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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81화 (외전1화) (281/283)

##  외전. 내 가족은……

내가 멍하게 쳐다보자 황제는 그 모습이 좀 걱정되는지 내 앞에 대고 손을 흔들며 물었다.

“괜찮으냐?”

괜찮냐고? 그야 괜찮지. 안 괜찮을 게 있나.

“그냥 생각도 못 해봐서. 진짜 찾은 거야?”

떨떠름하게 묻자, 떡돌이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후보를 넷 찾았지. 넷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넷 다 진짜가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큰 이들이란다.”

나는 다시 멍하게 떡돌이를 쳐다보기만 했다. 머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말해줄까?”

떡돌이가 재차 물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반숙아?”

“안 들을래.”

이후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뒤에서 ‘반숙아!’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계속 달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뛴 후에야 나는 커다란 나무둥치를 끌어안고 멈춰 섰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친부모가 궁금한 적이 있긴 해. 그건 맞아. 하지만 이렇게 뜬금없이 찾았다고 나와줄 줄은 몰랐다. 어떻게 가능하지?

아니…… 떡돌이는 황제잖아. 이것저것 남들보다 조사하기 쉬울 거야.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이상해서 멍하게 나무를 끌어안은 채 있자니, 떡돌이가 어느새 따라와서 툴툴거렸다.

“안으려면 짐을 안지. 나무는 뭐 그리 어여쁘게 끌어안느냐?”

내가 돌아보자, 떡돌이는 나무를 끌어안은 나를 뒤에서 같이 끌어안으면서 물었다.

“가족을 찾는 게 싫으냐?”

“싫고 좋고를 떠나서. 너무 놀라서.”

갓난아기인 계란이가 갑자기 두 발로 일어나 뛰어다니는 걸 보면 딱 이렇게 놀랄 거 같아.

“누구, 누군데?”

그래도 떡돌이랑 꼭 붙어 있으려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아서 질문은 할 수 있었다.

“부부 두 쌍에 미혼모로 추정되는 여자 하나, 미혼부로 추정되는 남자 하나지.”

“누가 제일 가능성 높아?”

“비슷했다. 그런데 부부 중 한 쌍은 이미 사망했다.”

나는 몸을 숙여서 떡돌이와 나무 사이에서 쏙 빠져나온 다음, 나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떡돌이는 나란히 앉으면서 물었다.

“세 후보가 수도로 오도록 유인해 줄 테니 몰래 가서 보고 오겠느냐?”

모르겠다고 말하려는데 그 전에 먼저 고개부터 저어졌다.

음. 행동이 먼저 나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게 내 솔직한 마음인가 봐. 만나기 싫은 거.

“안 만나겠다고?”

“어차피 ‘천년비’는 이미 죽었잖아. 그 이름으로 살길 포기했는데 만나서 뭐 하겠어. 누가 친부모이든 만나고 싶지 않아.”

“후보 중 한쪽은 자식을 일부러 버린 게 아니었는데. 그쪽이 진짜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쪽이 진짜라면…….”

“그래도 안 만날 거야.”

단호하게 말한 다음 떡돌이의 무릎을 찰싹찰싹 두드리자, 떡돌이가 다리를 펼쳐준다.

내가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고 눕자, 이제는 익숙하게 내 머리카락을 매만져주기까지 했다.

그 손길에 잠시 잠이 쏟아지려 했지만, 나는 눈을 부릅떠 정신을 차리고서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 사람들 중 누가 진짜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 건데. 뭐 하러 확인하겠어.”

그런데 왜 말을 하면서도 내 목소리가 이리 시무룩한지 모르겠다. 나는 위풍당당한 모습이 제일 매력적인데.

“반숙아.”

“지금은 좀 깐숙이 상태야.”

“무슨 뜻이냐?”

“뜻은 없지만 어감으로 느껴봐.”

“……깐숙아. 널 버린 이들에게, 네가 이렇게 잘 큰 모습을 보여줘서 복수하고 싶진 않느냐?”

* * *

황제의 부름을 받고 어실로 찾아간 흑합은, 황제가 아기를 포대기에 싸 안고서 노래 부르는 걸 보고 순간 당황해 생각했다. 도로 나가야 하나?

황제가 처음 얻은 아이에게 푹 빠져 있단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여기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가 그를 쳐다보는 바람에, 흑합은 나가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 본 척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하지만 당혹스러워하는 흑합과 달리, 황제는 태연히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지시했다.

