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다
……떡돌이가 내 옛날 일기를 본 거 같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나는 침상에 누워 있었고, 원웅이 말하기를 밤에 떡돌이가 다녀갔다고 했다.
거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나는 떡돌이가 늦은 밤에라도 찾아와서 날 보고 갔다는 데 그저 기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계란이에게도 노래를 불러준 다음 여기저기에 뽀뽀를 하고, 내가 이만큼 사랑하고 있으니 그만큼 건강하게 커야 한다고 주문을 걸었다.
그러고서 책상을 봤더니, 내 일기장에 떡돌이가 연모한다고 써둔 게 아닌가.
신이 나서 일기장을 들고 춤을 한바탕 더 춘 다음, 나는 책상 위를 정리하려다가 발견했다.
옛날의 암울한 시절과 비교하기 위해 꺼내둔 내 옛 일기장을.
게다가 그 일기장의 첫 장이 몹시 구겨져 있다. 어제만 해도 멀쩡했는데.
‘어쩌지?’
나는 일기장을 들고 초조하게 앞부분을 살폈다.
‘젠장! 이를 어째!’
개운호가 이어 적은 부분은 죄다 암울하지만, 내가 적은 부분은 개원이에 대한 추종과 찬사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데!
안 그래도 쪼잔한 떡돌이가 이걸 보면 마음이 더 쪼그라들 텐데!
“마마?”
일기장 두 개를 겹쳐 들고서 발을 구르고 있자니, 원웅이 의아해서 물었다.
“새로 개발 중인 춤인가요?”
“아니. 저기, 원웅아. 혹시 떠날 때 폐하 표정이 어땠어?”
“그냥. 아무 표정도 없으셨는데요. 왜요?”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어?”
“황태자 건으로 오 공공이랑 얘기 나누면서 가셔서요.”
기분 나빠 보였단 말이네.
‘으. 어쩌지?’
* * *
결국 일기장에 대한 걸 떡돌이에게 물어보진 못하고, 황후를 간호한다는 핑계를 대고서 수업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으악! 마마!”
원웅은 놀라서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려주었고, 우리는 허둥지둥 근처의 아무 궁으로 달려가 처마 밑에 비를 피했다.
“갑자기 비가 내리다니. 놀랐어요.”
“그러게.”
그러고서 같이 비를 피하고 있는데. 먼발치에서 떡돌이가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닌가.
“폐하?”
반갑기는 한데, 일기장 일이 생각나 긴장도 된다.
그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떡돌이가 오 공공이 들고 있던 우산을 받아 들고서 내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뛰어왔다.
그러고는 아까 비를 맞아 조금 축축해진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말했다.
“저리로 가고 있는데 네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여서 왔다.”
그가 손수건을 꺼내서 내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는 동안, 나는 열심히 떡돌이를 살폈다.
일기장을 구겨놓고 간 인간치고는 멀쩡해 보였다. 슬그머니 품에 기대 보았지만 역시 평소처럼 받아준다.
‘별로 기분 안 나쁜 건가?’
그래도 혹시나 싶어 떡돌이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고 있자니, 그가 물었다.
“둘이서 산책할까?”
대답을 듣기도 전에 떡돌이는 궁인들에게 “물러나라.” 하고 지시했고, 궁인들이 물러나자 나는 얼른 우산 아래로 뛰어들었다.
우리 두 사람은 한 우산을 쓰고서 산책로로 걸어갔다.
그러다 힐긋 돌아보니, 원웅과 귀자도 각자 떡돌이의 궁인들에게 우산을 얻어 쓰고서 멀리서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다시 떡돌이에게 팔을 기대자, 떡돌이가 물었다.
“수업은? 잘 받고 있느냐?”
‘일단 일기장 얘긴 안 하려는 거 같지? 나도 모른 척하고 대답하자.’
“그럼. 얼마 전에 책 한 권을 또 뗐다?”
“우리 반숙이는 확실히 머리가 나쁘진 않아.”
“암!”
“우리 반숙이는 똑똑하지.”
“그럼! 나는 영민해.”
“그럼, 우리 반숙이는 영민하지. 한데 걸음걸이는 왜 연습한 게냐?”
“폐하는 내 모든 게 다 궁금한가 봐?”
“당연하지 않으냐. 너는…… 그래, 넌 안 궁금하겠지. 넌 짐과 못 볼 때도 당과 먹고 뱃놀이하며 지냈으니까.”
주기적으로 그 얘기 꺼내는 거 보니 떡돌이. 그 부분이 많이 서러웠나 보다. 당과가 뭐라고.
