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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268화 (268/283)

##  268화. 용화노의 조언

당과를 먹다가 정파 자식들과 시비가 걸렸다. 그 자식들은 하여튼 염치가 없는 작자들이다. 먹을 때 건드리다니!

그 때문에 화가 나서, 싸움을 피하는 대신 나는 그들의 시비를 정면으로 부딪쳐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치고받고 싸워댔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삿갓이 날아가 있었다. 내 삿갓!

나는 삿갓을 찾아 빠르게 눈을 굴리다가, 길모퉁이에 선 누군가 내 삿갓을 줍는 걸 발견했다.

막 여기에 들어온 건지 아까는 못 봤던 삿갓 쓴 사람이, 내 삿갓을 집고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나는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거 내 건데.”

그러고서 삿갓을 가져가려다가, 삿갓 속 상대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의 삿갓 끝이 내 이마에 부딪혔지만 나는 뒤로 물러나지도 않고 눈에 힘만 주었다.

“떡돌이…….”

그를 보자 저절로 이름이 흘러나왔다. 내 삿갓을 주워 가려던 건 떡돌이었다. 나의 월요.

“네가 어떻게 여기에…….”

질문을 다 하기도 전에 정파 자식들이 뒤에서 검을 던진다.

떡돌이의 검을 빼서 그 검을 받아친 다음, 다시 그의 허리에 검을 채워주고서 나는 얼른 담을 넘어갔다.

“잡아!”

“악적! 놓치지 않겠다!”

뒤에서 정파 자식들이 뭐라고 외쳐댔지만, 저것들은 말뿐이다. 저자들은 나를 잡지 못하고, 놓칠 수밖에 없다.

나는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차가운 피부인데도 느낌상 얼굴이 화끈거렸다.

악적으로 쫓기는 모습을 떡돌이에게 보여주게 되다니!

반가운 기분도 들지만 그만큼 부끄러운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떡돌이는 내가 악적인 걸 이미 알지만, 그에게 굳이 그런 걸 확인시켜 주고 싶진 않은데.

한참을 뛰다가 나는 요 며칠 신세를 지고 있는 개운호네 집으로 들어갔다.

개운호네 집이라고는 하지만 개원이네 집은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개운호가 지금 독립해서 따로 외곽에 얻은 집이란 거다.

집 안에 들어가자 마침 잉어에게 밥을 주던 민신이 힐긋 내 쪽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쌩하니 날 무시했다.

응, 그래. 나도 네가 같이 손 흔들 거란 기대는 안 했어.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울 여력도 없어서, 곧장 그녀를 지나쳐 내 방으로 가 침상에 드러누웠다.

아주 잠깐 본 건데도…… 좋았다. 떡돌이. 거기에는 대체 왜 온 거였을까?

아니, 그보다 떡돌이. 내 진짜 모습을 본 거 이번이 처음 아닌가? 내가 나인 거…… 알아봤겠지?

‘아. 삿갓. 삿갓 결국 두고 왔다.’

아니, 삿갓이 문제가 아니잖아! 개운호가 용화노 위치를 알아내줘서 거기 가던 길이었는데!

나는 침상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한시가 급하다고!

* * *

천년비를 쫓아가려던 무림인들은 월요의 눈빛을 받은 승언이 몇 개의 돌을 이용해 막았다.

무림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자기들 발에 돌을 던지자 화가 나 몰려왔지만, 정보호가 “아니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다들 저리 가! 얼른!” 하고 펄쩍 뛰어대자 더 다가오지 못했다.

누군지 몰라도 정보호가 저렇게 나올 정도라면 보통 신분이 아닐 거라 짐작한 탓이다.

월요 역시 무림인들이 천년비를 쫓아가지 못하도록 발을 잡는 게 목적이었기에, 그들이 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지자 더 쫓는 대신 지시했다.

“정보호.”

“네, 폐하.”

“천년비의 다음 행방은? 아느냐.”

“수도 여기저기서 자주 발견이 되는 걸 보면 이 부근에 머무르긴 할 텐데, 정확히 어디 머무르는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찾아라. 하지만 그들이 눈치채게 하지 말고, 짐에게 바로 알려라.”

“예 폐하.”

