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에 비친 달을 보다-9화 (9/43)

<3장. 복귀>

산길을 내려가던 이서휘가 도삼에게 물었다.

“장보도에 대한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말해 봐라.”

“장보도를 이용해 백도맹, 군림맹, 흑도맹 세력을 흔들면 되는 임무라 했습니다.”

“흔든다?”

“네, 잔잔한 연못에 돌을 하나 던지는 것이라고. 결과는 신경 쓰지 말고 하라 그러더군요.”

이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무림에 혼란을 불러왔던 한 수였지. 대도는 정체를 숨기고 날뛰기에도 딱 좋은 무공을 익힌 자였고.’

도삼이 이서휘의 생각 그대로 말을 이었다.

“장보도가 은밀하게 퍼지기만 하면 나머지는 대도가 알아서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렇군.”

이서휘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도삼을 돌아봤다.

“혹시 마교십존이라는 놈들이 대부분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이냐?”

눈치 빠른 도삼이 마교십존에 대해 말했다.

“무슨 일들을 꾸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뭐?”

“일부는 이미 백도와 흑도 세력 내부에 있을 겁니다. 마교십존이든 그들의 수하든 말입죠.”

이서휘가 다시 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한 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서휘는 다음 말을 삼켰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천마교가 등장하자마자 백도와 흑도가 속절없이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었겠는가.’

이서휘는 조심스레 추측했다.

마교십존은 무력을 준비하는 자와 계략을 준비하는 자로 나뉘어 무림을 뒤흔들 준비를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교십존이 천마교와 무관한 자들이 아니고 결국엔 같은 놈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서휘가 천마 위극신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네놈도 마교십존의 일원이겠구나.”

도삼은 이서휘의 중얼거림에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이 공자님이 마교십존을 상대로 싸우려는 것인가?’

도삼은 이서휘가 실로 무모해 보였다. 동시에 두렵다는 마음도 품었다.

구화산 밑에 도착하자 도이가 도삼의 등에서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다.

이서휘가 혀를 내둘렀다.

“허, 거 참 태평한 놈이군. 도삼아.”

“네.”

“한 가지만 더 묻자.”

“네.”

“대도가 은야 선배로 나를 오해하던데 그 자는 누구냐?”

도삼이 대꾸했다.

“아마 마교십존의 제자일 것입니다.”

“제자끼리 교류가 없느냐? 왜 못 알아보고 추측했을까.”

“교류가 전혀 없었습니다.”

“은야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한 번 알아볼까요?”

“알아봐다오.”

“알겠습니다.”

이서휘는 이 시점에서 도삼과 도이를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이놈들이 내 수하가 될 수 있을까?’

어차피 군림맹으로 돌아가야 할 이서휘다. 더군다나 끈끈한 정이 생기지 않은 상황에서는 믿을 수도 없거니와 수하로 다루기도 힘들었다.

고민 끝에 이서휘가 품에서 패혈단의 해독약을 꺼내 도삼에게 모두 건넸다.

“받아라.”

“헉. 정말입니까? 형님! 일어나보시오.”

“엉?”

잠에서 덜 깬 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도삼이 해독약을 받아들고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이서휘가 덤덤히 말했다.

“네가 정녕 나를 따를 것인지, 난 아직 모르겠구나.”

도삼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꾸했다.

“공자님, 은혜는 갚겠습니다.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먼저 제 형이 죽었을 것입니다. 저도 얼마 못 살았을 겁니다.”

“그리 생각하느냐?”

“네.”

이서휘가 독심술을 거둔 채로 무심히 도삼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볼 일이 없다면 그거 받고 사라지거라. 다만 네가 앞으로 날 따를 생각이 있다면 내 부탁을 몇 개 들어줘야겠다.”

“네. 맡겨 주십시오. 아, 잠시만요. 공자님.”

도삼이 즉시 패혈단의 해독약을 두 알 꺼내 자신이 먹고, 다시 세 알을 꺼내 도이에게 건넸다.

“형님, 드시오.”

“고맙다.”

꽈드득 소리와 함께 도둑 형제가 해독약을 씹으면서 이서휘를 바라봤다.

‘진짜 풀어주는 건가? 실로 이상한 분이다.’