“그래, 그래서. 걸음걸이는 왜 연습한 게냐?”
“책봉식 책봉식.”
“아아. 그래. 황후 책봉식 때는 긴 거리를 걸어가야 하지. 연습을 하긴 해야겠구나.”
“당당하게 걷는 건 나도 잘하는데. 황후 마마가 별로 황후 같지 않다고 고치라고 해서.”
“짐은 네 걷는 방식도 좋은데. 씩씩하고.”
그렇게 둘이서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도중이었다. 떡돌이가 갑자기 “맞다.” 하고 중얼거리지 않는가.
드디어 일기장 얘기를 하려는구나, 싶어서 심장이 쿵쿵 뛰는데.
떡돌이는 뜻밖에도 품에서 웬 서신 한 통을 꺼내 내게 주었다.
“연얼 군주가 네게 편지를 보냈던데.”
일기장이 아니구나! 그럼 상관없지! 연얼 군주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걸 받아서 내가 얼른 뜯어보자, 떡돌이는 슬그머니 머리를 맞대고 같이 보려 시도했다.
하지만 나는 연얼 군주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서, 떡돌이를 피해 몸을 돌린 채 서신을 읽었다.
떡돌이가 쏘아보는 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연얼 군주가 쓴 서신이라면 보나 마나 떡돌이 욕이 많을 테니까.
“이런.”
그런데 의외로 떡돌이 욕은 많이 없네. 욕이 있긴 있는데. 죄다 서천 황제 욕이잖아.
연얼 군주…… 거기 생활이 그리 쉽지 않은가 보다.
하긴. 아직 혼인한 지 일 년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 다 적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아. 일 년도 안 됐나?
“왜 그러느냐? 내 욕 쓰여 있느냐?”
“아니. 서천 황제 욕.”
“!”
“서천 황제가 죽은 아내를 정말 많이 사랑한대.”
“그래?”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못 잊고 아내 이야기만 나오면 난리래.”
“그렇군.”
떡돌이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서 우산을 다른 손으로 바꿔 들었다.
자기 욕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없는 걸 보니 관심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는 서신을 들고서 중요한 내용을 계속 읊어주었다.
“죽은 황태자비 때문에 황제랑 한 번 대판 싸웠대. 지금은 서로 말도 안 한대.”
“서천 황제가 마음이 좁군. 그걸로 싸울 수도 있지 뭘. 우리는 자주 싸워도 더 많이 화해하는데. 그렇지?”
“그게…….”
* * *
애정 없는 부부 생활일 게 뻔한 자리지만, 그래도 황후가 되면 권력은 가질 수 있다.
자리를 잡으면 그 권력으로 죽은 오라비의 복수를 할 것이다.
연얼 군주는 마음을 굳게 다잡고 먼 서천으로 떠났다.
하지만 가서도 한 달가량은 준비 절차와 교육만 받을 뿐, 황제를 실제로 볼 수가 없었다.
혼인을 치를 때도 여러 가지 절차가 많고 정신이 없는 데다 신랑과 함께 하는 절차가 적어서, 연얼은 그때도 황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랑, 신부가 술을 나누어 마실 때, 연얼은 황제와 처음으로 가까이 서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머리에 덮은 얇은 천 너머로 황제의 인영을 보았는데, 그 인영이 연얼과 붙어 선 틈을 타 작게 속삭였다.
“우리는 부부이나 남이오. 기억하시오.”
그게 황제가 연얼 군주에게 뱉은 첫말이었다.
그리고 첫날밤. 침상에 앉아 있는 연얼에게 다가온 황제는, 머리에 덮어 두었던 붉은 천을 거두어 주었고, 연얼은 그제야 황제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서천 황제는 눈 밑이 거무스름해 좀 퀭한 인상이었지만 자수정처럼 아름다운 사내였다.
연얼은 순간 그 외모에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하지만 황제는 의무적으로 첫날밤을 치르자마자 같이 눕지도 않고 가버렸고, 연얼은 멍하게 침상에 누운 채 잠시 생각했다.
‘내가 옳은 길을 가는 게 맞나?’
시일이 지나면서 연얼은 서천 황제가 저런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도 왜 대신들이 딸을 안 보내려 하는지 알게 되었다.
황제는 단순히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죽은 아내의 망령에라도 사로잡힌 것처럼 살았다.
후계자 생산을 위해 연얼과 의무적으로 동침해야 하는 날 외에는 황태자비가 살던 궁전에서 지냈는데, 그 궁전은 여전히 황태자비가 살던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실제로 생전 황태자비 아랫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근무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들은 황제에게 ‘내 아내 아직 살아 있다’ 병이 옮기라도 한 듯 굴었다.