“사적인 명령을 하나 해야겠다. 네가 장군들 중 가장 분위기가 있어 보이니까.”

“예?”

흑합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력이 있단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있어 보여서 명령한다고?

당황해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황제가 미리 적어 두었던 종이를 그쪽으로 밀었다.

“주소를 두 개 줄 테니, 누가 봐도 부유한 고관대작처럼 차려입고 찾아가도록 해라.”

“네?”

평소에는 영민한 흑합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똘똘하게 대처하기 힘들었다.

멍한 흑합에게 황제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 서신을 전하고, 뭐라 하든 무시하고 일어나서 돌아와라.”

흑합은 조심스럽게 쪽지를 받아들었다.

쪽지의 주소는 노출되어 있었으나, 황제가 전하라 한 서신은 단단히 밀봉되어 있어서 안의 내용물을 알기 어려웠다.

그 이상의 지시가 없기에, 흑합은 여전히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역시 서신을 궁금해하던 승언은, 흑합이 나가자마자 슬그머니 황자에게 딸랑이를 흔들어주는 척하며 물었다.

“그게 뭐였습니까, 폐하?”

“별건 아니다. 천년비의 친부모에게 보내는 서신이다.”

“예? 하지만 천비 마마께서는 연락하지 않으실 거라고…….”

“짐은 연락하고 싶다.”

“!”

“이렇게 적었다. 그쪽이 버린 자식이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훌륭한 남편과 혼인했다. 나는 사위 되는 사람인데, 처가댁이 궁금해서 인사 올린다.”

“예?”

사위? 처가댁? 승언이 황당해 쳐다보자, 황제의 입꼬리가 삐뚤게 올라갔다.

“약이 오르겠지. 약 좀 올라야 할 거다.”

승언은 속으로 ‘허!’ 탄식했다. 폐하는 일국의 황제시면서 어찌 이리…… 속이 좁으실까!

그러다 아기를 보던 황제가 갑자기 휙 고개를 드는 바람에, 승언은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소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폐하.”

“더 화나게 해야겠다.”

그러나 황제가 그를 본 건 승언의 속내를 눈치채서가 아니었다. 아까 하던 그 ‘천년비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기서 더요?”

떨떠름하게 묻는 승언에게, 황제가 서랍을 열더니 종이 몇 장을 꺼내 내밀었다.

“흑합에게 당장 처리할 수 없는 귀한 땅문서 몇 개를 선물이라고 가져다주고 명의는 나중에 옮겨주겠다 한 다음, 다음날 마음이 바뀌었다고 도로 뺏어오라 해라.”

승언은 당황해서 물었다.

“폐하. 너무 놀리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괜찮을까요? 혹시 천비 마마께서 아시면…….”

“일부러 천비를 버린 둘에게만 이러는 거다. 피치 못하게 헤어진 쪽엔 천비 뜻대로 연락을 아예 안 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그자들 때문에 천비가 어린 시절부터 고생하고 자란 걸 생각하면 잡아다 죽여도 시원치 않아.”

“!”

“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라도 그 아이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까. 그래서 이 정도로 그치는 거다.”

황제는 코웃음을 치고서, 계란이의 쳐진 눈썹을 문질렀다.

“자기들도 알아야지. 자기들이 버린 아이가 그 땅문서들보다 훨씬 귀한 사람이었단 걸. 배라도 아파 봐야 후회라도 할 게 아니냐.”

* * *

나는 황제가 알려준 친부모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계란이를 내려다보았다.

떡돌이가 잘 재워서 보낸 계란이는 아직도 새근새근 자고 있다.

자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꼭 조그만 병아리 같다.

그러다 다시 친부모 이야기로 생각이 돌아갔다.

사실…… 아예 안 궁금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안 궁금할 리가. 내 시작인 사람들인데.

하지만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을 보고, 날 닮은 모습을 찾고서 혹시라도 용서하고 싶어질까 봐 싫었다.

개원에게 그렇게 이를 갈았는데.

날 죽인 게 개운호라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그도 처음에는 동생과 짜고서 내게 접근한 것인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개원에게 화조차 내지 못하고 끝냈다. 화를 낼 틈도 없었지만.

날 죽인 장본인 개운호에게도 결국 도움 몇 번 받고 복수하지 못했지.