해독약을 삼킨 도삼이 물었다.

“무엇을 시키시렵니까?”

이서휘가 큰 기대 없이 말했다.

“둘은 즉시 대완표국으로 가서 며칠 요양해라. 섬광도법(閃光刀法)을 한 수 배우러 갈 남자가 보냈다고 해. 그럼 알아들을 거다. 그곳에 표국주가 될 녀석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 그 녀석이 표두들과 잘 지내는지, 다른 문제가 없는 지도 좀 살피면서 대완표국의 일을 좀 도와라. 너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나마 머리 회전이 빠른 도삼이 알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너희 몸이 완전히 회복되면 좋은 말 한 필을 사서 청협문의 소문주에게 가져다 줘라.”

“청협문이요? 어디 있습니까?”

“도둑이 왜 나한테 물어 봐, 그런 걸. 보도만 찾지 말고 네가 좀 찾아라.”

“알겠습니다. 제 전문이지요. 헌데, 말을 주고 뭐라 할까요?”

“같이 뱀 잡으면서 놀았던 벗이 고마워했다고 전해.”

도삼의 눈초리가 이상해지자 이서휘가 경고했다.

“헛소리 말고.”

“네.”

“그 다음엔 군림맹으로 가라.”

“군림맹은 왜요?”

“검대에 입대하고 싶다고 하면 입대 시험을 치를 거다. 둘 실력은 충분하니까…….”

“저기 잠시만요. 공자님 저희는 아무래도 어디 묶이고 이러는 게 불편해서요. 아니, 그리고 하고 많은 세력 중에 왜 하필 군림맹입니까. 거긴 세가의 공자들이 아주 귀족 노릇하느라 낭인들이 무슨 하인 취급을 받는다면서요.”

도삼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이서휘가 대꾸했다.

“누가 그러느냐?”

“누가 그러긴요. 군림맹에 대한 평가가 그렇지요.”

이서휘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래. 입맹까진 바라지 않으마.”

순순히 부탁을 철회하자 놀란 것은 오히려 도삼이었다. 도삼이 조심스레 물었다.

“공자님 소속이 군림맹이셨습니까?”

“아니, 난 군림맹 주변의 객잔에서 술이나 퍼마시는 자다.”

“그러셨군요.”

눈치 빠른 도삼은 그래도 이서휘가 군림맹이겠거니 예상했으나 깊게 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 정도만 말해도 찾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

한데, 이서휘는 왜 술집에 있을 것이라 말했을까. 처음에는 마교십존의 제자라는 은야를 찾아 나설까도 생각했던 이서휘다. 그러나 도삼의 말이 이서휘의 발걸음을 돌렸다.

[……일부는 이미 백도와 흑도 세력 내부에 있을 겁니다. 마교십존이든 그들의 수하든 말입죠.]

그 말을 듣던 이서휘는 천뢰각주 한신이 생각났다. 이서휘는 한신의 무위가 무척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한신이 과거에 당했었다는 사실은…….

‘마교십존 혹은 그 제자라면 술 취한 각주님을 충분히 죽일 수 있겠지. 빌어먹을 놈들.’

구화산에서 시작되는 음모가 사전에 막혔으니 다음을 대비해야 한다. 휴가를 더 길게 써도 되는 상황이었으나 이서휘는 복귀를 선택했다.

‘은야라는 자는 나중에 도삼의 보고를 받고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봐야겠군.’

이서휘가 도삼과 도이를 보며 말했다.

“또 보자.”

“어? 벌써 가십니까?”

“갈 길이 멀다. 할 일도 많고.”

도삼은 휘적휘적 걸어가는 이서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공자님, 또 뵙겠습니다.”

“그래.”

도삼은 멀어지는 이서휘를 바라보다, 도이에게 말했다.

“형님, 우리도 갑시다.”

“어디로?”

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자, 도삼이 고민 끝에 대답했다.

“일단 밥이나 먹고 생각해 봅시다. 복숭아도 하나 사 먹고.”

“복숭아?”

“예! 그 놈의 복숭아! 씨까지 씹어 먹어 버리게.”

“씨가 맛있냐?”

“말을 말자.”