황태자비궁 궁인들은 연얼을 볼 때마다, 연얼이 자기들 주인의 자리를 강제로 뺏기라도 한 양 적대적이었다.
“내무부 물품 목록을 가져와라.”
그러다 황후로서 내무부 관리를 하게 된 연얼은 장부를 보고 기겁하는 줄 알았다.
다른 데는 크게 사치하는 데가 없는데.
황태자궁에서 쓰는 금액이 일국의 황후가 쓰는 것과 맞먹을 만큼 많았던 것이다.
장부를 잘 살펴보니, 황태자비 궁에서는 계절마다 황태자비의 옷을 새로 지었으며, 신발, 이불 등을 샀다.
심지어 음식 역시 매끼 진수성찬을 먹었다.
“이게…… 폐하도 이걸 알고 계시나.”
그걸 본 연얼이 기가 막혀서 내무부 총관에게 묻자, 총관은 시무룩해서 대답했다.
“예. 황태자비께서 쓰고 드시던 걸 그대로 유지하란 폐하의 엄명이셨습니다.”
“이걸 죽은 황태자비가 먹는 건 확실한가. 음식들을 아래 궁인들이 먹는 게 아니고?”
“물론 그럴 테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
연얼은 기가 막혀서 당분간 이 미친 짓거리를 그만두게 하려 했으나, 고향에서부터 따라온 궁녀가 재빨리 말렸다.
“마마. 폐하께선 아직 마마께 정이 없어 보이십니다. 좀 더 사이가 좋아진 후에 추진해도 늦지 않아요, 마마.”
연얼은 결국 또 참았다.
그러나 황제가 황태자비 기일에 어마어마한 금액의 제사를 지내더니, 황태자비 생일에 또 어마어마한 금액의 연회를 열자 그녀는 결국 못 참고 황제에게 따지고 말았다.
“우리가 약속한 게 있으니 되도록 폐하께 관여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여쭈어야겠습니다.”
“말해보시오.”
“황태자비를 산 사람 취급할 거면 산 사람 취급하고, 죽은 사람 취급할 거면 죽은 사람 취급하세요. 기일도 챙기면서 생일도 챙기다니, 산 사람 취급하는 겁니까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겁니까?”
서천 황제가 무섭게 노려보았으나, 연얼 군주는 이미 월요 황제와 자주 말다툼을 한 터라 쉽게 권력자의 시선에 눌리지 않았다.
연얼 군주가 눈길을 피하지 않고 같이 쳐다보자, 서천 황제는 차갑게 웃고서 빈정거렸다.
“그렇군. 이건 우리 약속과 다르지. 황후는 황후로서 대우받을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했소. 그 외에는 서로 의무만 다할 뿐, 아무것도 침범하지 않기로 했지. 특히 짐은 황태자비에 관한 영역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 하였는데.”
“이것도 황후의 역할이라 드리는 말씀입니다. 황후로서 궁궐 살림을 살펴야 하니까요.”
“황후가 약속을 깨면 나도 약속을 깰 거요. 그걸 안다면 나가시오.”
그리고서 서천 황제가 태감들에게 황후를 모시고 다른 곳으로 가라 말하는 순간.
내내 분노를 쌓아온 연얼은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황태자비 황태자비 황태자비! 그렇게 죽은 황태자비가 그리우시면 그냥 따라 죽으세요! 죽으면 대번에 만나러 가집니다!”
주위 사람들은 다들 놀라서 연얼을 쳐다보았다.
연얼 역시 말하고 나니 뒤늦게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다 들은 황제는 천천히 연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주 무서운 시선으로.
* * *
“이러고 있대.”
내 이야기가 끝나자, 월요는 ‘이걸 뭐라고 반응해야 좋으려나’ 하는 표정으로 멀뚱히 눈을 끔뻑거렸다.
한참 뒤, 내 비연궁에 도착한 뒤에야 월요가 물었다.
“뭐라고 답서를 보낼 게냐?”
“힘내.”
“그거뿐?”
“아니, 이걸 길게 늘여서 보내야지.”
우리는 우산을 접고 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떡돌이는 옷이 젖지 않았기에 겉옷만 벗고서 계란이를 불러 안았고,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옆방으로 갔다.
그러고서 떡돌이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나도 계란이를 안아 보려고 손을 뻗는데, 떡돌이가 아무렇지 않은 투로 물었다.
“아직도 개원 그자가 세상에서 가장 잘생겼다 생각하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