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어디에 숨겨 두었을까
사자 친왕은 머리를 감싸고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머리가 멍멍하고 귀가 울려서 대체 무슨 일인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제정신을 차리기 전 다시 뭔가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사자 친왕은 정신이 없어서, 순간 자기가 또 맞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에 한 손을 올리고서 보니 두 번째 타격음은 그에게서 난 게 아니었다.
사자 친왕은 피가 흐르는 상처를 손으로 막고서 몸을 돌리다가, 두 번째 타격음이 어디서 난 건지 알아차렸다.
그곳에는 복면인 하나를 붙잡고서, 세 번째, 네 번째 타격음을 연달아 내고 있는 천년비가 있었다.
* * *
“전하. 괜찮아요?”
복면인을 제압해 기절시킨 다음 일단 꽁꽁 묶어 옆방에 둔 뒤. 사자 친왕을 안아 그의 방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내가 안긴 겁니까? 지금 내가 들린 거 같은데요……?”
말을 잘하는 걸 보니 일단 제정신이긴 한 거 같았다.
나는 사자 친왕을 침상에 눕히고서 그가 상처에서 손을 치우게 했다.
“으.”
“많이 다쳤습니까?”
“거울은 안 보는 게 좋겠어요, 전하.”
“어떻게 됐길래요?”
“피가 많이 묻어서요.”
긴장을 풀어주려 농담한 건데. 더 사색이 되네. 귀하게 자란 도령들은 내 농담을 통 알아먹질 못하는구먼!
나는 물수건을 가져다가 그의 이마에 묻은 피를 닦아준 다음, 갈아입을 옷을 주기 위해 옷장을 뒤졌다.
옷장이 텅 비어 있어 건진 건 없었지만.
“급하게 오느라 부채밖에 챙기지 못했습니다.”
“옷을 챙겨와야죠.”
혀를 차고서 일단 겉옷만 벗으라 했더니, 사자 친왕은 괜히 어색하게 겉옷을 벗어 내밀었다.
그걸 의자에 걸어두고서, 그새 이마에서 또 새어 나오는 피를 닦아주었다.
사자 친왕은 그제야 좀 안정이 되는지 침상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그건 뭐였습니까?”
“습격자죠.”
“어느 습격자요?”
“사하비단의 습격자겠지요.”
“죽였습니까?”
“아니요. 그냥 묶어서 옆에 두기만 했어요.”
사자 친왕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됩니까?”
“여기가 사하비단이잖아요. 적진에서 시체 처리도 힘들고. 죽여봐야 오히려 원망만 더 살 걸요.”
“자기들이 공격한 건데도요?”
사자 친왕은 영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았지만, 암습은 누군가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나도 정파 새끼들에게 자주 암습을 받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왜 암습을 받는지도 몰랐지.
“소저 덕에 살았습니다.”
“암요. 은혜는 꼭 갚아요.”
“그러지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전하가 그랬잖아요. 뭔가 떠오를 거 같다고요. 그 말이 신경 쓰여서 왔지요.”
“물어보려고요?”
“아니요, 전하 입을 누군가 막으려 할 거 같아서요.”
“!”
“전엔 전하가 사하비단 사람이니 공격받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아직 관련이 많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맞습니다. 아직 한패라기엔 애매하죠.”
“이런 와중에 전하가 계속 저한테 찾아왔잖아요. 사하비단 쪽에선 의심할 거예요. 변심하는 거 아닌가, 배신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런데 들어보니 전하가 아주 저들에 대해 모르진 않으니까. 공격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사자 친왕은 잠시 나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감탄했다.
“소저는 이런 일에만 빠삭하군요?”
이런 일에‘만’? 내가 가자미눈을 하고 쳐다보자, 사자 친왕은 갑자기 근엄한 표정을 짓고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소저가 이 몸을 구해줘서 정말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중요한 게 떠올라서. 내일 소저에게 얘기해주려 했거든요.”
누군가 들을 수도 있단 염려 때문인지 사자 친왕의 목소리는 급격하게 낮아져 있었다.
“그게 뭔데요?”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죽이고서 묻자, 사자 친왕은 망설이더니 얼굴을 좀 더 가까이 가져다 달라 했다.
떡돌이가 싫어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긴급한 상황이니.
내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사자 친왕은 내 귀에 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쩌면 부황, 그러니까 선황제 폐하를 부활시키려는 거 아닐까요? 완전히 부활시키든, 원하는 대로 서신 정도를 쓸 만큼만 부활시키든.”