도삼이 묘한 표정으로 도이를 다시 업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이서휘가 며칠 후 군림맹으로 복귀했다.

이서휘가 군림맹을 살펴보는데, 군림맹의 풍경이 다른 때보다 희한하게 낯설었다. 구화산에서 군림맹으로 오는 길에서도 그랬다.

‘낯설다.’

이 묘한 기분을 뭐라 말해야 할까.

운명이 바뀌어서 새로운 일들이 이서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서휘는 옷을 갈아입고 연무장으로 나갔다.

질풍검대는 휑했다.

장시우도 설진우도 아직 복귀하지 않은 상태. 장시우는 청양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고, 설진우는 아직 대완표국에 머무르는 모양이었다. 입맹한 지 얼마 안 된 신입들을 훈련하는 이건영만 남아 있었다.

연무장에 서 있는 이서휘를 발견하고 이건영이 깜짝 놀라 뛰어 왔다.

“부대주님!”

“응.”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왔다.”

“아, 무사히 오셔서 다행입니다. 저 혼자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서휘가 힐끗 보니 이건영은 정말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얼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왜? 대주님도 진우도 나도 없는데 네가 힘들 일이 뭐가 있느냐?”

이서휘가 인상을 쓰고 말을 이었다.

“혹시 다른 검대에서 시비 걸었느냐?”

“아닙니다. 새로 입맹한 놈들이 저희 쪽으로 배정 받았는데 부대주 님도 없고 대주 님도 없어서 저 혼자 통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말에 이서휘가 빙긋 웃었다.

“아아, 그러냐?”

과거, 장시우 대주에게 혼났던 놈들이었다. 낭인 출신이었는데 몇 명은 나이도 제법 많았다. 이서휘도 나름 챙겨주려 했던 녀석들이다. 그런데 다른 검대원들과 물과 기름처럼 어쩐지 잘 섞이지 않았다. 별일이 아닌지라 이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내가 알아서 하마.”

“나중에요?”

이서휘가 질풍검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걸어가자 이건영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연무장에 다들 모여 있습니다만.”

“건영아. 난 오늘까지 휴가로 해다오. 술 마시러 갈 테니까. 그놈들…… 낭인 출신이지?”

이서휘가 걸음을 문득 멈췄다. 이건영이 대답했다.

“네.”

이서휘가 이건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 안 들으면 힘으로 제압해라.”

“제압요?”

“일단 목검 들고 비무 한 번 해줘라. 내가 허락했다고 하고.”

“네.”

“건영아, 혹독하게 부탁한다.”

마음이 독하지 못한 이건영이다. 이서휘는 일부러 이건영에게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 말에 이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독하게 해보겠습니다. 술은 누구랑 드십니까?”

“한 각주님.”

“알겠습니다.”

“어디서 검 좀 휘두르다 온 낭인들인가 본데, 그렇다고 신입들에게 당하면 혼날 줄 알아라. 검대에서 보낸 기간이 얼만데.”

이서휘가 자존심을 자극하자 이건영이 발끈했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이서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무장을 벗어났다.

이서휘는 군림맹에 어떤 놈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놈이 누구든 간에, 천뢰각주 한신부터 습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화산의 음모를 저지했기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황이 돌아갈지 모를 일이다. 때문에 이서휘는 당분간 훈련도 내팽개치고 한량이 될 생각이었다. 모두가 다 이서휘를 비난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뒤늦게 배운 술에 미친 놈……. 비무전 우승하고 나태해진 놈…….’

그게 앞으로 이서휘가 들어야 할 소리였다.

이서휘가 묘한 표정으로 군림맹을 돌아보며 웃었다.

‘미친 놈, 나태한 놈……. 이 얼마나 고마운 말인가? 전에는 두 눈을 잃고 온 놈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니.’

이서휘가 한껏 불량해진 표정을 지으며 천뢰각으로 향했다.

천뢰각의 한신은 업무가 많이 쌓여 이서휘에게 많은 시간을 내지 못했다. 때문에 이서휘는 한신과 술 약속만 잡은 후 다시 질풍검대 연무장에 들어섰다.

‘이건영이 잘 하고 있나?’