복수를 확실하게 돌려주기로 유명하지만, 나는 결국 한동안 같이 살았던 둘에게는 제대로 복수하지 못했다.

내게는 의외로 대인의 면모가 있단 말이다.

이런 마음이니, 친부모란 작자들을 보면 용서하고 싶어질지도 몰라.

그건 싫다. 용서해 놓고서 끙끙 앓느니, 차라리 안 보고 평생 원망하는 게 속 편하지.

“그렇지, 계란아?”

나는 떡돌이와 똑같이 생긴 계란이를 안아 올리고서, 아기의 양 뺨에 쪽쪽쪽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내 가족은 너랑 떡돌이뿐이다. 알지 아가야?”

* * *

아기도 무사히 태어났고, 여러 고초를 겪긴 했으나 다행히 허약한 체질이 아니었다.

천비 역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자, 황후는 슬슬 출궁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꾀병을 부리기 시작했다.

황후가 자주 아프다고 하자,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천비가 나으니 이제는 황후가 아프구나!’싶어 겁을 냈다.

굿을 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돌았고, 궁전 분위기도 어두워졌다.

월요는 상황을 다 알지만, 황후가 아프다는데 혼자 태연히 굴 수는 없기에, 덩달아 어두운 표정을 하고 황후궁을 찾아갔다.

황후가 나간 후의 일도 이야기해야 했고,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고받을 상의도 해야 해서, 요즘 부쩍 황후와 의논할 일이 많았다.

게다가 황후가 떠난 뒤 한동안 어수선할 걸 대비해 미리 내명부 일도 손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황후궁으로 가고 있자니,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황후가 앞에서 나비처럼 우아하게 걸어가고 있고, 그 뒤에서 천비가 똑같은 자세로 팔랑팔랑 걷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따로 보면 제각기 백조처럼 우아했으나, 둘이 줄지어 같은 모습으로 걸어가니 좀 우스꽝스러웠다.

천비야 늘 저런다지만 황후는 왜 저러고 있나 싶어서, 월요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다가 물었다.

“저게 무엇이냐.”

미리 말을 전하러 왔었던 승언은 어색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황후 마마께서 천비 마마께 우아한 자태를 연습시켜주고 계십니다.”

“우아…….”

월요는 황당해서 말을 반복했다.

“우아하다고?”

“황후 마마의 걸음걸이는 기품 있고 우아하기로 유명하니까요.”

월요는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황후는 앞에서 가다 보니 천비와 자신이 줄지어 가면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고 저러는 거 같은데…….

승언이 눈치를 보다 물었다.

“제가 가서 황후 마마께 살짝 알려드릴까요?”

“가까이서 보면 어여쁘고, 멀리서 보면 오리 같다 전해라.”

월요는 어색하게 웃었다. 황후가 천비를 교육시키는 게 아니라, 황후가 천비에게 옮아가는 것 같았다.

* * *

그날 밤.

업무 때문에 오늘은 들르지 못한다고 했지만, 월요는 천비와 계란이가 눈에 밟혀서 결국 늦은 시간에 비연궁으로 찾아가고 말았다.

“폐하?”

“쉿.”

황제의 방문을 알리겠다는 원웅에게 되었다 손을 젓고서, 그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천년비가 책상 앞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손에는 붓을 꼭 쥐고 있다.

귀여워라. 월요는 웃으면서 다가가 붓을 빼내 주려다가, 천년비가 쓰다 만 글귀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계란이랑 떡돌이랑 같이 있으면 심장에 쌀을 붓는 느낌이 난다.

작디작은 만족감들이 가득 차서 간지러운 느낌이다.’

월요는 천년비의 머리에 입을 맞춘 다음, 붓을 빼내 들고 그 아래에 자신도 글귀를 적었다.

-연모하는 반숙아. 세상에서 가장 영민한 짐의 반려. 짐도…….

그런데 글을 쓰려다 보니 앞에도 얇은 책이 하나 있었다.

이건 뭔가, 싶어서 건성으로 한 장을 넘긴 월요는 몹시 신경 쓰이는 글귀를 발견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모월 모일 모시.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를 봤다.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는데, 담벼락 위에서 손을 내밀었다.

-과꽃이 그려진 손수건을 주고 갔다.

-이상한 사람이야. 왜 날 도와준 거지?

-하지만 정말 잘생겼다. 그가 준 손수건마저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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