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화. 타천천과의 첫만남
무슨 개소리를 하려나, 싶은 마음으로 쳐다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정말로 개소리를 한다. 타천천의 헛소리에 나는 입을 쩍 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 자식은 정말…… 미쳤구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 이유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생각 안 나?”
어깨를 으쓱하는 타천천에게 젓가락을 집어 던지고서 나는 이를 갈며 우리의 과거를 들췄다.
* * *
아직 내 독문무공이 완성형이 아닌 시절에는 정말로 죽을 고비를 지독하게,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번 넘겼다.
그때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고, 하루하루 살아 있단 데 감사하면서 살아갈 지경이었다.
그날도 그런 여러 나날 중 하나였다.
죽을 고비를 넘긴 건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쫓기고 싸우다 보니 며칠째 음식을 구하지 못한 날이었다.
이럴 때면 산에 들어가면 되지만, 하필 또 한겨울이라 산에도 먹을 게 없었다.
이 와중에 비까지 내리자, 나는 반쯤 정신없이 어느 폐가로 몸을 피했다.
그곳은 나무꾼이 사용하다가 버리고 간 집 같았는데, 여기저기에서 빗물이 들어오긴 하고 가구도 하나도 없지만 비를 피할 만은 했다.
거기서 나는 타천천과 처음 만났다.
급하게 문을 닫고서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짜고 있자니, 폐가 한가운데 그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단도를 꺼내서 그를 향해 내밀고 경계했으나, 타천천은 조금도 미동하지 않고서 감았던 눈만 뜨고 이렇게 말했다.
“들개냐. 눈 마주치자마자 이부터 내밀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긴 하지만 ‘이 악적! 죽어라!’라거나 ‘무슨 사술을 익힌 거냐!’라면서 달려들 기미는 없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 다음 구석에 가 앉았다.
바로 옆에 창문이 있어서 여차할 시 나갈 수도 있는 그런 자리에.
그래도 여전히 낯선 이를 경계하고 있자니, 그가 다시 말했다.
“너 그거 같네. 버려진 개.”
그 말을 하자마자 그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혼자 웃었다.
그러고서 미소 짓는데, 심상치 않은 기미가 느껴져서 나는 그에게 들고 있던 단도를 던졌다.
타천천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피하고는 코웃음을 치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공격…… 안 하나?’
아까 순간적으로 날 공격할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내가 이런 착각은 잘 안 하는데?
의심스럽지만 기운이 없긴 한지라, 나는 그를 노려보며 내가 던진 단도를 다시 회수해 온 다음 구석에 앉았다.
거기에서 그를 계속 노려보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비는 점점 더 거세게 왔고 앞으로도 한참은 더 퍼부을 것 같았다.
낯선 사람은 운기조식하는 걸 보니 날 습격하지 않을 거 같았다. 운기조식 중엔 자기가 더 조심해야 하니까.
아니, 그런데 저 자식은 제정신인가.
방금 막 단도를 던진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운기조식을 하는 거야? 내가 건드리면 죽을 텐데?
“…….”
그를 노려보다가 나도 조금 경계를 풀고서 구석에 웅크리고 누웠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 몸은 그쪽을 향한 채로 말이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굶주림과 피로함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내 배에서 나는 천둥소리에 놀라서 깼다.
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나면서 잠시 잊었던 허기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서 허기가 가시기를 기다렸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전히 배를 잡은 채 눈을 떠 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얗고 보송해 보이는 뭔가가 있었다.
‘먹을 건가?’
슬그머니 상체만 일으키고서 고개를 쭉 빼서 보니, 밥을 동그랗게 뭉쳐 커다란 나뭇잎으로 싼 음식이었다.
저걸 왜 여기 던지지? 의심스러워서 쳐다보자, 낯선 남자는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난 배가 불러서.”
난 내가 고프니까 슬그머니 가져다가 먹었다.
처음에는 꼭꼭 씹어 먹다가 나중에는 급하게 먹고 있으려니,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낯선 남자가 가부좌를 푼 채 턱을 괴고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독 들어 있으면 어쩌려고 그걸 그대로 먹지?”
