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좋은 징조
나는 두근두근해서 떡돌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떡돌이는 의외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보자, 떡돌이는 내 볼을 잡고 흔들었다.
“뭘 긴장하느냐?”
뭐야. 긴장 안 했어. 그냥 좀 찔렸을 뿐이지. 찔릴 일은 아니지만.
“삐져서 그러는 거 아니야?”
“짐이 삐질 게 뭐가 있느냐. 짐이 개원 그자보다 훨씬 잘생긴 걸 아는데.”
떡돌이는 자신만만하게 뻐기듯 말하다가, 뒤늦게 인상을 구겼다.
“삐져? 짐더러 삐져?”
그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하하. 자기가 개원이보다 잘생겼대.
“네가 이런 잘못된 생각을 적은 것도 어쩔 수 없지. 넌 그땐 짐을 아예 모르지 않았느냐.”
농담으로 저러나, 했는데. 떡돌이가 자신만만하게 웃는 걸 보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보다.
“무슨 소리야 얼굴로 치면 비-.”
나는 거기에 대고 ‘솔직히 비슷비슷’이라고 진실을 들려주려다가, 떡돌이가 안은 계란이를 보고 말을 멈췄다.
‘계란이…… 떡돌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비교가 안 되지. 당연히 우리 계란이, 아니, 우리 떡돌이가 제일 잘생겼지!”
내가 큰 말실수를 할 뻔했다. 당연히 계란이 얼굴이 최고지.
좋아. 이러면 우리 계란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사람이 되는 거겠지?
그런데 스스로의 똑 부러짐에 흐뭇하게 웃고 있자니, 떡돌이가 내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리면서 혀를 찼다.
“속이 훤히 보인다, 냥비. 짐을 보고 말해라.”
냥비 하니까 갑자기 생각났다.
연비가 새로 고양이를 가져왔는데, 떡돌이한테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
연비는 백몽이 몸에 내가 들어갔던 걸 모르다 보니, 이번에도 떡돌이가 자기 고양이를 보면 또 뺏어갈 거라 여기는 눈치였다.
떡돌이…… 연비한테는 고양이 소유욕 강한 광인이 되어 버렸어.
생각하니 웃겨서 웃다가, 나는 슬그머니 떡돌이의 다리를 찰싹찰싹 두드리며 물었다.
“저기 폐하.”
“응?”
“혹시 일기…… 어느 정도 읽었어? 다 읽었어?”
내가 쓴 부분도 개원이에 대한 이야기뿐이라 떡돌이가 볼 내용은 아니지만, 개운호가 이어 적은 부분은 떡돌이가 안 보았길 바라는데…….
“첫 장만 읽었다. 그것도 일기인 줄 모르고 펼친 거였지”
“그래?”
다행이다. 떡돌이가 뒷부분은 안 보았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걸 보고 떡돌이가 마음 아픈 건 원하지 않아.
“어쩌다가 첫 장만 읽었대?”
“뒤에도 다 이런 내용이면 짐만 화날 게 아니냐. 그래서 그 부분만 구기고 그만 보았지.”
구긴 건 고의였구나. 그럴 거 같았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이번엔 떡돌이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구겨서 화났느냐?”
“아니야. 잘했어.”
* * *
황후가 병사로 위장해 나가는 날. 사람들은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슬픔에 잠겼다.
나 역시 오늘은 원웅이 준비해 준 백색 의상을 입고 장신구 역시 달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니 슬프네요.”
예전 장공주 사건 때 일로 황후를 좋아하지 않던 원웅이지만 오늘은 슬픈 듯 계속 훌쩍였다.
“그렇게 젊고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요. 아. 건강한 건 아니었나. 원래도 자주 편찮으셨지요.”
훌쩍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멀어지는 하얀 가마를 보며 기분이 이상해졌다.
처음 황후를 만난 날, 이후 사이 안 좋던 시절이 떠올랐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서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지.
나중에 모두에게, 심지어 연금에게도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걸 보고 더 신기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예전에는 빈말로라도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연금과 오해가 풀린 뒤에는 황후는 내게 좋은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수업해주면서 가까워졌고…… 지금은 좀 정이 쌓인 것도 같다.
내가 이 얘길 하면 황후는 질색했지만, 내 생각엔 분명 그랬다.
‘산 채로 작별하는 거. 기분이 싱숭생숭해.’
