자신과 조극동의 연수합격이 뛰어나도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의 경지에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제하이십사강만 해도 장담하기 어려운데, 십대고수라면 이야긴 하나 마나였다.

“그가 손을 대었다?”

입을 다물고 물러난 묵광겸 대신에 예자문이 묻고 나섰다.

“예, 회주님. 고칠 부각주의 보고에 의하면 고 대협의 활약으로 음양마가 손을 떼었다고는 합니다만…….”

“고 대협이라면 고칠 부각주의 숙부 말인가?”

“예. 회주님.”

“그가 나서서 음양마를 물리쳤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물리쳤다기보다는 모종의 인연을 이용해 양보를 받아낸 듯합니다.”

설지평의 답에 예자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 대협이 음양마와 인연이 있었다?”

“자세한 건 고칠 부각주도 모르는 일이라 합니다. 아마 고 대협이 함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건 현재 고칠 부각주와 함께 복주상단에 머물고 있는 안 분타주의 전언입니다만…….”

“무언가?”

회주, 예자문의 물음에 설지평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게… 꼽추 노인 하나가 고 대협과 함께 있답니다.”

“꼽추 노인? 자네, 설마……?”

회주의 물음에 설지평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음양마가 고 대협과 함께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꼽추라는 특징이…….”

설지평의 말에 그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조극동이 나섰다.

“음양마라면 제가 안면이 있습니다.”

“조 전주가 말이오?”

그의 물음에 조극동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 회주님. 그와는 과거에 한 번 조우한 전례가 있습니다.”

“흠… 그는 어떤 사람이오? 소문대로의 인사요?”

예자문의 물음에 조극동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말투나 행동은 분명 그리 험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 손속이…….”

“역시 거칠다?”

“제가 보는 앞에서 백도의 추격자 스물이 모조리 찢겨 죽었으니까요.”

조극동의 답에 예자문의 표정에 근심이 들어섰다.

한번 뱉어낸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조를 가진 사람이 예자문이다.

아니, 한도회를 세운 이백 년 전의 강호오대고수 철검마 예서경 이후, 예씨 가문의 사내는 모조리 그 같은 신조를 지켜 왔다.

“결정하면 죽어도 지켜야 하는 게 약속이라고 믿네. 만에 하나 복주상단과 약조를 맺는다면 음양마가 아니라 천하오존이 나선다고 하더라도 사생결단을 내야 할 일이 될 게야. 그 전에 확실히 해두었으면 좋겠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위험이 버젓이 존재하는 곳에 발을 들이밀 생각은 없었다.

하니 현재 복주상단의 일에 음양마가 손을 대고 있는지, 아니면 다시 댈 생각인지 정도는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고덕이라는 이와 함께 있다는 꼽추 노인이 음양마인지 확인해 보고드리겠습니다.”

“만에 하나 그가 맞다면?”

“그와 안면도 있으니 의중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극동의 답에 예자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그럼 조 전주가 수고를 해주시오.”

“명을 받습니다.”

그렇게 사절이 정해졌다.

* * *

한도회에서 보내온 협상 사절의 모습에 복주상단은 크게 고무되었다.

그들은 조극동을 보낸 것이 앞으로 복주상단을 대함에 있어 조극동의 일과 마찬가지로 임하겠다는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상황이었지만, 조극동은 그들의 오해를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서로 약조를 체결하게 되면 복주상단의 생각처럼 될 것이라 믿었던 탓이다.

그를 맞은 복주상단에서 성대한 환영 연회를 베풀었지만, 조극동은 좀처럼 그 연회를 즐기지 못했다.

고덕이라는 이의 옆에 조용히 앉은 사람이 음양마 목려송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연회가 끝나자 조극동은 숙소로 돌아가는 목려송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왜 자꾸 따라오시는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서는 목려송의 앞으로 나선 조극동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강호 후학 조극동이 목 대협을 뵙습니다.”

이미 칠순이 지척인 목려송의 연배도 그랬지만, 배분상으로도 분명 조극동은 그의 아래였던 것이다.

“오랜만일세.”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데 어쩐 일로 자꾸 따르는 겐가?”

물음을 던지며 목려송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만치에 서 있는 고덕의 눈치를 살폈다.

그것을 본 목려송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저분을 아십니까?”

고덕을 흘깃거리며 묻는 조극동의 물음에 목려송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잘 아는 분일세. 내 자네와 연이 있어 하는 말이네만, 저분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게.”

목려송의 답에 조극동의 눈이 더할 수 없이 커졌다.

천하의 목려송이 상대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탓이다.