이건영이 신입을 상대하고 있는지 목검 부딪치는 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이서휘는 장난기가 발동되어 연무장에 들어가자마자 우렁차게 외쳤다.

“임무 복귀했습니다!”

이서휘는 말하고 나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질풍대원들 틈에 앉아 비무를 구경했다. 몇 명이 웃음을 터뜨리려고 하자 이서휘가 눈빛으로 경고를 줬다. 이서휘는 질풍검대원인 것처럼 조용히 앉았다.

이건영과 새로 들어온 신입이 겨루고 있었다.

마침 파앙……! 소리와 함께 신입의 목검이 날아갔다. 멈춰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건영은 이를 악물고 목검을 한 번 더 휘둘러 건방진 신입을 응징했다.

빡!

신입이 악 소리를 내며 이마를 부여잡고 쓰러지자, 이건영이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다음.”

벌써 네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얻어맞은 팔과 다리를 문지르는 놈, 머리에 난 혹을 비비는 놈, 이건영에게 맞아 기절했는지 대 자로 누워 있는 신입도 있었다. 이서휘의 말대로 이건영이 혹독하게 신입을 대하고 있는 상황.

이서휘가 속으로 빙긋 웃었다.

‘잘한다! 우리 건영이.’

이서휘가 살펴보니 총 다섯 명이었다.

신입 중에서 한 명이 남았다. 낭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십 초반의 남자가 이건영을 보며 조소를 날리고 있었다. 얼굴에 난 거친 칼자국과 팔에 드러난 문신이 칼밥 좀 먹은 티를 내고 있었다.

이서휘는 문득 사마준보한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말했었지? 이래서 낭인 출신 놈들이 우리 군림맹의 문제라고. 낭인 출신이라 백도맹은 못 들어가겠고, 어떻게든 칼밥이나 먹을까 하다가 군림맹에 굴러 온 놈들인 주제에…….]

‘씁쓸하구만.’

신입들 중에서 세가 출신은 다른 검대로 보내고 낭인 출신은 자꾸 질풍검대로 보내는 군림맹이다. 잘 동화되면 문제가 없으나 이렇게 하나둘씩 튀어 오르는 놈이 있으면, 욕은 질풍검대가 대신 먹는다.

이서휘가 문신 사내를 바라봤다.

‘관일(關一)이라는 놈이었던가?’

입에는 어디서 꺾어 왔는지 잡초 같은 게 물려 있다. 이서휘는 문득 낭인의 건방진 꼴을 보며 장시우 대주가 떠올랐다.

‘형님한테 처맞느니 나한테 혼나는 게 나을 것이다.’

이건영은 이미 네 명을 상대하느라 다소 지친 상태. 그러나 이서휘가 대원들 틈에 앉아 있어서 힘을 짜낼 수밖에 없는 상황. 이건영이 말했다.

“다음, 관일이라 했던가?”

관일이라는 자가 입에 물었던 잡초를 훅 내뱉으며 말했다.

“진검으로 합시다.”

“뭐라고?”

질풍검대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건영이 대꾸했다.

“부대주님께서 목검 비무만 허락하셨다.”

“여기 없잖소.”

목검에 얻어맞아 쓰러졌던 신입 한 명이 빈정거렸다.

“대체 목검이 뭐야, 목검이. 난 여태껏 목검을 휘둘러 본 적도 없었는데.”

이건영이 침을 삼켰다. 겁나서가 아니라 규율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서휘가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어쩐 일인지 이서휘는 나서지 않고 있었다.

이건영이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넌 진검 잡아라. 난 목검으로 한다.”

“꼬박꼬박 반말이네. 당신도 평대원 아니야?”

이건영의 이마에 힘줄이 불끈 돋았다.

“평대원이든 아니든 부대주급 부재 시 내가 선임으로 통솔하고 있다.”

이서휘가 이건영의 대처에 씨익 웃었다. 다만 진검을 상대로 목검을 들고 나서는 것은 이서휘가 보기에도 무리였다. 이건영의 성격이 그랬다. 자신만이라도 규율을 지키겠다는 심정이리라.

‘건영이가 행여나 다치면 내 책임이다.’

이서휘가 옆에 앉아 있는 대원에게 자강검을 잠시 맡기고 일어났다.