연얼 군주 때도 그랬지만 이별이라는 게 그리 좋지만은 않구나.
그렇게 한참 동안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있다가, 나중에 틈을 보아서 살짝 나갔다.
그러고서 황후가 빠져나가기로 되어 있는 길에 서서 기다리자, 잠시 뒤.
황후 복장을 벗은 황후가 고관대작 여식 같은 모습으로 황제의 그림자와 같이 걸어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멈칫해 물었다.
“천비? 여긴 어떻게 왔느냐?”
“작별 인사하고 싶어서요.”
예상하지 못했던지 황후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래도 스승님이잖아요.”
스승 소리를 들었을 땐 다른 쪽 눈썹도 올라갔다. 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은지, 황후는 희미하게 웃고서 중얼거렸다.
“착한 제자네.”
나는 다가가서 황후를 꽉 끌어안고 인사했다.
“잘 가요.”
그러고서 보니, 황후는 평소에는 잘 짓지 않는 커다란 미소를 지었다.
왜 저러나, 싶어서 보고 있자니 황후가 급격히 또 웃음을 거두면서 말했다.
“폐하께서 왜 천비를 흠모하시는지 알겠어. 자네는 참 솔직해.”
놀랍게도 황후는 손을 뻗어서 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고, 내 얼굴을 빤히 보기까지 했다. 정말 아름다운 분이야.
같이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황후는 이번에는 옅게 웃고서 말했다.
“천비. 그대는 머리 좋고 빼어난 황후감은 아니지. 하지만 다른 후궁들보다 유리한 게 하나 있다.”
“주먹인가요?”
황후 표정이 바로 썩어가는 걸 보니 아닌가 보다.
“주먹은…… 방어하는 데만 사용하도록 하게.”
“지금도 그래요.”
“내가 칭찬하려는 건 자네의 솔직함과 용기야.”
“?”
“부끄러워서, 자존심 상해서, 남 조언을 못 구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그댄 누군가에게 조언을 받는 데 거리낌이 없지. 상대가 누구든.”
“암요, 암요.”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그뿐이지. 그러니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고…….”
“그럼 자주 놀러 가도 돼요?”
“그러진 말고.”
웃은 황후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서 그림자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황후가 가는 쪽을 보았다. 그 길의 끝에 연금으로 추정되는 이가 서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다 황후를 본 연금은 다급히 뛰어왔고,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려서, 나는 얼른 담벼락을 넘어 돌아갔다.
나도 떡돌이가 보고 싶어졌다. 갑자기.
* * *
사람들의 슬픔이 잦아들 무렵.
대신들은 늘 그렇듯 다시 전투 상태로 들어갔고, 몇 번의 국무 회의 후에는 새 황후를 두는 일로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반은 있는 후궁 중에 골라야 한다 했고, 반은 새 황후를 아예 뽑아야 한다고 했다.
오늘도 국무 회의에 들어가자마자 대신들은 바로 그 이야기부터 했다.
“폐하. 황후 마마 일로 심려가 크신 걸 알지만 국모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폐하. 황후는 내명부의 수장이자 궁의 중심입니다. 황후가 있지 않으면 내명부에 질서가 집히지 않습니다.”
“후궁 중 자질이 높은 이를 뽑아 올려야 합니다.”
“자질이 높은 이를 뽑다니요? 당연히 비 중에서 뽑아야지요.”
“후궁이 황후 역할을 어찌 감당합니까? 새로 황후를 뽑아야 합니다.”
대신들은 다 저마다의 계산을 끝내고, 자기에게 최대한 이득이 되는 쪽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월요는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대신들이 황제의 침묵을 눈치채고서 쳐다보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짐은 이렇게 의견이 나누어지는 이유를 모르겠군. 황후 자리에 누군가 올라가야 한다면, 당연히 유일하게 황손을 둔 이가 황후로 올라가야 하지 않나.”
바로 반대가 쏟아졌다.
“폐하. 천비 마마께서는 좋은 분이시지만 국모에 어울리는 분은 아니십니다.”
“폐하. 신중하게 살피시옵소서.”
대신들은 천비에 대한 평가를 떠올리면서 하나둘 반대 의견을 뱉었다.
반대 의견이 하나둘이 아니다 보니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월요는 이미 약속을 한 터라 물릴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밀어붙이는 대신, 월요는 일단 대신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대신들은 자기들끼리 마구 말해대다가, 또 황제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단 걸 깨닫고 조용해졌다.