“!”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사자 친왕은 너무 거리가 가까워 부담스러운 듯 뒤로 고개를 조금 뺐다.
나는 멍하게 그를 쳐다보다가 내 허벅지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맞아. 그럴 수도 있겠어!
“타천천도 아직 강시를 만들고 조종하고 하는 건 불완전하다 했어요. 뭐가 마음대로 안 되는 거 같았지요. 하지만 불완전하더라도…… 확실히. 잠깐이라도, 서신을 몇 통 쓸 정도로만 깨워도 이용할 수는 있겠네요.”
혹시 필체가 각기 다른 그 서신들은 연습용일까? 혹시 전부 다 다른 영혼들이 쓰고 간 서신들일까?
아니면 선황제 폐하의 혼을 다른 몸에…… 젠장. 몰라. 내가 타변태 그놈 머리를 어찌 짐작하겠어?
어쨌든 그것들이 위험하단 건 확실했다.
어쩌면 타천천이 자기 비술을 훔쳐 간 고궐을 방해하거나 잡으려 들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몰라.
장공주가 선황제보다 먼저 죽었잖아? 그런 장공주가 깨어나서 뭘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싶다거나, 그런 거.
안 그래도 대신 몇몇은 선황제가 떡돌이에게 보위를 물려줄지 말지를 두고서 마지막까지 신중했단 걸 알고 있다.
그런 대신들 앞에 타천천이 만들어 낸, 내용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떡돌이에게 불리할 만한 서신들이 여러 통 내밀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을 대비해서 미리 없애 버려야겠어요.”
“타천천을요?”
“서신이랑 시신이요.”
사자 친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좋은 생각이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둘 다 어려운 일일 거다.
왕릉에 묻힌 사람의 시신을 빼내 없애는 것도, 타천천이 꽁꽁 숨겨둔 서신을 찾아 없애는 것도.
“전하. 전하.”
“말해보세요.”
“여긴 무공 익힌 사람들뿐이잖아요. 여기서 전하가 힘을 발휘하긴 힘들어요. 전하는 약하니까요.”
“……물론 제가 약하긴 하지만…….”
“그러니 전하가 선황제 폐하 시신을 없애 줘요. 전 여기서 타천천이 숨겨둔 서신을 찾아 없앨게요.”
사자 친왕은 이마를 짚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위험하겠죠.”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떡돌이가 어떻게 될지 몰라. 떡돌이가 어떻게 되면 계란이에게도 좋지 않겠지.
“전하가 안 된다면 나 혼자서라도 할 거예요.”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서 일어났다. 사자 친왕은 침상을 짚고 나를 따라 일어나더니, 내 옷깃을 잡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같이 합시다.”
* * *
혹시 또 침입자가 올까 봐 걱정되어서 나는 밤새 사자 친왕의 침상 곁에 있어 주었다.
다음날 새벽. 마을로 떠나기 위해 밖으로 나설 때는 옆에서 함께 가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사자 친왕은 긴장을 풀지 못했지만.
어제 습격을 당하고 나니 이곳이 위험하게 여겨지나 보다.
“소저는 여기서 정말 혼자 괜찮겠습니까?”
마을에 들어서면서도 사자 친왕은 연신 걱정스럽게 물었다.
“안 되면 소저도 이참에 나와 함께 가지요.”
“내가 사하비단 편이 아닌 건 타천천도 아는 걸요, 뭐.”
나는 사자 친왕을 달래고서 떠나보낸 뒤, 다시 몸을 돌려 사하비단 안으로 홀로 돌아왔다.
생각할 게 많기에 일부러 느릿하게 걸었다. 좀 걸으면서 생각하고 싶어서.
‘타변태가 서신을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 * *
사자 친왕도 말을 타고 돌아가면서 내내 천년비와 주고받은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어 맡은 임무에 대해서.
‘선황제 폐하의 시신이라…….’
사자 친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위치는 안다. 사실 모르는 사람도 없겠지만.
하지만 선황제의 시신을 없애는 건 절대로 쉽지 않았다.
시신을 꺼내는 것도 일이었고, 흙을 파는 것도 일이었고, 꺼내서 나오는 것도 일이었다. 나와서 처리하는 것 역시 일이다.
‘나 혼자 할 수는 없다. 절대로.’