질풍검대와 신입들의 시선이 이서휘에게 모였다. 이서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건영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이서휘가 목검을 건네받고 서자, 관일이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넌 뭐냐?”

질풍검대원들이 웃음을 참느라 표정들이 가관이었다. 이서휘가 막내 강기찬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질풍검대 강기찬이다.”

“강기찬? 진검 잡아라. 겁먹지 마. 다치게는 안 하고 오줌이나 질질 싸게 만들어줄게. 어이, 선임은 잘 쉬고 있으쇼. 다음에 상대해줄 테니.”

관일이 일어나 검을 뽑자, 이서휘가 씁쓸하게 생각했다.

‘넌 여기에 섞이려면 멀었구나. 내가 딱히 해줄 것도 없고…….’

이서휘가 목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말했다.

“군림유하검.”

대원들에게 군림유하검으로 상대할 테니 잘 보라는 말이리라. 대원들이 전부 알아듣고 눈을 반짝였다.

이서휘의 눈이 목검으로 향한 후 왼손으로 검신을 아래에서 위로 훑으며 검결을 맺었다.

관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와라.”

이서휘는 땅을 한 번 구르고 목검을 내밀어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휘이이익!

당황한 관일이 갑자기 피하다가 발이 꼬여 넘어졌다.

질풍검대원 몇 명이 외쳤다.

“질풍지로(疾風指路)!”

“좋구나!”

이서휘는 공격을 하지 않고 잠시 멈췄다. 관일이 벌떡 일어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쥐고 이서휘를 노려봤다. 이번에는 관일이 덤볐다.

휙휙 소리가 나면서 이서휘를 공격하자, 이서휘는 검과 자세를 동시에 낮췄다가 불쑥 솟구치면서 관일의 턱을 공격했다.

그러자 질풍검대 대여섯이 외쳤다.

“질풍표기(疾風豹起)!”

목검에 무시 못 할 기운이 휩싸여 있었다. 관일이 양패구상을 노리고 진검을 내지르더라도, 목검에 턱이 뚫릴 것 같은 기세라 감히 대응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이서휘는 물러나는 관일을 득달같이 쫓아가서 머리를 가볍게 한 대 때렸다.

빡!

“크윽.”

인상을 찌푸린 관일이 깜짝 놀라 뒤로 몸을 뺐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하나, 진검이었으면 관일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리라.

관일이 침을 꿀꺽 삼키고 검을 휘둘렀다.

‘이 새끼가 봐준 건가?’

관일이 목검부터 베겠다는 생각으로 검을 내질렀다. 그러다 보니 부웅, 부웅 소리가 나면서 동작이 커졌다.

이서휘가 관일의 검을 피하다가, 관일이 검을 회수하는 순간에 유검낙수(流劍落水) 초식으로 따라 들어가면서 손목을 정확하게 찔렀다.

툭.

관일이 장검을 떨어뜨리자 질풍대원들이 외쳤다.

“유검낙수!”

질풍검대원들이 한껏 기분 좋아진 표정으로 합창하자, 그제야 관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황을 이해했다.

‘이 새끼, 평대원이 아니구나!’

이서휘는 관일의 표정이 바뀌자, 씨익 웃었다.

‘눈치챘냐?’

이서휘가 목검을 꽉 쥐고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재빠르게 관일이 땅바닥을 구르면서 장검을 주워 휘둘렀다. 이서휘가 목검으로 한 박자씩 빠르게 내뻗어 장검을 누르고, 튕기고, 내공을 주입해 당겼다가 밀어냈다. 이서휘가 관일을 상대하면서 목검으로 장검을 압도하는 기예를 내보였다.

질풍검대원들은 이서휘가 관일을 흠씬 두들겨 패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부대주님의 목검이 단 한 번도 검날에 부딪치지 않는다……!’

관일이 눈을 부릅뜨고 장검을 깊숙이 내지르다가 비틀었다. 이서휘의 목검을 베겠다는 의도다.

이서휘는 관일의 장검이 비틀어지는 순간, 찰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목검을 비틀어 장검 위에 얹어서 눌렀다.

“와아아!”

칼밥을 먹고 사는 자들이다. 이서휘의 반응에 탄성이 터졌다.