“어리석은 인사의 눈을 떼어주시겠습니까?”

고덕의 정체를 묻는 것이다. 그 물음에 찌푸려지는 고덕의 표정을 읽은 목려송이 고개를 저었다.

“다 알게 될 때가 오겠지. 하면 난 이만 들어가겠네.”

“저, 저기, 목 대협.”

돌아서려던 목려송이 조극동의 부름에 다시 몸을 돌렸다.

“왜 그러나? 혹 묻고픈 것이 있다면 서둘러주게.”

사람이 너무 부드러워졌다. 무턱대고 거칠기만 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극동이 아는 목려송은 이렇게까지 부드러운 인사 또한 아니었던 것이다.

그 탓에 저만치 떨어져 서서 오만상을 쓰고 있는 고덕이라는 이에게 시선이 갔다.

아무래도 고덕이라는 저 사내가 목려송이 부드럽게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혹시 복주상단에 대협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까?”

조극동의 물음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들은 목려송이 미소를 지었다.

“저분이 계신 한 관심을 안 가질 순 없겠지. 하나, 그 관심이 호의라는 것은 저분과 여곤이라는 복주상단의 후계자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일세.”

한도회의 부각주인 고칠과 고덕은 조카와 숙부의 관계다. 그런 고칠과 여곤이 처남과 매부의 관계라면…….

“인척이군요.”

“그렇지. 저분은 가족의 일을 중히 여기시는 것 같았네.”

답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얼굴에 화색을 띤 조극동이 말했다.

“하면 한도회는 복주상단과 약조를 맺을 것입니다.”

“양쪽에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 그럼, 난 이만…….”

그 말을 남긴 목려송은 황급히 고덕이 기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했다. 그곳에서 조극동은 천하의 음양마 목려송이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았다.

목려송과 함께 천천히 멀어져 가는 고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조극동의 표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이걸 말하면 믿는 사람이 있을까?”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건 조극동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 탓에 그의 중얼거림은 공허하게 사라져 갈 뿐이었다.

* * *

복주상단과 한도회의 약조는 상호 동맹이라는 구체적인 조약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 조약으로 인해 복주상단은 한도회에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한도회는 복주상단의 안전을 보장하게 되었다.

“경비 무사들이 왜 이리 부산스러운 거지?”

고덕의 물음에 여곤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한도회에서 경비 무사들을 파견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럼 저들이 떠나는 것인가?”

“아닙니다. 저들은 대부분 한도회에 가입하기로 했습지요.”

“가입을 해?”

“예. 한도회의 교각에 들어 한동안 훈련을 받겠지만, 그것이 끝나면 한도회의 무사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자네의 조건이었나?”

“어찌 되었건 복주상단의 녹을 먹던 이들이니까요. 저들의 호구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의가 부족한 이들이 아니었나?”

“목숨이 달린 일이었습니다. 그냥 이해하기로 하였습니다.”

위기의 순간 그 목숨을 버릴 각오로 지켜 달라고 평소에 돈을 지급하는 것이니, 여곤의 말은 틀렸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덕은 그리 세세히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다.

“뭐, 자네가 잘 알아서 했겠지. 하면, 이제부턴 한도회에서 이곳의 경비를 맡는 건가?”

“예. 당장은 복주 분타의 무사들이 맡고, 조만간에 전위당에서 고수들이 추가로 파견될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들만으론 무리일 텐데?”

고덕의 걱정에 함께 있던 고칠이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회에서 묵 전주님을 복주 분타로 파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묵 전주?”

“예. 칠파도 묵광겸이라면 들어보셨는지요.”

조극동의 일로 더욱 유명해지긴 했지만, 원래부터 칠파도법과 함께 강호에 이름깨나 날리던 인물이었다.

“들어본 기억은 있다만…….”

“초절정 고수입니다. 회에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회주를 포함해 셋뿐인 초절정 고수를 회 밖으로 빼낸 상황이니 고칠의 말대로 한도회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셈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고덕을 확인한 고칠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 * *

그렇게 복주상단이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에 소식이 도착했다.

“참, 절강성의 점포들에서 소식이 있었습니다.”

여곤의 말에 고덕이 관심을 보였다.

“무슨 소식인가?”

“일부 점포들이 도저히 이치에 맞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행보?”

“예. 출혈을 보며 저가 경쟁을 시작했답니다.”

“그거야 상가들이 신규로 진출하는 사업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 간혹 벌이는 일이 아니던가?”

고덕의 물음에 여곤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이번에 일을 벌인 점포들이 신규로 문을 연 곳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신규 점포들도 아닌데 그렇다? 혹시 소속된 상단이라도 있는 곳들인가?”