어쩌긴.
“배부르게 죽겠지.”
대답을 하고서 다시 먹는 동안 그는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비가 그치지 않아서 결국 하루 더 거기서 머물게 되었다.
그래도 잘 먹고 푹 자서일까.
멍하게 빗소리를 듣다가 나는 어제는 비 냄새와 허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한 걸 이제야 인지했다.
“다쳤어?”
낯선 남자에게서 피 냄새가 나고 있었다. 말라붙은 피 냄새가 아닌 걸 보니 자기 피다. 계속 흘러내리는 피.
낯선 남자는 대답 대신 힐긋 나를 보다가 다시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와줄까?”
슬쩍 물어보자 대답을 하긴 했다.
“필요 없어.”
하지만 먹을 것도 얻어먹었으니 나도 도와주는 게 도리상 맞겠지! 나는 그때도 대인이었기 때문에, 얼른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디 다쳤어?”
곁에 쪼그리고 앉아 물어보자, 말과 달리 그는 순순히 웃옷을 벗었다.
“여기.”
의외로 옷 안쪽에는 상처가 많았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짐덩어리에는 어제 내가 본 그 나뭇잎에 싼 주먹밥이 두 개 더 있고, 붕대 같은 것도 있었다.
“붕대 감아 줄게.”
밥을 보자 다시 배가 고파왔지만 모른 척 붕대만 집었다.
그러고서 다친 상처 여기저기를 붕대로 열심히 감싸고 있으려니, 조금 뭐라고 해야 하나. 가까운 마음? 그런 게 들었다. 동질감 같은 거 말이다.
“너도 적이 많구나.”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속삭이자, 낯선 남자는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한 거야.”
나는 그의 허리에 붕대를 감다가 너무 놀라서 세게 당기고 말았다.
“윽.”
“왜?”
낯선 남자는 짧게 신음하면서, 매끈한 허리 대신 두툼해진 자신의 허리를 보더니 혀를 차며 대답했다.
“강해지려고. 그런데 너 진짜 붕대 못 감는구나.”
“너 변태야?”
“네 붕대 감는 실력이 변태다.”
“아니, 너 스스로 상처 냈다며. 변태야?”
그리고 내 붕대 감는 실력은 나쁘지 않다. 원래 붕대는 두툼하게 감는 거다.
그래야 피가 안 나오니까. 이론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내 생각엔 그렇다.
“변태 아니야. 안전한 곳에선 강해질 수 없어. 그뿐이야.”
“너 변태네.”
낯선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고서 날 쳐다보다가, “붕대 다 감았어?” 하고 묻더니 벗어두었던 웃옷을 도로 입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너. 이름이 뭐지?”
나는 도로 슬금슬금 내 자리로 돌아가 쪼그리고 앉았다.
어쩐지. 날 대할 때 태도가 평범하더라니. 내가 누군지 몰라서 저랬나 봐.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남자는 내가 붕대를 감아주어서 우리 사이가 퍽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나. 또 이름을 물었다.
“네 이름은 뭐지? 이름이 개똥이여도 안 웃을 테니 말해봐.”
“넌 이름이 뭔데?”
“타천천.”
모르는 이름이다. 나는 괜히 발치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 부스러기만 발로 툭툭 쳐댔다.
내 이름을 알려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히 아는데.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비가 그치면 헤어질걸.
하지만 마음과 달리,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저절로 이름이 나왔다.
“천년비.”
의외로 타천천은 ‘너 그 악적!’이라고 외치지 않았다.
“아아.”
아는 이름이라는 듯 중얼거릴 뿐.
“네가 소문 속 걔구나. 희한한 사술을 쓴다는.”
“사술 아닌데.”
“소문이 그렇단 거야. 그리고 사술이어도 상관없어. 그것도 네 실력이니까.”
“사술 아닌데.”
“알았어. 사술 안 쓰는 천년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말하는 걸 듣고 있으려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타천천은 그 소리에 힐긋 나를 보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넌 강하지?”
왜 묻는 건진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 이름 듣고서 저런 걸 묻는 사람은 처음이기에 나는 기세등등해서 대답했다.