깍듯하게 대답한 정보호는 두 손을 배에 대고 굽히면서도 힐긋힐긋 황제를 곁눈질했다.

아까 분명 그 천년비 악적이 황제를 ‘떡돌이’라고 불렀다. 황제는 무엄하다고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갔다.

게다가 악적을 볼 때 황제의 표정. 좀 놀라긴 했지만 역시 화내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좀 슬픈 듯한…….

‘대체 무슨 사연일까? 떡돌이란 건 무슨 말일까?’

정보상인 정보호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이 무엇일지, 황제가 왜 천년비를 몰래 찾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하지만 물어봐도 될지 몰라 망설이고 있자니, 승언이 그를 향해 날카롭게 경고의 눈짓을 보냈다.

입을 다물어라. 머리를 비워라.

* * *

개운호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용화노는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장공주의 무덤이 내려다보이는 산의 작은 호수 근처에 오두막을 지어 놓고 거기에 머무른다고 했지.

가짜일 수도 있지만 일단 찾아보자, 싶어서 나는 황궁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산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 산을 전부 다 샅샅이 뒤지기는 힘든 일이기에, 최대한 살기를 이리저리 뿌리면서 돌아다녔다. 용화노라면 눈치채고 오겠지.

그렇게 “용화노! 용화노!” 하고 외치면서 산을 오르기를 한참.

하늘이 조금씩 보랏빛으로 바뀌어갈 즈음, 굵은 나뭇잎을 부러뜨리는 소리가 났다.

멈춰서서 쳐다보자 용화노가 어느 나무에 기대어 서서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독 먹었다더니 얼굴이 많이 상했네.

특히 눈 밑이 완전히 보라색이잖아. 조금 더 늦게 찾았으면 진짜로 죽은 뒤였을지도 모르겠는데?

“너는…….”

내가 그를 관찰하는 사이. 용화노도 나를 찬찬히 훑고는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

“천년비인가 천년비가 아닌 건가.”

내가 웬 후궁 몸에 들어가 사는 걸 보아서 저렇게 물어보는 모양이다.

이렇게 된 사이에 굳이 감출 것도 없어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털어놓았다.

“그 몸에서 쫓겨났어. 다시 이런 신세가 됐지. 이젠 마마님이 아니야.”

“아아. 그런가.”

잘됐다고 비웃을 줄 알았는데. 용화노는 의외로 씁쓸하게 말했다.

“귀한 분들과의 사랑은 쉽지 않은가 보군. 너라도 잘 풀리길 바랐는데.”

“넌 아직 안 죽었네.”

“말하는 꼴을 보니 천년비 네가 맞구나.”

용화노는 차갑게 코웃음 치고서 돌아섰다.

“따라와라. 이 길은 가끔 나무꾼이 오가니까.”

용화노를 따라가자, 개운호가 말해준 것처럼 정말로 작은 호수가 나타났고, 그 호수 옆에 작은 오두막이 있었다.

용화노는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오두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는데, 세상에. 이 오두막, 대체 얼마나 건성으로 지은 거야? 걸을 때마다 오두막 바닥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울려댔다.

바닥이 울려대는 거야 그렇다 쳐도, 바닥을 밟고 걷는데 벽에서까지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용화노, 자네 집이 꼭 무덤 같아. 죽으면 무덤으로 쓰려고 부실하게 지었어?”

“혹시 황제 앞에서도 그렇게 말하다가 쫓겨났냐.”

“그럴 리가. 폐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좋아하셨어. 사람들이랑 달라.”

“그렇군. 그러면 폐하가 좋아하는 그 열 받는 화법은 폐하 앞에서만 쓰고 내 앞에선 좀 제대로 말해줬으면 좋겠군.”

“용화노, 자네 무덤이 꼭 집 같아. 생활감이 있네.”

용화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오더니 이글이글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어깨를 으쓱하자, 그는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저 주둥이. 됐다. 무슨 일로 날 찾은 건지나 말해.”

“개운호가 네 위치를 알려줬어. 어쩌다 개운호 따위한테 위치까지 알려졌어?”

“…….”

“알았어. 사실은 부탁을 하나 하러 왔는데.”

용화노는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자기 눈가를 가렸다.

“부탁하러 와 놓고서 지금까지 그 말들을 해댄 거냐. 그딴 식으로 부탁하면 누구라도 안 들어주고 싶을 거다.”