“특별히 소속된 곳은 없어 보인답니다.”

소속된 상단도 없는 곳들이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일을 벌인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 절강으로 가지. 내게 도움을 줄 사람을 소개해줄 수 있겠나?”

고덕의 물음에 여곤이 즉시 서찰을 한 통 써주었다. 그 서찰을 품에 넣은 고덕은 목려송만을 대동하곤 곧바로 복주상단을 나섰다.

복주상단을 떠난 고덕이 도착한 곳은 절강성의 성도인 항주였다.

다른 성의 성도들과 달리 절강성의 성도인 항주는 행정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심지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이유는 항주에 있는 소호 때문이었다.

과거 시인 묵객들이 소호가 없다면 항주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소호는 항주를 대표하는 곳이다.

그 소호 덕분에 항주의 경제가 발전하고 결국엔 절강의 경제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소호로 고덕과 목려송이 들어섰다.

소호의 수많은 다루들과 주루들 중에 한 곳으로 들어간 고덕이 주인을 청했다.

그런 고덕의 청을 점소이로부터 전해들은 다루의 주인이 다가왔다.

“혹시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주인의 물음에 고덕이 아무 소리 없이 서찰을 내밀었다.

그 서찰을 읽은 주인이 허리를 굽혔다.

“상단과 가문의 은인께 여람이 인사를 올립니다.”

“여씨? 그럼 여곤과는……?”

“육촌 형제입니다.”

“그렇군……. 서찰을 읽었으니 알겠네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포들을 보았으면 좋겠네.”

고덕의 하대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아마도 서찰에 고덕의 외모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러지.”

고덕의 답에 여람은 다루의 일을 점원들에게 지시한 후 고덕과 목려송을 안내해나갔다.

소호 인근에 형성된 저잣거리로 나선 여람이 몇몇 점포들을 가리켰다.

“저 점포들입니다. 모두 일곱 곳으로 품목은 차와 말입니다. 모두 우리 복주상단의 점포들과 같은 품목을 취급하고 있었기에 눈에 빨리 띈 셈입니다.”

여람이 지적한 점포들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몇몇 탁자만 차 있던 여람의 다루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 보였다.

“가격 때문에 사람이 몰린 것인가?”

“예. 일반 다루의 반값이니까요. 그렇다고 상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여람의 답에 고덕이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질시가 의심을 키운 것은 아니고?”

“이 바닥을 구른 것이 철이 들기 전부터이니 벌써 삼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 시간이 키워준 감각은 저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제가 서신을 보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간혹 신규 점포들도 자리를 잡기 위해서 싸게 장사를 하잖아.”

“맞습니다. 은인의 말씀대로지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기 나름입니다. 대부분은 열흘을 기점으로 본래의 가격으로 돌아갑니다.”

“한데 저들은 좀 다른가 보군?”

“다른 정도가 아닙니다. 만에 하나 우리가 저들처럼 광범위한 품목을 할인하여 판다면 열흘이 아니라 일주일 만에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여람의 말에 고덕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그 정도로 막대한 재화가 필요한 일인가?”

“보통의 할인 판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건 마치 항주의 상권을 무너트리겠다는 의지가 아니고서는…….”

“현재 항주에서 가장 크게 차와 말 장사를 하는 곳은 어디인가?”

“위민상단입니다.”

남궁세가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고덕은 예상외의 이름에 당황했다.

“위민상단?”

“예. 관상이지요.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소흥 왕부가 운영하는 상단입니다.”

“소흥 왕부?”

“예. 그렇습니다.”

왕부가 거론되자 고덕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잊으려 애를 쓰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일어섰기 때문이다.

“어떤 곳인가?”

“팔대 왕부들 중에서 가장 세력이 작지만 알찬 곳이기도 합니다.”

“세력이 약한데 알차다?”

“그게 사병들의 수도 적고, 중앙 정계에 진출시킨 관련 인사들도 적기 때문에 관부의 입장에선 세력이 작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운영하는 위민상단이란 곳은 결코 만만치가 않습죠.”

“규모가 큰가?”

“팔대 왕부는 물론이고 황실과도 거래를 하는 곳입니다. 거의 독점이라고 판단하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관부는 호부에서 상단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나누어 구매하는 것이 아니었나?”

“그것은 일반적인 물품들에 해당하는 것이고, 황실과 왕부에서 필요한 물품들은 별도로 구매합니다.”

“하면 그것을 도맡는다는 말이로군.”

“예, 그렇습니다.”

