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좋은 방법을 알려줄게
영빈은 마음을 먹자마자 바로 자신의 측근 궁녀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연비 언니에게 가서 내가 긴히 의논할 말이 있다고 해.”
“네, 마마.”
영빈은 잘 정돈된 손톱을 씹으며 궁녀가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시간 흘러가는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다행히 차 한 잔이 식기 전에 측근 궁녀가 돌아와 알렸다.
“마마, 연비 마마께서 와도 좋다고 하세요.”
영빈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얼른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막상 연비를, 동경하는 얼굴을 마주하고 앉자 영빈은 ‘이래도 되나?’ 하는 불안이 치솟았다.
연비는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지략가였다.
이 궁궐에서 그녀가 평온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인단 건, 오히려 그녀의 대단함을 방증하는 거였다.
하지만 연비는 해운잠을 좋아하지 않았다.
천소여처럼 대놓고 불만을 보이진 않았으나, 영빈은 늘 연비 옆에 붙어 있기에 잘 알았다.
연비도 해운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연비에게 해운잠이 천소여 몸을 차지했다고 밝히면 어떻게 될까? 연비는 천소여에게 천소여 몸을 되찾아주려 할 것이다.
거기까진 영빈도 동의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비가 해운잠을 무사히 빼내줄까?
이미 장사 지낸 해운잠의 몸이 되살아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빈은 그래도 최대한 해운잠을 구할 방도도 찾을 것이다.
하지만 연비는 그렇게 해줄까? 연비는 해운잠은 신경을 끄고 천소여만 챙기지 않을까?
“우여야?”
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영빈이 맞은편에 앉아 멍하게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자, 연비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빈은 눈을 내리깔고서 입술을 악물었다.
‘아니야…… 지금 당장 말할 게 아니야. 어머니를 천소여 몸에서 나오게 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대로 돌아가시게 둘 수는 없어.’
“우여?”
연비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고 그윽해졌다. 영빈의 태도에 무언가 의구심을 느낀 게 분명했다.
영빈은 얼른 고개를 들고 웃으면서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아아, 폐하 몸 상태 말이야, 언니. 그 얘기를 좀 하려고.”
‘일단 내가 방법을 먼저 찾아보자. 언니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그다음에.’
이후 영빈은 황제의 갑작스러운 낙마에 대해 계속 떠들다가 배가 고프다며 돌아갔다.
연비는 영빈이 떠나고 나자 탁자에 턱을 괴고서, 그녀가 돌아가는 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수상한데…….”
* * *
진실을 털어놓는 문제로 고민하는 이는 영빈뿐만이 아니었다.
‘이를 어쩐다.’
마차를 타고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내내 사자 친왕 역시도 시름시름 고민에 잠겼다.
영빈이 해운잠의 목숨이 달려 있어서 고민에 잠겼다면, 사자 친왕은 자신의 목숨 때문에 고민하는 거였다.
비록 사자 친왕이 마음을 돌려먹고 진실을 털어놓더라도, 월요 황제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낄 일 아닌가.
한때나마 배신을 진지하게 고민한 거니까.
최악의 경우에는 황제가 사자 친왕을 불안하게 여겨 후환을 제거하려 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좀 후회될지도.’
고민거리가 깊다 보니 이동 시간이 유난히 짧게 여겨진다.
눈 깜짝할 새 마차가 친왕부 안에 도착한 걸 알아차린 사자 친왕은 마차 벽에 머리를 콩 콩 박으면서 앓았다.
“벌써 도착하였는가…… 좀 더 돌아가선 안 됐던 건가…….”
“예? 전하, 한 바퀴 더 돌고 올까요?”
애꿎은 마부만 문을 열어주다가 그 소리에 놀라 물었다.
“아니. 되었다. 그냥 한 말이니.”
사자 친왕은 손을 젓고서, 오는 길에 고용한 마부에게 품삯을 넉넉히 챙겨준 다음,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황제가 있을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아직 마음의 정리가 안 끝났지만 어쩔 수 없지. 부딪히는 수밖에.’
“전하, 오셨습니까?”