“그럼!”
내 대답을 듣자 타천천은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하더니 뜻밖에 이상한 말을 했다.
“네가 강한 건 혼자이기 때문이야.”
“뭐래.”
“혼자 위험을 겪으며 다니니까, 살아남을 때마다 더 강해지는 거라고.”
“말도 안 돼.”
타천천은 더 말하는 대신 가방에서 아까 본 그 주먹밥을 꺼내더니 다시 내 쪽으로 던졌다.
“보답.”
얼른 나뭇잎을 벗기려다가, 아까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밥이 얼마 안 남았던 게 떠올라서, 혼자 다 먹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물었다.
“같이 먹을까? 반씩?”
하지만 타천천은 고개를 젓고서 가방 안에서 수통만 들어 보였다.
“이거면 돼.”
더 권할까, 하다가 가방에 하나가 더 남아 있단 게 떠올랐다. 게다가 그는 다치긴 했어도 행색이 좋았다.
잘 사는 집 애 같으니까, 쟤는 산에서 내려가면 다시 잘 먹겠지 뭐. 나는 혼자서 주먹밥을 또 먹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을 즈음.
나뭇잎에 붙은 밥 냄새를 맡으면서 굴러다니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나는 조금 타천천 쪽으로 굴러가 물었다.
“저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타천천은 가부좌를 틀려다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대답하진 않았지만 될 거다. 그래도 이틀 내내 같이 있어서인가. 어렴풋이 그의 행동이 어떤 식인지 알 것 같았다.
“저기, 내가 그렇게 괴물처럼 생겼어?”
타천천은 냉담하게 날 내려다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괴물? 웬 괴물?”
“사람들이 날 많이 싫어하잖아. 이유를 모르겠어. 그래서.”
타천천은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좀 부담스러울 만큼.
그 시선이 너무 강해서 결국 그에게 눈을 깔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기를 잠시. 드디어 타천천이 대답했다.
“뭐, 적이 많으면 무섭게 생긴 편이 좋은 거 아닌가.”
뭐지? 무슨 뜻이지? 내가 진짜 괴물처럼 생겼단 거야 아니야? 왜 대답이 저리 아리송해?
“그럼 넌 약해 빠지게 생겨서 적이 없어?”
하지만 자기가 먼저 나한테 무섭게 생기면 좋으니 어쩌니 해놓고.
내가 되묻자마자 타천천은 인상을 찡그렸다. 내 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
그러다가 타천천이 물었다.
“혹시 그 입 때문에 적이 생겼단 생각은 안 해 봤나?”
“아니.”
단호하게 말하자, 타천천은 코웃음을 쳤다.
“왜 그런 생각을 해야 해? 내 입엔 아무 문제 없는데.”
“그렇군. 그럼 이제부터 한 번 고려해봐. 괴물같이 생겨서 그런 건 절대 아닐 테니까.”
“그래?”
“그래. 넌 내가 태어나서 본 모든 생명 중 가장 빛나게 생겼어.”
“!”
뭐지. 저 소리는 내가 아주 매력적이며 아름답고 빼어나며 눈부시게 생겼단 소리인가?
사실 가끔 거울을 보게 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다 날 피하기에 내 눈에만 잘나 보이나 했는데. 역시 그건 아니었어.
그 말에 나는 놀라서 쳐다보았으나, 타천천은 그새 다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운기조식을 하진 않는 것 같아서, 나는 다급히 그쪽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난 안 믿어.”
사실은 믿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한 번 떠보는 거였다.
타천천 역시 가부좌는 시늉만 내고 있었는지, 바로 대답했다.
“그럼 내 눈에 콩깍지가 낀 거겠지.”
“콩깍지? 왜?”
“모르지. 반하기라도 한 거 아냐?”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쩐단 말인가. 남 일도 아니고. 하지만 그는 분명 그렇게 말을 했고, 나는 그걸 들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그를 보았지만, 타천천은 눈을 감고 있어서 진위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눈에 띄는 게 있다. 그의 귀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의 양 귀가 좀 불그스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