“알았어. 사실은 협박을 하나 하러 왔는데.”

용화노가 참지 못하고 탁자에서 단도를 집어 던졌다. 단도는 내 옆으로 날아가 그의 집 벽에 틀어박혔다.

“피하지도 않는군.”

“나한테 안 던졌잖아.”

“난 정말 네가 싫다. 알지?”

“근데 난 네가 싫진 않아.”

“!”

용화노는 표정이 순간 흔들리더니, 픽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알았다. 말이나 계속해.”

“저기, 전에 네가 그랬잖아. 타천천이 사하비단에 선황제의 서신을 숨겨두고 있다고. 그걸 대체 어디서 찾은 거야?”

“그걸 찾아서 뭐 하려고.”

“없앨 거야. 황제한테 위협이 되지 않게.”

용화노는 눈썹을 치켜뜨더니 고개를 기웃했다.

“쫓겨났다면서.”

“폐하가 날 쫓아낸 게 아니라, 그 몸에서 쫓겨난 거라니까? 몸 주인한테? 어쨌든 폐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같이 있지 못해도 이런 건 해주고 싶어.”

“참 낯설게 구는군.”

용화노는 혀를 찼지만 일단 팔짱을 끼고서 생각에 잠기긴 했다.

바로 생각나지는 않는지, 머리를 굴려보려는 듯했다.

그가 생각을 마치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멍하니 오두막의 나무로 된 벽과 그 사이의 틈에서 새어 들어오는 겨울바람, 그리고 적막한 새소리에 관심을 기울였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마침내 용화노가 허공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 * *

“강시를 만들려면 시체가 필요하고, 시체를 사람들 이목을 끌지 않고 구하려면특수한 장소가 필요하지. 게다가 약품 같은 것들도. 내가 혼령술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 건 어느 공동묘지 내부에 있는 관련 건물 안이었다. ……뭐? 이사를 갔다고? 그러면 거기도 옮겼겠지. 사하비단과 관련되거나 가까운 공동묘지 위주로 알아봐.”

용화노의 조언에 따라, 나는 사하비단에 돌아온 뒤 이곳 지리를 전체적으로 한 번 훑어보았다.

그 결과 사하비단 안에는 공동묘지가 없단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신을 아무 곳에나 방치할 수는 없을 터. 분명 사하비단에서 시신이 생기면 묻을 묘지는 정해져 있을 거다.

사하비단 단원 시신으로 강시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타천천이 그러진 않을 것 같거든.

그런 걸 보면 사하비단 단원들이 안 좋아할 테니까.

나는 영혼도 있고 이성도 있는 강시 몸이지만, 대부분의 강시는 말 그대로 이지 없이 이용당하는 신세 아닌가.

‘누군가 죽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 지켜보자.’

그러다가 죽는 사람이 생기면 어디로 이동하는지 따라가보는 거야. 그러면 사하비단과 관련 있는 묘지를 찾을 수 있어.

* * *

그러나 죽는 사람이 생기기 전, 다음 날 저녁. 타천천이 나를 먼저 불러 물었다.

“놀러 다니는 건 끝냈어, 녕녕?”

“놀러 다니다니?”

내가 모른 척 묻자 타천천은 별거 아니란 듯이 대답했다.

“아직도 황제한테 미련을 못 버리겠어?”

그는 내가 수도에 다녀왔다는 걸 아는 듯했다.

내가 떨떠름하게 쳐다보자, 타천천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항복 표시하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걱정 마 녕녕. 난 네가 어딜 다니든 막지 않을 테니까. 가고 싶은 곳은 다 다녀봐.”

그렇지만 선황제 서신을 숨겨둔 곳을 물어보면 안 가르쳐줄 거잖아.

사자 친왕이 뭔가를 아는 듯 말했을 뿐인데도 사람을 보내 죽이려 했으면서.

아니, 그걸 내가 뻔히 아는 것도 알면서.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날 대할 수 있는 걸까?

“녕녕.”

“왜.”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양심이 있으면 네가 왜 좋아한단 내 말을 안 믿는지 생각해 보라고. 내가 그 이유를 계속 생각해 봤거든?”

갑자기 밥 먹다가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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