관일이 검을 빼자, 이서휘가 불쑥 깊숙이 들어가 관일의 왼손을 잡아 당겼다.

와락 하고 관일이 끌려오자, 이서휘의 손끝이 관일의 목을 찍었다.

툭.

동시에 이서휘가 관일의 무릎을 툭 쳐서 쓰러뜨렸다. 관일이 벌러덩 넘어지자, 이서휘가 목검을 찍는 자세로 바꿔 쥐고선 그대로 관일의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찍었다.

콱.

이번에도 목검이 관일의 옆 얼굴을 스치고 땅에 박혔다.

무공의 수준에 비해 담력이 커 보였던 관일이었으나, 얼굴로 날아오는 목검을 마주하는 순간에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질끈 감은 눈 옆으로 굵은 땀 한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이서휘가 코웃음을 쳤다.

“넌 이건영과 진검으로 했으면 이 자리서 죽었다. 거짓말하는 거 같으냐?”

“누구십니까?”

이서휘는 손을 뻗어 넋이 나가 있는 관일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가 이서휘다.”

관일을 비롯한 신입들이 조용해졌다.

얼마 전에 있었던 부대주 비무전 우승자가 이서휘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 임무를 나갔다길래 어떻게 해서든 나머지 검대원들을 제압해 놓으려던 낭인들이다. 한데, 사실상 이건영 선에서 모두 무너진 상황.

관일이 일어나서 먼지를 털며 말했다.

“부대주님이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 수 잘 배웠습니다.”

이서휘가 신입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흥. 놀고 있네. 질풍검대 무복이 따로 있는데 아직도 안 갈아입었어? 신입 다섯 명 가서 갈아입고 와.”

“알겠습니다.”

어쩐지 신입 다섯 명이 순순히 이서휘의 명에 따랐다. 신입들이 사라지자 이서휘가 질풍대원들에게 말했다.

“질풍검대.”

“네!”

“신입들에게 지옥을 한 번 맛보게 해주자.”

“그럴까요?”

질풍검대원들의 눈빛이 즉각 사나워졌다. 야간에 종종 하는 체력 훈련을 할 셈이었다. 그간 신입들이 이건영의 말을 듣지 않아 다들 불만이 많은 상황이었다.

“건영아.”

“네.”

“아까, 저 새끼가 오줌 싸게 만들어 주겠다 했었지?”

“네.”

“그대로 되돌려 준다. 준비들 해라. 내가 함께 간다.”

“알겠습니다.”

이서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 오늘까지 휴가 쓰려고 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알겠지?"

“네.”

“낙오자는 각오해라. 내일도 나랑 다시 하게.”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생각하는 질풍검대원들이 부르르 떨었다.

잠시 후 질풍검대 무복으로 갈아입고 온 신입들이 오자, 이서휘의 통솔로 체력 훈련을 하러 이동했다.

이서휘가 한 손에 목검을 들고 지옥의 시간을 선사했다. 특히 경공을 수련한답시고 일부러 군림맹 뒤의 산을 전력질주로 수십 번씩 오르락내리락 했다. 이서휘가 일부러 신입들의 기를 죽이려고 시킨 것임을 알았기에 다른 검대원들도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결국 검 좀 휘두른다고 기세 만만하던 신입 다섯 명은 초주검 상태가 되어 산에서 내려왔다.

우습게도, 검대원들은 온몸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되도 않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서휘는 농담을 건네는 강기찬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있자 저도 모르게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그렇죠? 재, 재밌죠?”

이서휘가 강기찬의 머리를 헝클면서 말했다.

“적당히 해라. 재미없는 농담 하는 거, 자꾸 시우 형님 닮아간다. 너.”

“네에에?”

연무장으로 내려오자 바른 자세로 서 있는 대원들이 적었다. 반면에 이서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상태. 확실히 석실에서 내공이 증가된 이후로 대원들과 격차가 더 벌어진 이서휘다.

이서휘가 신입들의 넋나간 표정을 피식 웃으면서 구경하다가 말했다.

“쉬어.”

그 말에 신입들이 신음을 내뱉으며 땅바닥에 주저 않았다. 검대원들은 꿋꿋이 서서 이서휘와 미소를 교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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