황실과 왕부의 거래를 독점한다면 결코 작은 상단이 아닐 것이다. 규모는 작아도 소용되는 물품들이 죄다 고가이기 때문이다.

“위민상단이라…….”

왕부에서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인지 그 이름부터 관부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문제는 그곳과 남궁세가의 연관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연관이 없다면 자신이 찾는 점포들이 아닐 수도 있었다.

“혹시 특별히 찾는 것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자신의 표정이 만족치 못한 탓이었는지 물어오는 여람에게 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네. 난 저들이 남궁세가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으니까.”

“남궁세가요?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남궁세가에서 운영하는 창궁상단이 저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남궁세가의 상단이?”

“예. 꽤나 거칠게 항의하고 돌아간 것으로 압니다.”

“저들에게 남궁세가의 상단이 항의를 했다?”

“예.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 말에 고덕의 음성이 진중해졌다.

“그 이유를 알 수 있겠나?”

“속히 알아보겠습니다.”

여람의 답에 고덕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얼마 후, 주변을 수소문해보던 여람이 고덕을 찾았다.

“알아내었습니다.”

“무슨 이유라던가?”

“항주에서 꽤 커다란 거래가 예정되어 있었답니다.”

“꽤 커다란 거래?”

“예. 품목이 차와 말이라더군요.”

“그럼 할인 판매하는 품목과 겹치는군.”

“그렇습니다. 그 탓에 구매자들이 창궁상단이 아니라 할인 판매를 하고 있는 점포들과 구입 상담을 진행 중이랍니다.”

“양이 많은가?”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창궁상단이 이번 거래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데 들인 금자가 수만 냥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습니다.”

“금자 수만 냥?”

금자 한 냥이면 은자로 스무 냥이다. 그 말은 금자 일만 냥만 되어도 은자 이십만 냥의 가치란 뜻이다.

그 정도 자금이 잘못되면 남궁세가가 아니라 천하의 황실도 휘청거릴 터였다.

“만에 하나 그 거래가 실패한다면?”

“남궁세가는 끝장입니다.”

“설마……?”

믿지 않으려는 고덕에게 여람이 설명했다.

“그 돈이 전부 남궁세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듣기론 만금장에서 상당 금액을 융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금장에서?”

“예. 아시겠지만 만금장의 지독함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전장업이 주업인 만금장의 금력은 중원 상계 최고다. 그들은 구파일방, 특히 청성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 거래의 주체가 어디인가?”

“구매처 말씀이십니까?”

“그러하네.”

“호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호부? 관부의 그 호부?”

“예. 차는 외국과의 교역에서 쓰이고, 말은 절강 도지휘사사에 공급된다고 들었습니다.”

“흠… 혹시나 해서 묻는 말이네만, 위민상단이 끼어들 틈이 있나?”

“항주에서 그들이 해당 품목을 가장 많이 거래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정도 물량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오로지 목표가 남궁세가라는 것인데.”

“그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상인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일반인들은 좀처럼 그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만, 사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간단한 이치입니다.”

“알아듣게 말해보게.”

고덕의 재촉에 여람이 설명을 이었다.

“일단 지금 할인 판매하는 점포들이 과연 호부가 요구하는 물량을 맞출 수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현재의 할인 가격으로 말이지요.”

“불가능한가?”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합니다.”

“왜 그렇지?”

“할인된 지금 가격대로라면 원가의 절반이 손해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말은 거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점포들의 손해가 커진다는 뜻입니다.”

“흠… 나중의 거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한다면?”

“다른 거래선이라면 그런 기대도 가능하겠지만 호부는 다릅니다. 그들은 언제나 가장 싼 곳과 거래를 틉니다. 적은 금액으로 같은 물량을 사들이는 순간, 상서부터 시작해서 담당 주사까지 승차의 길이 열리니까요.”

“그렇다면 손해는 그냥 손해로만 남는다는 뜻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럼 남궁세가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또 왜 그런가?”

“창궁상단이 만금장에 빌린 돈은 기한이 있으니까요.”

“기한은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연기하면 될 일이 아닌가?”

“다른 때라면 그렇겠습니다만, 지금은 안 됩니다.”

“왜지?”

“만금장이 미리 황실과 맺은 약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약조? 무슨 약조?”

“이달 말까지 금자 오만 냥을 군비로 내놓기로 황실과 약조를 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군비로? 어디 전쟁이라도 났나?”

“광서성 성주인 안창의 난 때문입니다.”

“그럼 진압이 시작될 모양이로군.”