그제야 월요는 차분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황자를 위해서도 천비가 황후 자리에 오르는 게 맞다. 그래야 혹시 모를 복잡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복잡한 상태라니요……?”
“장자와 적장자가 달라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짐이 그랬지.”
“!”
황제가 본인의 일을 꺼내자 대신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장자와 적장자 둘 중 하나가 재능이 없으면 상관없으나, 둘 다 뛰어난 왕재이기라도 하면 여러 가지로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월요 때에는 사자 친왕의 친모가 야심이 없는 사람이고 사자 친왕도 조용한 편이라 그의 재능이 왕위 다툼으로 비화하진 않았다.
하지만 월요가 누이의 죽음으로 크게 흔들릴 때, 뒤늦게 몇몇 대신들은 의연한 사자 친왕 쪽을 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수군거렸다.
그땐 이미 어린 나이가 아니니, 월요가 그 분위기를 모를 리가 없었다.
대신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다들 ‘역시 천비는 황후감이 아닌데’라 생각했으나, 황제가 자기 과거와 황자를 들이미니 반대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천비 마마는 황후감은 아니십니다, 폐하. 차라리 황귀비로 삼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도 용감한 누군가가 힘내어 말해보았으나 월요는 단호했다.
“연비는 영민하고 비상하며 아는 것도 많지. 천비와 자매이고. 연비를 황귀비로 올려 천비를 돕게 하겠다.”
* * *
결국 천비를 황후로 올리기로 한 회의는 끝났고, 대신들은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천씨 가문을 지지하던 이들은 그래도 잘된 일이라 생각했고, 반대파들은 ‘황후와 황귀비가 다 천씨 가문에서 나온다니?’ 하고 걱정했다.
어느 쪽이든 공통적인 건 다들 천혜음을 주목하기 시작했단 점이었다.
누군가는 천혜음과 붙어야 한다 생각했고, 누군가는 천혜음을 더욱 경계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심란한 건 천혜음 본인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천 대인.”
“경하드립니다, 천 대인.”
천혜음은 쏟아지는 축하 인사를 받으며 떨떠름하게 눈을 끔뻑였다.
딸들이 황후와 황귀비가 되는 건 좋지만, 아무래도 천비가 황후감이 아닌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좀 불안했던 것이다.
그때.
“천 대인. 폐하께서 잠시 보자 하십니다.”
오원요가 다가와 그를 불렀고, 천혜음은 더욱 긴장해서 다시 어실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황제는 여전히 옥좌에 앉아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천혜음은 황제 앞으로 가 인사하고 긴장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돌아온 말은 냉대였다.
“짐은 그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갑자기 불러 놓고 왜? 천혜음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황제는 몸을 옥좌 한쪽에 편히 기댄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한 집안에 황후와 황귀비, 빈이 모두 다 나왔으니 네 꼬투리를 잡으려는 이들이 많아지겠지. 짐 역시 마찬가지다.”
“!”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이다.”
직접적인 경고에 천혜음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폐하.”
황제는 그제야 냉랭한 표정을 풀고 말을 이었다.
“영빈 역시 영민하고 재능 있는 여인이지. 하나, 안타까워도 세 명 모두를 비 이상으로 올릴 순 없다.”
“예…….”
“네가 은퇴한다면 영빈도 비의 자리에 올리도록 하지.”
황제가 나가라 손짓하자, 천혜음은 인사를 올리고 천천히 어실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긴장되었다. 대여와 우여는 알아서 잘할 것 같지만…… 소여가 걱정이었다.
황후 자리에 오르면 남들 눈에 더 잘 드러나게 될 텐데. 혹시 실수 하나라도 했다가는 집이 휘청이게 생기지 않았는가.
‘전심전력으로 도와야 한다.’
천혜음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 * *
떡돌이가 날 황후로 삼겠다고 선언하고서도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마침내 책봉식 날이 다가왔다.
“제가…… 제가 진짜 우리 아가씨가 황후 마마 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원웅은 준비하는 내내 훌쩍였다.
내가 황후 책봉식에 입는 화려한 붉은색과 금색 섞인 의상을 다 입은 후에는 아예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고, 귀자도 어째서인지 같이 훌쩍였다.
유모는 금색 아가 옷을 입힌 계란이를 안고서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황자님께서 조금 더 크셔서 이 모습을 알아보실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요.”