방 앞으로 가자, 마침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오원요가 사자 친왕에게 인사를 걸어왔다.
그러면서 기대에 찬 눈으로 사자 친왕을 보는 걸 보니, 천년비와 연락이 되었나 궁금한가 보다.
“폐하께선? 계시는가?”
사자 친왕은 사람들 눈을 의식해 우선 이렇게만 물었다.
오원요는 잠시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들어가시지요.”
사자 친왕은 오원요를 따라 익숙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월요는 여전히 침상에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안색은 이전보다 훨씬 나아져 있었다.
“그래도 제법 회복이 되신 듯해 다행입니다, 폐하.”
“오원요와 승언이 절대로 목을 못 움직이게 말려댔거든. 짐이 조금만 몸을 틀어도 난리가 났지.”
월요도 사자 친왕을 보자 아까의 오원요와 비슷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숙이는? 찾았느냐?”
“안 그래도 그 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폐하.”
월요는 기대하는 얼굴로 사자 친왕을 보다가, 그가 작은 목소리로 심각하게 말하자 승언에게 눈짓을 보냈다.
주위 사람들을 모두 물리게 한 것이다.
사람들을 물렸다고는 해도 그림자 몇몇은 곁에 남아 있을 테지만, 사자 친왕도 그들까지 물릴 수는 없단 걸 알았다.
그는 근처에 의자를 가져다 두고 앉아 심각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천빈 마마를 찾았는지 아닌지를 두고 말씀드린다면…… 찾았습니다.”
사자 친왕의 말에 월요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하지만 사자 친왕은 거기에 휩쓸리는 대신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천빈 마마는 당장 폐하께 돌아올 마음이 없다고 하십니다.”
“!”
월요의 환한 표정이 대번에 돌처럼 굳었다. 그 뚜렷한 표정 변화에 사자 친왕은 더욱 긴장되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이야기는 더더욱 엄청난데. 이를 어쩔까…….
“그게 무슨 소리냐. 당장 돌아올 마음이 없다니?”
“천빈 마마가 폐하를 습격한 건 예상대로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천빈 마마의 ‘몸’에 명령이 내려져 있기 때문이었지요.”
“몸에 명령?”
“천빈 마마의 지금 몸은…… 산 자의 몸이 아니니까요.”
“!”
“천빈 마마는 폐하와 닿으면 폐하를 습격하게 됩니다. 여기엔 천빈 마마 의지가 없습니다. 천빈 마마는 연모하는 폐하를 눈 뜨고 공격해야 한단 겁니다.”
“그러면 안 닿으면 되지 않으냐.”
“지금은 ‘닿으면 습격하라’는 명령이 주입된 것 같은데요. 더 심한 명령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폐하. ‘근처에만 가도 습격하라’ 같은 걸로요.”
월요의 표정이 눈에 띄게 서늘해졌다.
“그 명령을 내린 건 타천천이겠지?”
“예. 어쨌든 이런 상황이라 천빈 마마는 당장 돌아올 수 없다고 하십니다.”
천빈이 돌아와 황제를 습격하는 것도, 그런 천빈을 황제시해범이라 잡는 것도 싫었던 승언은 차라리 안도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떨어져 지내야 하는 건 슬프지만 중요한 건 서로가 무사한 게 아닐까. 승언은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월요는 납득할 수 없단 얼굴이었다. 문제는 그 역시 당장 해결 방안은 없단 거였다.
천빈과 잠깐이라도 붙어보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괜찮으니 데려와라’고 할 텐데.
짧은 시간 겨루어 보았을 뿐이지만 천빈의 힘과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그러면 서신은?”
“마마께서는 서신을 쓰는 대신, 타천천이 꾸미는 꿍꿍이를 내부에서 막겠다 했습니다.”
“타천천이 꾸미는 꿍꿍이?”
“정확히 뭘 원하는진 모르겠지만, 타천천은 선황제 폐하의 서신을 여러 통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진짜 서신인지 가짜 서신인진 모르겠습니다. 저도 실제로 본 건 아니고, 이야기만 들은 거라서요.”
“타천천이 아바마마의 서신을 가지고 있다고?”