“예. 들리는 말로는 이번에 도입하는 말로 절강 도지휘사사의 예하 병력에 기병을 대규모로 편성하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만금장이 알려진 정도의 자금을 가지고 있다면 남궁세가에 빌려 준 금원을 제하고도 금자 오만 냥을 황실에 지급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만금장이 보유한 금원의 양이 형편없이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중원 각지에 흩어진 만금장의 전장에서 제대로 돈이 융통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전장에겐 치명적이다. 전장업의 특성상 그 한 번의 실수로 만금장의 전장들은 고객을 다른 전장들에게 영원히 빼앗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만금장은 남궁세가에 절대로 연기를 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여람의 말에 고덕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남궁세가는 어찌해야 하지?”

“팔아야죠.”

“팔아? 차와 말을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걸 사들이는 사람이 커다란 이득을 보겠군.”

고덕의 말에 여람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기다리면 된다면서. 돈을 가진 다른 상단이 남궁세가의 것을 사들여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돈이란 한곳에 묶어두면 묶어두는 만큼 손해가 생깁니다. 더구나 금자 수만 냥이라는 거금이면 그런 모험을 펼칠 만한 상단도 드물고요.”

“그러면…….”

“아마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 소흥 왕부도?”

“그곳은 더하지요.”

“왜지? 손해를 입히고 있는 놈들에게 멋진 복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고덕의 물음에 여람이 미소를 지었다.

“그 복수를 위해 입는 손해가 너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군. 왜 손해가 클 거라는 거지?”

“지금 항주의 상황상 차와 말을 사면 사는 만큼 유지비가 들게 됩니다.”

“그건 또 왜?”

“곧바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할인 판매를 하고 있는 점포들이 정상적인 가격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흥 왕부라는 곳의 그 위 뭐라는 상단은 이미 차와 말을 취급하고 있다면서? 하면 보유 비용이야 크게 걱정할 것이 없는 게 아닌가?”

“그게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왜?”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물량조차 팔아치울 판로가 없으니까요.”

“오래 그 일을 해왔을 텐데, 왜 판로가 없어?”

“지금은 모두 할인 판매하는 점포들과 거래 중이니까요.”

“아무리 가격이 싸다고 해도 신의를 그리 쉽게 저버렸단 말인가?”

“싸도 웬만큼 싸야죠. 지금 형성된 가격은 원가의 절반입니다. 저라도 그리 가겠습니다.”

여람의 답에 고덕이 입을 다물었다.

듣고 보니 그 정도 가격이면 자신 같아도 바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흠…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결국 돈은 벌 수 있지 않을까?”

“벌긴 하겠지만 그 이윤이 손해를 본 금액을 채워주진 못할 것입니다.”

“그건 또 왜?”

“상대가 호부니까요.”

“그게 무슨 뜻이지?”

“국법으로 호부엔 여타 다른 지역의 평균값 이상으로 물품을 팔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랬다간 관련자는 모조리 참형입니다.”

아마도 국가의 비상 상황에서 불법 소득을 취하는 상인들을 제어하기 위한 규정 같았다.

“그럼 결국 남궁세가는 이번 위기를 타개하고 나설 수 없다는 뜻이군.”

“그렇습니다. 아마 조만간에 남궁세가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오겠지요.”

“협상하러?”

“협상이든 아니면 위협이든 해봐야 할 테니까요.”

그 말에 고덕이 진지하게 물었다.

“기왕 협박할 것이라면 무사들을 동원해서 해당 점포들을 쓸어버린다면?”

“호부와 거래 타진 중인 곳들입니다. 더구나 반군을 진압하기 위한 물품이 포함된 거래이니 관부가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자칫하면 반군과 같은 도당으로 몰려 멸황파 꼴이 될 겁니다.”

멸황파(滅荒派). 이름 한번 잘못 지어 멸문당한 곳이다.

문파 이름에 쓰인 황 자에 황제를 나타내는 임금 황 자가 아니라 거칠 황 자를 썼건만, 읽어지는 음절이 같다는 이유로 황명을 받은 관군 이만의 급습을 받아 완전히 몰살당했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말이군.”

“예. 남궁세가는 경제적으로 끝났다고 보아야겠지요.”

상인의 눈에는 경제와 무력이 다르게 보이는진 몰라도 강호인인 고덕의 눈엔 한 가지로 보였다.

무인들도 먹고, 입고,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안 되면 문파도 끝장이 난다.

그 탓에 무가들이 직접 상단을 만들어 상업에 뛰어들기도 하고, 상가들의 뒤를 봐주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여하간 제대로 찾은 거 같았다. 그 상황이라면 남궁세가는 절대로 단리세가의 일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점포들을 바라보는 고덕의 시선이 먹이를 앞둔 맹수같이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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