내가 손을 뻗자 유모가 계란이를 건네주어서, 나는 품 안에 계란이를 안고 내려다보았다.
계란이는 나를 보자 조그만 손을 뻗으면서 까르르 웃었다. 얘가 이렇다. 날 보면 늘 웃는다.
황자를 유모에게 맡겨야 한다고 들었을 때는, 그러다가 아기가 날 못 알아보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계란이는 그러지 않았다.
복중에 있을 때 그 고생을 했는데도 씩씩하고.
그걸 보자 마음이 찡해져서, 나는 계란이에게 작게 속삭여주었다.
“계란아. 내가…… 엄마가…… 엄마가 어릴 때 가지지 못한 것들…… 우리 계란이는 다 누리게 해줄게.”
원웅과 귀자는 눈물을 찔끔씩 닦았으나, 계란이는 그저 신이 나서 까르르 또 웃었다.
“황후 마마! 이제 가셔야 합니다!”
밖에서 태감이 이제 가셔야 한다고 외쳤기에, 나는 아쉽지만 유모에게 계란이를 건네고서 밖으로 나갔다.
원웅이 옆에서 부축해주었다. 원웅도 이제 황후의 상궁이라 평소보다 화려한 차림이었다.
밖으로 나가 보니, 화려하게 장식한 가마 주위에 태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가마에 오르자 태감들은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는데, 그 속도가 느릿해서 충분히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가마에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 있다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떡돌이와 내가 애정을 키워간 청적이 보였고, 이런저런 일로 열심히 뛰어다니던 골목길도 보였다.
바쁘게 넘어 다니던 담벼락도 보이고…… 친구들과 놀던 호수도 보였다.
마상 격구를 하기 위해 갔던 연무장도 보인다.
내시 모습으로 이곳에 온 날, 고양이 모습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던 날. 눈길 닿는 곳마다 수많은 추억이 떠올랐다.
한 장소에 이렇게 오래 추억이 묻힌 건 처음이었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을 뿌듯하게 마음에 담으며 점점 행복한 천년비가 되어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가마는 동쪽 구역에서 시작해 남쪽 구역으로 갔다가 그곳 춘로를 통해서 심궁으로 이동했고, 심궁에 도착하자 그제야 멈추었다.
태감들이 가마를 내려놓자 원웅이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혼자 잘 내릴 수 있지만 그래도 원웅의 손을 잡고 내리며 보니, 황궁의 중심에 있는 심궁에 떡돌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곳으로 가는 길 양옆으로는 대신들이 서 있었다. 한쪽에는 문신들이, 한쪽에는 무신들이.
원웅을 보자, 원웅이 웃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면 된다는 거다.
나는 다시 길을 보았다. 여길 걸어가면…… 이제 진짜 황후가 되는 거다.
벅찬 마음을 애써 누르고, 나는 황후에게 배운 것처럼 우아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이렇게 걸어야 한단 법은 없지만 그래도 배워두었지.
하지만 이렇게 걷고 있으려니, 떡돌이가 있는 곳이 너무 느리게 가까워졌다.
가을바람은 시원하게 부는데, 나는 혼자 느릿했다.
결국 나는 그냥 황후를 따라 하길 관두고, 평소처럼 씩씩하고 위풍당당하게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떡돌이가 성큼성큼 빠르게 내게 가까워졌다.
떡돌이는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곧 얼른 오라는 듯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더 참지 못하고 그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알아봤는데, 여길 걸어가야 한단 법은 없었거든! 옷이 무거워서 다들 느리게 간다곤 들었지만.
하지만 고작 이 정도 무게는 무게도 아니지! 뛸 때마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진주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는 즐겁기만 했다.
나는 저절로 드러나는 웃음을 숨기는 대신 떡돌이를 향해 계속해 뛰어갔다.
‘이제 내가 황후다!’
* * *
사관은 느릿하게 기록하다가, 황후가 긴 치마를 직접 들어 올리더니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장신구 무게가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가볍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저렇게 가면 안 된단 법은 없긴 하지만…… 안 무거운가?
하지만 황후가 활짝 웃으며 곧장 황제에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다가, 사관은 저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사관은 고개를 젓고서 마지막 기록을 적었다.
-황후께선 웃는 얼굴로 황제께 뛰어가셨다.
책봉식에서 저리 환하게 웃는 황후에 대한 기록은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좋은 징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