월요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사자 친왕은 마른침을 삼켰다. 앞으로 더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 할 건데.
벌써부터 저렇게 대경실색하다니. 긴장감에 발바닥이 다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천빈 마마께서는 그 서신을 찾아 전부 없앨 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타천천은 강시술과 혼령술을 쓸 줄 아니, 선황제 폐하의 시신도 없애야 한다 했지요.”
선황제의 시신을 없앴단 소리에 오원요는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고, 승언은 입 밖으로 탄식하는 소리를 냈다.
감시 선황제의 시신을 ‘없앤다’고 말하다니. 다른 대신들이라면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타천천이 부황의 시신을 누이처럼 이용할 수 있단 건가?”
“아마도요.”
이마를 구기고 심각하게 고민하던 월요는 잠시 뒤. 고개를 기울이더니 사자 친왕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사자. 그대는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잘 알지?”
사자 친왕은 냥빈 이야기를 황제에게 들려줄 때만 해도, 그 안에 천년비의 영혼이 있단 걸 몰랐다.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을 알고 알려주려 하자, 월요는 사자 친왕도 의심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이 나올 줄 짐작하고 있었기에, 사자 친왕은 무릎을 꿇었다.
“사자?”
놀란 월요가 불렀으나, 사자 친왕은 무릎을 펴는 대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천빈 마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으니……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폐하.”
“?”
“신이 사하비단에 대해 잘 아는 건, 한때 그들이 접근하는 걸 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신이 사하비단에 있는 천빈 마마를 발견한 건, 신도 그들의 근거지에 간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
“신이 사하비단 수장의 야심을 없앨 방도를 폐하께 말씀드리는 건-.”
“이제 와 마음을 바꾸었다?”
월요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그 서늘한 목소리는 상상한 이상으로 더 차가워서, 사자 친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찾기 어렵네.’
며칠을 뒤지고 다녔는데 못 찾다니! 나는 지붕 위에 늘어지듯 누워 한숨을 토했다.
사자 친왕을 내보내 준 뒤. 타천천은 날 찾아오더니 이사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왜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알잖아, 녕녕’이라고 대답했지. 그는 사자 친왕이 결국 황제를 편들리란 걸 아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자는 아는 게 많이 없어, 녕녕. 너무 신중하게 굴기에 많은 걸 알려주지 않았거든. 계속 설득만 하고 있었지. 하지만 위치는 아니까.
이렇게 말했던가. 사자 친왕 말대로 아직 그는 사하비단과 깊숙이 연이 닿는 건 아닌 듯했어. 이걸 월요가 받아들여 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그 덕에 이틀 동안 짐을 싸서 바로 이사를 했고, 나는 이사하기 전이나 후나 선황제의 서신을 찾아다녔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타천천을 습격해서 협박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고 실천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멱살 잡는 것까진 어찌어찌 되던데.
그를 실제로 해코지하려고 생각하자마자 몸이 타천천의 앞에서 돌처럼 굳어버린 탓이었다.
타천천은 내가 강시처럼 두 팔을 쭉 내밀고서 굳어 있자 낄낄 웃으면서 놀려댔다.
“녕녕, 설마 내가 안 그래도 강한 널 더 강하게 만들면서 아무 제약도 안 뒀을 거라 여겼어?”
젠장. 여겼지. 멱살 잡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괜찮을 거라 여겼다고!
“이를 어쩐다…….”
이렇게 된 이상 사자 친왕 쪽이라도 일을 잘 해결해주어야 할 텐데.
최소한 선황제 시신이 없으면 선황제를 강시로 깨우진 못할 거 아냐.
아니, 아니야. 선황제 시신이 없어도 그놈이 서신에 뭔 짓을 했을지 몰라. 서신도 없애야 한다.
그때였다. 커다란 나무 위에서 내 옆자리로 타천천이 눈처럼 내려앉더니, 웃음 섞인 목소리로 제안했다.
“원하는 게 있어, 녕녕? 하지만 못 찾겠어? 그럼 내가 좋은 방법을 알려줄까?”
“뭐야 꺼져.”
“날 이용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