사자 친왕은 자신의 수하들을 떠올려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나섰다간 흙을 제대로 파기도 전에 걸리지 않을까? 아니, 분명 걸릴 터.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고민 끝에 사자 친왕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바로 월요 황제였다. 월요 황제라면 그가 걱정하는 이 모든 일을 처리해 줄 수 있다.
감시를 늦춰주고, 시신을 빼돌리는 길에 사람들을 치우고, 시신이 사라진 관을 원래대로 순식간에 바꾸고.
문제는…….
‘평범하게 말해선 선황제 폐하 시신을 없애야 한단 말을 안 믿을 거란 말이지. 사하비단 이야기를 다 해야 해.’
자신이 사하비단에 흔들린 일까지. 사자 친왕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마마, 마마.”
영빈은 친왕부로 황제의 병문안을 갈 준비를 하다 말고서 옆을 보았다. 그녀의 상궁녀가 씩씩거리는 얼굴로 서 있었다.
“왜 그러지?”
영빈이 묻자, 상궁녀는 곁으로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알려주었다.
“천비마마께서 또 마마를 부르세요.”
“난 폐하께 갈 건데.”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그럼 같이 가자고 하세요.”
상궁녀는 싫은지 치를 떨며 덧붙였다.
“정말 요즘 너무 이상하시다니까요?”
영빈은 막 귀에 걸려던 귀걸이를 화장대에 세게 내려놓았다.
요즘 들어 천비는 수시로 그녀와 함께 있으려 들었다.
그녀가 어딘가에 가면 쫓아왔고, 그녀가 처소에 있으면 직접 오거나 사람을 보내 자신에게 오게 지시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처음에는 ‘천비마마께서 마마와 친해지고 싶은가 봐요’라고 좋게좋게 넘기던 궁녀들도 지금은 학을 뗄 정도였다.
영빈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뿐만 아니었다. 지금의 천비는 자신이 영빈의 친모인 해운잠이라고 주장했다.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것, 아는 것 등을 들어보면 꽤 흡사하긴 했다. 진짜 같다고 결국 인정할 만큼.
하지만 어쨌든 천비의 모습 아닌가.
영빈은 그녀가 자신을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좋은 게 아니라 괴로웠다.
문안을 갔을 때 태후가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며 천비를 유독 챙기자, 태후에게 달라붙는 걸 볼 때는 그쪽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정말 왜 갑자기 그리 귀찮게 구시는지 모르겠어요. 자기랑 친한 후궁들하고는 안 놀면서.”
“그만하거라. 가자.”
영빈은 결국 귀걸이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하지만 마차를 타고 친왕부에 가 황제를 만났을 때.
해운잠이 황제 옆으로 가 꼭 붙으면서 무어라 속삭이는 걸 보자 영빈은 더 소름이 돋았다.
해운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영빈을 곁으로 불러 황제에게 떠밀기까지 했다.
“영빈. 폐하 곁에서 간호하거라.”
영빈은 표정 관리를 하며 억지로 있다가, 바람을 쐬러 나간다며 천비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아무도 대화를 듣지 못할 곳에 가서 화를 냈다.
“대체 뭘 하시는 건가요!”
“너야말로 뭘 하는 거냐. 수를 써서 폐하 옆에 밀어주면 폐하 마음을 차지하려 애써야지. 거기서 석상처럼 있으면 대체 어떻게 총애받겠단 거야!”
“총애요?”
“넌 기회도 못 잡는 바보로구나. 내가 나 좋으라고 이러겠니?”
영빈은 더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어머니가 어떤 의도로 이러시든, 전 어머니와 같은 남편을 두고 있단 상황만으로도 소름이 끼쳐요!”
“내가 네 남편과 잠자리를 하니 뭘 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입조차 맞추지 않았어. 난 그저 널 황제 옆에 붙이고 싶을 뿐이란다. 그런데도 넌 날 시기하는구나. 내가 몸 편하게 지내는 게 싫어서 그러니? 우리는 사이 좋은 모녀가 아니었어?”
“사이 좋은 모녀였으니까 더 이 상황이 소름 돋는 걸 정말 모르시겠어요? 어머니가 편하게 지내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어머니와 이런 관계로 있는 게 싫은 거라고요! 어머니가 차라리 천소여가 아니라 다른 사람 몸을 뺏었다면 내가 이러겠어요? 놀라도 어머니를 도왔을 거예요!”
계속해서 말다툼을 했으나 결국 둘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해운잠이 먼저 안으로 돌아가자, 그 뒷모습을 보며 영빈은 이마를 짚었다.
‘언니에게 상담해야겠어.’